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를 내 동포처럼 섬긴다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박경서 목사
◇ 이주민 선교가 활발해져 새로운 사랑의 선교 모델이 되고 있다.
인천공항서 노숙생활하는 이주민을 지원해 본국에 보내
네팔 돌아간 이주민은 뜻밖의 신앙고백의 체험으로 감사
인천 외국인노동자센터를 박경서목사(사진)가 운영하고 있다. 팬데믹으로 모든 국가가 공항과 항만에서 출입국 심사가 엄혹하던 지난 2022년 1월 박목사에게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통역과 상담을 하던 베트남 출신 이주민에게서 전화 한 통이 왔다. 베트남 국적의 승객 한 분이 코로나 방역지침 때문에 어느 나라로도 가지 못하고 공항에서 2주 가까이 노숙 생활하고 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묻는 전화였다. 베트남 국적의 P씨는 2021년 12월 29일 베트남을 출발하여 인천공항에서 캐나다 토론토행 비행기로 갈아타려고 탑승 수속을 하던 도중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하여 캐나다 당국에 의해 P씨의 비자를 일방적으로 취소해 환승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P씨는 5일 만에 비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탑승시간 72시간 이내에 검사한 유효한 PCR검사 음성 확인서가 꼭 필요한데 비자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유효 기간이 지나버린 것이었다. P씨는 경유국인 대한민국은 물론 베트남으로도, 행선지인 캐나다로든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공항 난민이 돼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P씨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그 사이 돈이 다 떨어져 공항 벤치에서 쪽잠으로 10여일을 넘게 견뎌야 했다. 그러던 중 P씨는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와 연결되었던 것이다.
박목사는 매일 100통이 넘는 전화를 관련 기관과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런데 박목사는 평소 알고지내던 인천시 인권위원이며 인천공항공사 상임감사위원인 윤대기 위원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인천공항공사 측은 자체 보건팀이 공항 환승지역으로 들어가 P씨의 PCR 검사를 받게 해 캐나다로 출발했다. 공항에서 생활한지 17일 만이었다. 박경서 목사는 이처럼 어려운 처지의 이주민들의 문제를 자기 일처럼 해결하려고 일하려 하는 사람이다.
그는 이주민 사역을 하면서 생각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1999년 10월부터 이주민사역을 시작했으니 일들도 많지요. 미등록 이주민들이 80%가 넘었던 2000년대 초반에는 고향에 갈 수 없었던 이주민을 대신하여 딸 결혼식에 참석하였고, 서로의 소식을 비디오로 녹화하여 전해 주기도 했어요. 모두 눈물 바다였죠... ”
박목사는 다른 신앙경험에 관한 이야기도 공개했다. “2005년 경 이주민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했던 인하대 학생들과 네팔로 돌아간 한국어 교실 학생들을 만나러 간 적이 있었어요. 네팔의 브트왈 지역에 사는 분들 9명과 우리 일행이 준비해서 만든 닭볶음탕을 먹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저에게 조용히 다가와서 “목사님, 저 사실 하나님을 믿어요”라는 거예요.
“뜬금없이 고백하는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니 한국에서 저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 시기에 미등록이주민들에 대한 단속이 심하였고 더군다나 일자리도 없어서 네팔로 떠나기로 결정했대요. 며칠 정리하는 시간 동안 교회에서 머물게 해달라고 해서 교회에서 머물고 있었지요. 어느 날 밤 갑자기 교회 안에 있는 십자가와 예수님의 사진이 눈에 들어오더래요. 한국에서 일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자기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기도했대요. ”하나님 저는 힌두교인이에요.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정말 저 지금 네팔에 돌아가면 너무 어렵습니다. 가족들도 돌봐야하고 집 안에서 갚아야 할 돈도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소개시켜 주세요. 그러면 진짜 하나님 믿겠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찌푸리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를 하고 잠을 청했는데 그 날 이른 새벽에 부산 근처에 일자리가 있으니 빨리 내려오라는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즉시 부산으로 내려가서 몇 년 더 일하다가 네팔로 돌아왔다고 하더라구요. 이 사건은 저에게도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박경서 목사는 이주민 사역을 하기 전에 신앙인으로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일이 있었다고 했다. IMF시절 실직노숙자들이 늘어나자 노숙자분들을 위한 쉼터 사업을 하였는데. 어느 날 쉼터식구 한 분이 수술을 해야 했다. 인천시가 운영하는 의료원에서 무료 수술을 위해 며칠을 기다렸는데 그 분이 수술 날 새벽에 갑자기 사망한 것이다. 큰 병이 아니라고 해서 안심했었는데, 너무 방심하지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자문을 하곤 했다고 한다. 박목사는 오늘도 그는 자신의 이주민 사역이 하나님과 깊게 소통하며 이루어지고 있는지 늘 자문하고 기도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