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6-22(화)

출판/문화
Home >  출판/문화  >  문학

실시간뉴스

실시간 문학 기사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7] 비신앙적인 삶을 향한 메시지 - 김 석의 「말씀·6」
    ▲ 시인 최규창   다 이루었다 알파와 오메가 너희들이 잠잠하면 저 돌들로 외치게 하리라 다 이루었도다      - 「말씀 · 6」의 전문 김 석의 「말씀 · 6」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앞두고, 모진 수난을 당하는 예수의 초췌한 모습을 떠올린다. 그 고통 속에서도 오늘의 우리를 위한 “다 이루었다”란 말씀에 대해 지그시 눈 감아 묵상하도록 한다. 죽음 직전에 “다 이루었다”란 말씀을 통해 오늘의 비신앙적인 삶을 향한 메시지를 형상화했다. 지금도 예수의 수난과 죽음으로 성취된 구속사역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이 시는 성경구절을 적절하게 구성함으로써 구속사역에 대한 메시지를 승화시켰다. “다 이루었다”란 구절은 요한복음 19장 30절, “나는 알파와 오메가”란 구절은 요한계시록 22장 13절, “너희들이 잠잠하면 / 저 돌들로 외치게 하리라”란 구절은 누가복음 19장 40절에서 인용했다. “다 이루었다”란 예수의 말씀을 전제한 후, 이 성경구절을 통해 구속사역의 성취에 대한 의미를 전개했다. 이러한 시적인 영감과 기발한 발상, 재치있는 기교와 치밀한 구성은, 김 석의 원숙한 시작(詩作)에서 연유한 것이다. 특히 예수는 죽기 직전인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요한복음 19장 28절)와 “다 이루었다”란 두 마디의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자신의 십자가죽음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대한 성취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구절은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구속계획의 성취임을 예수 자신이 인지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예수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온전히 성취될 때까지 모든 육체적인 고통을 참고 순종했다. 십자가죽음의 직전에 최후의 절규인 “다 이루었다”란 말씀은,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였다.  첫 행인 “다 이루었다”란 구절은 예수의 가상칠언(架上七言) 중 여섯 번째로 온갖 방해에도 지상사역을 완수하셨음을 선포한 것이다. 죽음 직전에 “다 이루었다”는 이 한 마디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었다는 뜻이다. 예수의 선언은 예수 자신에 의하여 마지막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짧으면서도 장엄한 한 마디는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의 죽음이 인류의 모든 희망의 근거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천명한 것이다. 제2행인 “나는 알파와 오메가”란 구절은 예수 자신이 ‘알파와 오메가’란 뜻이다. 이 구절은 요한계시록 22장 13절에 의한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와 ‘처음과 마지막’, 그리고 ‘시작과 마침’은 관용적 표현으로서 모두 동일한 의미를 지닌 말이다. 이는 예수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영원토록 존재하고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며, 이를 심판하는 최후 심판자이라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 제 3행과 4행인 “너희들이 잠잠하면 / 저 돌들도 외치게 하리라”란 구절은 누가복음 27장 40절에서 연유한 것이다. 특히 “저 돌들로 외치게 하리라”란 구절은 피조물들이 찬양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찬양하지 않으면 흔히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돌들이 찬양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비신앙적인 행위를 비판하는 표현이다. 마지막 행인 “다 이루었도다”란 구절은 첫 행인 “다 이루었다”를 강조함으로써 구속사역의 성취를 새롭게 일깨워 준다. 이러한 이 시는 오늘의 모두에게 주는 사랑의 메시지이다.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스스로를 자각할 수 있도록 일깨워 준다. 신앙적이지 못한 삶을 영위하는 현대인에게 바른 신앙의 길로 인도한다.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 모진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 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04-10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6] 낮은 자세로 하나님과의 만남 - 홍금자의 「오늘밤은」
    ▲ 시인 최규창   출렁이는 바다 위를 걸은 후에만 닿을 수 있는 주님의 땅 몇 번이고 절망의 눈물을 넘어서야 잡을 수 있는 옷자락 사랑, 또 사랑 맨발로 서야만 만날 수 있는 이시여 오늘밤 내 폐허의 땅에서 당신의 이마에 겸손히 입술을 댑니다. - 「오늘밤은」의 전문 홍금자의 「오늘밤은」이란 시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을 형상화했다. 출렁이는 바다 위를 걷는 듯한 힘겨운 세상살이 속에서 절망의 눈물을 딛고 일어서야만 주님의 곁에 갈수 있음을 깨달도록 한다.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맨발인 낮은 자세, 그리고 참회의 기도로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간구의 기도로 만날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단계적인 과정을 치밀하게 구성했다. “출렁이는 바다 위를 걸은 후”에 “닿을 수 있는 주님의 땅”은, “몇 번이고 절망의 / 눈물을 넘어서야”만 주님의 옷자락을 잡을 수 있고, “사랑, 또 사랑 / 맨발로 서야만” 만날 수가 있다. 또한 “내 폐허의 땅에서” 만난 주님의 이마에 입술을 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것은 ‘출렁이는 바다 위를 걸은 후에만’ →  ‘몇 번이고 절망의 / 눈물을 넘어서야’ → ‘사랑, 또 사랑 / 맨발로 서야만’ → ‘내 폐허의 땅에서’ → ‘당신의 이마에 / 겸손히 입술을 댑니다’고 주님을 만나기 위한 과정을 보여 준다. 시적인 가치성을 획득하기 위한 상승작용의 결과로 볼수 있다. 첫 연은 대부분 사람들이 고난과 역경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삶을 형상화했다. 힘겨운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출렁이는 바다”란 순탄한 세상이 아니라, 험한 세상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다. “바다 위를 걸은”이란 험한 세상살이를 함축한 것이다. “출렁이는 바다 위를 걸은” 삶이란  힘겨운 세상살이다. 고난과 역경 속의 삶이다. 그리고 “닿을 수 있는 주님의 땅”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고백한 것이다. 제2연은 절망의 눈물을 딛고 일어서야만 하나님의 옷자락을 잡을 수가 있고,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일깨워 준다. 첫 연의 “출렁이는 바다 위를” 걷는 삶이란 절망적일 수도 있다. 이 절망을 넘는다는 자체가 신앙의 행위이다. “몇 번이고 절망의 / 눈물을 넘어서야 / 잡을 수 있는 옷자락”이란 구절의 ‘옷’은 성경에서 구원의 상징이다(이사야 61장 10절). “사랑, 또 사랑 / 맨발로 서야만”이란 구절은 이러한 성경적인 의미인 낮은 자세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일깨워 준다. 제3연 세상적인 모든 것을 버린 화자는 하나님께 사랑의 표시인 이마에 입술를 대는 것은 존경의 인사이다. “오늘밤”이란 구절은 ‘기도의 시간’이 함축되어 있다. 밤에 ‘참회’와 ‘간구’의 기도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표현했다. 참회의 기도로 “페허의 땅”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비신앙적인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에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폐허의 땅’일 수밖에 없다. 신앙적으로 보면 참회를 했기 때문에 용서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이마에 / 겸손히 입술을 댑니다”란 구절은 사랑과 존경의 표시이다. 이러한 이 시는 은유적인 기법으로 구성했다. “출렁이는 바다 위를 걷는 후에만”이나, “닿을 수 있는 주님의 땅”, 그리고 “몇 번이고 절망의 / 눈물을 넘어서야”나 “사랑, 또 사랑 / 맨발로 서야만”, “내 폐허의 땅에서” 등의 구절은 이 시가 추구하는 주제를 적절한 표현으로 형상화했다. 절제된 시어선택으로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 이러한 것은 원숙한 시작(詩作)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 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04-03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5] 행복한 삶위한 하나님의 축복 - 이해경의 「선물의 향기」
    ▲ 시인 최규창   오늘도 당신은 나에게 변치 않는 믿음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오늘도 당신은 나에게 뜻이 있는 소망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오늘도 당신은 나에게 깊은 사랑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오늘도 당신은 나에게 넘치는 기쁨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오늘도 당신은 나에게 바다같은 평안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오늘의 나의 정원에는 당신이 주신 선물의 향기로 가득히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 「선물의 향기」의 전문 이 시는 지난 날부터 지금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섭리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믿음과 소망, 사랑과 기쁨, 평안을 선물로 주시고, 그 선물을 받아 일상의 생활 속에서 삶을 영위한다. 하나님의 축복에 의한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삶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선물들은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축복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각 연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은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하나님나라에 참여하면 받을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위한 요소들이다. 이 풍성한 선물들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가 있다. 이러한 행복한 삶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주어지는 즐겁고 복된 상태를 가리킨다(신명기 10장 13절). 건강을 비롯한 성공, 생명, 많은 자손, 안전, 풍성함 등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행복의 내용들이다. 첫 연은 하나님께서 오늘도 “변치 않은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신앙의 행위를 지닐 수 있도록 섭리해 주심이다. 성경은 믿음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고 일컫는다(에베소서 2장9절).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계시를 진리로 받아들이며, 미래를 위해 그를 전적으로 의뢰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2연은 하나님께서 오늘도 “뜻이 있는 소망”을 선물로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장래에 실현될 것에 대한 기대를 지닐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제3연은 하나님께서 오늘도 “깊은 사랑”을 선물로 주셨다. 그 사랑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보여 주신 신적(神的)인 사랑이며, 자기를 돌보지 않고 이웃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이다(요한1서 4장 10절).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제4연은 하나님께서 오늘도 “넘치는 기쁨”을 선물로 주셨다. 이 기쁨은 주 안에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이런 기쁨은 하나님의 속성이자(시편 104편 31절),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열매’이다.(갈라디아서 5장 22절~23절). 제5연은 오늘도 하나님께서 “바다같은 평안”을 선물로 주셨다. 사랑의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써 마음에 걱정이 없음을 표현했다. 하나님은 마음과 생각을 지켜 늘 평안하게 해주시기기 때문이다(빌립보서 4장 7절) 제6연은 화자의 가정이나 삶 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의 향기가 가득히 피어오르고 있다. 행복한 가정과 삶임을 고백한 것이다. “나의 정원”이란 화자의 삶이나 가정으로 볼수 있기 때문이다. “변치 않는 믿음”을 비롯한 “뜻이 있는 소망”, “깊은 사랑”, “넘치는 기쁨”. “바다같은 평안”이 가득한 가정이나 삶은 ‘행복한 가정’과 ‘행복한 삶’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 시는 “변치 않는 믿음”과 “뜻이 있는 소망”, “깊은 사랑”, “넘치는 기쁨”, “바다같은 평안”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선물임을 인식시켜 준다. 하나님의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보여 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 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03-26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4] 하나님 앞에 간구와 그 응답 - 윤병춘의 「기도할 때에」
    ▲ 시인 최규창   기도는 어둠의 골짜기로 서성이는 검은 그림자를 지워 버린다 기도는 하와를 꾀이던 유혹의 혀를 어둠 속에 가두어 버린다 기도는 봄날의 꽃향기처럼 높은 곳에서 은총의 선물을 내려 보낸다 기도는 어둠의 소리들을 샘물같은 언어로 바꾸어 주신다 기도는 잠든 영혼의 숨결을 푸른 종소리로 기지개를 켜게 하고 먼 곳을 보여 주신다   -「기도할 때에」의 전문 이 시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 앞에 간구와 하나님의 응답을 형상화했다. 신앙적이지 못한 주위의 환경과 그 환경 속에서의 삶을 간구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섭리하심과 바른 신앙의 삶을 위한 길로 인도해 주심을 표현했다. 바른 신앙의 삶을 위한 기도생활의 결과이다. 첫 연은 기도를 통해 잘못된 생활을 간구하고, 그 삶을 청산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어둠의 골짜기로 서성이는 / 검은 그림자”란 구절은 비신앙적인 삶이며, 잘못된 생활을 상징한다. “어둠의 골짜기”란 신앙적이지 못한 세상적인 삶의 테두리를 의미하고, “검은 그림자”는 기도를 드리기 전인 주변의 생활에 대한 환경이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 앞에 기도로 회개함으로써 새로운 삶을 획득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검은 그림자를 / 지워 버린다”는 것은, 잘못된 삶을 청산한 기도의 응답이기 때문이다. 제2연은 불순종의 삶을 회개하고, 순종의 삶에 대한 응답이다. “하와를 꾀이던 / 유혹의 혀”는 창세기 3장 4절의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란 구절에서 하와를 유혹하는 ‘뱀의 혀’를 떠올린다. 뱀의 꼬임으로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삶을 의미한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하와를 꾀이던 / 유혹의 혀”인 ‘유혹의 혀’를 회개함으로써, “어둠 속에 / 가두어 버린다”란 구절처럼 ‘유혹의 혀’로 상징된 불순종의 비신앙적인 언어를 어둠 속에 가두워 버린다. ‘유혹의 혀’를 버렸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응답으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불순종의 삶’을 ‘순종의 삶’으로의 전환이다. 제3연은 기도의 응답인 “은총의 선물”을 표현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은 “높은 곳”인 하늘나라에서 봄날의 꽃향기처럼 내려 보내 주신다. “봄닐의 꽃향기”는 꽃나무에서 내려온다. 봄날의 꽃나무에서 풍겨오는 꽃향기처럼 “은총의 선물”도 하늘나라의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간구하면, 하나님은 은총의 선물을 주신다. 바른 신앙의 삶에서 비롯된 기도에 대한 결과이다. 제4연은 기도를 통해 비신앙적인 언어들을 신앙적인 언어로 바꾸어 주신다. “어둠의 소리”는 긍정적이지 못한 부정적인 언어이며, 타인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상처의 언어로 상징된다. 하나님은 그 언어를 “샘물같은 언어”로 바꾸어 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응답이다. “샘물같은 언어”란 신앙적인 언어로 때가 묻지 않은 맑은 언어이고, 희망의 언어이며 축복의 언어이다. “어둠의 언어”에 대한 반대 개념은 “샘물같은 언어”인 “빛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제5연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 “잠든 영혼의 숨결”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불신자이다. 그 구절은 구원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 자들을 표현하고, “푸른 종소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의미한다. “기지개를 켜게 하고”란 구절은 “잠든 영혼의 숨결”이 “푸른 종소리”인 복음으로 “잠든 영혼의 숨결”이 깨어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그 깨어난 영혼에게 “먼 곳”인 하늘나라를 향한 구원의 길을 보여 준다. 불신자를 전도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로 간구하고, 그 결과는 “푸른 종소리로/기지개를 켜게 하고/먼 곳을 보여 주신다”고 표현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 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03-26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 - 최은하의 「황혼에 서서」
    ▲ 시인 최규창   언제고 나는 정작 자유롭지 못하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란 그 말씀만은 자유이옵니다 오늘도 나는 그 자유가 그리워 알맞게 세상을 떠도는 눈먼 하루살이이옵니다. - 「황혼에 서서」 전문 이 시는 「황혼에 서서」란 제목 자체가 암시하듯이, 하나님 앞에서 지금까지의 삶과 오늘의 삶을 반추(反芻)한 것이다. 그것은 “정작 자유롭지 못하옵니다”나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란/그 말씀만은 자유이옵니다”란 구절의 두갈래인 삶의 현장에서 ‘자유’에 대한 고뇌의 명상으로 전개했다. 그 자유는 일상의 삶인 세속적인 세상살이의 ‘자유’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획득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 준다.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를 통해 일상의 생활 속에서 자유롭게 하는 자유에 대한 의미를 사유하도록 한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의 자유는 자유롭지 못한 삶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찾아 나서는 삶의 행적에 대한 고백이다. 이 시에서의 ‘자유’와 ‘진리’는 사전적인 의미 속에 성경적인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유’란 세속적인 삶의 현장에서의 ‘자유’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자유’로 분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남에게 얽매이거나 구속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 또는 법률이 정한 범위 안에서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행위를 말한다. 성경적으로는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노예상태에서 자유롭게 해주셨듯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영적인 권세, 죄와 죽음, 율법의 속박으로 부터 자유롭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언제고 나는 / 정작 자유롭지 못하옵니다”란 구절은, 하나님을 떠난 ‘자유’는 자유롭지 못한 삶임을 깨닫게 한다. 누구나가 세상 속에서 누리는 자유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서 벗어난 자유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닌 “자유롭지 못하옵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언제고 나는”이란 구절은 언제나 일상의 생활 속에서는 자유롭지 못함을 암시해 준다. 그것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모든 것이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지켜 왔던 관습이나 생활습관 등의 비신앙적인 행위들이 신앙의 삶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신앙적인 자유의 삶을 향한 고뇌가 함축되어 있는 구절이다. 그러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란 / 그 말씀만은 자유이옵니다”란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자유롭게 하는 그 자유만이 자유인 것을 천명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언제고 나는 / 정작 자유롭지 못하옵니다”란 구절의 자유가 아니라, 요한복음 8장 32절의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란 구절의 진리에 의한 자유만이 자유인 것이다. “오늘도 나는 그 자유가 그리워 / 알맞게 세상을 떠도는 눈 먼 하루살이이옵니다”란 구절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누리기 위해 그리워하고, 그 자유를 찾아 나선 삶임을 고백한 것이다. “정작 자유롭지 못합니다”란 구절의 자유란 세속적인 자유이기 때문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란 / 그 말씀만은 자유이옵니다”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그리워한다. “정작 자유롭지 못합니다”나 “알맞게 세상을 떠도는 눈먼 하루살이이옵니다”란 구절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깊은 고뇌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 나선 삶임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그것은 ‘알맞게 세상을 떠도는’ 삶이거나 ‘눈먼 하루살이’란 표현은 자유를 향한 고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03-26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2] 하나님찬양과 감사의 삶 - 권오숙의 「축복 · 2」
    ▲ 시인 최규창 TV로 K2 산의 정상을 보는데 밤이 되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며 나는 하나님을 찬양해요 나는 하나님을 찬양해요 노래한다 나의 눈이 그것을 보고 나의 귀가 그 찬양을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한다  - 「축복·2」의 전문 이 시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형상화했다. TV로 K2산의 정상을 보는데 밤이 되자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반찍이는 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인식한다. 그 찬양의 노래를 눈과 귀가 보고 들을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하는 삶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의 삶이 생활화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그것은 깊은 신앙심에 연유한 자연스러운 발로이다. 신앙의 생활화에서 작용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첫 연은 TV로 보았던 K2산의 정상이었으나, 밤이 되자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인다. 한 두개가 아니라 수많은 별들이다. 공해로 찌든 서울의 밤하늘에서는 볼수 없는 광경이기 때문에 감동일 수 밖에 없다. K2산은 청정지역이다. 이 산은 인간들이 쉽게 정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서운 공해도 유발되지 않았다. 파괴나 훼손되지 않아 그대로 보전되어 왔기 때문에 밤하늘의 별들이 유별나게 반짝일 수 밖에 없다. 가까이 있는 듯한 별들을 볼수 있다. 이러한 이 산은 인도 카라코람산맥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토속명(土俗名)으로 ‘답상(Dapsang)’, 또는 ‘초고리(Chogori)’라고 불린다. 발토로 빙하 북쪽에 솟아 있는 고봉으로 높이 8,611m이며, 에베레스트산에 이은 세계 제2의 고봉이다. 화자는 TV로 K2산 정상을 보았으나, 밤이 되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발견한다. 그 반짝이는 별들을 감동의 장관으로 본 것이다. 그것은 TV에서 K2산의 정상을 보는 시선이 반짝이는 별들로 이동한 것이다. 그것은 이 별들을 보는 순간부터 시작(詩作)을 위한 전환의 시발이다. 제2연은 반짝이는 별들의 광경을 ‘찬양’과 ‘노래’로 의인화했다. 제1연에서 보았던 별들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해요”라고 의인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인식한다. 시편 147편 7절인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를 떠올린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무한한 은총에 대한 찬양의 노래이다. 그것은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란 구절이나, 1장 16절의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란 것처럼, 이 우주의 삼라만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이 피조물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해야 하는 것은 의무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신앙적인 시각에서 유추하면 반짝이는 별도,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제3연은 욥기 13장 1절인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통달하였느니라”를 떠올린다. 여기서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는 개인적인 관찰을 통하여 아는 것이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던 것을 가리킨다. “통달하였느니라”는 ‘이해하다’나 ‘분별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눈은 관찰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게 되고, ‘귀’는 구두나 소리로 판단하게 된다. 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광경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생활화된 신앙이 작용한 관찰과 경험의 결과이다. 이 눈과 귀를 지닐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이다. 그것은 화자가 지닌 신앙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 준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고, 반짝이는 별들의 행위도 화자가 지닌 신앙의 동일선상에서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 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03-26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1] ‘웃음’의 생활습관을 생활화 - 이명희의「웃음 도돌이」
    ▲ 시인 최규창   화나고 짜증날 때 -한번 웃자 헤헤헤 히히히 친구 웃고 나 웃고 하하하 호호호 낄낄낄 깔깔깔. - 「웃음 도돌이」의 전문 이 동시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웃는 모습으로 기쁨의 생활을 추구했다. 웃는 생활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순수하고 밝은 동심을 지닐 수 있도록 인도한다. 화가 날때나 짜증이 날때도 웃을 수 있도록 ‘웃음’의 생활습관을 생활화할 수 있도록 일깨워 준다. 웃는 모습의 생활이란 기쁨이 넘치는 생활이며, ‘웃음’은 곧 ‘기쁨’의 생활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의 “항상 기뻐하라”란 구절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원하는 일이 성취되었을 때에 얻을 수 있는 기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렵거나 힘든 일에도 기뻐하는 것을 포함한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에도 웃을 수 있는 생활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기쁨의 생활은 웃음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웃음 도돌이」는 《웃음 도돌이》(2018년, 시선사 펴냄)의 표제시이며, 제37회 한국기독교문학상 수상 동시집이다. 이 시의 제목인 ‘도돌이’는 악곡에서 줄음표의 한 가지인 ‘도돌이표’에 연유한 것이다. 그것은 악곡의 어떤 부문을 두 번 되풀이하라는 뜻이다. 「웃음 도돌이」는 웃음을 계속 되풀이 하듯이, 일상의 생활 속에서 웃음의 생활화를 의미한다. 제목 자체가 이 시의 주제를 그대로 담고 있으며, 시인의 기발한 창조적인 발상이다. “화나고/짜증날 때//-한번 웃자//헤헤헤/히히히”이란 구절은 기쁨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다. 웃음의 생활이란 기쁨의 생활이 전제된 구절이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에도 웃자는 것은, 웃음만이 화가 난 마음과 짜증스러운 마음을 풀어 줄수 있기 때문이다. 웃는 마음과 모습은 기쁨의 생활을 갖기 위한 방법이다. 그리고 “친구 웃고/나 웃고//하하하/호호호//낄낄낄/깔깔깔”이란 구절은 친구와 함께 자연스럽게 웃는 모습이다. 친구와 함께 잔뜩 참고 있던 ‘웃음보’를 터뜨리고,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리는 ‘웃음바다’의 장면이다. 이 광경은 즐거운 ‘웃음꽃’을 한바탕 피우거나 어우러져 웃는 자리인 ‘웃음판’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화나고/짜증날 때//-한번 웃자”란 것은, 타의의 설득에 의한 웃음이다. 그러나 “친구 웃고/나 웃고”란 것은 자발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다. 전자는 가식적이고 타의에 의한 웃음이었다면, 후자는 감정에 의해 자발적인 웃음이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웃는 모습이 생활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특히 이 시에서 흥미로운 것은 웃음의 상승작용이다. 웃음의 형태에 따라 웃는 사람의 마음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의에 의한 어쩔 수 없이 웃어야 하는 웃음부터 자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형태를 고조시킨다. ‘헤헤헤’ → ‘히히히’→ ‘하하하’ → ‘호호호’ → ‘낄낄낄’ → ‘깔깔깔’의 웃음으로 상승시킨다. 시어에 대한 깊은 고뇌 속에서 구성시켰다고 볼수 있다. ‘헤헤헤’의 웃음은 힘없이 조금 벌린 모양이거나 입을 조금 벌리면서 경망스럽게 웃는 모양이다. ‘히히히’는 만족감을 느끼고 싱겁게 웃거나 비웃을 때에 내는 소리이다. 그것은 “-한번 웃자”란 구절이 암시하듯이 타의에 의한 웃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하하’의 웃음은 반가워서 웃는 소리이고, ‘호호호’는 입을 오므리고 입김을 많이 불어내는 웃음소리이다. ‘낄낄낄’이나 ‘깔깔깔’은 억지로 참으려다가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이다. 이 웃음들은 참지 못하고 감정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웃음의 과정을 보면 웃음이 많이 쌓여있는 ‘웃음보따리’를 풀어 놓은 듯한 장면을 보여 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 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0]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추구 - 소강석의 「윤동주 무덤 앞에서·3」
    ▲ 시인 최규창   님의 무덤을 찾아오지 않고서야 어찌 시인이라 할 수 있으랴 그대처럼 아파하지 않고서야 어찌 시를 쓴다 할수 있으리오 부끄러움 하나 느끼지 않고 시를 썼던 가짜 시인을 꾸짖어 주십시오 눈물 없이 쓴 껍데기 시를 심판해 주십시오 참회록 없는 이 시대의 시인들을 파면해 주십시오 당신 무덤에 피어오른 동주화를 내 마음의 무덤에 심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윤동주 무덤 앞에서·3」의 전문 이 시는 일제에 저항한 윤동주의 삶과 고고한 시정신을 추구했다. 화자인 소강석시인(새에덴교회 목사)은 윤동주의 무덤 앞에서 그의 삶과 시정신을 기리고, 스스로의 시작(詩作)에 계승하려는 결의를 표현했다. 그것은 시인으로서의 삶과 시작(詩作)의 자세로 형상화시켰다. 이 시대를 사는 시인이 지녀야 할 품성(品性)을 일깨워 준다. 그것은 신앙인의 바른 삶에 대한 길을 의미한다. 이 시는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전제한 후에, 화자의 시인적인 삶을 되돌아보는 형태로 구성했다. “있으랴”나 “있으리오”, 그리고 “주십시오”란 구절의 반복을 통해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화자에 대한 삶과 시정신으로 극대화시킨다. 특히 “있으랴”나 “있으리오”란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전제한 후에 화자인 스스로의 시인적인 삶을 되묻는다. 또한 “주십시오”도 오늘의 현재를 돌아보며 결단하고 요구하기도 한다. ‘심판’과 ‘파면’, ‘허락’은 법률적으로 판결에 대한 언어이다. ‘심판’과 ‘파면’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결단을 내리고, ‘동주화’를 심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님의 무덤을 찾아오지 않고서야/어찌 시를 쓴다 할수 있으리오”란 구절에서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표현했다. 윤동주의 고고하고 지순한 시정신을 알지 못하면 시인이 될수 없다고 단언한다. 일제의 서슬퍼런 시대에 순교자적인 각오로 시를 썼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로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했다고 볼수 있다. 또한 “그대처럼 아파하지 않고서야/어찌 시를 쓴다 할수 있으리오”란 구절은 윤동주처럼 아파하지 않고서는 시를 쓴다고 할수 없다. 윤동주의 아픔이란 시대적인 상황인 나라를 빼앗긴 슬픔에서 비롯되었다. 오늘의 시인도 윤동주처럼 고고하고 지순한 시정신과 현대사회의 시대적인 아픔을 지녀야 한다고 일깨워 준다. 그리고 ‘부끄러움’이나 ‘눈물’, ‘참회록’은 윤동주의 시를 연상시키고, 윤동주의 시를 상징한 시어들이다. 이 시어를 통해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떠올리고, 시인의 자세를 일깨워 준다. “부끄러움 하나 느끼지 않고”란 구절은, 「서시(序詩)」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란 구절을 떠올려 준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시를 쓰는 시인은 ‘가짜 시인’으로 간주한다. 또한 “눈물 없이 쓴 껍데기 시를”이란 구절은 눈물이 없는 시란 껍데기에 불과하고 기교만 앞세워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또 “참회록 없는 이 시대의 시인들을”이란 구절은, 윤동주의 「참회록(懺悔錄)」이란 시를 떠올려 준다. 과거의 죄악을 깨달아 뉘우치고, 죄를 뉘우쳐 하나님께 고백함으로써 바른 삶과 이 시대와 함께 하는 시를 쓸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 무덤에 피어오른 동주화를/내 마음의 무덤에 심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란 구절의 ‘동주화’는 화자가 윤동주의 무덤에 피어있는 꽃을 동주화로 명명한 것이다. 시인은 창조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기발한 시인적인 발상이다.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동주화로 함축했다. ‘내 마음의 무덤’에 심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은, 윤동주의 바른 삶과 시정신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윤동주와 화자 간에 일체적(一體的)인 삶을 희구한 것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9] 오늘의 삶을 위한 잠언 - 김석림의 「산상수훈」
    ▲ 시인 최규창 하늬바람 눈뜨는 우이동 골짜기 4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면증 끌어안고 절뚝거리며 일어서는 진달래꽃을 보라 삼각산 이슬 머금고 태고의 생기 품는 고깔제비꽃 풍상에도 꺾이지 않는 시리도록 투명한 미소를 마주하라 변변한 이름도 얻지 못한 채 끈질긴 목숨 연명하는 잡초 땅의 풍식(風蝕)을 막아 옥토로 가꾸는 소중한 땅방울을 기억하라 수목들과 풀꽃에 얹혀 살아가는 곤줄박이, 접동새 일용할 양식으로 풍족한 피조물의 감사기도를 들어라 그러므로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지니라 - 「산상수훈(山上垂訓)·1」 이 시는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현상을 통해 섭리하심에 대한 삶의 길을 일깨워 준다. 산에서 피어나는 진달래꽃과 고깔제비꽃, 그리고 잡초와 접동새 등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로 승화시켰다. 꽃과 잡초의 현상, 소중한 땀방울의 결과, 수목과 풀꽃에 얹혀 살아가는 새들의 존재가 무한한 일깨움의 지혜를 주는 메시지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처럼 오늘의 삶을 위한 잠언적인 메시지로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첫 연은 자연현상의 식물과 새 등에 신앙의 삶이 육화(肉化)된 성서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제2연은 마태복음 6장 34절을 재구성해 바른 삶의 길을 제시한다. 첫 연은 산에 서식하는 식물과 나무, 새를 통해 바른 삶의 길을 일깨워 준다. ‘진달래꽃’은 불면증을 끌어안고 절뚝거리며 일어선다고 의인화했다. 절망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이다. 또한 우이동 근처인 수유리 4·19 묘지도 함께 떠올려 주는 구절이다. 그리고 고깔제비꽃은 삼각산의 이슬을 머금고 태고적인 생기를 품었다고 형상화했다. 그래서 풍상에도 꺾이지 않고 시리도록 투명한 미소를 머금었다. 70년대의 성지처럼 여겼던 삼각산의 이슬을 머금었으니, 태고적인 생기를 품었다고도 볼수 있다. 풍상에도 꺾이지 않은 꽃의 미소는 시리도록 투명할 수밖에 없다. 잡초는 이름도 얻지 못한 채로 끈질긴 목숨을 연명하고 옥토로 가꾸는 땀방울을 기억하도록 일깨운다. 바람에 의하여 암석이나 지대가 침식되지만, 농부의 땀방울은 침식을 막아주고 옥토로 가꾸기 때문이다. 곤줄박이나 접동새는 나무와 풀꽃에 얹혀 살아가는 것은 공동체적인 삶의 길을 가르쳐 준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일용할 양식으로 살아가고, 이러한 삶을 지닌 피조물은 감사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이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풍족하게 주셨기 때문이다. 제2연은 마태복음 6장 34절인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란 구절을 시적인 발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첫 행인 “그러므로”는 첫 연의 잠언적인 메시지를 구체화시키고 전환시키기 위한 방법의 구절이다.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란 구절의 ‘괴로움’은 인간이 감내(堪耐)하기 힘든 고초와 역경을 뜻한다. ‘한 날 괴로움’이란 우리의 현실에서 마주치는 온갖 어려움을 의미한다. ‘그 날에 족하니’란 그날에 주어진 것은 그날의 고통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지니라”란 구절은 아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도 않은 내일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세상의 염려와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 오늘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만, 내일은 언제나 다시 다가오며 따라서 내일의 문제는 결코 오늘에 처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오늘의 은혜는 오늘에 족하고 새로운 날을 맞이 하면 새로운 은혜를 입어서 살아가야 할 것임을 암시하였다.  /시인
    • 출판/문화
    • 문학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8]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 - 양효원의 「어느 한 순간에」
    ▲ 시인 최규창 어느 한 순간에 머어먼 옛날부터 저를 아신 듯 저도 모르는 저를 아신다는 듯, 무척 익숙하신 다정하심으로 저에게 말을 걸어 오시네요 울게 하시고 웃게 하시고 버리게 하시고 세우게 하시고 용서하게 하시고 품게 하시네요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의 이름으로 바람결 따라 나뭇잎이 살랑대듯이 저의 심장을 부비시며, 오늘도 저와 함께 사시네요 -양효원의 「어느 한 순간에」의 전문 이 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 하심을 형상화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의 섭리에 의한 삶임을 일깨워 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음을 깨닫도록 한다.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는 바른 신앙인의 모습이다. 인간과 자연의 세계가 자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와 붙드심에 힘입고 있다는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우주와 인간을 통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연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구태여 나눈다면 3개 연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연은 1행부터 5행, 둘째 연은 6행부터 8행, 셋째 연은 9행부터 마지막 행까지이다. 첫째 연의 1행인 “어느 한 순간에”란 구절을 임의로 구분한 각 연의 첫 행에 삽입할 경우에는 이 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인 어느 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스스로가 깨닫기 때문이다. “머나먼 옛날부터 저를 아신 듯 / 저도 모르는 저를 아신다는 듯, / 무척 익숙하신 다정하심으로 / 저에게 말을 걸어 오시네요”란 구절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치하고 계심을 보여 준다. 특히 “머나먼 옛날부터 저를 아신 듯 / 저도 모르는 저를 아신다는 듯”이란 구절은 이미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떠올린다. 인간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 인생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섭리와 영원한 지혜의 계획하심 아래 놓여 있었음을 일깨워 준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이미 예정되어 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또한 “무척 익숙하신 다정하심으로 / 저에게 말을 걸어 오시네요”란 구절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섭리하고 계심을 깨닫게 한다.  “울게 하시고 웃게 하시고 / 버리게 하시고 세우게 하시고 / 용서하게 하시고 품게 하시네요”란 구절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표현했다. 이 세상에는 상반(相反)되는 두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예외없이 작용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뜻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도록 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 사랑의 이름으로 / 바람결 따라 나뭇잎이 살랑대듯이 / 저의 심장을 부비시며, 오늘도 / 저와 함께 사시네요”란 구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나타냈다. 우리의 삶과 활동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사랑이다. 창세기 26장 28절에서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란 구절을 연상시킨다. 이 시에서 보여준 것처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그의 능력을 제한받지 않고, 완전하게 행하신다. 무슨 일이 든지 못하는 일이 없고,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시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자신의 능력을 제한받지 않고 완전하게 행하시고, 원하시는 것을 다 이루시는 절대적인 권능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시인
    • 출판/문화
    • 문학
    2019-03-25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