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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8.28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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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작고한 작가 현길언(1940-2020)은 실제로 독실한 기독교도였으면서도 구태여 그의 작품상에 기독교적 소재를 요란스럽게 반영하지 않으면서, 작품 내에 가장 기독교적 정신(주제의식)을 잘 담아낸 작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확실히 그는 소재주의적인 면에서 기독교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는 할 수 없겠다.

 

그가 많은 소설 작품들을 써 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기독교적 소재를 다소나마 취급한 작품은 겨우 수편에 불과한 정도라 할 때, 그가 소재주의적 의미에서의 기독교 작가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세계가 다분히 기독교적이라고 우리가 전제할 수 있다는 데에 그의 소설 문학의 특성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필자는 작가 현길언의 중·단편소설들 가운데서 특히 <겨울 여행>이나 <신열> <사제와 제물>과 같은 작품들 속에 어느 정도의 기독교적 소재들이 반영되어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조차도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에는, 구태여 이 작품들이 기독교적 소재를 보여주고 있다고 꼭 집어 지적하기가 좀 무엇하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다소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이렇게 말하기는 하지만 조금 방향을 틀어 보자면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다. 그의 적잖은 장편소설들 중 특히 생의 후년(90년대 후반)에 나온 작품들, <보이지 않는 얼굴>(1997)<벌거벗은 순례자>(1999) 등의 작품들을 보면 거기에 기독교적 소재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수긍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지금까지의 필자의 이야기는, 장편소설들을 제외하고 그의 중·단편소설들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기독교적 소재가 반영되어 있는 작품들이 별로 많지 않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것이다.

 

현길언의 기독교문학을 논의하면서 여기서 구태여 장편소설은 제외하고 중·단편소설만을 중심으로 논의하겠다고 한 것은 그만큼 현길언의 기독교 장편소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그의 기독교적인 ·단편소설이 훨씬 더 우수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가령 그의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얼굴>과 같은 작품을 읽어보고 나서의 솔직한 느낌은, 한 작가의 작품이 어떻게 그 수준(완성도) 면에서 이렇게 서로 현저한 격차를 보일 수 있을까, 머리를 갸우뚱거렸었다는 사실을 여기서 밝히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하련다.

 

엘리엇(T. S. Eliot)이 말하는바 무의식적인 기독교문학’, 다시 말하자면 전혀 기독교적이 아닌 세계에 나타남으로써 그 효과를 드러내는 작품을 주로 써 왔다고 볼 수 있는 작가 현길언에게서 어느 정도 의식적인 기독교문학으로서의 의미를 띠고 나온 소설 작품이 80년대의 소산물인 <신열><사제와 제물> 등의 중편소설들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런 만큼 이 중편소설들은 기독교 사상과 정신은 물론, 기독교적 소재 역시 제법 드러나 있는 작품들이라고 보겠다.

 

아무래도 의식적인 기독교소설이라고 하면, 우리가 욕심을 부릴 때, 작품의 주제는 물론, 소재 면에서도 어느 정도 의식적인 배려가 있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필자는 이 두 작품들 가운데 특히 <신열> 한 작품만을 이하에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이 작품이 비교적 주제와 소재 양면에서 그 뚜렷한 실상, 곧 기독교소설의 진면목을 드러내 준 작품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사제와 제물>도 문제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기독교소설이란 관점에서 볼 때는 역시 <신열>을 독자 제위께 더 추천하고픈 심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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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희생적인 그리스도인의 표상(1)-현길언의 중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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