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6-22(화)

출판/문화
Home >  출판/문화  >  문학

실시간뉴스

실시간 문학 기사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35] 쓰임받는 삶의 길 - 권숙월의 「그저 그런거나」
      큰 집엔 금그릇 은그릇이 있고 나무그릇 질그릇 다 있다셨네. 나는 그 중에 뭐 되어 곱게 뵈나? 금그릇이야 어림있나 은그릇도 될 수 없어 나무그릇 그거 돼도 잠도 안 오겠다만 윤도 없는 질그릇 그런거나 되었으면. 성령의 오짓물 입혀지면 더 좋겠네. 그래서 그 왜 그런거 있지 갓이 큰 어르신네 상에서도 제 실 참 잘 해낸 조선의 뚝배기 더도 말고 그저 그런거나 되었으면. 아니지, 뚝배기는 이 빠지면 개밥그릇 금이 가도 테 메우면 새로 쓰이는 큼직한 독 그러거나 되었으면. 믿음도 담고/소망도 담고 사랑도 아구까지 차게 담아 갈릴리 가나의 돌항아리 여섯처럼 주인에게 곱게 뵈어 귀히 쓰이는 질그릇 그저 그런거나 되었으면.           - 「그저 그런거나」 의 전문 이 시는 4연으로 구성됐다. 일상적인 삶을 그릇의 종류와 사용의 용도에 비유하고, 그 사용의 용도를 전개한다. 화자는 귀히 쓰이는 금그릇과 은그릇보다, 질그릇으로 쓰임 받기를 바란다. 그릇 중에서도 화려한 그릇보다, 소박한 질그릇과 뚝배기, 그리고 큼직한 독(항아리)으로 쓰임 받기를 희구한다. 1연은 디모데후서 2장 20절인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란 구절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큰 집에 있는 그릇의 종류를 열거한다. 큰 집은 부잣집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그릇을 사용한다. 그릇에 따라 사용하는 용도도 다르다. 금그릇과 은그릇은 맛있는 음식이나 귀한 것을 담는 데에 사용된다. 그리고 나무그릇과 질그릇은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사용된다. 그래서 ‘큰 집’, 즉 부잣집을 떠올리며 그릇의 용도를 말해 준다. 금그릇과 은그릇은 소중하게 보관하면서 사용하지만, 나무그릇과 질그릇은 아무렇게나 사용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제2연은 신앙인의 겸손한 삶을 보여 준다. 여러 가지 그릇 중에서도, 윤기도 없는 질그릇이 되었으면 한다. 금그릇으로 사용되기는 어림도 없이 될 수 없고, 은그릇도 될수 없다고 고백한다. 또한 나무그릇만 돼도, 고맙고 황홀한 마음 때문에 잠이 안 올 것으로 여긴다. 이 얼마나 겸손한 삶인가. 어떤 욕심도 부리지 않는다. 명예나 사치스러움을 지니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염원한다. 그것은 신앙인의 겸손한 삶을 소유해야만, 선택할 수 있는 겸손함도 지닌다. 제3연은 올바른 신앙인의 삶을 염원한다. 성령의 오짓물을 입혀 구운 뚝배기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오짓물은 윤기를 내는 잿물이다. 흙으로 만든 그릇에 발라 구우면 윤기가 난다. 성령의 오짓물을 입혀 구운 뚝배기는, 성령의 윤기가 나는 뚝배기이다. 그것은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으로 무장한 신앙인을 의미한다. 이러한 뚝배기는 갓이 큰 어르신네의 상에서도, 뚝배기의 역할을 잘 감당한다. 갓이 큰 어르신은 선비이며, 학덕을 갖추고 어질고 순한 사람이다. 선비집의 뚝배기로 비유한다. 또한 ‘조선의 뚝배기’는 시류(時流)에 물들지 않고 순수한 의미를 지닌다. 제4연은 하나님으로부터 귀히 쓰임받는 삶을 희망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뚝배기는 이가 빠지면 개밥그릇이 된다. 항아리인 독은 금이 가도 철사로 테를 두루고 메우면 새로 쓰임을 받는다. 그래서 화자는 큼직한 독이 되어 믿음도 가득 담고, 소망도 가득 담고, 사랑도 가득 담아 귀히 쓰임 받겠다는 의지이다.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을 지닌 신앙인이다. 그리고 “주인에게 곱게 뵈어 귀히 쓰이는”란 구절에서, ‘주인’은 하나님이다. 또한 ‘곱게 뵈어’는 부족함이 없는 신앙인의 삶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08-29
  • 22일, 과학과신학의대화서 북토크
    과학과신학의대화(대표=우종학교수)는 오는 22일 청어람아카데미 청어람홀에서 「우주의 신비, 블랙홀을 찾아서」란 주제로 북토크를 진행하고, 과학과 기독교의 관계를 조명하는 지적 여정을 제공한다. 이번 북토크는 우종학교수(서울대)가 강사로 나서 블랙홀의 탄생에서부터 최근 연구 성과에 이르기까지 교육하고 이를 통해 피조물인 인간이 우주의 신비를 밝혀내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경이로움을 숙고하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행사 관계자는 “블랙홀과 우주 진화를 연구해 온 우종학교수가 나서 블랙홀의 개념이 처음 제시될 때부터 블랙홀에 관한 최신 연구성과까지 낱낱이 알려주는 강좌를 준비하고 있다”며, “중학생도 쉽게 이해하고 들을 수 있는 강의를 모색하고 있으니 남녀노소 많은 이들이 참여해 블랙홀을 통해 우주의 신비에 다가가는 시간을 갖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 출판/문화
    • 문학
    2019-08-13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34] ‘하나님의 말씀’은 ‘기쁜 소식’ - 김태규의 「편지」
    나에게 온 편지는 그이의 말씀 다사로운 미소파아란 하늘에 피어오른 꽃구름처럼 내 눈길을 황홀케 하시더니 그이의 말씀은 언제나 나긋한 입김 오롯이 스며오는 사랑의 속삭임인가 호심(湖心)에 파도가 인다 어느 날엔가 그이의 말씀은 내 영혼의 잠을 깨우는 우룃소리가 되어 마음의 문을 열게 하시더니 그이의 말씀은 병든 부위를 도려내는 예리한 칼 아픔을 이긴 자에게 평화를 주시는 복된 소식이었다 편지는 언제나 새롭다.                                                   - 「편지」의 전문  김태규의 「편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쁜 소식인 편지로 인식해 형상화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인들에겐 기쁜 소식인 복음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오늘의 모두에게 보낸 기쁜 소식의 편지이다. 날마다 읽는 성경은 하나님이 보낸 편지를 읽는 게 된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기쁜 소식과 함께 가르침과 깨우침을 주기 때문에 편지로 인식한다.  이 「편지」는 기독교시의 전형을 보여준 역작이다. 재치있는 시적 발상이나 전개, 그리고 무리없이 펼친 이미지는 기독교시의 극치를 보여준 시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이 얼마나 ‘황홀’한 것이고, ‘사랑의 속삭임’과 ‘평화를 주시는 복된 소식’인가를 새삼스럽게 일깨워 준다. 그것은 성경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함몰된 신앙인의 고백이다. 날마다 새로운 소식을 전해 주는 편지이다.  이 시는 5연으로 구성되었다. 5연을 제외한 4연까지는 ‘그이의 말씀’이 전제된 후, 시적 이미지가 전개된다. 각 연의 시적 구성을 지탱한 중심적인 기둥의 역할을 담당하고, 이 시의 핵심적인 구절이다. 이 ‘그이의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복음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거나 예수님의 말씀을 지칭한다. 그리고 ‘그이의 말씀’은 ‘다사로운 미소’, ‘나긋한 입김’, ‘사랑의 속삭임’, ‘내 영혼의 잠을 깨우는 우룃소리’, ‘병든 부위를 도려내는 예리한 칼’, ‘평화를 주시는 복된 소식’으로 형상화했다.  제1연과 제2연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랑의 복음’임을 일깨워 준다. 제1연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화자인 나에게 온 편지이다. 그것은 ‘다사로운 미소’로 파아란 하늘에 피어오른 꽃구름처럼 황홀케 한다고 감탄한다. 황홀할 정도로 매혹적인 말씀, 즉 다사로운 미소를 지닌 편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이와 넓이를 단적으로 표현했다.  제2연도 하나님의 말씀은 ‘나긋한 입김’이며, ‘오롯이 스며오는 사랑의 속삭임’이다. 그래서 호수에 이는 파도처럼 ‘나긋한 입김’과 ‘사랑의 속삭임’으로 화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것은 ‘황홀’의 경지에 이르도록 감동시킨다.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의 가치성을 표현했다.   제3연과 제4연은 하나님의 말씀이 화자에게 ‘가르침’과 ‘깨우침’, 그리고 ‘치유의 도구’임을 표현했다. 제3연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날엔가, 내 영혼의 잠을 깨우는 우룃소리가 되어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는 가르침과 깨우침을 준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내 영혼의 잠을 깨우며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함몰된 화자의 신앙고백이다.  제4연은 하나님의 말씀은 병든 부위를 도려내는 예리한 칼이며, 이 아픔을 이긴 자에게 주시는 복된 소식임을 표현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잘못된 스스로를 회개하고, 치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치유의 도구로 평화의 복된 소식임을 고백했다.   마지막 연은 “편지는 언제나 새롭다”란 한 줄로 화자의 느낌을 표현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황홀하게 하며 마음속 깊이 감동을 주고, 무지의 잠을 깨우며 치유의 도구이다. 그래서 언제나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음을 형상화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이의 생명성을 집약한 구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울 수밖에 없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08-12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33] 예수를 맞는 신앙인의 자세 - 석용원의 「종려」
      사철 푸른 너를 심었노라 애타게 그리움이 스미여 쌓여 향방을 잃은 내 가슴 뜰에 노란 네 꽃을 어여삐 피워 연상 기다리노라 님만 기다리노라. 먼 훗날도 아닌 어느 날 구비치는 왕의 대열이 홀연히 뜰을 메워 내 앞뜰에 흐를 적에 잎을 깔고 비단처럼 너를 깔고 가지를 들어 횃불처럼 너를 들어 호산나——— 호산나——— 목쉬게 터지게 외칠 날 내게 있어 아아 종려 사철 푸른 너를 심었노라.          - 「종려(棕櫚)」의 전문 이 시는 오늘의 삶 속에서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흔들었던 종려나무 가지의 의미와 상징을 형상화했다. 종려나무가 주는 성서적 상징성을 이 시의 바탕에 두고, 예수의 재림을 갈망한 신앙적인 고백시이다. 예수를 기다리는 열렬한 갈망의 신앙이 승화되었다. 이 시는 4연으로 구성되었다. 전체적인 구성은 예수를 기다리기 위해 준비하는 성숙된 신앙이 표현되어 있다. 예수의 재림을 위해 준비하고 기다리는 재림신앙에서 비롯되었다. 성숙한 신앙의 결과이다. 제1연은 내면적인 신앙의 표현이다. 화자인 자기 가슴의 뜰에 푸른 종려나무를 심어 놓고 예수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애타게 그리움이 스미어 쌓여”란 구절은 예수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다. 그것은 “노란 네 꽃을 어여삐 피워”와 “연상 기다리노라”란 구절에서 그리움의 절정을 볼 수 있다. 사철 푸른 종려나무를 심어 놓고 노란 꽃까지 피워 기다리는 마음이다. 그리고 ‘연상’이란 언어를 통해 단시적인 마음이 아니라, 성숙한 신앙의 마음을 표현해 준다. 제2연과 3연은 재림할 예수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된 마음이다. 먼 훗날도 아닌 어느 날 재림할 예수가 앞뜰을 지날 때에 종려나무 잎을 비단처럼 깔고 가지를 횃불처럼 들어 환영하겠다는 마음의 의지이다. ‘먼 훗날’도 아닌 ‘어느 날’은 이미 성숙한 신앙으로 예수의 재림을 예측하는 시기이다. 예수의 재림은 모든 정황으로 ‘먼 훗날’이 아니라, ‘어느 날’이 될 수밖에 없다는 신앙적 예측이다. 또한 ‘내 앞뜰’은 내면적인 성숙한 신앙의 표현이다. 1연의 사철 푸른 종려나무를 심은 ‘내 가슴 뜰’이다. 그리고 3연은 재림한 예수를 맞이하는 자세이다. 종려나무 잎을 ‘비단처럼’ 깔고나, 종려나무 가지를 ‘횃불처럼’ 들고서 맞이한다. ‘비단처럼’이나 ‘횃불처럼’이 주는 이미지가 예수를 귀한 존재로 부각시켜 준다. 제4연은 예수가 예루살렘을 입성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목이 터지게 ‘호산나’를 외치던 승리의 그때를 연상시켜 준다. 화자는 그때처럼 ‘호산나’를 목이 쉬고 터지게 외치며, 재림할 예수를 맞이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재림할 예수를 맞이하기 위해서 가슴의 뜰에 사철 푸른 종려나무를 심어놓았다고 고백한다. 이 시는 어느 날에 재림할 예수를 기다리고, 맞이할 성숙한 신앙인의 마음을 노래했다. 그 기다림은 가슴의 뜰에 종려나무를 심어놓은 신앙으로 승화되었다. 특히 예수가 재림할 때에 종려나무 잎을 비단처럼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횃불처럼 들고서 맞이하겠다는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로 형상화했다. 이러한 그의 첫시집인 〈종려〉의 대부분의 시들은 가장 순박한 믿음의 자세에서 기다림으로 채색되어 있지만, 제2시집인 〈잔〉은 고뇌자로서의 열도하는 자세이다. “이 잔을 나에게서 면케 하소서/나는 방초동산 사슴되어 뛰놀고 싶습니다”라고 예수 그리스도가 마신 잔을 그가 마신다는 동행자로서의 결의를 보여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 그 자체를 스스로에게 적용시키려는 몸부림과 고통 속에서 고민하고 얻는 귀중한 유산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08-09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32]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앙의 삶 - 임인수의 「서시」
      괴로움과 슬픔이 다하는 그날 나는 백지로 돌아가리라 이렇게 외로이 무심은 불타올라 임의 품에 안기는 버릇 모습은 말씀이 되고 글자가 되고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이끌림이어 임은 항상 나를 부르시도다. - 시집 〈땅에 쓴 글씨〉의 「서시(序詩)」 전문 임인수는 1955년 〈땅에 쓴 글씨〉(새사람사 간행)란 첫 시집을 발간했다. 이 시집에는 37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서시」는 이 시집의 첫 장에 편집되어 시집 전체의 시세계를 암시해 준다. 이 「서시」 는 기독교신앙인으로서의 삶의 모습과 지향하는 삶의 지표를 추구했다. 이 시의 ‘임’은 삶 속에 나타난 감상적 대상이 아니라, 우주와 생명의 창조자이다. 즉 하나님을 ‘임’으로 지칭하고 있다. 그것은 ‘임’으로 표현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가까운 관계로 설정했다. 특히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나, ‘신’이란 어휘는 시어로서는 관념적인 시어이다. 이 어휘를 ‘임’으로 표현함으로써 우리의 감정이 어색함이 없도록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경지를 개척했다. 이 시는 3연과 마지막 연 뒤에 작은 활자로 4행의 구절로 구성되어 있다. 1, 2, 3연을 감상하기에 앞서 마지막 부분의 4행을 이해해야만, 그 맥락에서 시 전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4행은 “보이지 않는 손길에/이끌림이어/임은 항상 나를/부르시도다”라고 적고 있다. 전형적인 신앙인의 삶에 대한 고백이며,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진술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길에 이끌리어 살아왔고, 그는 나를 부르고 있다고 고백한다. “임은 항상 나를/부르시도다”는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 삶이다. 이 「서시」 의 본문 말미에 있는 귀절은, 시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 출발점의 역할을 감당한다. 제1연은 만나고자 하는 ‘임’, 즉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의 ‘백지’상태를 표현했다. 이 세상의 삶과 죽음을 “괴로움과 슬픔이/다하는 그날”로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그날에는 “나는 백지로/돌아가리라”라고 고백한다. 그것은 육체적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괴로움과 슬픔이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만남과 영원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관문이다. 새로운 만남을 위해 ‘백지’상태, 즉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의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모습을 지니겠다는 다짐이다. 육체적 죽음 이후에 순수한 모습 그 자체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제2연은 제1연의 순수한 신앙의 삶을 심화시키고 있다. 즉 신앙적인 삶에 대한 표현이다. “이렇게 외로이/무심은 불타올라”는 현실적 삶에서 벗어나, “나는 백지로/돌아가리라”란 다짐의 신앙을 승화시킨 구절이다. 그래서 신앙의 삶을 “임의 품에 안기는 버릇”으로 표현했다. 신앙의 삶은 ‘임’, 즉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며, 그의 품에 안기는 삶이기 때문이다. 제3연의 “모습은 말씀이 되고/글자가 되고”는 요한복음 1장 1절과 14절을 떠올리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절)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중략”(14절)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습 자체가 ‘말씀’이 되고, ‘글자’가 되는 삶을 표현했다. 그것은 신앙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일체가 된 경지, 즉 영적 자각의 상황이다. 이 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추구했다. 육체의 죽음 이후 ‘백지’상태로 돌아가고, 일상적 삶 속에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버릇, 그리고 “모습은 말씀이 되고/글자가 되고”란 신앙의 깊은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이 삶은 신앙의 육화, 즉 신앙의 생활화에서 비롯되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08-0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31] 사랑의 실천위한 희생정신 - 황금찬의 「촛불」
      촛불! 심지에 불을 붙이면 그때부터 종말을 향해 출발하는 것이다. 어두움을 밀어내는 그 연약한 저항 누구의 정신을 배운 조용한 희생일까. 존재할 때 이미 마련되어 있는 시간의 국한을 모르고 있어 운명이다. 한정된 시간을 불태워 가도 슬퍼하지 않고 순간을 꽃으로 향유하며 춤추는 촛불-. - 「촛불」 의 전문 황금찬(黃錦燦)의 「촛불」은 아름다운 희생정신을 형상화했다. 순수한 사랑의 실천이 희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 시이다. 촛불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존재한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몸을 태우는 촛불의 희생으로, 누구나가 밝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촛불의 희생은 순수한 사랑의 실천으로 볼 수 있다. 촛불의 희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정신을 떠올릴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촛불의 희생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자신의 몸을 드렸다는 데에 일치하고 있다.  이 시는 촛불, 그 자체를 생명체로 인식하고 기독교정신의 시각에서 형상화했다. 촛불의 생명은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데에 있다. 즉 촛불의 생명, 산다는 것은 생명의 연소이며, 그 연소가 순수하고 온전한 것일수록 아름다운 희생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기독교사상에서 비롯된 형상화의 결과이다. 특히 촛불의 존재, 그 생명의 가치성을 통해 사랑의 실천을 일깨워 주고 있다. 제1연은 촛불의 존재, 제2연은 촛불의 임무, 제3연은 촛불의 운명, 제4연은 촛불의 정신을 형상화했다. 제1연은 촛불의 ‘시작’과 ‘종말’을 노래하고 있다. “심지에 불을 붙이면”은 촛불의 탄생이며 출발이다. 그것은 “그 때부터 종말을 향해/출발하는 것이다”고 생명성을 인식시켜 주고 있다. 즉 촛불의 생명은 심지에 불을 붙이면 시작되고, 그 생명은 종말인 죽음을 향해 출발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제2연은 촛불의 임무, 즉 책임과 역할을 노래하고 있다. 촛불은 어둠 속에서 밝음을 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촛불의 희생에서 연유한다. “어두움을 밀어내는/그 연약한 저항”은, “누구의 정신을 배운/조용한 희생일까”라고 물음을 던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조용한 희생정신을 배운 촛불의 희생을 극대화시켰다. 이 시에서 ‘누구’로 지칭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촛불의 희생은 조용한 희생이며, 그 조용한 희생은 댓가 없는 희생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사랑과 일치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3연은 촛불의 운명을 노래하고 있다. 촛불은 초 한자루의 한정된 생애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이미 마련되어 있는/시간의 국한”인 것이다. 이러한 촛불의 생애를 모르고 있어 “운명이다“고 단정하고 있다. 촛불의 운명, 즉 “존재할 때/이미 마련되어 있는/시간의 국한을/모르고 있어”라고 일깨워 준다. 그것은 인간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제4연은 촛불의 정신을 노래하고 있다. 그 정신은 희생이다. 촛불의 운명인 “한정된 시간”을 지니고 있다. 어둠 속에서 밝음을 주기 위해 “불태워 가도/슬퍼하지 않고”라고 희생정신을 형상화했다. “순간을 꽃으로 향유하며/춤추는 촛불-.”은 촛불의 아름다운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촛불의 ‘한정된 시간’인 ‘순간’을 아름다운 꽃으로 향유하는 삶이다. 그 삶은 아름다운 생애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 시는 촛불의 희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떠올리고, 순수한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에서 촛불은 성서적으로 희생의 제물이다.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렸던 것처럼, 촛불의 희생으로 우리들에게 밝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07-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30] 하나님이 주시는 위안과 소망 - 김찬양의 「보이는 길
      눈물날 때 하늘 보면 바람 길 보이고 볼을 비비며 다가와서 하늘소식 전해요 기다리고 참고 있으면 무지개가 길되어 꿈망울을 가득 싣고 다가오지요 기쁠 때에 하늘 보면 분홍 길 보이고 다웃지 못한 함박 웃음 뭉개구름 되어요 몽실 몽실 기쁜 꽃망울 휘파람 소리되어 가슴마다 소망의 빛 비춰주어요 - 「보이는 길」 의 전문 김찬양의 동시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는 특징을 지닌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적 모습을 지향한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 위안과 희망,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 어린이다운 마음의 상태에서 관찰하고, 포착한 동심의 세계를 시적 표현 속에 담아내는 것도, 그의 독특한 시적 발상이다. 「보이는 길」은 ‘하늘’이 주는 소망의 길을 형상화했다. 예부터 지금까지 ‘하늘’은 신앙의 대상이었다. 하늘은 신앙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되기 이전에는, 우리 조상들이 하늘을 향해 빌었다. 비가 오지 않고 흉년이 계속되면 기우제를 지내고, 가을에 풍년이 들면 감사의 풍년제를 지냈다. 그리고 가정마다 문제가 생기면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다. 하늘을 향해 모든 문제를 아뢰고, 위안과 소망의 응답을 간구했다. 그것은 간절한 기도의 행위였다. 하늘에는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 초월할 수 있는 신이 계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은 상징적이다.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이 될 수도 있고, ‘천국’ 즉 ‘하나님 나라’일 수도 있다. ‘하늘 보면’은 기도의 행위이다. 하늘을 보면 ‘보이는 길’이 있다. 기독교 신앙인들만이 볼 수 있는 길이다. 그 길은 한마디로 집약하면, ‘구원’의 길이다. 그래서 ‘하늘 보면’이란 행위의 그 자체는, 간절한 기도의 모습이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슬플 때나 기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앙인의 삶이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슬플 때나 기쁠 때에 위안과 소망을 준다. 화자는 눈물 날 때와 기쁠 때에 하늘 향해 기도한다. ‘눈물이 날때’와 ‘기쁠 때’의 기도의 모습에서 응답되는 상황을 전개했다. 눈물이 날 때, 즉 슬플 때에 하늘을 보면 바람의 길이 보인다. 그 바람의 길을 통해 기쁜 소식을 전해 온다. 그 눈물을 참고 견디면 무지개가 길이 되어 꿈을 가득 담아준다. 그것은 희망과 소망이다. 그리고 기쁠 때에 하늘을 보면 분홍의 길이 보이고, 다 웃지 못한 웃음이 뭉게구름이 된다. 그 뭉게구름은 기쁜 꽃망울과 휘파람소리가 되어 소망의 빛이 된다. ‘하늘소식’과 ‘무지개’, ‘꿈망울’과 ‘분홍길’, ‘함박웃음’과 ‘꽃망울’ 등이 위안과 소망을 가득 담아주는 이미지이다. ‘눈물 날 때’와 ‘기쁠 때’는 인간의 삶이다. 누구나가 이러한 일상사 속에서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신앙인은 기도생활로 극복한다. 눈물 날때는 간구의 기도를 하고, 기쁠 때도 감사의 기도를 한다. 기도를 통해 위안과 소망, 사랑과 평화의 마음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김찬양의 시는 오늘의 생활 속에서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를 되찾아 준다. 그의 시에는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의 갖가지 나무와 꽃, 사물들이 등장하고, 그 자연물과 생활의 소재가 되어 동심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러한 그의 시들은 정형시로의 묘미를 통해 적절한 음악의 노랫말이 되기도 하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자연 친화성도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인도해 준다. 또한 눈에 보이듯, 손으로 만져지듯, 지금 여기 앞에 서 있듯이, 생생하게 표현해 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07-18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29] 하나님과의 추억과 사랑 - 소강석의 「눈물·1」
      아직도 멈추지 않는 두 볼에 흐르는 눈물 당신과의 추억, 사랑, 기다림 홀로 기다리던 지상의 시간이 홀로 정원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쓸쓸하고 고독하였을지라도 당신을 가슴에 새긴 사랑이었다면 당신을 가슴에 품은 기다림이었다면 아픔과 고통을 넘어 슬픔의 파도를 지나 어렴풋이 보이는 희망의 수평선입니다 눈물은 이슬이 되고 꽃잎이 향기가 되어 당신께 날아갈 수만 있다면 이 밤 한 송이 분꽃이 되어 당신 가슴에 흩날리고 싶어요                - 「눈물·1」 의 전문 눈물은 슬픔이나 고통에 연유한다. 대부분 정신적인 감동이나 자극에 의해 비롯된다. 눈물을 흘린다는 그 자체는 진실된 표정의 행위로 간주한다. 이 세상 어느 곳도 눈물없는 곳은 없다. 또 눈물을 한번 흘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누구나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눈물에 대한 기독교적 이미지는 참회의 모습을 떠올린다. 잘못에 대한 뉘우침, 즉 죄를 뉘우쳐 하나님에게 고백하는 것은 참회의 기도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참회는 눈물없이 고백할 수 없다. 눈물이 없는 참회는 거짓된 행위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의 「눈물·1」은, 눈물을 ‘추억의 눈물’과 ‘사랑의 눈물’, 그리고 ‘기다림의 눈물’로 형상화한다. 눈물이 지닌 정신적 충동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사랑과 기다림으로 승화시켰다. 눈물을 통해 끝없는 사랑과 고독한 기다림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추억이나 사랑, 그리고 기다림은 눈물의 상승작용을 통해 눈물에 대한 가치성과 생명력을 확대시켜 주기 때문이다. 사랑과 기다림의 절정은 눈물로 나타난다.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추억이나 깊은 사랑으로 인한 눈물, 그리고 멈추지 않는 눈물 속에서의 기다림은 최상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이 시의 첫 연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노래한다. 눈물을 통해 획득한 하나님과의 추억과 사랑, 그리고 기다림을 확대시킨다. “아직도 멈추지 않는/두 볼에 흐르는 눈물”은,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다. ‘아직도’는 지금도 감격의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과거인 어제의 ‘추억’과 현재인 오늘의 ‘사랑’, 그리고 미래인 내일의 ‘기다림’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지금도 멈추지 않는 눈물로 계속 진행되고, 추억과 사랑, 그리고 기다림으로 지속된다. 제2연부터 4연까지는 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홀로 지내고 고독한 삶이 제2연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홀로 기다리던/지상의 시간이”나, “쓸쓸하고 고독하였을지라도”는 화자의 지나온 삶에 대한 표현이며, 고독한 기다림의 절정을 승화시킨 구절이다. 제3연이나 4연도 기다림에 대한 희망을 노래한다. 가슴에 새긴 사랑이나 가슴에 품은 기다림은, ‘사랑’과 ‘기다림’의 지순하고 영원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기다림은, 아픔과 고통, 그리고 슬픔을 지나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희망의 수평선’으로 어렴풋이 보인다고 고백한다. 마지막 연은 하나님과의 추억과 사랑, 그리고 기다림의 눈물이 확산되고 있다. 눈물에는 추억과 사랑, 기다림이 그대로 집약되어 있기 때문에 상승작용을 통해 이슬이 되고, 꽃잎이 향기가 된다. 또한 분꽃이 되어 주님께로 가고 싶다는 그리움이다. 깊은 밤에 눈물이 이슬이 되고, 꽃잎이 향기가 되어 한 송이 분꽃으로의 염원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러한 이 시는 하나님과의 추억과 사랑, 기다림의 그리움을 승화시켰다. 눈물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를 통해 화자의 신앙적인 삶을 노래한 것이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삶이 그대로 표현한 신앙고백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07-10
  • 문화선교연구원서 문화성경학교
    ▲ 문화선교연구원은 영화 〈천로역정 : 천국을 찾아서〉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어린이 문화성경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문화선교연구원(원장=백광훈목사)는 지난 6일 신촌 필름포럼(대표=성 현목사)에서 「해설이 있는 천로역정 : 천국을 찾아서」란 주제로 어린이 문화성경학교를 열고, 기독교 고전문학을 통한 신앙교육의 장을 열었다. 이번 어린이 문화성경학교는 8월 17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하며 존 번연의 소설 〈천로역정〉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영화 〈천로역정 : 천국을 찾아서〉를 통해 어린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 문화로 신앙심을 키우는 시간을 갖는다. 성경학교 관계자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기독교 고전인 〈천로역정〉이 애니메이션 영화〈천로역정: 천국을 찾아서〉로 우리 곁에 찾아왔다”며, “영화는 17세기 영국 작가 존 번연의 소설 〈천로역정〉을 토대로 희망도, 기쁨도, 자비도 없는 멸망도시의 국경을 넘어서 천국도시를 찾아서 떠나는 크리스천의 이야기를 담았다. 율법언덕, 세속의 숲, 절망의 성, 허영시장, 죽음의 골짜기 등 진리를 향한 신앙인의 험난한 여정을 스크린으로 옮기면서 볼거리와 의미 모두 잡았다”고 전했다. 이어 “필름포럼에서 상영하는 〈천로역정: 천국을 찾아서〉를 감상하고 준비된 영화가 모두 끝난 후에는 문화선교연구원 소속 전문가의 영화 해설을 통해 〈천로역정〉이 전해주는 신앙인을 향한 은혜와 진리,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어린이들에게 전하고자 한다”며, “성경학교가 끝난 후 영화를 가지고 신앙적인 교육을 통한 영화나눔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돕고자 〈무비톡가이드〉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번 성경학교를 통해 〈천로역정〉이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많은 이들을 들을 수 있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 출판/문화
    • 문학
    2019-07-10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28] 순수한 사랑의 깊이와 넓이 - 용혜원의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2」
      그대의 눈빛 익히며  만남이 익숙해져  이제는 서로가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쓸쓸하고, 외롭고, 차가운  이 거리에서  나, 그대만 있으면  언제나 외롭지 않습니다  그대와 함께 있으면  내 마음에 젖어드는  그대의 향기가 향기로와  내 마음이 따뜻합니다  그대 내 가슴에만  안겨줄 것을 믿고  나도 그대 가슴에만  머물고 싶습니다  그대는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우리 한가롭게 만나  평화롭게 있으면  모든 시름과 걱정이 사라집니다  우리 사랑의 배를 탔으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그대는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입니다    -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2」의 전문 용혜원의 시 속에 승화된 사랑은 지란지교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지초와 난초같은 향기로운 사귐의 사랑, 그리고 벗 사이의 맑고도 높은 사귐의 사랑에 대한 향기이다. 우리 모두의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의 사랑의 시들은 절망과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사랑의 메시지이다. 아름다운 사랑을 위한 다리를 놓고, 사랑의 꽃이 피어난 마을을 향한 동행의 노래이다. 깊은 산 속의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처럼, 맑고 청순한 목소리로 사랑의 관계를 만든다. 사랑의 마음이 샘솟도록 용기를 주고,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로 그리운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도록 일깨운다. 용혜원은 ‘사랑의 시인’이다. 사랑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사랑의 고뇌와 그리움을 노래하고, 아름답고 영원한 사랑을 추구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열정과 그리움으로 성숙한 사랑에 이른다. 그 사랑의 대상은 ‘그대’이며, ‘당신’이다. 그대나 당신은 누구나가 정겹고 사랑스럽게 일컫는 대상이다. 화자인 나의 그대이며, 나의 당신이다. 화자인 ‘나’를 우리 모두의 사랑으로 객관화시키는 것도, 깊은 감동의 공감대를 형성시켜 준다.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2」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승화시켰다. 아름다운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추구했다.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이란 맑고 순수한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제1연은 서로가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관계를 고백한다. 그것은 그대와의 만남으로 사랑에 대한 눈빛을 익히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에 대한 관계를 구체화했다. 제2연과 3연은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고,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고백한다. 쓸쓸하고 외롭고 차가운 거리에서도, 그대만 있으면 언제나 외롭지 않음을 실토한다. 그리고 3연에서는 함께 있으면 그대의 향기가 향기로워 마음이 따뜻함을 고백한다. 1연과 같이 깊은 사랑의 관계를 구체화했다. 제4연은 무르익어 가는 사랑의 바람이다.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에 대한 사랑의 믿음을 승화시켰다. 그래서 그대는 내 가슴에만 안겨줄 것을 믿고, 나도 그대 가슴에만 머물고 싶다는 바람이다. 제5연은 사랑의 만남으로 모든 시름과 걱정이 사라진다. 사랑하기 위해 온갖 말잔치나 꾸밈의 어떤 계산이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가롭게 만나 평화롭게 있으면, 모든 시름과 걱정이 사라진다는 사랑의 관계를 승화시켰다. 마지막 연은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미 ‘사랑의 배’에 승선했음을 단정한다. 이 지상에서의 삶, 즉 동행하는 삶을 의미한다.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세상의 바다를 향해 떠나고 싶은 소망이다. 이러한 이 시는 순수한 사랑의 관계와 의미를 일깨워 준다. 사랑의 길 위에서 성숙한 사랑에 이르는 관계를 보여 준다. 한 폭의 수채화로 그린 아름다운 사랑의 풍경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07-02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