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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교실] 등·가슴 여드름 (2)
      등과 가슴의 여드름에 대한 치료는 크게 국소적 치료, 전신적 치료, 물리적 치료로 나눌 수 있는데 증상의 정도에 따라 단독 또는 복합요법을 사용한다.    가장 간단하고 흔한 방법은 여드름 비누, 국소 항생제, 각질 제거제 등을 이용한 국소치료이다. 이 중 각질 제거제는 모공을 막고 있는 각질을 녹여줌으로써 막혀 있던 모공들이 일시에 열리면서 피지 배출이 쉬워지고 염증을 감소시키며, 다른 국소 도포제의 피부 흡수를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 특히 각질이 두꺼운 등에 생긴 여드름에 효과적이다.    전신적 치료는 일반적으로 흉터를 남길 가능성이 많은 여드름이나 바르는 약만으로는 충분한 효과를 나타내지 못할 때 사용한다. 가슴은 흉터가 잘 남는 부위이며, 색소침착 또한 잘 되므로 가능하면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물리적인 치료 중 가장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여드름 압출법으로 곪은 여드름은 일단 약으로 염증을 가라앉힌 다음 소독한 바늘이나 탄산가스 레이저로 면포나 농포를 뚫어 준 다음 압출기로 짜낸다. 가슴에 난 여드름은 손이 쉽게 닿아 스스로 짜거나 때타월로 미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염증이 악화되거나 흉터가 남을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외에도 여드름에 직접 주사를 놓거나 헬륨 네온 레이저 치료 등이 염증이 심한 여드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등과 가슴의 여드름에 대한 관리의 기본은 청결과 피부에 자극을 주는 악화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세정력이 강한 여드름 비누로 깨끗이 샤워하고, 목욕 후 로션이나 오일, 샤워코롱의 사용을 피해야 하며 여드름이 곪은 상태에서 사우나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속옷은 면제품으로 입는 것이 도움이 되며 수면시 피부에 직접 접촉하는 잠옷이나 침구도 청결히 해야 한다. 그러나 여드름의 관리에 가장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피하고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가지는 것이다. /한양대병원 피부과 교수
    • 오피니언
    • 칼럼
    2019-11-15
  • 정성구 칼럼
    가을의 끝자락이다. 산과 들에 곱게 물들었던 울긋불긋한 단풍이 떨어지고 곧 겨울이 닥쳐 올 것이다.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눈과 얼음이 참으로 신나겠고, 시인은 겨울의 설경과 아름다움을 노래할 것이다. 하지만 겨울은 생명의 약동이 없고 중단 된 상태이다. 또 한 해를 마감하는 스산한 계절이기도 하다. 이제 겨울의 매서운 추위는 사람들을 움츠리게 하고 동식물은 동면에 들어간다. 지금 한국이야 난방이 잘 되어 있어 따뜻한 방에서 지내지만, 가난한 서민과 힘들에 사는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연탄 한 장도 귀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2천년 전 로마, 특히 로마의 감옥은 죄수가 견디기는 심히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로마의 감옥은 난방도 없고, 방풍도 안되고, 죄수가 입는 옷이 체온을 보호해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게 죄수들은 겨울에 얼어 죽어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태리는 반도로서 한반도와 흡사하다. 그리고 로마는 위도가 서울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여기 로마의 감옥에 복음을 증거하다가 들어온 늙은 죄수 사도 바울이 갇혀 있다. 추위보다 더한 것은 고독이었다. 바울은 수제자 디모데가 너무 보고 싶었다.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면서 가죽종이에 쓴 성경과 드로아가보의 집에 맡겨 놓은 코트가 그리웠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인편으로 편지를 보내어 「겨울 전에 어서 오라(Come before Winter)」라고 했다. 겨울이 되면 지중해가 얼어버리기 때문에 배가 다닐 수도 없다. 어쩌면 바울은 마지막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을 것이다. 그 때 디모데가 서둘러 왔더라면 스승인 바울을 만났겠지만, 차일피일 하다가 겨울이 되고 지중해가 얼어서 뱃길이 끊겨 스승 바울을 더 이상 만나지 못했다면 천추의 한이 되었을 것이다.   바로 디모데후서 4장의 이 내용을 가지고 「Come before Winter」라는 제목의 설교를 한 교회에서 30년 동안 하신 목사님이 있다. 그분은 바로 미국의 대 목회자요 설교가인 클라렌 멕카트니 목사님이었다. 매년 11월 마지막 주일은 꼭 「겨울이 오기 전에」란 설교를 했는데, 멕카트니 목사님의 설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미국 각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그 설교를 들으려고 피츠버그 제일 장로교회로 모여든다. 또 이 멕카트니 목사님의 설교를 본 따서, 한국교회는 한경직 목사님, 김희보 목사님 등 많은 목사님들이 이 설교를 즐겨했다.   나는 평생을 신학대학원에서 <칼빈주의 사상>과 <개혁주의 설교학>을 가르쳤던 이유로 멕카트니 목사님의 설교를 참 좋아했고, 그의 삶과 설교를 연구했다. 그래서 25년 전부터 멕카트니 목사님의 모든 자료가 소장되어 있는 미국 펜실베니아 주, 비버폴에 있는 제네바대학(Geneva College, 1848년 설립)을 자주 다녔다. 제네바 대학은 피츠버그의 개혁장로회신학교(RPTS)와 더불어 스코틀랜드의 언약도(Covenanters)들의 신앙을 따르는 칼빈(John Calvin)과 낙스(J. Knox)의 신학과 신앙을 철저히 사수하는 학교이다. 제네바 대학의 도서관 이름은 아예 멕카트니 도서관(McCartney Library)이라 했다. 멕카트니 목사는 부친이 제네바대학의 수학과 교수였던 존 멕카트니의 아들로 태어나서 미국 장로교회의 대지도자가 되었다. 그래서 멕카트니 박사는 1924년에 미국 장로교회의 총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1957년에 세상을 떠났다. 멕카트니 도서관의 기념 방에는 멕카트니가 사용하던 책들과 설교자료와 육필 원고가 가득 차있다. 멕카트니 목사의 자료에는 휴지에다 번득이는 설교 영감을 기록한 것도 있다. 제네바 대학은 1848년 세워진 신학, 기독교 교육학을 비롯해서 인문, 사회과학 등 20여 개 학과에 1,400여 명이 공부하고 있다. 각 과는 공히 기독교세계관 곧 칼빈주의 세계관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 학교는 나의 평생에 칼빈주의 운동한 공로를 인정해서, 1996년에 나에게 명예문학박사(D.Litt)학위를 수여하였고, 나는 그 날 <교회와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란 제목의 강연을 한 추억도 있다. 나는 지난 9월에 제네바 대학에 다시 가서 몇 일 동안 멕카트니 도서관에 머물면서 멕카트니의 설교와 그 학교의 교수였던 J. G. 보스 교수를 연구하게 되었다. J. G. 보스 교수는 1,900년대 초의 프린스턴 신학교의 성경신학의 아버지 겔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박사의 아들로, 한부선 선교사와 함께 만주에서 한국인들을 위해 선교사로 일했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로 총회가 1938년 신사참배를 가결하자, 신사참배를 반대한 성도들의 많은 수가 만주로 건너갔다. 박윤선 목사도 당시 만주 신경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한부선 선교사와 J. G. 보스 선교사의 신앙의 지도로 500여 명의 한국 성도들이 신사참배에 반대하는 신앙고백을 썼고, 이것은 독일의 바르멘 신앙고백(Barmen Confession)과 맞먹는 문서였다. 그 후 J. G. 보스는 선교사 사역을 끝내고 제네바 대학에서 20년간 성경신학교수로 일했다.   나는 이번에 보스 교수의 행적을 조사 중에 그의 아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지난 9월 멕카트니 목사의 흔적을 찾으려고, 그가 목회하던 피츠버그 제일 장로교회를 방문했다. 피츠버그 시내에 있는 제일장로교회당은 참으로 아름답고 예술적이었고 웅장했다. 나는 멕카트니 목사가 섰던 강단에 올라가 보니 감개무량했다. 그런데 나는 교회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지금 주일 출석이 얼마나 모이는가 했더니 고작 200명이라고 했다. 그 옛날 멕카트니 목사가 목회할 때는 2,000명이 넘었었다. 그런데 이제 200명의 성도들이 모인단다. 이것이 미국 장로교회의 현주소였다. 이미 미국교회에 겨울이 온 것이다. 멕카트니 목사님의 「겨울이 오기 전에」어서어서 서두르라는 메시지가 미국 교회가 깨닫고 있었는지? 그리고 한국교회도 「겨울이 오기 전에」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야겠는데…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교회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가 서둘러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오늘도 나는 제네바 대학교에서 어렵게 구한 멕카트니 목사의 불멸의 설교 「Come before Winter」란 70년 전의 육성 설교를 듣고 있다.  
    • 오피니언
    • 칼럼
    2019-11-15
  • “교회의 사회참여 적극적으로 매진해야” - 한기총 증경 대표회장 지 덕 목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을 역임하며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 갱신과 사회참여에 매진했던 지 덕목사(사진)는 현재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대표회장=신신묵목사) 고문을 맡으면서 교계 원로로서 현직 목회자들의 길라잡이가 되어 한국교회가 사회의 푯대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조언을 나누고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밝힌 지목사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갈등은 지역 갈등이나 이념 갈등이 주를 이루었는데 현재 일어나는 갈등은 국가정책에 관한 견해 차이에서 갈등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본다”며, “특히 국가가 좌파든 우파든 극단주의로 기울고 있으며 정부 관계자가 하는 일이 어떤 영웅심의 발로로 인해 그런지 즉흥적으로 인기 위주의 정책을 펼치기에 이를 받아드리는 견해차가 심각하게 일어난다고 본다”고 전했다.   한국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일어난 이념 간 차이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가 분열현상을 가속화한다고 강조한 지목사는 “북한에 관한 문제도 다양한 시선에서 의견을 듣고 취합해 실행해야 하는데 즉흥적으로 시행하니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지소미아나 북한문제를 다루는 것 또한 같다. 사회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국가가 시행하는 정책을 따라오라 강요하면 3~40년 전 국가와 다른 모습이 없다”고 말했다.   그간 한국교회는 정치와 거리를 둔 채 기도만 하면서 나아갔는데 최근 몇몇 목회자가 거리에 나서면서 교회를 향한 지탄이 늘고 있다고 전한 지목사는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점은 분명 비판받을 사항이다. 하지만 위정자를 경계하면서 국민의 소리를 바로 들을 수 있도록 정치인을 향해 소리쳐야 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며, “종교인 대표 몇 명을 불러다 식사하고 사진 찍는 것이 모든 이들의 의견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인들은 개인의 신앙이나 믿음에 상관없이 당의 기조를 따르고 있다”며, “그렇기에 국회 안으로 기독교 정당 소속 정치인을 배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일제부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기독교인은 애국자로 존재해왔다”며, “애국자로서 기독교인을 배출해 나라와 교회를 이끌도록 해 이 사회의 대변자로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 오피니언
    • 인터뷰
    2019-11-15
  • ‘생명나눔’은 ‘건강의 복’을 나누는 방법
      필리핀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변명이 보인다’ 지난 29년 동안 사랑의 장기기증운동을 펼치면서 이 속담의 깊은 뜻은 이해할 수 있었다.    1991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타인에게 신장 하나를 기증하며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을 시작했을 때에는 누가 그토록 소중한 자신의 생명을 남을 위해 나누겠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이들도 많았다.   처음 반응을 듣게 됐을 당시 낙담하며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장기기증’이 제게는 너무도 간절한 사명이었기에 국내에서 생명나눔 운동을 활성화시킬 방법에 대해 밤낮으로 고민하며 기도했다. 그 결과 주님의 은혜로 지금은 140만여 명이 장기기증 희망 등록에 참여했고, 968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타인을 위해 살아서 자신의 신장 하나를 기증했다.   지난 10월 10일, 인애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구신용목사가 60대 만성신부전 환자를 위해 신장 하나를 기증했다. 사실 구 목사의 기증에 앞서 2006년 아내인 홍선희사모가 먼저 신장 하나를 기증했다.    지난 2006년 부부 모두가 알고 지내던 지인이 신장이 망가져 혈액투석을 하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그때 구목사는 자신의 신장 하나를 기증하려 했지만,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는 등의 사유로 기증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생명나눔이 무산될 수도 있었지만, 홍사모가 용기 있게 나서 구목사 대신 자신의 신장 하나를 지인에게 기증했다. 그로부터 13년의 시간이 흘러 구목사 역시 자신의 신장 기증의 결심을 지키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다.    구목사의 신장을 이식받은 이는 60대 남성으로 인생에 절반 가까운 세월을 투병하며 육체적, 경제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환자였다. 29년 투병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혈액투석 치료를 받으며 이 환자는 ‘꿈만 같은 일’라며 ‘받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겠다’라는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이 부부가 생명을 나누는 용기를 선뜻 낼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 바로 자신의 건강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채워주신 복이라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건강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에서 이러한 놀라운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다. 내 의지, 내 수고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으로 인해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고 믿고, 작은 일상 가운데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작은 일상조차 누릴 수 없는 환자들에게 자신이 받은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눈에 보기에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해서 부자가 아니다. 비록 재산이 많지 않고 누추한 곳에서 생을 이어갈지언정 지금 이 순간을,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허락한 환경 가운데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이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립보서 4장 19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믿는 우리에게 부족함 없는 사랑을 베풀고 채워주신다.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 무고한 죽임을 감내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눌 사랑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변명이 아닐까.   주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는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돈이 없어도, 시간이 없어도 우리 생의 마지막 순간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나누며 이웃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우리가 주님께 받은 건강의 복을 떠올리며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 생명나눔 운동에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의장기기증 운동본부 이사장
    • 오피니언
    • 정론
    2019-11-14
  • 순국선열의 믿음을 기억하자
    11월 17일, 올해로 22주년을 맞는 ‘순국선열의 날’은 1905년 을사늑약의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가 1939년 제안·의결되어 기념일로 제정되었다. 이후 1970년 이 기념일은 간소화되기도 했지만, 1997년 국민의 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금 정부주관의 기념일로 제정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제정된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을사늑약의 그 수치를 기억해야만 한다. 을사5적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의 사인만으로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외교권을 잃고, 결국 통감부 설치를 통해 주권마저 상실했던 그 치욕 속에서 우리가 겪었던 그 아픔을 상기해야만 한다.   한 번 잃은 주권을 되찾기 위해 우리의 수많은 선조들은 목숨을 걸고 투쟁해야 했고, 때론 온갖 고문을 떨리는 마음으로 견뎌야만 했다. 기록된 역사에 의하면 고문을 못 이겨 미쳐버린 이들도 다수고, 어떤 경우는 미친 척을 하기 위해 자신의 오물을 먹어야만 했다. 또 수많은 이 땅의 여성들이 견뎌야만 했던 그 수치와 치욕은 어떠한가. 한국의 기독교는 그러한 아픔 속에서 태어났다. 우리 한국기독교는 서방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신앙을 받아드리지 않았다. 우리 선조는, 우리의 민중들은 삼삼오오 모여 기독교 정신을 스스로 익혔고, 그 결과 기독교를 통해 이 땅의 수많은 민초들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기독교를 수용했다.   초기 한국기독교는 독립운동을 이끌었고, 죽음과 고문 앞에서도 당당했다. 일제와 친일파의 총칼 앞에서도, 자신의 살을 찢는 고문 속에서도, 조국의 이름과 하나님의 뜻을 당당히 외쳤다. 기독교 정신은 우리 선조들을 종교적 양심 앞에 세웠고, 육의 평안함보다 영의 승리를 갈망할 수 있는 힘을 불어 넣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갈망하는 애국선열들의 그 고백에 기독교 정신의 정수가 있다. 자신의 삶을 버려서라도 예수의 삶이 이 땅에 드러나길 소망했던 눈물겹도록 자랑스런 믿음의 선조들의 삶을 통해 우리 기독교인들이 배움을 얻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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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11-14
  • 주님께서 주신 추수의 기쁨을 찾자
    추수감사절은 성경 속에는 없는 절기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지키던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과 비슷하다면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인정하고 서로 함께 나누자는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 속에 나타나는 모든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런 가운데 명절을 맞을 때마다 지혜롭게 생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과 행위를 경계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자들이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린도전서 5장 11절)고 전했다.   원래 교회의 절기로서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청교도들이 1620년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에 정착하기 위하여 가져온 씨앗을 심었으나, 기후와 환경에 맞지 않아 첫해에 질병과 기아로 102명 중 47명이나 사망했다. 이듬해 청교도들은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와 콩, 보리를 재배할 수 있었고, 이렇게 거둔 곡식들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감사예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다가 미국이 독립 이후 위싱턴 대통령이 11월 26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한데 이어, 링컨 대통령은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바꾸면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성경에서는 추수와 관련하여 특별한 내용이 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4장 35~36절). 하나님의 독생자인 그리스도께서 한 알의 밀과 같이 땅에 떨어져 죽으심으로 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아 영생에 이르는 추수의 열매가 되게 하셨다. 따라서 교회는 이 일에 전념해야 한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진정한 의미요, 이웃사랑과 나눔의 가장 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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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11-14
  • 거룩한 삶이 함께하는 감사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추수감사절은 ‘기독교 신자들이 한 해에 한 번씩 가을 곡식을 거둔 뒤에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올리는 날, 1620년에 영국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다음 해 가을에 처음으로 거둔 수확으로 감사제를 지낸 데서 유래한다’고 정의된다. 한 해 동안 거둔 수확물을 통해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감사하는 시간인 추수감사절은 주님께서 베푸신 사랑과 자비를 뒤돌아보며 타락한 인간에게 주시는 값진 은혜에 감격을 표하는 시간이다.   타락한 인간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어 무고한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모든 인간이 마땅히 감사를 표해야 할 사건이다. 2천 년 전 가장 낮은 자리에서 태어나 가장 비참한 죽음을 겪은 주님의 희생으로 우리의 삶에 가치가 부여됐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께 받은 은혜에 감사를 표하며 이웃에게 나누는 중요한 의무를 진다. 이 의무를 성공적으로 성취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이뤄나가는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께 표해야 할 감사는 무엇인가. 마르틴 루터는 감사를 근본적인 기독교인의 태도라고 정의했다. 루터가 이야기하는 감사의 개념은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복음의 핵심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감사를 전하는 행동 저변에는 이 세상 속에 모든 선한 것을 하나님께서 아무런 사심 없이 베푸시는 분이라는 개념이 깔려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감사를 통해 하나님의 관용 안에서 삶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외적으로 표현해 값진 은혜를 이웃에게 나누며 사는 실천을 보이게 된다.   감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잊어선 안 될 점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날 주님께서 실재적으로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하나님의 축복은 현재에만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미래에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고 향유할 수 있도록 베푸시는 자비로 가득 찬 은총이다. 다만 우리가 감사로 표현하는 이 은총은 그리스도인만을 대상으로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가 함께 공유해야 하기에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의 재림이 완전히 도래하기 전까지 모든 사람이 주님의 자비를 알고 깨달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복음을 전파하는 실천을 보이게 된다. 이를 통해 나누는 주님의 사랑은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자연 세계와 온 우주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하나님의 활동에 그리스도인이 참여하며 성화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추수를 통해 상기할 수 있는 주님의 크신 사랑에 힘입어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섬기며 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감사로 표현하는 날이 되길 희망한다./서울신대 총장
    • 오피니언
    • 사랑의 실천
    2019-11-14
  • 감사와 혐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잘 알려져 있다. 1620년 종교의 자유를 찾아 102명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싣고 대서양을 건넜다.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농사꾼이 아니었으므로 먹고 살아갈 방법이 막막했다. 그랬던 청교도들에게 생명의 기술을 전수해 준 사람들은 다름 아닌 그 땅의 주인인 인디언들이었다.   이듬해 가을이 되어 농작물을 풍성하게 얻게 된 청교도들은 추수를 마치고 3일 동안 축제를 열었다. 이 자리에 자신들에게 삶의 길을 열어준 인디언들을 초대했음은 물론이었다.   청교도들은 감사축제를 통해 신앙의 자유와 새로운 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또한 목숨을 건 여정 속에서 하나가 되어 고난을 함께 이겨낸 가족들을 축복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삶의 자리를 내어주고 삶의 기술까지 전수해준 인디언들과 기쁨을 나누었다. 그렇게 청교도들의 초기 정착지였던 뉴잉글랜드 지방에서는 해마다 감사의 축제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날의 감사는 70년이 지난 시점에 혐오로 바뀌었다. 1692년 뉴잉글랜드 지방의 살렘에서 마녀재판으로 인해 스무 명의 사람이 화형에 처해진 것이다. 가장 어린 희생자는 자그마치 5살이었다.   척박한 정착지의 현실을 살면서 그들의 삶은 자주 불안에 빠지고 쉽게 위협을 느꼈다. 그들을 불안에 빠뜨리고 위협하는 모든 것을 청교도들은 악마의 짓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먼저 무너진 것은 가정이었다.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건너와 신세계의 자연과 싸워가며 견고하게 하나가 되었던 가정은, 우리 가운데 마녀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 속에 하나 됨을 잃어버리고 붕괴되어갔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영화 「더 위치」가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청교도들의 마녀사냥과 혐오의 대상은 가족에서 외부로 옮겨졌다. 그 대상은 바로 자신들의 정착을 도왔던 인디언이었다. 인디언에 대한 혐오는 다시 가족의 결속을 가져왔고, 인디언 학살로 인해 얻은 부와 안정은 감사를 회복시켰다.   누가복음 17장에는 예수님께 치유 받은 10명의 나병환자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혐오의 대상이었던 나병환자들에게 치유의 사건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자 감사였을 것이다. 이런 기적을 경험했다면 그 일을 베푸신 분께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돌아와 감사를 표한 사람은 단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뿐이었다. 유대인에게 사마리아 사람은 당대의 마녀였고 혐오의 대상이었다. 예수님은 엎드려 감사하는 사마리아 사람을 향해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누가복음 17장 19절) 말씀하셨다.   함께 나병을 치유 받았던 아홉 명의 유대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돌아와 감사를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구원을 베푸신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살았을까? 이제는 혐오의 대상에서 벗어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같은 처지에 있었던 사마리아 나병환자뿐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 전체에 대한 혐오의 정서를 거두었을까? 혐오의 정서로 만연해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며 추수감사절을 앞둔 지금, 여전히 궁금할 뿐이다. /참다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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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13
  • [예수탄생의 의미 3]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님
      요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베들레헴, 떡집에서 태어난 예수님은 생명의 양식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은 영생의 축복을 주시기 위함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예수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본문 7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탄생 당시의 메마른 세상의 민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선민들입니다. 선민이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로 택한 민족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공의와 사랑으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25:35에 보면 “ 네 동족이 빈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객이나 우거하는 자처럼 함께 생활”하라고 율법은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유대 땅 베들레헴 사람들은 이 율법을 무시했습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은 해산하는 여인에게 방 한 칸 내주지 않았습니다. 해산하는 마리아를 무시했습니다. 선민이라고 일컫는 백성들의 비정한 사회를 보게 됩니다. 율법주의가 난무하여 바리세인과 사두개인들이 춤을 추는 시대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유대 사회는 종교의 빈껍데기만 남는 위선적이며 이기적인 사회였습니다. 걸핏하면 율법의 잣대로 상대방을 비방하고 욕하는 사회였습니다.(마 5:21~26) 또 서로 같은 계층 사람들을 배타시하는 사회였습니다.(마5:46~48) 완고한 율법주의 종교의 가르침 때문에 서로 정죄하고 비판거리만 찾는 사회였고(마7:1~6) 부모의 도리도 증발되었고(마 15:`1~6) 입으로만 하나님을 들먹이던 사회였습니다.(마 15:8) 한마디로 유대사회는 사랑은 증발되고 증오심, 위선, 이기심에 깊게 물들던 사회였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선민사회가 이러할진대 로마나 다른 세계는 어떠하겠습니까? 사탄의 권세아래 온갖 죄와 불의가 가득한 세상이었습니다(롬1:24~32 : 엡 2:1~2) 사랑, 자비, 용서의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없던 세계였습니다. 이럴 때 이 세상에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화육강생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상담자가 가져야 할 덕목입니다. 바로 이것이 크리스찬이 가져야 할 덕목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예수님이 오셔서 온갖 고통과 병으로 고생하는 자를 치유하여 주셨습니다.(마 5:24)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마 9:1~2) 사랑이 없는 세상에 주님이 오셔서 사랑의 종교를 세우신 것입니다. 바로 그 참된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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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08
  • [윤종성의 쉽게 배우는 한의학 2] 건선
      건선은 경계가 분명한 은백색의 인설로 덮여 있는 홍반성 피부 병변이 특징으로 주로 팔꿈치, 무릎, 엉덩이, 두피 등 자극을 많이 받는 부위에 발생한다.    피부는 인체의 가장 바깥쪽에 자리잡아서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경계이며, 외부의 유해한 자극이나 침입으로부터 내부의 장기를 보호하는 최전방의 성벽(보호막)이다.   진화론적인 면에서 보면, 인간은 물속으로부터 진화하여 개구리처럼 물 속과 땅에서 모두 살 수 있는 양서류 단계를 거쳐서 진화의 최고 단계에 위치한다. 개구리 피부의 끈적거리는 진액이 마르면 개구리가 죽어버리듯이, 인체의 피부도 어느 정도의 습윤을 갖고 있어야 한다.   임상에서 보면 실제로 피부가 부드럽고 윤기있는 사람은 피부질환이 거의 없으며, 건조한 피부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피부질환(건선, 아토피, 한포진, 양진, 물사마귀, 박탈성피부염, 수족각화증, 모낭염, 경피증, 수포성표피박리증, 천포창, 어린선 등)이 많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질환은 아직까지 특별한 발병 원인을 찾지 못했으며, 대개는 면역기능의 교란이 그 원인으로 본다. 원인을 알 수 없기에 마땅한 치료법이 없으며, 단지 스테로이드제제와 대증요법에 따라 치료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럼 건선이란 무엇인가? 그리스어로 가려움증이나 발진을 의미하는 ‘Psora’와 이로 인한 상태를 뜻하는 접미사인 ‘iasis’로부터 유래한다.   특정 부위의 각질세포가 정상적인 각질세포보다 8배 정도 빠르게 재생되는 만성재발성피부질환으로, 처음에는 좁쌀같은 작은 구진이 생긴 위에 은백색의 인설(각질)이 겹겹이 쌓여서 점점 커지면서 극심해지면, 피부의 80% 정도를 상회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만성피부질환으로 건선의 침범 부위나 정도는 개인에 따라 아주 다양하게 나타나는 원인 미상의 자가면역성질환의 하나로 파악한다.   건선이 잘 발생하는 부위는 팔꿈치 무릎 두피 몸통처럼 인체에서 돌출된 부위이며(아토피는 반대 부위인 팔꿈치 접히는 부분, 무릎뒤오금, 목), 아토피만큼 가렵지는 않으나 간혹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초기의 가벼운 건선은 물방울처럼 작은 구진으로 나타나지만, 중등도의 건선은 피부 표층에 은백색의 갉아낸 듯한 인설이 쌓여있는 충혈된 피부가 보이기도 하고, 심하면 가렵고 통증이 있으며, 커다란 건선반 모양으로 커지거나 하나로 합쳐져서 등 전체를 덮기도 한다. 건선의 합병증으로는 관절의 부종과 통증을 주로 하는 건선성관절염이 있고, 손발톱의 움푹패임, 변색, 손톱기저면의 분리 등이 있다. 10대에서 30대 사이에 처음 발병하고 남녀의 성비는 비슷하다.   유병률은 미국인에게는 2~3%, 유럽인에게는 4~5%, 우리나라는 0.5~1% 정도로 추정되어서 건선이 인종에 따른 차이나 태양광선에의 노출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5% 정도의 가족력이 인정된다. 초기에는 작은 방물울건선으로 나타나고, 가장 흔한 건선은 판상건선이며, 박탈성건선, 농포성건선, 간찰부건선, 두피건선, 성기건선, 손발톱 건선등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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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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