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한민국 출산율을 0.75명을 기록하였다. 우리는 더 이상 저출산 국가가 아니다. “초”저출산 국가가 된지 오래다. 이러한 저출산 문제는 학령인구 감소, 노동 인구 감소 등의 사회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국가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강하고 분명하게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가족 개념이 약화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결혼과 출산의 당사자인 우리의 다음 세대가 현재 매우 행복하지 않으며, 미래에 대한 소망과 기대도 현저히 낮아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가 많은 재정을 투입하고, 다양한 정책들을 펼치고 있지만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가족의 해체와 소망 없음의 문제는 돈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직 사랑과 긍휼의 회복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이러한 내용을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특별히 룻기는 그러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우리 가운데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룻기는 사사기와 사무엘서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사사시대의 어둠과 다윗왕의 영광이 교차하는 그 중심에 룻기가 놓여있다. 우리는 룻기 안에서 보여지는 깨어지고 무너진 한 가정의 회복이야기가 이스라엘을 사사시대의 어두움에서 건져내는 위대한 역전의 이야기가 됨을 보게 된다.
룻기의 등장하는 가정은 매우 흥미롭다. 우선 이들은 피가 섞어지 않은 “비혈연 공동체”이다. 이들을 혈연으로 연결해주던 남자들은 모두 죽었다. 또한 이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다문화 공동체”이다.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위대한 변화와 회복의 중심에 비혈연 공동체, 다문화 가정을 중심에 두신 것이다. 이것은 가족을 가족되게 하는 진정한 중심은 혈연관계나 문화적 친연성에 있지 않음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도리어 진정으로 가족을 가족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서로를 향한 사랑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은 바로 긍휼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긍휼은 적극적인 자기화이다. 타자의 고통을 자기화하고, 깊이 공감하는 것이다.
룻기는 이러한 긍휼의 향연이다. 이방 며느리 룻은 남편과 아들을 잃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향한 긍휼을 느낀다. 그래서 시어머니와 함께 한다. 시어머니는 남편을 잃고, 자기를 좇아 먼 타지까지 나와준 며느리 룻을 향한 깊은 긍휼을 느낀다. 그래서 그녀에게 행복한 삶을 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애쓴다. 보아스는 이들의 처지와 상황을 깊이 이해한다. 놀랍게도 룻기에서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역할이 그리 크게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대신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사람들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사랑의 말과 행동이 이야기 전체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이러한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가정의 회복은 친연성의 회복이나 문화적 결속 강화에 있지 않고 도리어 서로를 향한 긍휼의 회복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마치 룻기에서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기 시작할 때, 깨어지고 부서진 가정이 살아나고, 그러한 가정의 회복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을 다시금 소망의 빛으로 밝히는 놀라운 터닝 포인트가 될 줄 믿는다. 긍휼의 힘을 믿으며, 긍휼의 사람이 되기를 힘쓰는 이 시대의 룻과 보아스가 되길 기도한다/기쁨의 교회 목사·쉐이커스 미니스트리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