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시야 왕이 죽던 해(사6:1)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주전 8세기는 국제적으로 매우 혼란한 상황이었다. 안으로는 경제대국을 일으켰고, 영토를 확장하고, 이름을 멀리 변방에까지 떨친 웃시야 왕이 죽었다.(대하26:6~10) 밖으로는 동쪽 유브라데 강을 끼고 신흥제국 앗수르가 세력을 확장해 오고 있었고, 위쪽으로는 아람이 주변 나라들을 속국으로 만들면서 반앗수르 동맹에 가담하라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런 긴박한 때에 아하스가 새로 왕위에 올랐기에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 백성들에게 신임을 얻으려면 자신도 웃시야 못지않게 힘 있는 왕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아람과 동맹을 맺고 남유다를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이 순간 공포가 얼마나 심했는지 왕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는 기록이다.(사7:2)
본문 3절에 보면, 아하스는 극심한 공포를 안고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길로 나갔다. 윗못은 예루살렘 성 동쪽에 기드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만나는 기혼 샘이다. 여기서 물이 흘러 예루살렘 성 아래 못까지 이어지는데 이 물을 실로아 물이라 명명한다. 아하스는 바로 이 물길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물의 공급이 가장 중요한데,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군대가 물길을 끊으면 전쟁에 패하기 때문이다. 물길은 여느 때처럼 천천히, 끊임없이, 줄기차게 흘러 예루살렘 성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아하스의 마음은 이 실로아 물줄기에 있지 않았다.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무시무시한 전쟁의 공포가 다가오는데,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실로아 물로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사8:6)
그때 이사야 선지자가 아하스 왕 옆에 섰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서 아하스 옆에 선다는 것 자체가 메시지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탁을 전한다. “굳게 믿지 아니하면 굳게 서지 못하리라”(사7:9) 히브리어로 ‘로 타아미누 로 테아메누’인데, ‘로’는 아니다라는 부정어를 뜻하고 ‘타아미누’와 ‘테아미누’는 ‘아멘’의 강조형이다. 히브리어 문법상 부정어 ‘로’와 미완료형이 결합하면 아주 강한 금지 명령형이 된다. 그래서 우리말은 ‘굳게 믿다’, ‘굳게 서다’라고 옮겼다. “아하스야, 굳게 믿어라, 그래야 너의 자리가 굳게 지켜진다”는 뜻이다.
아하스 왕은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군대에 맞서려면 앗수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분명히 말씀하신다. 아하스 왕이 의지해야 할 것은 아람도 아니고, 앗수르도 아니고, 애굽도 아닌 은혜의 젖줄 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마치 실로아의 물이 멈춤 없이, 줄기차게, 쉼 없이 흘러 성안 백성을 살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쉬지 않고 우리를 적신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뿐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 어려움을 내가 헤쳐나갈 힘이 없기 때문에 탄식한다. 여호사밧 왕은 나를 둘러싼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다고 호소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걱정과 근심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그 위기를 모면하려고 세상적인 방법을 찾아 바쁘다. 우리가 흔들리는 이유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그런 어려움이 나에게 왜 찾아왔는지 하나님께 묻고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곁에 선 선지자를 만난다. 선지자는 또렷이 말씀한다. “굳게 믿지 아니하면 굳게 서지 못하리라” “너는 지금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줄기를 보고 있으면서도, 그 물로 인해 성안 모든 백성들이 생명을 이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너의 마음은 저 넘실거리는 유브라데 강(앗수르)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구나”/동현교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