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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디 기념사업회, 평전 출판감사예배

이 땅에서 45년동안 선교사로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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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9.0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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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에 의료선교사로 와서 ‘부흥운동의 아버지’ 칭호받아

목사와 부흥사, 신학교교수와 문서사역자로 사역을 감당


기독교대한감리회 하디 기념사업회(위원장=최이우목사)는 지난 달 24일 종교교회에서 〈영의 사람, 로버트 하디〉 출판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번 예배는 하디 기념사업회가 하디 선교 120주년을 앞두고 하디 선교사의 삶을 정리해 책으로 출판한 것을 기념한 것이다. 2019년 12월, 하디 선교사가 세운 교회들과 목회한 교회, 그리고 활동한 기관들이 모여 하디 선교사를 기리고, 신앙의 유산을 이어받기 위해 창립한 하디 기념사업회의 그간 활동의 결과물이다. 이 책은 감리교신학대 이덕주은퇴교수가 저술한 〈영의 사람, 로버트 하디〉이다. 하디 가문의 캐나다 이주 배경에서부터 시작해 하디가 선교사가 돼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아버지가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무려 1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정리했다.

 

조용한 기도로 시작한 예배는 이철감독회장의 설교, 하디 기념사업회 위원장 최이우목사의 경과보고, 감리교신학대 이후정총장의 축사, 이덕주교수의 저자인사 등의 순서로 이어졌다.

 

이철감독회장은 설교를 통해 “1903년도 생명의 불씨를 지폈던 하디선교사를 생각하고 기억하자고 하는 이 모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라며, “2년 후 하디 선교 120주년을 맞는다. 120주년을 통해 감리교회에 회개를 통한 회복이 있기를 소망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하디 기념사업회 위원장 최이우목사는 “하디를 통하여 한국 땅에 이뤄진 소중한 경험들은 존 웨슬리와 함께 한국 감리교에 길이 남을 유산이다”라며, “이런 사실을 책으로 담아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후손들이 오래오래 기억하고 신앙의 유산으로 이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후정총장은 축사를 통해 “이덕주교수에 의해 ‘하디 평전’을 출판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기쁘게 생각한다”라며, “이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전기가 우리 감리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개신교 전체 및 일반 독자들에까지라도 다시 우리의 역사를 배우고 새롭게 이 민족의 목표와 사명을 찾는 데 이바지하게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저자인 이덕주교수는 감사인사와 책을 통해 “무엇보다도 하디 선교사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이 그분이시다. 그리고 하디가 이 땅에 필요하기 때문에 그분이 나 같은 머슴을 쓰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며, “그가 25세 나이에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목사로, 부흥사로, 신학교수로, 문서사역자로 45년간 치열하게 사역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그가 늘 강조했던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주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는 말씀처럼 창조와 지혜의 영이 함께 하였기에 가능했다. 그런 하디가 부러웠다”라고 출판 소회를 밝혔다.

 

로버트 하디는 1865년 6월 11일 캐나다 온타리오 세네카에서 태어나 토론토의과대학 1학년 때 학생자원운동 지도자 포어맨목사의 강연을 듣고 해외선교를 지원했으며, 졸업반 때 “한국에 의사가 필요하다”는 토론토대학 선배 선교사 게일의 호소를 듣고 한국을 선교지로 선택했다. 토론토대학생선교회 파송을 받아 1890년 9월 내한하여 서울, 부산, 원산에서 의료선교사로 활동하다가 1898년 5월 미국 남감리회 선교부로 소속을 옮긴 후 개성, 서울, 원산에서 사역했고, 1900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선교사로서 능력의 한계를 느끼던 중 1903년 8월 선교사연합사경회를 인도하다가 회심을 체험하고 원산 부흥운동의 주역이 됐다. 또한 1906년 8월 평양 선교사연합사경회를 인도함으로 1907년 평양 부흥운동을 촉발시켰다. 이로써 하디는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는다. 1907년 9월부터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가 되어 성서신학을 강의했고, 1913년부터 10년간 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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