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2.04.10 09:33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1-이영식.jpg



마음속에 항상 “이렇게 살아야 할 것인가”묻고 있던 삭개오에게 예수는 하나의 탐구대상이었다. 도대체 그가 누군데 그 많은 사람이 그의 무릎 아래 발을 꿇는 것일까? 나는 그다지 나쁜 일을 하지 않는데도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데 그가 존경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생각들이 그를 이끌었을 것이다. 그는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 속에서 예수님을 보다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뽕나무 위로 올라갔다. 

 

예수님은 그 군중들 속에서 자신에게 향해있는 한 염원을 보았다. 그래서 사람들 틈에 숨어 있는 그를 불렀다. “삭개오야 삭개오야 나무에서 내려와라” 여기에서 나무라 함은 세상의 가치와 기준을 의미한다. 그가 의지하고 있는 견고한 자의식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은 한 인간의 곤고한 마음을 보았고 그것을 측은히 여겨 그에게 새 삶의 길을 제시했다. 아무도 그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 때 예수만은 그의 마음에 들끓고 있는 갈등에 주목했다. 갈등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는 과오투성인 인간이었다. 백성들의 가난한 호주머니를 임의로 털어내기도 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탐심에 젖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항상 또 다른 삶에 대한 갈구가 있었다. 그 갈구가 예수를 만나기 위해 나무에 올라가게 했고 애써 올라간 나무에서 또 내려보게 했다. 인간에게는 자기의 생을 바로 잡을 기회가 있다.

 

내 삶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때 이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단하는 자세 또한 중요하다.

 

하나님을 떠난 자의 기회란 없다. 우리는 나의 모든 운명의 변화가 예수를 만나기 위한 일련의 절차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를 만나기 위해 나무에서 내려오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수고로움이 죽어도 싫은 사람들이 있다. 자기 고집 때문이다. 이 일을 버리면 당장 밥을 굶주림 같은 위기의식 때문이다. 그래서 평생을 빛의 자녀가 아닌 어둠의 자녀로 세상을 살아간다.

 

잠시의 수고로움을 감내하고 자신의 과거를 모두 부인하고 “내려오라”는 말씀에 순종해 평생 예수의 사람으로 산 삭개오의 정신을 아무리 음미해도 부족하기만 한 교훈을 담고 있다. 

/예장 합동한신 증경총회장


태그

전체댓글 0

  • 21733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욕심에서 내려오라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