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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사랑' 거룩한 성화 4화] 계명 지킴의 순복으로 기쁨의 화답
        아버지의 뜻을 좇아 행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생명과 희락의 특별 은혜   성경은 사람의 죄인된 정체성을 알게 한다. 더불어 주로인해 구원 받고 자녀된 정체성 회복을 은혜로 주신 사랑 메시지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아담의 후예들은 원죄로 인해 사단에 매인 자들이고,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아야 쉼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하신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사랑 메시지를 밝히 증거 하시어 구원의 도를 좇게 하셨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보람과 행복으로 만끽하게 되는 영혼 구원의 발견이다. 이를 살리는 일이라 하시어 누구든지 주를 영접하면 주께 사랑을 받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신 상고 목적에 화답을 찾는다. 이처럼 주께서 열어 놓으신 십자가의 길로 들어간 자의 기쁨과 행복에 대한 선함의 말씀이다. 영생의 길은 그리스도를 통한 의의 종으로 회복이며 이들에게는 불변의 구원임을 확증해 준다. 이를 거듭남이라 하셨고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시어 은혜의 선물임을 깨닫게 하신다. 더불어 이 길은 이웃 사랑의 실천과 함께 주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증거 하신다.   살아 있을 때 구원의 길로 들어갈 수 있는 언약의 법칙이다. 이를 알고 좇아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열어 놓으신 구원의 도이다. 인생은 유한하기에 누구나 한번은 죽음에 이른다. 그러기에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을 더 선호하라고 하셨다. 또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도다고 전도서 기자는 말씀한다. 하지만 거듭난 자들은 육체의 년 한이 끝난다하더라도 영원한 생명으로 영생에 이르게 되는 부활 생명의 존재임을 밝혀준다. 이와같이 계명에 순복한 자는 새 피조물로써 삶의 존재목적을 이웃 사랑의 실천에 두는 주의 백성이다. 주로부터 거듭남은 영생을 얻은 천국백성으로 주의 은혜임을 깨닫게 된다. 이 땅에서도 평안을 누리며 영생에 소망을 두고 몫을 하는 여정이다. 구원은 살아있는 동안에만 주를 영접할 수 있고 복음을 듣고 새 가치를 정립할 수 있는 특별은혜이다. 결국 생명을 얻은 자의 마침은 죽음과 동시에 천국 입성이며 영생을 누리는 부활이다. 이 삶은 은혜로 주께서 이끌어 가시는 복된 여정으로 주께서 견인임을 확증해 준다. 거듭난 자에게는 부활과 영생이 있기에 모든 것을 견디며 인내로 위에 것을 향해 달릴 수 있는 소망이다. 영생에 소망을 가진 믿음은 생명과 희락과 평안의 행복한 여정이다. 이를 알고 얻게 하기 위한 산 자들의 전도는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주의 나라 확장을 이룬다.     이 세상에서는 비록 무명한 자일지라도 주 안에서는 유명한 자요 주 안에서 모든 것을 가진 자이다. 주께서 목자가 되셨기에 천국백성으로 영혼에 부족함이 없는 부유함이다. 곧 모든 것에서 자족하게 하는 범사에 감사로 항상 기뻐하며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화답을 한다. 은혜를 입은 주의 자녀임을 확증한다. 즉 말씀 가운데 주의 자비와 긍휼로 나의 나됨이 주의 은혜임을 알고 사랑의 빚진 자로서 화답케 된다. 주를 안다는 것은 생명으로 거듭남이며 영생이다. 오직 창조주만이 영생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심을 주께서 죽고 부활을 나타내 확증해 주셨다. 그러므로 주의 백성으로 정체성을 회복한 자는 주님 밖에 믿을 이가 없음을 알고 고난이 온다할지라도 이웃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순복으로 화답을 한다. 주 없이 살수 없다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성령의 견인으로 사랑하심을 확증케 된다. 주와 한영을 이룬 자들이 이웃 사랑의 전도로 얻게 되는 약속된 충만한 기쁨임을 확증하는 바이다. 곧 진리에 거하는 복된 자들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선을 이루어 사랑의 화답함을 확증한다. 그 사랑이 기쁨과 행복의 근원이며 전도로 화답함임을 새기며.../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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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27
  • 성과 속, 그 첨예한 대립상(5)-유재용의 「성자여 어디 계십니까?」
      유재용의 장편소설 <성자여 어디 계십니까?>는 다소 허망하게 그 말미(末尾)가 장식되고 만다. 주인공 박요단의 그때까지의 모든 노력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려 버린 것이다. 그녀를 구원해 내기 위해 그의 모든 것을 바쳐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아내 권미림은 끝내 그를 배신해 버렸고, 그의 교역 사업의 상징적 성과라고 할 개척 천막교회는 불타 없어져 버리고 말았으니 그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참으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필자는 유재용의 이 소설이, 아니 이 소설의 허망한 결말이 가장 기독교적으로 장식되어 있다, 라는 판단에서 결코 물러서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하여 필자는 불가피하게 기독교 세계에서의 다른 사례들을 몇 가지 동원해 보이지 않을 수 없다. 무슨 이론적인 설명보다는 역시 몇 가지 유사한 사례들의 제시가 오히려 더 큰 설득력이 있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먼저는 같은 문학 작품 가운데서 그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겠다. 영국 작가 A. J. 크로닌의 장편소설 <천국의 열쇠>(1941)를 통해서이다. 주인공 치셤 신부는 옛 친구요 신학교 동창인 안셀모 밀리 신부가 출세가도를 달리는 것과는 달리, 애써 고난의 길을 걸어간 신부였다. 나중엔 유럽을 벗어나 중국으로까지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도 그는 여러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무너져 있던 성당 건물을 천신만고 끝에 다시 지어놓았으나, 그게 홍수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찾아 기른 고아소녀 안나가 그를 배신하고 비적 와이츄 병사를 따라가 버린 일… 등이 그를 무척 괴롭게 하였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는 주님의 은총과는 무관한 가련한 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표면적 실패를 딛고 일어선 영원한 내적 승리자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난 패배의 잔영은 그의 ‘참 교역자 상’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여러 순교자들의 삶을 통해서이다. 그들은 모두 생의 말년에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귀한 생명을 주님을 위해 불가피하게 버린다. 실제로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니,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남겨놓은 그 순교의 신앙으로서의 흔적이 전혀 아무것도 아닐까? 아니다. 그들은 일견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그 희생(죽음)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은 최후 승리자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신약성서(사도행전 6~7장) 속의 인물 스데반의 경우를 보기로 하겠다. 히브리파 신도들 앞에서 용기 있게 주님을 증거한 헬라파 신도 스데반은 그 굳센 믿음과 용기 있는 증언 때문에 히브리파 신도들에게 성 바깥으로 끌려 나가 투석형에 처해졌다. 그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행7:59~60)라고 부르짖으며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그의 이 죽음이 무의미했던가? 아니다. 스데반의 이 죽음이 앞으로 이어질 그리스도인들의 허다한 순교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음을 교회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박요단은 자신의 사랑을 암흑가의 한 여인에게 베풀고, 주위의 악의 세력과 싸워 그 나름의 사회정의를 구현해보려고 애썼지만, 그의 의지는 현실 앞에서 끝내 좌절되고야 말았다. 그는 단지 한 패배자의 위치에 머물고 마는 것일까. 아니다. ‘참 교역자 상’을 보이는 그는 표면적 패배를 딛고 일어선 내적 승리자임을 위 사례들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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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16

출판/문화 검색결과

  • 시공간을 초월하는 하나의 진리로 재해석
    (도마복음 저자 구자만 장로)     구원은 미래가 아닌 지금, 속사람 드러나 진리와 하나될 때         구자만장로(사진)는 “하나님은 전체성이며 모든 것이다, 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했고, 하나님이 만물에 편재하고 계신다”고 강조한다(행17:28). 구장로는 “기독교의 잘못된 교리는 희랍철학의 영향으로 전체성을 보지 못했다. 선과 악, 영혼과 육체, 하나님과 세상 등으로 구분하는 상대적이고 이원론적인 세계관의 서구신학은 새로운 과학시대(에너지일원론)를 맞이하여 무소부재의 하나님, 시공간을 초월하는 하나(One)의 진리로 재해석하는 일원론적 동양 신학을 불러왔다”며 동양적인 도마복음을 소개했다. “따라서 박해를 피하여 1600년간 파묻혀 있다가 1945년에 발견된 비이원적인 도마복음은 이원적 영지주의 문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독교가 하나(One)의 영적 운동으로 물질주의라는 수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어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진리)가 온 세상에 두루 퍼져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도마복음 113장). 진리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naver)이므로 ‘시작(창조)과 끝(종말)이 없으며’(도마복음), 선과 악, 주와 객, 이 세상과 저 세상 등의 분별이 없는 하나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미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내면의 속사람(신성)을 드러낼 때 진리와 하나가 됨으로 이루어진다는 것(도마복음 70장, 요17:21)을 선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너희도 처음(아르케:arche)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요15:27)의 구절에서 이 아르케(arche)가 세상의 근원이자 근본원리를 의미한다면 우리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원죄가 없다(도마복음 108). 또한 원죄는 일상적으로 짓는 죄로 ‘하나님(진리)을 떠난 에고(Ego)가 원죄’(요8:24)라고 재해석해야 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근본주의와 문자에 파묻혀 몰랐던 성경구절들이 동양종교들과도 통하는 영적인 하나의 진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보람을 느끼지만, 시공간을 초월한 전체, 즉 무량무변인 진리가 무시될 때 답답함을 느낀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시공간 안에 고정해서 주와 객, 육체와 영혼, 삶과 죽음, 시작과 끝 등으로 나누어 비 진리적인 글로 설명하거나 설교하는 것과 현재의 교리가 이원적으로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현대물리학이 증명하는 비이원적인 진리로 재해석을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도들의 이원적인 에고의 눈(죄, 요9:41)을 깨워서 환희의 영안(눅10:23)이 열리게 하는 것과 둘이 아닌 하나의 진리가 올바르게 전파되어 성도들의 영성을 회복하며, 기복주의로 쇠퇴하고 있는 기독교를 부흥시키는 새로운 신학이 태동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장로교회 원로장로이다. 그는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곧 창립한 (주)신흥지엔티의 회장으로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다. 그는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종교교육으로 석사 학위를, 그리고 강남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박사를 취득했다. 그는 ‘구원(One)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연구의 결과로 신비로운 도마복음을 출간하게 됐다.
    • 출판/문화
    • 출판
    2023-01-17
  • 이하백박사의 「일어나 걸어가라」
      죽음을 이기고 부활승천한 ‘생명의 주’로 명화와 함께 소개 명화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존재, 능력, 일하심, 사랑을 전달   이하백박사(사진)의 〈일어나 걸어가라〉는 발상부터가 색다르고 참신하다. 예수의 공생애 3년을 명화를 인용해 감동적으로 소개한다. 명화 속에 예수의 치유 사역을 중심으로 한 공생애를 재현한 것. 그 분이 지상으로 내려오신 하나님이며,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려고 목숨까지 버리셨으며, 죽음을 이기고 부활 승천한 생명의 주님이라고 소개한다.    이 책은 평범한 의학자의 삶에서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 사역이 살아있는 명화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존재, 능력, 일하심과 사랑을 온전히 전달하고자 목적하였다. 새내기 의사 시절에 첨단 의료가 해결할 수 없었던 심각한 폐 손상을 동반한 ‘급성 호흡곤란증후군’ 등 중환자들이 극적으로 회복될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예수에 대하여 더 알기를 갈망하게 되었다. 여기 실린 그림들은 인간의 역사 속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로서 유일한 구원자요 치유자임을 나타낸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의 생명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탁월하게 증거하고 있다. 세상에 나와 있는 예수의 얼굴들은 상상화일 뿐이다. 그중에서 튀르키예 아이야 소피아 성당의 「최후의 심판」 모자이크의 그리스도 부분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는 듯한 사랑과 신적인 고귀함이 넘치는 놀라운 작품이다. 성급한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극찬하신 주님은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시요. 인간을 죄에서 구하려고 생명까지 버리셨으며,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생명의 주인으로 경배하게 하신다.    또 예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치유하시고 귀신을 추방하신다. 이러한 공생애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임재에 대한 표징이요 증언이다. 예수 치유의 대부분은 가련한 여인들과 나병 환자 등 소외된 사람들의 육신적인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회복시켜 재창조하신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적을 행하시고 믿음, 용서의 메시지와 안식일의 의미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궁극적으로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인간에게 죽음은 두려움이며 영원한 미스테리이다. 그러나 성경은 믿는 자에게 죽음을 넘어선 부활 생명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화가들은 감명 깊은 장면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의 기적을 목격한 제자들과 회당장 야이로나 나사로의 누이들을 비롯한 어느 한 사람도 이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 야이로의 딸을 향하여 “소녀야 일어나라” 또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향하여 “청년아 일어나라”라는 명령이 사망 권세를 무너뜨리고 생명을 공급하심으로써 믿는 자의 부활과 예수 자신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을 미리 보여주신다. 이에 더하여 당시 최고 컬러리스트로 추앙받은 베로네세의 흥미로운 작품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는 그리스도」는 소생 과정을 해학적인 연극 무대로 표현하여 죽음 너머 부활의 소망에 천국 잔치를 상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하나님은 불쌍한 인생을 편들으시며 건강하고 행복을 누리면서 살기를 원하신다. 거기에 의료인을 쓰셔서 많은 질병이 회복되기를 뜻하신다. 그러므로 의료인은 연약한 인간의 질병 치유를 위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믿음의 가교역할을 하여 주님의 자비를 간구해야 한다. 또한, 크리스천 화가들에게 하나님 은혜를 더하시고 영적 감동과 능력을 발휘하도록 역사하시는 창조주의 뜻을 받들어 힐링갤러리 명화들을 깊이 음미하며 가장 위대한 의사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우리의 삶을 다짐해 본다.    이박사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대학원 박사,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지냈다. 한국의과대학학장협의회 부회장, 대한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회 회장, (사)한국창조과학회 법인이사도 역임했다.(이지출판사 펴냄/154×216 148쪽 반양장/값 17,000원)  
    • 출판/문화
    • 출판
    202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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