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윗의 인구조사 명령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숫자로 확인하고 싶은 다윗의 불신앙을 드러낸다. 수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이 승전을 하고 남의 나라를 자신의 밑에 두자,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는 전쟁이 아니라, 군인이 될 만한 사람들의 숫자를 세면서 자신의 전쟁을 하고 싶은 욕망에 빠져 들었던 것이다.
만약에 이렇게 이해한다면, 다윗은 자신의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다가, 이제 왕위에 오르자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신의 정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의 충신이었던 요압마저도 염려하고 탐탁지 않게 여긴 것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치셨고, 결국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와 용서를 빌어야 했다.
한국교회는 덩치가 커지고, 돈이 쌓이고, 권력이 생기자마자 다윗과 같은 죄를 저질렀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게 되었는데, 세상의 조롱과 모욕의 대상이 된 것이다. 불의한 세상에 정의를 행하다가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보다 더 세속적이고, 일반 시민사회보다 더 부도덕했기 때문에 손가락질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 시편의 저자처럼 우리가 다시 주님의 법도에 따라 옳게 선다면 주님께서는 분명 기회를 주실 것이다.
기회를 주실 때에 놓치지 않고 잡는 것이 지혜인데, 그런 지혜는 성공을 목표로 삼고 목회했던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충실하게 주님의 말씀 앞에 순종했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다. 저는 총회나 노회에서 제게 맡겨진 일들에 최선을 다해 순종하며 하는 편인데, 어떤 것은 스스로 나서서 하는 것도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총회 영성수련원의 활동이다. 오늘날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이고, 여기에 함께 참여하시는 분들은 대체적으로 세상의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진실하게 주님의 길을 가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오늘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 처지 그대로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부름은 세상의 정치적 사회적 삶의 위치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하나님의 사역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루어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할례를 받았든 받지 않았든, 노예이든, 자유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배웠든 못 배웠든, 가졌든 못 가졌든, 권력이 있든 없든 아무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부름은 세상의 논리와는 다른 특수인식의 활성화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느냐 삼지 않느냐인 것이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따라 사는 사람과 질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간다. 사회적 지위는 노예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자유인으로 살아간다. 자유인이지만 돈이나 과거에 갇혀 있고, 교만하거나 자기를 비하하면서 종의 모습으로 사는 사람과 다르다. 자유인이지만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어 섬기는 삶을 살아간다. 사랑으로 섬기면서 참된 자유를 누리고, 세상과 사람을 위해 섬기러 오신 예수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 문제는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 모두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데 한 몫을 담당하자. 거대한 계획도 필요 없고, 많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여러분이 계신 그 자리에서 부르심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면 된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오늘 저도 여러분에게 권고한다. 여러분 모두는 주님께서 나누어 주신 분수 그대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처지 그대로 살아가라. 다만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라.
/생명사랑교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