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3(화)

[향유옥합] At his Wheel! 하나님의 녹로 위에서!

최지영 광야미니스트리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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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11.0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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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토기장이는 진흙으로 그릇을 빚다가 잘되지 않으면, 그 흙으로 다른 그릇을 빚었다. (예레미야 18 4)

 

그간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뤄뒀던 세 개를 버렸다. 닳고 해졌는데 게을러서 미처 버리지 못한 낡은 옷, 분명 아직 입을 만한 옷이긴 하지만 내 멋대로 살던 시절을 상징하는 거 같은 옷처럼 여겨져서 몇 년 동안 장롱에서 나와보지 못한 자주색 외투 하나, 그리고 침대 옆 창틀의 시커먼 먼지 더미 한뭉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면 자기 의지로는 도저히 수렁을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만약 수렁으로 걸어간 발걸음이 누군가가 떠밀어서가 아니라 내가 간절히 원하고 자만심에 가득하여 진군한 것이라면 헤어 나오기는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욕망과 세상 정욕으로 똘똘 뭉쳐져 시작된 사업의 처음 순간 달콤했던 잠깐의 성공이 마약처럼 나를 중독시켰고 꽤 오랫동안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서서히 끓는 물에 잠긴 개구리가 뛰쳐나올 기회가 분명히 있었을 텐데도 끝까지 물에서 튀어나오는 방법을 잊은 채 죽어가는 것처럼 나의 지난 세월이 그러했다. 모기업의 투자를 받아 정부와 기업의 주목을 받으며 어렵사리 구축했던 의료관광플랫폼은 잇따라 발생한 사드와 코로나로 여지없이 곤두박질쳤다. 속수무책이라는 말은 아마도 이때 사용하는 단어인 거 같다.

 

나 하나도 버티기가 버거워 나만 바라보던 그때 남편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광야아트미니스트리에 종신문화선교사로 헌신하였다, 2021년 선한목자교회에서 남편을 문화선교사로 파송한다는 사실을 듣고서야 그 사실도 알았다. 남편의 어떠함을 공유하고 함께할 여력도 마음도 없을 만큼 내가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 서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젊어서부터 꿈꾸던 문화선교사로 헌신한 남편을 맘껏 축복하고 축하해주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꽃다발을 한아름 안겨줘야겠다고 생각하며 파송식을 기다렸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내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문화선교사 파송은 부부 파송이 원칙이라 내가 같이 선교사 파송을 받아야 한다는 정말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내내 거부했다. 나 같은 사람이 무슨 그런 거룩한 이름표를 달 수 있냐고, 벌려 놓은 사업을 어떻게 정리하라고, 어이없는 한숨과 기가 막힌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파송 날짜가 다가올수록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저 눈물만 났다.

 

그렇게 내 삶이 무너져가는 클라이맥스의 시점에, 소망도 희망도 없이 살아있으나 산 사람이 아닌 그런 시점에, 바로 그때 나를 버리셔야 할 주님이 나를 오히려 건져 주셨다. 내밀어 주신 손 붙잡기가 너무나 민망하고 부끄러워 끝까지 거부하는 미련을 부려보았지만 주님은 나를 오래 참으신 사랑으로 나를 꼭 잡아 주셨다. 2022년 주님의 강권하심으로 시작한 전문인선교훈련원(GPTI)의 훈련이 내 삶의 변곡점이 되었다. 훈련을 받는 내내 내가 모태신앙이 맞기는 한지에 대해 놀라고, 나의 왜곡된 신앙관에 놀라고, 내 삶에 깊이 파고든 이원론과 세속주의에 놀라고, 나의 엉망진창이었던 경건 생활에 대해 놀라고, 나의 굳어져 있던 신앙의 양심에 놀라고, 내 안에서 조그마한 틈만 생기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끊임없는 사탄의 속임수에 놀라고, 나의 일그러진 영성에 놀라고, 나의 성숙하지 못한 감정에 놀라고, 나의 사랑 없음에 놀랐다. 이제 나는 울보가 되었다. 성경을 읽으면서 울고, 서툰 기도하면서 울고, 독서하면서 울고, 예배하며 울고, 사역하면서 운다. 슬픔과 탄식으로 울었던 내가 감사와 깨달음으로 운다. 재대신 화관을 씌워 주신 주님의 사랑을 힘입어 운다. 광야아트미니스트리의 복음이 전부 된 선교사들이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몸소 실천하며, 나와 함께 울어준다.


 오늘 버린 것들을 바라보며 묵상한다. 게을러서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면 내가 쓰레기같은 옛 습관을 평생 끼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버려야 할 것을 알면서도 뒤돌아본다면 롯의 아내처럼 소금기둥으로 변하거나 옛 자아를 끝까지 십자가에 못박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날마다 쌓이는 작은 먼지들도 그날그날 버리지 못하면 결국 대청소를 또 해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의 녹로 위에서, 그의 뜻대로 빚어지는 진흙으로 오늘도, 내일도 산다.

 


전체댓글 1

  • 88676
고영길

그렇군요.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하나님께서는 한 점의 흐트림도없이 정하신대로 그 길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군요.

그것도,
내가 나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을때가 바로 하나님의 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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