[에레모스 영성]하늘양식
정광일
광야의 삶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보다 마실 물과 먹거리 문제였다. 사람은 물을 마셔야 하고 먹어야 한다.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넌 민족은 수르 광야 길을 사흘 걷다가 겨우 한 샘터를 발견하여 마시려 하였으나 그 물은 안타깝게도 마실 수 없는 쓴물 곧 ‘마라’였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기적 그리고 이어지는 기적은 양식에 대한 것이었다. 곧 ‘만나’와 ‘메추라기’의 기적이었다. 막힌 길이 열리고 쓴물이 단물로 바뀌고 하늘에서 먹을 양식이 내리는 기적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은 비로소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는 곧 “내가 여호와 하나님인 줄 알리라”(출애 16:12)는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적 그 자체가 아니었다. 기적이 기적을 낳는 기적의 연속이 아니라 기적 그 다음에 따라오는 삶에 보다 큰 의미가 있었다. 하늘 양식은 ‘일용할 양식’이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하루치 양식이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많이 가졌더라도 아침이 되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각각 하루 먹을 만큼만 거두는 것에 익숙해졌고 누구라도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깨닫게 하신 공적 신앙과 그에 따른 공동체적 삶은 그대로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대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이다. 우리가 날마다 먹고 살아가는 양식은 어느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다. 특히 내 먹을 양식을 위해 창고를 크게 지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웃의 몫을 가로채려는 욕심이다. 광야는 앞으로 가나안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앞서 보여주는 예표였으며 이를 실천하는 수련의 터전이었다.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는 정치적 식견은 내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는 신앙의 또 다른 식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