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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5.1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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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그랬지만 요즘 들어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불거진 혐오와 차별의 문제, 계층 갈등. 권력과 재산의 불균형으로 인한 분노와 좌절의 소리를 들을수록 평화로운 세상을 소망하게 된다. 이 세상의 평화를 어떻게 이루어갈까몇 해전 내 딸이 중학생이었을 때 평화로 가는 길 한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요리를 좋아하는 딸이 떡볶이를 만들어 내게 한 접시 갖다주며 말했다.

 

평화 떡볶이입니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의아했는데 떡볶이를 살펴보니 웃음이 나왔다. 떡과 함께 세모꼴과 네모꼴 어묵이 들어있었다. 이렇게 두 가지 모양의 어묵을 썬 딸의 의도가 있었다. 내막은 이렇다. 예전에 가족 여행 중 떡볶이를 해 먹은 적이 있었다. 내가 만드는데 동생에게 어묵을 세모로 썰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큼직하게 썬 세모꼴이 먹음직스러워 늘 그렇게 자르곤 했다. 그런데 썰어준 어묵 모양은 네모가 아닌가! 순간 나는 격노했다. ‘분명 세모꼴이라 말했는데..’ 동생은 맞섰다. ‘난 네모꼴이 좋은데..’ 우리 자매는 불꽃 튀기는 말다툼을 하며 토라져 버렸다. 지금은 웃으며 말하는 에피소드가 되었지만, 말도 안 되는 사사로운 문제로 감정대립이 되며 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우리 주위에 허다하다.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두세살 아기였던 딸은 후일 엄마와 이모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를 듣고 세모와 네모로 자른 어묵을 섞어 넣어 떡볶이를 만들고 평화 떡볶이라 이름지은 것이다. 딸의 유쾌한 센스와 재치에 미소 지으며 나는 십대 딸에게서 평화의 한 수를 배웠다일치와 하나됨을 말할 때, 다양성 속의 일치, ‘unity in diversity’ 혹은 중국어로 구동존이(求同存異)’를 말한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일치는 획일이며 전체주의다. 모든 면에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 선진국이 된 것에 비하면 한국 사회는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용납이 뒤떨어진 느낌이다. 여러 인종이 섞여 살고 개인주의적인 미국에 비해 한국은 한국인이 인구의 압도적 주류를 이루고 있고 군집적 문화가 한몫 하는 듯 싶다. 그러나 한국이 여기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학교, 교회, 직장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성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고 믿는다. 나와 다른. 혹은 주류의 삶과 다른 삶의 방식을 정죄하고 차별하기보다는 들어주고 이해해 주어야 한다. 힘을 가진 자의 지시에 따른 결정과 행동에 비해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양한 생각이 나이, 성별, 직위에 상관없이 의사 결정 과정에 자유롭게 반영되고 고려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흔히 많이 들어주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박하기 위한 듣기(listen to respond)’가 아니라 이해하기 위한 듣기(listen to understand)’가 되어야 한다. 논쟁을 위한 듣기와 이해를 위한 듣기는 듣는 태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나와 다른 다양한 삶의 방식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려면,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삶을 경청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인터넷으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지만, 알고리즘으로 듣고 싶은 정보만 듣게 되어 양극화 현상이 더 심화되는 것을 본다. 논쟁을 위한 듣기가 아닌 이해를 위한 듣기가 절실히 요구되는 세상이다.

 

 사전이 정의하는 평화(平和, peace)는 좁은 의미로는 '전쟁을 하지 않는 상태'이지만 현대 평화학에서는 '분쟁과 다툼이 없이 서로 이해하고, 우호적이며, 조화를 이루는 상태'로 이해한다. 인류가 목표로 하는 가장 완전한 상태이다. 말과 구호 속에서 넘쳐나는 평화보다는 삶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는 살아있는 평화를 이루어가면 좋겠다.

 

평화 떡볶이입니다!”

 

세모꼴 어묵과 네모꼴 어묵이 한데 어우러진 맛있는 평화 떡볶이가 먹고 싶다./미국장로교 세계선교부 동아시아 책임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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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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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교식

나의 사랑 하는 친구이자 신뢰 받는 김지은 목사님!
어제 이 글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이제야 답을 보낸다.너의 이쁜 딸은 엄마를 닮아 지혜롭게 자랐구나.
우리는 항상 틀리다가 아닌 다름을 외치지만 막상 현실은 나의 의견에 반대를 하는 사람으로 치부하게 되는구나.(나 또한 살아가면서 숙제로 가지고 있다)
다양하면서 일치 한다면 시비가 사라질것 같구나.
이해하기 위해 듣기...멋진 생각이다
나도 앞으로는 상대를 좀더 이해 해야 겠다.
그러면 나도 상대로 인해 아픔이나 언짢음이 생기지 않을것 같구나.
너무 좋은 글 고맙게 잘 읽었다.
내가 살아 가면서 "평화 떡볶이"의 의미를 되내여 보마
사랑하는 친구야
너로 인해 적어도 한명은 감명 받은거 같다.너의 의미 있는 행보를 응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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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옥합] 평화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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