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로 오신 그리스도
마가복음 16:19-20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강림)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지 2천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 긴 시간을 지내면서 오늘 예수님을 자기 인격과 마음에 믿음으로 탄생시키지 못한 사람들은 한번도 오시지 않은 것과 같은 세월의 격차를 경험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성탄절이 파티와 축제로 그치고 그분의 오심(현현)의 자리를 그것들이 대신합니다.
오늘 마가복음을 통해서 부재중에 계시기를 원하시는 믿음의 자리를 찾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부재가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이 더 굳건한 시간이야 말로 이 세상이 그리스도를 품은 시간일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부재인 승천과 그 후의 일을 짧게 기록합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막19:20) 예수님의 부재와 더불어 그분의 함께 하심과 표적으로 말씀이 확실해 집니다. 그분은 떠났으되 더 가까이 오신 모습입니다. 우리의 주님을 기다림이 이런 모습이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마가복음은 두 번의 풍랑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마가복음 4장 35- 41절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은 고물에 주무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웁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아우성에 바다를 꾸짖고 외치십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막4:39b) 거라사의 귀신을 꾸짖던 그 동일한 꾸짖음으로 꾸짖어 마침내 제자들을 도와줍니다. 바람이 그치고 잔잔하여졌습니다. 믿음이 없는 제자들은 약간의 꾸지람을 듣습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니 문제들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6장에서 두 번째 풍랑을 만날 때는 예수님께서 부재중이십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타고 앞서 건너편 뱃새다로 가게 하시고”(막6:45) 예수님께서 재촉해서 보낸 결과가 풍랑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촉으로 풍랑을 겪는 제자들 곁으로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제자들을 도울 생각이 없으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할까요?
저는 예수님의 부재를 통해서도 예수님이 존재하는 또 다른 방법을 가르쳐주시는 것이란 생각이듭니다. 마치 본문의 말씀처럼 승천하신 예수님이 떠남이 아니라 우리 곁에 역사하시는 것처럼 제자들이 두 번째 만나는 풍랑에는 부재중인 예수님이 이미 계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계실까요? 제자들이 탄 배는 예수님께서 목적지를 정해 준 순간 고기잡이배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명령을 실어 나르는 ‘복음선’ 입니다. 이 배에 타서 풍랑에 고통받는 제자들은 풍랑에 버려 진게 아니라 건너편으로 소명을 가지고 가는 자들입니다. 그 소명이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함께 탑승하지 않았어도 그분의 명령을 받았기에 함께 탑승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부재를 통해 예수님이 언제나 함께 하심을 깨워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습니다. 자연적 바람이 그치듯 그 바람은 예수님이 배에 오르자 그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막6:50b) 는 말씀을 주십니다. 성경의 모든 부분은 기적보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소명을 받았다면 주님이 함께 계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고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부재의 시간에 우리에게 소명의 말씀으로 와계신 예수님은 믿음 안에서 선명합니다. 모든 분들에게 부재로 오신 임마누엘 예수님의 은혜가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 갈월교회 이병칠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