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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0.0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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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기후위기의 문제가 코로나19 펜데믹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 들려오는 소식을 보면 기후위기의 수준을 말해주는 각종 지표와 현상들이 우리를 숨 막히게 하고 있다. 북극의 빙하가 빠르게 침식되고, 시베리아의 산불로 탄소배출이 크게 늘고 있으며, 아마존의 우림은 잦은 가뭄에 시달리고 산호초는 대규모로 폐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54일간의 초유의 장기홍수는 물론 폭염을 겪는 등 수도 없이 기후위기의 경고등이 켜지는데, 안타깝게도 위기감이 높지 않다.

 

 

지구 생태용량에 맞는 삶은 물론 사회시스템의 전환을 시도해야만 하는데, 대다수가 여전히 삶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려는 핑곗거리를 찾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행동을 미루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지금 당장 태도를 바꾸어 함께 대처해도 부족한데,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에 이상이 생긴 게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생태환경교육의 출발은 위기를 인식하고 인정하게 하는 데 있다. 어떻게 하면 위기를 인식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변화된 행동을 하게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막8:17) 하시는 주님 음성에 깊이 귀 기울이며 감각을 깨우는 시간을 가져보게 할 필요가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과 가인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창 4:9)” 하신 두 질문으로 성찰하되, 신앙공동체 안에서 하는 두려움이나 불안함이 아닌 사랑으로 변화된 행동을 하게하며 그를 지속시키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위기를 인정하고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거나 이기심과 탐욕, 그리고 편리함에 주저하면서 적당히 실천하고 계속해서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 태초에 그랬듯 우리는 수도 없이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가”,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한 것이라는 식으로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는 데 익숙하다. 그렇게 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럴 시간이 우리에게는 없다. 오늘 주님은 “너와 네 후손이 잘살려거든 생명을 택하라”(신 30:19)고 하시며, 혼자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함께 오라고 손짓하고 계신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있다”(마18:20)고 하셨으니, 생태환경교육을 통해 신앙공동체가 방향을 돌려 응답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생태환경교육을 위해서는 사람만이 아니라 동식물은 물론,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그리고 온갖 것들을 내는 땅까지도 살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씨(하나님의 형상), 생명의 마음’을 발견하게 하고 그를 성장시킬 것이다. 생명의 마음은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하나님의 숨을 의식하며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들을 살피게 할 뿐 아니라 지금의 위기를 인정하며 자신의 필요는 물론 모두의 필요를 채우는 행동을 하게 할 것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모두가 같은 공기, 같은 물을 마시며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가져온 일시적 두려움에 의한 것일 수 있으니, 좀 더 분별하며 지속적으로 살아낼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만약 이대로 삶과 사회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이후 온실가스 배출은 전보다 더 증가할 수 있다.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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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옥합] 기후위기와 기독교 생태환경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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