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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9.0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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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면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쌓아두게 된다.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회고한다. 몸과 마음에 끊임없이 상처를 쌓아둔 세월이었습니다. 야곱의 이야기에서 이러한 상처들은 시간적으로는 ‘밤’과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야곱의 인생에는 중요한 ‘밤을 맞이한 이야기’가 두 번 등장합니다. 한번은 형 에서의 추격을 피해 브엘세바로 향하던 야곱이 벧엘에서 밤을 지새운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고향으로 되돌아오던 야곱이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적막한 광야에서 밤을 홀로 맞이하는 오늘 본문의 이야기이다.

 

고향으로 되돌아오고 있던 야곱은 자기의 형 에서가 두려워 먼저 사자를 보내어 상황을 살피게 한다. 그런데 이 사자들이 전해온 소식은 그다지 전망이 좋지 않았다. 불면의 밤을 보내던 야곱은 결국 한밤중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을 자신보다 앞서 먼저 보낸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창대한 복에 대한 약속을 자신의 것으로 움켜잡기 위해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야곱은 사막의 밤하늘 아래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지금, 홀로 고독하게 별이 사라져버린 밤하늘 아래 서 있다.

 

야곱의 인생에 등장하는 중요한 ‘밤을 맞이한 이야기’인 벧엘과 브니엘의 이야기는 사실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벧엘은 해가 지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되고, 브니엘에서는 해가 뜨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야곱은 그 이름의 뜻처럼 움켜잡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사람이었다. 움켜잡는 것을 위해서라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었다. 움켜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야곱은 자기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움켜쥐기 위해 누군가와 항상 다투고, 누군가에게 위협을 주며, 누군가에게 위협을 느끼며 살아온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신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창 32:24). 두려움과 번민에 사로잡혀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정체불명의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밤’은 위협적인 것들이 출몰하는 시간이다. 알 수 없고 불확정적인 시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밤’이라는 시간은 징조와 사실이 드러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깊은 밤하늘 아래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하나님의 크심 앞에서 자신의 부질없는 몸부림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가 폭로된다. 이 이야기는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이야기가 아니다. 끊임없이 누군가와 겨루어 이기는 인생을 살아왔지만 두려움 속에서 기나긴 밤을 홀로 지새우고 있는 야곱이라는 사람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다”(창 32:31)는 성경의 보도처럼 이 위대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그의 인생을 밤을 지나 아침을 맞이한 인생으로 변화시킨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 모두는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홀로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지만, 야곱처럼 두려움에 사로잡혀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과 싸우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밤’은 고단하고 괴로운 시간이다. 하지만 ‘밤’은 모든 것들이 가려진 그 시간 속을 가로질러 거침없이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이다. 그 밤하늘 아래에 여러분들이 만일 홀로 서 계신다면, 하늘에 펼쳐진 별들 가운데 두신 그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을 기억하시길 바란다. /향기로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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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사라진 밤하늘 아래에서 하나님을 만나다(창세기 32: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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