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2-05(목)

출판/문화
Home >  출판/문화  >  문학

실시간뉴스

실시간 문학 기사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48] ‘하나님나라’를 꿈꾸는 소망 - 가영심의 「물」
      내 혼의 눈부신 나라에 가 닿으리    내가 나이던 것을 다 허물고  가진 것 다 비운 목숨으로 가 닿으리  어디였을까 어디였을까  내 안에 찬란히 소리치는  서러운 혼이 있어  영생의 물줄기를 흔들며 노래하는 물소리    내 혼의 눈부신 물의 나라  눈멀어 더듬듯 황홀히 흘러  그렇게 가 닿으리  가 닿으리                  - 「물」의 전문   가영심(賈永心)의 이 시는 2000년 제20회 한국기독교문학상 수상시집인 〈저녁향기〉(문학아카데미 펴냄·1999년)에 수록되어 있으며, 물의 이미지를 통한 영생에의 소망을 추구했다. 물은 투명하고 깨끗하며, 정화시키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이 물이 흘러가 닿는 곳은 ‘눈부신 나라’이고 ‘물의 나라’인 영원한 생명을 누릴 ‘하늘나라’로 전개했다. 하늘나라는 물처럼 깨끗하고 투명한 나라이며, 눈부신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물은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다. ‘가 닿으리’나 ‘물줄기’, 그리고 ‘물소리’는 흐르는 물에서만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은 정적인 것이 아니고 동적인 이미지를 지닌다. 물의 흐름은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 물의 흐름은 물의 나라로 가는 길이다. 이 물의 생리를 시적 상상력으로 화자가 꿈꾼 영생의 나라를 형상화했다.   제1연은 1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눈부신 나라’에 가 닿으려는 굳건한 의지를 보여준다. ‘가 닿으리’란 것은 물과 함께 동행한 단호하고 흔들리지 않은 자세를 표현했다. 또한 물의 동적인 생리가 표현상 생략되어 있지만, ‘가 닿으리’에는 물과 함께 동행하여 눈부신 나라에 가겠다는 의지이다. 이 1행의 구절에는 절제되고 함축된 표현으로 눈부신 나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담았다.   제2연은 영원한 생명을 영위하기 위해 하늘나라를 향한 노래이다. 육신의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모든 것을 씻어내고, 인간적인 탐욕을 비운 깨끗한 영혼으로 합류하려고 한다. 이 1행과 2행은 빌립보서 2장 7절과 8절의 “자기를 비워”나 “자기를 낮추시고”, 그리고 1장 23절의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3장 13절의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나, 14절의 “푯대를 향히여”란 구절의 가르침에 연유한다. 나란 존재를 허물고 지닌 모든 것을 비운다는 것은 속물적인 심성들을 버리고, 순수하고 깨끗한 양심으로 목적한 지점인 하늘나라에 가겠다고 염원한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의 통곡의 회개기도이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의 기도로 내가 나이던 것을 허물 수 있고, 가진 것을 다 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였을까”를 반복하는 것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목적한 지점을 향한 간절함의 표출이다. 특히 “영생의 물줄기를 흔들며 노래하는 물소리”는 천사들의 찬양을 연상시켜 준다.   제3연은 꿈꿔왔던 눈부신 물의 나라인 하늘나라로 향하는 황홀한 걸음걸이다. “그렇게”란 제2연의 1행과 2행의 전형적인 신앙의 삶으로, 그리고 “눈멀어 더듬듯 황홀히 흘러”서 하늘나라로 향한 의지이다. “가 닿으리”를 반복한 것도 소망에 대한 결연한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이 시에서 물의 이미지를 극대화시켜 현실의 세계에서 내세의 세계로 갈 것을 소망한 것은, 기독교시의 지평을 확대시키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기독교적인 세계관이거나 내세관에 대한 비유의 시적 방법과 구성, 훌륭한 시적 상상력 소재의 활용 등은 시작의 능숙함을 엿보게 한다. 그의 제4시집인 〈내 가슴의 벽난로에 장작을〉 (마을 펴냄·1994년)에 수록된 「내 사랑은」이란 시에서도 「물」과 같은 기독교적 내세관을 드러내 보여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12-05
  • 기독교문협, 반석교회서 세미나 및 문학사랑방
      기독교문학이 생기를 얻으려면 기독교문화가 토착화돼야 교인과 문인들이 함께 어우러진 시와 노래, 악기 연주로 성황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문인협회(이사장=김영진시인)는 세미나 및 제39회 문학사랑방을 지난달 29일과 30일 대전 반석교회(담임=박정미목사·수필가)에서 가졌다. '한국 기독교문학의 방향'이란 주제로 가진 세미나와 문학사랑방은 한국 기독교문학의 질적 향상을 통한 하나님의 복음전파에 기여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특히 교인들과 지역의 주민, 문인들과 함께 가진 '문학사랑방'인 '가을의 끝자락 - 시와 노래의 축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으로 승화시켰다.   최은하원로시인을 좌장으로 가진 세미나는 유승우시인과 오승재작가가 주제를 발표했다. 유시인은 '기독교문학의 방향 - 현대시는 이미지의 형상화'란 제목에서 “기독교문학의 방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독교’라는 접두사를 벗어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은 예술이며, 예술은 그 작품으로만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면서, “‘시는 이미지이다’라는 말은 시의 형식적인 정의다. 신의 체험을 어떻게 형상화하여 보여주느냐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지식이나 사상이라면 설명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나 예술은 이해가 아니라 느낌이며 체험이다”고 밝혔다.   또한 유시인은 “시인은 곧 강열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모든 예술작품 곧 시와 노래와 그림은 그리움의 열매 곧 사랑의 열매이며, 사랑의 열매는 곧 영혼의 열매인 것이다. 열매는 생명의 집이며, 시는 영혼의 집이다”고 강조했다.   오승재작가는 '기독교문학의 방향 - 독자가 없는 기독교문학'이란 제목에서 “우리나라에는 불교문학, 유교문학이란 명칭이 없다. 유교와 불교는 이미 우리나라에 생활화되고 있는 문화기 때문이다. 서구에 기독교문학이란 명칭이 없는 것도 그들의 문화는 이미 기독교문화가 생활화되어 있는 문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기독교문학이 생기를 얻으려면 먼저 기독교문화가 토착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오작가는 “기독교인이 쓴 글만이 기독교문학이라는 주장은 누가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기독교인인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기독교문학을 계속 하겠다면 ‘기독교’라는 접두어를 빼고, 문학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의 향기를 풍기며, 기독교문화를 확장하는 데 일익을 감당하겠다는 소명을 가지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세미나가 끝난 후 오후 7시 30분부터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문학사랑방은 문학과 노래가 어우러진 축제였다. 이 축제는 김석림상임이사의 사회와 이문수시인의 기도, 박정미목사의 '가죽옷의 은혜'란 제목의 설교, 김영진이사장의 인사 등 순서로 예배를 드린 후 가졌다.   최규창명예이사장의 사회로 가진 문학사랑방은 문인과 교인들의 시 낭송과 찬양이 어우러진 시간이었다. 문인들 중에서는 유혜목시인의 '내 안의 당신', 이선님시인의 '당신의 나라로', 이정혜시인의 '촛불의 기도', 권오숙시인의 '나와 예수님', 이희복시인의 '가을에 부치다', 최은하시인의 '별 하나와 나', 그리고 교인 중에는 박 일권사의 장 콕도 시인 '귀', 박진우집사의 '내 가슴 설레느니', 조병훈권사의 '가을이 아름답습니다'란 제목의 시 낭송, 이명희아동문학가의 뱀의 꼬리와'란 제목의 동화구연이 있었다.   찬양에는 남현주학생의 '임재', 이승우권사와 그 자녀인 김효중과 김현중의 '나의 어머니', 원종혁권사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그리고 나영웅어린이의 피아노연주인 '쇼팽 왈츠 13번' 박석현장로와 박영근권사, 나영찬권사와 박혜경권사의 색소폰연주와 찬양인 ?가을이라 가을바람?, 박광철집사와 박진우집사, 함훈욱청년의 브라스밴드 연주, 박종현학생을 비롯한 김성진, 나새연, 최인영의 바이올린 연주, 송치선집사를 비롯한 33명의 에바다 오케스트라의 연주 등 순서로 진행됐다.   한편 김영진이사장은 “교인들 모두가 다양한 악기로 연주하는 것은, 반석교회가 다양한 취미생활을 권장하는 결과임을 입증해 준다”면서, 선도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교회이다“고 감탄했다.
    • 출판/문화
    • 문학
    2019-12-0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45] 천국을 향한 신앙인의 삶 - 임승천의 「오늘, 하늘에는」
      오늘, 하늘에는 멀고 아득한 길이 있다   아득하면 아득할수록 기도의 눈이 보이고 햇살이 반짝인다   언제나 조용히 흐르는 물따라 다가서면 하루 종일 넘치는 은혜의 강물   강가에 서 있는 나무는 꽃눈 가득한 축복에 쌓여 기쁨으로 꽃을 피우면   다가오는 음성 뚜렷한 눈뜨임 속에 온 몸에서 솟아오르는 은총의 샘물   기도의 문이 열리고 하늘 문이 거듭 열리면 말씀의 불꽃 내 안에서 활활 타고 있다 - 「오늘, 하늘에는」의 전문 이 시는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을 향한 신앙인의 삶을 형상화했다. 천국에 가는 삶은 기도의 삶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기도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찬양과 경배, 감사, 죄의 회개, 간구, 중보를 드린다. 하나님은 아룀을 들으시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고 간구에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 은총의 삶을 영위하도록 섭리하신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 말씀에 의한 삶에서 비롯된 과정을 형상화했다.   첫 연에서 하늘에는 천국을 향한 멀고 아득한 길이 있다고 제시한다. 천국으로 가는 길을 1행으로 함축해 구성했다. 천국은 화자가 지닌 신앙의 척도로 보면 ‘오늘’이란 시점에서 멀고 아득한 길이다. “멀고 아득한 길”에서 암시하듯이 천국에 가는 길은 쉽게 갈 수 없는 멀고 아득한 길임을 깨닫게 한다. 제2연은 천국에 가는 길이 멀고 아득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삶임을 보여 준다. “아득하면 아득할수록”이란 구절은 신앙의 삶에 대한 돌아봄에서 생성(生成)된 깨달음이다. 천국에 가는 길이 밝지 못하고 아득하게 여겨지는 것은, 신앙의 삶에 대한 자각이며, 회개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도의 눈”이 보인다는 것은, 멀고 아득한 천국의 길이 가깝게 보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햇살이 반짝인다”란 것은 ‘흐린 날’이 아니라, ‘좋은 날’의 이미지를 지닌 평온하고 화평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기도의 눈’이 보이는 신앙의 삶을 지녔기 때문에 천국이 가깝게 보이고, 화평한 마음을 지닌 것이다.   제3연은 축복의 삶은 기쁨의 삶임을 일깨워 준다. 강가의 나무에서 꽃눈이 가득한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축복을 받았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 축복으로 인해 기쁨으로 꽃을 피우게 된다. 이 나무의 꽃을 피우는 과정에서 우리의 신앙적인 삶으로 연상시켜 준다. 그것은 축복의 삶이 기쁨의 삶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제4연은 은총의 삶임을 스스로 체험하고, 삶 속에서 계속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다가오는 음성 / 뚜렷한 눈뜨임 속에”란 구절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거듭나는 삶에 대한 표현이다. 그 결과는 “은총의 삶”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은총의 삶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은 바른 신앙인의 삶이다. “기도의 문이 열리고”란 구절에서 보여주듯이 일상의 생활 속에서 기도가 생활화된 삶이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의 삶은 ‘하늘 문’이 열릴 수 밖에 없다. 기도가 지닌 힘이다. 이 ‘기도의 문’과 ‘하늘 문’이 열리면, 화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불꽃처럼 활활 타오를 수 밖에 없는 체험적인 현상을 표현했다. “말씀의 불꽃 내 안에서 활활 타고 있다”란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삶이다.   이 시는 천국을 향한 신앙인의 삶이다. 천국으로 향한 하늘에는 멀고 아득한 길이 있다. 그 길을 가기 위한 기도의 삶은 은혜의 삶이 되고, 축복과 은총의 삶이 된다. 이 삶은 기도의 문이 열리고 천국(하늘)의 문이 열린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위하는 삶임을 보여 준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11-1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44] 어머니의 삶통한 바른 삶으로 인도 - 이매수의 「어머니의 유산」
      어머니 주름은 늘어진 내 마음에 회초리가 되었다   어머니 눈물은 메마른 내 가슴에 마중물이 되었다   어머니 웃음은 고단한 내 삶에 꽃이 되었다   어머니 기도는 방황하는 내 삶에 등불이 되었다 - 「어머니의 유산」의 전문 이매수의 「어머니의 유산」은 어머니의 삶을 통해 바른 삶을 영위한 과정을 형상화했다. 어머니의 삶은 화자의 삶에 거울이며, 길라잡이로 고백한 시이다. 어머니의 모든 것은 가정과 가족을 위한 사랑과 희생으로 집약시킬 수 있다.   이 시에서 어머니의 모든 것을 함축시켜 형상화했다. 어머니가 화자에게 물려준 유산은 재물이 아니라, ‘주름’과 ‘눈물’, 그리고 ‘웃음’과 ‘기도’이다. 어머니의 모든 삶을 집약한 단어이며, 화자에게 물려준 유산으로 인식했다. 어머니의 웃음과 기도도 사랑과 희생의 모성애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어머니를 통해 화자에게는 ‘회초리’와 ‘마중물’, 그리고 ‘꽃’과 ‘등불’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어머니의 삶을 통해서 바른 삶의 길로 인도되고, 정착되었음을 암시한다.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주름’→‘회초리’, ‘눈물’→‘마중물’, ‘웃음’→‘꽃’, ‘기도’→‘등불’이란 등식은 어머니를 통해 자식인 화자가 변화된 삶이다. 이러한 절제된 시어와 함축, 그리고 시적 구성은 시작(詩作)의 깊은 고뇌에서만 성취할 수 있다.   제1연은 어머니의 주름을 통해 화자의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해 준 회초리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어머니의 주름은 연륜적 흔적으로 노쇠하여 늘어난 것이 아니라, 가정과 가족을 위한 희생의 산물로 깨닫았기 때문이다. 성장해 가는 자식의 눈에는 어머니의 주름이 아픔의 눈물일 수 밖에 없다. 힘든 생활 속의 모진 고생과 땀에 대한 흔적이다. 그래서 화자에게 그 주름은 회초리가 되고, 잘못된 삶을 바른 삶이 되기 위한 채찍질로 사용되었다.   제2연은 어머니의 눈물이 메마른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준 마중물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메마른 내 가슴”이란 무기럭한 삶을 의미한다. 어머니의 눈물은 메마른 가슴을 위한 마중물로 사용하였다. 사실 마중물이란 우물물을 길어올릴 때에 사용하는 물이다. 펌프로 물을 길어올리기 위해서 한 바가지의 물을 펌프안에 붓고, 펌프질을 해야 하는데, 이때 붓는 물이 마중물이다. 이 시에서의 마중물은 어머니의 눈물이다. 어머니의 단순한 슬픔의 눈물이 아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아픔의 눈물이기 때문에 메마른 가슴을 적셔 무기력한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제3연은 어머니의 울음이 화자의 고단한 삶속에 꽃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웃음과 꽃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삶 속에서의 웃음은 사랑과 행복의 삶임을 의미한다. 또한 삶 속의 꽃은 아름다운 삶이다. 어머니의 삶은 고난과 역경의 아픔을 지니고 있다. 그 삶속의 웃음은, 사랑과 행복의 웃음이기 때문에 고단한 삶 속에서도 피어난 사랑과 행복의 꽃이다. 그 꽃은 위로와 용기를 주고, 사랑과 행복의 삶으로 인도한 것이다.   제4연의 어머니의 기도는 화자의 방황하는 삶에 등불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어머니의 피눈물 속에서 드린 기도로 성장하였다. ‘기도’가 ‘등불’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일회성의 기도가 아닌 끊임없는 기도의 결과이다. 자식을 위한 이 뜨거운 기도였기 때문에 방황하는 삶 속에서 바른 삶으로 인도될 수 있는 등불이 되었다.   이 시는 어머니와 화자의 깊고 넓은 삶을 몇 단어의 시어로 함축해 형상화했다. 재물이 아닌 어머니의 삶을 유산으로 인식한 창조적인 발상과 군더더기가 없는 시어와 정갈한 구성, 뛰어난 기교가 특이하다. 또한 선명한 이미지는 그의 시작에 대한 특징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11-07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43] 내면적인 결실위한 경건과 성숙한 삶 -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가을의 기도」의 전문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는 결실의 가을에 드리는 기도의 시이다. 이 시는 내면적인 성숙의 결실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다. 기도의 형식에 의한 간절함을 간구한다. 3연으로 구성된 각 연의 첫 행은 ‘하소서’라고 소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채우소서’라고 간구한다.   첫 연은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라고 시작한다. 그것은 “주여, 가을에는 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소서”로 산문적으로 서술할 수 있지만, 시적인 표현으로 함축했다. 그리고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는 결실에 대한 결산의 시기이다. 가을의 시작을 지나 마지막 낙엽들이 지는 때인 가을의 끝을 의미한다. “겸허한 모국어”는 내면적인 세계, 즉 경건한 삶이거나 성숙한 삶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3연의 “나의 영혼”과 관련지어 볼때, ‘영혼의 소리’로도 대치할 수 있다. “나를 채우소서”는 “겸허한 모국어”, 즉 ‘경건한 삶’이나, ‘성숙한 삶’, ‘영혼의 소리’로 채워달라는 간구이다.   둘째 연은 “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라고 간구한다. 그것은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하고 소망한다. ‘오직 한 사람’은 절대자인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이다. 수용적 태도에 따라 이성적 연인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는 성숙한 삶을 위해 충실한 생활을 간구했다. 특히 “가장 아름다운 열매”는 ‘신앙의 열매’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 둘째 연은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고, 오직 한 사람인 하나님만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소망한다. 또한 신앙의 열매를 결실하기 위해 충실한 생활을 간구했다. 이 둘째 연의 독립적 그 자체로 이해한다면, 이성적 연인에 대한 사랑의 열매를 소망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선택하여 사랑하고, ‘가장 아름다운 열매’는 결혼으로도 유추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적 맥락으로 볼 때, 신앙의 발로이다.   셋째 연은 주제연이다. “호올로”는 주제어가 된다. “가을에는/호올로 있게 하소서”는 삶의 경건성을 간구한다. 그리고 “굽이치는 바다”는 삶의 시련과 역경을 함축하고, “백합의 골짜기”는 행복한 삶을 의미할 수 있다. “마른 나뭇가지”는 허위와 장식을 벗어버린 순수함을 나타낸다. “까마귀”는 참회하는 영혼의 겸허함을 나타내는 이미지이다. “호올로”나 “까마귀”는 절대자인 하나님 앞에 고독하게 다가서 있는 모습이다. 그것은 김현승의 시에서 ‘까마귀’는 ‘절대 고독’을 의미하는 문학적 상징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특히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는 순수한 한 영혼이 시련과 역경, 환희를 지나 하나님 앞에 순수하게 서있는 고독한 모습이다. 그것은 맑은 영혼을 지닌 자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이 시는 가을을 맞아 내면적인 결실의 기도이다. 지금까지 누구나가 가을에는 외형적인 결실만을 추구해 왔다. 농경사회는 추수를 얼마만큼 했느냐가 중요했다. 지금은 모든 것을 금전적으로 환산한다. 그러나 이 시는 신앙적인 삶 속에서 내면적인 결실을 추구한 것이 시적 가치를 획득한다. 무엇보다도 김현승의 ‘절대 고독’이 그대로 추구되고 있는 것도, 시적 가치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10-31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42] 처절하게 회개하는 삶 - 전길자의 「관계」
      그 분은 제일 높은 자리를 버리시고 제일 좋은 것을 버리시고 제일 아끼는 것을 버리시고   그 분은 제일 낮은 자리 제일 천한 자리로 오셨습니다   오늘 나는 제일 높은 자리만 제일 좋은 것만 제일 앞에 서기만을 고집합니다   다 가지고 있는 데도 풍족함을 모르는 다 주셨는 데도 다 누리지 못하는   나는 전신 장애자입니다. - 「관계」의 전문 전길자의 「관계」는 신앙시집 〈이루어지이다〉(은혜기획 펴냄ㆍ1999년)에 수록된 시이다. 이 시는 새로운 형태로 회개하는 기도시이다. 시의 구성도 기도시에서 벗어나, 오늘의 삶에 대한 회개의 모습을 추구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신앙을 생활화한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이 시는 5연으로 구성됐다. 1연과 2연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함축했다. 3연과 4연, 5연은 화자인 나의 삶을 되돌아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되돌아 보고, 오늘의 삶을 처절하게 회개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제1연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형상화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인류의 구주이기 때문에 제일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제일 좋은 것과 아끼는 것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해 ‘제일 높은 자리’와 ‘제일 좋은 것’, 그리고 ‘제일 아끼는 것’도 버리셨다. 이 ‘제일 높은 자리’나, ‘제일 좋은 것’, ‘제일 아끼는 것’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을 함축한 것이다.    제2연은 인류의 구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천한 환경을 표현했다. 하나님의 아들인 그는 화려한 환경 속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추운 겨울날 유대 베들레험 마굿간에서 태어났다. 마리아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요셉과 약혼했는데, 결혼 전에 예수를 잉태하였다. 호적령에 의해 고향인 베들레헴에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예수를 낳았다. 아버지는 다윗의 자손으로 집을 짓는 목수였다. 이러한 환경은 ‘제일 낮은 자리’나 ‘제일 천한 자리’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제3연부터는 화자의 ‘나’에 대한 삶이며, 그 삶에 대한 회개이다. 스스로가 지닌 죄악에 대한 고백이다. 제3연은 제1연과 대비시켜 이해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버렸지만, 오늘의 나는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하고,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것은 오늘의 인간들이 지닌 욕심의 행태이다.    제4연도 인간이 지닌 끝없는 욕심을 표현했다. 특히 “다 가지고 있는 데도”나, “다 주셨는 데도”란 구절은, 풍족한 삶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다. 그리고 그 축복의 삶에 대한 “풍족함을 모르는”나, “다 누리지 못하는” 것은 죄의 행위이다. 그것은 축복의 삶을 모르고, 누리지 못하는 욕심의 죄 때문이다.   마지막 연은 제3연과 4연에 대한 결과이다. “나는/전신 장애자입니다” 라고 진단보고서를 내놓았다. ‘정신 장애자’로 함축한 것은, 처절한 모습의 결과에 대한 표현이다. 회개를 통한 거듭나려는 과정이다. 특히 이 장애자는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신앙의 행위에 대한 결과인 정신적인 장애이다.     이러한 이 시는 오늘의 삶에 대한 처절한 회개이다.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 속에서 신앙적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처절한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도이다. 특히 시적 구성이 분명하게 짜여져 있다. 언어의 배열도 간결함과 통일된 질서를 유지하기 때문에 시의 틀이 견고하다. 전길자의 신앙시를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10-23
  • [한국 기독교시 다시읽기 41] 절망을 극복하는 용기와 사랑 - 고정희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상한 영혼을 위하여」의 전문 고정희(高靜熙)는 1970년대와 1980년 초에 왕성한 창작활동으로 주목받았던 시인이다. 그의 시는 억압을 받는 자와 소외된 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그의 시의 배경은 1970년대 유신시대를 거쳐 1980년 신군부 독재정권, 그리고 5·18광주민주화항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시는 제4연 20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힘찬 언어의 시적 표현으로 지금에 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진행형이다. 상처받은 영혼을 사랑과 용기로 위로하고, 희망의 내일을 향한 걸음걸이다. 그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생명에 대한 한없는 사랑에서 연유한다. 1연은 상처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회복심리를 추구했다. 1행의 ‘상한 갈대’는 5행의 ‘상한 영혼’으로 대치되고 있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는 절망하지 않고 삶을 지탱해 나가는 모습이다. 또한 “뿌리 깊으면야/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는 자연의 이치이다. 뿌리가 깊으면 밑둥이 잘리어도 새 순이 돋기 때문이다. 특히 4행의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에서 절망을 극복한 모습을 강조했다. 1행에서 4행까지 상한 갈대의 자연적 현상을 보여주고, 절망하지 않는 삶의 모습을 추구했다. 그리고 5, 6행은 현실적 극복의지로 승화시키고 있다. 제2연은 상처받은 영혼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개하고 있다. 물에 떠있는 부평초잎은 흔히 개구리밥이라고 말한다. 이 부평초잎은 물만 고이면 꽃이 핀다. 또한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등불도 켜진다. 이러한 현상처럼 상한 영혼도 어딘들 못 가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래서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고 공동체적 삶을 추구한다. 그리고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가랴”나,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고 반문하는 것은, 절망을 극복하는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이다. 제3연은 절망의 현실이다. 고통은 계속되지 않는다고 일깨워 준다. 그것은 ‘영원한 눈물’이나 ‘영원한 비탄’은 없다고 가르쳐 준다. 고통과 설움의 땅을 지나 뿌리 깊은 벌판에 서면, 고통과 설움에 의한 눈물이나 비탄은 지난 과거의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신앙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4연에서도 기독교신앙에 대한 믿음을 형상화했다. ‘하늘’은 ‘하나님’으로 기독교신앙을 의미하고 있다. ‘캄캄한 밤’은 현실적 절망과 고통의 상황이다. 그리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는 구원의 손길이다. ‘하늘 아래’에서는 절망과 고통을 극복하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기독교신앙은 새로운 삶을 주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연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형상화했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10-17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40] 고통과 역경을 이긴 영원한 생명 - 유안진의 「들국화」
      한얼산 기도원 올라가는 길에 소슬히 웃고 선 막달라 마리아   멸시를 이기더니 통곡을 삼키더니 영원한 남성의 영원한 사랑을 획득하고 만 여자   어리석은 그 여자가 지혜롭게 곰삭인 잘못 살아온 세월의 빛깔   보라빛 연보라 천상(天上)의 웃음 띠우고 마중나오신 성녀(聖女) 막달라 마리아 - 「들국화」의 전문 유안진의 「들국화」는 한얼산기도원 올라가는 길에 피어난 들국화를 통해 막달라 마리아를 연상시킨다. 이 들국화는 일상의 들국화가 아니다. 뜨거운 성령의 바람이 일어나고,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 기도원 올라가는 길에 피어난 들국화이다. 이러한 들국화와 성녀 막달라 마리아를 시적 이미지로 대치해 전개했다.   막달라 마리아는 육체의 정열 속에서 헤매이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신실하고 순결한 성녀(聖女)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엔 모리아끄가 지적한 것처럼, 허무와 육욕의 생활에서 온갖 죄를 짓는 동안 영혼이 허물어졌다. 일곱 사귀가 들렸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면 그녀의 성격이 무척 정열적이었다. 또한 그녀의 생활이 굉장히 육욕적이었다는 점을 추측할 수가 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간교에 걸려 돌로 쳐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창녀이었다. 일단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몸과 마음이 변화된 후에는 예수를 섬기는 여인들 중에서 가장 순결한 여인이 되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의 생애를 통해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류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의 속죄 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이 「들국화」는 한얼산기도원을 배경으로 ‘들국화’를 통해 ‘막달라 마리아’를 연상시키고, 그의 삶을 형상화했다. 특히 바리새파 사람들의 멸시와 통곡을 이기고 구원을 얻은 막달라 마리아의 생애를 재현시켰다. 4연의 짤막한 시 속에 막달라 마리아의 일대기를 함축시키고, 오늘의 삶의 현장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시적 가치성을 획득했다.   제1연에는 들국화와 막달라 마리아를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한얼산기도원 올라가는 길에 피어난 들국화는 멸시와 천대를 받던 막달라 마리아로 대치시킨다. 기도를 통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곳이 한얼산기도원이라면, 막달라 마리아는 그 기도를 향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기도를 통해 지난 생애의 질곡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연은 고유 명사인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보통 명사인 ‘여자’와 ‘남성’으로 끌어들여 오늘의 현실 세계로 바꿔놓고 있다. 멸시를 이기고 통곡을 삼키는 아픔을 통해 구원을 얻은 막달라 마리아를 가리키고 있다. 이러한 것은 숱한 고통과 역경을 지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을 보여 주었다.   제3연은 멸시와 천대를 받던 막달라 마리아의 빛깔을 표현했다. 그것은 잘못 살아온 세월의 빛깔이다. 그 빛깔은 제4연의 ‘보라빛 연보라’로 표현했다. 숱한 질곡을 극복한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의 자리로부터 성녀의 자리로 옮겨 앉아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죄인들을 마중 나온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영원한 사랑을 획득하고, 그 생애와 신앙은 우리의 신앙에 깊은 가르침을 준다.   그의 「저녁기도」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의 관계를 똑같은 위치에 올려놓고, 공감의 폭을 넓히고 있다. “어쩌면 내/눈감을 수 있을까요/막달라 마리아/당신의 여인은/날이 저물면/왜 자꾸 눈물나지요”(「저녁기도」의 마지막 연)라고 고백한다. 그것은 모두가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정신적 전력(前歷)을 지녔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한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10-14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39] 깨달음에 대한 삶 - 장수철의 「소망」
      가식(假飾)이 아닌 마음으로 오랜만에 평온한 마음으로 옥상(屋上)의 하얀 눈을 밟는다.   너무나 많았던 미움의 얼굴들에게   지금의 미소를 던질 수 있는 이 아침의 공기로 믿음이 새로워지는 이 순간이 황홀하다.   사랑의 깊은 의미와 행복의 참된 가치가 이렇듯 눈부시게 와 닿는 옥상에서   봄을 기다리는 반가운 소식이 이미 와있는   저 산봉(山峰)의 숨결이 이렇게 고맙게 들린다.          - 「소망」 의 전문 향토적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수철(張壽哲)의 시는 인생적인 서정과 현실의식, 북녘에 있는 고향에의 향수 등 다양한 시세계를 구축했다. 제4시집인 〈관악산 뻐꾸기〉부터 기독교의 정신적인 맥락이 뿌리내리고, 하나님 앞에서 고독한 언어를 교신(交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4시집 이전의 시에서도 그의 정신의 바탕은 기독교적인 맥락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그의 아동문학에서 대표작인 장편 소년소설 〈해바라기의 노래〉는 철저한 권선징악의 정신과 서민생활을 돋보이도록 묘사했다. 그 정신적 바탕은 기독교의 신앙에 두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적 정신은 그의 시에서 갖가지 색깔로 형상화되었다.   소망은 현존치는 않지만 장래에 실현될 것에 대한 기대이다. 성경의 구약에 있어서의 소망은, 의로운 자의 삶의 근거가 되는 구원사적 표적이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의 신뢰와 소망으로써 미래에 대하여 약속을 주시는 이스라엘의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약에 있어서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소망은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된다.   이 시는 성경에서 일깨워 준 소망을 바탕에 두고 형상화했다. 신앙의 삶이 육화(肉化)된 이미지로 전개했다. 특히 “사랑의 깊은 의미와/행복의 참된 가치가/이렇듯 눈부시게 와 닿는”이란 구절이 신앙의 삶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사랑의 깊은 의미’나, ‘행복의 참된 가치’는 기독교가 추구하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눈부시게 와 닿는”이란 표현도 신앙의 삶 속에서 구현되는 결과이다.   이 시는 6연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시적 전개로 보면 3연으로 구분할 수 있다. 2연과 3연, 4연부터 마지막 연까지를 두 개의 연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1연은 깨끗하고 안온한 마음으로 옥상의 하얀 눈을 밟는다. 그것은 일상의 삶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일상의 삶은 가식적일 수도 있고, 생활에 찌든 불안의 연속일 수도 있다. 그것은 ‘옥상’이 상징하듯 도시민의 삶이다.   제2연과 3연은 용서의 삶에 대한 기쁨을 표현했다. 화자는 눈을 밟으며, 미움의 얼굴들을 미소로 용서하는 사랑을 깨닫는다. 그것은 스스로의 믿음이 새로워지는 그 순간 자체가 황홀하다. 이 순간에는 어떤 꾸밈이나, 가식된 마음의 표현도 필요없다. 그대로 내보이면 된다는 실상을 일깨워 준다. 특히 ‘눈’이 주는 깨끗함의 이미지가 ‘용서’로 환원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4연부터 마지막 연은 ‘깨달음’과 ‘소망’을 깨우쳐 준다. 신앙의 삶을 표현했다. ‘사랑의 깊은 의미’나, ‘행복의 참된 가치’는 깨달음이다. 그리고 봄을 기다리는 반가운 소식이 고맙게 들리는 삶도, 신앙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저 산봉의 숨결이/이렇게 고맙게 들린다”란 표현은, 시의 가치성을 높여 준다. 산봉우리의 숨소리를 듣고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깨끗하고 평온한 마음을 지닐 때만이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장수철의 시 대부분은 일상적인 서정 속에서, 짙은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느 시를 읽어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초기에 보여준 향토적 서정성은, 인생적 서정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이사장
    • 출판/문화
    • 문학
    2019-10-04
  • 7일, 기독인문학연구원서 세미나
    기독인문학연구원(대표=고재백교수)은 오는 7일 역삼동 크리스찬살롱에서 「기독교 신앙과 과학의 건강한 관계 정립을 위한 한 크리스천 천문학자의 호소」란 주제로 독서 세미나를 열고, 반과학주의 경향을 지닌 한국교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날 세미나를 통해 한국교회 안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신앙과 과학의 조화를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전할 방침이다. 강사로는 우종학교수(서울대)가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이란 책을 놓고 강의할 예정이다. 세미나 관계자는 “한국교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반과학주의·반지성주의적 풍토는 교회 내부는 물론 외부에 있는 사람들조차 기독교와 과학이 상극인 존재로 인식하도록 하고 있다”며, “이러한 오해를 풀고 신앙과 과학의 조화를 추구한 유구한 기독교 역사의 흐름을 잇고자 노력하고 있는 우종학교수를 초청해 강의를 진행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기독교 신앙과 과학 간의 건강한 관계 정립을 추구하는 저서를 집필하는 등 크리스천 과학자의 간절한 호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이 교회 내에서 존중받는 분위기가 세워질 필요가 있다”며, “창조과학 일변도인 한국교회의 변화가 일어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 출판/문화
    • 문학
    2019-10-04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