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교계종합 검색결과
-
-
대화 및 프로그램을 통한 교류의 장 마련
- ◇캠프의 참석자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종교 간의 수평적인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이해 모색 평화실천위한 성직자 모임과 성지순례 등 활동 진행 이번 종교 간 대화 캠프에서는 「△종단별 예식 체험을 통한 상호 이해 증진 △대화 및 프로그램을 통한 교류의 장 마련 △참여자 간 수평적 교류 여견 조성을 통해 캠프 이후 네트쿼크 형성」이라는 중점 사항으로 진행됐다. 이번 캠프에는 20여명의 참석자들이 함께했으며 종교와 성별 그리고 나이를 넘어서 함께했다. 특히 아직 종교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종교에 관심있는 사람도 함께 했다. 또한 성직자 뿐 아니라 일반 신도들도 함께했다. 참석자들은 각 종단별 예식에 참여하면서 타종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시간을 가졌다. 기독교를 비롯해 「△가톨릭 △불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에서 예식을 진행했다. 이번 모임에서 기획에 참여했던 고상균목사는 “지난 10여년 정도 이 캠프를 이어가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재작년 즈음에 대구 이슬람성전 건립 상황을 겪으면서 개신교단체들이 반대집회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집회에서 혐오적인 행동들이 있었다”면서,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종교간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재작년부터 이러한 활동들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모임을 진행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너무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른 종단과 수평적으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다. 이러한 모임이 서로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화 캠프를 진행한 평화고리는 1993년 크리스챤아카데미의 종교청년 대화캠프 모임을 통해 만들어졌다. 크리스챤아카데미는 종교간의 대화라는 의제를 한국사회 최초로 내세운 단체였다. 크리스챤아카데미에게도 평화고리가 재결성 된 것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 모임에 후원으로도 참여했다. 이러한 크리스챤아카데미가 진행한 종교청년 대화캠프 모임에 참여했던 각 종단의 예비 성직자들이 모임을 평화고리란 이름으로 결성했고,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젊은 성직·교역자들의 수평적 지평확장을 통한 평화의 실천을 위해 예비 성직자 캠프·종교 청년 대화 캠프·성지 도보순례 등의 다채로운 활동을 이어왔다. 크리스챤아카데미 선임연구원이었던 김 진목사는 「1965년 ‘용당산 모임’에서 ‘평화고리’까지」라는 글에서 “1990년대 아카데미 종교간 대화모임 중 가장 눈에 띄는 모임은 1992년에 각 종단의 예비성직자들을 모아 시작한 ‘종교청년 평화캠프’이다. 이러한 형태의 모임이 시작된 그 배경에는 이전에 진행된 종교간의 대화모임이 기존 성직자나 학자, 그리고 연로한 종교지도자들만의 대화모임이 주류를 이루었고, 이런 모임은 많은 경우 서로의 입장만을 확인하는 데 그치는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면서,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고 보다 생산적이고 장기적인 종교간 대화모임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성직자는 아니지만 성직의 길을 가고 있는 학생 때부터 서로의 종교를 이해하고, 상호간 화해와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훈련을 경험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이 모임의 성과물 중 하나는 이 모임에 참여한 예비 성직자들이 중심으로 만든 ‘평화고리’라는 모임이 탄생되었다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화모임이 다른 아카데미의 외부 모임으로 발전한 것은 용당산 모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것은 아카데미의 종교간 대화 운동의 주요한 성과물이다”고 말했다.
-
- 교계종합
- 연합단체
-
대화 및 프로그램을 통한 교류의 장 마련
-
-
기독교단체서 유네스코법 개정안 반대 성명
- 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 등 기독교단체와 시민단체는 지난 3일 유네스코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단체들은 유네스코교육이 동성애와 낙태를 정당화하는 포괄적 성혁명교육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위한 국회의 법안 개정을 반대했다. 단체들은 “앞서 한국교회와 시민단체들은 유네스코 교육이 겉으로는 각 나라가 교육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선진국형 교육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그 실체가 동성애와 성전환, 조기성애화, 낙태를 정당화하는 포괄적 성혁명 교육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우리 자녀들의 영혼과 육체를 파괴하는 유네스코 포괄적 성교육을 강력히 규탄하며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면서, “우리는 금번 발의된 유네스코법 개정안이 이러한 포괄적 성혁명교육을 더욱 확대하고 이러한 사업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지원을 받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및 아태교육원의 ‘운영과 사업에 소요되는 경비’의 구체적인 범위와 내용이 명확하고 적절하게 정해지지 않는다면 무분별한 예산 지원으로 이어져 국민의 세금 부담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 △유네스코법 개정안에서 교육 사업을 확대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추가적인 재정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은, 포괄적 성혁명 교육 사업을 더욱 확대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것이 분명하므로, 유네스코법 개정안을 강력히 반대한다 △현재도 포괄적 성교육 사업을 개발하고 시행하는데 막대한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고 있는데, 만일 유네스코 교육의 실체가 우리 자녀들의 영혼과 육체를 파괴하는 망국적 성혁명 교육이라는 점을 자녀들의 부모를 비롯해 국민이 알게 된다면, 어떤 사람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
- 교계종합
- 연합단체
-
기독교단체서 유네스코법 개정안 반대 성명
오피니언 검색결과
-
-
성서와 생활 [57회] 그리스도인의 삶- 마음으로 믿는 아름다움
-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후6:16)는 말씀에 비추어 보면 성도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소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려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주의 명령을 잘 이행할 필요가 있다. 마음뿐만 아니라 우리의 뜻과 성품과 목숨까지도 주님을 위해 사용하는 기관이 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온전한 주님의 성전으로서의 역할인 것이다. 성도의 마음 안에 부활하신 주님의 영을 받아 하나님과 교통하는 처소가 되어야한다. 이것이 주님께서 보여주신 길이다. 주님은 내 안에 하나님이 계셔서 그의 하는 일을 보고 주께서도 행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온 지.정.의가 주님의 영으로 채워질 때 진정한 하나님의 처소로 완성되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마음에 온전히 모시고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마음을 다하여 그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는 일이다. (신4:9) 또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다.(신6:5)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의지하는 길은 그가 주신 계명과 법도가 심비에 기록되어 다만 말씀을 시인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따라 행함이 아님이 관건이다. 마음으로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마다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의 법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진리에 근거하여 생각하고 마음으로 원하며 구하는 길은 참된 예배자의 길이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요4:23) 기사와 이적이 동반되는 삶은 주님을 섬기는 길이 즐겁고 형통하고 순탄한 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환경이 메마르고 버린 받은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자 할 때 진정한 예배자가 되는 것이다. 오직 그의 영을 기뻐하며 그의 말씀을 따라 즐거워하는 예배자라야한다. “마음의 할례”(신10:16)를 받아 외적 환경에 순종하는 예배자가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 예배자의 삶을 드려야한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비로소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거하신 상태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누룩 없는 떡’을 먹을 때 비로소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신30:6) 하시려는 것이다. 마음을 다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배워 하나님의 생명 가득한 아름다운 마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대전반석교회 목사·수필가
-
- 오피니언
- 칼럼
-
성서와 생활 [57회] 그리스도인의 삶- 마음으로 믿는 아름다움
교회/목회 검색결과
-
-
[금주의 말씀]무엇을 기다리나요? - 누가복음 2장 25절~35절
- 여러분들은 무엇을 기다리나요? 저마다 기다리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군대 간 아들이 있는 집은 잘 마치고 돌아오기를, 시험을 본 사람은 합격의 소식을, 장사하는 분은 손님이 오기를, 집을 산 분은 집값이 오르기를, 직장인은 월급이 오르기를, 물건을 주문한 분은 택배 아저씨를 기다릴 겁니다. 이런 육에 속한 것 말고 신앙인들이 기다려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구체적인 모습을 성경 곳곳에서 ‘기다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 130:6) 시편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갈망으로 기다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 지기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성취되기까지 오랜 세월의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 역시 기다림을 통해 그들의 믿음을 증거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2) 우리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다림을 선택한다면, 기다림을 통해 우리 안에 실현되는 믿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000여년 전, 로마 제국의 식민 지배 가운데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억압에서 건져줄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어두움이 짙을수록 밝은 빛을 사모하듯, 그 어느 때보다 메시아를 대망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따라 기다리는 메시아가 달랐습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해 줄 정치적·군사적 메시아, 혹은 사회적 속박과 가난에서 건져줄 메시아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할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시므온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절망적이고 불의한 세상에서 의로운 자로, 하나님의 위로를 바라며 그리스도(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이 쉬운 사람은 없습니다. 그가 시대적 암흑기에 깨어 그리스도를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과 함께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25절) 시므온은 성령님과 동행하며 매 순간 ‘성령의 임재’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리는 그리스도를 보고 죽으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갈 때 아기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천년 전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대망해 왔지만,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분을 기쁨으로 영접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누구보다 성경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유대인과 종교 지도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들의 종교적 관념이나 전통 때문에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날마다 성령 안에서 새로워져야 합니다. 내 생각과 경험이 아닌, 시므온처럼 성령님과 동행하며, 지시와 감동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의 말씀을 굳게 붙잡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고요하지만,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는 참된 위로자 되시는 주님, 세상의 주관자시며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만날 때 ‘샬롬’이라고 인사하며, 헤어질 때 ‘마라나타’라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마라나타는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의미입니다. 늘 주님의 다시 오심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 했습니다. 우리들도 경건한 시므온처럼 성령님과 동행하며, 성령의 지시와 감동을 따라 마지막 때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믿음의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 교회/목회
- 금주의 말씀
-
[금주의 말씀]무엇을 기다리나요? - 누가복음 2장 25절~3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