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대통령기념사업회서 한미우남포럼
“이승만 ‘개혁가 정신’ 미국선교사의 영향”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김남수목사)는 지난 5일 정동제일교회(담임=천영태목사)에서 「이승만과 대한민국」이란 제목으로 한미우남포럼을 진행했다. 이승만의 개혁가 정신이 미국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생겼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회장 김남수목사는 “자유와 독립을 위해 이승만대통령과 애국지사, 순국열사들이 써간 역사가 바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면서, “이승만대통령처럼 비전과 믿음과 열정과 헌신으로 새 역사를 써가며, 이 자랑스러운 정체성을 후대에도 물려줘야 한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믿고 지혜를 구한다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고 말했다.
「교육 대통령 이승만」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조지워싱턴대학교 김영기교수는 “이승만의 만주사상은 동양 다른 어느 국가보다 개방적이고 창의성을 보이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데 공헌했다”면서, “그는 획기적인 개혁가로 미국 선교사들의 노력의 정신적, 물질적 성과였다. 그의 국제적 안목은 한국인들의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하나의 목표, 두 개의 특성: 인물 이승만 이해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란 제목으로 발제한 데이비드 필즈교수(워스콘신대)는 “이승만은 평생 한국의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이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고집스러운 성격이 있었다”면서, “이 고집은 때로는 자신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였다. 이 목표를 위해 그는 급진적인 정책을 기꺼이 채택했다. 그중에서 일부는 성공적이었고, 일부는 엄청난 인적 비용을 초래했다. 이러한 패러다임으로 이승만을 바라보는 것이 회화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감정과 장점, 단점을 가진 인간으로 조명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미군정기 이승만의 방미외교와 남한단정론」이란 제목으로 발제한 독립기념관 이사 오영섭박사는 “트루먼 독트린 이후 미국의 일부 유력 언론들이 소련공산주의를 제어하기 위한 장치로서 남한단정론을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미국정부의 입장현화에 따라 철회하기는 했지만 애치슨 국무장관대리와 러치 미군정청 장관 등이 일시나마 남한단정론을 지지한 사실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면서, “이는 이승만이 방미외교를 통해 외쳤던 남한만이라도 보동선서를 통해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이것을 남북한 통일정부를 수립하는 기반으로 삼자는 남한단정론이 역사적 타당성을 인정받은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이택선교수(명지대)는 “이승만정부 시기의 농지개혁은 농림부 장관 조봉암을 중심으로 한 중도파의 주도와 이를 적극 지원한 최고 지도자 이승만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것이다”면서, “또한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농지를 대거 소유하고 있었던 일본인 지주들이 사라진 가운데 상대적으로 한국인 대지주의 수가 극히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아직 불하되지 못한 토지를 국가가 점유하고 있었던 취약국가의 현실 때문에 대다수의 농민들이 자작농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나마 존재했던 지주들 역시 공산혁명을 저지해야만 한다는 목적의식이 뚜렸했었고 기꺼이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되는 것을 감수했다. 특히 지주들의 지도자였던 인촌 김성수의 살신성인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마찰이 있었고 이를 조정하는 것은 이승만의 몫이었다. 따라서 적지 않았던 지주들의 반발을 잘 무마하여 농지개혁을 성공시킨 최고 지도자인 이승만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부흥의 기반을 세운 우남 이승만과 그의 스승 아펜젤러 선교사」란 제목으로 발제한 원성웅원로목사(옥토교회)는 “이승만은 출소 후 6개월만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열 명의 넘는 선교사들이 이승만을 위해 추천서를 써주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유학시절 미국을 보면서 기독교적 바탕의 국가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대한민국의 부흥과 번영의 기반을 놓은 이승만박사를 기리며 아름다운 대한민국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한마음으로 나가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