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예술적 가치를 접목한 세계적 ‘명품’ 교회당으로 설계
프랑스 그르노블대 신형철 교수
◇현대적 외형과는 대조적으로 홍송830여그루가 세워진 남서울은혜교회 선교센터 가평 생명의 빛 예배당 내부.
생명의 빛 교회 - 홍송 830개를 수직으로 세워 ‘부활’ 의미를 나타내
‘생명의 빛’은 WAF서 2015 종교건축 분야 7곳 중 한 곳으로 선정
폐 선박 활용한 디자인으로 노아의 방주처럼 설계 - 영종 온누리교회
◇대담하고 있는 프랑스 그르노블대 신형철교수
공간이 주는 힘은 강합니다. 각자에게 추억과 감동으로 기억되는 공간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입니다. 예배당은 교회 건물의 주된 기능인 ‘예배’를 위해 회집되는 공간이자 예배의 처소입니다. 좋은 예배당이란, 주의 몸된 교회라는 무형의 공동체가 유형의 공간에서 좀더 집중된 예배, 몰입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기능미적 측면에 더불어, 세상에 기독교와 교회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성을 지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건축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문화적 자산이며 우리의 신앙적 고백이 되기도 합니다.
신형철교수님은 그동안 가평 생명의빛 예배당, 영종도 온누리교회 등 참신하고 획기적인 설계를 도입해 한국교회 건축예술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목조와 폐자원을 활용한 자연친화적이면서도, 독특한 예배당 설계로 주목을 받고 계십니다. 교수님이 설계하신 생명의 빛 예배당은전형적인 설교 강단이 없고, 어디에서 바라보아도 모든 사람들과 눈을 맞출 수 있습니다. 어디에 앉아도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는 신선한 예배당으로 앞서가는 예배당의 형태를 취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처럼 예술적 가치를 접목하는 건축가로서 한국교회의 건축과 방향에 대한 고견을 여쭙겠습니다.
△신교수=종교사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는 ‘종교인에게 공간은 동질적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말한 기하학적인 공간의 개념과는 반대로, 성경에 나오는 ‘공간’들은 의미와 본질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성스러운 공간이 별도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으며, 그의 뜻을 알게 되고, 공간의 의미와 상징을 통해 특별한 감동을 받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고, 성전인 ‘나’의 마음속에 계시지만 특히 공동체로 모이는 공간, 즉 성도들 사이에 계십니다. ‘공간’이란 특수한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과 무엇 사이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교회 공간은 이러한 뜻과 의미를 갖춘 성스러운 곳이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신 바로 ‘그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개혁자 칼빈이 언급했듯이, 교회는 ‘만인이 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에 평등하게 모이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원형의 형태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부활’·‘생명’ 상징하는 수직설계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약 6년간 가평 생명의 빛 예배당을 설계하시고, ‘월드 아키텍처페스티벌(WAF) 2015’에서 종교건축 분야 7곳 중 한 곳으로 선정됐습니다. 생명의 빛 예배당은현대적 외형과는 다른, 돔 형태의 웅장한 내부 설계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수직으로 뻗은 홍송 830여 그루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엄청난 힘을 받아야 하는 기둥은 철근이 아닌 탄성이 있는 나무, 홍송을 사용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5년간 설계하셨던 영종도 온누리교회가 공개되어 교계와 세간의 주목을 받고 계십니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건축가로서 한국교회건축에 투신하게 된 계기와 동기가 궁금합니다.
△신교수=제가 프랑스에 있을 때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목사님께서 유럽 코스타(KOSTA)를 위해 오셨습니다. 제가 건축사 졸업작품으로 교회를 설계했다는 것을 아시고 대화를 나누다가 어떤 분이 교회건축을 위해 홍송을 기증하셨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목재를 어떻게 쓰면 좋을까 함께 고민하면서 설계가 시작되었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니 나무들이 땅에 눕혀져 있었는데, ‘서있는 것은 부활이고 생명이고, 누워있는 것은 죽음이다’라는 철학적 사유에 근거하여이 나무들을 모두 세워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나무를 자르면 수직에서 수평으로 눕게 됩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신앙으로, 누웠던 목재를 다시 세우면서 ‘부활’을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이 의견을 기쁘게 받아 주셔서 한국에서의 첫 작품이 되었습니다.
업사이클링 통한 가치 재부여
▲이번 영종도 온누리교회는 폐 선박을 활용한 설계가 돋보입니다. 건조된 지 수십년된 폐선박의 선수 부분을 잘라내 땅에 세우는 ‘재활용’ 방식이라고 알고 있는데, 교회건물이 노아의 방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본당 내부 천장은 백향목으로 꾸며 목조식으로 설계하셨는데, 설계할 때 주안점은 무언지, 건물의 특징은 무엇인지 등을 듣고 싶습니다.
△신교수=노아의 방주는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건축물이며, 하나님께서 직접 설계하시고 노아가 시공한 협동 작품입니다. 특히 인류와 세상의 모든 동물을 구원하기 위한 용도로 설계된 건축입니다.
우리는 배의 모양을 모방한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작업이 아닌, 실제 선박을 직접 사용하였습니다. 폐선되어 버려진 선박을 사용함으로, 시편 118편에 나오는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란 말씀이 이번 설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영종도는 섬이기 때문에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가 공동주최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올해 수상자’로 선정되셨을 때도, ‘배’를 활용한 건축(프로젝트 템플)으로 이목을 끌었습니다. 현재 이 작품은 가평 생명의 빛 예수마을 입구 베드로카페로 구현되어 있기도 합니다. 신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배’에 특별한 관심을 두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신교수=건축가 르 꼬르뷔제는 20년대에 그린 선박 그림(Vers une architecture, 1923)을 보면 선박의 규모를 프랑스 유명 건축물(노트르담 대성당, 생 자크 탑, 에투알 개선문, 가르니에 오페라극장)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이 4개 건물 보다 더 큰 규모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박의 규모가 건축의 규모를 뛰어넘었다는 뜻이며, 산업시대가 만들어 낸 가장 큰 제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선박은 엄청난 하중을 이동시키고 바다의 저항을 받기 때문에 건축보다 더 견고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또 건축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곡선으로 설계되고, 방수가 완벽합니다.
산업적으로 생산된 모든 제품은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선박도 35년 정도 사용하고 버려지게 됩니다. 폐선작업은 엄청난 바다 오염의 원인이 되고, 고철을 강철로 재활용되는 과정에 많은 에너지가 소비됩니다. 우리는 이 고철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해, 건축 속에 ‘업사이클링’ 하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산업이나 공예의 방식으로 복제 혹은 시리즈로 생산된 물건들은 스스로 얻게 되는 상처와 시간의 흔적으로 오래된 골동품처럼 세상 유일한 물건이 됩니다.
◇영종 온누리교회
교회건축 예술의 비전
▲유럽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가톨릭은 조형 언어에 거부감이 없는 편입니다. 다만 기독교는 회화나 조각을 우상으로 보는 편이라 교회건축 예술이 발전되기에 다소 제한적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크리스천 예술가의 언어로 전하는 영적 감동과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신교수=어려서부터 프랑스에서 살아서 가톨릭 문화를 많이 접했습니다. 서양에는 예술과 기독교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종교개혁 이후에 회화와 조각은 파괴하였지만, 인간에게는 ‘눈’이 있으므로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눈 있는 자는 볼지어다”라고 말씀하셨고, 특히 소경을 고쳐주신 기적이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의 완벽함을 보고,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고, 예수가 부활하신 것을 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우리는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시대부터 건축은 제1의 시각미술(visual art)로 인정하였습니다.
▲프랑스 그르노블 국립대 교수로도 계시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계십니다. 건축 일을 시작한 계기와 활동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신교수=학교 졸업 이후에는 후배들에게 직접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학생 때 받은 지식을 갚는다는 의미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20년이 지나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고대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이미 말했듯 건축은 설계 활동, 즉 실무를 해 나가면서 이론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이라 강의와 작업을 같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설계도 연구하고 더욱 좋은 건축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건축은 다양한 지식을 다루는 활동입니다. 미술에 관심이 많아서 건축과 순수 미술 사이에 있는 분야도 실험하기도 합니다. 프랑스와 한국 사이에서, 마치 현대의 유목민처럼, 일이 있는 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대담 최규창편집국장, 정리 백선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