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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5.2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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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병의 단편소설 〈본회퍼의 죽음〉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주는 제2회 한국소설문학상(1976)을 수상한 작품인 〈본회퍼의 죽음〉은 아마도 한신대학교에서 수학한바 있는 작가 정을병(1934-2009)이 불세출의 독일 진보적 신학자인 본회퍼 목사의 생의 말기 행보를 만천하의 독자들, 특히 크리스천 독자들에게 광포(廣布)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 작품을 써낸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보게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크리스천 독자들에게 울림이 매우 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본회퍼(1906-1945)는 독일 히틀러 총통의 세계 정복 야욕을 미리 간파하고 나치스 제3제국의 잘못된 야망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신의 판단으로, 앞서 히틀러 암살 계획을 세우고 있던 일단의 사람들과 어울려 그 계획을 실현하려고 동참했다가 실패함으로써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1943.4.5.) 수형생활을 하던 도중,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1945.4.9.) 독일 고백교회 반(反)나치 저항운동의 기수라고 할 젊은 목사였다.

 

소설 〈본회퍼의 죽음〉은 그 본회퍼 목사가 게슈타포에게 체포된 뒤 감옥에 갇혀 지내던 때로부터 그의 죽음(처형)에 이르기까지의 실제 모습을 다각적으로 그리고 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 10월경부터 1945년 4월 9일(본회퍼 처형일)까지 독일의 형무소들에서 일어난 일들을 수형자 본회퍼의 거동과 그에 대한 관변 측의 대응 등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1944년 10월경의 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으니 그가 감옥에 수감된 지 1년 반(전체 수감 기간의 4분의 3) 정도의 시간이 흘러간 뒤의 사건들이 다루어지기 시작한 셈이다. 그리고 이후 그가 1945년 4월9일 처형된 것을 감안하면 그는 구속 수감된 지 만2년 4일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보겠다. (그리고 이로부터 21일, 곧 3주 뒤에 히틀러는 자살했던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다음의 부분이 독자들에게 어필한다. 수감자 본회퍼가 히틀러 암살 음모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형무관 크노블로흐가 본회퍼의 생명이 위태하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그를 구출하기 위해 탈옥을 권유하고 또한 갖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지만, 정작 장본인은 다소의 동요 끝에 탈출 불가 쪽으로 아예 요지부동의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런 본회퍼의 심리적 추이가 독자들의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키는 것이다.

 

본회퍼는 수차 크노블로흐 형무관의 우정 어린 탈옥 권고를 받지만, 그리고 그로 인해 갈등하는 순간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결국 자기의 탈출로 인해 어느 누구라도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앞으로의 그의 행동 방향을 정했다. 자기가 탈옥할 경우 게슈타포가 자기 부모든 형제든 약혼녀든 잡아다 고문할 것이 뻔하다는 생각을 하면 차라리 자기 한 목숨 희생당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처럼 형무관 크노블로흐와 수감자 본회퍼 사이의 밀고 당기는 ‘생명 지키기 작전’과 ‘생명 버리기 의지’의 숨 막히는 대결이 이 소설 속에서는 가장 광채 나는 대문으로 보인다. 처형장에서의 그의 최후 진술이다. “나는 기독교의 사랑을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랑은 단순한 국가의 이익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하며, 마지막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본회퍼는 결국 예수의 ‘사랑’을 자신의 ‘생명’과 맞바꾸는, 그런 일대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문학평론가, 조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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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명과 맞바꾼 예수의 사랑 - 정을병의 〈본회퍼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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