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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 조화를 만들어 가자
- 오래 전에 보았던 「사랑의 하모니(1991)」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테일러라는 주인공은 남부의 명문으로서 뿌리 깊은 인종 편견이 심한 엄격한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자유로운 사상을 지닌 테일러는 우연히 음악에 재질이 많은 흑인소년 ‘랜디’라는 학생을 사귀게 됩니다. 둘은 피부색은 달랐지만 서로 좋아했고 아끼며 격려하며 우정을 키워 갔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변함없을 것 같았던 둘 사이의 우정은 기성세대의 심각한 편견과 학생들 사이의 압력으로 적지 않은 도전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때 한 젊은 선생님이 이들을 옹호하게 되고, 마침내 진실한 흑백의 우정은 왜곡된 편견을 극복해 냅니다. 흑인에 대한 테러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테일러와 랜디는 함께 손을 잡고 학교 합창단이 되어 천상의 메아리를 소리 높여 부릅니다. 피부색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둘이 만들어내는 우정과 천상의 하모니는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눈부신 감동을 안겨줍니다. 여러 사람이나 사물 사이에 조화나 일치를 이루는 것을 우리는 ‘하모니’라고 부릅니다.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가 가진 개성과 특성을 살려 둘 사이의 차이를 극복하고 조화를 이루어가는 ‘하모니’는 그 과정과 결과 모두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과 사물은 보기에 너무나 어색합니다. 하지만 하모니는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다름’을 극복하고 서로가 하나를 이루어나가는 모습 가운데서 만들어지고 창조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모니’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꽃과 같고, 향기 나는 가정과 같습니다. 음악은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도구입니다. 때로 언어와 민족이라는 장벽을 뛰어 넘어 하나 되게 하는 힘, 곧 ‘하모니’를 창조해내는 무한한 힘과 에너지를 음악을 통해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조화를 일컬어 우리는 ‘천상의 하모니’라고 부릅니다. 과거 제가 사역하고 있는 백석대학교 소강당에서는 자매결연학교인 미국의 아주사 대학교에서 방문한 160여명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2시간여 동안 뿜어내는, 감동적이고도 환상적인 하모니로 인하여 1천여 명의 학생과 교직원들이 하나가 되는 감격의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특히 마지막으로 백석합창단과 함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한국의 곡을 멋지게 엮어낸 환상의 하모니는 이 날의 하이라이트였고 천안 안서골의 밤하늘을 우정과 감동의 폭죽으로 수놓았습니다. 소프라노와 알토, 테너와 베이스의 하나 됨! 바이올린과 첼로와 비올라, 그리고 콘트라베이스가 만들어내는 하모니! 나아가 오케스트라의 단원 한 명 한 명이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리스도 안에서 연주와 합창으로 창조해내는 천상의 하모니를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나라의 사회와 교육 그리고 정치는 이처럼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고 파열음만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성경은 에베소인들에게 띄운 바울의 편지를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3) 이 글을 읽는 모든분들의 가슴에 있는 꿈과 비전 그리고 소망들이 주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메신저와 같이 이웃과 사회 나아가 민족을 넘어 온 누리에 사랑의 하모니로 울러 퍼지게 하는 비전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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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 조화를 만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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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 사실의 토대에서 진리를
- 언론 환경이 참 많이도 변했다. 레거시 언론, 곧 전통적인 언론 매체들이 변하는 상황에 적응하느라 힘겹다. 엄청난 독자와 클릭 수를 기록하는 유투버의 영향력은 일반 언론 매체를 훌쩍 넘는다. 한 사람이 독자적으로 언론 매체를 구성할 수 있고, 그 한 사람의 영향력이 여론 형성에 강력한 힘을 가진다. 인간사의 모든 일의 기본 구조인 비용과 수익의 구조에서 많은 사람을 거느린 거대 언론사보다 몇 사람으로 작동하는 인터넷 매체가 비교 불가할 정도로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언론의 기본 구조가 있다. 어떤 종류의 언론이든 소식과 정보를 전한다. 언론 보도에서 토대가 되는 것이 스트레이트 기사, 곧 사실 보도다. 기획 기사, 탐사나 심층 취재, 사람의 감성에 깊게 접근하는 미담 기사 등 여러 장르의 보도가 있지만 언론의 기본은 사실 보도다. 특히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있고 기술의 발전으로 그 진위 판별이 힘든 정보가 넘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사실 보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거짓을 판별하게 하고 거짓을 악용하는 여러 사회악을 막는 사회적 보루가 언론의 사실 보도다. 기독교 신앙에서 심장과 같은 성경 본문인 십계명에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고 명확하게 명령하고 있다. 이 명령은 개인적인 관계의 거짓말보다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거짓말을 뜻한다. 오늘날의 언어로 말하면 가짜 뉴스를 생산하지 말라는 명령도 된다. 성경은 거짓과 교만을 모든 죄악의 근원이라고 본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예수님은 악한 영을 거짓의 아비라고 규정하며 진리와 대립시키신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기독교 신앙의 목적인 진리의 증언이다.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존재 목적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진리를 계시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에서 진리가 드러난다. 그 기록이 66권 성경이다. 위에서 인용한 요한복음 8장의 같은 상황에서 예수님이 저 유명한 구절을 말씀하신다. 32절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바로 여기다. 기독교가 존재하는 방식이 이것이다. 진리가 무엇인지 온 삶을 다해 갈망하고 추구하며 그 진리를 깨달고 그 깨달음대로 사는 것이다. 죄악의 굴레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얻고 누리는 길이 이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이 성경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깨닫고 실천하며 사는 것이다. 기독교 언론의 근본적인 사명이 사실과 진리, 이 둘에 연관된다. 언론의 사실 보도는 늘 그래왔는데 오늘날 더 절실하게 필요한 사회적 기능이다. 현실 사회에서 가짜 뉴스와 악의적 왜곡 등을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사실 보도처럼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 이 토대가 든든하지 못하면 진리를 찾지 못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극우 뉴스에 중독된 ‘신앙 좋은 그리스도인’이 많은 현실을 보라! 오늘날처럼 혼란한 시대에 기독교 언론의 길은 무엇인가. 한편으로는 사회적 공의와 공공성의 보루인 사실 보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토대 위에서 가능한 진리의 증언이다. 기독교 언론이여, 사실 보도에 승부를 걸어라.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진리를 추구하라. 기독교신문 창간 60주년을 축하드린다! 사실과 진리의 두 축을 따라 기독 언론의 사명에 충성하기를 바란다./기윤실 이사장·성락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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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 사실의 토대에서 진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