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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9.1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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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24:15~18 )

 

신앙은 독자적입니다. 개인의 자유 의지에 의한 선택이 중요합니다강요할 수도 없으며 또 강요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의사에 의해서만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예수님의 가정을 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주님의 동생들은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조차 그 아들 예수를 이해함에 있어 그 차원을 달리한 것을 봅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여자여!’라고 한 것은 유대 나라의 풍습으로 어머니의 존칭입니다. 우리말로 한다면 어머님!’하고 존대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내용에서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시고 마태복음 1248~50절에 보면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예수님은 분명한 선을 긋고 계십니다.

 

신앙은 연대성이 없으며 따라서 책임도 없습니다.

롯과 롯의 처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모두 나왔지만, 구원의 길에서 롯의 처는 제외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이러한 때가 오리니 너희는 롯의 처를 기억하라.” 예수님께서 되새겨 주신 말씀입니다. 두 사람이 밭에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그대로 둔다, 두 사람이 자리에 누웠으나 하나만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둔다, 두 사람이 맷돌을 가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둔다는 말씀은 곧 구원과 신앙은 별개의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 1820절에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라고 밝히 말하고 있듯이 신앙은 독립적이며 결코 연대 책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정으로 돌아오면 그렇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519절에 예수께 와서 크게 은혜받은 한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대답하시기를, ‘나를 따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큰일이 어떻게 네게 이루어졌는가를 네 가정 식구에게 알려 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게 이루어진 이 큰일, 이 엄청난 감격을 내 가정, 내 식구에게 전해야 합니다.

인간 최악의 죄는 무관심이라고 버나드 쇼는 말했습니다. 내가 이제 구원받아서 새 생명을 얻었는데 이 사실을 나의 가장 사랑하는 아내에게, 나의 가장 사랑하는 남편에게 전하지 않고 어찌 나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세리장 삭개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를 향한 열정이 그를 뽕나무 위에 오르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뽕나무에 가까이 가셔서삭개오야, 내려오너라. 네가 나무에 오르는 그 열심도 좋지만 나와 오늘 네 집으로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잘 믿는 사람, 그는 자기 가정을 돌아보며 온 가정의 구원에 힘쓰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가정의 믿음에는 연대 책임이 있습니다. 등불을 켜서 온 집에 비추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8절에서는 더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가정에 무관심한 자,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이며 믿지 않는 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귀한 생명이며, 가장 위대한 구원이며,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기 때문에 책임 있게 말씀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그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것은 분명한 약속입니다. 믿음의 성장은 가정에서 이루어집니다.

가정에서 시작되고, 가정에서 자라가고, 가정에서 열매 맺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 분포도를 보면, 출석 교인 중 85% 이상이 신앙의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설혹 중간에 쉴 수도 있고 해이해질 때도 있지만,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대부분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는 것을 봅니다. 남은 15%는 신앙과는 관계없는 생활 환경에서 나 혼자 믿음을 갖게 된 것인데, 이 경우에 완전한 믿음을 갖기까지 퍽 어려운 고비를 많이 겪는 것을 봅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믿음은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소화하기에 시간이 걸리고 자기 마음의 갈등을 거쳐야 한다고 하면,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다고 하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유산인지 모릅니다. 참으로 큰 복입니다.

가정은 작은 천국입니다. 밀레의 유명한 만종은 오늘날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데, 거기에는 가정 행복의 세 요소가 모두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일하는 즐거움, 함께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생활하는 즐거움,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의지하여 기도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값진 것입니다.

 

사랑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것은 크리스천 생활 속에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믿음의 성장도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소망의 즐거움도 분명히 가정을 통해서이지만, 더욱 소중한 것은 사랑의 대화입니다.

(house)과 가정(home)은 그 의미가 다릅니다. 집이란 부모, 자녀, 형제들이 하나의 삶을 위해 모여 있는 한 울타리라는 의미이지만, 가정이라 하면 그 속에 사랑의 대화가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범적인 신앙의 가정은 몸이 하나요 마음도 하나요 신앙이 하나입니다. 그곳에 참된 가정이 이루어집니다.

여호수아는 말하기를, “지금 작정하라고 강요하지는 않겠으나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으니 오늘 택하라. 지금 택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다짐하십시오. 이스라엘 사람은 여호수아의 권면에 즉각 응답하여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하고 철저하게 스스로 자율적으로 결단했을 때 하나님 앞에 복 받는 이스라엘 민족 국가를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스스로의 자유 의지에 의한 신앙의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길만이 나와 내 집이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을 받는 길입니다.

 

오늘 택하라,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목사. 전 한국기독교부흥협 대표회장·한강교회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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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수

생전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정운상목사님이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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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여호수아24: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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