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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12)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 황광은 목사는 "너희들의 가슴에 한 개씩 가진 거문고를 내가 울려 주려 한다."라고 말하였다. 호언한 대로 몹시도 추웠던 영하의 도시 대학로 공연장에서 관객들에게 다가와서 저마다 숨어 있던 가슴속의 거문고를 울려 주었다. 1951년 8월 12일 소년시, 소년공화국은 창설되었다. 지금은 서울시 마포구였으나 당시는 서대문구에 속하는 수색에서 서남방 2Km지점, 한강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108만 평의 섬이 난지도이다. 그중 12만 평의 YMCA 소유의 토지에 삼동 소년시가 기공되었다. 56년 전,허허벌판에 포플러나무만이 쓸쓸히 서있던 땅, 황폐했던 그 땅에 소년들의 마을 ‘Boys Tdwn’ 간판이 올라가고 그 옆에 ”과거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희망에 살고 있습니다.“ 라는 슬로건이 적혀 있었다. 6.25 한국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절망에 빠진 전쟁고아들, 허물어진 거리를 목적도 방황도 없이 헤매던 200여 명의 소년들이 세운 자치시가 세워지게 되었다. 소년들의 유토피아 소년시는 1920년대 미국 네브라스카에 살고 있던 아나주란 사람이 유랑 소년들을 모아서 소년시를 형성한 것이 시초이다. 그 후 세계 각국에서 네브라스카의 소년시를 본떠 소년시들이 많이 생겼다. 이반 작 김윤태 연출 《소년공화국》 2004년 12월8-12일 대학로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타 대극장 한국전쟁으로 많은 고아들과 유랑아들이 생겼다. 육영사업으로 각지에 고아원이 있었다. 그중에 특수한 육영체로서의 소년시가 부산 가덕도와 서울의 난지도이다. 6.25동란이 나기 전부터 YMCA에서 소년시 창설에 대하여 논의가 있었으나 자금난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동란 이후 이런 사정을 들은 미군 제5독립연대 장병들의 성금 2만 여 달러로 소년시 건설을 착수한 것이다. 황광은 목사와 훗날 그의 아내가 된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한 김유선과 이창선, 현동완 등의 의지가 수도 경찰청의 허가를 받아 내어 삼동소년시를 세웠다. "민주시민은 민주적인 생활환경에서 성장해야 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철학이었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전선과 가까운 난지도는 불가하다는 것이 경찰청장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끈질긴 설득에 타협안으로 전쟁고아만 수용할 것이 아니라 감화원 출신과 불량행위로 경찰서 유치장에 보호 중에 있는 소년들을 함께 수용하는 조건으로 허락한다./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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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12)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출판/문화/여성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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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4)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 64년 가을, 이반은 연극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겨 대학에 극회(연극반)을 만들고 연극 공연을 하게 되었다. 김덕천, 황석영, 전진호, 오이세, 김문배, 안신자, 송채휘, 장수근 등과 함께 했는데, 그들의 그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연극을 관극하기 위해 황광은 목사는 이보라, 최선애, 김원식, 이경아 씨 등을 대동하고 당시만 해도 서울의 변두리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상도동 구석까지 구경을 왔다. 황광은 목사는 그날부터 이반에게 기독교연극, 기독교예술이라는 무거운 짐을 맡겼다. 다른 하나는, 연극은 다른 예술매체와 달리 사람들이 사람 앞에서 행동하는 살아 움직이는 예술이니, 황광은의 삶과 꿈을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살아 숨쉬게 하자는 의도에서 희곡을 만든 것이다. 극작가 이반은 희곡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의 초점을 황광은 목사를 비롯한 성인들에게 두지 않고 청소년들에게 두었다. 성자나 영웅에 대한 작품은 어디까지나 주인공을 중심으로 극을 전개시켜 나가야 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자의 영웅적인 행동은 많지 않다. 난지도에서의 황광은 목사의 행위는 성프란시스의 행동과 유사하여 청빈하고 겸허했다. 부모 없는 소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봐 자신의 자녀들의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지 않고, 원장 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날 때 수색에서 종로까지 대중교통비가 없어 한 소년에게 차비를 빌려 쓰는 장면 등은 혇대판 성자의 수난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는 그러한 모든 행위를 숨기고 있다. 황광은 목사는 언제나 자신보다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앞세웠다. 그러한 그의 정신을 나타내기 위해 이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소년시 시민들이다. 이반의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쓴 작품이다. 등장인물들과 일어난 사건, 소년시의 이상 등은 역사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역사의 현장을 사진처럼 재현하지는 않았다. 극적 효과나 극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픽션도 가미되었다. 사모 김유선 여사나 이창식 선생, 가족들, 소년시 시민들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염려를 가졌지만 연극이라는 것은 같은 사람들끼리 꾸미는 예술이 아니다는 것에 기초했다. 종류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갈등’을 빚어야 기본 조건이 갖춰지기에 다양한 사람과 그룹을 만들어 냈다. 이반은 작품을 안고 다니며 ‘1950년대에 어떻게 이런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었으며 그것을 현실에 옮기게 까지 할 수 있었는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이상주의자 황광은의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라는 물음을 묻곤 하였다. 쉽게 ’나사렛 예수!‘ 라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가 황광은이라는 이상주의자를 통해 전쟁이 소용돌이치는 폐허 속에서 구현된 모습은 조직적이거나 신학적이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플라톤이 분류하기 이전 사도 바울이 곱게 채색하기 이전의 사랑이다는 것에서 찾아냈다. 사랑의 원형질은 예수이고 그 예수가 황광은의 몸속에서 살아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헀다. 그뿐 아니라 그에게는 호이징거의 유희성이 넘쳐났다. 결국 타고르가 말하는 동심과 예수의 사랑, 인간의 유희성이 원천이 되어 황광은의 세계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극작가 이반에 의해서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은 1970년, 그가 떠난지 54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우리곁에 있는 것이다. 1980년대 공연계에는 토탈 디어터 라는 총체연극 또는 총체예술에 대한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한국 연극계의 흐름에 뒤지지 않는 기독교 기획진의 기획과 추진력은 한국 기독교 백주년 기념 대공연이란 타이틀의 총체예술 축제인 <빛과 하나되어>의 집단창조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기독교문화예술원 원장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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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14) 극작가 이반의 분단극과 종교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