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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유옥합] 그 사랑 신비의 거룩
       성경은 최고의 사랑에 증거이다. 무엇이 사랑인지 지혜로 알게 하신다. 육신에 속한 자들은 성경을 도덕과 윤리로 적용한다. 주의 말씀을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친다면 주를 헛되이 경배하게 함임을 성경은 경고한다. 이는 주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요 가르쳐 지키게 하여 죄사함의 몫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몫을 하게 하는 주의 제자화를 위함이다. 이를 위해 주님의 멍에를 메고 나와 배우라고 하셨다. 온유와 겸손한 자는 주종의 관계를 성립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복음을 전하여 사랑의 실천을 하는 종으로 두 계명 지킴의 살리는 몫을 하게 된다. 아버지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거룩과 주의 제자화로 믿음과 성화임을 깨닫게 한다. 성령과 동행하여 구속 사역에 참예한다면 영적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주의 나라 확장을 가져온다. 이는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기 때문이다. 롬8장5~8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증거 하셨다.    즉 거듭나지 못하여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들의 사랑 적용은 도덕과 윤리로 육체를 중심한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사랑의 뜻을 알 수 있으며 행할 수 있음을 발견케 한다. 곧 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계명의 실천은 복음으로 거듭나게 하는 구속 사역의 몫이며 생명으로 살리는 사랑이다. 도덕과 윤리의 사랑을 한다면 거듭나게 하지 못하기에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심을 깨닫게 된다. “네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하셨다. 로마서에는 많은 부분 이를 분별하도록 증거한다.    곧 성경 해석 적용은 육을 중심으로 한 도덕과 윤리가 아니다. 영혼 구원에 이르는 지혜로 영생을 상고하는 목적이다. 오직 주를 믿고 좇아 성령으로 거듭나면, 사랑의 개념을 영이요 생명의 말씀으로 알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 살리는 진리를 가르쳐 주 안에 속하도록 지키게 할 것이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하신 확증이다.   그러므로 복음으로 계명을 실천한 사랑의 결과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나게 하여 주의 나라 확장을 이룬다. 사랑의 기준은 도덕과  윤리로 자신들이 심판자가 되어 육체대로 판단 적용이아니다. 원죄를 입고 태어난 자들의 그릇된 선과 악에 대한 육의 기준이다. 복 음으로 사람 살리는 일의 시작이 되도록 주께서 본을 보이신대로 그 자취를 좇아야 한다.   주의 마음을 품은 자들의 사랑은 주의 영이 없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푼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그 행함으로 믿음이 온 전하게 되었느니라’ 하신 말씀에 입각한 사랑을 실천해 살리는 몫을 함이다. 곧 사랑은 주를 믿고 좇아 아버지의 뜻대로 사람을 살 리어 주의 제자화임을 강조하는 바이다. 신비의 거룩을 바로 알게 되는 지혜의 사랑이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 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아멘/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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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02-27
  • [향유옥합] 마음화장
    마음화장   김영임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는 화장하기를 멈추었다. 아이가 엄마를 맘껏 만지게 해 주고 싶었고, 아이와 맘껏 얼굴을 비비고 싶어서였다.  첫째 아이 하늘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며칠 전, 나는 화장품 세트를 새로 구입했다. 첫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이라 드디어 나도 학부모가 된다는 기대와 설렘이 마음에 가득했다.  주변에 초등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킨 선배 엄마들 얘기를 들으니 같은 반 학부모들끼리 한 달에 한 번씩 '반 모임'을 한다고 했다.  결혼과 출산이 30대 초에 시작된 터라 마흔 살 가까운 나이에 처음 학부모가 되는 나로서는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분위기는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하늘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화장을 하고 최대한 단정하게 옷을 입었다.  거울을 보고 또 보며 학교를 향해 출발하려는데 여덟 살 아들 하늘이가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엄마! 얼굴이 왜 그래?" 임신, 출산, 육아를 계속하며 화장을 한 적이 몇 번이 안되다 보니 하늘이는 화장한 엄마 얼굴이 너무 낯설었나보다.   사실 화장한 얼굴이 어색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나 딴엔 처음 학부모가 된다는 설렘과 기대로 나름 심혈을 기울여 찍어 바르고  꾸민다고 꾸몄건만... 이 충격적인 말을 듣고도 나는 간단히 화장을 지우려 했지만  시간이 없어 바로 입학식에 참석했다.  입학식 내내 다시는 화장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후에 준비한 화장품세트는 언니에게 무료나눔을 했다.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화장을 지우며, 이제는 '얼굴화장' 대신 ‘마음화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흔히들 사회생활에서 여자가 화장을 하는 건 ‘기본예의’라고 말한다. 얼굴을 예쁘게 꾸미고 예쁜 옷을 입고 말도 행동도 품위 있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마음 안에 미운 생각과  미운 말로 가득 차 다른 사람의 얼굴을 찌푸리게 한다면 참 안타까운 일 아닌가. 그날 이후로 나는 접착식 거울을 사서 내가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씽크대 앞에 붙여두었다.  식사 준비를 하다가도, 과일을 씻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곤 한다.  환하게 웃는 연습도 해보고, 재밌는 표정도 지어보고, 가장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 뭘까 생각도 해봤다. 무엇보다 씽크대 앞에 붙여둔 거울을 보며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매일 반복되는 분주한 일상 속에  나의 표정이 어느새 굳어져 있지는 않은지, 때때로 나의 불편한 감정 때문에 가족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차 한잔하고 싶다며 별안간 찾아온 손님이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라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이제는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함으로, 겸손함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채워가야겠다. 쉽게 드러나지 않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움이 더해가는,  '마음화장'을 해야겠다.                                                                                                                                                                                                     / 서예가, 춘천벧엘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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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02-19
  • [향유옥합] 슬퍼하는 복
      우리 저마다 기억하는 아름다운 장면이 있을 겁니다. 제게는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의 풍경들이 그런데요. 그 중 한 곳은 강원도 삼척입니다. 매년 봄이면 유채꽃 축제를 보러 우리는 맹방 해변에 갔습니다. 그곳은 노란 유채꽃이 바다만큼, 시리게 푸른 바다가 하늘만큼 펼쳐진 곳이었죠. 제가 사랑하는 기억들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 방문한 삼척의 모습은 제 기억과 아주 달랐습니다. 깎여나간 해안선과 흉물스러운 구조물들, 헤집어진 산이 보였습니다. 지금 삼척에는 국내 마지막 석탄발전소인 삼척블루파워가 가동 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석탄 이송터널 등 부대시설 마련을 위해 맹방해변은 파괴되고 있고, 삼척주민들은 대기오염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달라진 삼척의 모습과, 기후위기 시대에 새롭게 가동을 시작한다는 블루파워 석탄발전소의 소식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저는 대학시절 스쳐지나갔던 시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예수의 산상수훈을 모티브로 한 윤동주의 「팔복」입니다. 마태복음은 복 있는 사람을 열거하며, 그 중 하나로 ‘슬퍼하는 자가 복이 있는데 이는 위로함을 받을 것이기 때문(마태 5:4)’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윤동주는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여덟 번 반복하곤 마지막 문장을 거듭 퇴고하다 결국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로 맺습니다. 학생이던 시절에는 이해되지 않던 이 시가 활동가로 현장을 다니다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슬퍼하는 자는 참 복이 있는데,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영원히 슬퍼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습니다.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땅 어딘가에 슬퍼하는 단 한 존재라도 있는 한 슬플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발생한 방사성 오염수 방류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에 방문했을 때, 오염과 피폭을 염려하는 일본 시민들과 후쿠시마 어민들을 만났습니다. 방사성 오염수뿐 아니라 오염토와 원전 재가동, 핵연료 재처리 시설 등으로 다시금 핵부흥을 꿈꾸는 일본정부는 후쿠시마를 기억하며 원전과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일본의 시민들은 경주 월성원전 지역에서 만난 주민들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피폭으로 갑상선 암에 걸리고, 어린이들의 몸에서 높은 농도의 삼중수소가 검출되어도 ‘문제없다,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정부는 수명만료 된 원전을 더 사용하려 하고, 그것도 모자라 새로 짓겠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죠. 같은 슬픔의 얼굴들은 경주 외에도 울진, 울산, 부산, 영광에도 있습니다. 이 발전소에서부터 출발하는 송전탑 아래 마을주민들의 눈물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우리는 슬퍼할 여유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만 슬퍼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자녀의 축복과 재산, 건강 등의 복을 기도하지만, 예수가 그러하셨던 것처럼, 또 윤동주가 말한 것처럼 여러분께 슬퍼하는 복이 있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슬퍼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행동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다면 바꿀 수 있습니다. 비록 슬퍼할 것이 너무도 많아 영원할지라도, 여러분의 슬픔은 크고 작은 아름다운 것들을 구할 것입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기억하며, 올해 3월 16일 토요일에는 원자력 발전과 석탄발전을 넘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시민들이 모입니다. 또 9월에는 기후위기를 자신의 위기로 느끼는 이들이 모여 행동합니다. 슬픔에 동참하고, 행동으로 바꿔내기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이 현장으로 초대합니다. /한국YWCA 시민운동국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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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02-05
  • [향유옥합]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첫째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자 중에 작은 자’입니다.  신약 시대에 가장 뛰어난 사람을 꼽는다면 사도 바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에베소서 3장 8절을 통해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소개했습니다. 사도 바울만큼 혈통이 뛰어나고 많은 지식과 많은 헌신을 하는 사람은 당대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자신을 지극히 작은 자 중에 작은 자라고 소개했을까요. 그것은 다른 이와 자기 자신을 비교하며 더 낫고 낮은 것을 따질 필요조차 없는, 오직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동안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여기며 많은 헌신을 했지만 그것은 결국 하나님과 상관없는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했던 자기 열심과 자기 신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종교성과 자기 열심과 신념이 무너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하나님 앞에 그 어떤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존재임을 깨달았을 때, 그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지극히 작은 자 중에 작은 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말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입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 없이 아무 쓸모없는 존재임을 인식한 자는 주님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하나님 앞에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고 아주 작은 것들도 세세히 하나님께 묻게 됩니다. 사소한 것조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묻고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무조건 순종하며 따르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가 되어 갑니다. 그렇게 지극히 작은 일도 주님의 뜻을 묻고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그에게 더 큰 것을 맡기십니다.     셋째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시는 더 큰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하나님은 소외된 자들, 가난한 자들, 핍박과 멸시를 받는 자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섬기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들’에 대해 사람들은 대부분은 장애인, 노숙인, 고아, 미혼모들을 꼽습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작고, 더 멸시받고, 죽음의 위협에 까지 놓여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죽임을 당해 죽어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죽어가는 태아들입니다. 하루에도 수백여 명의 아기들이 죄 없이 낙태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부모에게 조차 버림받은 가난한 자들이며, 사회에서도 멸시를 받는 자들으며, 교회의 침묵 속에 외면을 받는 자들입니다.      태아 생명 존중 사역은 낙태 유경험자들을 정죄하는 사역이 아닙니다.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그리스도의 용서와 치유를 전하는 사역이며, 태아의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며 낙태를 예방하는 사역입니다. 많은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낙태의 심각성과 태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어쩔 수 없는 낙태’라는 핑계로 그동안 낙태 문제에 침묵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자중에 작은 자 ‘태아’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가장 작은 하나님의 형상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섬기는 일인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아름다운 피켓 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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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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