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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경시집 「사랑의 향기」 화제
      이해경시인(사진)의 시집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사랑의 향기〉를 도서출판 사랑의 장막에서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시인은 2013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노래〉란 첫 시집과 함께 등단했다. 그러나 2018년 『시선』 신인추천으로 재 등단한 것이다. 그는 시인이면서 목사이며, 간호사와 상담사, 선교사란 직책을 지니고 있다.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형상화 행복한 삶의 여정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길로 인도      ‘끝없는 사랑’의 길   이해경시인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 그 사랑은 순수한 사랑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오늘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의 근원’인 아가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늘은/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하늘은/또다시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이제야/그 말의 의미를/조금씩 깨닫는 오늘이다 -「하늘의 사랑」의 전문     이 시에서는 ‘하늘’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하나님에 대한 화자의 깨달음을 표현했다. 첫연은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은 “보라고 일러 준다”는 구절처럼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됨을 보여 준다. 제2연과 제3연은 첫 연의 가르침에 대한 깨닫지 못한 상황이다. 제4연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에 의한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그대로 방치해 두지 않고 또다시 가르쳐 주고, 제5연에서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첫 연에서 “산 너머 있는 것을”이란 구절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세계’를 말한다. 화자가 위치한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너머’란 장소를 지칭한 것은 ‘산’이 주는 신비스러움으로 ‘산 너머’를 신비스럽게 격상시켜 준다. 그 ‘산 너머’에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란 구절은 제1연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연유한 가르침이다. 제2연과 3연은 결과이다. “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제2연)거나, “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제3연)고 하나님을 향한 초보적인 신앙을 표현한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   기독교인의 행복한 삶은 일반적으로 의에 대한 보상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주어지는 즐겁고 복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몸과 마음이 흐뭇하고 만족하여 부족이나 불만이 없는 삶이다. 성경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나와 있다     다음의 시는 행복주의적인 삶을 볼수 있다. 행동과 행위에 의해 성취되는 삶이며, 윤리적 목적 및 궁극적 목표가 행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대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세상의 눈을 감고/세상의 귀를 닫고/빛의 음성을 듣는다//그의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빛의 눈을 뜨고/빛의 귀를 열고/빛의 옷을 입는다.  - 「그대 곁에서」의 전문     이 시에서의 ‘그대’는 하나님을 가르킨다. 첫 연의 ‘빛’과 제2연의 ‘빛’의 의미가 다르다. 첫 연의 ‘빛’은 하나님을 지칭하고, 제2연의 ‘빛’은 화자의 ‘신앙’을 의미한다. 화자는 신앙적인 삶 속에서 행위의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을 신앙에 두고 실행하고 있다. 그것은 행복주의 자의 삶이다. 첫 연에서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나, 세상의 눈을 감고 귀를 닫는 것,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연에서 그대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신앙의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것, 신앙의 옷을 입는 것이다.    어머니·아버지의 삶 속에 나타난 사랑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시들은 ‘사랑’으로 귀결되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 그 자체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고, 그것은 사랑에 연유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임을 보여 준다.      「어머니의 하루」란 시는 어머니의 일상적인 삶을 간결하게 형상화했다. 오직 가족을 위한 삶이었음을 보여 준다. “차가운 하루의 문을 열고”란 구절의 ‘차가운 하루’는 어머니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을 함축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삶이다. 또한 “우리의 밭을 일구셨다”란 구절의 ‘우리’란 화자를 비롯한 가족을 의미하고, ‘밭’은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때로는 비바람이 되고”나, “때로는 햇빛이 되어”서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인 ‘밭’을 일구신 것이다. 이 ‘비바람’과 ‘햇빛’은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표현이다. 화자는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희생을 떠올리는 오늘이다. “어머니의 의자에 앉아”란 구절은,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버지의 무게」란 시는 가정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형상화했다. 아버지의 삶을 ‘무게’로 표현했다. 무거울수록 힘든 생활임을 보여 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아버지가 가장(家長)이 되고, 가정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아버지의 무게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세상의 세찬 비바람에”란 구절로 집약된 삶에 대한 어려운 환경이고, 그 어려움은 “쌓이고 쌓인 아픔의 세월”인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가족들 몰래 눈물을 흘린다. 주위 환경으로 인해 “날마다 무게를 더하고”란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극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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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6
  • ‘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 복음의전함서 전도 플랫폼 세미나
    ◇광교선교단체 복음의전함은 들어볼까 세미나를 연다. 사진은 인천지역 세미나.   유명인 간증과 목회자들이 풀어낸 콘텐츠를 짧은 영상에 담아 지역별 각 교회서 「들어볼까」란 세미나로 새로운 전도법 소개   사단법인 복음의전함(이사장=고정민)은 광고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다음달 13일까지 전국의 교회에서 「들어볼까 세미나」를 진행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완화와 함께 이전에 참여했던 교회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7개 지역 교회에서 열린다. 7월 5일 10시에 고양시 일산광림교회를 비롯한 7월 7일 10시에 서울시 여의도침례교회, 7월 8일 10시에 서울시 광림교회, 7월 8일 20시에 춘천시 순복음춘천교회, 7월 11일 10시에 강릉시 강남성결교회, 7월 12일 10시에 부산시 포도원교회, 7월 13일 10시에 용인시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가진다.   세미나는 동 단체 고정민이사장이 대표연사로 참여한다. 전도 플랫폼 「들어볼까」 구성을 안내하고, 새신자를 교회에 오게 하는 「들어볼까」의 활용방법을 설명한다. 또한 코로나19를 겪으며 온라인 위주로 바뀐 문화의 흐름에 따라 SNS 등 미디어를 활용한 실질적인 전도 방법을 제안한다.   세미나 참석 교회에 제공되는 특별혜택도 있다. 「들어볼까」 내에 지역교회 연결 서비스인 ‘교회찾기’에 교회를 무료로 등록할 수 있다. 또한 명함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명함을 받은 사람이 교회로 찾아올 수 있게 하는 ‘복음명함’의 원본 디자인 파일이 무상으로 제공된다. 미자립교회에 제공되는 혜택도 있다. 세미나에 사전 신청한 미자립교회 중 각 지역 선착순 30교회에 복음 광고 전도지가 무료 제공될 예정이다.   동 단체 고정민이사장은 “결국 복음을 전하는 일은 교회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세미나를 통해 미디어 전도가 전국 각지 교회에서 시작되어 5천만 국민 전도운동으로 이어지고, 주님의 복음이 곳곳으로 흘러가 대한민국 교회가 새롭게 믿음을 가진 이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고 전국 교회의 참여를 독려했다. 「들어볼까」를 통해 제안되는 새로운 전도 방식은 대한민국 복음의 불씨를 다시 한번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 동 단체는 지난해 12월 새로운 전도플랫폼 「들어볼까」를 공개했다. 「들어볼까」에는 유명인의 간증과 목회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낸 기독교 교리 콘텐츠가 5분짜리 짧은 영상으로 담겨있다. 동 단체는 “교회에 한 번도 가본 적 없거나,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거부감 없이 올바르게 소개하고 전도하기 위해 「들어볼까」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동 단체는 교회에서 「들어볼까」로 복음을 전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교회 대상으로 설명회를 계속 개최해 오고 있다. 기존 설명회는 사전신청한 교회를 대상으로 줌 온라인 설명회로 개최됐었다.     이전 설명회에 참여했던 목사들은 “전도에 대한 막막함이 있었는데 너무 좋은 정보와 콘텐츠를 알게 되어서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며,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쉬운 콘텐츠를 이용해서 비신자들과의 접촉점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감사하고 기대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단법인 복음의 전함은 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비영리 광고선교단체다. 광고라는 도구를 통하여 비신도들을 대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사람들의 생활권 안에서 녹아든 세상을 만들기 위해 광고선교사역의 사명을 감당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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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4
  • 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5) -김말봉의
       일본에서 귀국한 청년 윤창섭은 언니 허윤숙의 애인이었다. 윤창섭의 돌연한 출현이 최순애의 생활에 일종의 활기를 불어넣어준 것이다. 언니의 애인이 왜 순애의 삶에 활력소가 되었을까. 윤창섭은 말하자면 염상섭의 <삼대> 속의 김병화와 같은 인물이었다. 당시의 유행어로 ‘마르크스 보이’인 셈이다.     그 청년 앞에서 순애는 돌연 <삼대> 속의 홍경애의 위치로 변해버린다. 술집 바커스의 여급 신분이었던 홍경애가 김병화(마르크스 보이)와의 관계를 성숙시켜 가면서 여걸의 위치로 점차 격상되듯이, 최순애 역시 윤창섭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새로운 여성 사회운동가로 서서히 변화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참다운 동지를 얻게 되어 기뻤던 윤창섭은 최순애에게 처음엔 동지가 되어 달라고 간청하더니, 다음에는 자기 애인 허윤숙과의 합의를 거쳐서인지 윤숙의 언질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구혼 공세를 해 온 것이다. 언니(윤숙이)가 자기 애인 윤창섭을 최순애에게 넘겨주기로 작심해 버렸다는 뜻이었다.     순애가 반신반의하기도 했으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마도 언니 허윤숙은 주의자(主義者)로서의 윤창섭이 동지애로 긴밀히 결속되어 있는 최순애와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 두 사람, 또는 세 사람 모두에게 결과적으로 좋을 일이라고 하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망명녀>(1932)에서의 이런 상황 전개는 그보다 1년 앞서 나온 염상섭의 <삼대>(1931)에서의 경우와 상당히 닮아 있다. 지금껏 보아온 윤창섭·허윤숙·최순애의 삼각관계는 <삼대>에서의 이필순·김병화·조덕기의 삼각관계의 변이형태라고 볼 수 있다.     <망명녀>에선 남성 윤창섭을 가운데에 놓고 두 여성이 서로 사랑을 양보하는 모습이지만, <삼대>에서는 여성 이필순을 가운데에 놓고 남성들이 사랑을 양보하는 형국이다. <삼대>의 이런 국면이 <망명녀>에 와서 하나의 변이형태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망명녀>의 이야기로 되돌아가면, 어떻든 결과는 세 사람 모두가 순조로운 합의에 이르게 되고, 한 쌍의 남녀는 결혼 날짜까지 잡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식 당일에 이르러 의외의 돌발 사태가 일어나고야 말았다. 최순애가 각기 두 사람 앞으로 쓴 편지들을 남겨둔 채 어디론가 잠적해버리고 만 것이다.     순애는 윤창섭의 동지들로부터 날아온 어떤 지령(암호문)을 접한 뒤, 자기 예비 신랑을 대신해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제 스스로 일방적 파혼 선언을 해버린 뒤 목적지를 향해 떠나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소설 <망명녀>는 한마디로 ‘사랑의 노래’이다. 이 사랑의 노래는 결코 애가(哀歌)일 수 없고, 찬가(讚歌)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랑의 비극을 다룬 것이 아니라 사랑의 승리를 다룬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외국의 모처에서 망명녀의 신세로 살아가는 처지이기는 하지만, 최순애는 자신이 바라서 스스로 그런 지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조금도 비극적이지 않다.     윤창섭은 결혼식 당일에 신부가 될 여인이 잠적해 버리는 불행에 잠시 처해지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결코 비극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윤창섭이 최순애의 지극한 사랑을 당시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양보하였던 사랑을 되찾게 된 허윤숙의 경우도 결코 비극에 이른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약간의 해프닝을 치른 코믹한 감정에 그녀가 빠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또 그들 세 사람 중에 어느 누구가 그런 것 외에 다른 경망한 감정에 휘둘린 일은 있었던가? 아니, 세 사람 모두가 매우 엄숙하리만큼 진지하기만 할 뿐이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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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1
  • 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4)-김말봉의
        김경순, 여운영 등에 이어서 전상범의 세 번째 부인이 된 바 있었고, 또한 이석현, 전상범에 이어서 세 번째 남자 이종하와 또다시 결혼을 한 바 있는 김말봉은, 이 모든 사실이 우리에게 보여주듯이, 속칭 인생의 쓴맛과 단맛은 다 경험해 본 바 있는, 어찌 보면 최적의 통속(대중) 작가 감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를테면 그 결실이 바로 그녀의 공식적인 데뷔작 <망명녀>(1932)였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망명녀>를 무슨 통속소설의 샘플(모범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기에는 그 작품 자체가 결코 허락하지 않는, 그 결과 어느 정도의 품위는 스스로 지니고 있는 소설 작품이라고 보는 게 사실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이 소설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 보기로 하겠다. 김말봉의 작품 <망명녀>에는 세 명의 남녀 젊은이들이 등장하여 ‘사랑’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여기서 세 명의 젊은이들이란 최순애(산호주), 허윤숙, 윤창섭 등, 두 명의 여성들과 한 명의 남성이다. 이들 세 사람 사이에는 일종의 ‘애정의 삼각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생 신분인 산호주(최순애)는 요리집 명월관에서 남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야 하는 힘겨운 하루하루의 삶을 버텨 나간다.   그런데 오 주사의 몰인정과 행패를 견디다 못한 그녀는 오 주사에게 폭력적 자세로 맞서게 되고, 그 결과 순사에게 끌려가기까지에 이른다. 얼마 뒤 훈방되어 집으로 돌아와 보니 허윤숙의 명함이 놓여 있었고, 저녁때 만나자고 하는 내용의 글발도 거기에 함께 적혀 있었다. 허윤숙은 최순애(산호주)의 여학교 시절 상급생 언니였는데, 그동안 외국 유학을 갔다가 그 과정을 마치고 얼마 전 귀국했던 것이다. 이 허윤숙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산호주(최순애)는 8년 전의 과거사를 회상해 보게 된다.   C여학교 3학년 시절, 최순애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돈 십 원을 훔친 것이 발각되어 그 학교에서 퇴학당했고, 딸(그녀) 때문에 직장마저 잃어버린 아버지를 대신해 자기(그녀)가 직접 직업전선에 나서게 되었으며, 그 결과 지금의 신분, 곧 명월관의 기생 위치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갑자기 허윤숙이 나타나 산호주에게 “너는 이제부터 자유의 몸이다.”라고 선언하였다. 내용인즉슨, 허윤숙이 요리집 명월관 주인의 요구대로 몸값 3백 원을 지불하고 산호주를 기생 신분에서 해방시켰던 것이다.   그 후 최순애는 언니 허윤숙을 따라 그녀의 집에 가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남의 집에 얹혀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녀는 점차로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명월관에서 나온 이래 잠깐 잊고 있었던 모르핀 주입의 악습마저 되살아나게 되었다. 궐련을 자기(언니) 면전에서 빨고 몰래 모르핀 주사도 맞는 최순애를 구원하기 위해 언니 허윤숙은 그녀를 데리고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석 달을 겨우 넘기고 최순애는 교회 출석마저 그만둬 버렸고, 하나님 앞에서의 간구(기도)까지도 ‘아이들의 숨바꼭질 장난’ 정도로 여겨 중지하고 말았다. 최순애는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자기신세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점차로 자학적인 몽상에 사로잡히고, 더할 수 없는 자신의 비운을 저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때 갑작스런 어떤 새로운 인물의 출현으로 그녀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그 새로운 인물이란 일본에서 최근 귀국한 윤창섭이란 이름의 청년이었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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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08
  • 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2)-김말봉의
    끝뫼 김말봉이 일본 교토(京都)의 도시샤(同志社)대학에 입학한 해가 1923년이고 졸업한 때는 1927년이었다. 그 가운데(중간) 해인 1925년에 그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현상공모에 <시집살이>란 소설 작품으로 응모해 ‘입상’을 한 바 있다. ‘당선’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앞을 기약할 수 있다는 희망(자신감)을 얻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졸업하고 나서 귀국한 뒤, 1929년 중외일보 신춘문예 현상 공모에 <고행>이 당선되었고, 이어서 1932년에는 <망명녀>가 조선중앙일보에 당선되었던 것이다.   끝뫼가 문학에의 열정을 어떤 하나의 목표(문단 데뷔)를 향해 치열하게 불태우던 시기, 곧 1920년대 중반으로부터 30년대 초반까지의 7년여의 시기라고 하면, 문학사적으로 대단한 의의를 지닌 시기였다고 할 수 있겠는데, 특히 이 기간에 국내의 신경향파 문학 내지는 카프 문학이라고 일컬어지는 문학운동이 국제적 추세에 발맞춰, 즉 러시아에서의 라프 문학이나 일본에서의 나프 문학 운동처럼, 한반도 내에서도 맹위를 떨치던 실정이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다녔던 일본의 도시샤대학이 자리한 도시 교토(京都)가 유독 사상범들이 들끓는 곳이었다는 점 역시 참고가 될 만한데, 그녀가 받았을 정신적 영향 같은 면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겠다.   도시샤대학의 그의 후배 문인들, 곧 정지용이나 윤동주 같은 시인들과 함께, 그(끝뫼)에게서 어떤 공통점을 찾아본다고 한다면 이들 세 문인들이 모두 기독교도였다는 사실과, 또 하나, 그들 모두가 당대의 현실 문제나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결코 눈감지 않은 문사들이었다는 점이다. 정지용은 가톨릭교도, 김말봉과 윤동주는 개신교도, 이렇게 3인은 모두 넓은 의미의 기독교도였는데, 정지용은 해방기의 문맹(文盟)과 그들의 문학에 대하여 포용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현실 문제에 어두워지지 않으려 노력했고, 윤동주는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자신의 시를 통하여 드러냄으로써 그 자신의 역사의식을 확고히 세웠으며, 김말봉 역시 일면으로는 윤락녀의 구제와 공창 폐지운동에 앞장섬으로써 여권 신장의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세운 동시에, 타면으론 동반작가들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통하여 자신의 작품상에 그러한 자신의 태도를 드러내어 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김말봉과 정지용은 1년 선후배 관계로 도시샤대학 캠퍼스에서 같이 공부한 인연으로 제법 우의가 돈독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동주만은 그들과 연령 차이가 커서 훨씬 뒤에 그 대학에서 수학했으니 함께 만나지는 못했다.) 1926년 여름방학 때 김말봉이 정지용과 함께 ‘조선지광’이란 월간잡지사에 들렀던 적이 있었다. 이 잡지는 당시 카프 문사들이 주로 활동하던 무대였으며, 경성제국대학에 재학 중인 유진오·이효석 등의 작가들이 이른바 동반자적 경향의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던 월간지였다. 김말봉이 정지용과 함께 이 잡지사엘 더러 찾아다녔다는 사실이 시사(示唆)하는바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또한 1931년 초부터 염상섭의 장편소설 <삼대>가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었으니, 끝뫼 역시 그 소설(‘삼대’)의 주요인물 김병화(또는 홍경애)로 대표되는 프롤레타리아 사상가들의 활동상에 일말의 동정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제반 사정이 그 1년 뒤인 1932년 초의 그녀의 조선중앙일보 데뷔작 (‘망명녀’)에는 혼합적으로 반영되어 있다고 보겠다. 이로써 보건대, <망명녀>에게서 보게 되는 김말봉 소설의 언필칭 동반자적 성격도 어느 면 그 근원을 짐작케 해 주는바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
    • 문학
    2022-05-18
  • 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1)-김말봉의
    김말봉 작가의 <망명녀>(1932)란 작품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김말봉의 이 작품은 단편소설이다. 그러나 규모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 중편소설다운 데가 보이며, 어떤 이는 이 작품을 가리켜 장편과 같은 구조를 보여준 소설이라고 말한 바도 있다. 먼저 대중소설가 또는 통속작가로 불린, 여성 소설가 김말봉(1901-61)에 대하여 어느 정도 소개하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그만큼 그는 그의 경력 면에서도 독자들에게 상당히 흥미 있는 데가 있는 인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작품 세계와 관련된 일이기도 하고….   소설가 김말봉은 경남 밀양이 고향이며, 네 살 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 부산으로 와서 염주동에서 자랐다. 호주장로교 선교회가 세운 부산 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에서 3년간 공부하다가 서울의 정신여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그 두 학교 모두 기독교계 학교였다. 그는 스물한 살 때 일본으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 1923년 그곳 도시샤(同志社) 대학의 영문과에 입학한 후, 학업을 마치고 얼마의 기간을 보낸 뒤 1929년 귀국하였다. 그런데 그 대학 역시 일본 개신교 3대 교파 중의 하나인 조합교회 소속의 기독교계 학교였다.   일본 교토(京都)의 도시샤(同志社) 대학에서 공부하던 때 시인 정지용·윤동주 등과 거기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겐 좋은 인연이었다고 보겠다. 재학 중이었던 때, 상급생 김말봉이 방학 때 집에 돌아와 있던 하급생 정지용을 만나기 위해 지용의 고향인 충북 옥천(꾀골)을 찾았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또한 1926년 여름에 김말봉이 정지용 시인과 함께 ‘조선지광’이란 월간 잡지사에 들렀다고 하는 기록도 보인다. 그녀의 다정다감하면서도 매우 활동적인 면이 엿보이는 장면들이다.   1929년 귀국한 뒤 김말봉은 수주 변영로 시인의 지원에 의해 ‘중외일보’ 신문사의 기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단편소설 <고행>을 써서 이 신문의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응모해 당선되었다. 그래서 이 작품이 그의 사실상의 데뷔작이 된다고 보겠지만, 그는 자기가 근무하는 신문에다 응모하고 당선된 것이 아무래도 께름칙했던지, <고행>이 당선된 지 보름 만에 그 신문사에 사직원을 내고 고향인 부산으로 귀향해 버렸다. 그리고는 1932년 ‘조선중앙일보’ 신문의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다른 작품으로 응모하여 당선되었는데, 이 작품이 바로 <망명녀>였다.   그리고는 그 여세를 몰아 1935년 ‘동아일보’에 첫 장편소설 <밀림>을 연재하기 시작하였다. 한운사 작가에 의하면 이 연재소설 발표는 역시 수주 변영로 시인의 주선에 의한 결과라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를 회고한 정비석 작가의 기억으론 그 신문사 편집국장 설의식과 학예부장 서항석의 주선으로 이 <밀림>이 연재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고 보면, 아마도 3인이 회동해 이 연재 결정을 내리고, 그 윤곽을 수주 변영로가 부산의 김말봉에게 서신으로 연락해 주지 않았나 싶다. 어떻든 이 작품의 연재로 김말봉이 인기 작가로 저널리즘 스타가 되었다고 정비석은 쓰고 있다. 1937년에는 또 ‘조선일보’에 <찔레꽃>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는 전작 <밀림>보다 훨씬 더한 인기를 얻으며 독자 대중의 환영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밀림>을 서울의 일간신문에 연재할 당시(1935), 그는 부산의 동구 좌천동 주민이었다. 그날그날 신문의 삽화가 필요했으므로 그는 당시 부산고녀 4년생이던 한무숙에게 그 일을 맡겼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화가를 꿈꾸던 한무숙이 후에 소설가가 되었으며, 또한 동생 한말숙마저 소설가가 되는 다소 기이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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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2
  • 궁극적 관심을 지향하는 삶(6)-황순원의
    김동리의 <을화>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움직이는 성>에서의 샤머니즘과 기독교의 세계가 상호 크게 대조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기독교와 샤머니즘에 대한 김동리와 황순원의 평소의 종교관 내지는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일로 볼 수 있다. 황순원의 <움직이는 성>의 샤머니즘 세계는 기독교 세계에 비해서 훨씬 열세에 빠져 있는 세계이다. <을화>의 샤머니즘이 그 스스로 독립적인 데가 있는 것에 비하면 <움직이는 성>의 샤머니즘은 크게 자립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그런 샤머니즘이다. 윤성호에게 훼방당한 명숙이의 샤머니즘이 그러했고, 송민구에게 기대기만 했던 박수 변씨의 샤머니즘이 또한 그러했다. 준태에게 기댔던 돌이엄마의 샤머니즘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 의하면 <움직이는 성>에서의 샤머니즘은 분명히 ‘흔들리는 터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세계 이상의 것이 아니다. 특히 변씨나 그의 이종 사촌(갓 제대한 청년)이 송민구와 함께 벌이는 무교적 분위기의, 3각의 동성애 행각은 매우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무교의 세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대체로 부도덕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작가 황순원은 무교의 세계 자체가 혐오스러운 것임을 드러내 보이려고 한다. 그러한 무교 세계는 처음엔 순진하던 민구마저 감염(?)시켜 부도덕한 행위에 휘말리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무당인 돌이엄마가, 비교적 냉정한 타입의 비판적 지성인인 준태로 하여금 동거의 관계를 맺게 한 것도 같은 이치라 하겠는데, 몰인정한 그 무당이 죽음을 앞둔 준태를 버려두고 떠나버린 그 한 가지 일로써도 이 무교 세계의 무근성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하겠다. 그 때문에 <움직이는 성>에서의 샤머니즘 세계는 아무래도 ‘무교’라기보다는 ‘무속’의 세계에 오히려 더 가까운 그런 세계라고 표현해 볼 수 있겠다. 반면 황순원의 <움직이는 성>에 보이는 기독교는 샤머니즘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상당히 우월한 종교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김동리의 <을화>의 경우에 있어서 그렇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황순원의 경우엔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을화>의 보수적인 기독교에 비하여 <움직이는 성>의 다소 진보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실천지향의 종교에 대해서 신뢰감이 가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런 면보다도 <움직이는 성>이 보여주는 강점은 등장인물, 특히 윤성호가 드러내는 종교적인 면의 심적 갈등, 곧 성격 면에서의 근대적 면모라고 하겠다. 그는 불륜 관계로 인한 죄를 저지른 경험도 있었고, 그 일로 인해 고민에 빠져 보기도 했으며, 후엔 자진해 속죄의 고행 길을 걸어가기도 한 것이다. 그가 이처럼 내면의 연소 과정을 거쳐 성숙한 인격을 이룰 수 있었음은 다행스러운 일로 보인다.    그 결과 성호는 성공(?)을 보장받는 도시목회의 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길을 박차고 빈민선교의 길을 자청해 나간 것이며, 또한 그에게 있어서 하나의 겉치레밖에 되지 못할 그 목사직까지도 흔쾌히 벗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민구의 출세 지향적인 실리 추구의 삶이나 준태의 회의주의적인 삶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넓은 아량과 신앙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성호의 신앙이 샤머니즘적인 것들을 모두 용해시켜 자신 안에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틸리히 식의 ‘궁극적 관심’을 지녔기 때문이며, 또한 일시적 실리 추구의 삶에 대하여 거리를 둘 줄 알았던 때문이라고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그의 기독교 신앙은 개인구원은 물론 사회구원의 경지에까지 이르도록 발전, 성숙될 수 있었다고 보겠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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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2-05-04
  • 연세대 윤동주기념관에서 특별전, ‘윤동주의 시’ 지켜낸 정병욱 만난다
    윤시인의 벗이자 후배로 연희전문시절 2년간 함께 지내 고향집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를 숨겨 지켜내 연희전문 후배이자 문우로 윤동주의 자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고향 집에 숨겨 오늘에 전한 백영 정병욱선생 기념특별전이 오는 7월 22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윤동주기념관 3층에서 진행된다.    식민지 시절 우리말을 아끼며 사랑한 문학청년들의 몸부림이 한글 전용 및 애호 운동으로 이어져 오늘날 국어국문학의 뿌리를 다지기까지 여정을 보여준다. 지난달 27일 연세대 문과대 주최로 소수의 제자만 초청해 ‘백영 정병욱선생 탄생100주년 기념특별전 개막식’이 열렸다. 서승환 연세대 총장이 참석해 인사했고, 유족을 대표해 정선생의 아들인 정학성 인하대 명예교수가 감사를 표했다.   「백영 정병욱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에서 공개되는 강의 노트, 논문 원고 등의 유품들은 국문학자이자 문필가로서 우리 문학과 예술을 널리 알리고 지키고자 했던 선생의 지적 고뇌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정병욱선생의 학문은 분석주의 비평 방법과 철저한 고증을 통한 실증적 방법을 겸비해 문학성과 역사성을 정밀하게 탐구한 점이 특징이며, 한국의 전통 가락(운율)의 특징과 멋(미학)의 실체를 구명하는 작업을 필생의 화두로 삼았다.   정병욱선생의 지적 자산을 공유함으로써 학제적 교류와 사회적 소통의 장을 넓히는 계기가 될 이번 전시는 연세대 문과대학 윤동주기념관 홈페이지 및 네이버 예약시스템을 활용한 사전예약을 통해 직접 관람이 가능하다.   허경진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백영 정병욱 선생과 연희전문」을 주제로 오후 특별 강연을 했다. 허교수는 “정병욱은 윤동주를 따라 영어성경을 배웠고, 연희전문과 이화여전 학생들로 이뤄진 협성교회를 다녔다”면서 “이화여전 소강당을 빌려 예배를 드렸고, 예배 이후엔 케이블 선교사 부인이 지도하는 영어성서반에도 함께했다”고 전했다. 허교수는 “윤동주기념관이 있는 핀슨홀 건물도 올해 설립 100주년을 맞는다”면서 “신학과 유동식교수 등 핀슨홀 기숙사를 거친 선배들을 기념하는 전시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병욱선생은 1940년 4월 연세대의 전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연세인으로, 고전시가를 비롯해 고전소설, 판소리, 한문학, 전통문화예술 분야에서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또한 최현배, 허웅 등 국어학자를 도와 한글 전용 주장과 한글 애호 운동을 전개했으며 종래 문법과 지식 위주의 국어 교육 방향을 작문과 문학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앞장섰다.   정병욱선생은 윤동주시인의 벗이자 후배로 연희전문 시절 기숙사와 하숙집에서 2년간 함께 지냈다. 시인으로부터 받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를 광양 고향집에 숨겨 지켜냈고 이에 오늘 우리가 윤동주시인의 시와 함께할 수 있게 됐다. 선생의 아호 백영은 윤동주시인을 평생 잊지 않기 위해 그의 시 「흰 그림자」에서 가져온 것이다. 강처중, 김삼불, 유영과 함께 윤동주 추모회 및 시 감상회를 열고 1948년 정음사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을 간행했다. 그리고 선생이 받은 한국출판문화상과 외솔상 상금으로 윤동주 시비 건립을 주도하고 연세대 윤동주 장학금을 만드는 등 윤동주 시를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섰다.
    • 출판/문화
    • 문학
    2022-05-04
  • 궁극적 관심을 지향하는 삶(5) -황순원의
    우리는 샤머니즘에 대하여 취한 자세를 놓고 세 등장인물들에 대해 등급(?)을 매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결의 강도로 보면 그 순서는 민구, 준태, 성호의 역순(逆順)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즉 민구는 대결이 아니라 오히려 포용 쪽이고, 준태가 다소 중도적이라고 한다면, 성호는 그 대결의 강도가 가장 세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볼 때 세 인물들 가운데 유랑인 근성을 제일로 대표할 사람은 민구이고, 그 다음이 준태이며, 성호만은 비유랑적인 인물로 설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판단은 작가가 샤머니즘을 유랑성의 대표적 요인으로 설정했다는 전제를 놓고 볼 때 당연한 결론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약간 미심쩍은 것은 민구와 준태 두 사람 중에서 전자(민구)를 가장 유랑적인 인물로 잡았다는 앞서의 평가에 대한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얼른 보아 창애, 지연, 돌이엄마 등 세 ‘여성 편력’과 서울, 강원, 전북 등 세 ‘지역 유랑’으로 보아 가장 유랑적인 인물로 보이는 이가 준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분명히 세 사람들 중 가장 유랑적인 인물로 준태가 아닌 민구를 택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준태의 그러한 면은 외형적(표면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임에 반하여, 민구의 그것은 내면적(심층적)이고 본질적인 유랑성이라고 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여기까지의 논의 결과, 우리는 다음의 결론도 내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성호, 준태, 민구의 이러한 서열(?)은 곧 기독교도로서의 자격(자질)의 서열과도 일치된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성호를 1번순위로 잡을 때 나머지 둘 중에 누가 더 기독교도로서의 자질(자격)을 갖추었느냐는 물음과 같다고 하겠다. 이에 대한 결론은, 민구보다는 준태가 더 앞서는 인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비록 그가 지금 기독교를 떠났고 교회당 출석은 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그에겐 아직 기독교도로서의 자질이 소멸되지는 않았다는 뜻이 되겠다.    이 문제에 대해선 김병익 평론가의 해석에 귀를 기울이는 게 필요할 것이다.그는, 준태는 실상 끝까지 기독교를 버리지 못한 ‘부정적인 크리스천’이라 규정하고, 그가 아무리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선언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역설적인 기독교인의 반신론적 고백’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준태가 자기소멸과 에고로의 귀속을 통해 ‘부정적 기독교’를 구현했다.”고 해석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준태의 기독교 부정은 곧 ‘긍정을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그런 부정적 정신의 발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그들이 베푸는 사랑의 정도(밀도)와도 비례되는 것으로 보인다.    성호가 이타적 인물이란 것은 재언이 필요 없겠다. 준태 역시 그런 면이 없지 않은 인물임은 앞서 우리가 본 바이다. 그러면 두 이타적인 인물 성호와 준태 중 어느 쪽이 더 사랑의 밀도가 강한가 하는 물음이 발해질 수도 있겠다. 그 답은 이미 작품상에 드러난 셈이다. 준태는 단순히 그의 친구에게 베푼 사랑을 보인 데 불과했지만, 성호는 보다 더 사회정의의 실현이란 고차원적 사랑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기독교인의 자질은 그들이 베푸는 사랑의 밀도에 비례하는 것이란 말이 되겠다. 윤성호의 사랑을 실증해주는 상징적 장치가 바로 돌이와 영이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즉 동거했던 무당여인이 남겨놓은 돌이마저 놔두고 준태가 죽게 되자, 지연의 손을 통해 그 아이를 건네받아 기르게 된 성호에겐 이미 그 아이보다 먼저 책임졌던 또 다른 고아 영이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성호라고 하는 넓은 사랑의 바다는 준태의 것보다는 한 차원 높았음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
    • 문학
    2022-04-27
  • 궁극적 관심을 지향하는 삶(3)-황순원의
      <움직이는 성>에서의 다른 인물 함준태는 송민구와는 달리 기독교를 자신의 출세 목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중·고교 학생 시절 모범적인 기독교도였던 그는 후에 그 교회를 떠나버린다. 교회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비판적이었던 그는 결국 그 교회를 박차고 세속사회로 나와 버렸다. 그는 이 소설 속에서 마치 이반 카라마조프의 역을 맡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준태는 <삼대> 속의 병화와도 상당히 유사한 데가 있다. 그러나 현재는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자처하는 준태에게도 역시 구원의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시사(示唆)하는 점이 이 소설의 한 특징적인 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준태가, 실질적인 무신론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명목상의 무신론자라고 할 이반과 많이 닮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다소의 약점 같은 것을 지니고 있는 속에서도 그는 그래도 신뢰할 만한 데가 있는 인물로 보인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과욕을 부릴 줄 모르는 그는 친구가 산간벽지로 전근을 가야만 하게 되었을 때, 오히려 자청하여 저 자신이 친구 대신 벽지로 자리를 옮기고 말았다. 이러한 그의 희생적인 삶의 자세는 불가불 민구의 실리적인 생활 태도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도라고 하면서도 철저하게 실리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송민구에 비하여 교회를 박차고 떠나버린 함준태의 이웃사랑의 삶이 크게 대조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본질이 ‘사랑’ 즉 ‘이웃사랑’이라고 할 때 민구의 이기적인 삶과 준태의 이타적인 삶이 서로 대조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도 진정한 사랑이 소멸되는 수가 있으며, 반대로 ‘교회 밖’에서도 그 사랑이 회복되는 수가 있음을 보게 된다.   전번의 아내 창애와 헤어진 뒤, 새 여인 남지연이 끈질기게 준태를 따라다니지만, 그는 그녀에게 약간의 끌림을 당하면서도 결코 거기에 빠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가 이렇게 매사에 자신이 없고 결단력이 없어 보이는 것은 그의 지병인 천식 때문인 성싶기도 하다. 그의 이 원인 모를 병은 그가 유랑의 생활이 아닌 ‘정착에의 기대’를 갖는 순간 그에게 다가오곤 했었던 것 같다. 그가 이 사실을 자각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는 후에 강원도의 오지로부터 전북의 어느 오지로 자신의 거처를 옮겨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그의 거처를 지연에게는 전혀 알리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그는 그곳에서 끝내 운명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마음속으로 얼마간은 사모하고 있었던 지연과의 상봉을 다시는 이루지도 못한 채로였다.   이러한 준태의 상 역시 유랑인의 상 그것이 아닐 수 없다. 작가 자신은 기독교 세계 이외의 유랑인의 대표적 인물로 함준태를 설정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기독교인이기를 스스로 거부한 만큼 또 무교 신앙의 소유자도 아니었으면서, 그가 마지막에 만난 여인이 바로 무당인 돌이엄마였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컬하다. 그러나 유랑성을 떨쳐버리지 못한 ‘기독교도 송민구’가 샤머니즘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역시 유랑인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함준태라고 할 때 그가 어떤 식으로든 샤머니즘의 세계와 관련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되는 바라고 하겠다.   그러나 그의 운명(죽음)은 그 무당 여인이 자기(준태)를 버리고 달아나버린 뒤에야 찾아왔었다는 데에서 그가 궁극적으로는 무속세계와 동류일 수가 없음이 증거 되기는 한 셈이다. 이 점에서 같은 유랑성의 경우라고 하더라도 민구의 그것과 준태의 그것이 동질일 수는 없다 하겠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
    • 문학
    20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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