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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물들의 메아리없는 항변(상) - 이청준의

임영천의 '한국 기독교소설 산책'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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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8.2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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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청준의 소설집 〈벌레 이야기〉(심지, 1988) 속에 수록되어 있는 표제작 〈벌레 이야기〉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선 느끼게 되는 것은 이 작품의 제목 속에 보이는 ‘벌레’ 이야기는 작품 자체 속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에 나오는 무슨 벌레[갑충]의 모습 같은 것을 이 소설은 조금치도 보여주지 않는다. 결국 독자는 이 작품을 다 읽고 나서야 여기에서의 벌레란, 미물(곤충)과도 같은 하찮은 존재인 인간을 비유한 말임을 알게 된다. 

 

이 작품 속에 미물과도 같은(‘벌레’와도 같은) 존재는 화자인 남편(‘나’)에 의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 알암이 어머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이미 현세의 여인은 아니다. 그녀는 벌써 생명을 잃은 존재로서, 그녀가 어떻게 해서 궁극적으로 그 귀한 생명을 잃게 되었는가의 과정을 이 작품은 진술해 보여주고 있다. 결과를 이야기한다면, 알암이 어머니는 이를테면 신의 횡포에 의해 그녀의 생명을 잃었던 것이다. 적어도 작가의 의중은 이 점을 분명히 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신에 의해 벌레와도 같은 미물로 취급되어 죽음에 처하게 된 여인이 바로 알암이 어머니라는 것이다. 

 

이런 결론적인 면을 염두에 두고 이 작품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이 작품이 기독교 세계관을 옹호하고자 하여 쓴 것은 결코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은 오히려 기독교적 계율에 도전하려는 의도를 더 많이 지니고 쓴 작가의 문학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소설을 기독교문학 작품이라고 강변하려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작품이 기독교문학과는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왜냐면 이 소설은 기독교적 소재를 갖고 씌어졌으며, 또 기독교의 문제에 대하여 심도 있게 논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기독교의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하여 매우 심각하고도 진지한 물음을 묻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 간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질문은 비기독교적인 세계에서는 논의되기 힘들 것이 아니겠는가. 

 

초등학교 4학년의 아들(알암이)을 유괴당해 결국 피살체로 목도하게 된 아내의 고통스런 모습과 막바지에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처절한 아픔을 남편인 ‘나’의 시점에서 묘사한 작품이 〈벌레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4학년에 갓 올라온 순진무구한 소년 알암이가 아무런 죄 없이 주산학원 원장 선생, 곧 알암이의 스승에 의해 납치되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현장을 보고 독자들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벌레 이야기〉라는 제목에 보이는 벌레는 죽은 알암이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이 작품 속에는 두 마리(?)의 벌레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미물인 벌레가(어린 알암이가) 속절없이 죽어갔으나 이 엄청난 사실 앞에서 전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아내 역시 불가피한 미물이겠지만, 그러나 그녀가 자살을 감행하기 전까지는 굳이 그녀에게 미물이란 표현을 쓸 만한 사정은 아니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피살체로 발견되고 나서 그 사실을 목도한 아내가 겪는 심적 고통은 극한적인 것이었다. 그러한 그녀에게 이웃집에 사는 김 집사 아주머니가 끈질기게 접근하여, 기독교 신앙에 의지해 살아갈 것을 권고한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김 집사로서는 결코 악의 없는 접근이요, 친절이기도 하였다. 처음엔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알암이 어머니는 그 정성에 감복했던지 마침내 동의하고 교회에도 나가게 된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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