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협의 목요기도회 50년역사 재평가 필요
민주화위해 고난받는자와 함께한 역사 공유
정치적인 이유로 구속된 자의 가족들과 함께 기도
고난당하는 자에게 용기·위로를 주는 격려의 자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주도했던 목요기도회의 50주년 기념식에서는 그 당시 민주화를 위해 힘쓴 이들의 다양한 증언이 나왔다. 특히 목요기도회가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한 역사를 나누었다. 또 소통의 장을 마련한 목요기도회가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해동목사는 “처음에는 1층 소회의실에서 모여 기도했다. 목사들의 모임이었다. ‘구속된 동지들과 함께 드리는 정기 목요기도회’라는 플랜카드를 달고 기도회를 했다. 구속자들은 안에서 기도하고, 우리는 밖에서 함께 기도하자는 것이 기도의 초점이었다”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의 생각을 뛰어 넘는다. 가족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들이 모이니까 열기가 대단했다. 가족들의 호소를 듣고 기도를 했다. 이것이 처음 드리던 목요기도회이다. 이것이 수가 늘다보니 조에홀에서 드리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이 기도회가 활성화가 되니까 열기가 대단했다. 초대교회의 모습이었다. 교회 나오는냐 안 나오느냐는 상관 없었다. 찬송가를 같이 부르고, 기도도 같이했다. 아픔을 함께하는 기도회였다”면서, “그러다 1975년 긴급조치 제 1호로 사람들이 석방됐다. 그 후 조에홀에 석방된 분들도 환영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러다 인혁당사건이 일어난 후 목요기도회에서 살인정권 물러나라는 목소리를 냈다. 그때의 열기와 사람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연봉선생은 “동일방직 해고자를 위한 기도회가 있었다. 기도회 순서에는 동일방직 사건을 풍자한 연극이 있었다. 경찰들이 우리를 미행해서 제시간에 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무사히 갈 수 있었다”면서, “연극이 끝난 후 함께 서로를 위해 울었었다. 그 당시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는 플랜카드가 있었는데, 그걸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까지가 연극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들고 계단을 다 내려가지 못했는데도 경찰에 잡혔다. 그리고 경찰에 심한 취조를 당했다 사진을 보여주면서 아는 사람들이 있냐고 물었었다. 아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구타를 당하면서도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동일방직의 싸움은 민주화를 열망했던 사람들이 지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면서, “정치적으로 탄압받던 사람들이 호소하고 말할 때가 없었는데 그 때 상황에서 목요기도회가 소통의 장을 마련해 준 것은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배에 앞서 인사말을 전했던 김영주목사는 “이곳에 모여서 기도회를 할 때에 단순히 종교행사인거 같았지만 그것은 한국인권운동의 상징이었다. 홀로 외롭게 탄압받던 이들이 목요기도회에 오면 용기를 주는 격려받을 수 있던 자리였다.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정치적 탄압을 받던 정치인도 와서 격려를 받던 자리였다”고 말했다.
또한 “목요기도회는 성령의 역사가 있던 자리였다.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호소할 때 그것에 반드시 정치와 경찰은 리액션을 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작은 소리를 언론은 큰 소리로 냈다”면서, “그래서 우리 시대의 과제가 무엇인지 이야기해주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몇몇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한국정부를 흔들었다. 50주년을 기념하는 우리에게 성령의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이 전통을 잘 이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