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2-0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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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종합 검색결과

  • 안양대교수협 등서 학교매각 반대 성명
    ◇안양대 교수협 관계자들은 타 종교 출신 이사장 선임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안양대교수협의회와 안양대교수노동조합은 12월 4일 안양대재단이사회가 열린 서울 노보텔 앰베세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사회 저지를 시도했다.   이들은 대진성주회 임원들게 드리는 글을 통해 “학교법인 우일학원 산하 교육기관인 안양대학교 교수협의회 등 구성원들이 이렇게 긴급하게 귀 임원님들께 허락하지 않은 문건을 드리는 까닭은, 그동안 우리 구성원들의 한결같은 귀 종단으로의 불법매각 반대 주장을 펼쳐왔음에도 우일학원 전 이사장 측은 이를 도외시 한 채, 급기야 긴급 이사회를 소집하여 귀 종단이 추천한 이사 가운데 한 분을 이사장으로 선임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는 구성원들 몰래 학교법인과 안양대학교를 불법 양도 양수하려는 불순한 수순으로 보고, 다시 한 번 총장을 비롯한, 교수협의회, 교수노조, 다수 구성원들의 이름으로 이를 분명하게 반대하기 위해 이 의견서를 드린다”고 밝혔다.  또 “안양대학교는 70여년 기독교 정신의 건학이념을 지켜온 사학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건학이념이 상이한 귀 종단으로의 인수를 반대한다. 우리의 이러한 의지는 그동안 교육부를 비롯한 정치권 등 요로에 널리 천명된 바이며, 학교 운영의 핵심 주체인, 교수협의회, 정년 비정년 교수들이 회원으로 망라된 안양대학교 교수노동조합, 학생회, 총동문회, 침묵하는 다수 직원들도 함께 하는 바이다”며, “혹여 일부 왜곡된 정보로 인해 이번 이사회 개최를 강행하고 본 법인과 학교를 접수하려 한다면 이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귀 종단 임원들께도 돌이길 수 없는 패착이 될 것이며, 그 책임은 오로지 귀 종단에 있음을 밝힌다”고 경고했다.   이어 “우리 모든 구성원들은 금명 간 개최 시도 중인 학교법인 우일학원 이사회를 단호히 반대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저지할 것이며, 귀 종단 소속의 우일학원 이사들이 철수하고, 귀 종단이 본교 매입의사를 포기하는 그날까지 총력을 다하여 투쟁할 것임을 거듭 밝힌다. 부디 우리의 이러한 의지와 애교심을 과소평가하지 마시고, 함께 상생하며 모두가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안양대교수협 한 관계자는 “매우 엄중한 상황이다. 대진성주회 측에서 이사장을 세우려고 시도한다는 것은 학교매각과정이 거의 마무리됐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라면서 “대진성주회 이사장을 세우고 그쪽 출신으로 서서히 이사회를 구성하려는 수순으로 갈 것 같다. 이를 저지하기 위한 한국교회의 통렬한 관심과 협조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또 사실관계에 정통한 한 동문목사는 “신앙 좋은 분이 더 좋은 조건으로 안양대 인수를 희망하고 있다. 그런데 우일학원 전 이사장은 우리의 전화를 아예 받지도 않으면서 회피하고 있다”며, “지금 막지 못하면 매각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다. 한국교회 전체가 나서 이를 막아야 한다”고 전했다.    
    • 교계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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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4
  • 12월 28일, ‘남성프로라이프운동’ 세미나
      행동하는프로라이프남성연대는 오는 28일 ‘남성프로라이프 운동 어디로 가야하나?’란 주제로 제1회 세미나를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오후 2시30분터 5시까지 진행한다. 이번 세미나는 카도쉬아카데미가 주관하고, 코람데오닷컴, 한국성과학연구협회, 성산생명윤리연구소 등이 후원한다.   전체 사회는 이재욱목사(카도쉬아카데미 공동대표·사진)가 맡았고, 먼저 김동진목사가 ‘미국 프로라이프 역사와 한국 프로라이프 남성운동의 방향성’에 대해, 오창화대표(전국가족입양연대)가‘입양 운동과 남성의 역할’에 대해, 이상원교수(총신대학교 조직신학)가 ‘생명운동에 있어서 남성의 성경적 역할’에 대해, 박준우목사(카도쉬 유스미니스트리 대표)가 ‘교회와 가정에서 생명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남성역할 중심)’에 대해 각각 발표할 예정이다.   제2부는 남성 발제에 대한 여성 입장에서의 제언하는 토론이 예정돼서 흥미를 더할 전망이다. 장지영교수(이대서울병원), 배지연박사(사회복지학 Ph.D.), 황지영교수(고신대 기독교상담대학원), 신정아전도사(총신대 기독교교육학 Ph.D. 과정) 등이 토론자로 나선다.   이번 행사를 이끌고 있는 이재욱대표는 “지난날까지 낙태의 문제는 ‘여성의 개인적인 문제’ 차원으로 여겨져 왔다. 남성들은 이에 모른 척 멀리서만 바라보고 있었다”며,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생명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책임져야 한다. 이에 행동하는프로라이프 남성연대에서는 생명운동을 함에 있어서 어떠한 방향성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한 자리에서 논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교회 지도자들과 중직들은 남성들이 맡고 있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영혼구령의 열정을 외치던 모습의 이면에는 죽어가는 생명에 대한 외면이 있었음을 다시 돌아본다”며,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주신 생명에 대해 교회가 소리를 내며 태아를 지켜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한국에서 일어나야 할 생명운동과 그 운동에 동참하는 남성들의 역할, 입양과 교회교육의 방향성들을 논하며 세상과 사회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 교계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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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3
  • 구세군서 첫 온라인 자선냄비 시종식
    ◇구세군 장만희사령관이 시종식에서 인사말을 했다.   구세군한국군국(사령관=장만희사관)은 지난 1일 서울 구세군중앙회관에서 자선냄비 시종식을 철저한 방역 속에서 사상 최초로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올해로 92년째를 맞는 시종식이 실내에서 진행되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선냄비 거리모금은 시종식을 시작으로 12월 31일까지 전국 약 350여 곳에서 진행된다. 올해 시종식 행사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어 외부 초청 없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졌으며, 체온체크와 마스크 착용 등 방역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며 진행됐다. 특히 구세군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실시간 스트리밍 중계를 실시해 모금현장을 연결하여 전국적으로 일반시민이 함께 참여했다.   이날 시종식에는 구세군한국군국 장만희 사령관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정세균 국무총리가 사전 녹화 된 영상으로 코로나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또한 디지털모금(스마트모금, QR모금) 참여와 온라인 모금 등 나눔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했다. 이후 온라인 시종식에 참여한 시민들과 함께 따뜻한 감동의 울림 ‘사랑의 종소리’ 세리머니로 1부 순서를 마쳤으며, 2부 순서에는 샌드아트와 이한철 밴드의 문화공연이 이어졌다.   구세군 관계자는 “올해도 모금 목표액을 정하지 않았다. 구세군자선냄비 모금은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십시일반’ 나눔운동이다”며, “한 분, 한 분의 참여는 특히, 올해 코로나로 인해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계층에게는 도움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지난 90여 년 동안 12월이면 어김없이 등장해 이웃을 위한 나눔운동 활성화에 크게 기여해온 구세군 자선냄비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 사회에 희망의 소식을 전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교계종합
    • 교단
    2020-12-03
  • 감리교 단체서 차별금지법 대응 포럼
    ◇감리교회거룩성 회복을 위한 단체들은 차별금지법에 대응하는 포럼을 열고 대응전략을 모색했다.   ‘감리회 거룩성 회복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와 ‘감리교회 바르게 세우게 연대’등은 지난달 24일 예광감리교회에서 「동성애, 포괄적차별금지법에 대응할 한국교회의 전략적 방안 모색」이란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이날 포럼에서는 이승구교수(합신대), 조영길변호사(법무법인 아이엔에스), 조배숙 전 의원 등이 발표했고, 임성모박사(웨슬리조직신학연구소장), 이상현교수(숭실대) 등이 논찬했다. 1부 예배 후에 최상윤목사(예광교회)의 사회로 포럼이 시작됐다.   이승구교수는 동성애문제에 대한 성경적 입장이란 제목의 발표에서 “구약은 일관성 있게 동성애적 관계를 가증한 것으로 정죄하고 그에 대한 형벌은 사형이었다고 말하는 해리슨의 주장은 매우 정확하며 정당한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신약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일관성 있게 동성애를 옮지 않은 것으로 천명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또 “개신교에서는 성경에서 금하고 있는 모든 죄를 다 무시무시한 죄로 여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성애만을 정죄하고, 그런 이들이 특별히 더 잘못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오히려 동성애의 죄도 다른 모든 성적인 죄와 같이 심각한 죄이고, 하나님에게서 정죄 받을 죄라고 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교수는 “구약과 신약은 모두 동성애를 모르던 시대에 문화적으로 뒤쳐진 상태여서 동성애를 금한 것이 아니라 주변 세계에서는 동성애가 성행하며, 이스라엘조차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그와 같은 죄악 속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할 때가 많은 바로 그런 정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의도로 동성애와 다른 모든 죄를 버리고 멀리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동성애가 만연하는 우리 시대에도 동일한 성경적 원리가 천명되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조영길변호사는 동성애차별금지법 저지를 위한 교회의 대책이란 발표에서 차별금지법으로 금지되는 행위 유형들이 고용영역, 경제영역, 교육영역, 행정 영역 등을 들어 설명했다. 고용영역에서는 동성애를 엄금하는 교회, 교회 기관, 신학교 등 동성애자나 옹호자의 채용 거절, 해임 등을 금지해, 신앙자율성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또 모든 고용에서 채용, 승진, 해고 등 제한에서 정당한 사유를 입증해야 하는 부담으로 동성애자를 우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 저지를 위한 교회의 해심 대책으로 △차금법의 반성경적 반국가적 실체를 삼가 살피는 활동을 철저히 전개 △교회 성도들(1천만, 6만 교회)을 미혹되지 않게 적극 홍보 △지역, 교단 초월하여 연합해서 한국교회총연합, 17개 광역시 교단연합회, 기독교 공조직 연합 기도회 적극 참여 등을 제시했다.   조배숙 전 의원은 포괄적차별금지법에 대한 정치적 대응전략이란 발표에서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미래세대가 과연 이런 도전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현재의 청년 복음화율이 한자리수임을 생각해볼 때 이 부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교회가 깨어나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미래세대를 충분히 교육해서 이것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청년세대를 교육하고 뿐만아니라 이 청년세대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변화시키는데도 제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한편 1부 예배는 한철희목사의 사회로 시작했고, 황용희목사가 「벧엘로 올라가 제단을 쌓으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황목사는 한국교회 특히 감리교회는 모든 이권다툼을 끝내고 차별금지법을 막아내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교회협 중심 교단인 감리교 안에서 차별금지법 반대의 목소리가 조직적으로 나오고 있어 감리교가 교단차원에서 어떤 대응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교계종합
    • 일반
    2020-11-26
  • 포항인권포럼서 차별금지법 대응 포럼
    포항인권윤리포럼은 지난 24일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젠더법) 무엇이 문제인가?」란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이상원교수(총신대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 민성길교수(정신의학, 연세대 명예교수), 김준명교수(감염의학, 연세대 명예교수), 권요한박사(인권윤리재단 운영위원장)등 각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발제자로 나섰다. 또 포항시기독교교회연합회 회장 안순모목사, 한동대학교 장순흥 총장 등이 인사말을 전했다.     “성경은 동성애를 윤리적인 악한 행위로 간주하여 명확히 금지하고 있다”   이상원교수는 「성경적 관점에서 본 차별금지법」이란 발표에서 “우리는 23가지 차별금지 항목에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이 포함되어있다는 점에 추가로 주목해야 한다. 차금법은 명확히 동성애들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고 이성애자들에 대한 역차별을 조장하는 법이다”며, “우리는 차금법이 법제화되면 종교비판금지법, 사상비판금지법, 정치적 의견비판 금지법이 줄줄이 등장할 것을 우려하는데, 사실은 차금법 자체가 이미 종교비판 금지법이며, 사상비판금지법이며, 정치적 의견표명금지법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차금법은 남성과 여성 이외에 제3의 성 또는 성들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며,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성별을 결정할 때는 생물학적 신체구조만을 고려해야 하고, 인간의 주관적 인지는 배제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염색체 구조가 XY이고, 이 염색체 정보에 따라서 남성 생식기를 가지고 있으면 남자이고, 염색체 구조가 XX이고, 이 염색체 정보에 따라서 여성 생식기를 가지고 있으면 여자다. 그것으로 성별결정은 100% 끝난 것이다”고 확언했다.   이교수는 “결국 차금법의 성적지향의 정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동성 간의 성교는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정당한 행위라는 것이다”며, “이와 같은 발상에는 두 가지 잘못된 성인식이 배경에 깔려 있다. 하나는 동성을 향한 성적 욕구는 선천적인 성적 욕구로서 윤리적으로 선한 것이라는 인식이다. 다른 하나는 지그문트 프로이드(Zigmund Freud)의 해방적 성 심리학이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동성을 향한 성적 욕구가 선천적인 성적 욕구로서 윤리적으로 선한 것이라는 인식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결국 프로이드의 성해방 개념이 의도하는 것은 엄격한 이성애적 규범을 견지하고 있는 정통 기독교의 성윤리를 해체시키고자 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성경은 차금법의 취지와는 달리 레위기18장22절과 20장13절에서 동성애를 윤리적인 악한 행위로 간주하여 명확히 금지하고 있다. 이 본문이 지닌 중요한 특징들은 명령이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서 모든 기독교인들이 준수해야 할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도덕적 명령임을 말한다”고 전했다.   소수자 보호라는 취지에 대해 이교수는 “동성애자의 숫자가 소수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소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의 특별한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소수라 할지라도 그 소수의 집단에 들어가게 된 이유가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한 구조의 힘에 의한 것인가, 그리고 윤리적으로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인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람의 창조-남자와 여자의 창조-남자와 여자의 결혼’이라는 패러다임은 인간이 결정한 패러다임이 아니라 하나님이 온 인류를 대상으로 하여 정해 주신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 패러다임을 불변하는 구조적 틀로서 전제하고 그 틀 안에서 생활을 형성해 나가야한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끝으로 “결국 차금법이 속에 숨기고 있는 좀 더 궁극적인 목표는 성경을 금서(禁書)로 만드는 것이다”며, “차금법이 동성애에 대하여 혐오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라는 말은 동성애를 ‘혐오스러운 일’이라고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는 성경의 가르침을 가르치지 말라는 뜻이며, 결국 성경은 금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고 경고했다.     “생물학적(의학적)으로 동성애가 유전 혹은 타고난다는 증거는 없다”   민성길교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정신의학」이란 발표에서 “동성애는 타고나며, ‘자연적’이고, 그래서 정상이라고 성혁명론자들은 주장하는데, 생물학적(의학적)으로 동성애가 유전 혹은 타고난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정신사회적 원인이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민교수는 “어떤 한 행동이 유전(선천적)된다고 해서 정상이라는 것은 의학적으로 맞지 않다. 유전되는 병 또는 유전적인 요인이 전혀 없는 질병은 거의 없다”며, “유전되는 병이라 해서 치료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원인이 어떠하든, 하나의 인간행동이 병적인가 건강한 것인가 하는 것은 그 ‘열매’를 보아 판단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 과연 동성애 행동은 자신, 상대방, 그리고 사회에 유익한가 또는 해로운가? 민박사는 “지금까지 제시된 의학적 사실들을 보면 결과적으로 동성애는 병적이다”며, “모든 인간의 행동은 정상과 병적임 간의 연속선상에 있다. 그리고 모든 인간행동은 의지(선택)로, 교육으로 또는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정상 쪽으로 개선시킬 수도 있고 또는 병 쪽으로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동성애자들은 동성애를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또는 이성애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동성애자들은 실제로 가끔 또는 자주 이성과 성관계를 갖기도 한다”며, “일부 동성애 옹호자들의 미묘한 입장 변화 동성 끌림은 타고난 것이지만 ·동성애 정체성은 버릴 수 있고 동성행위는 자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교수는 “우리는 LGBT 인권존중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 LGBT 인권에 대한 규정(헌장)이 만들어 지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한다. 특히 그 규정이 LGBT에 대한 의학적 사실들을 말할 수 없게 하면 안 된다. LGBT에 대한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없게 하면 안 된다. LGBT에 대한 치료를 금지하게 한다면 이는 인권 유린이다”고 주장했다.     “동성애자에서 항문 성교로 인한 가장 심각한 성병은 에이즈”   김준명교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공공보건」이란 발표에서 “동성애자에서 항문 성교로 인한 가장 심각한 성병은 에이즈(HIV 감염)라 하겠다. 근년에 UNAIDS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에이즈 예방 및 치료 사업은 괄목할 만한 효과를 보여 전 세계적으로 매년 신규 HIV 감염의 발생이 감소하고 있다”며, “그러나 전 세계적인 경향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도리어 매년 신규 HIV 감염이 크게 증가했다. 또한 연령 분포도 과거에는 주로 30대와 40대에서 발생하였으나, 최근에는 20대에서의 발생이 35%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하며 가장 높은 빈도를 보이고 있으며, 10대까지 포함하면 40%에 육박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만에 하나라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통과된다면 가장 먼저 동성애가 인정될 것이며, 그에 따라 동성 결혼 합법화는 자연스레 이루어질 것이다. 나아가서 항문 성교와 구강성교 등에 대해서도 교육이 실시될 것이다”며, “그러다 보면 사회적으로 모든 성적인 관계가 허용되면서 소아성애, 노인성애, 근친상간, 수간, 시체성애, 기계성애 등 전혀 입에 담지도 못할 일들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와 함께 다양한 구성원의 결합이 사회적으로 허용되면서 일부다처, 일처다부, 집단혼, 근친혼, 그룹결혼 등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한 마지막 세태가 올 때 우리의 전통적인 결혼과 가족의 정의와 개념은 급격히 붕괴되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고 우려했다.     “종교적 혼합주의의 반신적 비윤리적 인권 프레임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끝으로 권요한박사(한국윤리재단 운영위원장)가 국제인권윤리선언을 해설했다. 권박사는 “인권의 경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편성이다. 즉 인권의 보편성은 어떤 사회적 조건에 있든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며, “그러나 다원적인 사회 속에서 인권에 대한 보편적 함의를 도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인권을 생존권, 평등권, 자결권 등으로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구체화하려면 이를 인정해 주면서도 책임을 질 수 있는 구성원들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성경적이고 복음적 가치를 지향하는 기독교인은 자기결정권의 논리에 감추인 세속적 다원주의 혹은 종교적 혼합주의의 반신적 비윤리적 인권 프레임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박사는 “다원화되는 사회에서 인권과 자기결정권의 실현이 윤리적인 검증과 절차적 정당성의 확보를 통해서 보편적 가치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극단적 이기주의나 윤리적 상대주의를 극복하기 어렵다. 극단적 이기주의나 윤리적 상대주의에 의해 자기결정권이 남용될 경우 사회적 도덕적 아노미현상이 확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며,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기결정권의 실현이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인 경우 이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대한 책임성을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적 자기결정권의 문제점은 성에 대한 자유선택을 빌미로 보편적이지 않은 인간의 성적 행위나 성향을 보편적 가치로 둔갑시키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다는 점이다. 즉 성적 자기결정권은 인종이나 남녀처럼 선천적이지 않으며 동시에 장애인과 같이 사회적인 소수자(약자)로 분류되기 힘들다는 점이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보편적 인권으로써 자기결정권은 반드시 윤리적 준거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자유선택의 두 측면에서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의 공동선과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유의지의 상실 내지는 무력화를 초래하였으며 동시에 인간에게 주어진 제한적인 자유선택만으로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권박사는 “자기결정권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영역에서 세속적 합리주의를 기반으로 삼고 있는 바, 공동선에 대한 검증이나 절차적 정당성을 거치지 않고 자기결정권을 마치 보편적 가치인 것처럼 강요하는 이 시대에 반신적 반생명적인 세속적인 젠더주의의 인권화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며, “이에 우리는 인간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형상과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근거하여 보편적인 윤리성을 지향하는 국제인권윤리선언(별첨 서울선언 2020.7.20)을 주창하는 바이다”고 설명했다.   국제인권윤리선언" 온라인 서명.  https://forms.gle/eW5HJ2EiX86Txs556 이번 포럼은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신학적, 의학적, 공공보건적, 인권적 입장에서 명쾌하게 분석했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특히 수도둰 중심의 포럼이 아닌 지방 거점 도시에서 진행됐다는 점에서 앞으로 다른 지방도시로 확산될 전망이다.
    • 교계종합
    • 일반
    2020-11-25
  • 기사연서 ‘도시이야기’ 사진전시회
    (사)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원장=김영주목사)은 서울시의 「2020 종교단체 지원 공모 사업」으로 선정된 <나의 도시 이야기: 소실과 소생사이> 사진전시회를 진행한다. 온라인 전시 기간은 11월 23일 - 12월 10일(온라인 전시 링크: citystory.jpic.org)이며, 오프라인은 11월 23일 - 12월 10일 (수-토, 오후 1:00-6:00)이고, 전시장소는 복합문화공간 ‘공간이제’(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11길 20, B1)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방문객을 제한하여 받고 있어 사전 예약은 필수이다.   동 연구원은 현대 사회 속 합리적이고 발전적인 토론의 장으로서 세 가지 공론장에 주목하고 있다. 정치적 공간으로서 광장, 경제적 기반과 삶의 터전으로서의 도시, 의식과 담론의 각축전으로서의 미디어이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서울 안의 사라져가는 공간과 새롭게 생겨나는 장소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한 도시의 개발과 성장, 변화를 겪고 있는 시민들의 감정과 경험을 사진에 담아 전달하는 공모 전시회이다. 사진접수 공모기간은 10월 19일 ~ 11월 8일이었고, 응모자는 133명으로 총 350여점이 출품됐다. 온라인 전시 홈페이지에는 7점의 수상작을 포함하여 총 50점의 당선작 사진들과 각각의 사진에 담긴 사진 속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특별히 7명의 수상작의 경우 인터뷰 영상을 제작해 사진가와 현장에 방문하여 사진가가 작품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보다 생생하게 담아낸 인터뷰 영상들을 함께 감상하실 수 있다.   위 7명의 수상작은 간이전시회 형태로 직접 보실 수 있도록 준비했고,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철저한 방역 하에 진행되는 소규모 사진전이 될 것다. 온라인 전시와는 달리 입상한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으며, 영상을 통한 작가들의 작품 해설, 현장 큐레이터의 설명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주최측은 “이번 <나의 도시 이야기: 소실과 소생 사이>를 통해 듣게 된 많은 시민들의 추억과 감상, 그리고 기대와 꿈들은 앞으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연구해야 할 다양한 주제들을 던져주었다. 도시라는 이미지 안에 담긴 현대 사회의 여러 이슈들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기타 문의사항 및 관련 질문은 mhlee@jpic.org혹은 02-312-3317으로 하면 된다.  
    • 교계종합
    2020-11-20
  • 24일, 포항인권윤리포럼서 발표회
      포항인권윤리포럼은 오는 24일(화요일) 오후 2시, ‘포괄적 차별금지법 무엇인 문제인가?’를 주제로 포럼을 개최한다. 이강덕 포항시장, 장순흥 한동대총장, 안순모 포항기독교교회연합회 회장 등이 참석해 인사말을 할 예정이다.   주최측은 “현재 발의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위헌적인 조항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고, 그 폐해로 윤리 도덕이 무너지게 되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에 이 법의 문제점을 더욱 알리고자 각 분야 전문가들을 모시고 이번 포럼을 준비하게 됐다”며,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각 지역의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이와 같은 강연회가 개최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포스코 국제관 1층 대회의실에서 개최되는 이번 포럼은 코로나19 방역에 많은 힘을 쏟았다. 현장 참석을 50명 수준으로 제한하지만, 유투브를 통한 온라인 실황중계로 모든 순서가 전국으로 방송된다. 포럼에서는 4명의 전문가의 기조발표 후 종합토론이 이어진다.   첫 번째 기조연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윤리성」을 주제로 총신대 이상원교수(기독교윤리학)가 발표자로 나서며, 연세대 민성길명예교수(정신의학)는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정신의학」을 주제로 발표한다. 연세대 김준명명예교수(감염의학)는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공공보건」을 주제로 세번째 기조연설자로 나서며, 한국윤리재단 운영위원장 권요한박사는 「국제인권윤리선언 해설」로 마지막 발표를 한다.   포항인권윤리포럼, 포항YMCA, 포항건강한가정지킴이연대, 미래세대희망세움연구소, 한동대 아가청, 한국윤리재단(KEF), (사)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포항시기독교교회연합회, 포항성시화운동본부, 포항극동방송, 포항CTS방송, 포항CBS방송 등이 참여하여 포럼을 개최한다. 현장 및 온라인 참가를 위해서는 다음의 링크에 접속해 사전신청을 받고 있다.  (사전신청 필수, 선착순)  https://forms.gle/scG9ooc6HnCGTi1d9  
    • 교계종합
    • 일반
    2020-11-17

오피니언 검색결과

  • 시인 최 선박사의 행복칼럼-35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크고 작은 짐을 결코 벗어나 살아갈 수 없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것은 인간의 눈에 결코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행복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사람은 삶의 현장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행복의 지수도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번 선택한 것 중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세월이다. 어릴 때는 시간이 빨리 가지 않는다고 느낀다. 아마 한번쯤은 나는 언제 어른이 되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그 시간을 잡고 싶을 정도로 빨리 날아간다. 30대는 30km, 40대는 40km, 50대는 50km, 그 이상의 시간은 더 빠르게 달려간다.   사람들이 제각기 다양하게 살아갈 때, 한 시간, 하루, 한 달, 일 년, 10년 그 보다 더 많은 시간의 세월 속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삶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행복과 불행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간을 아끼며 주어진 세월 속에서 어떤이 와의 만남도 중요하게 생각하며 영위해야 한다.   『이방인(L’etranger)』의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인생에서 중요한 짐을 네 가지로 말했다. 사람은 그 짐을 지고 고생하며 살아간다고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첫째는 ‘경제적인 짐’이다. 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물질이 있어야 한다. 그 물질을 가지고 꿈을 이루기 위해 투자를 한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영위하면서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맡으므로 경제적인 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둘째는 ‘정신적인 짐’이다. 경제적인 짐이 해결되었다고 모두가 행복하지는 않는다. 삶 속에 더불어 살지 않고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초조하며, 고독이 온몸을 누른다. 그 스트레스를 통해 우울감과 우울증이 동반된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에서 갈등과 번민이 끊이지 않고 존재한다. 사람이 고독감에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정신적인 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생(生) 자체의 짐’이다. 인간은 육신을 입고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이 자체가 짐이라는 것이다. 갓난아이로 태어나 부모의 보호 속에 이웃을 만난다. 그 성장 기간을 통해 많은 실수와 더불어 발전하여 성숙한 모습으로 되어 간다. 그렇다고 마냥 부모의 슬하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독립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힘겨운 삶을 영위해 간다. 그 일생 자체가 짐을 안고 살아가기에 고통의 연속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짐’이다. 육체가 건강하다 하여 영이 건전한 것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거듭나야 건강한 영이라 할 수 있다. 죄악 된 영이 그대로 있으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악한 영이 인간을 이끌고 간다. 그래서 사람은 영으로 하나님과 만나야만 한다. 그 만남을 위해 성경 말씀을 인간에게 주셨다.   이 땅의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오직 인간에게만 영을 주셨다. 하지만 에덴 동산에서 그 영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게 되어 육체적인 고통과 더불어 영적인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성경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했다.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분은 구약에 약속한 메시아, 이 땅에 성육신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사람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행복과 불행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이 육과 영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죄에서 구원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만 한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 충만한 생활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행복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문하신다. 지금, 여기, 삶의 현장에서 나는 예수님 안에서 행복하십니까?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 오피니언
    • 칼럼
    2020-11-30
  • ‘감리회거룩성회복을위한비상대책협의회’ 사무총장 민돈원목사
      ◆감리교 안에 단체를 만들게 된 배경은? =감독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10년 동안 감리교 안에 너무 많은 혼돈과 갈등이 있었다. 지금 감리교는 미아와 같다. 그래서 현장에서 목회하는 뜻 있는 목회자들이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감리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하고자 함께 단체를 만들고 활동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반대운동도 이런 활동 중 하나이다.   ◆감리교에는 연회, 총회라는 공적인 조직이 있다. 이런 공적 조직과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감거협은 건설적인 비판을 하는 단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2주 전에 신임 감독회장과 만나서 우리의 입장을 전달했다. 그래서 교단이 잘하는 부분은 함께하고, 개선되고 시정되어야할 부분이 있으면 이를 말할 것이다.   ◆감리교 안에 감거협과 성격을 달리하는 단체도 있다. 같은 교리와 장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렇게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감리교는 같은 교리와 장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과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다. 성경이 동성애를 용인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성경은 동성애를 죄라고 단정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이다. 이러한 목소리를 계속 낼 것이다.   ◆교회협은 차별금지법을 찬성하고, 감리교는 교회협의 핵심 교단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차금법에 찬성하는 교회협과 우리는 의견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깊이 고민해야할 문제라고 본다. 감거협에 참여하는 회원들과 의견을 공유하고, 교단과도 이 문제를 놓고 심도 있는 대화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인터뷰
    2020-11-26
  • 정성구박사 칼럼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앞으로 지금 쓰고 있는 100원짜리 동전이 없어질 듯하다. 그 이유는 100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이순신 장군상이 친일화가인 장우성 화백이 그린 것이기 때문에 폐기한다는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현충사의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친일화가인 장우성 화백이 그렸다는 이유로 그것도 뜯어내서 폐기했다고 한다.   정부가 의논해서 결정한 것을 뭐라고 토를 달지는 않겠지만, 일반인으로서는 그가 한국 화단의 훌륭한 화가였던 것도 맞고, 또 일제시대 때 조선민전에 출품하여 입선작상을 받은 대표적 화가로 알고 있다.   그 화가가 구체적으로 무슨 친일행각을 했는지는 일반인들에게 자세히 알려진 바도 없다. 혹시 그냥 모 단체에서 만든 친일인사 명단에 장우성 화백이 있으니 친일청산의 차원에서, 그의 작품인 이순신 장군상을 공식영정으로 사용할 수 없고, 새로운 영정을 만든다고 들었다. 그것은 친일 청산이라기 보다 일종의 문화혁명이다. 들리는 말로는 그분 말고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 화패에서 사라질 것 같다. 혹시 이러다가 화패개혁을 하려는 음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일제의 잔재를 없앤다면 지금의 시청본관도, 서울역 청사도, 한국은행 본사도 헐어야 되지 않겠는가?   사실 누가 이순신 장군을 친히 본 사람도 없고, 현재는 그의 사진도, 그림도 없고, 그의 생김새를 글로 나온 것도 없는데, 당시 작가가 이순신 장군상을 그릴 때는 많은 글들을 참고 했을 것이고, 작가의 영감으로 그렸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1750년대 곧 18세기 중엽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 그림을 하나 가지고 있다. 한국에는 동아대학이 사본을 하나 가지고 있다고 들었지만, 내가 입수한 작품은 미국의 동부 볼티모어(Baltimore) 시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을 사본으로 가지고 있다.   「忠武公 李舜臣」이라는 영정에는 당시에 굵은 삼배 같은 천에다, 노랑 배경에 흡사 징기스칸을 닮은 무인형으로 그려져 채색되어 있다. 아마도 이순신의 모습이 흡사 세계 제패를 꿈꾸던 몽고의 징기스칸을 닮았을 것이라고 작가는 생각한 모양이다.   당시 그 화가가 누군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그 시대에 이순신장군에 대해 최선을 다해 그렸을 것이다. 그는 친일파가 아니었고, 친미나 친중도 아니었고, 연대도 이조 중기에 그렸으니 이순신 영정으로 할 수 있다고 본다.   예술을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비판 하는 것은 모두 사회주의, 공산주의 숫법이다. 나의 스승이요, 20세기 칼빈주의적 미술사의 최고봉이었던 화란 뿌라야 대학교 교수였던 한스 로끄마꺼(Hans Rookmaaker)박사의 말이 생각난다. “예술에는 중립이 없다!”고… 예술 작품에는 반드시 그 작가가 가진 사상과 세계관이 들어 있다.   그런데 장우성 화백의 작품에서 일제를 고무, 찬양하는 것이 나타났는지? 아니면 글을 통해서 어떻게 친일을 했는지 우리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친일 척결을 하는 것도 혹시 무슨 정치적, 또 무슨 사상적 의도가 배후에 깔려 있는지도 알 길이 없다. 솔직히 말해서 일제 식민지 시절에 친일을 안한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 심지어 독립유공자 가운데도 친일파가 있다고 들었다. 일제의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끝까지 절개를 지키다가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와 박관준 장로를 비롯한 한상동, 이인재, 손명복 목사 등 산 순교자들과 해외에 나가서 일하던 독립운동가들과 신사참배를 피해서 해외에 망령 한 인사들만이 지조를 지켰고, 나머지 조선사람은 전부 친일파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 영웅이자, 자부심인 마라톤의 영원한 영웅인 손기정 선수를 한 번 생각해 보자. 나는 1936년에 독일 베를린 올림픽 경기에서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선수의 사진을 가지고 있다. 당시 독일에서 인쇄된 칼라사진을 가지고 있는데, 그가 시상대에 올라가 붉은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시상대에 올라 섰었다. 나는 그 사진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손기정 선수를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우리의 영웅으로 언제나 가슴에 남아 있다. 그 옛날 동아일보 기자가 흑백사진에 나온 일장기를 지워버리려고 밤에 몰래 조판실에 침입한 사건도 있었다. 그런데 84년이 지난 지금 붉은 일장기를 단 그의 모습을 보고 그를 친일파로 몰아갈수는 없다.   나라를 잃은 그 시대에 그는 가슴에 붉은 일장기를 달았지만, 생명을 걸고 조선의 건아로서 뛰고 또 뛰어 월계관을 썼다. 그러나 그는 일본국적이었다.   앞으로 두고 볼 것이다. 새로운 이순신 장군 영정을 그리는 화가가 혹시 종북 화가가 아닐는지, 또는 중국을 지독히 좋아하는 친중 화가가 아닐는지, 아니면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을 가진 화가가 아닐는지,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겠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는 정치, 경제 뿐 아니라 예술에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100원짜리 동전이 다시 보인다.
    • 오피니언
    • 칼럼
    2020-11-23
  • 한국교회정론-1
    소기천(장신대 신약학교수/한국교회정론대표)   오바마가 미국에 남긴 공헌은 오바마 캐어인 전국민 의료보험체계와 동성애 인권 논리이다. 트럼프가 기적적으로 클린턴을 꺾고 45대 미국 대통령직에 오르자마자 곧바로 이 두 가지를 폐기하기 위해 연방대법원에 가지고 갔지만, 판결이 번복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과연 더는 논란이 없는 문제일까?   오바마 8년 동안 미국이 정책적으로 동성애, 젠더 정체성, 사회적 성평등, 낙태 조장, 이슬람 난민 허용, 전국민 의료보험 실시 등을 실시하여 진보적인 소수 종교인에게는 지지를 받았을지 모르지만, 침묵하는 다수인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했던 많은 기독교인이 민주당의 기세에 눌려서 살던 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반전이 일어나면서 기독교가 숨을 쉴 수 있었다. 물론 지난 트럼프 재임 4년 동안 온두라스에서 시작된 이민자들이 무작정으로 걸어서 미국으로 향하는 대열이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음으로써 꽉 막힌 상황에서 미국의 반이민 정서에 인권 문제까지 불을 붙임으로써 논쟁이 가중되었지만,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함으로써 어느 샌가 매스컴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국경을 봉쇄하여 미국인의 일자리를 사수해야 한다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목소리는 어느 사이에 쿠바 난민들이 플로리다에 대거 몰려가서 터전을 마련한 이후의 상황에서 같은 히스패닉계이지만 쿠바 이민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옹호하기 위해 멕시코 국경에 반이민 장벽을 쌓은 것을 지지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결국,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4년 전의 대선처럼 플로리다를 민주당에게 내주지 않은 보상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7천만표를 얻은 트럼프는 재임으로까지 이어지기 어렵게 되었고, 바이든이 미 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7천5백만표 이상의 득표를 하고 대의원의 과반수를 얻은 상황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승복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법적으로 반발하기 때문에 바이든은 법적으로 당선인의 신분을 얻지 못하는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혼돈의 와중에 미국에서 국론 분열과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기에, 누군가는 나서서 분열을 치유하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일이 시급하다. 그동안 미국 대선은 정책 대결보다는 서로를 공격하면서 상대방에게 프레임을 씌우는 일에 급급한 것이 선거가 끝난 상황에서도 트럼프가 좀처럼 백악관을 내줄 것 같지 않은 기세를 올리고 있다. 일단 대선이 끝났고 개표가 말해주듯이 바이든이 대의원의 매직 넘버인 270표를 훌쩍 넘긴 상황이다.   바이든은 3수라는 우여곡절 끝에 당선되었지만, 과거에 그의 정치 역정이 순탄치 않은 것처럼 앞으로도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일이 전혀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바이든은 트럼프가 어려운 여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이전에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린 정책에 대해 인정하고, 미국인의 자유를 구속할 수 없다는 트럼프에 대해서 전염병을 핑계로 사사건건 마스크만을 물고 늘어지고 여론몰이를 통해서 트럼프를 조롱하고 깎아 내린 가벼움을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동성애자의 인권을 중시하여 주례도 마다하지 않았던 바이든이 어떤 경우에서도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는 트럼프를 향해서 전염병 확산을 막는다면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남은 대선 유세를 마무리한 행보를 비난한 것이나 자신의 선거에 유리하게 거액의 광고를 통하여 계속해서 조롱한 것은 결코 세월이 지나간다고 쉽게 잊힐 일이 아니다. 그만큼 바이든은 절대다수의 언론 매체가 지지하는 기반을 바탕으로 트럼프를 공격하면서 그를 지지하면서도 침묵하는 샤이 트럼프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바이든이 대선에 이기고서도 법적으로 당선인의 신분을 쉽게 얻지 못하는 것도 이런 연유와 무관하지 않다.   오바마 8년의 재임 기간에 교회는 양분되었다. 프린스톤 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미국장로교회가 동성애 합법화를 선언하고 동성애자 목회자를 허락하게 되자, 2천여 개의 교회가 교단을 탈퇴하여 1/3로 교세가 줄어들었다. 프린스톤 출신이 한국 신학교에 대거 몰려들면서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몇몇 교단은 동성애 인권 논리의 싸움터로 변질되었다. 이것을 거울로 삼은 미국감리교회는 동성애자 목회자를 허용한 결정을 뒤엎고, 오히려 동성애 지지파와 동성애 반대파가 교단을 분립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파국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성경은 동성애를 죄악으로 말한다. 그런데 신학교가 동성애를 성경대로 죄악이라고 규정하면서, 동시에 인권이라고 교묘하게 포장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느 인권 선언문과 권리장전에 동성애가 인권이라고 명시되어 있는가? 동성애를 인권으로 옹호하는 것은 상황 윤리를 근거로 하는 논리이며, 사회적 성과 젠더 정체성을 옹호하려는 반성경적인 주장이다. 트럼프가 승복하지 않고, 미국의 몇몇 주에서 발생한 부정투표 의혹을 제기하는 것에 기독교가 동조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바이든은 깊이 생각하고, 오바마의 8년 재임 기간과는 다른 인권 정책으로 동성애 문제에 접근하여야 한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죄악이다. 인권으로 옹호를 하므로 동성애자가 파국으로 치닫다가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호스피스 병동에 가서야 뒤늦게 뉘우치고 동성애로부터 돌이켜서 탈동성애자가 되는 일이 일어나는데, 이미 때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이후이다.   바이든은 다시 성경의 본질로 돌아가기 위해 인권 논리에 빠져서 동성애자 결혼식 주례를 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의 진리대로 굳게 믿고 나가는 샤이 트럼프, 곧 다수의 보수적인 기독교인을 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이든은 4년 내내 쉽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바이든은 성경의 진리를 존중하여 동성애자가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 오피니언
    • 정론
    2020-11-23
  • 시인 최 선박사의 행복칼럼-34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섬나라 일본제국이 대륙을 점령하고자 한반도와 간도지역에서의 만행들은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 고통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일제잔재들이 우리나라에 산재해 있다. 금년이 일본제국에서 해방 된지 75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생각하며 영화 ‘동주’의 주인공들인 저항 시인 윤동주와 청년문사 송몽규를 기억하고 그들의 삶의 여정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1917년 동년에 지금의 중국 연변자치구 용정시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1925년 4월, 8살이 되는 해에 윤동주, 고종사촌 송몽규, 외사촌 김정우, 문익환 등과 함께 명동소학교에 입하였다. 그들은 총명하고 학업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면서 범사에 적극적인 활동을 하여 동학들 중에서 나란히 리더들이 될 정도였다. 송몽규와 윤동주는 소학교에서 조선의 역사와 민족주의 및 독립사상교육을 받았다. 특히 그들은 학교 행사가 있을 때에는 태극기를 걸고 애국가를 불러 애국정신을 높였다. 매우 탁월한 성적으로 명동소학교를 졸업한 그들은 용정시 명동촌에서 십리 이상 떨어진 화룡시에 있는 화룡현립 제1소학교 6학년에 편입하였다.   은진중학교 3학년 때 독립사상과 민족의식을 깨우쳐 주시던 민족주의자 명의조(名義朝)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송몽규는 민족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결단을 하게 된다. 그는 4학년에 진급하지 않고 은진중학교를 중퇴하고 남경에 있는 중앙군관학교 낙양분교의 한인 반에 입학하였다. 이 한인반은 중국 국민당정부 장개석 주석의 지원하에 한국임시정부의 요인으로 활약하던 김구 선생님이 반일민족독립 전쟁의 군사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운영되었던 학교로 송몽규는 군사기능을 열심히 훈련하여 학생들을 인도, 조직하고 문화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1938년 대성중학교를 졸업한 송몽규는 광명중학교를 졸업한 윤동주와 함께 서울에 있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그 곳에서 그들은 민족정신을 키우고 민족문화를 익혀나가는 열매를 얻게 되었다. 1942년 윤동주와 송몽규는 26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송몽규는 교또재국대학 서양사학과에 윤동주는 도쿄입교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그는 일제당국의 조선민족과 문화말살정책을 비난하여 1943년 7월에 <도쿄조선인학생 민족주의집단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당했다. 그 해 일제에 의해 징병제가 공포되고 일괄적으로 징용령장이 발부되었다.   1943년 7월 첫 학기를 마친 윤동주는 도쿄대학에서 재학 중이던 송몽규와 함께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7월 14일) 도쿄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윤동주의 죄명은 <독립운동>으로 2년 언도를 받고 규슈후까 형무소에 수감되었고 그곳에 같은 죄목으로 송몽규도 2년 언도를 받았다. 윤동주는 고향집에서 보내준 <신약성경>을 옥중에서 읽었다. 방부제 주사를 매일 맞았던 그들은 일제의 생체실험 대상(시체 해부를 위한 주사)으로 시달리다가 꿈에도 그리던 민족의 광복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1945년 2월 16일에는 윤동주 사망하였고, 3월 10일에는 송몽규가 옥사하였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민족에 대한 충정과 민족문화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지니고 분투하였으나 청년문사 송몽규와 저항시인 윤동주는 일제당국의 무단적인 폭압에 비참하게 희생되었다. 한 줌의 재가 된 윤동주와 송몽규는 고향의 품인 간도 용정시 묘소 서쪽에 묻혔다.   지금까지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을 조명해 보았다. 생애 자체가 처절한 일제 강점기의 중심에서 그들의 나라사랑과 가슴 아픈 최후를 기억한다. 윤동주와 송몽규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짧은 생애를 살았던 고귀한 발자취를 반추하며 추모한다.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날 그들을 잊지 말고 각자의 생활 속에서 국가를 사랑하자. 아울러 두 분의 삶을 교훈 삼아 작금에 처해 있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어두운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며 살아가자.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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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23
  • 코로나 이전부터 문제였다
        코로나19와 연관된 논의가 사회는 물론이고 교계에서도 한창이다.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는 우리나라에서 코로나가 시작된 올해 2월에 설문조사를 시작한 이래 내년 전반기까지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되는 ‘코로나19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교회의 사역은 거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대략 내년 말쯤이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상황이 종료될 것으로 본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깔끔하게 사라지는 방식으로 끝나든 독감 바이러스처럼 인류와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끝나든, 코로나 이후 시대에 관한 예측과 대책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한국 교회가 받는 타격을 추스르면서 내부적으로는 목회의 동력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방안에 한국 교회의 미래가 걸려 있다. 향후 5년에서 8년 어간이 한국 교회의 골든타임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골든타임, 자연재해를 비롯한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매몰된 사람이 생존한 채로 구조될 수 있는 한계 시간을 말한다.   1885년을 한국 선교의 기점으로 본다면 선교 역사 110년만인 1995년부터 한국 교회의 교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 벌써 25년 그러니까 사반세기가 지났다. 양적으로 성장을 구가해온 시간의 거의 사분의 일 동안 이미 쇠락해온 것이다. 1999년에 저 유명한 ‘옷 로비 사건’이 터졌다. 한국 교회의 하락과 연관해서 상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다. 2020년의 코로나 상황에서 불거진 한국 교회의 문제들은 올해의 문제가 아니다. 사반세기 전부터 현상이 시작된 것인데 코로나 상황에서 누구나 볼 수 있게 표출됐을 뿐이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볼썽사납게 나타나고 있다. 목회자들의 신학적이며 인격적인 소양 저하, 지도자들의 윤리적 해이, 신학교육 기관의 동력 상실, 연합기관의 분열과 대표성 약화, 교단 및 교계 정치의 비윤리성, 기복주의에 토대를 둔 번영신학과 물량주의적 성장 신학, 교회 직분 제도의 경직성, 그리스도인 개인의 자기정체성 약화와 사회적 영향력의 상실 ……. 한국 교회에서 문제가 없는 영역이 어디인가 찾기 힘들 정도다.   한국 선교 초기에 교회는 민족의 희망이었다. 교육, 의료, 한글 교육, 생활 개선, 민족의 정체성, 국제적 연결 등 사회 전반에서 교회는 나라와 민족의 미래였다. 우리 사회가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과 한국전쟁의 격동기를 지나고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걸어오는 동안 교회의 부침이 많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교회는 내부적으로만 아니라 사회 상황과 연관해서도 동력이 충만했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친일과 신사참배를 놓고 교회의 분열과 부끄러운 자기정당화가 있었고 한국전쟁과 이후의 상황에서 좌우 대립의 극심한 반목이 교회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굴곡 속에서도 복음 전도의 열정과 어려운 이들에 대한 구제가 한국 교회에 넉넉했다.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교회가 우리 사회를 이끌었던 시절이 과연 있었나 싶을 정도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나. 쇠락의 변곡점이 어디였나. 한국 교회가 신앙의 동력을 잃어온 시간이 이제는 꽤나 길어서 한두 가지 처방으로는 회복되기 힘들다. 기초 체력이 워낙 허약해져 있어서 근본적인 원인 진단과 중장기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하도 많이 들어서 진부할지 모르지만 오래된 가르침을 듣는 것이 확실하다. ‘항상 개혁되는 교회(ecclesia semper reformanda)’라는 명제 말이다. 교회는 자신이 목적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순례하는 나그네 공동체다. 자신의 제도와 구조를 유지하고 확장시키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교회는 병들고 허약해진다. 자신 스스로가 목적이 되면서 교회는 끝내 타락하고 복음에 대적하는 세속 집단이 된다.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친히 문구까지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얼마나 건강하게 작동하느냐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힘차게 작동하는지 보면 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을 기록한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제일성을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기록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사는 거룩한 이중 국적자다.   그러면 묻자. 하나님의 나라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무릇 ‘나라’라고 할 때는 어떤 법이 구속력을 갖고 작동하는 일정한 영역을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법 곧 성경 말씀이 작동하는 영역이다. 교회 역사에서 신앙이 병들고 타락할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외쳤던 소리가 ‘성경으로 돌아가자’였다. 기독교 신앙의 시원(始原)이 성경이니까 이 외침은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 처음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 광야로 나가야 한다. 광야는 주님 바라보지 않고는 한 시도 살 수 없는 곳이다. 온몸과 마음과 힘을 다해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바라고 우러르는 신앙의 본질을 찾으려 몸부림해야 한다. 성경을 끌어안고 십 년 정도는 외길을 걸어야 한다. 사회적 영향력 회복은 묻지 않아도 좋다. 성서의 말씀대로 살면 사회적 신뢰는 문제도 아니다. 선교적 교회 운운할 필요도 없다. 성경 말씀대로 살면 복음 전도는 자연스럽게 강력해진다. 코로나 한참 이전부터 문제였던 한국 교회의 상황을 풀려면 코로나 한참 이후까지 바라보는 긴 호흡을 갖고 다시금 온몸을 던져야 한다. 말씀 속으로.    /지형은목사 (말씀삶공동체 성락성결교회 담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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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0-11-18
  • 시인 최 선박사의 행복칼럼-33
      지금 시대적인 키워드는 ‘힐링(Healing)’이라 할 수 있다. 가정에 함께 있으나 대화가 통하지 않는 소통과 공감 부재의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이 많이 있다. 직장에서나 다른 여러 조직 사회에서도 이러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것일까? 필자는 고민하는 사람들을 교육, 상담 현장에서 많이 접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 접어들면서 경제적인 것 외에 마음적인 상처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몇 해 전에 국민 강사 김미경 원장을 초청해 소통과 설득 그리고 공감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스타 강사의 명성에 걸맞게 전국에서 찾아온 청·장년들의 관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요즘은 가정과 직장에서 더욱 소통에 대한 갈증이 대세를 이루는 것 같다. 김미경 원장은 강의 시작부터 “한 사람의 꿈은 1만 명 이상을 일으킨다.”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그녀는 충북 증평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 어머니는 양품점을 운영하셨다. 부모님은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자녀를 뒷바라지하시며 꿈을 크게 가질 수 있도록 멘토의 역할을 해 주셨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그녀는 국내와 세계의 여러 국가에 강의를 다니면서 수많은 이들에게 멘토가 되어 꿈과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   사람들과의 소통에는 기쁨이 있어야 된다. 근대적인 시대에는 배우지 못한 이가 많아 지도자나 지식인들이 권위적으로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대중들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시대는 배움과 지식에 관해서는 평균 선을 이룰 정도로 많이 배웠고 강의와 대화에서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싫어한다. 글에서도 일방적인 것들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에는 부모와의 소통이 그리 원만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외아들이라 대화할 상대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 외로움은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이었다. 아버지는 엄하신 편이라 쉽게 다가가 이야기를 걸 수도 없었다. 나의 잘못된 일로 인해 집안 분위기가 이상해지면 그날은 숨죽이며 긴장 속에 가슴을 졸여야 했다. 아버지는 어떠한 계기가 되어 한번 화가 나시면 싸리 빗자루와 몽둥이로 매질을 수시로 하셨기에 매우 무서우신 분으로 기억된다. 물론 아버지보다도 내가 잘못한 것이 더 많았다. 일손이 부족한 농촌이었기에 방과 후에는 소여물을 주어야 했었고, 논과 밭에 나가 일을 거들어야 만 했다.   그와 같은 환경이 싫어서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반항했던 것이 많아 꾸중과 함께 매를 맞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한 잦은 체벌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 시대는 대부분 다 그랬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웃에 살고 있던 나의 친구 집은 조금 달랐다. 왜 우리 집은 큰 소리가 나고 아버지는 자녀에게 매를 드는 것일까? 물론 부모가 가정마다 다르기 때문도 있지만 소통과 공감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지난 시절 부모와 소통의 부재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사실을 지금이나마 글로 표현할 수 있어 감사한다. 이 땅에 누구에게나 소망이 있다. 그것이 커지면 꿈으로 발전한다. 이제부터는 누구에게 들은 말이 아닌, 어느 책에서 읽은 말도 아니라, 내가 인생의 경험에서 깨달은 말로 강의나 상담에서 공감을 얻고 수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김미경’ 아트스피치 강사를 만나고 나에게 소망이 생겼다. 나의 재능을 통하여 인생의 참된 길을 찾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과 기쁨을 찾아 비전을 품게 하여 행복한 삶을 살게 인도하는 것이다. 꿈이 있어야 미래가 있는 가정과 사회를 만들 수 있기에 나부터 꿈을 갖기로 했다. 자녀에게도 소통과 설득 그리고 공감 있는 화법을 실천해야겠다. 가끔씩 아내와 소통이 어려웠던 순간에도 이 사실을 기억하고 내가 먼저 다가가는 노력을 하도록 하겠다.   내가 소속한 공동체에도 소통의 부재로 고통을 겪지 않도록 예방해야겠다. 일방적이지 않는 설득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서 상호 기쁨이 가득한 조직을 이끌어 가기를 기대한다. 개인과 대중의 언어가 필요할 때는 더욱 공감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먼저 깨달음의 언어로 전달할 때, 말을 던지는 것이 아닌, 반드시 상대가 들은 말이 되어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이 가득한 화법을 구사하도록 해야겠다.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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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11-17
  • 시인 최 선박사의 행복칼럼-32
    최 선 박사(Ph.D., Th.D.)smse21@hanmail.net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1900년대 초부터 한반도 이북지역인 함경도에는 캐나다 선교사들이 많이 입국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목회자와 선교사들이 없는 많은 지방의 시골교회에서는 ‘영수’라는 이들이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그들은 민족 복음화의 꿈을 안고 전도 하며 성경을 보급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지나 민족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 북한에 약 3,000여 교회에 있던 많은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남한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당시 남한 교회는 이북 출신 성도들을 중심으로 한경직 목사가 담임하던 베다니교회(현 영락교회), 당시 김치선 목사가 담임하였던 남대문교회에 모여 민족 통일과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무너진 북한의 교회가 회복되기를 소원하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75년의 세월이 흘러 어느덧 해방둥이들은 노년의 시간을 보내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일본 식민지와 해방 그리고 6.25 동란의 모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우뚝 세우는 공헌을 하였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한반도에는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여전히 남북의 분단은 지속되고 있으나, 한미동맹은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한의 정세가 불안하고, 핵 개발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20년 전부터는 급기야 고난의 행군으로 많은 동포들이 아사하거나 꽃제비로 전락하였다. 그들이 정치적 핍박을 피해, 자유를 찾아서, 그리고 아사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북이 증가하고 있어 새터민들이 2019년 12월 기준으로 33,523명에 이르고 있다. 3만 명의 인구는 우리나라의 영덕군, 봉화군, 장흥군, 고흥군, 영월군, 청양군 등의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최근 들어 대북 지원 단체에 따르면, UN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재배한 각종 농산물을 비롯하여 특히 송이버섯 등이 국내에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그들을 돕기 위해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탈북자들을 고용하는 이들도 상당수 있다. 중국을 거쳐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의 경로를 이용하여 탈북자를 대한민국으로 데려오기 위해서는 일인당 3백만 원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현지에서 한국에 들어가면 돈을 주기로 하고 외상으로 브로커들에게 빚을 지고 입국하게 된다. 그들은 정착금을 받아 빚을 지불하고 나면 가진 돈이 없어 불법적인 곳으로 들어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새터민을 돕기 위한 쉼터들이 있지만 그 시설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면 ‘하나원’에서 정착 교육을 받고 지자체 등에서 운영하는 이주민 센터에서 생활하게 된다. 북한 이탈주민 중 80%는 여성이고, 80%는 20-30대이며, 80%는 북·중 경계 지역인 함경도, 양강도, 자강도 출신들이 많았다. 위와 같이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으로 입국하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실질적인 대책들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향후 10년 이내에 한국 사회에서 심각한 변화는 무엇을 볼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73.4%가 북한이 변화하는데, 10년-30년 사이에 있을 것이란 예측을 한 바 있다. 그러므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현 시점에서 탈북자를 돕기 위해 지역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을 돕기 위해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준비하고 지혜를 모아야 할까?  첫째, 북한이 변화되고 평화 통일이 속히 오도록 성도들은 합심 기도해야 할 것이다. 탈북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것은 통일 실험을 할 수 있는 현장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둘째, 그들은 ‘먼저 온 미래’라는 생각을 가지고 대북 지원 단체들과 지자체, 지역 사회와 더불어 교회에서는 아낌없이 지원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에서 그들을 위해 정착 문제에 적극적인 액션을 취해야 된다는 것이다.   셋째, 평화적인 남북통일을 위해 정부에서는 여론화되고 있는 대로 평화통일기금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물론 교회에서도 관심을 갖고 준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2020년 4월 기준으로 전국의 탈북민교회는 경기 9개, 인천 4개, 서울 32개, 충남 1개, 대전 1개, 경북 1개, 대구 1개, 울산 2개, 부산 1개, 경남 1개, 광주 2개, 제주 1개 있다. 이탈주민 중 100여 명의 신학생들이 신학교에서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들은 통일이 되면 북한으로 가서 북한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그들을 위해 기도와 물질의 후원 그리고 북한 이탈주민 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함께 하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품고 내일의 복음통일로 발걸음을 내딛는 성숙한 시민으로 거듭나자.
    • 오피니언
    • 칼럼
    2020-11-09

교회/목회 검색결과

  • ‘섬김목회’로 인정받는 송전교회 권준호목사
      지역 취약계층에 희망을 주고 사랑 전하는 ‘행복섬김캠페인’ 시작 방역지원, 김치나눔, 택배기사 섬김 등의 사역에 지역주민 큰 호응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송전교회(담임=권준호목사·사진)는 창립감사주일을 맞아 ‘행복섬김 캠페인을 시작했다. 권목사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며, “10월부터 12월까지 독거노인, 노인대학어르신들, 복지시설, 관공서, 지역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진행할 것이다”고 소개했다.   먼저 삶의 고독과 어려움에 처한 독거노인들을 섬긴다. 지역 독거노인들에게 김치를 만들어 섬기면서 가능하면 많은 독거노인들에게 김치가 전달되도록 할 방침이다. 무엇보다 교회가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정중하고 예의 바른 모습을 보여준다. 노인대학 어르신과 노인정을 섬기는 사역을 전개한다.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간식과 음료를 준비해서 각 학과 교수들과 도우미들이 노인대학 어르신들을 찾아뵌다. 특히 어르신들 중에 생활이 어려운 분들에게도 김치 봉사를 했다. 권목사는 “배달하신 성도님들이 ‘할머니들이 너무 감사했다. 그렇지 않아도 몸도 아프고 해서 음식도 못하고 있었는데, 너무 고마워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다고 전하며 행복해했다”며,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이 들었다. 노인대학 어르신들의 생활실태 파악을 하여 앞으로 더 잘 섬기는 방법을 기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로 인해 힘들어 하는 지역 아이들을 위한 ‘행복선물 섬기기’ 사역도 전개한다. 발목줄넘기, 컵라면, 간식들, 참치, 잡곡쌀, 양파, 고구마, 장난감, 마스트 등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물품을 상자에 담아 교인들이 직접 배달할 계획이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는데, 창립기념주일 헌금으로 충당했다는 후문이다.   추수감사절과 오는 성탄절을 맞아 나눔운동을 전개한다. 셀과 교육부가 과일을 갖고 추수감사 데코레이션을 한 후 과일을 나눌 방침이다. 생필품, 라면, 과자, 통조림 등으로 사랑의 상자를 만들어 관공서, 독거노인, 복지시설에 전달할 계획이다. 또한 성도들을 대상으로 감사영상을 제작하게 할 방침이다. 지역 학생 장학금 나누기 사역도 펼친다. 권준호목사는 “교회 성도나 동네 이장 등의 추천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초등, 중학생들에게 정성을 담은 장학금을 지급할 방침이다”며, “이를 통해 교회가 지역을 섬기는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결국 모든 영광은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말했다.   송전교회는 지역 방역작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읍사무소의 지원을 받아 남성 셀을 중심으로 교회 주변의 지역을 방역하고 있다. 어려움에 처한 교회를 지원하는 일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권목사는 “올 여름 비가 참 많이 왔다. 우리교회도 비가 많이 샜는데, 충청도 어느 교회가 비피해가 심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교회를 기쁜 마음으로 도왔다”고 소개했다. 또 “지역 개척교회 세 곳을 선정하여 지난주에 월세를 나누어 드렸다. 목사님들은 너무 감사하며 목회의 큰 힘을 얻었다고 말씀해주셔 나도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지역 외식업체 상품권 구매하기 사역을 펼치고 있다. 권목사는 “지역 외식업체(송전교회 성도업체도 포함)를 선정하여 상품권을 구매하여 지역 경제를 돕고자 한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송전교회는 택배기사를 후원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권목사는 “요즘 택배 기사, 배달 기사님들의 수고가 많다. 과로사 이야기도 나온다”며, “그래서 전 성도들이 이분들에게 감사의 글과 간식 등을 전해주는 행사를 진행하게 됐다. 이 모든 행사를 통해 교회가 좋은 이미지를 얻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길 소망하고, 이 사역이 많은 교회들에게 전파되기를 기도한다”고 전했다.  
    • 교회/목회
    • 목회
    2020-11-05

신학/선교 검색결과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35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알파와 오메가”의 계시   성경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 대해 마지막으로 언급한 곳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에 있다(21:1).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 하나님”이시며, “알파와 오메가”(ΑΩ)이시며,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밝히고 있다. ΑΩ는 “전에 죽었었”으나,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1:18). “음부의 열쇠”는 그리스 신화의 신 하데스(Hades, ᾍδης)가 가진 것이다. 그러나 ΑΩ는 그 열쇠를 그의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그가 우주만물의 주인이심을 선포하셨다. 요한은 ΑΩ가 계시를 주시면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1:19)는 명령에 따라 계시록을 썼다.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ΑΩ가 요한에게 계시하신 내용을 구조적으로 파악하면서 읽어야 한다. ΑΩ는 1:20에서 “네가 본 것”을 부연해서 설명하신다. ΑΩ에 의하면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이고,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일곱 별의 비밀”이라는 말이다. 일곱 교회의 사자는 이제 요한이 일곱 교회에 보내는 ΑΩ의 편지를 전달받는 천사들(αγγελοι)이다.   “지금 있는 일”은 2:1에서 요한이 ΑΩ의 말씀을 듣고 에베소교회의 천사에게 편지를 쓰는 일부터 시작한다. “일곱 별의 비밀”은 일곱 교회의 일곱 천사들이 받은 편지 속에 들어있다. 그러므로 편지의 내용을 보면, 각 교회의 “지금 있는 일”만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될 일”도 서술하고 있다. “일곱 별의 비밀”을 알려면, 각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과 일치하는 상황이 언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아야 한다. 따라서 요한이 편지를 쓰는 일은 “지금 있는 일”이지만, 그 내용은 “장차 될 일”에까지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ΑΩ가 보내는 편지는 그 당시 일곱 교회에게 “지금 있는 일”을 넘어 세계 각 교회에게 “장차 될 일”을 알려주고 대비하라는 메시지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2-3장에 걸쳐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쓰기가 끝나자, 요한은 하늘로 들려 올라간다. 하늘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드려지는 예배와 하늘의 광경을 4-5장에 걸쳐 서술한다. “지금 있는 일”을 대개 여기까지로 한정된다. 그러나 6장부터 요한이 보는 ‘일곱 인 떼기’와 ‘일곱 나팔 불기’, 그리고 ‘일곱 대접 쏟기’ 등의 사건들도 요한에게 “지금 있는 일”이다. 요한에게 “장차 될 일”은 요한이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환상 속에 있다. 요한에게 “장차 될 일”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야 끝난다.   요한계시록을 서술하는 형식은 구약성경의 묵시문학적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장차 될 일”에 등장하는 괴물들과 환상들, 그것들의 상징적 의미, 그리고 그 사건들의 날과 때의 시간적 순서에 대한 이해는 서로 다르다. 특히 요한이 환상에서 보고 들은 “장차 될 일”과 실제로 인간들의 세상에서 진행되는 역사적 사건을 시간적으로 대비(對比)하고 특정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스도는 이미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마25:13)한다고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적 틀에 갇혀 사는 인간이 “장차 될 일”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했다거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거짓말이다. 누구든지 “두루마리의 예언”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읽는 자는, 그것에 “더하”거나 “제하”는 오만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자칫 실수로 재앙을 초래하거나,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에서 제하여 버림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22:18-19).   요한계시록을 읽는 기독교인들은 주의 날에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는 곳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자기 행위를 따라”서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ΑΩ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20:11-12)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자기 행위”의 데이터(data)를 입력한 “생명책”에서 자기의 ‘머리털 하나’라도 감출 수 있을까?
    • 신학/선교
    • 신학
    2020-11-24
  • 김영한박사의 신학논단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XIII. 성결을 그리스도인 삶의 주제로 부각: 성령의 인격적 사역과 그리스도인의 성화 강조   1.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패커는 성령의 사역과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저작들을 남겼다. 20세기에 흥왕한 오순절 운동(Pentecostal movement)과 은사주의 운동(Charismatic movement)이 성령 본연의 사역을 은사의 나타남으로 왜곡하고 있었다. 이 때, 패커는 성령 사역의 본질이 바로 그리스도인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것이고,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성화 과정에서 성령과 협력하는 거룩한 책임을 다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패커는 1967년의 저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에서 성령님의 내주하심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야말로 복음이 제시하는 가장 크고 으뜸 되는 선물이시다.”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이미 부족한 것이 없으신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성령 세례'를 그리스도께서 소유로 삼아 인치신 사람들이 거듭나 구원을 받는 순간에 받는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동일시한다."(James Innell Packer & Alan Marshall Stibbs,The Spirit Within You: The Church's Neglected Possession, Hodder and Stoughton, 1967; 정다올 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생명의말씀사, 2010.27). 이러한 저자의 견해는 로이드 존스의 후기 성령론과 다른 입장에 서 있으며 전형적인 개혁주의적 성령론의 입장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패커는 성령의 사역을 성경 완성과 연결시키고 성경완성 후에는 특별 사역이 필요없게되었다고 본다: "사도들의 특별한 사역이 끝나고 신약 성경이 완성되었을 때, 그런 현상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James Innell Packer & Alan Marshall Stibbs,『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60.)패커는 "그런 현상들은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했다는 사실을 초자연적으로 입증하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예언의 은사는 신약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패커는 다른 은사들 역시 신약성경의 완성 이후에는 필요치 않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패커의 은사 중지론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커는 전도나 성화를 위해 성령 안에서 신자의 능동적 사역을 강조하고 있다: "신자들이 흔히 범하는 또 다른 잘못은,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행동을 취하실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들은 인간이 먼저 행동을 개시할 경우에는 자칫 자아를 의지하려는 육신의 욕구에 치우치기 쉽다고 믿는다. 하지만 신약 서신은 우리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새로운 행동을 취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거듭 강조한다. 하나님은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고 성령님을 따라 행하라고 명령하신다. 우리가 행동해야만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이 우리의 경험 속에서 온전히 실현된다."(정다올 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31)   패커는 성령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참 자유를 강조한다: "성령 안에서 누리는 참 자유는 육신의 정욕을 극복하고 거룩한 삶을 향해 매진하는 자유를 뜻한다. 이 자유는 우리의 협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자동차를 모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자 책임이다. 자동차를 우리를 향해 모든 것은 우리의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선택을 통해 이루어진다. 전에는 우리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덕분에 가능해졌다."(정다올 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94)   패커는 성령 안에서 죄를 극복하기 위하여 내주하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죄를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하는 신자들 가운데 이 문제와 관련해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수동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자신의 본성이 연약한 탓에 넘어지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려는 의지를 무가치한 육신에서 나오는 힘으로 여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어 마음을 움직여 주시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올바른 길을 향해 나아가려면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존재와 능력을 온전히 의식하고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해야 한다."(정다올 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95.)   패커는 오늘날 개혁교회가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소홀히 여기는 경향을 지적하고 있다. 성령은 이미 완전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는 또 다른 성령님을 구한다. 성령 체험을 일부 교회들이 추구하는 단순한 광적인 현상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이런저런 형태로 빠르게 확산되어 가고 있는 오순절 은사 운동은 부분적으로는 제도화된 20세기 교회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했다. 패커는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한 성령 사역의 역동적 개념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패커는 성령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오늘날의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짓는 한편, 오순절 은사 운동이 야기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명확히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패커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자신 특유의 균형 잡힌 시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잘못 오해되고 있는 성령 사역의 문제점을 파헤치며, 그에 대한 성경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패커는 성령의 임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시된 복음의 핵심이자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공통으로 주어지는 기업(基業)임을 힘주어 강조한다.   2. 성령의 인도함을 받음   패커의 초기 논문은 케직 사경회가 지향하는 성령세례와 소위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주제에 대해 성경적인 입장을 잘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는 후에 『성령을 아는 지식』에서 더 폭 넓게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 『성령을 아는 지식』(Keeping In With the Spirit)은 은사주의 운동에 대한 패커의 독특한 견해와 함께 케직(Keswick) 사경회의 성화론에 대한 논쟁을 심도 깊게 다루고 있는데 그 이유는 패커 자신의 회심 이후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 케직 사경회의 성화론은 지속적으로 죄에 대하여 승리하는 상태로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헌신할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케직의 가르침은 패커에게 깊은 고뇌와 좌절을 경험하게 하였다. 패커는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John Owen)의 『죄 죽이기』(The Mortification of Sin)라는 책을 읽으면서 케직의 수동적 성화론에서 벗어난다.   패커는 케직의 가르침이 수동성을 명하는 정적주의(靜寂主義)로서 성결을 성취하는 문제를 정신적이고 영적인 테크닉의 문제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패커가 1955년 성화에 관한 케직의 견해를 신랄하게 공격하였던 논조와 30여년의 세월이 지나 쓴 『성령을 아는 지식』에서의 케직에 대한 논조는 현저하게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있곤 한다. 패커는 『성령을 아는 지식』에서 케직의 가르침에 대하여 좀더 협조적이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즉 그 운동이 가졌던 의도들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여러 가지 점에서 그 가르침을 교정하는 방식으로 평가를 제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패커는 성령을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알고자 한다. 철저히 성경말씀을 근거로 시종일관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하여 성경에 가르침에 따라 믿음으로 칭의받은 우리는 성령 안에서 계속되는 성화를 추구하지만, 이 세상에서 완전에 이를 수 없음을 성경이 증거하며 역사가 증거한다는 것을 잘 제시한다. 그리하여 패커는 소위 완전주의(perfectionism)에 대한 성경적 비판을 잘 제시하여 가장 온전한 성경적 성령론을 잘 드러내고 있다.   패커는 2000년 인터뷰에서 1960년대 영국의 오순절 운동을 복음주의의 한 특징으로 보았다고 피력하고 있다: “은사주의 운동이 1963년 영국의 복음주의 계열을 휩쓸고 있었다. 은사운동 스타일의 찬양대, 기타로 반주하는 복음송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사역자라고 강조하는 것이 은사운동의 특징이었다. 어딜가나 이런 것들이 당시 영국 복음주의 계의 특징이었다. 영국 전역에서 복음주의자들이 방언을 말하거나 신유를 행하려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것들이 당시 영국 복음주의계의 특징이었고 나는 그것이 옳다고 본다.”(제임스 패커 인터뷰 1, 「소금과 빛」, 2000년 7월호 특집. 두란노서원, https://cafe.naver.com/ilumok/16)   패커는 영국 IVP로부터 은사운동(charismatic movement)에 관해 삶과 성령으로 주제로 책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는 은사운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싶어 집필을 하고자 하였다. 패커는 특히 존 스타트 나 딕 루카스처럼 은사운동을 아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피력하고 있다: “영국의 복음주의자들 중의 일부인 존 스타트와 딕 루카스는 오순절 운동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나는 저들처럼 매우 부정적이지 않았다. 나는 오순절 운동이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오순절 운동에는 잘못된 점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즉 표적과 기적이 도를 넘어서서 비성경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곧 방언, 방언 해석, 신유와 예언 등에 대해 그렇다. 그래서 오순절 운동의 본질을 지지하면서도 후자에 대한 것은 지지하지 않음으로써 오순절 은사운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제시하기 위하여 『성령을 아는 지식』(Keeping in Step with the Spirit)을 썼다.”(제임스 패커 인터뷰 1, 「소금과 빛」, 2000년 7월호 특집. 두란노서원, https://cafe.naver.com/ilumok/16)다른 개혁신학자들과는 다르게 패커는 하나님이 오순절 내지 은사운동을 현대적 상황 속에서 사용하시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것의 결점과 약점 그리고 방향을 지적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패커는 성령님 안에서의 삶(Life in the Spirit)을 강조하며 결국 성경을 중심으로 사는 삶을 보이면서, 특히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나가는 삶의 실제를 잘 제시하고 가르쳐 준다. 패커는 복음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영성을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작업을 수행했다. 패커는 참되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철저히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 즉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자주 강조했다. 패커가 은사운동의 지나친 표적 추구를 비판한 것은 올바른 태도이며, 그렇다고 그가 성령의 은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성령과의 교통 가운데서 성결의 삶을 강조한 것은 성령 사역에 대한 그의 균형잡힌 태도를 보여준다. (계속)
    • 신학/선교
    • 신학
    2020-11-17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34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받을 큰 약속: 영생   현대사회는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세상의 종말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징조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말세는 성경에서 거룩한 선지자들에 의하여 줄기차게 경고해왔던 문제이다. 말세의 근본 원인을 살펴보면 백성을 인도하는 교회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곧 땅과 생물을 다스리 일(창1:28)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동안 세상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자들이 그 일을 함으로써 창조질서가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들에 의하여 하나님이 처음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목적은 묻혀버리고, 인간 세상에서 하나님은 추방되었다. 베드로는 이에 대하여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말하기를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벧후3:3)했다고 말했다.   베드로는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벧후3:10)라고 경고하면서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니. 그것을 바라보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태초에 하나님의 처음 창조를 부정하는 자들이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라는 베드로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세상에 종말을 오게 한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자들의 안일과 무책임이 가장 큰 이유라고 자책할 수밖에 없다.   베드로는 주 하나님의 날이 임할 때까지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고 말했다(벧후3:13-15). 베드로가 말한 “속에 있는 소망”은 곧 “영혼의 구원”을 의미한다. 그것은 영생의 소망이다. 현대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이 “알파요 오메가”이신 주 하나님의 처음 창조와 새 창조를 똑바로 알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창조를 똑바로 알려줄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구약시대의 이사야가 처음 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시 말하고 있으나, 베드로는 구약시대를 개혁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사야와 다른 관점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한다. 베드로는 인간이 누구나 그러하듯이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을 소망하는 자라면, 예수를 보지 못했어도 그를 믿고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벧전1:9). 베드로에 의하면 모든 일이 드러나는 주의 날에 영혼의 구원을 받을 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 앞에 섰을 때, 점도 없고 흠도 없어야 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고, 그의 말씀을 따라 전도에 나섰다가 로마에서 잡혀 순교했다. 그런 만큼 베드로의 말은 진실하다. 베드로는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자에게 주의할 일 두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으니”(벧후3:8), 참음으로 주의 날을 기다리라. 둘째,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하는 것처럼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지 말라(벧후3:16).   성경에서 가장 “알기 어려운” 것은 주의 날과 때이다. 이에 대해서는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마24:36, 막13:32)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야 한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큰 약속”을 받아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고 했다. 그런 소망을 가진 자는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해야 한다(벧후1:4-7). 베드로에 의하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1:8)에 넉넉히 필요한 것은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3:18)는 것이다.  
    • 신학/선교
    • 신학
    2020-11-13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33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가 영생할 수 있을까?   하늘과 땅과 인간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의 첫 장만 읽어도 알게 되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65:17)고 선포하셨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는 말은 옛 하늘과 옛 땅을 버린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에 대해 구약에서는 이사야서가 기록하고 있고, 신약에서는 베드로후서와 요한계시록이 기록했다.    그동안 유대교인들은 이사야서를 읽고,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기독교를 창설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새로 창조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할 수 있다고 계시하셨다. 이사야서만 읽은 유대교인도, 세 권을 다 읽을 수 있는 기독교인도, 모두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날에 자신은 그곳에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유대교는 기독교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다. 어쨌든 영생은 무신론적 과학의 한계를 초월하여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알파와 오메가”이신 주 하나님의 창조 권능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사야서를 쓴 이사야는 구약시대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유다왕국 10대 웃시야 왕부터 13대 히스기야 왕조까지 활동했다. 이사야에 의하면 하늘과 땅과 인간을 창조하셨던 하나님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1:2)고 한탄하셨다. 하나님은 처음 인간을 창조하신 때에 오복과 함께,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창조목적을 알려주셨다(창1:28). 하나님의 한탄은 그가 처음 창조하신 인간과 그 자손들을 자식으로 양육하셨으나, 그들이 창조주를 거역하는 데 대한 분노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그를 거역했던 처음 인간을 심판하여 땅을 저주하신 적도 있었고, 죄악에 빠졌던 그 자손들을 심판하여 노 홍수로 멸절하신 기록도 있다. 그 뒤에 인간은 다시 번성했지만, 하나님의 첫 말씀인 창조목적은 잊어버리고 패역의 길을 걸었다. 이사야의 예언에 의하면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을 미혹하니 인도를 받는 자들이 멸망을 당”한다(9:16).   하나님은 죄악에 빠진 자식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을 내서 “만민의 기치”로 세우실 것이나(11:10), 땅의 주민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24:5)으므로 공허하고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이사야에 의하면 하나님은 환난을 겪으면서도 죽기까지 견디는 그의 백성들에게 메시아가 종의 모습으로 정의를 베풀 것이라고 밝히셨다(42:1).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땅에 하나님의 종의 모습으로 오신 메시아가 예수이시다. 그러나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53:5)다. 하나님을 거역한 자식들과 그 자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자들을 죽였다. 하나님은 예수와 함께 환난을 당한 자들을 그의 백성으로 택하신다. 이사야가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은 여기까지 대부분 성취된 것으로 보인다. 이사야에 의하면 하나님은 앞으로도 패역한 자들의 “행위를 헤아리고 그들의 품에 보응하”실 것이다(65:7).   하나님은 그가 택한 백성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고 선포하셨다(66:22). 예수 그리스도는 요한에게 동일한 계시를 주시면서 모든 인간들은 마지막 날에 “생명책”에 기록된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계20:12). 그렇다면 기독교인의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회개”에서부터 믿음-사랑-소망의 “자기 행위”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교회는 신자들을 인도하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자기 행위를 초등학교의 수행평가쯤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에 따라서 교회는 어느덧 이사야가 지적한 것처럼 ‘패역한 자식’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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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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