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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외된 이웃위한 ‘사랑의 실천’ 절실
    경기불황에 가난한 사람들 위한 나눔예산이 감소할 전망 마이너스 결산으로 삭감하기 쉬운 선교비와 봉사비 삭감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소외된 이웃을 돌보며 사회봉사활동을 펼쳐왔다. 일제강점기시절부터 해방이후까지는 서양의 선교사들이 억압받는 우리민족들의 자립을 위한 기반을 닦아주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 폐허가 된 땅에서 전쟁고아와 미망인들을 돌보는데 앞장섰다. 사회봉사활동을 시작으로 사회복지를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연합단체들을 중심으로 복지활동을 전개했으나 연합단체의 활동이 약화되고 경제한파로 인해 지교회들도 타격을 받아 나눔을 위한 예산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 본연의 사명이 점차 축소되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사회 복지사역을 주도·한국교회가 연합하여 만든 봉사기구들은 소외된 이웃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며 우리사회의 사회복지를 주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불우이웃을 도웁시다”는 멘트와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는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한 기금모음을 주도했다. 구세군은 타교단에 비해 교세는 매우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던 이웃돕기에 앞장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28년 12월 서울도심에서였다.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자선냄비가 서울도심에 등장하면서, 불우한 이웃들을 위한 돌봄의 필요성이 알려지고 이에 동참하는 사랑의 손길이 이어졌다. 한국교회가 본격적으로 사회봉사에 뛰어든 것은 지난 1963년 설립된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로 볼 수 있다. 당시 장로교와 감리교 등 8개 개신교 교단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함께 설립한 이 봉사회는 한국 최초의 사회봉사를 위한 기독교 연합단체로, 낙후된 지역의 농가소득을 위한 지원과 장애인들을 위한 사역, 소외계층 어린이 돌봄 사역과 노인사역 등 당시 국가가 미처 돌보지 못하던 이웃들에 대한 돌봄을 지속해왔다. 이후 각 교단별로 봉사를 위한 기구나 조직을 만들면서 한국교회의 사회봉사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경기침체로 이웃사랑 나눔 주춤·한국교회의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실천 운동이 주춤하고 있다. 국내외의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몇 년째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빛을 잃어버린 등대처럼 제 역할을 못하고, 바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있다. 희망의 불빛이 사라져 버린 지금, 소외된 이웃들은 갈 곳을 잃어 표류하고 있다. 더욱이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한국교회의 이웃사랑 실천운동도 주춤하고 있다. 어느때보다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에 옮겨야할 시기에 오히려 요지부동하고 있다. 몇몇 교회에서는 교회 밖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지원하던 사회복지 선교비를 교회 안으로 범위를 줄였다. 결국 한국교회는 점점 국민의 종교에서 한발짝 물러선 제2의 종교로 후퇴하고 말았다. 그동안 소외된 사람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한국교회의 이미지가 바닥까지 곤두박질 쳤다. 소외된 사람들을 외면한 결과이다. ◆기독교 본질의 사랑실천 절실·한국교회의 해외선교도 크게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다수의 교회가 가난한 이웃을 위한 사랑의 헌금지출과 세계민족에 대한 사랑의 선교비마저 대폭 축소하는 등 기독교의 본질인 ‘나눔’과 ‘섬김’, 그리고 ‘사랑’의 역할을 소홀히 하고 있다. 때문에 금년도 겨울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어느때 보다도 추운 겨울이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입장이 지배적이다. 또 더 늦기 전에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한 사랑실천 운동에 한국교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세계민족을 향한 사랑의 선교가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적 경제위기로 인해 대부분의 교회가 해외로 보내던 사랑의 헌금마저 중단한 상태다. 이 헌금으로 삶을 유지하던 선교사들의 귀국러시가 연일 지속되고 있다. 개교회뿐 아니라, 교단차원의 해외선교 헌금도 대폭 줄어든 상태다. 여기에 북한동포를 돕기 위한 사업도 정치적, 경제적 문제로 인해 소강상태에 빠졌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점점 상실해 가고 있다. 교회나 사회 모두가 소외된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가 이웃사랑 실천운동에 소홀하다는 비판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묵묵히 사랑의 실천을 몸소 보여주는 단체가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은 주변 정세에 흔들리지 않고, 해마다 끊임없이 온정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오히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교회의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고, 불우한 이웃을 위한 지원에는 아낌없이 투자했다. 때문에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체면을 유지해 주고 있는 상황이다.
    • 교계종합
    • 기획
    2015-12-09
  • 교회성장의 생명과 기초인 ‘다음세대 살리기’ 운동 절실
    ▲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점차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다음세대를 위한 한국교회의 사역지원이 절실해지고 있다.    주일학교는 교회성장의 생명이며 기초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주일학교의 발전에 대해서 매우 인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것은 교회가 현재의 교회운영에 급급한 나머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 교회의 주일학교와 중고등부의 학생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여기에다 물질문명의 발달과 입시경쟁으로 인해 주일날 교회에 가는 것을 기피하고 있다.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회학교 교육관계자들은 교회학교의 성장이, 곧 교회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교회학교와 중고등부의 활성화에 대한 정책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교회학교와 중고등부가 위축되는 것을 외부적인 요인으로 돌리고 있다. 치열한 입시경쟁, 물질문명의 풍요로움, 주 5일 근무제 실시, 저출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이들이 없는 교회는 미래가 없다.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며 외줄을 타듯 위태위태한 상황뉴미디어 시대를 맞은 영성향상 위한 변화된 모습이 필요 교회성장의 기초인 다음세대 양육 교회학교와 중고등부를 책임지고 있는 교사들은 한국교회 성장의 기초를, 교회학교와 중고등부가 성장해야 교회가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주일학교와 중고등부의 학생수가 줄어들면서, 성장의 생명력을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교회마다 주일학교의 어린이와 중고등부의 학생들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때문에 교회마다 교회성장을 위한 주일학교 어린이와 중고등부 학생들을 전도하는데 비상이 걸렸다. 각 교단 교육부에서 만들고 있는 교육교재로는 무너지고 있는 주일학교와 중고등부를 회생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교회성장의 경쟁력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한 일부교회는 교회학교와 중고등부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대안을 찾는데 고심하고 있다. 어린이 주일학교를 비롯한 중고등부 학생회 등은 교회성장의 기초가 되고 있음에도 한국교회의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학생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교회들이 이들에 대한 선교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한국교회 마이너스성장의 주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교회들은 당장 교회의 재정에 보탬이 되지 않는 주일학교를 비롯한 중고등부 학생회의 재정을 삭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마디로 한국교회가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또한 현재 경쟁사회의 입시제도가 주일날 어린이와 중고등부 학생들을 학원 등으로 내몰고 있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교회보다는 입시학원으로 이들을 내몰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마저도 자녀들이 교회보다는 공부에 충실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은 목회자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신앙생활은 좋은 대학에 입학한 다음에 시작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일학교와 중고등부의 성장을 기대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성경을 가르치는 유일한 기관 1780년에 영국의 한 자선사업가로부터 시작된 교회학교의 모태인 주일학교는 1820년대 미국 전역으로 퍼져 이어오다가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서 우리나라에서 시작됐다. 주일학교는 성경을 가르치는 유일한 기관이었고, 교회의 가장 근본을 이루며 한국교회의 버팀목을 만들어 내는 산실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주일학교는 최근 그 명칭이 교회학교로 변하게 되었고 한국교회의 신앙교육을 담당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이는 모든 교파에서 교인의 75%가 교회학교를 나왔고, 교회지도자들의 85%, 목사와 선교사들의 95%가 교회학교를 거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교회학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성경말씀을 올곧이 전함으로써 막무가내식의 신앙교육이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이 가능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는 단순히 신앙교육의 변화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전반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각 교회는 교회학교를 구성하기에 전념하였고 교회의 모든 초점을 거기에 맞추었다.  교회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장차 그 교회학교가 소속된 교회를 짊어지고 나아갈 중심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 교회학교에서 받은 영향은 성인이 될 때에는 매우 막중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학교는 그 기능을 잃어버린 채 오리무중 상태에 빠졌다. 여기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산재해 있다. 교회, 교사, 학생, 학부모 등은 모두 교회학교 문제의 전반에 기여하며 한국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을 재촉한 일등공신인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교회교육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은 뉴미디어 시대를 맞은 한국교회 교육의 변화된 모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교회학교의 학생들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교회학교 학생 수의 감소가 한국교회의 미래와 직결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때문에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학생들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해서 교회교육의 변화를 모색하고, 좀 더 다양한 교회교육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정보화시대를 걷고 있는 사회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회교육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 현재 한국교회 전반에 획일화된 교회교육의 문제점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교육비전의 결핍과 응용 실패 근본적인 한국교회 교육의 현실적 문제의 원인에는 교육적 비전의 결핍과 교육을 폭 넓은 교회적 응용에서 보지 못하는 데에 있다. 더 나아가 교회의 유기체로서의 기능약화, 교회와 가정사이의 연결 약화, 개교회 주의, 가치관의 혼란, 유해 문화 환경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개선을 위한 행동력의 부족, 교사들의 신앙교육에 대한 열정 부족과 결단력의 결여, 교육환경의 열악과 담당자의 비전문성, 프로그램 부족, 문화시설과 공간부족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천주교의 경우 한해 교회학교 학생 수가 2배 가까이 급증했으나 기독교의 교회학교 학생 수는 과거를 답습한 채 오히려 감소추세를 보이며 현실에 안주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문제 인식과 이러한 문제점은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인가에 대한 반성과 발전 방향의 모색이 시급한 실정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핵가족화의 현상이 크게 일어나 가정마다 자녀의 수를 점점 줄이고 있다. 자녀를 많이 가지는 가정이 줄어들기 때문에 당연히 교회학교 학생들의 숫자가 감소하는 것은 순리이다. 하지만 다른 종교에 비해 개신교의 학생들의 감소폭이 더 크다는 것은 사실이다. 사회적 현상으로 아이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종교보다 더 많은 감소폭을 보이는 것은 분명 교회 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교회학교를 찾은 아이들 중 대다수는 교회학교에서 뭘 가르치려고 하는지 그 근본을 알지 못한 채 출석에만 열중하고 있다. 일반학교에서 출석하듯이 교회학교를 찾은 아이들은 출석에만 문제가 없으면 그곳을 놀이터 삼아서 신나게 뛰어놀기에 바쁘다. 물론 교회학교 교사들이 체계적으로 아이들을 관리하겠지만 그 통제를 벗어나는 것은 언제나 아이들의 몫이다. 아이들은 성경말씀을 배우는 시간에도 떠들기 일쑤고 더 나아가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대들기까지 한다. 이미 교회학교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장소가 아닌 웃고 떠들고, 소리치고 뛰어노는 한낱 놀이터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무엇을 배워보겠다는 관심은 없고 오로지 자기만을 위한 하나의 장소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책임이 크지만 이를 모른 채 신성함을 해치고 막무가내로 휘젓고 다니는 아이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구시대적 신앙전달 방식 고수 지금까지 교회학교의 교육은 책중심의 교육이 다반사다. 더욱이 언어를 통한 직접적인 전달방법이 주류를 이뤄왔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뉴미디어 시대에 적합하지 않는 구시대적 발상이다. 오늘날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언어를 습득하기 전에 텔레비전을 보면서 자란다. 결국 다양한 화면변화에 익숙한 아이들이 영유아부에 출석하면, 답답함과 지루함을 겪게 된다. 평소 스마트폰 통해 빠른 화면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언어와 책으로만 진행되는 성경공부와 기타 활동시간은 금방 싫증을 낸다. 때문에 성경을 보다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요구에도 대다수의 교회들이 시대적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아이들의 교회 출석율은 점점 줄어들게 되는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또한 현재 교회교육은 일방적인 내용전달의 역할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인격향상을 위한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입장도 나오고 있다. 자녀의 수가 줄어들고, 친구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적어지면서, 인간관계를 자연스럽게 배우거나 훈련할 기회마저 없어졌다. 하지만 교회에서 실시되는 교육은 교사들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고, 학생들을 그저 듣는 입장에서 멈춘다는 점이다.이러한 문제는 점차 흥미를 감소시켜, 학생들의 감소를 부채질하는 사태를 가져왔다. 때문에 학생들을 가르칠 교사들은 이러한 부분을 대신 충족시켜줘야 한다. 이처럼 주일학교 문제점 중 교사의 양적, 질적 문제는 심각하다. 중대형교회 정도가 되어야 교사의 수급이 어느 정도 가능하고, 중형교회라 할지라도 노령화된 교회는 여전히 주일학교 교사지원자가 부족하며, 교사가 선발되어도 질적으로 교육과정을 거친 교사로서의 수급은 아직도 부족한 현실이다.주일학교 교육현장에서 참된 기독교교육을 통해 어린이를 양육하려면, 교사 자질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교사로 구원의 확신이 있는 교사라야 구원의 진리를 가르칠 수 있다. 학교교육에 밀린 신앙교육 문제 한국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학교교육에 치우친 결과 교회교육에 무관심하게 되면서, 학교수업의 정규과정 외에 학원과 과외공부로 고입, 대입시험 등을 준비하는 것은 이미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되는 양상이다. 이로써 주일학교 교육의 침체는 교역자의 목회철학에도 기인하고, 가정의 학부모에게도 그 원인이 있다. 물론 몇몇 교회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목하고 공부방, 어린이영어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러한 대안으로는 극복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독교교육은 이 기독교철학을 근거한 기독교 교육철학의 범주를 떠날 수 없다. 이것이 교회교육만이 갖는 독특성이다. 그래서 기독교교육의 내용은 인간의 사고와 경험, 그리고 역사 등으로 얻어진 지식을 다루는 일반교육과는 달리, 하나님 중심의 말씀을 근거한 교육이다. 교회내 주일학교 교육은 발달단계에 따라 영아부에서 노년부까지를 연령별로 구분하여 교육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장차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어린이들 교육에 중점을 두고 문제점들을 극복해야 한다.  주일학교 교육과정상의 문제점도 들 수 있다. 다양한 지역 환경에 있는 아동과 다양한 지식수준, 문화 환경에 있는 교사들의 질적 수준을 감안하지 못한 점은 더욱 보완해야 한다. 또 유·초등부 어린이들의 교회 출석일수와 교육시간이 매우 부족하다. 일반 학교교육과 주일학교 교육의 차이점 중에 하나는 교육활동 시간의 차이에 있다. 교육이란 적극적인 참여와 자세에서 그 효율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부모가 믿지 않는 불신 가정에서 출석하는 어린이 경우에는 출석이 불확실한 경우가 많다. 또한 주일학교 교육은 종교교육이라는 차원에서 일반 학교와는 달리 의무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인의 과정조차도 교회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경우가 있어 교육내용 하나를 배우면 하나를 까먹는 어린이들이 대부분이다. 또 신앙과 삶을 연결해 주는 현장교육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예로 사랑을 이론적으로 아무리 주입시켜도 그것은 사랑에 관한 지식일 뿐 사랑을 학습시킨 것이 아니다.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양로원, 고아원 등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사람들로 찾아가 예수의 사랑을 배울수 있도록 그 현장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교회 성장에 큰 기여 오늘의 한국교회의 성장의 배후에는 과거 주일학교의 어린이교육이 기여한 바가 크다. 대부분 유·초등부 시절 주일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학생들이 한국교회의 역량있는 일꾼이 되었음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성장한 교회는 과거 많은 수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출석했다. 현재의 어린이교육은 미래 교회의 일꾼을 양성하는 일이고, 한국 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중차대한 일임에도 교회교육에서 교육재정은 심히 열악한 게 현실이다. 교회의 침체된 원인 중의 하나가 주일학교 교육에 투자하기보다, 외형적인 성전건축에 만 주력하는 교회의 행정방침이 가장 큰 문제이다. 현재 교회들은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실행하고 있다. 영성교육 프로그램은 물론 취업, 입시, 음악, 미술, 율동 등의 일반적인 교육프로그램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일반교육 프로그램들은 영성교육과 연계하여 흥미를 이끌 수 있는 보조적 성격이 강했다. 또 불신자들에게 신앙의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매개체적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영성교육의 비중보다는 흥미위주의 교육이 늘고 있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일반교육프로그램과 영성교육프로그램이 서로 연계가 되지 않고, 각기 다른 형태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 문제화되고 있다. 교회는 일반교육 프로그램 중 가장 보편적으로 음악교육을 사용하고 있다. 피아노, 드럼, 기타 등 교회에서 사용하는 악기는 물론, 보컬과 율동 등 다양한 음악교육프로그램이 생겨났다. 음악을 이용한 교육프로그램은 교회복음과 관련되어 영성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또 선교 교육과 부합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애용한 교육방법이다. 하지만 너무 보편적인 교육방법이기 때문에 다른 교회들과 차별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많은 교회들이 다양한 일반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영성향상 위한 교육지원 시급 일반교육의 비중이 늘어나는 또 다른 원인으로 현 교계상황이 작용하기도 했다. 기독교는 교회의 역사에 비해 어떤 종교보다도 부흥의 속도가 빨랐다. 수많은 교회들이 생겨나고, 신자의 수도 급속하게 늘었다. 하지만 현재 교회는 포화현상으로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교회들은 이러한 답보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회의 새로운 부흥의 대안으로 일반교육 프로그램이 가장 많이 거론됐다. 교회들은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부흥의 역사를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교회의 부흥을 위한 의도가 앞서다보니, 주객이 전도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교회교육의 주목적은 영성향상에 기반해야 한다. 그런데 부흥에만 치중하다보니, 영성교육과 일반교육이 연계가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특히 가장 문제되는 것은 영성교육보다 일반교육이 우선시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이 가장 큰 관심의 대상에 편중됐다. 입시와 같은 교육현안은 물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춤이나 취업교육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교육프로그램은 흥미위주이다. 그들이 교회에서 더 이상의 만족을 얻지 못하거나 흥미를 잃게 되면 신앙의 의미를 잃을 수도 있다. 흥미위주의 교육프로그램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은 줄 수 있다. 하지만 영성향상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단발성 이벤트로 끝날 수 있다. 더 나아가 교회가 영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장소가 아닌 행사장으로 인식되는 폐해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가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사람들에게 보람된 일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영성교육이 우선적으로 선행돼야 한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영성교육과 일반교육의 체계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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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03
  • 세속화 극복위한 한국교회 변화와 갱신 절실
      ▲ 한국교회는 눈부신 성장으로 양적 성장을 이뤄냈지만 세속화 물결속에서 성경의 본래적 정신을 상실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세속화 물결을 극복못하고 기독교 중심사상인 나눔과 섬김정신 상실영성회복으로 신앙본질과 교회정신을 일깨워 사회적 공신력 회복해야  한국교회는 1960년대 이후 눈부시게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선교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성공적인 부흥을 이루어냈으며, 1960년 5천개에 불과한 교회가 2010년에는 8만 개로 50년 사이 16배로 늘어났고, 교인 수도 같은 기간 동안 60만 명에서 900만 명으로 15배로 늘어났다. 오늘날 한국 장로교인은 미국 장로교인의 두 배에 달하며, 한국 감리교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교세를 가지고 있다. 교회성장 과정에서 초대형교회도 많이 생겨났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가장 큰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한국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10개 가운데 5개가 한국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해외 선교사 파송국이 되었다. 한 마디로 그동안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은 그야말로 눈부신 것이었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급성장의 요인에는 상황적 요인과 교회적 요인이 있다. 우선 1960년대 이후 몇 십 년간 한국에서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과 변화가 교회성장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1960, 70년대 군부독재 체제 아래서 정치적인 공포와 불안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을 때 마음의 평안을 제공하는 종교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었다. 경제적으로 절대적 빈곤 혹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질적 축복을 약속함으로 종교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종교가 소속감과 공동체성을 마련해 주었다. 이러한 심리적, 사회심리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았던 것이다. 신뢰회복 위한 개혁·변화 절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존경과 신뢰를 받았던 한국교회는 현재 신뢰도를 상실하고 부흥도 안 되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공신력을 잃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천만을 자랑하던 교인들은 400만으로 급감했고, 8만여개의 교회는 절반인 4만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 상태에서 변화가 없다면, 다수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아닌 소수종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보다 근본적인 개혁과 갱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거세다. 물론 종교의 성장과 쇠퇴에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요인이 결정으로 중요하다. 가장 부유한 유럽 국가들에서는 교회가 현저하게 쇠퇴하는 반면에, 가장 가난한 아프리카에서 교회가 눈부시게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한국의 경제 수준, 복지 수준, 교육 수준은 크게 향상되었다. 오늘날 한국인은 꽤 잘 산다. 1인당 국민소득이 1960년에는 80 달러에 불과했으나 2014년에는 2만 6천 달러에 달하게 되었다. 흔히 1인당 국민소득이 5천 달러를 넘게 되면 종교적 관심이 약해지기 시작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1989년 1인당 국민소득이 5천 달러를 넘어서게 되었다. 이제 배부르고 따뜻하고 편한 삶을 누리면서 한국인은 서서히 종교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잘 먹고 잘 살게 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번영의 복음’을 찾지 않게 되었고, 아울러 뜨거운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도덕성, 공동체성, 정체성을 상실했다. 특히 종교의 세속화는 신앙의 본질에 있어서, 종교의 존립에 있어서, 그리고 그것의 사회적 평판에 있어서 더욱 치명적인 것이다. 그것은 세속화가 영적이고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고귀함을 파괴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세속화의 물결을 거스르지 못했고, 그것을 넘어설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물결에 휩쓸려 표류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세상적 부와 명예와 지위에 탐닉하면서, 그동안의 성공신화에 취하여 자만하면서 교회의 본질인 영성을 잃어버렸고, 이것은 나아가 사회적 공신력 상실과 교회의 양적 쇠퇴를 가져왔다. 현재 한국교회가 보여주는 모든 문제는 극심한 세속화에서 비롯되고 있다. 교회가 공공성을 상실한 채 사유화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자본주의적 물량주의는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란 정신을 갉아먹으며, 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인간중심의 질서로 영성 상실 가난과 질병, 그리고 피압박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던 한국교회의 십자가는, 빛을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인간중심의 질서가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가진 것이 없고 누릴 것이 없었을 때 오히려 신앙적인 역동성이 있었고, 사회적으로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그러나 많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누리게 되면서 한국교회는 영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교회의 양적 성장이 영적 쇠퇴를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공신력의 상실로 이어졌다. 성공에 취하여 그 열매를 즐기는 동안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멀어져갔다. 교회는 커졌으나 섬기는 종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부유해졌지만 교만해졌다. 여기에다 한국교회는 기독교의 중심사상인 나눔과 섬김의 선교를 상실해 가고 있다. 한국교회는 성직매매, 이단·사이비단체에 면죄부 판매 등 중세시대의 교회를 연상케 하는 잘못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교회를 바르게 이끌어야 할 성직자들은 세속의 논리로 목양하고,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직업정신으로 거룩해야 할 성직을 팔고 있다. 공인되지 않는 신학교를 통해 대거 배출된 목회자들은 교회성장 지상주의 관점에서 교회를 기업화하는 모습이다. 다수의 목회자들은 자신의 목회 현장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다수는 교회의 열악한 물적, 인적, 시설 자원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양적, 영적 위기에 대해서 그들 모두 연대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국교회는 60-70년대 크게 성장하면서 큰 교회당 건축에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한국교회가 세속주의와 이기주의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높다. 목회자와 교인들이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세속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들면서, 하나님의 질서에 도전하는 행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특히 기도원 건축, 주차장 확보 등이 하나님의 이름 아래 환경을 파괴하는 1등 주범으로 떠올랐다. 이것에 대해 기독교인 모두는, 환경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고,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행위라는데 공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파괴되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도전행위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도시교회들이 부동산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이, 농어촌의 교회와 도시의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은,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한국교회의 웅장한 건물들은, 부의 상징, 자본주의의 상징이 되어 버렸으며, 교회의 신뢰도를 약화시켰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는 단 10.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불교사회연구소는 지난 해 3대 종교의 사회적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천주교(39.8%), 불교(32.8%), 기독교(10.2%) 순으로 나타났다. 기독교의 사회적 신뢰도는 10.2%로, 지난 해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조사 발표한 사회적 신뢰도가 19.4%였던 것과 비교할 때 절반 가까이 하락한 수치를 보였다. 또 ‘기독교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전체의 62.5%로, 천주교(22.8%), 불교(24.3%)에 비해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성직자의 경우도 마찬가지, 신부님(51.3%), 승려(38.7%), 목사님(17%) 순으로 기독교 성직자의 신뢰도가 가장 낮았다. 한국사회와 사회기관들에 대한 신뢰도는 의료계(21.9%), 시민단체(21.5%), 금융기관(20.5%) 순으로 나타났으며, 종교계는 신뢰도 11.8%로 낮은 편이었다. 이처럼 한국교회가 사회적 존경과 신뢰를 잃게 된 것은 무엇보다 교회가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성장의 부작용’일 수 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분명히 경이적인 성장을 이루어냈고, 여기서 목회자들의 헌신과 열정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교회는 성공과 번영이 하나님의 축복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드러난 성장, 인상적인 조직과 건물에 대한 자만심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이 십자가를 지기보다는 성공, 부, 학위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성회복 통한 세속화 극복 관건 어떻게 한국교회는 세속화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길은 단 하나다. ‘영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영성’이라는 용어가 너무 흔히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다시금 ‘영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교회는 세속화되어 영성을 상실했고, 이것이 한국교회 위기의 근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성은 신앙의 본질이며, 교회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영성은 신적인 가치, 영적인 가치, 성스러운 가치, 초월적인 가치, 신앙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영성을 회복하는 일이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감당해야 할 절대적인 명령이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하는 영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국교회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마음이 가난해져야 한다. 물론 한국교회의 삼분지 이가 미자립교회이며, 많은 교회가 경제적으로 여전히 가난하다. 그러므로 가난해져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부유한 교회, 소위 성공한 교회 지도자다. 물질과 권력은 영적인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 이것은 성공에 대한 우월감과 성장에 대한 자만심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교회 지도자, 특히 대형교회 목회자는 스스로 낮아져야 한다. 그것은 대형교회 목회자나 교계 지도자일수록, 성장과 성공을 이루어냈다고 자부하는 목회자일수록 권력과 물질과 명예에 더욱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 지도자가 마음을 비워야 한국교회는 살 수 있다. 이 세상에서의 부귀, 권세, 명예는 내려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영적 지도력을 약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영성은 종교만이 가지고 있고, 핵심적인 종교 가치이기 때문에 종교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종의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비움의 영성’이 목회자를 높일 것이며, 교회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서구 선진사회를 닮아가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 상황은 교회성장을 어렵게 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교회가 영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신뢰를 잃고 있다. 한국교회 신뢰 회복을 위한 지상명령은 영성의 회복이다. 이때 영성 회복의 우선적인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으며, 한국교회 신뢰 회복의 열쇠 또한 목회자가 쥐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변해야 한다. 교회의 본질,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달라져야 한다. 이것은 나아가 사회적 공신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 교계종합
    • 기획
    2015-12-03
  • 연합과 일치로 한국교회 변화와 개혁이 절실
    임원들에 대한 추문과 칼부림 사건 등 심각한 이미지 실추 우려 ‘대한예수교장로회’란 명칭을 사용하는 교단이 수도없이 난립 본지 창간 5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교단과 연합기관의 갱신과제를 진단한다. 한국교회를 향한 변화의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갱신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미 개교회에서의 잘못된 관습과 부조리한 운영행태 등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타파하기 위한 노력들이 여기저기서 노력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연합기관과 교단차원에서는 아직까지 갱신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목소리는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해서 반드시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부분이다. 특히 한국교회의 지속된 분열은 교계연합운동을 위한 연합과 일치정신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분열과 대립으로 한해 마감·2015년의 교계·저물어가는 한해를 돌아보면 올해 역시 한국교회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다. 대한기독교감리회가 수년간 지루하게 이끌어오던 감독회장 소송을 마무리하나 싶었지만 후폭풍이 일면서 다시금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또 사회적인 관심을 받았으며, 한국교회를 대표할 단체를 목표로 교단장협의회가 창립되어 한국교회가 나아가야할 연합운동의 방향을 주장했다. 각 교단들은 총회를 통해 새로운 교단장과 임원들을 선출하고, 통합을 통해 여러 안건들을 다루면서 충돌을 빚는 경우도 있었다. 총회장과 총무에 대한 추문과 목회자의 칼부림으로 인한 심각한 이미지 실추 등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은 사건이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 가운데 가장 안타까운 것은 7·7정관을 둘러싸고 한국교회연합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통합에 실패한 것이다.NCCK와 더불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관이었던 한기총으로의 통합가능성이 낮아지면서 교단과 교단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연합기관의 분열이 얼만큼 위험을 가지는지 분명히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많은 분열을 경험했지만, 연합기관의 통합문제, 특히 이단사이비 문제로 인한 거대 연합기관의 분열은 사상 초유의 사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많은 교인들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는 비단 연합기관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해도 여전히 분열하는 교단이 나타났다. 예장 대신측은 백석과의 통합을 추진하여 성공하는 듯 보였으나, 일부 교회들과 내부갈등을 빚다 결국 분열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단내부에서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결국 갈라서는 모습은 연합단체에서 보여준 일부 목회자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난립하는 교단과 연합기관·교단과 기관의 분열도 문제이지만 난립하는 교단과 단체도 연합운동의 방해요소가 되고 있다. 현재 한국교회는 크게 장로교와 감리교, 성결교, 기하성과 같은 오순절계통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시 여러 개의 교단으로 나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장로교의 경우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제외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란 명칭을 사용하는 교단이 수도 없이 난립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장 통합측과 합동측을 중심으로 고신측과 합신측, 개혁측 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외 나머지 교단들의 경우 서로의 이름만 조금씩 바꾼 교단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더구나 공식연합기관에 등록되지 않고서 교단이라 주장하고 있는 곳을 포함하면 어림잡아 백여개가 넘는 교단들이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때문에 일반 사회에서 한국교회를 바라볼 때 자칫 ‘분열을 반복하는 종교’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하다.연합기관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지역의 기독교연합단체를 제외하고서라도 초교파적인 연합단체는 수십여개에 달하고 있다. 물론 연합단체는 뜻있는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같은 가치관과 비전을 공유하며 설립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 단체의 경우 한 사람의 목회자가 설립해 그 목회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있다. 비록 일부의 문제이긴 하나, 이러한 모습은 연합운동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예가 되고 있다. 한국교회의 분열은 신앙의 가치관이 문제가 되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분열하는 한국교회의 변화와 갱신을 위해서 ‘연합운동’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인 것이다.
    • 교계종합
    • 기획
    2015-12-02
  • ‘첫 수확’드리는 감사절기의 조정 시급
    한 해 수확 감사하며 이웃과 나누는 본래 의미 되새겨야 민족 대이동기간 헌금 감소 문제 등 실질적인 우려 팽배   한국교회 대부분은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그러나 추수감사의 원래의 의미를 고려한다면, 한국에서의 이 시기는 추수감사 시기로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다양하고, 농경사회에서 고도의 산업정보화 사회로 변화했음에도, 첫 수확을 하나님께 바치며 감사하는 의미의 추수감사절의 원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추수감사절은 중추절 시기에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개교회주의 확산이 가속화되고 있는 이런 현실에서 추수감사절 시기의 재조정을 위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이주자들에 의해 시작·미국에서의 최초의 추수감사절은 첫 번째 수확기였던 1921년 가을에 플리머드 정착지에서 미국 이주자들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이주자들과 인디언 손님들은 야외에서 여러 음식을 차려놓고 일주일간 이 추수감사절로 지킨 것으로 전해진다. 17세기를 지나면 이 추수감사절은 미국 코네티컷주와 메사추세츠주의 연례적인 절기로 정착돼 확산됐다.  한국에서는 1904년부터 감사절을 처음으로 지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4회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에서 서경조장로의 제의로 감사절로 정해 지키기로 한 것이다. 당시 장로교 공의회는 다른 교단의 선교부와 협의해 추수감사절 시기를 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장로교가 우선 11월 10일을 추수감사절로 선정하여 지키기로 했다.  1914년 각 교파선교부의 회의를 거쳐 미국의 선교사가 처음으로 조선에 입국한 11월 3주일후 3일, 즉 11월 셋째주 수요일을 감사일로 지키기로 했다. 또 예배를 통해 모아진 헌금은 총회전도부로 보내 전도사업에 쓰기로 했다. 이후 수요일을 주일로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추수감사절 시기는 한국의 상황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한국교회 초창기 첫 선교를 기념하며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의미로 11월 셋째주를 감사절 시기로 정한 것은 유의미하지만, 이제는 ‘추수감사절’의 용어에 맞게 시기를 재조정해야 할 때가 됐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상황에서 첫 소출을 하나님께 드리고, 1년간 보살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의미의 절기는 추석이기 때문이다.  ◆추석에 맞춘 감사절기 필요· 추석은 농사를 지은 후 기쁨의 행사로 음력 8월 한가위를 맞아 행하는 한민족의 명절이다. 한해의 수확에 대해 감사하고, 이를 가족 및 이웃과 나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그 의미는 분명 추수감사절과 일맥상통한다. 유대인들은 맥추감사절로 이를 지켜왔다. 맥추절은 유대인의 가장 오래된 절기이며, 일반적으로 칠칠절, 오순절 등으로 불려 왔다. 칠칠절은 보리 수확의 첫 단을 하나님께 드린 초실절부터 시작하여 7주간의 곡물 추수기가 끝난 뒤의 시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오순절 명칭 또한 추수기와 관계된 용어로, 이날이 초실절 다음 달부터 계산하여 50일째 되는 날에 해당되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해석된다.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교회는 미국의 추수감사 절기를 한국에서 드리는 것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매년 추석 전후로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 외국인노동자 등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웃을 초청하는 행사도 개최한다. 성찬예식에 우리 고유음식인 떡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한해의 수확물을 감사하는 추석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취지로 진행된다. 이런 의미에서 기존의 예배형식을 탈피해 전통적인 형식으로 국악찬양 등 국악예배를 드림으로써 전통문화와 결합된 토착적 예전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교단별로 추수감사절 시기 재논의해야·추수감사절에 토착적 형태의 새로운 예배 형식을 도입하는 교회도 늘고 있다. 한국의 전통문화와 기독교의 예전이 어떤 형식으로 결합할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시도되는 것이다. 전통예배를 드린 후 풍물패들이 회중으로 들어와 흥을 돋우면서, 성도들과 함께 교회 마당으로 나가 덩실덩실 한가위 춤을 추기도 한다. 추석 시기에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헌금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민족의 대이동이 있는 추석 시기에 감사절을 지키게 되면 추수감사절 헌금이 감소할 것이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하는 의미의 추수감사절 원형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 헌금문제 고민보다 더 중요하다. 이제 한국교회가 추석 시기에 맞춰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교회의 사례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추수감사절을 변경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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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1-11
  •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
    차별금지법대책위는 국회의원회관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포럼을 진행했다.   차별금지법대책기독시민연대(대표=임성택목사)가 주최하고 강서구기독교총연합회(총회장=박유선목사)가 주관한 포럼이 「차별금지법의 올바른 이해」란 주제로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진행됐다. 〈관련기사 2면〉 박유선목사는 환영사를 통해 “동성애 등이 교회를 위협하는 지금, 우리는 개교회주의를 넘어 서로 연합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선포해야 할 것이다”며, “주의 몸 된 교회를 수호하고 생명을 살리는 사명을 감당하자”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1부 예배, 2부 포럼 순서로 진행됐고, 예배는 김창배목사(영광교회)의 사회로 노경욱목사(산성교회)의 기도, 소강석목사(새에덴교회, 한국교회동성애대책본부장)의 설교, 박유선목사(대은교회)의 축도로 마쳤다. 소목사는 설교에서 “성경은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인권의 탈을 쓰고 우리 가운데 스며들고 있다. 반드시 막아야 할 것이다”며, “동성애를 조장하고 독소조항이 포함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선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이 중요하다. 그들이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정치를 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태희변호사는 「동성결혼과 차별금지법안의 문제점」이란 제목의 발표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건강한 사회의 근간인 ‘혼인제도’와 ‘가정질서’를 뒤엎는, 매우 중차대한 사안이다”고 말했다. 또 “대한민국 헌재와 대법원은 결혼을 ‘1남 1녀 간의 정신적·육체적 결합’이다”고 정의했다.  이변호사는 또 지난 2012년 발의된 차별금지법안과 관련하여 “이것이 통과되면 동성애나 특정 종교를 비판하는 일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전도 행위 역시 차별금지라는 명목으로 제한받을 수 있다”며 “따라서 차별금지법안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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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1-11
  • 대국민 종교별 신뢰도 여론조사서 최하위
    ▲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 대강당에서 '2017종교개혁 500주년 한국 교화개혁갱신실천대회'가 개최됐다.     3대종교 모두 ‘재정 운영의 투명성’ 부분서 부정적 평가 높아 ‘사회봉사 활동을 가장 적극 수행하는 종교’로 기독교를 선정 종교계에 대한 일반인의 신뢰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3대 종교별 신뢰도 조사에서는 천주교가 가장 높고, 기독교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8일 만 16세 이상 전국의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2015년 한국의 사회·정치 및 종교에 관한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사회 및 사회기관 중 종교계에 대한 신뢰도는 11.8%로 나타났다. 지난해 25.0%에 비해 대폭 낮아지면서 전체 6위에 그쳤다. 의료계(21.9%) 이어 시민단체(21.5%), 금융기관(20.5%) 등의 순이었다. 3대 종교별로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는 천주교가 ‘신뢰한다’는 응답률이 39.8%로 가장 높았고, 불교는 32.8%, 기독교는 10.2%였다. 성직자에 대한 신뢰도 역시 신부가 51.3%로 가장 높았고, 승려는 38.7%, 목사는 17%에 불과했다. ◆영향력은 증가 신뢰도는 하락·이번 조사는 우리사회에서 종교가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증가했다’는 응답이 40.4%로 ‘감소했다’(19.4%)보다 많았다. 종교별로는 기독교가 ‘영향력이 크다’는 응답률이 42.3%로 가장 높았고, 천주교는 36.3%, 불교는 26.7%였다. 3대 종교에 대한 항목별 평가에서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 모두 ‘약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위로한다’는 항목의 긍정적 평가율이 가장 높았다. 반면 3대 종교 모두 부정적 평가율이 가장 높았던 항목은 ‘재정 운영의 투명성’이었다. 한국사회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당면 문제로는 빈부격차의 해소(42.8%)를 가장 많이 꼽았고, 한국사회에서 가장 소중한 사회적 가치로도 ‘공평/평등’(24.3%)’을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삶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미래’라는 응답이 33.8%로 가장 많았고, 빈곤(18.0%)과 질병(13.3%)이 그 뒤를 이었다. 이번 조사에서 기독교에 대한 정보 출처를 분석한 결과 비기독교인은 TV, 신문 등 언론매체를 통해 기독교를 가장 많이 접한다고 응답했으며 다음으로 가족, 친구나 이웃(25.8%), 인터넷(12.8%). SNS(4.9%)순으로 나타났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이원규교수(종교사회학과)는 “한국교회의 낮은 신뢰도 책임은 목회자와 교인 모두에게 있으나 본질적 문제는 부도덕성 혹은 세속화이다”며, “성직자가 성직자답지 못하고, 교인이 교인답지 못한 것이 한국 교회의 신뢰도를 바닥까지 추락시키는 원인이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교회의 도덕성 수준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한 한국 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신뢰를 회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최근 매스컴에 보도된 교회 운영의 비리/부정부패, 목회자의 성적 타락 및 윤리 문제, 교회의 대형화와 세습, 교회 재정의 불투명성 등은 한국 교회에 대한 불신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장자와 종교인 성범죄 급증·교인들과 국민들의 신뢰를 받아야 할 목회자들이 막말, 비하발언, 간통, 강간 등 비윤리·비도덕적 행동을 일삼으면서 교회와 목회자들의 신뢰도가 하락하고 있다. 성직자 등 종교인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밝혀진바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성직자와 종교인의 성범죄는 401건에 이른다. 범죄 종류별로는 강간강제추행이 376건, 몰카범죄 13건,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범죄 12건 순이다. 이 수치는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은 것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사건은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문제는 ‘교회에 덕이 안 된다’, ‘선교에 방해가 된다’ 등의 이유로 성직자의 성범죄 사실을 은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교회를 들여다보면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으로 교회가 분열되는 등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또한 교단마다 성범죄를 둘러싸고 목회자를 고소고발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성돈교수(실천신학대학원)는 “목회자들은 교회의 성장 및 개교회의 이익과 필요에만 매몰되지 않고 한국 교회 전체의 미래에 대한 관점을 갖추어야 한다”고 밝혔다. ◆사회봉사 통한 신뢰회복에 희망·한국 교회가 실추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결정적 근거는 도덕성 수준을 높이는 일이지만, 사회봉사의 활동을 통한 신뢰성 회복도 기대된다. 이번 조사에서 ‘사회봉사 활동을 가장 적극 수행하는 종교’로 기독교(41.3%)가 가장 높은 수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가톨릭(32.1%), 불교(6.8%)와 비교해 보았을 때도 현격한 차이를 보여 한국 교회가 사회봉사에 있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많은 이들이 종교의 가르침 가운데 박애, 사랑, 자비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데, 그 가치의 실현은 희생과 헌신을 수반한 사회봉사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사회봉사 활동의 수준은 종교를 평가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교계종합
    • 기획
    2015-11-04
  • ‘복음의 본질’로 기독교가치를 실현
    ‘2017종교개혁500주년성령대회’와 (사)세계성령중앙협의회는 지난달 29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2017종교개혁500주년 한국교회개혁갱신실천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장향희목사의 사회로좥회개와 개혁좦, 오범열목사의 좥연합과 실천좦두 파트로 나눠 진행됐으며, 전 파트에서는 개회사에 정인찬목사(세계성령중앙협의회 대표회장)가, 기도에는 권경환목사(여의도순복음시흥교회)가, 성경봉독은 전용태장로(세계성시화운동본부 총재), 권태진목사(군포제일교회)가 「거룩하심에 참여하자」란 제목으로 설교를 전했다. 두번째 파트에서는 김영진장로(대회장, 월드키카 대표)가 성경봉독을 한 후 소강석목사(대표대회장, 새에덴교회)가 「회개하고 연합하라」란 제목의 설교, 박명수목사와 김종양목사, 이호선목사, 윤민자목사, 김창곤목사, 이말테목사, 김명혁목사와 박흥일장로가 한국교회개혁실천기도를 이끈 후 민경배목사(백석대 교수)가 개혁실천선언을 한 후 김용완목사(서울순복음교회 원로)가 축도했다. 참석자들은 선언문을 통해 한국교회가 △다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목회자의 영성과 윤리성 회복에 앞장서야 한다 △개교회, 교단, 교권주의를 극복하고 연합해야 한다 △교회선거를 더 공정하게 깨끗하게 치뤄야 한다 △교회 내 문제를 세속 법정으로 끌고 가지 말고, 교회 내 중재기관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기독교적인 정신과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궁극적인 뜻인 민족·세계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은 마지막으로 “교회가 비록 불완전하지만,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갱신의 대상이며, 부단히 개혁해서 하나님 구속사의 선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며, “지금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칭의와 중생의 복음 위에 웨슬리의 성결과 오순절의 성령의 세례가 다시금 필요하다”면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성경과 성령으로 돌아가 교회를 새롭게 하고, 바로선 교회가 하나님 구속사의 중심·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교계종합
    • 기획
    2015-11-04
  • 사회법 소송통한 문제해결 부작용 심각
    교회 내부적인 문제를 사회법으로 가져가 대외 이미지 하락한국교회 신뢰회복 위한 자체적인 법적·제도적 보완이 시급 최근 한국사회에서 개교회는 물론이고 교단이나 기독교단체의 갈등이 자체적으로 수습되지 않고 사회법정 소송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각 교단마다 헌법을 중심으로 한 교회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법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이 증가하고 있다. 내부갈등으로 인한 소송건수는 조금씩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교계를 대표하는 교회나 단체들이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교회법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법에 의지하는 것은 한국교회에 대한 오해를 크게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법에 의지해 법정에서의 심판을 요구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갈수록 증가하는 법정소송·한국교회는 지금까지 급격한 성장을 이루며 부흥해 왔다. 그러나 그만큼 갈등과 분열도 많이 겪었으며, 지금도 여러 갈등이 생겨나고 있어, 분열 속에서 성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엔 교단이 분열하게 될 정도의 큰 갈등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교회 안에서 화해하고 마무리지어 왔다. 그러나 최근엔 갈등의 당사자들이 서로 상대방을 고소하거나 고발하는 등의 법정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원의 판단에 문제해결을 맡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법원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1년간 진행된 총 민사소송 건수는 총 379만 건이었으며, 그 중 교회와 관련된 건수가 69만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소송건수의 약 18%에 이르는 수치로, 교회갈등으로 인한 법정소송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후의 정확한 통계자료는 아직 나오고 있지 않지만, 현재 교회의 내부갈등으로 인한 소송건수는 더 늘어났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신뢰를 잃고 있는 한국교회·때문에 교계에 대한 사회의 시선도 점점 따가워지고 있다. 특히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가 고소고발을 남발하면서 한국에서 기독교는 이제 더 이상 존경을 받지 못하는 종교로 낙인찍히며 신뢰를 잃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교회들의 소송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교회에 대한 신뢰도 바닥을 치게 됐다. 이러한 신뢰의 추락은 결국 교인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문화관광부에서 발간한 국내종교현황에 관한 자료에 따르면, 10년간 기독교인의 수는 143,898명이 감소한 것에 비해 불교가 405,451명이 증가했으며, 가톨릭은 무려 2,195,417명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회의 신뢰도 추락으로 인해 교회를 이탈하는 교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가톨릭신자의 급증은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각에서는 교회에서 실망한 교인들이 결국 성당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불교의 경우 기독교와 유사점을 발견하기 힘들지만, 가톨릭의 경우 기독교와 한 뿌리라는 생각으로 교회를 이탈한 교인들이 거부감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뢰회복 위한 내부해결이 절실·가톨릭이 급성장을 보이는 이유는 ‘싸움없이 깨끗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것이 큰 원인으로 보인다. 실제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의 게시판에서 기독교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가톨릭에 대한 비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가톨릭에 대한 호감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가톨릭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내부적인 갈등이나 문제가 없을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가지게 된 이유는,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톨릭은 교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체제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내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자체적으로 해결함으로 법정소송을 통한 문제해결의 부작용을 겪지 않음과 동시에 ‘신뢰할 수 있는 종교’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교회의 문제는 교회법을 우선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은 결국 분쟁만 더 부추기게 되며, 사회에 대한 한국교회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기독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게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교회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과 함께 목회자들과 교인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 교계종합
    • 기획
    2015-10-28
  • 평화의 에큐메니칼 인재양성 협력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일본교회협의회 한 · 일 NCC 공동협의회를 개최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일본교회협의회(NCCJ)가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서울 한국기독교회관과 동숭교회(담임=서정오목사)에서  「동북아시아의 평화: 일본과 한국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제9차 한·일 NCC 공동협의회를 개최했다. 이번 만남은 지난 2004년 도쿄에서 이어 11년 만에 열린 회의로, 양국교회를 대표하는 신앙인 100여명이 함께했다. 또 10가지 연대방안과 실천과제를 담은 선언문을 채택했다.   첫날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협의회는 예배를 시작으로 세 번의 주제강연과 분과토론 등으로 진행됐다. 예배 메시지는 황용대목사(NCCK 회장)가, 강연은 이기호교수(한신대)·고바시 고우이치목사(NCCJ 의장)·유시경신부(대한성공회 교무원장)가 맡았다.   선언문에서 양국NCC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한반도 해방과 분단 70년이 지났음에도 동북아 평화가 계속해서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가장 먼저 “일본 아베 정권의 집단자위권 관련 정책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가운데 평화헌법 9조 정신을 지키기 위해 연대할 것이다”고 다짐했다. 또 “한반도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패권주의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남북한 평화조약 체결과 대북제재 해제 등 한반도 평화와 화해 통일을 위해 연대를 이어가겠다”고 약속했다.   양국 NCC는 향후 10년간 장기 선교과제로 평화헌법 9조를 지키는 실천하기로 하고, 개신교를 넘어 이웃종교와 시민사회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평화헌법 9조 제5차 아시아 종교인회의’를 위한 준비회의를 조속한 시일 내에 개최하기로 했다. 또한 8.15 직전주일을 ‘한반도 평화통일 공동기도주일’로 지킬 수 있도록 회원교회에 독려할 것을 확인했다.  이번 협의회에서 양국 NCC는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왜곡된 역사관에 기초한 역사교과서 문제가 한일 양국의 미래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며 “올바른 역사인식을 정립하기 위해 이른 바 ‘기억과의 투쟁’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교계종합
    • 기획
    201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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