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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3.02.0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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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현안이 넘쳐 나는데 나아갈 방향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일반 문화, 세상이 기독교를, 교회를 고루하고 초라하게 보고 있다. 우리의 신앙이 이토록 비참하게 보일 때가 없었다. 교회는 배타적인 기관이 되어 사회 속에 소금이 되지 못하고 소금을 뿌리고 있고, 빛을 밝힐 수 없는 촉 나간 전등이 되어 사람들의 시각을 밝혀주지 못한지 오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도 받지 못하고 멋도 없고, 기쁨도 없고, 평안도 없고, 지적으로도 빈곤하여 자기들끼리도 소통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고 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왜냐하면, 오래전에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통으로, 인간이 만든 법으로, 그리고 교회가 교회의 필요에 의해서 제정한 신조와 교리에 매장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할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6:8)”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하나님은 구약의 제사장들에게 절기의 희생의 똥을 얼굴에 바르신다(2:3)”고 하였다. 지금도 우리들, 만인 제사장된 우리들에게 우리들의 희생과 헌신, 봉사를 구약의 희생제사의 똥처럼 얼굴에 바르고 계신다. 우리들에게 있는 현안의 문제들을 보면 더욱더 실감이 난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현안을 풀어갈 시간도, 능력도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해 생각도 없다. 모두 다 나 몰라’, ‘나는 상관이 없어하고 살고 있다. 사실상 지금까지 우리는 믿음의 자세를 견지하고 살기보다는 믿음의 시각만 유지하고 살았다. 그래서 보고, 생각하고, 말하는 이론은 있었으나, 실천하는 실행의 자세는 가지지 못했다. 자연히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았다. 그래서 세상보다 못한 기독교가 되었는데 여전히 세상보다 나은 기독교라고 여기고 반성도 없고, 회개하지도 않는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있어야 할 자족을, 세상의 만족으로 둔갑시켜 자족의 삶은 교회 안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사장되어 버렸다. 그래서 자족의 행복이 아닌 만족의 행복’, 그 탐욕의 삶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그 추구가 준 잉여가치 속에 있는 가장 신앙적이고, 신학적이어야 할 영적체험도 문화적이고 미적체험으로 둔갑시켜 버렸다. 결국 신앙의 가치는 디자인에 귀속되었다. 그래서 내용보다는 형식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고, 결국은 신학의 영역과 신앙의 영역은 분리되었다. 삶의 현장에서 신학은 논쟁으로만 드러나고, 신앙은 다름이 아닌 낯섦과 어설픔으로 묻혀 버리고 말았다.

 

지금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현안에 대해서 그리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방향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이 살았던 그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 속에 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은 신조, 그리고 문화적 신앙진술을 선포하지 아니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하나님 나라를 그들의 관계 속에서 삶으로 선포하며 살았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은 신조도 아니었고, 교회의 강령도 아니었고, 더욱이 신학도 아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며, 삶 속에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살았다. 이 복음의 본질, 관계됨으로 맺어지고 선포되는 삶을 회복하지 아니하면 지금 우리에게는 나아갈 방향이 없다.

 

교회의 미래는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데 그 방향이 있다. 그 당시 세상의 문화에 동화된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2:5).”/전주효성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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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현안과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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