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일 전후로 조씨에게는 후년에 두고두고 참회의 근원이 될 한 여인이 등장한 바 있었다. 옛 포도밭 주인[일본인]의 딸이었다. 포도밭의 주인은 8ㆍ15 직후 일본으로 쫓겨 가면서 마름의 아들(조 청년)과 자기 딸을 긴밀한 관계로 맺어 놓고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조씨는 일녀 하나꼬에게 임신만 시켜 놓은 채 구박해, 결국 그녀가 이 나라를 떠나게 만들었다.
그리고서는 한국 여인과 결혼을 했지만 그의 주색잡기 습벽에 지쳐 버린 첫 부인은 그녀의 나이 서른에 집 근처의 느티나무에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연이어 여인들을 들이기는 했으나 엽색 행각과 인색함 때문에 여인들은 1년을 넘기지 못한 채 모두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이런 뒤 그는 아예 홀아비 생활로 일관하였다. 말이 홀아비이지 돈은 많았기 때문에 여인들은 어디에나 즐비했다. 결국 주색잡기, 곧 술과 도박과 여인 탐닉이 그의 생활의 전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런 때에 하나꼬가 그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녀가 혹시 재산 때문에 온 것이 아닌가 우려했으나 그녀는 그 이유 때문에 한국에 온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딸[동시에 조씨 자신의 딸]이 장성해 결혼을 앞두고 있었으므로 생부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구실로든 그는 하나꼬를 냉대해 쫓아 버렸다. 혹시라도 뒤따를지 모를 구설수를 막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일이 있은 뒤로, 자신이 한 일을 두고두고 괴로워하였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던 그에게 60대라고 하는 나이가 찾아들었다. 외로움과 괴로움이 엄습하여 그의 잠을 악몽으로 만드는 때가 많았다. 그는 종교에 귀의하기로 하였다. 성당엘 찾아가 교리를 배우고 뒤늦게 가톨릭에 입교하였다. 그런 뒤에 그는 자선사업에 뛰어들기도 하였다. 고아원이나 양로원, 나환자촌을 찾아다니며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자기의 과거에 대한 회한이 그를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는 신부에게 고해성사(告解聖事)를 통해 위로받고자 하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의 짐을 덜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치부를 고백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그 일을 쉽게 고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차일피일 결단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그의 임종이 다가오고 있음을 스스로 느낀 그가 신부에게 내일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전하고 난 뒤, 그 내일에 해당하는 날 새벽 5시경 고해성사도 이루지 못한 채 운명하고 말았으니, 이 말을 전해 듣게 된 신부도 몹시 갑갑하게 된 것이었다.
미카엘 신부는 조 노인이 죽기 전 자기에게 고하려고 했던 것이 재산 헌납의 문제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망자의 큰아들에게 그 사실을 확인해 볼 생각으로 마음을 떠보았으나 별무소득(別無所得)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인의 재산은 세 아들들에게 이미 유산 상속돼 버린 상태였으니, 노인이 무슨 재산 헌납을 계획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미카엘 신부는 지금껏 전혀 헛다리만 짚고 있었을 뿐이었다는 말이 되는 셈이다.
실제로 미카엘 신부는 ‘장애자복지회관’ 건립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평소에 자신의 사업을 위해 재정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신도들, 주로 돈 많은 신도들과 접촉해 왔다. 장애자 복지시설을 구상하고 있는 이 신부의 뜻이야 결코 나무랄 것이 못 되었다. 또한 돈 있는 신자들과 접촉해 온 일도 그 자체만으로는 별 흠이 될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