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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병원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 출간서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예수병원(병원장 신충식)은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의 출간서가 2023 세종 도서 교양 부문 추천도서에 선정되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선정된 ‘의사 주보선’은 삶으로 선교를 보여준 한 의료선교사의 삶과 유산을 기록했으며, 김민철 저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선교 의료병원인 예수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받는 동안 주보선 선교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어 예수병원 병원장을 역임(2004~2010년) 했으며 한국누가회(CMF)이사장과 밴쿠버기독교 세계관 대학원(VIEW) 생명윤리 객원 교수직을 겸했다. 현재 인턴 서브 코리아 이사장이며 저서로 '성경의 눈으로 본 첨단의학과 의료'(아바서원,2014)가 있고, '상처받은 세상, 상처받은 치유자들'(IVP) 외 여러 권의 책을 번역 출간했다. 김병선 예수병원 홍보실장은 “우리는 예수병원 의사 주보선을 통해 환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는 진지한 의사의 태도를 배웠다.”며 “의료선교병원으로서 생명존중과 기독의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성장하는데 주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세종도서는 매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양서 출판 활성화와 독서문화 증진을 목표로 교양 부문과 학술 부문의 우수도서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으며 이는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 대학도서관과 사회복지시설 등에 무료로 보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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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특집: 부활절 에세이] 부활이 가져온 능력
진실로 ‘성령 받은 자’가 숨길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오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라는 말씀으로 축복하셨다.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평강을 주셨다. 평강의 생명이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될 때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축복은 제자들의 모임 중에 받은 기름부음이었다. 제자들이 서로 교제하는 곳에 평강이 임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교회도 제자들처럼 모임에 힘쓰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본능이다. 성도들이 서로 모이기를 힘쓰는 것은 영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생활이 영적인 현상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지체는 서로 교통하며 연합하기를 기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개별적인 역할을 위해 택함 받지 않고 주님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의 순기능에 속한다. “모이기를 힘쓰는~”(행2:46),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히10:25)는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평강의 축복임을 알수 있다. 성령을 받으라 부활하신 주님의 두 번째 축복은 바로 주님의 생명을 우리 속에 부은 것이다. 숨을 내쉬며 주님께서 불어 넣으신 것은 성령의 생명이시다. 이 생명을 주심으로써 저들을 우리 중에 하나와 같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한 일이 성취되었다.(요17:11) 성령을 주심으로 주님의 옆구리에서 흘리신 물의 역사를 증거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로 인해 주님의 생명을 받았음을 알게 하신다.(요일5:13)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의지하여 천국 시민의 삶인 거룩한 생활을 살게 된다.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성령의 능력이 상실된 힘없는 믿음이 될 뿐이다. 옛사람을 의지하는 본능적인 삶을 떠나 성령이 인도하는 새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부활생명은 믿는 자 누구든지 새사람의 삶이 가능하도록 축복하셨다. 죄 사함의 권세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명령하셨다. 성령을 받은 자가 행하는 일이 기사와 이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진실로 성령을 받은 자가 숨길 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이다. 만약 우리들의 믿음으로 엄청난 역사를 이룬다 해도 이 죄 사함의 권세가 없다면 성령의 속성을 약화시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20:23). 죄 사함의 권세는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이다. 주님은 주기도문에 주님의 나라와 영광과 권세를 구하기 전에 죄 사함받는 길을 가게 하셨다. 우리는 매일 죄를 사하는 권세를 사용해야 한다. 이 권세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죄의 세력 앞에 무력한 신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죄사함의 권세로 형제를 용납하는 만큼 용서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며 악의 사슬이 끊어지는 죄 사함의 권세를 회복하는 부활의 새 아침을 맞이하자. 이러한 일에 놀라운 영성과 축복의 주인이 바로 베드로였다. 베드로의 영성은 앞으로 지을 죄도 용서받은 죄 사함의 권세에 있었다. 부활의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이 세 가지의 축복이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대전 반석교회 목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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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경시집 「사랑의 향기」 화제
이해경시인(사진)의 시집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사랑의 향기〉를 도서출판 사랑의 장막에서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시인은 2013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노래〉란 첫 시집과 함께 등단했다. 그러나 2018년 『시선』 신인추천으로 재 등단한 것이다. 그는 시인이면서 목사이며, 간호사와 상담사, 선교사란 직책을 지니고 있다.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형상화 행복한 삶의 여정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길로 인도 ‘끝없는 사랑’의 길 이해경시인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 그 사랑은 순수한 사랑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오늘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의 근원’인 아가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늘은/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하늘은/또다시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이제야/그 말의 의미를/조금씩 깨닫는 오늘이다 -「하늘의 사랑」의 전문 이 시에서는 ‘하늘’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하나님에 대한 화자의 깨달음을 표현했다. 첫연은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은 “보라고 일러 준다”는 구절처럼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됨을 보여 준다. 제2연과 제3연은 첫 연의 가르침에 대한 깨닫지 못한 상황이다. 제4연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에 의한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그대로 방치해 두지 않고 또다시 가르쳐 주고, 제5연에서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첫 연에서 “산 너머 있는 것을”이란 구절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세계’를 말한다. 화자가 위치한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너머’란 장소를 지칭한 것은 ‘산’이 주는 신비스러움으로 ‘산 너머’를 신비스럽게 격상시켜 준다. 그 ‘산 너머’에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란 구절은 제1연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연유한 가르침이다. 제2연과 3연은 결과이다. “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제2연)거나, “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제3연)고 하나님을 향한 초보적인 신앙을 표현한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 기독교인의 행복한 삶은 일반적으로 의에 대한 보상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주어지는 즐겁고 복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몸과 마음이 흐뭇하고 만족하여 부족이나 불만이 없는 삶이다. 성경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나와 있다 다음의 시는 행복주의적인 삶을 볼수 있다. 행동과 행위에 의해 성취되는 삶이며, 윤리적 목적 및 궁극적 목표가 행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대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세상의 눈을 감고/세상의 귀를 닫고/빛의 음성을 듣는다//그의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빛의 눈을 뜨고/빛의 귀를 열고/빛의 옷을 입는다. - 「그대 곁에서」의 전문 이 시에서의 ‘그대’는 하나님을 가르킨다. 첫 연의 ‘빛’과 제2연의 ‘빛’의 의미가 다르다. 첫 연의 ‘빛’은 하나님을 지칭하고, 제2연의 ‘빛’은 화자의 ‘신앙’을 의미한다. 화자는 신앙적인 삶 속에서 행위의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을 신앙에 두고 실행하고 있다. 그것은 행복주의 자의 삶이다. 첫 연에서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나, 세상의 눈을 감고 귀를 닫는 것,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연에서 그대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신앙의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것, 신앙의 옷을 입는 것이다. 어머니·아버지의 삶 속에 나타난 사랑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시들은 ‘사랑’으로 귀결되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 그 자체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고, 그것은 사랑에 연유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임을 보여 준다. 「어머니의 하루」란 시는 어머니의 일상적인 삶을 간결하게 형상화했다. 오직 가족을 위한 삶이었음을 보여 준다. “차가운 하루의 문을 열고”란 구절의 ‘차가운 하루’는 어머니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을 함축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삶이다. 또한 “우리의 밭을 일구셨다”란 구절의 ‘우리’란 화자를 비롯한 가족을 의미하고, ‘밭’은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때로는 비바람이 되고”나, “때로는 햇빛이 되어”서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인 ‘밭’을 일구신 것이다. 이 ‘비바람’과 ‘햇빛’은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표현이다. 화자는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희생을 떠올리는 오늘이다. “어머니의 의자에 앉아”란 구절은,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버지의 무게」란 시는 가정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형상화했다. 아버지의 삶을 ‘무게’로 표현했다. 무거울수록 힘든 생활임을 보여 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아버지가 가장(家長)이 되고, 가정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아버지의 무게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세상의 세찬 비바람에”란 구절로 집약된 삶에 대한 어려운 환경이고, 그 어려움은 “쌓이고 쌓인 아픔의 세월”인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가족들 몰래 눈물을 흘린다. 주위 환경으로 인해 “날마다 무게를 더하고”란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극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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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 복음의전함서 전도 플랫폼 세미나
◇광교선교단체 복음의전함은 들어볼까 세미나를 연다. 사진은 인천지역 세미나. 유명인 간증과 목회자들이 풀어낸 콘텐츠를 짧은 영상에 담아 지역별 각 교회서 「들어볼까」란 세미나로 새로운 전도법 소개 사단법인 복음의전함(이사장=고정민)은 광고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다음달 13일까지 전국의 교회에서 「들어볼까 세미나」를 진행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완화와 함께 이전에 참여했던 교회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7개 지역 교회에서 열린다. 7월 5일 10시에 고양시 일산광림교회를 비롯한 7월 7일 10시에 서울시 여의도침례교회, 7월 8일 10시에 서울시 광림교회, 7월 8일 20시에 춘천시 순복음춘천교회, 7월 11일 10시에 강릉시 강남성결교회, 7월 12일 10시에 부산시 포도원교회, 7월 13일 10시에 용인시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가진다. 세미나는 동 단체 고정민이사장이 대표연사로 참여한다. 전도 플랫폼 「들어볼까」 구성을 안내하고, 새신자를 교회에 오게 하는 「들어볼까」의 활용방법을 설명한다. 또한 코로나19를 겪으며 온라인 위주로 바뀐 문화의 흐름에 따라 SNS 등 미디어를 활용한 실질적인 전도 방법을 제안한다. 세미나 참석 교회에 제공되는 특별혜택도 있다. 「들어볼까」 내에 지역교회 연결 서비스인 ‘교회찾기’에 교회를 무료로 등록할 수 있다. 또한 명함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명함을 받은 사람이 교회로 찾아올 수 있게 하는 ‘복음명함’의 원본 디자인 파일이 무상으로 제공된다. 미자립교회에 제공되는 혜택도 있다. 세미나에 사전 신청한 미자립교회 중 각 지역 선착순 30교회에 복음 광고 전도지가 무료 제공될 예정이다. 동 단체 고정민이사장은 “결국 복음을 전하는 일은 교회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세미나를 통해 미디어 전도가 전국 각지 교회에서 시작되어 5천만 국민 전도운동으로 이어지고, 주님의 복음이 곳곳으로 흘러가 대한민국 교회가 새롭게 믿음을 가진 이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고 전국 교회의 참여를 독려했다. 「들어볼까」를 통해 제안되는 새로운 전도 방식은 대한민국 복음의 불씨를 다시 한번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 동 단체는 지난해 12월 새로운 전도플랫폼 「들어볼까」를 공개했다. 「들어볼까」에는 유명인의 간증과 목회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낸 기독교 교리 콘텐츠가 5분짜리 짧은 영상으로 담겨있다. 동 단체는 “교회에 한 번도 가본 적 없거나,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거부감 없이 올바르게 소개하고 전도하기 위해 「들어볼까」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동 단체는 교회에서 「들어볼까」로 복음을 전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교회 대상으로 설명회를 계속 개최해 오고 있다. 기존 설명회는 사전신청한 교회를 대상으로 줌 온라인 설명회로 개최됐었다. 이전 설명회에 참여했던 목사들은 “전도에 대한 막막함이 있었는데 너무 좋은 정보와 콘텐츠를 알게 되어서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며,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쉬운 콘텐츠를 이용해서 비신자들과의 접촉점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감사하고 기대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단법인 복음의 전함은 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비영리 광고선교단체다. 광고라는 도구를 통하여 비신도들을 대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사람들의 생활권 안에서 녹아든 세상을 만들기 위해 광고선교사역의 사명을 감당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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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5) -김말봉의
일본에서 귀국한 청년 윤창섭은 언니 허윤숙의 애인이었다. 윤창섭의 돌연한 출현이 최순애의 생활에 일종의 활기를 불어넣어준 것이다. 언니의 애인이 왜 순애의 삶에 활력소가 되었을까. 윤창섭은 말하자면 염상섭의 <삼대> 속의 김병화와 같은 인물이었다. 당시의 유행어로 ‘마르크스 보이’인 셈이다. 그 청년 앞에서 순애는 돌연 <삼대> 속의 홍경애의 위치로 변해버린다. 술집 바커스의 여급 신분이었던 홍경애가 김병화(마르크스 보이)와의 관계를 성숙시켜 가면서 여걸의 위치로 점차 격상되듯이, 최순애 역시 윤창섭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새로운 여성 사회운동가로 서서히 변화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참다운 동지를 얻게 되어 기뻤던 윤창섭은 최순애에게 처음엔 동지가 되어 달라고 간청하더니, 다음에는 자기 애인 허윤숙과의 합의를 거쳐서인지 윤숙의 언질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구혼 공세를 해 온 것이다. 언니(윤숙이)가 자기 애인 윤창섭을 최순애에게 넘겨주기로 작심해 버렸다는 뜻이었다. 순애가 반신반의하기도 했으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마도 언니 허윤숙은 주의자(主義者)로서의 윤창섭이 동지애로 긴밀히 결속되어 있는 최순애와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 두 사람, 또는 세 사람 모두에게 결과적으로 좋을 일이라고 하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망명녀>(1932)에서의 이런 상황 전개는 그보다 1년 앞서 나온 염상섭의 <삼대>(1931)에서의 경우와 상당히 닮아 있다. 지금껏 보아온 윤창섭·허윤숙·최순애의 삼각관계는 <삼대>에서의 이필순·김병화·조덕기의 삼각관계의 변이형태라고 볼 수 있다. <망명녀>에선 남성 윤창섭을 가운데에 놓고 두 여성이 서로 사랑을 양보하는 모습이지만, <삼대>에서는 여성 이필순을 가운데에 놓고 남성들이 사랑을 양보하는 형국이다. <삼대>의 이런 국면이 <망명녀>에 와서 하나의 변이형태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망명녀>의 이야기로 되돌아가면, 어떻든 결과는 세 사람 모두가 순조로운 합의에 이르게 되고, 한 쌍의 남녀는 결혼 날짜까지 잡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식 당일에 이르러 의외의 돌발 사태가 일어나고야 말았다. 최순애가 각기 두 사람 앞으로 쓴 편지들을 남겨둔 채 어디론가 잠적해버리고 만 것이다. 순애는 윤창섭의 동지들로부터 날아온 어떤 지령(암호문)을 접한 뒤, 자기 예비 신랑을 대신해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제 스스로 일방적 파혼 선언을 해버린 뒤 목적지를 향해 떠나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소설 <망명녀>는 한마디로 ‘사랑의 노래’이다. 이 사랑의 노래는 결코 애가(哀歌)일 수 없고, 찬가(讚歌)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랑의 비극을 다룬 것이 아니라 사랑의 승리를 다룬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외국의 모처에서 망명녀의 신세로 살아가는 처지이기는 하지만, 최순애는 자신이 바라서 스스로 그런 지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조금도 비극적이지 않다. 윤창섭은 결혼식 당일에 신부가 될 여인이 잠적해 버리는 불행에 잠시 처해지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결코 비극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윤창섭이 최순애의 지극한 사랑을 당시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양보하였던 사랑을 되찾게 된 허윤숙의 경우도 결코 비극에 이른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약간의 해프닝을 치른 코믹한 감정에 그녀가 빠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또 그들 세 사람 중에 어느 누구가 그런 것 외에 다른 경망한 감정에 휘둘린 일은 있었던가? 아니, 세 사람 모두가 매우 엄숙하리만큼 진지하기만 할 뿐이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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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4)-김말봉의
김경순, 여운영 등에 이어서 전상범의 세 번째 부인이 된 바 있었고, 또한 이석현, 전상범에 이어서 세 번째 남자 이종하와 또다시 결혼을 한 바 있는 김말봉은, 이 모든 사실이 우리에게 보여주듯이, 속칭 인생의 쓴맛과 단맛은 다 경험해 본 바 있는, 어찌 보면 최적의 통속(대중) 작가 감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를테면 그 결실이 바로 그녀의 공식적인 데뷔작 <망명녀>(1932)였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망명녀>를 무슨 통속소설의 샘플(모범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기에는 그 작품 자체가 결코 허락하지 않는, 그 결과 어느 정도의 품위는 스스로 지니고 있는 소설 작품이라고 보는 게 사실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이 소설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 보기로 하겠다. 김말봉의 작품 <망명녀>에는 세 명의 남녀 젊은이들이 등장하여 ‘사랑’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여기서 세 명의 젊은이들이란 최순애(산호주), 허윤숙, 윤창섭 등, 두 명의 여성들과 한 명의 남성이다. 이들 세 사람 사이에는 일종의 ‘애정의 삼각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생 신분인 산호주(최순애)는 요리집 명월관에서 남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야 하는 힘겨운 하루하루의 삶을 버텨 나간다. 그런데 오 주사의 몰인정과 행패를 견디다 못한 그녀는 오 주사에게 폭력적 자세로 맞서게 되고, 그 결과 순사에게 끌려가기까지에 이른다. 얼마 뒤 훈방되어 집으로 돌아와 보니 허윤숙의 명함이 놓여 있었고, 저녁때 만나자고 하는 내용의 글발도 거기에 함께 적혀 있었다. 허윤숙은 최순애(산호주)의 여학교 시절 상급생 언니였는데, 그동안 외국 유학을 갔다가 그 과정을 마치고 얼마 전 귀국했던 것이다. 이 허윤숙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산호주(최순애)는 8년 전의 과거사를 회상해 보게 된다. C여학교 3학년 시절, 최순애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돈 십 원을 훔친 것이 발각되어 그 학교에서 퇴학당했고, 딸(그녀) 때문에 직장마저 잃어버린 아버지를 대신해 자기(그녀)가 직접 직업전선에 나서게 되었으며, 그 결과 지금의 신분, 곧 명월관의 기생 위치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갑자기 허윤숙이 나타나 산호주에게 “너는 이제부터 자유의 몸이다.”라고 선언하였다. 내용인즉슨, 허윤숙이 요리집 명월관 주인의 요구대로 몸값 3백 원을 지불하고 산호주를 기생 신분에서 해방시켰던 것이다. 그 후 최순애는 언니 허윤숙을 따라 그녀의 집에 가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남의 집에 얹혀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녀는 점차로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명월관에서 나온 이래 잠깐 잊고 있었던 모르핀 주입의 악습마저 되살아나게 되었다. 궐련을 자기(언니) 면전에서 빨고 몰래 모르핀 주사도 맞는 최순애를 구원하기 위해 언니 허윤숙은 그녀를 데리고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석 달을 겨우 넘기고 최순애는 교회 출석마저 그만둬 버렸고, 하나님 앞에서의 간구(기도)까지도 ‘아이들의 숨바꼭질 장난’ 정도로 여겨 중지하고 말았다. 최순애는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자기신세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점차로 자학적인 몽상에 사로잡히고, 더할 수 없는 자신의 비운을 저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때 갑작스런 어떤 새로운 인물의 출현으로 그녀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그 새로운 인물이란 일본에서 최근 귀국한 윤창섭이란 이름의 청년이었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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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병원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 출간서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 예수병원(병원장 신충식)은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의 출간서가 2023 세종 도서 교양 부문 추천도서에 선정되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선정된 ‘의사 주보선’은 삶으로 선교를 보여준 한 의료선교사의 삶과 유산을 기록했으며, 김민철 저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선교 의료병원인 예수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받는 동안 주보선 선교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어 예수병원 병원장을 역임(2004~2010년) 했으며 한국누가회(CMF)이사장과 밴쿠버기독교 세계관 대학원(VIEW) 생명윤리 객원 교수직을 겸했다. 현재 인턴 서브 코리아 이사장이며 저서로 '성경의 눈으로 본 첨단의학과 의료'(아바서원,2014)가 있고, '상처받은 세상, 상처받은 치유자들'(IVP) 외 여러 권의 책을 번역 출간했다. 김병선 예수병원 홍보실장은 “우리는 예수병원 의사 주보선을 통해 환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는 진지한 의사의 태도를 배웠다.”며 “의료선교병원으로서 생명존중과 기독의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성장하는데 주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세종도서는 매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양서 출판 활성화와 독서문화 증진을 목표로 교양 부문과 학술 부문의 우수도서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으며 이는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 대학도서관과 사회복지시설 등에 무료로 보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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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문화/여성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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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병원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 출간서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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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특집: 부활절 에세이] 부활이 가져온 능력
- 진실로 ‘성령 받은 자’가 숨길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오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라는 말씀으로 축복하셨다.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평강을 주셨다. 평강의 생명이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될 때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축복은 제자들의 모임 중에 받은 기름부음이었다. 제자들이 서로 교제하는 곳에 평강이 임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교회도 제자들처럼 모임에 힘쓰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본능이다. 성도들이 서로 모이기를 힘쓰는 것은 영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생활이 영적인 현상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지체는 서로 교통하며 연합하기를 기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개별적인 역할을 위해 택함 받지 않고 주님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의 순기능에 속한다. “모이기를 힘쓰는~”(행2:46),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히10:25)는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평강의 축복임을 알수 있다. 성령을 받으라 부활하신 주님의 두 번째 축복은 바로 주님의 생명을 우리 속에 부은 것이다. 숨을 내쉬며 주님께서 불어 넣으신 것은 성령의 생명이시다. 이 생명을 주심으로써 저들을 우리 중에 하나와 같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한 일이 성취되었다.(요17:11) 성령을 주심으로 주님의 옆구리에서 흘리신 물의 역사를 증거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로 인해 주님의 생명을 받았음을 알게 하신다.(요일5:13)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의지하여 천국 시민의 삶인 거룩한 생활을 살게 된다.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성령의 능력이 상실된 힘없는 믿음이 될 뿐이다. 옛사람을 의지하는 본능적인 삶을 떠나 성령이 인도하는 새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부활생명은 믿는 자 누구든지 새사람의 삶이 가능하도록 축복하셨다. 죄 사함의 권세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명령하셨다. 성령을 받은 자가 행하는 일이 기사와 이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진실로 성령을 받은 자가 숨길 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이다. 만약 우리들의 믿음으로 엄청난 역사를 이룬다 해도 이 죄 사함의 권세가 없다면 성령의 속성을 약화시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20:23). 죄 사함의 권세는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이다. 주님은 주기도문에 주님의 나라와 영광과 권세를 구하기 전에 죄 사함받는 길을 가게 하셨다. 우리는 매일 죄를 사하는 권세를 사용해야 한다. 이 권세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죄의 세력 앞에 무력한 신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죄사함의 권세로 형제를 용납하는 만큼 용서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며 악의 사슬이 끊어지는 죄 사함의 권세를 회복하는 부활의 새 아침을 맞이하자. 이러한 일에 놀라운 영성과 축복의 주인이 바로 베드로였다. 베드로의 영성은 앞으로 지을 죄도 용서받은 죄 사함의 권세에 있었다. 부활의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이 세 가지의 축복이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대전 반석교회 목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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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문화/여성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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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특집: 부활절 에세이] 부활이 가져온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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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경시집 「사랑의 향기」 화제
- 이해경시인(사진)의 시집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사랑의 향기〉를 도서출판 사랑의 장막에서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시인은 2013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노래〉란 첫 시집과 함께 등단했다. 그러나 2018년 『시선』 신인추천으로 재 등단한 것이다. 그는 시인이면서 목사이며, 간호사와 상담사, 선교사란 직책을 지니고 있다.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형상화 행복한 삶의 여정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길로 인도 ‘끝없는 사랑’의 길 이해경시인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 그 사랑은 순수한 사랑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오늘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의 근원’인 아가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늘은/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하늘은/또다시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이제야/그 말의 의미를/조금씩 깨닫는 오늘이다 -「하늘의 사랑」의 전문 이 시에서는 ‘하늘’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하나님에 대한 화자의 깨달음을 표현했다. 첫연은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은 “보라고 일러 준다”는 구절처럼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됨을 보여 준다. 제2연과 제3연은 첫 연의 가르침에 대한 깨닫지 못한 상황이다. 제4연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에 의한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그대로 방치해 두지 않고 또다시 가르쳐 주고, 제5연에서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첫 연에서 “산 너머 있는 것을”이란 구절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세계’를 말한다. 화자가 위치한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너머’란 장소를 지칭한 것은 ‘산’이 주는 신비스러움으로 ‘산 너머’를 신비스럽게 격상시켜 준다. 그 ‘산 너머’에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란 구절은 제1연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연유한 가르침이다. 제2연과 3연은 결과이다. “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제2연)거나, “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제3연)고 하나님을 향한 초보적인 신앙을 표현한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 기독교인의 행복한 삶은 일반적으로 의에 대한 보상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주어지는 즐겁고 복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몸과 마음이 흐뭇하고 만족하여 부족이나 불만이 없는 삶이다. 성경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나와 있다 다음의 시는 행복주의적인 삶을 볼수 있다. 행동과 행위에 의해 성취되는 삶이며, 윤리적 목적 및 궁극적 목표가 행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대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세상의 눈을 감고/세상의 귀를 닫고/빛의 음성을 듣는다//그의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빛의 눈을 뜨고/빛의 귀를 열고/빛의 옷을 입는다. - 「그대 곁에서」의 전문 이 시에서의 ‘그대’는 하나님을 가르킨다. 첫 연의 ‘빛’과 제2연의 ‘빛’의 의미가 다르다. 첫 연의 ‘빛’은 하나님을 지칭하고, 제2연의 ‘빛’은 화자의 ‘신앙’을 의미한다. 화자는 신앙적인 삶 속에서 행위의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을 신앙에 두고 실행하고 있다. 그것은 행복주의 자의 삶이다. 첫 연에서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나, 세상의 눈을 감고 귀를 닫는 것,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연에서 그대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신앙의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것, 신앙의 옷을 입는 것이다. 어머니·아버지의 삶 속에 나타난 사랑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시들은 ‘사랑’으로 귀결되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 그 자체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고, 그것은 사랑에 연유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임을 보여 준다. 「어머니의 하루」란 시는 어머니의 일상적인 삶을 간결하게 형상화했다. 오직 가족을 위한 삶이었음을 보여 준다. “차가운 하루의 문을 열고”란 구절의 ‘차가운 하루’는 어머니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을 함축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삶이다. 또한 “우리의 밭을 일구셨다”란 구절의 ‘우리’란 화자를 비롯한 가족을 의미하고, ‘밭’은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때로는 비바람이 되고”나, “때로는 햇빛이 되어”서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인 ‘밭’을 일구신 것이다. 이 ‘비바람’과 ‘햇빛’은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표현이다. 화자는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희생을 떠올리는 오늘이다. “어머니의 의자에 앉아”란 구절은,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버지의 무게」란 시는 가정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형상화했다. 아버지의 삶을 ‘무게’로 표현했다. 무거울수록 힘든 생활임을 보여 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아버지가 가장(家長)이 되고, 가정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아버지의 무게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세상의 세찬 비바람에”란 구절로 집약된 삶에 대한 어려운 환경이고, 그 어려움은 “쌓이고 쌓인 아픔의 세월”인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가족들 몰래 눈물을 흘린다. 주위 환경으로 인해 “날마다 무게를 더하고”란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극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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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경시집 「사랑의 향기」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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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 복음의전함서 전도 플랫폼 세미나
- ◇광교선교단체 복음의전함은 들어볼까 세미나를 연다. 사진은 인천지역 세미나. 유명인 간증과 목회자들이 풀어낸 콘텐츠를 짧은 영상에 담아 지역별 각 교회서 「들어볼까」란 세미나로 새로운 전도법 소개 사단법인 복음의전함(이사장=고정민)은 광고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다음달 13일까지 전국의 교회에서 「들어볼까 세미나」를 진행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완화와 함께 이전에 참여했던 교회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7개 지역 교회에서 열린다. 7월 5일 10시에 고양시 일산광림교회를 비롯한 7월 7일 10시에 서울시 여의도침례교회, 7월 8일 10시에 서울시 광림교회, 7월 8일 20시에 춘천시 순복음춘천교회, 7월 11일 10시에 강릉시 강남성결교회, 7월 12일 10시에 부산시 포도원교회, 7월 13일 10시에 용인시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가진다. 세미나는 동 단체 고정민이사장이 대표연사로 참여한다. 전도 플랫폼 「들어볼까」 구성을 안내하고, 새신자를 교회에 오게 하는 「들어볼까」의 활용방법을 설명한다. 또한 코로나19를 겪으며 온라인 위주로 바뀐 문화의 흐름에 따라 SNS 등 미디어를 활용한 실질적인 전도 방법을 제안한다. 세미나 참석 교회에 제공되는 특별혜택도 있다. 「들어볼까」 내에 지역교회 연결 서비스인 ‘교회찾기’에 교회를 무료로 등록할 수 있다. 또한 명함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명함을 받은 사람이 교회로 찾아올 수 있게 하는 ‘복음명함’의 원본 디자인 파일이 무상으로 제공된다. 미자립교회에 제공되는 혜택도 있다. 세미나에 사전 신청한 미자립교회 중 각 지역 선착순 30교회에 복음 광고 전도지가 무료 제공될 예정이다. 동 단체 고정민이사장은 “결국 복음을 전하는 일은 교회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세미나를 통해 미디어 전도가 전국 각지 교회에서 시작되어 5천만 국민 전도운동으로 이어지고, 주님의 복음이 곳곳으로 흘러가 대한민국 교회가 새롭게 믿음을 가진 이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고 전국 교회의 참여를 독려했다. 「들어볼까」를 통해 제안되는 새로운 전도 방식은 대한민국 복음의 불씨를 다시 한번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 동 단체는 지난해 12월 새로운 전도플랫폼 「들어볼까」를 공개했다. 「들어볼까」에는 유명인의 간증과 목회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낸 기독교 교리 콘텐츠가 5분짜리 짧은 영상으로 담겨있다. 동 단체는 “교회에 한 번도 가본 적 없거나,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거부감 없이 올바르게 소개하고 전도하기 위해 「들어볼까」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동 단체는 교회에서 「들어볼까」로 복음을 전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교회 대상으로 설명회를 계속 개최해 오고 있다. 기존 설명회는 사전신청한 교회를 대상으로 줌 온라인 설명회로 개최됐었다. 이전 설명회에 참여했던 목사들은 “전도에 대한 막막함이 있었는데 너무 좋은 정보와 콘텐츠를 알게 되어서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며,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쉬운 콘텐츠를 이용해서 비신자들과의 접촉점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감사하고 기대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단법인 복음의 전함은 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비영리 광고선교단체다. 광고라는 도구를 통하여 비신도들을 대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사람들의 생활권 안에서 녹아든 세상을 만들기 위해 광고선교사역의 사명을 감당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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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 복음의전함서 전도 플랫폼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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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5) -김말봉의
- 일본에서 귀국한 청년 윤창섭은 언니 허윤숙의 애인이었다. 윤창섭의 돌연한 출현이 최순애의 생활에 일종의 활기를 불어넣어준 것이다. 언니의 애인이 왜 순애의 삶에 활력소가 되었을까. 윤창섭은 말하자면 염상섭의 <삼대> 속의 김병화와 같은 인물이었다. 당시의 유행어로 ‘마르크스 보이’인 셈이다. 그 청년 앞에서 순애는 돌연 <삼대> 속의 홍경애의 위치로 변해버린다. 술집 바커스의 여급 신분이었던 홍경애가 김병화(마르크스 보이)와의 관계를 성숙시켜 가면서 여걸의 위치로 점차 격상되듯이, 최순애 역시 윤창섭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새로운 여성 사회운동가로 서서히 변화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참다운 동지를 얻게 되어 기뻤던 윤창섭은 최순애에게 처음엔 동지가 되어 달라고 간청하더니, 다음에는 자기 애인 허윤숙과의 합의를 거쳐서인지 윤숙의 언질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구혼 공세를 해 온 것이다. 언니(윤숙이)가 자기 애인 윤창섭을 최순애에게 넘겨주기로 작심해 버렸다는 뜻이었다. 순애가 반신반의하기도 했으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마도 언니 허윤숙은 주의자(主義者)로서의 윤창섭이 동지애로 긴밀히 결속되어 있는 최순애와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 두 사람, 또는 세 사람 모두에게 결과적으로 좋을 일이라고 하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망명녀>(1932)에서의 이런 상황 전개는 그보다 1년 앞서 나온 염상섭의 <삼대>(1931)에서의 경우와 상당히 닮아 있다. 지금껏 보아온 윤창섭·허윤숙·최순애의 삼각관계는 <삼대>에서의 이필순·김병화·조덕기의 삼각관계의 변이형태라고 볼 수 있다. <망명녀>에선 남성 윤창섭을 가운데에 놓고 두 여성이 서로 사랑을 양보하는 모습이지만, <삼대>에서는 여성 이필순을 가운데에 놓고 남성들이 사랑을 양보하는 형국이다. <삼대>의 이런 국면이 <망명녀>에 와서 하나의 변이형태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망명녀>의 이야기로 되돌아가면, 어떻든 결과는 세 사람 모두가 순조로운 합의에 이르게 되고, 한 쌍의 남녀는 결혼 날짜까지 잡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식 당일에 이르러 의외의 돌발 사태가 일어나고야 말았다. 최순애가 각기 두 사람 앞으로 쓴 편지들을 남겨둔 채 어디론가 잠적해버리고 만 것이다. 순애는 윤창섭의 동지들로부터 날아온 어떤 지령(암호문)을 접한 뒤, 자기 예비 신랑을 대신해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제 스스로 일방적 파혼 선언을 해버린 뒤 목적지를 향해 떠나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소설 <망명녀>는 한마디로 ‘사랑의 노래’이다. 이 사랑의 노래는 결코 애가(哀歌)일 수 없고, 찬가(讚歌)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랑의 비극을 다룬 것이 아니라 사랑의 승리를 다룬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외국의 모처에서 망명녀의 신세로 살아가는 처지이기는 하지만, 최순애는 자신이 바라서 스스로 그런 지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조금도 비극적이지 않다. 윤창섭은 결혼식 당일에 신부가 될 여인이 잠적해 버리는 불행에 잠시 처해지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결코 비극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윤창섭이 최순애의 지극한 사랑을 당시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양보하였던 사랑을 되찾게 된 허윤숙의 경우도 결코 비극에 이른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약간의 해프닝을 치른 코믹한 감정에 그녀가 빠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또 그들 세 사람 중에 어느 누구가 그런 것 외에 다른 경망한 감정에 휘둘린 일은 있었던가? 아니, 세 사람 모두가 매우 엄숙하리만큼 진지하기만 할 뿐이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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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5) -김말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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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4)-김말봉의
- 김경순, 여운영 등에 이어서 전상범의 세 번째 부인이 된 바 있었고, 또한 이석현, 전상범에 이어서 세 번째 남자 이종하와 또다시 결혼을 한 바 있는 김말봉은, 이 모든 사실이 우리에게 보여주듯이, 속칭 인생의 쓴맛과 단맛은 다 경험해 본 바 있는, 어찌 보면 최적의 통속(대중) 작가 감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를테면 그 결실이 바로 그녀의 공식적인 데뷔작 <망명녀>(1932)였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망명녀>를 무슨 통속소설의 샘플(모범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기에는 그 작품 자체가 결코 허락하지 않는, 그 결과 어느 정도의 품위는 스스로 지니고 있는 소설 작품이라고 보는 게 사실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이 소설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 보기로 하겠다. 김말봉의 작품 <망명녀>에는 세 명의 남녀 젊은이들이 등장하여 ‘사랑’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여기서 세 명의 젊은이들이란 최순애(산호주), 허윤숙, 윤창섭 등, 두 명의 여성들과 한 명의 남성이다. 이들 세 사람 사이에는 일종의 ‘애정의 삼각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생 신분인 산호주(최순애)는 요리집 명월관에서 남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야 하는 힘겨운 하루하루의 삶을 버텨 나간다. 그런데 오 주사의 몰인정과 행패를 견디다 못한 그녀는 오 주사에게 폭력적 자세로 맞서게 되고, 그 결과 순사에게 끌려가기까지에 이른다. 얼마 뒤 훈방되어 집으로 돌아와 보니 허윤숙의 명함이 놓여 있었고, 저녁때 만나자고 하는 내용의 글발도 거기에 함께 적혀 있었다. 허윤숙은 최순애(산호주)의 여학교 시절 상급생 언니였는데, 그동안 외국 유학을 갔다가 그 과정을 마치고 얼마 전 귀국했던 것이다. 이 허윤숙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산호주(최순애)는 8년 전의 과거사를 회상해 보게 된다. C여학교 3학년 시절, 최순애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돈 십 원을 훔친 것이 발각되어 그 학교에서 퇴학당했고, 딸(그녀) 때문에 직장마저 잃어버린 아버지를 대신해 자기(그녀)가 직접 직업전선에 나서게 되었으며, 그 결과 지금의 신분, 곧 명월관의 기생 위치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갑자기 허윤숙이 나타나 산호주에게 “너는 이제부터 자유의 몸이다.”라고 선언하였다. 내용인즉슨, 허윤숙이 요리집 명월관 주인의 요구대로 몸값 3백 원을 지불하고 산호주를 기생 신분에서 해방시켰던 것이다. 그 후 최순애는 언니 허윤숙을 따라 그녀의 집에 가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남의 집에 얹혀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녀는 점차로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명월관에서 나온 이래 잠깐 잊고 있었던 모르핀 주입의 악습마저 되살아나게 되었다. 궐련을 자기(언니) 면전에서 빨고 몰래 모르핀 주사도 맞는 최순애를 구원하기 위해 언니 허윤숙은 그녀를 데리고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석 달을 겨우 넘기고 최순애는 교회 출석마저 그만둬 버렸고, 하나님 앞에서의 간구(기도)까지도 ‘아이들의 숨바꼭질 장난’ 정도로 여겨 중지하고 말았다. 최순애는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자기신세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점차로 자학적인 몽상에 사로잡히고, 더할 수 없는 자신의 비운을 저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때 갑작스런 어떤 새로운 인물의 출현으로 그녀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그 새로운 인물이란 일본에서 최근 귀국한 윤창섭이란 이름의 청년이었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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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4)-김말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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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7] 이원론적 세계관: 참 것과 모형 - 플라톤의 「공화국」
- 히브리서 9장 24절은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라고 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공화국> 제7장의 ‘동굴의 비유’에서, ‘생성의 세계’와 ‘존재의 세계’라는 이원론적 개념을 통해 참 것과 참 것의 그림자를 잘 설명하고 있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캄캄한 동굴에서 살아온 죄수들이 있었다.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동굴의 벽만을 바라보고 앉아있다. 그들의 목과 다리는 쇠사슬에 묶여 움직일 수 없어서, 그들 앞에 있는 벽만을 향해 바라볼 수 있었다. 그들 뒤에는 불이 타고 있고, 불과 죄인들 사이에는 난간이 있는 통로가 있었다. 그 통로를 통해, 사람들이 나무나 돌로 만든 물건들을 가지고 다닌다. 그러면 그 물건들은 불빛에 반사되어 벽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이들 죄수들은 머리를 좌우로 돌릴 수 없기 때문에, 벽에 반영된 그림자만을 보게 된다. 그들은 서로 서로를 결코 3차원의 존재로 보지 못하고, 벽에 반영된 그림자만 본다. 동굴에는 메아리가 울리기 때문에, 난간의 통로에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면, 그 소리는 벽에 반사된 그림자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라고 상상한다. 이들 말하는 그림자들이 죄수들에게는 실재가 된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에서 벽에 반영된 것은 난간 통로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물건들의 그림자요, 모형이요, 반영이요, 이미지라는 것이다. 그 물체들 뒤에서 비쳐오는 불빛에 따라 그림자는 변한다. 그래서 그림자의 세계를 ‘생성의 세계 2’라고 하고, 난간의 통로에서 움직이는 특수한 물체를 ‘생성의 세계 1’이라고 한다면, ‘생성의 세계 2’는 ‘생성의 세계 1’의 반영으로서, 속임과 망상의 세계라는 것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육의 눈으로 보는 ‘생성의 세계’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추상적인 ‘존재의 세계’의 반영이고 한다. ‘존재의 세계’에도, ‘생성의 세계’처럼, 마음의 눈으로 이해하는 ‘존재의 세계 2’가 있고, 이것은 이성의 차원인 원리와 학설의 ‘존재의 세계 1’의 반영이 된다고 한다. 가시적인 ‘생성의 세계’ 위에 불가시적인 ‘존재의 세계’가 있고, ‘존재의 세계’의 절정에는 영원한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한다. ‘생성의 세계’는 물리적인 세계로 ‘참 것’이 아니며, ‘존재의 세계’는 영적인 세계로 ‘참 것’이라고 한다. 개별적인 특수한 컵들은 우주적인 컵의 모형, 그림자, 반영이라는 것이다. 플라톤 철학에서 말하는 변하는 가시적인 세계로부터 떠나서 불변하는 참 것에 도달하려는 헬라적인 사상은, 분명히 히브리서 저자가 성취하려는 히브리적인 사상이기도 하다. 이런 철학적인 사고를 적용하여, 개별적인 특수한 교회들은 보편적이요 우주적 가톨릭교회의 모형이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개별적인 교회는 바티칸에 있는 가톨릭교회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히브리서 8장 1~2절은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전하신 대제사장으로서 ‘참 것’인 하늘의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시는 분이시며, 이 지상의 제사장들은 하늘의 대제사장의 그림자요, 모형이요, 반영에 지나지 않으며, 이 지상의 성소는 하늘의 성소와 참 장막의 그림자요, 모형이요, 반영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10장 10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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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7] 이원론적 세계관: 참 것과 모형 - 플라톤의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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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인문학연구원서 성서해석 강좌
- 성서의 역사·문화·언어적 맥락 이해통한 실천적 신앙 조명 부활의 하나님 개념통한 이방인 구분의 무의미성 지적 기독인문학연구원(대표=고재백교수)은 지난 6일 동 연구원 방배동 강의실에서 「갈라디아서 산책」이란 주제로 강좌를 열고, 편향되지 않은 성서 해석을 위한 역사·문화·언어적 맥락 이해의 중요성을 소개했다. 이번 강좌는 특정 교리나 사상에 편중되지 않고 성서 전체를 균일한 시야에서 짚어보는 데 필요한 성서 저자의 문맥 이해를 조명하고 건강한 성서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건강한 신앙관 확립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강좌 강사로는 권연경교수(숭실대)가 나서 저서 <갈라디아서 산책>을 중심으로 문맥을 중점으로 두는 성서 해석의 실천 방법을 교육했다. 많은 이들이 성서를 해석할 때 문맥을 무시하는 행동을 자주 실수한다고 강조한 권교수는 “동일한 표현이더라도 맥락이 다르다면 그것이 지칭하는 의미가 다르듯 특정한 언어적 표현을 사용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표현으로 전하고자 하는 진의를 곡해할 가능성이 크다”며, “우리는 문맥을 무시한 채 표현만 떠와 자신 마음대로 성경을 이해하는 실수를 저지른다”고 진단했다. 또한 “성경이 저술될 당시의 맥락을 고려한다면 갈라디아서는 할례라는 화두로 인해 불거진 복음의 순종 문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며, “성경의 언어가 무겁게 다가오기에 독자가 해석함에 있어 압박감을 느끼지만, 언어와 상황이라는 맥락을 고려할 때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 기독교인들이 진리에 순종하기 멈춘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저술됐다고 밝힌 권교수는 “바울의 논증이 이항대립이라는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각 장의 표현을 모두 다르지만,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궁극적으로 성령을 따르는 신앙인의 자세이다”며, “갈라디아인들은 육체적인 부분에 가치를 두는 삶을 살다 보니 상호 분쟁을 일으키고 성령의 열매로 일컫는 삶을 내팽개쳤다.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의 이러한 행동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맥락 아래 갈라디아서를 집필한 것이다”고 분석했다. 이어 “갈라디아인들의 위기가 성령을 따라가는 삶을 버리는 문제이지 교리적인 부분에서 일어난 불화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며,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을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권면했다. 그는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부분을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전하고자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따른 삶을 살도록 권함으로써 참된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를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바울은 헬라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기에 헬라 문법에 바탕을 두는 문학적 표현을 중요하게 활용했다고 역설한 권교수는 “유대적인 지옥 개념을 활용하지 않고 육적인 부패와 신적인 불멸성이라는 헬라 사상에 바탕을 두어 갈라디아인들을 교육했다”며, “갈라디아서에서는 의의 소망을 성령으로 기다리고, 하나님 나라의 개념과 성령의 열매를 연결하며, 하나님께선 인간이 심는 대로 걷는다는 신학 사상을 기저에 깔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육체에 씨를 뿌리는 사람’은 부패를 걷는다고 가르쳤다”고 전했다. 끝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을 가르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시는 생명과 부활의 하나님을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에게 믿을 것을 소개했다”며, “그렇기에 남과 나를 구분하려고 하는 차별의 문화를 하루빨리 근절하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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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인문학연구원서 성서해석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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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5] 종교재판과 과학자의 외로움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삶」
- 전도서 1장 18절은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고 하였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삶」이란 극작품에서 17세기 베네치아 공화국의 갈릴레오는 바르베리니 추기경이 수학자이기 때문에 그가 교황이 되면 과학적인 탐구의 진실을 이해하기 때문에 갈릴레오의 지동설에 호의적인 태도를 가질 것이라 기대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갈릴레오는 과학자로서 혼자서 외로움을 삼켜야 했다. 지동설을 주장함으로써 천문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로서는 위대했지만, 로마가톨릭교회가 종교재판에서 고문하겠다는 위협에 굴복하여 지동설을 취소하는 인간으로서는 지극히 나약한 존재임을 표출하였다. 그의 지동설은 진실임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청의 명령에 따라 8년 동안 피렌체에 있는 집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갈릴레오과 그의 보좌관 패대르조니, 제자 안드레아 등이 모여 교황청에게 책잡히지 않게 몰래 천문학에 관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철학자인 한 대학 총장이 태양의 흑점을 취급하고 있는 책을 가지고 와서 갈릴레오에게 설명해달라고 했다. 태양의 흑점은 태양의 움직임과 지구와 태양계의 다른 위성들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과학적인 탐구이다. 전 유럽의 천문학자들이 갈릴레오에게 신비한 태양의 흑점에 관해서 설명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이단으로 화형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답하기를 거절했다. 대학 총장이 갈릴레오로부터 태양의 흑점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떠나간 후, 루도비코가 예기치 않게 로마로부터 돌아왔다. 처음에 갈릴레오는 루도비코를 알아보지 못했다. 갈릴레오의 시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루도비코는 로마로부터 전할 소식을 가져왔다고 했다. 로마의 가톨릭 대학의 천문학부 부장은 태양의 흑점은 지구의 변혁과 관계가 있다고 했다고 하면서, 태양의 흑점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갈릴레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황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르베리니 추기경이 교황으로 추대되는 것이 갈릴레오에게는 기쁨이었다. 바르베리니 추기경은 자신이 수학자로서 과학적인 탐구에 동정적이었기 때문에 그가 교황이 되면 자유롭게 천문학에 관한 진리를 진솔하게 발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갈릴레오는 이제 천문학 연구를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선포하고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평범한 이탈리아어로 쓰겠다고 했다. 갈릴레오와 그의 연구자들은 벌써부터 태양의 흑점들의 문제를 비밀로 연구하고 있었다. 갈릴레오가 바르베리니 추기경을 신임한 것은 아이러니했다. 왜냐하면 바르베리니 추기경은 8년 전에 갈릴레오를 올가미에 빠지게 하여 이단으로 정죄하려는 음모에 동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갈릴레오의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됨을 알게 되었다. 갈릴레오는 천문학 연구를 다시 시작함으로써 가톨릭교회와의 갈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보호를 받기 위해 메디치가의 코시모 태자에게 의지하여, 그는 딸 버지니아와 함께 태자를 알현하기 위해 궁중으로 찾아갔으나, 거절당했다. 갈릴레오는 자기를 보호해줄 권력자를 잃어버렸기에, 교회와의 불평등한 싸움을 혼자서 감당해야만 했다. 시편 68편 6절에서 “하나님은, 외로운 사람에게 영원히 머무를 집을 마련해 주시고, 갇힌 사람을 풀어내서, 번영을 누리게 해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은 메마른 땅에서 산다”라고 하셨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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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5] 종교재판과 과학자의 외로움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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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6] 과학자의 진실과 종교재판의 협박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삶」
- 호세아 10장 4절에서 “그들이 헛된 말을 내며 거짓 맹세로 언약을 세우니 그 재판이 밭이랑에 돋는 독초 같으리로다”고 했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는 〈갈릴레이의 삶〉에서 갈릴레오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종교제판에서 고문하겠다는 위협에 굴복하여 지동설을 취소하는 인간으로서는 지극히 나약한 존재임을 표출하였다. 그의 지동설은 진실임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로마 바티칸의 회의실에서 이제 울반 8세 교황이 된 바르베리니가 종교재판관의 알현을 허가했다. 교황은 제복을 입고서, 갈릴레오가 박해 당하게 할 의향이 없음을 선포했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교황은 교회가 과학적 탐구를 억압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은 갈릴레오를 고문하겠다고 협박함으로써 지동설 주장을 취소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교황 울반 8세는 교황의 제복을 입고서, 먼저 자신이 과학도요 갈릴레오의 천재성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황의 제복이 상징하는 것처럼, 그는 교회의 권위자로서 교회의 이익추구를 위해서 갈릴레오를 박해하도록 허락했다. 교황도 자기 자신의 제복이 상징하는 권력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갈릴레오는 바티칸으로 불려가서 종교재판에서 심문을 당하게 됐다. 갈릴레오는 고문을 가하겠다는 협박을 받고서, 그의 지동설의 가르침을 취소하겠다고 했다. 그의 학생들은 갈릴레오가 교회의 권력자들로부터의 압력에 항복하는 것을 보고 충격 받았다. 갈릴레오가 자기의 가르침을 취소하겠다고 선포한 해인 1633년부터 1642년 세상을 뜨기까지, 갈릴레오는 늙고 깨어진 상태에서, 가택에 연금되어, 교황청의 사제가 그의 활동을 감시하도록 되어 있었다. 갈릴레오는 거의 눈이 먼 상태였다. 그의 딸 버지니아가 아버지를 돌보고 있었다. 교회는 갈릴레오 쓰는 모든 논문은 그의 딸 버지니아가 그 내용을 받아 적도록 하고서, 논문마다 종교재판관에게 넘겨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전날에 그의 제자인 안드레아가 찾아왔다. 갈릴레오는 그 제자에게 〈두 가지 새로운 과학들〉이란 책 한 권을 주었다. 그 책은 그의 과학적인 발견들을 진솔하게 기술한 책이었다. 갈릴레오는 안드레아에게 그 책을 이탈리아 밖으로 몰래 내어보내어 외국에서 읽게 하라고 했다. 안드레아는 이제 옛 스승인 갈릴레오가 발견한 지동설을 취소하는 태도를 비판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알드레아는 갈릴레오가 그의 가르침을 취소하겠다고 한 것은 교회지도자들을 속여서 자신의 연구를 완성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안드레아는 갈릴레오의 행동은 영웅적임을 믿었다. 갈릴레오는 자신이 취소한 것은 고문당하는 것이 두려워서였다고 했다. 안드레아가 떠난 후, 갈릴레오는 딸 버지니아가 요리한 거위고기를 먹었다. 안드레아는 갈릴레오의 논문을 가지고 국경선을 넘었다. 몇 명의 소년들이 늙은 여인의 집밖에서 노리를 하면서 “저 여자는 마녀야, 화형에 처해야 해!”라고 했다. 안드레아는 소년들 중에 한 소년에게 “저 부인의 창문 속을 들여다보고서 그 증거를 대란 말이야”고 했다. 그 소년은 노부인이 아무런 해로운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도, 마녀라고 믿고 있었다. 안드레아는 소년에게 “눈으로 본 것을 다시 생각해 보란 말이야!”하고 떠나갔다. 미신은 잘 살아지지 않는다. 소년은 노부인이 건전하다는 증거를 본대도 불구하고 자기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했다. 갈릴레오가 꿈꾸고 있는 이성의 시대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예수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셨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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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6] 과학자의 진실과 종교재판의 협박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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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4] ‘과학적 진리’ 막으려는 교회음모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삶」
- 시편 38편 12절에서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미오나”하고 했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극작품 「갈릴레이의 삶」에서 갈릴레오는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하려했으나 로마가톨릭교회는 교리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교권을 이용하여 갈릴레오로 하여금 지동설을 발표하지 못하도록 음모를 꾸미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갈릴레오와 동료 과학자 사그레도는 계속해서 연구한 결과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의 증거를 갖게 되었다. 그들 두 과학자는 밤에 망원경으로 달과 행성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였다. 목성 주위의 궤도를 별들이 선회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목성은 어떤 것(하늘)에 부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관찰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강하게 지지하도록 했다. 태양중심설은 강력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갈릴레오는 자신의 과학적 연구 결과를 전통적인 라틴어로 발표하지 않고 평범한 이탈리아어로 출판하여 일반 시민들이 읽기 쉽도록 했다. 갈릴레오는 자기 저택에 메디치 가문의 신사 숙녀들과 저명한 학자들과 특별히 9세 된 메디치의 코시모 태자를 초청하여 망원경이 보여주는 놀라운 천문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아무도 망원경을 통한 새로운 과학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으며, 망원경을 통해 천체를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가톨릭교회 회의실 옆방에서 천문학자 크라비우스는 망원경을 통해서 갈릴레오가 관찰한 천체의 운행을 보고 있었다. 갈릴레오는 고위성직자들과 수도사들과 하자들로 가득 찬 방에 혼자 앉아 있었다. 갈릴레오의 주장이 진리라고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학설은 단순히 웃기는 일이라고 했다. 늙은 추기경은 갈릴레오가 인류의 적이라고 탄핵까지 하고서, 지구는 만물의 중심이며 인간은 지구의 중심이라고 하고, 갈릴레오는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고귀한 지위를 박탈하려 한다고 공격했다. 늙은 추기경이 쏟아낸 분노가 앞으로 갈릴레오가 직면해야만 하는 적개심을 예고하고 있었다. 박식한 벨라르민 추기경의 저택에서 연회가 열렸다. 갈릴레오는 벨라르민 추기경과 뛰어난 수학자이면서 강력한 교회지도자인 바르베리니 추기경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바르베리니 추기경과 갈릴레오는 갈릴레오의 최근의 학설에 관해서 유쾌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성경을 자유롭게 인용하여, 바르베리니는 갈릴레오의 학설을 공격하고, 갈릴레오는 자신의 학설을 변호하고 있었다. 그때 벨라르민 추기경이 비서들로 하여금 모든 대화의 내용을 기록하라고 훈시했다. 벨라르민 추기경은 갈릴레오에게 종교재판은 갈릴레오의 이론을 이단으로 취급한다고 했다. 두 교회 지도자들은 개인적으로 우호적인 척했다. 비서들은 갈릴레오와 추기경들의 대화 내용과 농담 삼아 한 말까지 모두 기록했다고 했다. 갈릴레오와 추기경들의 대화와 천진난만한 버지니아의 모든 대화가 갈릴레오를 정식으로 이단으로 정죄하는데 사용할 뿐 아니라, 종교 재판관은 고의적으로 갈릴레오로 하여금 함정에 빠지도록 했다. 바르베리니 추기경은 갈릴레오의 경계의 마음을 풀고 말하게 함으로써 비서들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여, 종교재판에서 불리하게 증언하려고 했다. 잠언 16장 1절에서 “사람이 어질고 진실하게 살면 죄를 용서받고, 주님을 경외하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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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4] ‘과학적 진리’ 막으려는 교회음모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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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3] 위대한 과학자의 거짓말과 참말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삶」
- 골로새서 3장 9잘에서 바울은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라고 했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는 〈갈릴레이의 삶〉이란 극작의 14장을 통하여 갈릴레오는 천문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위대했지만, 돈이 필요하여 망원경을 자기가 발명했다고 거짓말하는 나약한 인간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갈릴레오(1564~1642)는 17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화국의 저명한 교수요 과학자였으나 돈이 없었다. 1609년 이탈리아 파두아에 있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빈약한 가구로 꾸며진 연구실에서, 가정부의 아들인 제자 안드래아가 나폴리 법정으로부터 보내온 선물을 가져왔다. 그 선물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바탕으로 그린 천문지도였다. 갈릴레오는 사람들이 천동설과는 달리 곧 지동설이 옳음을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갈릴레오의 과학적 연구에는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어려움이 따랐다. 경제적으로는 평범한 학생들로부터 받는 등록금과 과학에는 무관심한 자들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과 정계의 고위 직권자들의 사상에 맞추어 학설을 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천동설대신에 지동설을 주장해서는 안 되었다. 갈릴레오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연구를 계속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루도비코 말시리란 귀족 가문의 젊은이가 찾아와서 갈릴레오의 학생이 되겠다고 했다. 갈릴레오는 루도비코가 우수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거절하려 했다. 그러나 가정부가 등록금을 받으면 돈벌이가 된다고 하자, 루도비코를 제자로 받기로 했다. 루도비코는 갈릴레오에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팔리고 있는 신기한 발명품인 ‘기이한 관으로 된 것’ 즉 망원경에 관해 말해주었다. 갈릴레오는 안드래아를 시켜서 렌즈를 사오게 하여, 망원경을 복제하여 마치 자신의 발명품인 것처럼 공화국에 제시했다. 고관들과 상원의원들, 관료들, 베네치아의 총독 앞에서 망원경을 소개했다. 참석자들은 그 물건을 전쟁에 사용하면 아주 좋겠다고 했다. 그 발명품의 보상으로 갈릴레오는 과학 관련 기관으로부터 급료를 더 많이 받게 되었다. 갈릴레오의 예쁜 딸 버지니아와 제자 루도비코가 들어왔다. 루도비코는 망원경이 갈릴레오의 발명품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에, 갈릴레오는 “내가 그 물건을 개량했지”라고 했다. 그때 천문대 관장이 들어와서 화를 내었다. 네덜란드로부터 망원경이 홍수처럼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발명했다는 거짓말이 탄로되어 이제 그는 베네치아에서 파멸된 것이다. 갈릴레오는 친구 사그레도에게 망원경을 자기가 발명했다고 속인 것은 5년 동안 방해 받지 않고 연구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갈릴레오는 망원경 사건 때문에 딸 버지니아에게 베네치아에서 피렌체로 이사 가려 한다고 했다. 버지니아는 매력적인 여성인 만큼 아버지에게 순종적이고 헌신적이었으며, 아버지의 연구 내용은 잘 모르지만 피렌체의 화려한 궁전으로 간다는 것에 즐거웠다. 갈릴레오는 친구 과학자 사그레도에게 말하기를, 망원경을 통해 달을 본 결과 달 스스로는 빛을 발하지 않으며 달에도 산들이 있다고 하고, 은하수는 많은 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구도 하나의 별이라고 했다. 사그레도는 만일 그렇다면 2천년 동안의 천동설은 거짓말이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과학적인 참말에도 교회의 권위자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를 박해하려 했다. 잠언 12장 22절에서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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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3] 위대한 과학자의 거짓말과 참말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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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2] 고기잡이와 치유 - 헤밍웨이의 「큰 두개의 심장을 가진 강」
- 열왕기하 5장 14절에서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고 함으로써 강은 치유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1899~1961)의 단편소설 〈큰 두개의 심장을 가진 강〉 2부에서 닉 아담스는 전쟁에서 부상 당하고 정신적 쇼크로 쇠약해졌지만, 강에서 송어잡이를 함으로써 심신이 회복되고 자기의 삶의 구원을 누리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설 제2부에서 닉은 강물에 들어가기 전에 고기잡이를 위한 준비를 한다. 미끼가 있어야 했다. 다행이 메뜨기는 아침의 자욱한 이슬 때문에 잘 뛰지를 못하고 풀 속에 깃들이고 있었다. 닉은 병에다가 종일 사용할 수 있도록 메뚜기로 가득 채웠다. 닉은 낚시 상자로부터 낚싯대를 집어내고, 낚싯줄과 낚시 바늘을 준비하고서 “좋은 느낌이 나는데.”라고 했다. 닉은 모든 도구를 울러 매고서, 샌드위치를 두 개의 앞주머니에 넣고, 메뚜기 병을 목에 걸고서, 부대자루와 낚싯대를 가지고 강으로 갔다. 닉은 고기를 잡으려 물속으로 들어갔다. 강은 닉의 잠재의식과 잠재의식 속의 기억과 평형을 이루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물 쌀이 강해서 몸의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다. 닉이 잡은 첫 번째 고기는 작아서, 미끈미끈한 외피를 상하지 안 토록 조심스럽게 송어를 다시 물속에 던져 넣었다. 이 작은 송어는 닉의 연약함을 상징한다. 닉은 송어를 만지기 전에 손을 물로 씻었다. “마른 손으로 송어를 만지면, 흰 곰팡이가 송어의 무방비 부분을 공격하게 되거든.” 닉은 낚시에 전문가였다. 닉은 다른 낚시꾼과는 달리 낚시에 대한 전문적인 코드를 갖고 있었다. 그 코드 때문에 닉은 고기와 자연을 존경하는 도덕적으로 높은 그룹에 속하는 선택된 소수였다. 닉은 낚싯바늘에 미끼를 다시 끼우고, 행운이 따르라는 습관으로 춤을 미끼에 팩 뱉었다. 거대한 송어가 걸려들어서 물위로 높이 뛰었다. 그렇게 큰 송어는 본 적이 없었다. 닉은 송어의 크기에 압도되었다. 그런데, 운 사납게도 낚싯줄이 끊어져서 송어가 도망가고 말았다. 닉은 이번에는 물속에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낚시 줄을 던졌다. 좋은 송어 한 마리를 잡았다. 또 한 마리를 잡았으나 또 도망갔다. 이번에는 송어가 깊은 물속에 깊이 들어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닉은 성공적으로 송어 두 마리를 잡은 후, 앞으로 강을 건너 가무잡잡한 늪에서도 고기잡이를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모았다. 늪은 닉의 두려움과 불확실성의 상징이다. 분명히 닉은 벌서 전쟁의 충격으로부터 회복하기 시작했다. 희망적이었다. 닉은 샌드위치를 먹고, 완전히 만족하여 캠프로 돌아왔다. 닉은 더 깊은 늪으로 가서 고기를 잡겠다고 생각했다. 닉에게 늪에서의 낚시는 전쟁의 쓰라린 경험을 치료하는 최후의 영역이었다. 닉은 늪에서의 도전은 다음에 하기로 한다. 닉은 현제의 치료의 과정만으로도 만족했다. 닉은 전쟁의 공포를 뒤로하고, 치유되어, 적절한 삶의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헤밍웨이는 자연과 고기잡이가 상징하는 기독교적인 구원과 관련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과 고기잡이를 통한 치유를 넘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는 아쉽게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시편 95편 3절에서 시인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라고 노래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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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문화/여성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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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2] 고기잡이와 치유 - 헤밍웨이의 「큰 두개의 심장을 가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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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의 교회당 종소리 - 시인 최규창(새벽기도운동본부 설립에)
- 새벽녘에 울렸던 교회당의 종소리는 어둠의 세상 속에서 잠든 자를 깨우고 크나큰 두 팔을 벌려 밤새워 기다리는 교회당에 가는 어둠의 길을 훤히 비췄네 새벽녘에 울렸던 교회당의 종소리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세상살이 지친 몸을 깨우고 깊은 잠 속에 떠돌던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온누리에 비췰 교회의 빛을 자식들의 건강과 내일을 기도하셨네 새벽녘에 드렸던 기도는 오늘의 튼튼한 이 땅과 우리들을 축복해 주고 어느 나라보다 부흥한 교회는 저 종소리따라 목메워 기도한 피눈물의 유산이네 새벽녘에 울렸던 종소리는 깊이 잠든 이 민족을 깨웠나니 새벽녘에 울렸던 종소리는 깊이 잠든 이 나라를 깨웠나니 새벽녘에 울렸던 종소리는 깊이 잠든 한국교회를 깨웠나니 새벽녘에 울렸던 종소리는 청청한 대나무처럼 자식들을 키웠나니 목메워 기도한 피눈물의 축복이네 어느 날인가 새벽녘의 종소리는 먼 날의 추억 속에 잠들고 여저기 이 땅은 병들어 가나니 한국교회여 새벽마다 종을 쳐라 너도 나도 저 종소리에 깨어 나거라 병들어 가는 이 나라와 민족 교회와 자식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느니 교회당에 가는 어둠의 길을 훤히 비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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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의 교회당 종소리 - 시인 최규창(새벽기도운동본부 설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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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0] 왕비의 역경을 구원한 다르타냥 -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 잠언 3장 18절은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고 했다. 프랑스 역사 소설가 알렉상드로 뒤마는 〈삼총사〉에서 다르타냥이 어떻게 궁지에 빠진 안 왕비를 용기와 기지로 구원하는가를 긴장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다르타냥은 보나시외 부인의 보호자로서 왕비와 공작이 밀회하는 자리에 같이 가기로 했다. 안 왕비는 26~7세의 나이에 마치 여신처럼 아름다웠다. 영국의 버킹엄 공작은 왕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왕비의 옷자락에 입을 맞추고는, 사랑을 고백했다. 왕비는 “전 한 번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당신의 목숨과 제 명예가 위태로워요”라고 했다. 버킹엄 공작은 왕비의 호의를 보여주는 징표로 지니고 계신 물건이라도 하나 달라고 했다. 왕비는 작은 나무상자를 주면서 “나에 대한 추억으로 간직하세요”라고 했다. 그 상자에는 루이 13세 왕으로부터 받은 12개의 다이아몬드가 있는 목걸이가 있었다. 이런 사실을 스파이를 통해 들은 리슐리외 추기경은 루이 13세 왕을 위해 무도회를 열겠다고 하고, 루이 왕에게 왕비로 하여금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하고 무도회에 오시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왕은 왕비에게 무도회에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하고 나오라고 했다. 보나시외 부인의 요청으로 다르타냥은 왕비를 위해 급히 영국에 가서 버킹엄 공작으로부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받아 오기로 했다. 무도회 날까지 한 주일뿐이었다. 3총사는 다르타냥을 무사히 영국으로 가도록 도왔다. 버킹엄 공작은 다이아몬드 목걸이에 2개의 다이아몬드가 없어진 것을 알고 경악했다. 추기경이 스파이인 미레디 부인을 통해 버킹엄 집에 침범하여 다이몬드 2개를 목걸이에서 빼어오게 했다. 버킹엄은 런던에서 최고로 유명한 보석 세공사에게 똑같은 다이아몬드 2개를 3일간 주야로 만들게 해서 다르타냥에게 주었다. 다르타냥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보나시외 부인을 통해 왕비에게 전달했다. 무도회가 진행되고 있을 때 루이 13세 왕은 뭔가 깊은 수심에 잠긴 듯했다. 추기경의 창백한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입술에 스쳤다. 왕비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추기경이 왕에게 상자 하나를 건네주었다. 열어보니 다이아몬드 2개가 있었다. 왕은 “이게 무엇이요?”하고 물었다. 추기경은 “왕비님의 목걸이에 보석이 몇 개인지 물어보시지요?”라고 했다. 그때 왕비가 다시 나타났다. 왼쪽 어깨 위에 푸른색 리본에 박힌 다이아몬드가 반짝이고 있었다. 왕은 “목걸이에 다이아가 2개 빠진 것 같아 내가 가져왔소”하고 추기경이 준 다이아몬드 2개를 왕비에게 내밀었다. 왕비는 놀라는 척하면서 “어마나, 그렇게 되면 14개가 되겠네요”라고 했다. 왕이 헤아려 보니 목걸이에는 12개의 다이아몬드가 있었다. 왕은 “이게 어찌된 일이오, 추기경?”하고 하문했다. 추기경은 “왕비님께 2개를 더 들이고 싶었습니다”하고 떨면서 말했다. 왕비는 보나시외 부인을 통해 다르타냥을 불렀다. 다르타냥은 얼른 무릎을 꿇고 왕비의 손을 잡아 공손이 입술에 댔다. 왕비는 다르타냥의 손에 무언가를 남기고 물러갔다. 그것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다르타냥은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기다렸다. 다르타냥은 약속 장소로 갔으나 보나시외 부인이 납치당한 것을 알게 되었다. 미레디는 추기경의 스파이였다. 다르타냥은 미레디의 타락상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토스 총사의 전 부인으로서 창녀요 범죄자요, 영국 벅킹엄 공작을 살해하려는 음모에 가담하고 있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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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0] 왕비의 역경을 구원한 다르타냥 -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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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9] 예루살렘과 바빌론 -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시」
- 시편 18편 1절에서 하나님의 도시에서는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함으로써 인간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권능이 나에게 역사하심으로 경건하게 예배드리게 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땅의 도시에서는 로마서 1장 21~23절에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했다. 기독교 초기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시〉 제11책에서부터 22책에서 ‘하나님의 도시’(시편 148편 1절)와 ‘땅의 도시’(요한복음 8장 44절)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5장 28절은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시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잘 설명하고 있다. 로마서 1장 24~25절에서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된 자)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고 함으로써, 땅의 도시는 우상숭배 하는 자기중심의 삶을 잘 설명하고 있다. 두 도시의 차이는, 하나남의 도시는 영을 따라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에, 땅의 도시는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두 가지 사랑이 두 도시를 현성하고 있다. 하나님의 도시 사람들은 거룩하고 서로에게 친근하고 정직하지만, 땅의 도시의 사람들은 불결하고 이기적이어서 부정직하다. 하나님의 도시 사람들은 이웃이 원하는 대로 이웃을 원하지만, 땅의 도시 사람들은 이웃을 정복하여 이용하려 한다. 전자는 이웃의 복지를 위해 이웃과 대화하지만, 후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웃을 조종하려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하나님의 도시는 예루살렘으로 대표되고. 땅의 도시는 바빌론으로 대표 된다고 한다. 예루살렘은 아벨을 통해서 시작되었지만, 바빌론은 가인을 통해서 시작되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비전을 주는 도시이지만, 바빌론은 혼돈의 미래를 주는 도시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예루살렘을 만들 것이고,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바빌론을 만들 것이다. 각자는 자신이 어느 쪽을 사랑하는지 질문을 하고, 어느 도시의 시민인가를 알아야 한다. 자신이 예루살렘 시민임을 발견하면, 사로잡힌 것을 참고 자유를 소망해야 하지만, 자신이 바빌론 시민임을 발견하면, 탐욕을 뿌리 빼고, 자애를 심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은 서로 섞여서 살지만, 심판 날에 각각 두 편으로 분리되어, 예루살렘을 만든 사람들은 왕중왕이신 그리스도의 통치하에 좋은 천사들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지만, 바빌론을 만든 자들은 나쁜 천사들과 함께 영원한 유황불에 던져짐을 당할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 8, 10절에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하시고,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하시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고 하셨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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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9] 예루살렘과 바빌론 -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