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7-09(목)

교계종합
Home >  교계종합  >  기획

실시간뉴스

실시간 기획 기사

  • 시스템과 인프라 격차로 교회양극화 심화
     한국교회는 지난 40여년간 부흥에 부흥을 거듭하며 성장해 왔다. 특히 7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기를 거치며 이른바 대형교회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90년대 들어 대형교회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됐다. 그러나 이제 한국교회는 부흥의 정체기를 맞으면서 전체 교인수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교회는 여전히 건재하며 오히려 교인수가 더 늘어나는 교회도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교회의 양극화가 고착화되어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형교회는 인적·물적 인프라를 바탕으로 교세를 더욱 확장해나가고 있다. 때문에 수많은 개척교회들은 힘겹게 버티다 교회문을 닫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새로운 한국교회의 위기가 닥쳐올 전조라는 지적이다. 대형교회일수록 주일학교 활성화, 자녀위해 출석교회 변경 봉사에 지친 교인들, 편안한 신앙생활 위해 대형교회 출석도 ◆충성도 높은 대형교회 교인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K씨(35세)는 주일이면 서울시 서초구의 한 대형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출석하기 시작한 교회를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직장도 분당에 위치해 생활권이 분당, 수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옮기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 K씨는 “대학때부터 계속 다니다보니 익숙해져서 다른 교회로 옮기기 꺼려진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대학시절을 보낸 교회를 떠나기가 쉽지 않다”며, “인근의 다른 교회들도 몇 번 가봤지만 계속 출석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서초동이 거리가 좀 멀긴 해도 매일 출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 주변에도 좋은 교회들이 많지만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K씨의 생활권인 분당과 수지 지역에도 대형교회라 할 수 있는 교회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씨는 대학부터 다니던 서초구의 교회에 계속 출석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대형교회에 오랫동안 몸 담은 교인들일수록 교회에 대한 충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자녀가 있는 교인들의 경우 거리가 멀어도 대형교회에 출석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G씨(45세)는 약 70여명이 모이는 교회에 출석하다 최근 주일학교 문제로 분당의 한 대형교회로 옮겼다. G씨는 “대형교회에서 느낄 수 없는 분위기가 분명 있었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교회에 또래가 없다는게 마음에 걸렸다”며, “결국 고민끝에 주일학교가 활성화 되어있는 N교회로 옮겼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교회에 가고싶다는 생각을 가지려면 주일학교가 잘 운영되고 있는 곳에 출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과거 대형교회에 출석하던 교인들이 담임목사의 명성에 따라 움직였다면, 지금은 대형교회가 가진 시스템과 인프라가 교인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형교회 쏠림 현상은 결국 개척교회와 소형교회를 고사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대형교회 그늘에 가린 개척교회   인천에서 교회를 개척했던 P목사는 5년의 개척목회 끝에 교회문을 닫고 속초의 한 교회의 부목사로 가게 됐다. P목사는 “아무리 기도를 하고 열심을 내어보아도 한 두 명씩 오던 교인들이 결국 인근의 좀 더 큰 교회로 옮겨갔다”며, “가장 큰 문제는 큰 교회가 가져다주는 편안함인 것 같다. 교회가 작으면 작을수록 교인들에게 봉사와 희생을 강조해야 할 때가 많은데, 그런 것에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실제 작은교회에서 대형교회로 옮긴 교인들은 “주일이 너무 피곤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작은 인원이 교회를 꾸려가다보니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대형교회에 출석해보니 일부 열심있는 사람들 외에는 그다지 봉사에 대한 부담이 적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폭넓은 인프라를 가진 대형교회일수록 보다 안정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원하는 교인들에게 좀 더 편한 신앙생활을 하게 해 줄 수 있다는 현실과 맞물린다. 한마디로 교인들이 본인이 발로 뛰어야 하는 소형교회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대형교회를 선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대형교회의 성장과 개척교회의 파산으로 이어지는 ‘교회 양극화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양극화는 결국 정체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쇠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형교회가 이제 더 이상의 몸집불리기를 멈추고 주변의 작은교회들과 함께 상생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풀뿌리와도 같은 작은교회가 사라질 경우, 한국교회는 대형교회 독식으로 인해 교회의 다양성을 상실하고, 결국 더 이상의 전도와 부흥을 이루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다. 
    • 교계종합
    • 기획
    2017-06-16
  • 교계 동성애 반대운동 전략수정 필요
    ▲ 대선 토론으로 인해 성소수자 이슈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가운데, 한국교회가 동성애반대 운동을 위한 새로운 이론을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문재인후보에 항의하는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성소수자 이슈공론화 진행될수록 일부 교계주장 설득력 잃어 현재 젠더·퀴어 담론에 대한 연구통한 새로운 반박이론 필요    지난달 25일 제4차 대선 토론회에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후보에게 “군 동성애는 국방전력을 약화시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면서, 한국 정치역사상 처음으로 성소수자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문재인후보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대답했으며, 홍준표후보는 거듭된 질문 끝에 문재인후보로 부터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본격적으로 공론화 된 동성애  지금까지 이른바 ‘동성애’ 관련 이슈는 정치권에서 늘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 1997년 대통령선거 당시 처음 후보자들에게 성소수자 관련 정책질의가 있긴 했으나, 주요 이슈로 논의 되지는 않았다. 노무현정부 당시 공약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놓고 보수기독교계와 충돌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정치권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후 차별금지법은 지속된 보수기독교의 반대로 인해 무산되어 왔지만, 이 역시 우리사회에서 주요 이슈로 부각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TV로 생중계 된 대선후보자들의 토론에서 홍준표후보가 문재인후보에게 “동성애에 찬성하십니까?”라고 질문한 후 성소수자 이슈는 대선판의 주요 이슈 중 하나로 떠올랐다. 다음날 성소수자인권단체가 문재인후보에게 항의시위를 하다 연행된 사건으로 인해 성소수자 이슈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듯 불 타올랐다. SNS상에서 문재인후보 지지자들은 노골적으로 문재인후보의 편을 들어주며 성소수자 이슈를 공론화시켰다.  이후 보수기독교계는 공식적으로 홍준표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 했다. 지난 2일 기독자유당(대표=선영구목사)은 기자회견을 통해 홍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기독자유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전광훈목사(사랑제일교회)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홍준표후보에게 동성애 관련 질문을 문후보에게 던져달라고 주문했다”고 밝혔으며, 이후 “동성애를 계속 이슈화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홍준표후보가 대선토론에서 동성애 질문을 던져 이슈화가 된 것은 보수기독교계의 입김이 어느정도 작용했다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교계에서 동성애 이슈를 계속해서 공론화하려는 이유는 한 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최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시켜 동성애에 대한 문제점을 널리 알리고 차별금지법 등의 제정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성소수자 이슈가 사회적으로 공론화 되었을 때 교계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지의 여부는 부정적이다. 단적으로 대선 토론에서 정의당 심상정후보가 1분의 추가발언 시간을 사용하여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며, “성정체성은 말 그대로 정체성이다.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가 존중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본다”고 발언한 후, 심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급상승 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심후보는 토론에서의 발언 이전까지만해도 4.2%의 저조한 지지율을 보였으나, 이후 7.3%까지 올랐으며, EBS 여론조사에서는 11.4%까지 껑충 뛴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동성애 공론화가 가져올 득과 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가 동성애를 공론화시키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동성애 반대운동을 펼쳐 온 한국교회의 입장에서 차별금지법 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는 공론화를 통한 설득작업과 압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광훈목사를 위시한 보수기독교계의 전략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가 ‘동성애 이슈’를 바라보는 모습은 굉장히 편협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교회가 동성애 반대를 외치며 내세우는 이유들은 크게 △반성서적인 죄 △항문섹스로 인한 에이즈의 창궐 △전통적인 가정붕괴와 저출산 등으로 축약할 수 있다.  먼저 반성서적인 죄라는 논리는 사회에서 통할 수 없는 내용이다. 동성애는 곧 죄이기 때문에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비기독교인들에게 그 어떠한 공감도 이끌어 낼 수 없다. 성서를 기반으로 한 주장은 기독교 내에서만 통용되는 주장이자 언어이기 때문이다.  동성애가 에이즈를 퍼뜨린다는 주장도 빈약하긴 마찬가지다. 홍준표후보가 대선토론에서 “동성애로 인해 에이즈가 창궐하고 있다”고 발언한 이후 각 언론사에서는 이에 대한 펙트체크를 통해 근거가 빈약하다는 결과를 내 놓았다. 이러한 팩트체크 결과는 이미 온라인 상에서 기독교인들의 주장에 반박하는 근거자료로 쓰이고 있다. 특히 HIV 감염위험도에서 여성동성애자 경우 감염율이 제로에 가깝다는 결과로 인해 “에이즈가 두려우면 레즈비언을 권장해야 한다”는 반대의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가정붕괴와 저출산 역시 반박 당하고 있다. 아직까지 동성결혼이 인정되지 않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동성애가 전통적인 가정붕괴를 가져온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으며, 저출산은 동성애 문제가 아닌 갈수록 아이를 키우기 힘든 사회적 현실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동성애 이슈가 본격적으로 공론화 되었을때, 한국교회의 주장들이 사회적으로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의 여부는 그리 밝지 않다. 특히 가장 중요한 성서에 기반한 반대로는 절대 비기독교인들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박 위한 새로운 이론이 필요  현재 한국교회의 동성애 반대운동은 그 취지가 어떠하든 외부에서 보았을때 공격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동성애에 대한 반대를 주장하며 ‘죄’라는 용어와 ‘에이즈’라는 질병으로 이른바 공포마케팅에 가까운 주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회 용산나눔의집의 민김종훈신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보수개신교회가 강조하는 것이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혐오와 불안을 조장하고 적대시하여 가지고 있는 것들을 지키려하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며, “이런것들이 반복되다 보면 게토화 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신부는 “성소수자 영역은 이미 과학적으로는 이미 논란이 끝났으며, 사회영역에서도 논란이 끝나고 있는 부분이다. 신학적으로 논쟁을 할 수 있지만, 과학적, 사회학적으로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배워야 한다. 남은 것은 신학적 논쟁인데, 이 부분에 있어서도 앞서 있었던 과학적·사회적 논의에서 배워야 한다”며, “배우지도 않은 상태에서 발언하는 것은 매우 무모해 보일 수 밖에 없다. 본인들이 아는 신학적인 영역에서만 발언한다면 상관없겠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말하는 것은 결국 한국 보수개신교의 수준을 스스로 낮게 만드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이미 사회학적으로 동성애 이슈는 동성애를 넘어서 젠더학, 퀴어학으로 발전한 상태다. 보수교계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은 이미 사회학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이며, 특히 남성동성애에 한정되는 주장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미 학계에서는 이미 남성동성애를 넘어 무성애(Asexual)와 같은 넓은 범주의 성적지향에 대한 연구까지 마무리되어가고 있으며, 이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서서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현실은 결국 한국교회의 동성애반대 주장이 갈수록 사회 속에서 매우 편협한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크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의 공론화는 오히려 기독교계의 입지를 좁게 만들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이미 대선 토론과정을 통해 성소수자 이슈가 본격적으로 공론화가 된 만큼, 지금까지의 동성애 반대운동 전략을 수정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 한국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동성애 반대운동은 결국 기독교 내부의 언어로 외부 사회를 설득하려하는 무모한 시도가 아닌, 사회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언어로 설득해야 한다는 큰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점을 남기게 됐다. 오히려 보다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춘 기독교인들이 현재의 젠더·퀴어담론에 대한 적극적연 연구를 통해 이에 대한 반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 향후 한국교회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교계종합
    • 기획
    2017-05-10
  • 장애인과 비장애인 통합한 차별없는 예배 필요
    ▲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차별없는 예배가 필요한 시점이다.(사진은 지난해 교회협 장애인 주일 예배)   장애인위한 예배당 시설확충 증가 불구, 예배는 비장애인 중심 다 같은 교인이라는 동등한 입장에서의 장애에 대한 배려 요구    지난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한국교회도 20일을 기점으로 장애인주일을 지키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김영주목사) 회원교단들은 지난 16일을 부활절 겸 장애인주일로 지켰으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총회장=김선규목사) 등 비회원교단 역시 23일을 장애인주일로 지키고 있다.   친 장애인 교회의 지속적 증가  한국교회는 2000년대 이후 장애인들이 예배에 참석하기 힘든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가지 시설들을 예배당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예배당에 들어갈 수 있도록 경사로를 설치하기 시작했으며, 경사로 설치가 힘들 경우 리프트를 설치하는 교회도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새로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엘리베이터를 기본적으로 설치하는가 하면, 모든 시설에 문지방을 없애고 휠체어 자리를 따로 마련하여 신체장애를 가진 교인들이 교회시설을 이용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친 장애인적 설계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건물이 서울 신촌성결교회(담임=박노훈목사)다. 신촌성결교회는 지난 2011년 예배당을 새로 건축하면서 장애인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으며, 서울시는 이를 인정하여 교회 예배당 건물로는 최초로 ‘무장애 건물’로 인증하기까지 했다. 당시 서울시는 신촌성결교회가 지하주차장부터 예배실까지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통로는 물론이고 휠체어 전용 예배공간까지 확보함은 물론이고, 장애인 주차공간을 법정 주차대수보다 훨씬 더 많이 확보하여 장애인들의 편의를 증진시켰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또한 연세중앙교회(담임=윤석전목사)는 장애인들을 위한 예배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예배를 드리기 힘든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예배를 마련하여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학생들을 보살피며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예배도 따로 마련하고 있다. 특히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을 위해 예배때마다 ‘장애인 예배 돌봄 서비스’를 통해 부모들이 언제든지 예배를 통한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격리된 장애인 예배의 현실  그러나 한편으로 비장애인 중심적 예배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어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휠체어가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은 항상 제일 뒷자리인 경우가 많다. 또한 엘리베이터와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들에게 밀려 이용에 제한이 되기도 한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시설도 부족하다. 시각장애인들은 대부분 지팡이를 통해 길을 찾기 때문에, 예배당에 이들을 위한 유도블럭을 설치할 경우 큰 도움이 되지만 이를 설치한 예배당은 찾기 힘들다. 또한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훈련을 통해 예배에 방해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와 인식부족으로 안내견 동반을 거절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청각장애인의 경우 수화통역이 필요하지만 통역사가 있는 교회는 극히 드물다. 그나마 연세중앙교회가 수화통역을 실시하고 있으나, 다른 장소에서 중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 장소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최근 소극장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는 청각장애인 전용 프롬포터는 청각장애인이 많은 교회에서 한 번쯤 도입해볼만하다. 일부 좌석에 소형 모니터를 설치해 연극 등의 대사를 자막으로 보여주는 청각장애인용 프롬포터는 수화가 아닌 독순법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청각장애인들이 불편함 없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여건조성과 함께 장애를 가진 교인들 역시 장애가 없는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한 교회의 형제 자매이자 시혜적 대상이 아닌 동등한 대상이라는 인식전환이다.  많은 교회에서 장애인들은 따로 예배를 드리면서 격리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증 장애인의 경우 장애의 특수성으로 인해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신체장애나 시각장애, 그리고 청각장애를 가진 교인들은 조금만 배려를 해준다면 비장애인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체장애를 가진 교인들은 예배당으로의 접근성을 높여주기만 해도 충분히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또한 뒷쪽 구석이 아닌 중간이나 앞자리에 휠체어 좌석을 마련하는 것도 차별없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더해줄 수도 있다. 항상 뒷좌석이나 구석에 자리하는 휠체어석으로 인해 소외감을 느끼는 신체장애 교인들이 알게모르게 많기 때문이다.  또한 시각장애인들이 예배당 건물 내에서 이동하기 편하도록 유도블럭을 설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특히 안내견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고 안내견을 방해하지 않는 배려를 통해 어려움 없이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교회가 장애인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태도이다. 장애인들은 언제나 도와주어야 하는 존재가 아닌, 그저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이기 때문에 약간의 시설만 갖추어 진다면 충분히 도움없이 주체적으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등한 인간으로서 대우 필요  장애인은 그저 몸이 조금 불편할 뿐 비장애인과 같은 인격체라는 사실은 한국교회가 장애인들을 대할때 가장 먼저 인지해야 하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장애인들에 대해 도와주어야 할 사람 혹은 도움 없이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시혜적 태도를 취해온 경향이 크다. 그러나 이는 결국 장애인에 대한 또다른 차별이 될 수 있다.  과거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때엔 무조건적으로 장애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했다. 그러나 현재 장애인들은 스스로에 대한 인권의식도 높아진 상태이며, 무조건 도움을 받기보다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편이다. 실제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장애인들의 투쟁 등은 이러한 장애인들의 인식전환을 매우 잘 보여주는 표식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교회에서도 장애인들을 위한 약간의 배려를 통해 스스로 예배에 참석하고, 비장애인 교인들과 함께 같은 교인으로서 교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는 장애일 뿐, 하나님 앞에서 같은 교인이자 사람이고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장애인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조성래목사(사랑의엘림교회)는 “장애인들을 보호와 대상만으로 보는 것은 오만이다. 장애인들은 사회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랑의 대상이다. 장애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하는 사역자다”며, “구약시대처럼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시대가 아니다. 장애인들이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고 기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하며, 하나님 앞에 똑같은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한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장애인을 대하는 교회의 태도는 같은 교인으로서 함께 예배에 참여하여 은혜를 받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많은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장애인 예배를 점차적으로 줄여나가면서 비장애인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장애인에 대한 교인들의 시선과 인식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더 이상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같은 교인으로서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 교계종합
    • 기획
    2017-04-19
  • 한국교회,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있다
    1073일만에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 교계선 ‘진실규명’을 촉구 유가족 외면하던 한국교회, 사마리아인 바라보는 유대인 같아     2017년 3월 23일. 세월호가 304명의 희생자들과 함께 맹골수도 바다속으로 사라진지 1073일만에 물 밖으로 나왔다. 2014년 4월 16일 온 국민들이 TV를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침몰한 세월호는 3년만에 여기저기 시뻘겋게 녹슨 모습으로 다시 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3년간의 시간 동안 세월호는 파면당한 박근혜정부의 무능과 부패의 상징이자 국론분열의 상징이 됐다.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며 시작된 노란리본으로 참사를 잊지 않고 있던 시민들은 대통령 탄핵을 요구한 촛불집회에서 잊혀가던 세월호를 결국 다시 불러냈으며,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조사를 위해 포토라인에 서던 날 세월호가 수면 위로 떠올라 왔다. 박 전 대통령의 몰락과 함께 떠오른 세월호는 헌재의 대통령 파면 판결 이후 13일만에 이루어졌다. ▲ 304명의 희생자들과 함께 맹골수도 바다속으로 사라진지 1073일만에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제공=해양수산부)   세월호 인양에 대한 교계 반응  304명의 무고한 생명을 삼킨 세월호가 다시 떠오르자 교계는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가장 먼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이영훈목사)는 “참사가 발생한지 3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선체 인양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까깝다”며, “무엇보다 선체를 온전히 인양하는 것이 중요하고, 아직까지 찾지 못한 9명의 미수습자들이 하루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세월호 인양과 진실규명은 가족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며, 국민적 관심에 맞게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청한다”며, “정부와 국민 모두가 이후 대책마련 등의 모든 과정에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을 보임으로 세월호를 둘러싼 국론분열을 봉합하고 우리 사회의 국민대통합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정서영)도 “세월호가 인양되는 모습을 보니 또다시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3년이나 걸린 세월호 인양이 비록 늦었지만 아직 시신도 찾지 못한 9명의 실종자 가족들을 비롯해 모든 유가족들의 찢어진 마음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아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세월호에 무심했던 한국교회 그러나 세월호가 인양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교회는 전반적으로 세월호에 무심했다. 인양에 성공하자마자 한기총은 이례적으로 ‘진실규명’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막말은 사실상 한기총에서 가장 먼저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 당시 공동부회장이었던 조광작 목사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며, “왜 이번에는 이렇게 시끄러운지 이해를 못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 흘릴때 함께 흘리지 않은 사람은 백정이나 용공분자다”고 말해 질타를 맞은 적이 있다. 결국 조목사는 이 발언으로 인해 공동부회장에서 물러났지만, 이후 일어난 일들을 보면 조목사의 말이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은폐하려 했으며, 유가족들을 비롯하여 이에 반대하는 자들을 ‘종북’으로 낙인찍기 바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밝혀진 세월호를 대하는 박근혜정부의 지침은 유가족을 분열시키고 세월호를 말하는 시민들을 감시대상에 올리는 것이었다.  세월호는 교회 안에서 금기시되기도 했다. 박근혜 탄핵반대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G교회의 경우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리본을 단 교인을 결국 출교조치 시키기도 했으며, 세월호를 추모하고 옹호하는 모습에 ‘종북좌파’란 딱지를 붙인 것도 교회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기위해 발로 뛰었던 박인환목사(안산 화정교회)의 증언은 한국교회의 세월호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쉽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인환목사는 “사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목사는 10명 가운데 2~3명에 불과하다. 그보다 ‘이젠 그만하자, 할 만큼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목사가 더 많다”며, “서명을 받으러 다니면서 목사와 장로가 ‘왜 국가에 반대하는 이야기를 하냐’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나는 우리사회가 강자의 편에 서서 약자를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모습을 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세월호가 드러낸 한국교회 민낯  세월호가 3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지난 23일, 서울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임성빈)에서는 학생들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함께하는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유가족들은 한국교회가 세월호와 유가족들에게 보여준 모습들을 지적하면서, 세월호로 인해 바뀐 신앙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단원고 창현엄마 최순화씨는 “교회와 유명한 목사가 유가족들에게 뱉었던 뼈아픈 망언들을 많이 들었다. 장례를 치렀으니, 천국 갔으니 예전처럼 돌아와 신앙생활을 하라고 했다. 나라경제를 위해 더 이상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셨다”며, “교회 안에서 끼리끼리 사는 삶이 신앙의 참모습이 아니다. 그런 삶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50년 넘게 신앙생활을 했지만, 그것은 이 일을 이겨낼 수 있는 어떤 힘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아픔만 주었다”고 전했다.  예은엄마 박은희전도사도 “교회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줄 것이라 믿었지만, 대형교회 목사가 ‘하나님이 세월호를 침몰시키고 아이들을 희생시켰다’고 말하며 우리에게 칼을 꽂았다. 하나님은 죽음의 하나님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목숨을 대신 가져간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말하며, “안산 합동분향소에 열심히 찾아와 우리를 위로해주는 교회는 모두 작은교회였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 교회가 덩치 큰 교회보다 훨씬 커 보였다. 사회와 고립되고 누구처럼 구중궁궐 안에서 나 자신만, 내 주변 언저리만 가꾸는데 바쁘지말고, 더 깊숙이 사회에 관심을 갖는 영성을 개발했으면 좋겠다. 나도 이전 신앙생활이 너무나 부끄럽다”고 밝혔다.  세월호는 이제 한국사회에서, 그리고 국민들에게 단순한 사고 그리고 참사에만 그치는 사건이 아니다. 세월호로 인해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부패, 그리고 오만함을 목격했고, 한국교회는 그 속에 유착하여 이러한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은희전도사의 간증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유가족이 되고 보니 우리들처럼 쓰러지고 피 흘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다. 국회, 대기업, 청와대 앞에서 이분들은 10년씩 노숙을 한다. 자신들의 말을 아무도 들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거리에 나오고, 나중에는 높은 곳에 오르고, 단식하고 머리를 깎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그 사람들이 절박하게 벼랑 끝으로 쫓겨나고 있을 때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유가족이 되면서 박전도사의 신앙관은 바뀌었다. 그는 장신대 학생들이게 “참사 이후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성경을 읽다가 그 안에 예수님 모습이 우리와 너무 똑같게 느껴졌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보여 준 사랑을 느끼며, 우리는 다시 신앙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동시에, 한국교회가 정말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교회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사회가 이렇게 썩어 문드러졌으면 교회는 회개해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버려지기 일부 직전이다. 사회가 엉망이 됐으면 책임을 느껴야 하는데, 책임을 느끼지 않고 있다. 부디 제대로 된 교회를 이뤘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박전도사는 “교회 안에서 늘 즐겁고 흥겹고 아름다고 예쁜 것만 생각하고 살아온 건 아니었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비웃기만 했다. 지금 교회가 그 모습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거룩하니까, 품위를 찾아볼 수 없는 저 거친 언어, 거친 복장, 거친 삶에 우리가 왜 가까이 가야 하느냐며 살아온 것이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것이 세월호 참사가 드러낸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지난해 7월 28일 세월호광장에서 고 문지성양의 아버지인 문종택집사는 한국교회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가장 아픈 사람들, 고통받는 엄마 아빠들이 있는 곳. 그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 교계종합
    • 기획
    2017-04-11
  • 차별금지법, 역사바로세우기 쟁점 논의
    ▲ 한국교회 제19대 대선정책 포럼이 기독교연합회관에서 진행됐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 한국장로교총연합회은 지난달 27일 한국기독교연합회관 3층 중강당에서 ‘한국교회 제 19대 대선정책 1차 포럼’을 열고 한국교회가 함께 할 대선정책이 무엇인지에 관해 논의했다.    이날 포럼은 한국교회대선정책연대가 주관하여 진행됐다. 김수읍목사(한장총 사회적책위원장)의 사회로 채영남목사의 개회사(한장총대표회장, 한국교회대선정책연대 상임대표), 김우제장로(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 대표회장)의 대표기도, 길자연목사(한기총 증경대표회장)과 한영훈목사(한교연 증경대표회장)의 격려사, 소강석목사(한국교회동성애대책협의회 대표회장, 한국교회대선정책연대 공동대표)의 인사, 순서자와 주요인사들의 기념촬영이 이어졌다.    포럼사회는 오치용목사(한국교회대선정책연대 상임위원장)가 맡았으며, 이용희교수(바른교육교수연합 대표, 에스더기도운동 대표)의 「동성애 차별금지법에 대한 한국교회의 입장-2017대선과 동성애 차별금지법」이란 제목의 Ⅰ발제, 박명수교수(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이 「역사바로세우기와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한국교회의 입장」이란 제목의 Ⅱ발제 순서로 진행됐다.    토론 Ⅰ,Ⅱ는 염안섭원장(수동연세요양병원 원장, 한교연 동성애대책위원장)과 백종구교수(서울기독대 대학원장, 한기총 한국교회역사바로알리기운동본부 위원)이 맡았다. 
    • 교계종합
    • 기획
    2017-03-28
  • 4월, 부활절연합예배 명성교회서 개최
    ▲ 부활절연합예배 준비위원회는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4층 제2연수실에서 준비상황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다.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가 부활절이자 세월호 참사 3주기인 오는 4월 16일 오후 4시 명성교회(담임=김삼환원로목사)에서 「생명의 부활, 민족의 희망」이란 주제로 개최된다. 설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인 이영훈목사(기하성 여의도측 총회장)가 맡는다. 그 외의 순서는 총무단들이 정하기로 했다.     2017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 준비위원회(대회장=이성희목사, 준비위원장=김창수목사)는 지난 15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4층 제2연수실에서 준비상황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다.    대회장 이성희목사와 준비위원장 김창수목사, 안전위원장 최정봉목사, 시설위원장 김명찬목사, 홍보위원장 이재형목사 등이 참석한 이번 모임에서 이성희목사(예장통합 총회장)는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이자, 한국교회총연합회가 출범하고 첫 번째 갖는 행사인 만큼 7개 주요 교단장들이 뜻을 합해 한국교회가 하나되는 모습들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명실공히 하나로 연합하는 모습을 한국사회에 알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고 말했다.    또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은 가장 기쁘고 의미 있는 날이다. ‘그간 보여주기 위한 행사였다’라는 지적이 있어 금년의 부활절 연합예배에는 한 마음과 한 목소리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가 되고, 한국교회에 희망을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강조했다.    준비위측은 이번 부활절연합예배는 작년에 이어 한기총, 한교연, 교회협 등 연합기관의 아닌 교단장 중심으로 드려지며, 한교총 가입 교단 16개와 함께하고자 하는 교단 24개 등 60여개 교단이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원 교단 9개 중 8개 교단이 참석할 예정으로 세월호 3주기 관련 건은 부활절연합예배와는 성격과 내용이 다름으로 따로 행사가 진행될 것임을 강조했다.    한편 준비위는 지난해부터 비용 절감을 위해 체육관이나 광장 등 공공장소가 아닌 교회에서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리고 있다. 또 작년 부활절연합예배에서 모여진 헌금은 논산훈련소, 본부교회, 연무대 등에 지출됐으며, 관련 행사는 향후 1주일 내에 홈페이지에 보도자료가 등재되고 동영상 공모전도 계획하고 있다.
    • 교계종합
    • 기획
    2017-02-22
  • ‘설’명절 맞아 고향교회 찾기와 예배동참 요청
    예장 통합·목회포럼, 고향교회 방문 캠페인 활발   ▲ 교회협의 김영주총무는 한교총 출범에 대해 비판하면서 당황스러웠다고 의견을 밝혔다.     우리 민족의 명절인 설날을 맞이하여 진정한 정유년 새해를 맞이했다. 음력 1월 1일인 설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닭띠해가 시작된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네 명절 풍경이 된 고향찾기와 함께 다채로운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설을 맞아 한국교회의 교인들도 고향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릴 계획을 세우며 명절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고향교회들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농어촌지역의 교회들은 부족한 재정과 인력으로 인해 안정적인 목회활동을 펼치기 어려운 것이 현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한국교회 성장의 기반이 된 농어촌교회, 고령화에 타격 심각 교향교회 및 작은교회 방문으로 ‘동행하는 주일’ 되도록 요청     ◆쇠락하는 농어촌교회·한국교회가 지금과 같이 부흥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80년대 경제발전과 맞물린 대형교회의 출현이 큰 공헌을 했다. 도심지의 대형교회들은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 모았으며, 이러한 대형교회의 급성장을 바탕으로 기독교는 제1의 종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한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열악한 농어촌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헌신한 목회자들의 눈물과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도시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부터 농어촌에는 마을마다 교회가 세워졌고,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들의 섬김과 헌신은 규모는 작아도 알찬 교인들을 양성해냈다. 70년대부터 시작된 도시산업화로 인한 인구이동은 대도시의 대형교회의 원천이 되었다. 도시산업화는 농어촌 지역의 주민들을 도시로 몰려들게 했고, 이렇게 몰려든 사람들이 유능한 목회자를 만나면서 교회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와 반대로 농어촌교회는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도시산업화로 인한 인구이동은 농어촌지역의 급격한 인구감소를 초래 했으며, 지역인구의 고령화가 도시에 비해 빠르게 진행되면서 농어촌교회는 기본적인 교회유지에 필요한 비용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경제적 활동이 힘들고 미비한 노인층의 증가가 헌금의 감소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청년층의 부재는 교회의 미래를 기약하기 힘들게 하고 있다. 노인층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 70%를 넘는 교회들이 많아지면서, 이른바 ‘다음세대’에 대한 양성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노인층과 줄어드는 청년층은 결국 시골마을을 지키던 교회들이 얼마가지 않아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고향교회 방문 운동·이러한 상황 속에서 명절만이라도 농어촌지역의 고향교회를 방문하자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은 오는 29일을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맞이해 전국교회와 교인들이 고향 교회,농어촌 교회를 방문하는 ‘동행하는 주일’로 실천하는 캠페인을 지켜 달라고 요청했다. 통합측 총회교회성장운동지원본부는 “교인들이 고향교회 및 지역 내 농어촌 지역의 작은 교회를 방문해 도시교회와 농어촌 지역교회,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함께하는 동행하는 주일에 전국교회가 실천할 수 있도록 협력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를 위해 동 본부는 교인들이 헌금하고,방문교회의 주보나 역사 자료 및 교회 현황,사진들을 수집해 본 교회에 전시하는 실천방안 등을 제안했다.   이성희목사는 목회서신을 통해 “지금 우리는 교회의 위기 속에서 매서운 한파를 경험하고 있다. 특히 교회의 위기를 현실로 직면하고 있는 우리의 고향 시골교회, 작은 교회들은 문을 닫거나 쇠퇴하는 길로 접어들고 있다”고 우려하며, “총회는 어려운 우리 교회들과 함께하기 위해 설 명절 기간 동안 지역 내 작은 교회와 고향교회를 방문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는 ‘동행하는 주일’로 함께 지키려 한다. 이번 동행하는 주일을 통해 고향(작은)교회를 격려하고 축복하여 어려운 현실 속에서 동행하는 형제자매 교회임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미래목회포럼(대표=박경배목사)도 설 연휴를 앞두고 ‘명절 고향교회 방문캠페인’을 시작했다. 미래목회포럼 대표인 박경배목사는 지난 19일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사무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어려운 여건 가운데 꿋꿋이 고향을 지키고 있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찾아 위로하면서 신앙의 못자리같은 농어촌교회를 보듬어주었으면 한다”고 말하며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고향교회 방문캠페인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장성진목사(거룩한빛광성교회)도 “대도시의 교회들은 농어촌교회에 신앙의 빚을 지고 있다. 내 교회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보다 주변의 작은교회들도 함께 잘되는 목회현장 캠페인으로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교계종합
    • 기획
    2017-01-24
  • ‘세속화’로 인해 ‘십자가 영성’ 상실
    ▲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정신을 본받아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를 살리는 길이 영성운동에 있다고 믿고 영성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분주히 노력하고 있다.   왜곡된 신유와 축사와 기복신앙 설교가 넘쳐나고 있는 현실 참된 신앙과 인격, 그리고 삶으로 이루어진 성경적 경건 추구  오늘의 한국교회 안에서 일고 있는 수많은 운동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을 꼽는다면 그것은 단연코 영성회복 운동이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는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위해 보다 새롭고 더 강력한 프로그램을 찾는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를 살리는 길이 영성운동에 있다고 믿고 영성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분주히 노력하고 있다.   교인들의 영성을 계발하기 위한 특별한 모임이나 특별한 단체들도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매주일 또는 매일 반복되어지는 영성훈련의 경험들과 많은 신앙의 기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진보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 쇠퇴 원인은 영성의 부재  거룩한 예배의 자리에서는 그 누구보다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며 하늘을 우러러 손을 들어 찬양하고, 때론 열정적인 눈물의 기도를 드리지만 정작 교회의 문밖으로 나가면 너무 쉽게 세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돌변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신앙이 없는 영성의 시대에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인 영성회복에 대해 분명한 목적을 다시 세우고 그 방향성을 재점검해야 한다.  이 시대 교회는 세상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많은 신학자들은 이같은 한국교회의 쇠락의 큰 원인으로 ‘영성의 쇠퇴’를 지목한다. 목회와 신학의 영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 문제는 정확한 신학적 정의나 정리도 미흡한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남용돼 여러 문제를 야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다른 차원의 영적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영광스러웠던 과거시절이 다시 올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20세기 이후 유럽교회는 정권과의 야합에 침묵해 왔고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신학자들은 교회 세속화의 동조자 노릇을 했다. 이런 상황에 양 떼는 결국 자신의 본능을 추구하며 죄악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 방황의 상징이 동성애이며 그것은 차별금지의 법제화로 굳어졌고 이제는 사회가 치유불가능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거두게 된 열매이다. 심지어 교회가 바른 복음을 더 거북해하는 기이한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영성회복’이란 단어가 한국교회에 유행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교회가 처한 난관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동시에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과 해법을 어디서 찾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성의 유행은 바로 한국교회 내 영성부재 혹은 왜곡에 대한 본능적 반작용인 것이다. 한국교회의 부흥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영성’. 그러나 이젠 이 영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함께 목회에의 접목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건실하게 자리잡아가던 영성목회가 일부 목회자들의 기복신앙과 신비주의 영역과 접목하면서 치유와 예언, 심지어 신비체험에 집착하는 등의 부패성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또 이것이 교회의 선교에 막대한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변질된 영성은 곧 교회의 죽음’이라고 단언한다. 그만큼 신실한 영성목회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영성목회는 운동본부, 목회연구소 등의 이름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회원으로 가입한 목회자들을 교육, 이의 확산을 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일부 단체들이 목회자들을 훈련시키면서 영성목회의 올바른 확산과 정착을 위한 프로그램보다는 영서를 쓰고 해석하는 일, 환상을 보게 하는 방법 등에 중점을 두고 교육, 그 본질을 신비주의적 요소 발굴로 몰아가고 있다는 데 있다.  ‘무당의 굿’처럼 왜곡된 해석  한국교회의 일부 영성운동은 원시종교에서 행하던 ‘무당의 굿’에 비교되며, 교인들을 정신적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과거에도 영성에 대한 왜곡된 해석으로 인해 한국교회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고, 사회 전체가 혼돈과 파국의 나락으로 추락했던 시기에 묵시적 종말론이 쉽게 대중화될 수 있었다. 이후 시대적 정황에 힘입어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면서, 한국교회에 지배적 종말론으로 뿌리 내렸다. 1994년 다미선교회가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를 뒤흔들 수 있었던 것 또한 이러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로 인해 파생되는 교회적, 사회적 혼란한 틈을 타고, 영성운동 단체 및 영성 운동가들이 갈수록 늘어났으며, 외국의 영성운동가들까지 등장해 교인들을 미혹시키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속출했다. 무엇보다 세속화의 영향이 크다. 유럽에서 세속화란 ‘탈기독교’를, 한국에서 세속화는 ‘세상을 닮아감’을 뜻한다. 1990대 이후 한국교회는 성장의 정점을 찍고 세상을 가까이하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것은 한국사회의 세속화와 맥을 같이한다. 여기에 신사도운동과 같은 비성경적 운동을 무비판적으로 적용하면서 교회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비윤리적, 비상식적 행동을 하여 이제 세상은 교회를 타락과 부패의 온상처럼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영성운동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영성운동가들의 ‘돈잔치’, ‘전도잔치’란 이름으로 변질되었다. 이것이 현재 한국교회의 영성운동가들이 말하는 영성운동이며, ‘축복’이다. 기도와 전도를 못하고, 헌금을 드리지 못하면, 영적으로 모자라는 교인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십자가와 부활, 죄와 회개, 구원의 은혜와 성화, 심판과 영생의 복음을 선포하기 보다는 왜곡된 신유와 축사와 기복신앙의 설교가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교회 강단들을 통해 ‘성장의 비법’으로 소개된 교회성장학이 목회의 교본으로 채택되고, 번영신학이 시대의 메시지가 된 결과, 한국 교회 내 물질적 번영이 축복으로 정당화되고 열정적으로 추구됐다.  또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성경의 진리는 외면당했다. 결국 한국교회는 경이적인 속도로 양적, 외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민족의 시대적, 고통에 동참하지 못함으로써 사회적 영향력과 명성은 실추,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기독교 복음을 전해줬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성결운동의 영향을 깊이 받았던 인물이다. 이들의 영향 하에 한국교회가 성령체험, 성경, 복음전도, 묵시적 종말론 등을 중시하는 복음주의적 전통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기독교만의 영성신학 회복 절실  한국교회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존중했다. 선교사들은 각종 예배와 사경회를 통해 성경을 가르쳤다. 물론 성경에 대한 비판적 분석보다 문자적 해석과 실용적 적용에 관심을 두었다. 이런 교육의 결과 한국 교회는 성경읽기와 암송을 중시하게 됐고, 성경에 대한 절대적 존중과 신앙을 내재화할 수 있었다. 성령에 대한 열린마음도 갖게 됐다. 부흥사와 부흥회를 중심으로 영적은사를 갈망하고 체험했다. 교파를 초월해 새벽예배, 부흥회, 수련회 등이 중시됐다. 성결한 삶도 추구하게 됐다. 각 교파의 고유한 신학적 가르침 때문에 성화 혹은 성결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존재하고, 믿음에 대한 오해가 신자의 윤리적 책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개혁주의와 웨슬리안주의 구별없이 한국교회는 신자들이 중생 이후 성결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으로 인해 성령체험과 개인적 회개가 수없이 일어났고, 많은 교인들이 전도에 헌신했다. 그만큼 한국 교회 초기 부흥운동은 성결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한국교회에 오순절 운동이 시작된 것은 1920년대 후반이다. 감리교의 이용도목사, 평신도 여 선교사 메리 럼지 등에 의해 한국 교회에 오순절 운동이 일어났고, 한국 최초의 오순절 교회가 세워졌다.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부흥운동과는 구별되는 은사중심의 성령운동이 출현한 것이다. 6·25전쟁 이후 오순절 운동은 더욱 확산됐다. 전쟁으로 육체와 정신이 피폐해진 가운데 신유와 방언 같은 은사들을 강조하는 집회가 사람들에게 큰 호소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용문산기도원의 나운몽장로, 장로교의 박태선장로, 성결교의 양도천목사 등이 이 시기의 성령운동을 주도했고, 1960년대부터 순복음교회 조용기목사가 오순절적 부흥운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했다. 이때부터 부흥회, 금요철야기도회, 기도원 등을 중심으로 소위 은사집회가 성황을 이루게 됐고, 교단 구분없이 방언과 신유 같은 신비현상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또 최근까지 신사도운동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성령운동이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오순절 운동은 개혁주의가 지배적인 한국교회 내에서 오랫동안 주요한 이슈였다. 말씀보다 체험, 성결보다 능력, 고난보다 영광에 몰두했던 오순절 운동은 일부 교단에서 극단적 열광주의로 인식됐다. 하지만 오순절 운동이 한국 교회에 남긴 긍정적 영향을 보면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가 초대교회에 한정된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중임을 가장 극적으로 입증해줬다. 성경에 기록된 은사들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전혀 다른차원의 신앙생활에 입문하게 됐으며, 한국교회에 영적동력을 회복시켜줌으로써 부흥과 성장도 가져왔다. 영성은 기독교의 화두로 부상했고, 수많은 영성 프로그램 및 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하지만 이러한 급부상한 영성운동들은 대체로 수도원 운동의 복원적 성격이 강했다. 지금까지도 기독교만의 고유한 영성신학, 운동은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십자가 영성으로 교회회복 견인  이러한 측면에서 기독교 영성의 가장 근본인 십자가의 영성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랑의 영성, 희생의 영성, 낮은 자의 영성, 섬김의 영성 등 모든 것의 핵심은 바로 십자가의 영성이기 때문이다. 영성수련의 목적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십자가의 영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보면 사회의 부도덕과 부패가 난무할 때, 그리고 신앙의 권위가 상실 되는 시대마다 개혁운동이 일어났고 십자가로의 회귀를 강조하였다.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관점들이 세속적인 세상에 의해 문제시되고 역사의 발전에 대한 거대 담론들이 명백하게 쇠퇴하여 비틀거리기 시작하는 오늘의 기독교 문제 앞에서 우리도 믿음의 원천이요, 기독교의 근원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기독교는 자신의 명예, 지적, 문화적 윤리적 겉치레들 때문에 그동안 무시되었던 수치와 어리석음의 십자가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공동체의 믿음과 개인의 영성갱신은 십자가의 수치를 포용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에 달려 있다. 기독교 전통의 내적인 역동성은 그 전통이 생겨날 때 주어지고 형성되는 것이다. 십자가로 돌아가는 것은 신약 성경을 경유해서 기독교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목회자의 윤리·도덕성 하락의 근본 원인도 이같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은 성령운동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기도와 말씀충만의 부흥운동, 그리고 참된 경건운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모든 성도들과 신앙공동체들은 회개의 눈물과 말씀의 충만을 회복해야 하며, 이를 통해 성도로서의 참된신앙과 인격, 그리고 삶으로 이루어진 성경적 경건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윤해민기자
    • 교계종합
    • 기획
    2016-12-06
  • “대통령 담화 듣는 국민들 마음은 착잡”
    ▲ 박근혜대통령의 제3차 대국민담화 발표 이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교계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박근혜대통령의 제3차 대국민담화문 발표 이후 대통령의 퇴진을 원하는 민심은 더욱 불 같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3일 촛불집회는 주최측 추산 서울에만 170만명, 전국적으로 232만명이 모여 박근혜대통령의 퇴진을 강하게 요구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계 또한 담화내용에 대한 실망과 함께 대통령 퇴진요구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탄핵처리를 늦추고 있는 국회에 대한 비판과 압박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또한 엄중한 시국상황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의 기도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교회협,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길은 즉각적인 퇴진 뿐” 한교연, “대통령 특권 내려놓고 응당한 처벌 받겠다 선언했어야”  ◆대통령 3차 담화 발표·박근혜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촉발된 전 국민적인 퇴진요구에 대해 세 번째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요점은 “대통령직을 물러나겠다”는 것이었지만, “임기단축”과 “국회에 맡기겠다”는 대통령의 표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해 지면서, 지난 2일 탄핵표결을 앞두고 있던 국회에서는 여권 비박계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비상시국선언 등 교계반발·대통령의 제3차 담화문 발표에 대한 교계의 반응은 한마디로 ‘아쉬움과 분노’였다. 먼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김영주목사) 비상시국대책회의(상임의장=김상근목사)는 “절차적 권력이양의 뜻을 밝혔으나 국민들의 요구는 여전히 즉각 퇴진이다”며, “국회의 뜻을 따르겠다는 것은 현실정치를 고려하지 않은 꼼수에 불과하다. 이런 방법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피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또 “박근혜대통령은 여전히 피의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다시 한 번 절망하고 분노하고 있다”며,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길은 여전히 즉각 퇴진뿐임을 명확히 밝힌다. 국회도 자신들의 임무가 조속한 탄핵절차를 밟는 것임을 주지하고 속히 임해주길 당부한다”고 밝혔다.  ◆연합기구서 입장발표·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조일래목사)도 “헌법의 절차를 따르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로 보여지나 국정혼란이 거듭되고 있는 상황에 늦은 감이 없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이 국정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미 국정혼란과 공백이 이어져 온 상황에서 이제 더 이상의 혼란에 대해 걱정하는 대통령의 마음을 국민이 얼마나 이해하고 수용할지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특히 한교연은 대통령이 최순실게이트 이후 밝혀진 사안들에 대해 “단 한 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았다”고 밝힌것에 대해 “오히려 대통령은 모든것이 내 책임이며, 내가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내려 놓고 법이든 도의적 책임이든 응당한 처벌을 받겠노라고 선언했어야 했다”며, “본인 입으로 검찰수사에 응하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어긴 대통령이 오늘 스스로 밝힌 퇴진 의지가 아직도 권력에 대한 미련을 못버린 것으로 국민 앞에 비쳐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국민화합과 법치주의 확립촉구·한국교회언론회(대표=유만석목사)도 논평을 통해 “대통령의 부끄러움이 국민의 부끄러움이 되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국가적으로 대단히 불행한 일이며, 대통령의 담화를 듣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고 주장했다. 또 “국민들은 평화를 원한다. 지금까지 5차례의 대규모 반대집회가 있었으나 수많은 참가자들은 폭력 대신 평화의 모습이었으며, 물리적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이런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정혼란을 틈타 아전인수격으로 정권탈취에만 혈안이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들은 안정화 화합과 법치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우리 국민들은 이번과 같은 국가적 어려움 앞에서도 지혜를 모아 희망의 로드맵을 만들어 가고 있다”며, “우리 기독교인들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 교계종합
    • 기획
    2016-12-06
  • 연합단체의 봉사활동,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면서 한국교회가 온정의 손길을 베풀고 있다. (사진은 연탄나눔에 나선 CBMC회원들)   연합단체 중심으로 펼쳐온 사회봉사 활동, 개교회 중심 재편 일부 대형교회의 봉사활동 독식, 연합 위한 방안 모색이 시급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면서 사회 각계 각층에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의 상징이 된 사랑의 열매 모금이 시작됐으며, 구세군의 자선냄비도 거리에 하나 둘 걸리고 있다. 한국교회의 사랑의 손길 역시 이어지고 있다. 각 연합단체들과 교단들은 사랑의 김장나눔 행사와 연탄나눔 행사 등을 펼치며 어려운 이웃들이 추운겨울을 보다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지원과 봉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보다 다양해진 사회 속의 소외계층과 취약계층을 돕기 위한 여러가지 방안들이 나오고 있지만, 개교회 중심으로 진행되는 봉사활동의 한계로 인해 보다 체계적이고도 전반적인 ‘사회봉사’에 한국교회가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봉사활동을 이끌어온 한국교회  한국사회에서 복지와 봉사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60년대부터 한국교회는 소외된 이웃을 돌보며 사회봉사활동을 펼쳐왔다. 한국교회가 우리나라의 사회봉사를 이끌어 왔다는 말은 전혀 틀린말이 아니다. 연말연시를 상징하는 빨간 자선냄비는 구세군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한 불우이웃돕기 기금모음 운동이다.  또한 1963년 설립된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는 국민들 대부분이 가난에서 허덕이고 있을때 빈민계층을 도우며 사랑을 실천한 대표적인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장로교와 감리교 등 8개 교단과 NCCK가 중심이 되어 설립된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는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이 땅에서 전쟁고아와 미망인들을 돌보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위로하던 한국교회 최초의 봉사단체이다.  이렇게 연합단체들을 중심으로 펼쳐온 사회봉사는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개교회 중심으로 옮겨갔다. 80년대를 지나며 눈부신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는 이제 연합단체가 이끌어온 사회봉사를 수천명을 넘어 수만명이 모이는 메가처치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연합단체에 비해 자금력과 인력을 동원에 유리한 대형교회들은 지역사회를 책임지며 ‘구제활동’을 활발히 펼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형교회의 활약은 우리사회에서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까지 돌보게 되면서 더욱 활발하게 확산되고 있다.  개교회 중심의 봉사활동의 증가는 “교회가 있는 지역에는 반드시 봉사활동을 펼치는 교인들이 있다”는 말이 나오게 했다. 교회가 지역에서의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주민들을 전도하기 위한 목적도 있으나, 근본적으로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사명이 바로 ‘이웃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지켜야하는 명령으로 인식되고 있다. 교회가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펼치고 있는 봉사활동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달라져가는 사회봉사의 모습  시대가 변하면서 개교회에서의 봉사활동의 모습도 점차 바뀌고 있다. 과거 그거 불우한 이웃들에게 식료품과 생필품을 조달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이제는 주민 전체가 교회에서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끔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회복지를 공부한 목회자들이 늘어나면서 교회차원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이나 요양원 등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변화는 배경에는 한국교회의 급격한 성장이 자리잡고 있다. 교회가 성장을 거듭하면서 베풀 수 있는 금전적인 여유가 많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교회 안에 공부방이나 복지관을 만들고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요양시설을 짓는 것은 이제 대형교회만의 일이 아니라 중·소형교회에서도 펼치고 있는 사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교회에서의 봉사활동을 탐탁지 않게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사랑의 실천’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기 위한 봉사활동이 아니라 교인들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오해로 인한 것이다. 실제 일부 교인들의 경우 봉사활동을 펼치면서 노골적으로 교회에 출석할 것을 강요하는 등, 봉사활동을 전도의 도구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봉사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구로 여기면서, 심한경우 교회에 출석하지 않을 경우 봉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대형교회가 봉사활동을 주도하다 못해 독식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봉사활동은 인력도 필요하지만 많은 예산이 드는 사역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때문에 막강한 금전력을 가진 대형교회들이 봉사활동의 영역을 계속해서 확대해 나가면서 마치 한국교회의 봉사활동을 일부 대형교회들이 독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작은교회들이 할 수 없는 영역에서의 봉사활동을 대형교회는 할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형교회의 봉사활동이 과거 한국교회가 연합하여 펼치던 사회봉사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연합정신을 저해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재고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사회봉사 패러다임 전환 필요  그러나 실제적으로 대형교회가 감당하고 있는 봉사의 영역은 이미 연합단체가 펼치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연합단체는 교회들의 지원과 협력으로 왕성한 봉사활동을 펼칠 수 있었지만, 연합운동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과거와 같은 지원과 협력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교회 연합단체들의 봉사활동에 대한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과거의 직접적인 봉사활동을 벗어나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대외창구’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 총무를 지낸 김일환목사는 지난 2011년 일본의 대지진 당시를 떠올리며 연합단체의 역할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목사는 “당시 교회협과 한기총을 중심으로 각 교단과 기독교 봉사단체들이 연합해서 일본구호에 나섰다. 각 교단과 단체별로 모금을 진행했지만,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를 창구로하여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기금을 전달했었다”며, “이때의 예처럼 연합봉사기관은 한국교회의 대외 창구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각 교단과 단체의 이름이 아닌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구호활동에 나설 수 있게끔 힘을 모으는 역할이 가능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과거 직접적인 봉사활동에 치우쳤던 연합기관의 역할은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직접적인 봉사와 지속적인 복지에서 벗어나 한국교회가 아직 찾지 못한 봉사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복지정책적인 측면에서 선두적인 정책개발과 제안을 하는 역할도 요구되고 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관으로서 사회와 정부에 교회의 의견을 모으고 전달하는 창구로서의 역할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특히 중요한 것은 대형교회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한국교회의 봉사와 복지사역이 더욱 연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교회가 연합하여 봉사활동을 펼쳤던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성경의 말씀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개교회와 단체들은 교파와 교단을 넘어선 연합을 위해 비슷한 성격의 조직은 상호보완하여 새로운 조직구성으로 대사회적인 봉사활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개교회별, 단체별 활동이 조화롭게 연계되기 위한 연합봉사기관의 역할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교계종합
    • 기획
    2016-11-30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