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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5.0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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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선의 소설 「피해자」에는 고아원 출신 처녀 양명숙이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고아인 그녀가 자라서 혼기에 이르렀을 때 그 고아원 원장의 아들 요한도 결혼해야 했으므로 그 기회에 두 젊은이가 자연스레 서로 배필이 될 수 있었다면 그 이상 바랄 데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어려서부터 둘은 서로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그런 친숙한 관계로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장 최 장로가 다른 처녀를 며느리로 삼으려 했기에 두 젊은이의 결혼이란 성사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명숙이 옆에 남아서 적극성을 띠기라도 했다면 요한도 부친에게 저항하면서 버텨볼 수도 있으련만, 명숙이 몰래 먼 데로 떠나고 말아 서로 만날 수조차 없게 됐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풍문으로 명숙이 어떤 부자와 결혼했다는 소식마저 들려왔으므로 요한은 결국 부친이 내세운 처녀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둘은 정말 기적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런데 고교 교사였던 요한이 학생들을 인솔하고 경주 불국사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명숙이 무조건 그 대열에 합류해 불국사로, 또 석굴암의 해돋이로까지 함께 다니다가, 종국엔 절벽 아래로 투신해 짧은 일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명숙은 왜, 무슨 이유로 그래야만 했을까.

 

필자는 이 작품이 토머스 하디의 장편소설 「테스」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두 여주인공 테스와 명숙이 매우 유사한 처지의 인물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둘은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그러면서도 둘은 각기 한 남자만을 사랑했다. 테스는 에인절을, 명숙은 요한을 사랑했다.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됐을 때, 둘은 각기 다른 남자를 일시로 만난바 있다. 테스는 알렉을, 명숙은 ‘부자’ 남자를 말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첫사랑)을 뜻하지 않게 다시 만나게 되자, 이제 그들은 자신의 전폭을 바쳐 그 첫사랑만을 받아들이려 하였다. 하지만 그 기대가 결코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었기에 결국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이 작품들은 ‘여자의 일생’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부류의 작품들엔 다음의 세 가지 특성이 발견된다. 첫째, 주인공은 본디 선량한 여인이다. 둘째, 그녀가 세파에 휘말리며 기구한 일생을 보내게 된다. 셋째, 그녀의 생의 마지막은 불가불 비극적으로 장식된다. 이런 특성에 의할 때 「테스」와 마찬가지로 「피해자」 역시 ‘여자의 일생’류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하디의 「테스」를 이범선의 「피해자」를 평설하는 자리에 굳이 끌어들인 것일까. 토머스 하디는 「테스」의 주인공인, 한 가련한 여인 테스를 통하여 당시 영국 사회의 비리와 모순을 고발하려 하였다. 특히 자국 기독교회의 비정함과 몰인정함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하디에게 돌아온 것은 다시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절필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기득권층의 압력을 그가 견뎌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범선 역시 그의 소설 「피해자」를 통해 한국 기독교회의 몰인정하고 비정한 면을 ‘무정한 고아원장 최 장로’를 비판하면서 신랄하게 고발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랬던 그도 교계 기득권층의 압력을 피하지 못하고 자기가 봉직하던 기독교계 학교(교무주임 직)에서 면직된바 있었다. 이런 불행을 겪은 그였지만 그는 역설적이게도 한국 교회 스스로 제 부족한 점을 깨닫고 회개하는 결과에 이른다면, 자기는 그것만으로도 한국 교회 개혁에 일조한다는 자위를 얻으려 했던 것 같다.

/문학평론가, 조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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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끝낸 고아 명숙의 짧은 한 생애(하) - 이범선의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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