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6-22(화)

출판/문화
Home >  출판/문화  >  문학

실시간뉴스

실시간 문학 기사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47] 독제체제에서 ‘무지는 힘’이다 - 조지 오웰의 「1984」
      마가복음 15장 15절에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고 했다. 빌라도는 정치적이었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은(1903~1950)은 <1984>에서 독제국가 오세아니아는 ‘전쟁은 평화’, ‘자유는 노예’, ‘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 걸고 있다. 오웰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왜 자유는 노예가 되느냐를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와 그의 정부 줄리아 두 사람을 통해 극명하게 표출되고 있다.   윈스턴은 일터에서 두 사람을 알게 되는데, 그들은 윈스턴의 생애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 사람은 줄리아로서 26세의 처녀이다. 그녀는 윈스턴 스미스의 정부가 되는데, 이것은 당에 도전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다른 한 사람은 오브라이언이란 강력한 내부당원으로서,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줄리아와 윈스턴을 국가 지도자인 ‘빅 브라더’를 타도하려는 방향으로 유도하여, 결국은 배신하여 줄리아와 윈스턴이 스스로 반역죄를 덮어쓰도록 유도한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라는 이름에서 스미스는 영어에서 가장 보편적인 이름을 상징하며, 윈스턴은 2차 대전 때 불굴의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의 이름을 딴 것으로 위대한 영국인의 이름이다. ‘윈스턴’과 ‘스미스’란 두 이름을 합침으로써 풍자적인 대조를 이루게 한다. 윈스턴 스미스는 개성이 뚜렷하고 지적인 사람이었으나 전체주의적 독제국가에서 개성을 상실하고 로봇 같이 되고, 두려워하고 자식들조차 부모를 사상경찰에 고발 할 가보아 경계하는 얼간이가 되어 버렸다.   소설 <1984>의 마직 장면들 대부분은 윈스턴 스미스의 심문, 고문, 윈스턴의 잘못에 대한 부인, 배교행위, 궁극적인 고문에 더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까이 지냈으며 사랑한다는 인간인 줄리아의 배신, 그리고 영적인 파괴는 너무나 철저하여, 소설 마직 장면에서는 윈스턴은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된다.   당은 그를 철저하게 파괴한 것이다. 당이 윈스턴을 통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당의 무자비한 고문 자행자인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고문을 계속 가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윈스턴은 당이 원하는 힘을 구사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하고 있었다.   적나라한 힘은 당의 신인 것이다. 그 힘을 구사할 수 있는 제한 없는 기회가 있어야만 했다. 그런 기회가 없으면 당의 존재가치는 상실되는 것이다. 윈스턴의 사알행각이 바로 그런 기회를 준 것이다. 윈스턴은 당이 쳐놓은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당의 집합적인 노력은 윈스턴 개인보다 훨씬 지적이었다. 권력의 목적은 권력이었다. 내부당의 목적은 필요한 어떤 수단으로든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권력유지를 위해서 고문이 필요했다. 무자비한 고문이 오래 지속되어, 윈스턴은 지능은 서서히 파괴되었다. 당이 명령을 하면, 윈스턴은 검은 것은 흰 것이요, 2 곱하기 2은 5라는 것을 믿도록 했다.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의 손에 무자비하게 지능적으로 고문을 당했다. 윈스턴은 당이 개조한 인간이었다. 윈스턴은 당이 인정하지 않는 생각은 생각 할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오세아니아 국가의 평화성은 전쟁과 관련된 기관이요, 전쟁은 <1984> 세계에서는 진실로 사회의 평화였다. 국가의 애정성은 방어할 수 없는 희생자에게 끊임없는 지긋지긋한 고문을 가하여, 백성들을 위한 ‘빅 브라더’의 사랑이 들어나도록 하는 곳이었다.   윈스턴 스미스는 쇠하여지고 붕괴되었다. 윈스턴은 육체는 살아있으나 사실은 죽은 인간이었다. 윈스턴은 당이 하라는 것 외에는 모르도록 하여 무지는 힘이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
    • 문학
    2021-03-30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46] 전체주의자는 ‘자유는 노예’라고 했다 - 조지 오웰의 "1984"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함으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우리가 자유함을 누리게 됨을 말씀하고 있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1903~1950)의 〈1984〉에서 독재국가 오세아니아는 ‘전쟁은 평화’, ‘자유는 노예’, ‘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 걸고 있다. 오웰은 전체주의국가에서 왜 자유는 노예(예속)가 되느냐를 극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윈스턴은 일터에서 두 사람을 알게 되는데 그들은 윈스턴의 생애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줄리아는 26세의 처녀로서 당에 도전하는 행위로 윈스턴의 정부가 된다. 오브라이언은 강력한 내부당원으로서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줄리아와 스미스를 국가 지도자인 빅 브라더를 타도하려는 방향으로 사고를 유도하고 결국은 배신하여 줄리아와 스미스가 스스로 반역죄를 덮어쓰도록 한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그들의 사상이나 태도에 보수성을 모여야 했다. 그들은 진리성에 고용된 외부당원이었다. 당은 모든 결혼을 인준하고, 남편과 부인 사이에 어떤 성적인 본능을 발휘 하는가 어떤 낭만적인 사랑을 하는 가를 의심의 눈초리로 감시했다. 이런 의심은 부부간에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한 애착이 강하면, 백성의 지도자인 빅 브라더에 대한 애정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훌륭한 당원은 〈1984〉의 사회 도처에 붙어있는 빅 브라더의 초상화를 더 사랑해야 된다는 것이다. ‘좋은 성교’는 아동 출산을 목적으로 부부 사이에 하는 성교라고 했다. 윈스턴은 광적인 충성 당원인 케드린이란 여자와 결혼을 했으나, 자녀들을 가짐으로써 당에 충성하는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다고 하여 서로 헤어졌다. 그러나 당이 허락하지 않아서 이혼은 하지 못했다.   줄리아는 진리성의 도색국에 근무하면서 노동자들을 위한 포르노 문학을 쓰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도색 문학으로 부패하여 값싼 술과 끝없는 추잡한 문학에 빠지게 하려는 것이 당의 정책이었다. 그러나 당원이 성적 범죄를 범하는 것은 엄벌에 처했다.   줄리아는 윈스턴을 유혹했다. 그녀는 사상경찰 요원도 스파이도 아니었다. 그들은 엄밀한 사랑에 빠져들었으나 결혼은 할 수 없었다. 당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윈스턴은 결혼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윈스턴은 벌써 죽은 인간이었다. 당의 입장에서 보면 줄리아와 밀애를 갖는다는 것은 불충의 죄를 범하는 것이었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런던의 쓸모없는 지역에 사는 나이 많은 차링턴 씨가 경영하는 고물상의 윗방에 텔레스크린의 감시가 없는 방을 구했다. 그곳에서 둘은 자주 엄밀한 사랑을 자유롭게 즐겼다. 그런데 어느냘 침대에 누워 있는데, 사상경찰이 그들을 잡으러 왔다. 차링턴 씨도 위장한 사상경찰이었다. 그들이 잡혀간 곳은 오브라이언이란 지적집행관이 있는 취조실이었다. 그들의 죄는, 당에 충성하기보다 서로를 자유롭게 사랑한 반역의 죄였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 씨 내가 당신을 구원할 것이요. 내가 당신을 완전하게 말들 것이요”라고 했다. 몇 년 동안 윈스턴과 줄리아의 행동은 감시당하고, 사진이 무수히 찍혀지고, 그들의 음성은 녹음된 것이 구속의 증거였다. 당은 배신자를 죽여 버리는 것은 너무 간단했지만, 배신자를 지능적으로 고문하여,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파괴시켜서, 당에 충성하도록 노예화시키는 것이었다. 줄리아와 윈스턴의 자유로운 사랑은 결국 당의 노예가 되게 했다.   요한복음 8장 32절과 36절에서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고 하셨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
    • 문학
    2021-03-25
  • 사탄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올려놓고 뛰어내리라 함 - 존 밀턴의 '복낙원'
    마태복음 4장 5~6절에서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라고 했다. 영국의 시인 존 밀턴(1608~1674)은 〈복낙원〉 제4편에서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을 성전 가장 높은 정상에 올려놓고 조롱 섞인 말로 “서 있기 못하겠으면/뛰어 내리라. 하나님의 아들이면 안전 할 터이니,/기록되기를 ‘그 분은 처사들에게 명령하여/저들의 손으로 그대를 받들지니, 그대 혹시라도/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할 것이외다.’”고 시험하는 장면을 다루고 있다.예수님은 “또한 기록되기를,/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시고는 성전 꼭대기에 섰다. 사탄은 경악하여 강타당한 듯이 쓰러졌다. 밀턴은 사탄이 스러지는 모양이 마치 안타이오스가 헤라클레스에게 땅에서 공중으로 들려서 죽임당하여 팽개침을 당하는 것에 비유했다. 희랍 신화에 의하면, 안타이오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땅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자기의 땅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런데 그는 땅에 닿을 때마다 새로운 힘을 얻었기 때문에 아무리 땅에 내동댕이쳐져도 힘이 꺾이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그와 싸울 때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그를 땅에서 들어 올려서 죽여서 팽개쳐 버렸다. 밀턴은 사탄이 예수님에게 형편없이 패배당한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헤라클레스가 안타이오스를 거듭 물리친 것처럼 예수님도 사탄을 거듭 물리쳤다고 하여 헤라클레스는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말한다. 오만한 유혹자 사탄은 여러 번 격퇴를 당하고도, 새로이 공격을 가하여 승리자 예수님이 스러지는 것을 보려고 하다가, 오만한 가운데, 오히려 자기가 쓰러졌다. 사탄은 공포와 초조함 가운데서, 함께 모의하던 동료들에게 파멸과 절망과 경악함을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오만한 사탄이 떨어져 나가자, 천사들의 무리가 불같은 날개를 활짝 펴고서, 구세주에게로 날아가서, 그 불안한 장소에서 예수님을 그들의 깃털 수레로 사뿐히 모셔서, 화창한 공중으로 올라가서, 꽃이 만발한 골짜기의 녹색 둑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분 앞에 하늘의 식탁 위에 신성한 하늘의 음식과 생명나무에서 따 온 과일을 놓고, 생명의 샘에서 생수를 가져다 차려놓았다. 지쳐 있는 그를 곧 회복시켰고, 배고픔과 갈증이 치료되었다. 그때 천사들의 합창대가 오만한 유혹자를 이긴 구세주를 위해 승리의 찬송가를 불렀다. “한결같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시고/하나님다우신 힘으로, 아버지의 옥좌를 노린 /낙원의 도둑에 대항하셨도다./당신께서는 그를 오래전에 정복하시어/하늘로부터 그의 모든 군대와 함께 내치셨고/유혹을 물리치심으로, 타락한 아담의 원수를/갚으시고, 잃었던 낙원을 다시 찾고, 속임수로 얻은 승리를 헛되게 하셨도다./사탄은 앞으로는 낙원에다 한 번도/발을 들여놓고 유혹하지 못하리니.”“가장 높은 분의 아들이시여, 두 세계 하늘과 땅의 상속자여,/사탄의 진압자시여, 그대의 영광된 사업을/이제 착수하소서. 그리고 인류를 구하소서.” 히브리서 1장 3절에서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
    • 문학
    2021-03-05
  • 지옥에서나마 다스리는 것이 소망 - 존 밀턴의 「실낙원」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 “하나님이 범죄 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라고 하셨다.   영국의 시인 존 밀턴(1608~1674)은 그의 서사시 〈실낙원〉(1667)에서 사탄은 “나로선 다스리는 것이 소망이다”라고 하고서 “천국에서 섬기느니, 비록 지옥에서나마 다스리는 편이 낫지”라고 함으로써 사탄의 교만이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밀턴은 사탄은 지옥의 뱀이었다고 한다(요한계시록 12장 9절). 그놈은 교만하여 그의 모든 반역하는 천사들의 도움으로 반역하기만 하면, 동료 이상의 영광을 얻고, 지고하신 분과 동등해지리라 믿고(이사야 14장 12~14절), 야망을 품고, 하나님의 보좌와 주권에 대하여 불경스런 전쟁, 즉 교만한 싸움을 하늘에서 헛되이 일으켰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감히 당신께 싸움을 걸어온 그를 하늘에서 불붙여 번개같이 떨어지게 하여(누가복음 10장 18절), 무서운 타락과 파멸을 가하여 천사들의 고장으로부터 바닥없는 지옥으로 거꾸로 내던지셨다.    밀턴은 지옥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황량하고 거친, 처참한 광경을,/ 주위 사방에는 무서운 암굴, 그것은 마/불길 이는 화덕,/그러나 이 화염에는/빛이 없고, 간신히 보일 정도의 짙은 어둠에/드러나 보이는 것은 다만 비참한 과역뿐,/슬픔의 지역, 우수의 그림자, 평화와/안식은 없고, 사람이면 모두가 갖는/희망마저 없고, 다만 끝없는 가책과/한없이 꺼지지 않고 불타는 유황에 붙은/불의 홍수가 끝없이 휘몰아치는 곳/아, 떨어지기 전의 그곳과는 너무나 다르구나”    떨어진 천사인 사탄은 자신의 속성은 “약한 것은 궁상맞다”고 하고, “무엇이든 선행은 우리 일이 아니다./그의 높은 뜻에 거역하여,/언제나 악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즐거움,/그러므로 그의 섭리가/우리의악에 선을 찾아내고자 한다면,/우리의 할 일은 그 목적을 꺾어/ 선에서마저 항상 악의 수단을 찾아내는 것이라야 하리”라고 한다.   패배한 천사장 사탄은 자신의 한탄하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이것이/우리가 하늘과 바꿔서 차지할 자린가. 이 슬픈 어둠이/저 하늘의 빛 대신인가. 도리 없지. 지금/군주인 그는 제가 옳다 여기면 무엇이든/처치하고 명령할 수 있으니 그에게서 멀수록 좋다./음부여, 그리고 너 무한히 깊은 지옥이여,/너의 새 주인을 맞으라, 장소나/때에 따라 변치 않는 마음의 소유자를,/마음은 마음이 제집이라, 스스로/지옥을 천국으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사탄은 누가복음 17장 20~21절에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신 말씀을 이용하여 자기 마음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서 사탄은 자신의 존재 목적을 말하여 “나로선 다스리는 것이 소망이다”라고 하고서, “천국에서 섬기느니, 비록 지옥에서나마 다스리는 편이 낫지”라고 한다. 사탄의 속성은 교만하고 오만하여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다른 사람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노예화하려는 야망이 자신의 본질임을 토해내고 있다. 사탄의 존재 목적 선언은 예수님과 정반대의 속성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0장 26~28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
    • 문학
    2021-01-27
  • 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운 것 - 존 키츠의 「희랍 항아리의 송시」 (2)
      요한1서 4장 16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고 하셨다. 하나님 사랑 자체이며, 사랑의 원천이시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1795~1821)는 〈희랍 항아리의 송시〉(1819) 4연과 5연에서 “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래하여, 종교적인 차원의 사랑의 영원함을 동경하고 있다.   시인은 넷째 연에서 공동체의 종교 의식에 대하여 노래한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송아지를 끌고 가는 사제가 있고, 모두 제사를 드리러 갔기에 해변의 마을이나 산위의 성채는 텅 비었다. 항아리의 마을은 영원히 텅 비고, 거리는 영원히 조용하다. 시인은 “작은 마을이여, 그대의 거리들은 영원히/조용하리라. 그대가 왜 황폐하게 되었는가를/말하려고 한 사람도 돌아올 수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시인은 다섯째 연에서 “아름다운 것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읊음으로서 미와 진리를 동일시하고 있다.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오 희랍의 형체여! 아름다운 자태여!/숲의 나무 가지들과 짓밟힌 잡초와 함께/대리석에 아로새긴 젊은이들과 처녀들./그대 말없는 현상이여, 우리의 생각이 미칠 수 없도록 애타게 하는구나/영원이 그러는 것처럼, 차가운 목가여!/낡은 세대가 이 세대를 황폐케 해버릴 때에도/그대는 남으리라 인간의 친구로. 우리의 슬픔과 또 다른 슬픔 가운데서/그대는 말하리라, ‘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이라고/이것이 그대가 지상에서 아는 전부요, 알아야 할 전부이리라.”   아름다운 항아리는 남자들과 처녀들, 나무와 풀로 장식되어 있기에, 시인의 사색을 어딘지 모르는 영원에로 이끌어 간다. 시인의 세대가 가고 난 다음, 그대(항아리)는 아직도 여기에 있을 것이고, 그대는 친구에게 “아름다운 것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그대가 이 땅에서 아는 전부이며, 그대가 알 필요가 있는 전부라고 한다. 시인 키츠의 이 시 구절의 내용은 이 시 자체의 문맥에서 검토해야 한다.   둘째 연과 셋째 연에서 시인은 이 땅 위에 남녀의 사랑과 음악을 통한 사랑의 송가를, 이 땅 넘어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멜로디와 연결함으로써 영원을 동경하고 있다. 시인은 상상 속에서, 항아리의 일시적 행복한 상황을 영구적인 것 안에서 보존하려 한다. 그러나 시인 키츠나 그의 세대는 항아리의 그림에서처럼 영원할 수 없다. 늙어지는 나이는 그들에게 비애를 가져다 줄 것이다. 사랑의 그림이 그려진 항아리가 지속하고 있는 한, 시인과 시인 다음에 오는 세대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에서 우리가 아는 모든 것과 아름다운 예술 작품에서,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은, 항아리든 항아리에 대한 시이든, 그것들은 어렴풋한 불변하는 행복을 가져다주어서 장래의 천국을 인식하게 한다. 시인이 “이것이 그대가 지상에서 아는 전부요”라고 읊을 때, 그는 이 땅 넘어 하늘나라를 연상하게 한다. 비록 시인 키츠는 특별히 종교인은 아니지만, 시를 쓰는 동안 행복의 짧음을 명상하면서, 언뜻 하늘나라를 연상했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이란 것은 지상의 사랑의 아름다움은 하나님 나라와 연결될 때 그 아름다음은 진리란 뜻이리라.   요한1서 4장 8절에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영원한 아름다움이요 영원한 진리이리라!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
    • 문학
    2021-01-26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카타르시스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시편 55편 4~5절에서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라고 하여 두려움에 대해서 말하고, 히브리서 13:3에서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하여 고난당하는 자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가질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시학〉 6장에서, 비극은 진지하고 완벽한 “행동의 모방”이라고 정의하면서, 비극은 주인공이 이성보다 과도한 감정을 갖게 될 때 성격의 비극적 결함으로 비극적 전락으로 죽음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비극을 보고, 연민과 두려움을 통하여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한다고 했다.   카타르시스는 대체로 두 가지 범주로 이해한다. 첫째 범주의 카타르시스는 죄인의 영혼이 정화하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윤회·응보 등을 믿는 신비적인 종교인 오르페우스교에서 말하는 종교적인 체험으로 이해하고, 둘째 범주의 카타르시스는 주로 의학적인 현상을 나타내는 것인데, 나쁜 체액을 몸에서 씻어내는 것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가 무슨 뜻인가를 보여주는 내용을 그의 〈정치학〉 제8책에서 음악을 세 종류로 구분하면서 말하고 있다. 첫째는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서, 두 번째는 휴양을 위해서, 세 번째는 감정의 발산을 위해서라고 했다.   음악의 세 번째 목적인 감정의 발산은, 그는 주신적 음악 혹은 열광적 음악이라 한다. 이것은 개인의 도덕적 문화적 교육을 위한 것은 아니며, 개인의 위안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 음악의 목적은 카타르시스라고 했다.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는 곡조는 신비한 열광으로 영혼을 흥분시킴으로써, 마치 그 영혼은 의학적 치료와 어떤 깨끗해짐을 통해서 회복되고 평온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셰익스피어 비극을 관람할 때,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처럼, 어떤 종류의 영적정화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카타르시스는 단순한 심리적인 효과뿐만이 아니라, 비극의 고통을 봄으로써, 그 비극 너머에서 보게 되는 지혜나 직관에 도달하게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교훈주의적 입장에서, 카타르시스는 세상의 부귀영화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서, 영적 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비극을 보고 연민과 두려움의 감정이 교차함으로써 자신의 당면한 문제를 이열치열하는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교훈주의를 배격하고, 카타르시스는 비극적인 삶의 현실 앞에서 오히려 겸허하게 되고, 인간적인 동류의식으로 그 비극에 동참하려는 것이다.    심리주의자들에게 카타르시스는 두려움은 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자 하는 감정이고, 연민은 반대로 고통당하는 주인공에게 가까이 가고자 하는 감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줄거리가 복잡하면 부자에서 가난으로, 무지에서 지식으로 나아가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하나는 운명의 역정으로서, 비극의 행위가 처음 취한 방향보다 반대 코스로 가는 것이고, 다른 것은 무지로부터 지식으로의 변화로 주인공들 사이에 사랑이나 증오심을 유발하게 한다고 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성격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무지로 아버지 라이어서 부왕을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네 아이까지 갖게 된다. 자신이 부왕의 살인자임을 알고는 자신의 두 눈을 빼버린다.   창세기 2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는데, 인간의 교만이 비극적인 결함이 되어,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서 반드시 죽게 되는 운명론에 메이게 되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
    • 문학
    2020-12-31
  • 새해에는 부디 허락하시옵소서
    2021년 다시 새해가 밝아 옵니다, 생각하면 과분한 선물입니다지구는 제 궤도를 충직하게 밟고, 한 올의 어긋남도 없이밤 지나면 동트고 저물면 저녁별을 부지런히 눈앞에 진설하더니 오늘 새벽, 저 찬란하고 우렁차게 다가오는 새 하늘 새 빛 두 팔 벌려 안아 들입니다, 좁은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새해여, 오염된 이 땅을, 고치려고 오십니까?어긋난 아침과 저녁을 바로 잡으려고 오십니까? 사정없이 헝클어진 매듭과 관계를 풀어 주려고 오십니까? 저물어가는 세상 어지러운 그늘을 조심조심 딛고 오는 새해여!오소서, 어서 오소서!우리는 창문을 활짝 열고 저 붉은 동쪽 하늘을 함께 바라봅니다 지난해 시작된 역병은 온 누리를 아직도 휘두르고 있지만, 풀과 나무는 때가 되면 꽃 피우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동서로 남북으로 부는 바람은 먼지와 뜬소문을 실어나르고강물은 바다로 흘러 밀물과 썰물을 다독거렸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돌아다봐야 했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는가? 정말 그런가?   아마존의 밀림을 마구 베어서 해마다 숲이 좁아진다더니  거기 따른 생명의 사슬, 그 엄청난 비밀도 무너진다더니 빙하는 녹고 해수면은 끓고 온대와 열대가 섞인다더니 정말 그런가? 병든 땅의 아픔이 극에 달하여 새해도 오지 못하겠구나, 탐욕이 불러온 하늘의 경고, 우리가 저지른 잘못임을 뉘우쳤습니다 밝아 오는 새해여, 다시 새해를 허락하신 이여, 고맙습니다, 이제는 순리따라 아름답게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분노와 원망, 다툼과 고자질, 미움과 앙갚음에서 벗어나,우울과 번뇌는 씻어 내고 혼돈과 방황에서 돌아서겠습니다거대한 자연의 오묘한 질서, 그 리듬을 마음대로 깨뜨리고무상으로 가졌던 수많은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몰랐습니다날마다 누렸던 보통의 날들, 그것이 행복인 줄 몰랐습니다묵은 가난이야 견딜 수 있지만, 철모르는 벌거숭이 저 어린 것들그들이 살아갈 내일의 마당을 북돋아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헤쳐갈 쾌청한 대기, 손잡고 함께 갈 이웃을 불러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랑하는 지혜를 가르치겠습니다 새해에는 서로 언 손을 잡고 눈빛을 맞춰 용서하게 하소서당신께서 예정하신 길이 어디입니까, 어리석은 눈에도 밝히 열려서    나라는 갈수록 바르게 융성하여 세계에 우뚝 솟는 부강한 힘 주시고 건강한 국민은 발을 맞추어 이 나라에 사는 것이 자랑스럽게 하소서하루 살면 하루만큼 늘어나던 빚도 새해에는 부지런히 갚을 수 있게 하나를 가졌으면 그 하나를 기뻐하고, 허황된 것은 넘보지 않게 하소서겸허하구나, 착하고 어여쁘구나, 하늘에서 땅에서 칭찬하는 소리, 새해에는 당신께서 주시는 복을, 성결하고 따뜻한 복을 받고 싶습니다, 복 받을 수 있게 살겠습니다 당신이여, 굽어보며 끄덕이시는지요? 2021년 밝아오는 새해에는 허락하시옵소서, 부디 허락하여 주옵소서.   / 시인·호남대 명예교수  
    • 출판/문화
    • 문학
    2020-12-29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31] 자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1」
      창세기 22장 17절에서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고 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1564~1616)는 좥소네트 11좦에서 젊고 아름다울 때 자녀를 많이 가지라고 권면한다. 둘째 연(5~8행)에서, 시인은 “그들 자녀들에게는 지혜와 미와 번영이 있게 되지만,/자녀가 없는 곳에는 어리석음과 노령과 죽음만이 있게 되오./모두가 그대같이 맘먹는 날이면, 세상은 끝나게 되리,/살아봐야 인간 생명의 길이가 되는 60년만 지나면 말이오”라고 함으로써 젊은이가 자식 없이 대가 끊어진 것을 탄식하고 있다.   다섯째 행에서 시인은 자식을 가지게 되면, 그 자식들에게는 지혜, 아름다움, 번영이 있음으로, 그들의 부모도 그 모든 것을 함께 누리며 영관을 갖게 된다고 한다. 야곱은 아들 유다에게 예언적인 축복을 하면서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세기 49장 10절)라고 했다. 위대한 축복은 ‘실로’ 즉 메시야에 대한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여섯째 행에서는 그대가 청춘일 때,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미련하고 개을러서, 주인이(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생산의 능력)를 사용하지 않고, 자녀가 없는 날에는, 그대는 그 어리석은 생각의 결과, 나이가 많아져서, 육체는 시들고, 돌보아 줄 자식도 없이 외로운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일곱째 행과 여덟째 행에서, 시인은 모든 인간들이 그대처럼 개으르고, 자식을 갖지 않겠다고 한다면,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사랑, 긍휼, 친절, 아름다움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며, 인간이 살아봐야 기껏 60여 년 밖에 못사는데, 그렇게 되면 세상의 역사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고 냉소적인 경고를 하고 있다.   셋째 연(9~12행)에서, 시인은 “자연이 예비 된 아름다운 자녀들로 채우도록 창조되지 않는 자들은/사납고, 추하고, 잔인하고, 자식 없이 죽는 것이 낫소./자연이 혜택을 많이 준 자에게는 더 많이 줄 것이오./그대는, 열매를 많이 맺음으로, 그대의 선물을 더 받으세요”라고 훈계하고 있다.   아홉째 행과 열 번째 행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자연의 원리는 인간이 아름답고 지혜로운 자녀들로 후손을 이어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1장 28절)고 하셨기 때문에, 자녀를 가져야 하는 것은 인간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어떤 이유로든 자녀들을 갖지 않게 되는 자들은 ‘추하고, 잔인하고, 자식 없이 죽는 것’이 낫다고 저주의 말을 했다. 마치 주인이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고,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저주했듯이.   열한째 행과 열두째 행에서, 하나님은 자녀를 많이 가져서 하나님이 주신 혜택을 누리는 자에게는 더 많은 혜택을 누리도록 할 것이며, 자녀들을 많이 가졌음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더 많이 받게 되리라고 축복하고 있다.    열셋째 행과 열넷째 행의 맺는말에서, 시인은 “자연이 그대를 자기의 인장으로 새겨놓은 뜻은/그대를 원판 삼아 많은 복사를 남겨놓게 하려는 것이오.”라고 했다. 시인은 하나님은 뜻이 계셔서 그대를 자녀를 생산하여 대를 이어나가게 하는 아름다운 모델로 창조하였기에, 그대가 더 많이 아름다운 자녀들을 창조하여, 아름다운 이상이 역사의 흐름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라고 한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
    • 문학
    2020-11-17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9] 육체적 위안보다 영적인 위안을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6'
      누가복음 9장 23절에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1564~1616)는 좥소네트 146좦의 둘째 연(5~8행)에서 시인은 “그렇게도 짧은 임대 기간을 갖고서, 그렇게도 많은 비용을/그대는 그대의 사라져가는 저택에 쏟아 붓는가?/이 사치스런 낭비의 상속자인 벌레들로 하여금/그대가 투자한 것을 먹게 하려는가? 이것이 그대 육체의 종말인가?”라고 읊었다. 다섯째 행과 여섯째 행에서 ‘짧은 임대 기간’이라고 하고 사라져버릴 ‘저택’이라고 함으로써, 육체는 영혼을 수용해주는 저택에 비유하고, 그 저택은, 영혼이 떠나가면, 사라져버릴 단명한 셋집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시인은 사라져버릴 셋집에 그렇게 많은 비용을 쏟아 붓는 어리석음을 보이는가 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곱째 행과 여덟째 행에서, 시인은 ‘사치스런 낭비의 상속자인 벌레’는 육체가 죽는 날에, 육체는 땅에 묻히게 되어 썩어지고, 육체를 즐기는 것은 구더기뿐이라고 한다. 결국 구더기의 밥이 되어 무로 돌아가 버리는 육체를 위해서 그렇게도 요란스럽게 단장하고, 화장품 칠하고, 화려한 옷으로 외형을 꾸밀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렇게 헛된 삶을 영위하는 것이 그대 육체의 종말인가 질문하는 것은, 종말에 직면하게 될 하나님의 심판을 상기하게 한다. 결국 종말에 가라지로 심판을 받게 되면, 풀무 불이 타오르고, 꺼지지 않는 불속에서, 울며 이를 가는 지옥(마 13:24-30, 36-43)에 가려는가를 묻고 있다. 셋째 연(9~12행)에서, 시인은 “그렇다면 영혼이여, 너의 종(육체)의 멸망을 딛고 네가 살아라./그리고 너의 종을 굶주리게 하여 그대 영혼의 풍요를 증강시켜라./지상의 쓸모없는 시간을 팔아서 영원한 생명을 사들여라./내부세계를 살찌게 하고, 외부세계를 부하게 하지 말지라.”고 충고한다. 아홉째 행과 열째 행에서, 시인은 육체를 ‘너의 종’이라고 함으로써, 종은 주인을 섬기는 천한 신분이며, 중요한 것은 영혼이 살아야 한다고 한다. 육체를 희생시키고 영혼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라고 충고한다. 열한 째 행에서 시인은 육체의 삶을 ‘지상의 쓸모없는 시간’이라 하고, 영적인 삶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여 시간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도시〉에서, 하늘의 도시(영을 따라 사는 자들이 가는 곳)과, 땅의 도시(육신을 따라 사는 자들이 거하는 곳)을 대조하고 있다. 하늘의 도시를 영원 세계라 하고, 땅의 도시를 시간 세계라고 하고서, ‘말씀이 육신 되어 우리 가운데에 거하신’(요한복음 1장 14절) 예수는 영원에서 시간 세계로 오신 분으로써 그 분을 통해서만 우리가 영원을 누린다고 했다. 하버드대 교수인 폴 틸리히는 우리가 영원에서부터 시간 속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 순간을 ‘영원한 현재’라고 하고, 성육신이라고 했다. 시인은 ‘영원한 현재’를 통해 ‘지상의 쓸모없는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라고 했다. 그리고서 12행에서 시인은 속사람(내부세계)이 영원자이신 그리스도와 함께하고(살찌게 하고), 겉 사람(외부세계)이 세상과 더불어 향락하다가 죽음의 길로 가지 말라고 충고한다. 시인은 13행과 14행의 맺는말에서 “그렇게 하여 인간을 먹고사는 죽음을 잡아 먹어버려라./죽음은 한 번 죽으면 더 이상 죽지 않는다”라고 선포한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
    • 문학
    2020-10-27
  • [세계 명작과 성경의 만남 28] 사로잡힌 자에 대한 탄식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6」
      갈라디아서 6장 8절에서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1564~1616)는 「소네트 146」에서 나의 영혼이 육체적 위안보다 영저인 위안을 누리기를 갈망하는 노래를 읊고 있다. 시인은 첫째 연에서 인간이 육체적 욕망에 사로잡힌 것을 탄식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각 4, 4, 4, 2행의 총 14행의 단시)의 일반적인 경향은 주로 죽음의 변덕스러움과 종말, 젊음과 아름다움의 좌절감, 사랑이 물어 익은 위에 비극적인 가치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6」은 의로운 자들을 위한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서 진지한 기독교적 신앙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154편의 소네트 중에 가장 중요한 소네트이다.   셰익스피어는 「소네트 146」에서 인간의 영혼이, 인간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육체적인 위안에 노력을 기우리지 말고, 인간을 영원한 삶으로 인도하는 영적인 위안을 누리도록 하라고 충고한다. 시인은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된 이분법으로 말하면서 진실로 중요한 것은 일시적으로 지구상에 머무는 육체보다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 연에서 시인은 〈나의 죄 많은 육체의 중심인 가련한 영혼이여/그대를 치장해 주고 있는 육체의 욕망의 주인이여/왜 그대는 내부는 파리해지고 굶주림에 욕을 보고/그대의 바깥벽을 그렇게도 호화롭게 단장하는가?〉라고 읊었다.   첫째 행에서 시인은 ‘죄 많은 육체’와 ‘가련한 영혼’이라고 함으로써 인간을 육체와 영혼을 가진 존재로 기술하고 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다.   시인은 ‘죄 많은 육체’라고 하고 ‘가련한 영혼’이라고 함으로써 아담이 금지된 선악과를 따 먹는 죄를 범하여 전적으로 타락함으로써 낙원을 상실한 후 모든 인간은 원죄를 타고난 점을 짚는다. 그 결과 인간은 죄짓기 쉬운 나약한 존재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인간의 중심이며 주인이 되는 영혼은 가련하고 초라한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   둘째 행에서 시인은 육체의 주인인 영혼보다 ‘육체의 욕망’을 강조하고 있다. 육적인 욕망은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지한 선악과를 바라보면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한 것으로 이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태도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했다(요한일서 2장 16절).   3행과 4행에서 내부는 허무와 궁핍에 빠지게 하고, 바깥벽에만 관심을 가지고 호화롭게 단장하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바울은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린도후서 4장 16절)라고 했다. 우리의 겉 사람은 질그릇이요, 죽을 육체요, 땅에 있는 장막 집이다. 겉 사람이 낡아진다는 것은 늙어지고, 쇠하여 지고, 소모되고, 악화되고, 부패하고, 죽어져서 섞어버리는 것이다.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는 것은 거듭나게 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서 새로 창조함을 받는 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50절에서 바울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
    • 문학
    2020-10-23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