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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종합 검색결과

  • 「단이엘서 강의」 초판본 등 총 14권 영암 ‘김응조목사 저작물’ 기증
    ◇ 최근 성결대에 기증된 설립자 김응조목사의 총 14권의 저작물 사진.   성결대학교(총장=김상식)는 재림관 총장실에서 전신인 성결교신학교 설립자인 영암 김응조목사 저작물 및 성결교회의 역사 신학자료 기증식을 지난 달 21일 오전에 진행했다. 기증 자료는 총 14권으로, 그 중 영암 김응조목사 저작물은 <단이엘서 강의>(1953년) 초판본 등 9권이다.   이는 성결대 84학번 신학과 졸업생 모임인 ‘성우회’(대표=김기성목사)의 활동을 통해 확보되었고, 박철수목사(진도엘림교회), 김은균목사(평강교회), 전은희목사(본일산교회), 임흥근(주의양교회), 정기남목사(서울평안교회), 김옥복목사(평택중앙교회), 박운일목사(산돌교회)의 헌금을 통해 자료 구입 후 기증되었다.   해당 기증자료는 성결대 학술정보관 1층 U-라운지에서 지난 달 23일부터 오는 12월 31일까지 전시되며, 이후 학술정보관 고서실(6층)에 보관된다. 추후 성결대학교 채플 건립 시 별도 장소를 마련해 전시될 예정이다.   이번 기증과 모금을 기획하여 활동한 대전 주의양교회 임흥근목사는 “성결신학교 설립자이자 문서선교 개척자로서 김응조목사님에 대한 관심을 고취하고자 진행된 것이다”며, “이 외에 아직 찾지 못한 김응조목사님의 저서 및 성결교회 역사적 가치가 담긴 신학 자료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귀한 자료를 나누겠다”고 전했다. 성결대 김상식총장은 기증식에서 “이렇게 귀한 역사적 자료를 찾는 것도 힘든데, 모금을 통해 한 뜻으로, 직접 구입까지 해주셔서 성결대에 기증해 주신 목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성결대는 앞으로도 김응조목사님의 뜻을 잘 전승해 역사자료를 소중히 관리하고, 자료를 통해 후학들에게 세대를 초월해 깊은 감사와 존경의 정신을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고 밝혔다.     영암 김응조목사는 성경적 복음주의 보수신학 도장인 성결교신학교를 설립한 신학자이자 교육자로, 구한말 개화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한국교회 초기 신앙인이다. 생전 총 43권의 신학관련 저서를 남긴 문서선교의 개척자이자 저술가이기도 하다.
    • 교계종합
    • 교단
    2024-05-24

오피니언 검색결과

  • '아가서' 솔로몬의 노래 (20) 그의 어가를 보라
      연기 기둥과 같이, 몰약과 유향의 향내를 내며 광야에서 오시는 분이시여! 영광과 권능으로 오시는 만왕의 왕·만주의 주이시여! 그분이 나의 남편이 되시도다. 3:7 그의 침상을 보라, 그것은 솔로몬의 것이로다. 이스라엘의 용사 중에서 육십 명의 용사가 그것을 호위하였는데‘그의 침상을 보라’는 것은 실제로 잠자는 침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6절에서 연기 기둥같이, 몰약 향내를 내며 광야에서 오시는 분, 즉 재림하시는 주님을 보라는 것이다. 그의 침상은 9~10절에 금과 은으로, 레바논 나무로 만든 병거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7절의 그의 침상과 9절의 병거는 똑같은 것이다. 왕이 행차할 때 타는 화려한 수레(어가)이다. 이는 신랑 예수님이 영광중에 찬란하게 오시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침상을 보라’는 것은, 곧 그의 어가(御駕)를 보라는 것과 같다. 아가서1,2장을 거쳐 3장에 이른 신부 성도는 자기 남편인 다시 오실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얼마나 찬란하게 행차하시는 가를 보라는 것이다. ‘그것은 솔로몬의 것이로다.’라고 하신다. 이는 실제 사람인 과거 솔로몬 왕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왕좌인 솔로몬의 왕위를 계시한 것이다. 마치 마1:1에 예수님의 족보에 예수님을 다윗의 아들이라고 소개한 것과 같다. 실제로 다윗의 아들은 솔로몬이었다. 예수님은 다윗보다 먼저 계신 분이며 다윗의 주가 되신다. 따라서 다윗 왕은 그림자이고 실상은 예수님이 왕으로 오실 것을 예표로 계시하여 ‘다윗의 아들이다.’라고 한 것이다. ‘평강’이라는 이름을 가진 솔로몬은 온 이스라엘을 통치하면서 주변나라로부터는 조공을 받으며 영화를 누린 왕이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영광과 권능으로 다시 오실 것을 계시한다.     이미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가서는 솔로몬이 신부성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임을 깨달았다. 그가 신부성도의 자리에서 또 주님을 남편으로 모시며 찬양하는 노래이다. 또 남편이 되시는 주님이 자기를 데리러 오시는 것을 영안으로 보며 노래하고 있다. 신부성도인 솔로몬에게 예수님이 그의 남편으로 영광중에 행차하시는 것이다. <롯기서>는 룻이 솔로몬과 같이 그리스도의 신부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예표인 보아스 신랑과 결혼하는 것을 말씀하신다. 요컨대 만왕의 왕으로 재림하시는 주님은 임금님의 어가처럼 화려하고 찬란하게 영광가운데 오신다.     그것은 바로 솔로몬의 것, 즉 그리스도의 것이다. 또 ‘이스라엘의 용사 중에서 60명의 용사가 호위하는 도다.’이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함께 오는 무리들을 계시한다. 이들은 천사들을 지칭한 것인가? 아니면 부활하여 함께 오는 그리스도의 신부들을 지칭하는가? 성경에서 천사들을 이스라엘이라 호칭하지 않는다. 오직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영적 이스라엘로 호칭한다. 그러므로 주 재림 시 부활하여 함께 오는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60명의 용사가 되는 것이다. 또 아6:8에 왕후가 육십이라고 하였다. 솔로몬 왕의 부인이 60명이라는 말씀은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부인이 60명이라는 것을 계시한다. 재림하실 예수님의 왕후 60명은 첫째 부활한 그리스도의 신부를 계시한다.     이는 계19:14에 주님과 함께 오는 흰옷 입은 자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들은 천사가 아니다. 이들은 바로 7년 대 환란 때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순교한 자들로서 주 재림 시 첫째 부활한 자들이다. 이들이 곧 그리스도의 신부이다(계19:8,14). 그들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었다. 이 흰옷은 계6:11에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죽임당한 자들에게 입혀주시는 옷을 가리킨다. 종말에 사는 우리가 바로 그 60명의 용사 중에 들어가야만 복된 자가 된다. 따라서 이 60명의 용사는 한정된 숫자가 아닌 상징 수이다. 즉 수많은 그리스도의 신부들임을 계시한 것이다./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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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4
  • 성서와 생활 [26] 그리스도인의 영성- 성령충만의 영성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말한다. “ ~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20:22 예수님께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20:21 라고 축복하셨다. 이 말씀은 곧 성령의 능력을 부여하신 기름 부음의 사건이다. 평강을 명하심으로 십자가의 죽음 이후에 제자들에게 임한 두려움울 제거하셨다. 즉 능력의 말씀으로 제자들에게서 두려움의 죄를 사하신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동일한 말씀을 명하신다. 성령을 받은 자는 죄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려주신다. 죄 사하는 능력은 성령의 일이며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주신 생명이다.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영적인 생명을 주시기 위해 높이 들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다. 따라서 주님은 “나를 믿는 자는....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7:38고 말씀하셨다. 믿는 자에게 주시고자 하는 생명은 사망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영원한 생명이다. 이 성령을 주시는 길은 오직 주님께서 먼저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 부활하심으로 가능한 것이다. “인자는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4~15 그리하여 주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감당하신 것이다. 그 결과 우리도 십자가를 통해 성령의 사역자가 될수있다.    사도바울은 성령의 통로가 되기 위해 자신을 전혀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겼다.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힌 확실한 흔적을 가진 자로서 살았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갈2:20라고 증언하고 있다. 성령의 충만을 사모한다면 자신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흘러 가는 유일한 길이다. 나로 말미암아 많은 생명을 얻게 하려는 주님의 사역이 우리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라고 선포했다.     우리 자신도 주님처럼, 바울처럼 십자가의 생명이 없다면 결코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자아의 진정한 깨어짐으로 인한 죽음이 없다면 십자가의 역사는 체험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낮추는 사람에 의한 겻이다. 사람의 뛰어난 말과 음성은 생활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될 수 없다. 매일 일상에서 십자가가 깊이 역사할수록 성령이 우리와 함께 일하신다. 아담에 속한 육신의 요소를 십자가로 처리하는 체험적 신앙만이 성령의 생명을 얻으며 성령의 충만한 길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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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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