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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4.2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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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정신분석자들 중에 내담자와 치료자,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새로운 단어가 있는 데 바로 ‘가슴’(heart)이다. 내담자와 상담자가 만들어내는 가슴의 울림, 가슴의 필요, 가슴의 상처와 같은 단어야 말로 정서적으로 내담자와 잘 접촉할 수 있는 직접적인 통로라는 것이다. 고전적 정신분석 단어에서는 생략된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치료자와 내담자는 ‘가슴’(heart)의 기능을 통해 사랑과 접촉의 연결을 이룬다. 이를 이야기 한 수잔 캐벌라(Susan Kavaler-Adler)는 이 가슴이 내담자의 애도를 끌어낸다고 보았는데, 여기서 애도란 창자(visceral)에서 느껴지는 비통한 고통이다. 그리고 심리치료는 성공적인 애도경험과 함께 일어난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K목사의 삶은 어른이 되어서도 목사가 되어서도, 여전히 애도하지 못한 자신의 삶을 반복하고 있다. 어린나이에 늘 형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던 자신의 돌봄 받지 못한 삶, 자신 때문에 학업이 중단된 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 좋은 학교에 들어가 효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생긴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 자신이 조금 더 신경 썼더라면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죄책감등이 겹쳐 K목사의 삶은 늘 남들보다 부지런해야 했다. 열심히 살았고 성실하게 살았으나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에 성도들에게 분노가 쌓였고 마음은 점점 차가와졌다. 그때마다 예배당에서 혼자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뿐이었다.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삶이 억울하여 하나님께 항의하게 된다. 아직 사랑이 필요한 자신에게 더 다독이지 못하고 떠난 어머니에 대한 미움도 발견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의 삶이 얼마나 비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대학 합격증을 안고 마루에 앉아 엉엉 울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K목사는 오랫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울면서 기도하고 있었다. 자신의 상처 때문에 상처받은 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다시 몸부림치며 기도했다.

 

목회는 상실의 자리다. 또 상실은 애도를 수반한다. 애도의 자리는 슬픈 정서를 고통스러워하는 심리적인 자리이다. 그리고 이 고통은 사랑의 채움에서 가능하며, 사랑의 채움은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으로 가능하다. 우리 삶에 그분이 사랑을 베풀어줄 때, 우리는 우리 뒤에 계신 하나님 때문에 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비로소 상처를 ‘떠나보내는’ 행동을 할 수 있다. 떠나보냄은 ‘고통스러워하는 능력’의 소유다. 우리 삶에 패배를 주고, 상실을 주었던 부모를 인정하고 그 자리에 사랑의 하나님을 모시면서 우리는 우리 삶에 발생한 상실, 수치심, 거절감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고독한 주체로 홀로서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영혼도 새롭게 탄생한다.

 

중세 신비신학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는  인간의 영혼은 어둠의 근저에서 태어난다고 말했다. 성과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한 사람인, K목사 역시 두려움과 맞잡을 수 있었던 어느 날의 경험을 통해, 슬프지만 슬픔을 견딜 수 있고 외롭지만 외로움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진정한 애도가 주는 능력이다. 오늘날의 많은 K는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성공하지 않아도 돼...더 승리하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아도 돼... 뒤에 계신 하나님을 의지해 K의 영혼은 이제 더 이상 슬픔을 비켜가지도, 관계를 회피하지도 않을 것이다. /서울신학대 목회상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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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옥합] 애도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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