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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옥합]여성이여, 마이크를 들자
20대 대학생 때 한국기독학생회(IVF)에서 활동했다. 모태신앙이어서 유년 시절이 교회에서의 추억으로 가득했던 내가, 대학교 가서 한국기독학생회(IVF)에서 공동체 훈련을 받으면서 삶의 방향성이 정해졌다. 20대 초반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점점 고학년이 되고 리더가 되면서 졸업 후에는 고난받은 이들을 위해서 살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졸업 후 교회개혁실천연대 활동가가 되었다. ‘교회개혁실천연대(이하 개혁연대)’는 2002년에 창립되어, 교회의 비민주성, 재정/행정 전횡, 세습 등의 문제로 고통받는 교인들과 함께하는 단체이다. 주로 분쟁 교회 상담을 하고, 개 교회 /교계 현안을 대응하며, 한국 교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고, 왜곡된 신앙을 온전하게 바로잡는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 교회 내 치우친 권력을 바로잡고,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일도 중요한 활동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 내 남성 중심, 목회자 중심의 축을 주체적인 신앙을 기반으로 여성과 청년, 그리고 교인들로 축의 중심을 이동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개혁연대는 리더십도 공동대표를 다수로 세우는 공동 리더십이며, 직업군도 목사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분들이 함께 한다. 2002년 창립된 때에도 공동대표 3인 체제였으며, 여성 공동대표를 2011년부터 세워 현재 필자까지 여성 공동대표가 네 번째 세워졌다. 기독교 시민단체 중 성 평등한 의식을 가지고 가장 빠르게 세웠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필자가 18년 동안 활동가로 현장에서 활동하고 퇴사했지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가 2023년 공동대표로 선출됐다. 활동가 출신 공동대표가 세워진 것에 대해 당시 많은 관심을 받았고 인터뷰를 했다. 리더십의 세대교체가 필요한 상황에서 단체는 18년 현장의 경험을 소중하게 여겼고, 젊은 여성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오랜 기간 활동가 마인드로 있다가 리더의 자리에 있으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 활동가로 있을 때는 항상 뒤에서 준비하고 최상의 상태로 진행하기 위해 보이지 않게 일했다. 그게 내 기질과 잘 맞았고 늘 돕는 자의 마음으로 일했다. 그런데 리더는 그렇지 않았다. 일단 페이스북에 개혁연대 공동대표라고 소속을 쓰자마자, 일면식도 없는 남성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친구 신청을 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소속만 보고 신청한 건가 고개가 갸우뚱했다. 또한 날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다. “대표님”이라고 부르면 그렇게 어색했다. 대표니까 대표라고 부르는 걸 알면서도 어색했다. 개혁연대 사무국에서는 직위로 부르지 않고 별칭 “난나”로 불려서 편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부르지 말고 별칭으로 부르던지 “종미 님”이라고 불러달라고 몇 번 부탁했는데 되지도 않았고, 부탁하는 나도 지쳤다. 직위로 불리는 것은 요즘 흐름도 아니고, 권위주의의 상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걸 바꾸고 싶었다. 그런데 그건 그동안 책이나 강의를 통해 알았던 피상적인 것이었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상대방은 대표라고 부르면서 그것을 통해서 나를 높여주고 인정하는 것이며, 나를 위해서 그렇게 부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40대 젊은 여성이라고 무시하지 않으며, 대표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이었다. 필자가 간사였을 때 사무국장으로 함께 일했던 분들, 그리고 개혁연대 초기부터 20년 동안 리더로 있으면서 가르침과 많은 영감을 주셨고 이제는 70대가 되어 은퇴한 분들, 이들이 나를 대표라고 불렀을 때, 그 의미를 1년 정도 돼서야 깨달았다. 그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고, 그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굳이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동대표 2년 차인 요즘에는 “대표님~”이라고 불리는 그것의 이면에는 책임감이라는 더 중한 부담감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부분은 마이크를 잡는 것이다. 2023년 공동대표로 선출되고 바로 이틀 후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그리스도인 모임에서 용산 집무실 앞에서 현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했고, 거기서 기도를 맡게 되었다.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그날 녹사평 분향소에서 지킴이 활동을 하는데, 유가족분이 유튜브로 기도 잘 들었다고 고맙다고 하셨다. 이후 조금씩 마이크 앞에 서게 되면서, 이제 내가 어떤 행사나 방송에서 말하는 것이 듣는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았다. 회의에서나 방송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언론사에 글을 쓰는 일들이 종종 생기면서 어려웠다. 왜 이렇게 나에게 발언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 많이 생각했다. 이유는 자주 해보지 않아서였다. 한국 교회 내 여성이 70%를 넘는다고 한다. 여성들은 교회에서 주로 무엇을 하는가. 아침 일찍 교회에 도착해 식사를 준비하고, 주일학교를 섬기고, 찬양대를 한다. 마이크는 주로 누가 잡는가 생각해 보자. 목사님이 설교와 예배 인도로, 장로님이 기도를 하면서 마이크를 잡는다. 공동의회나 제직회 등 회의 시에도 주로 누가 발언하는가 생각해 보자. 개혁연대에서 실무자로 일할 때에도, 교회에서 일할 때에도 여성들에게 어떤 순서를 요청하거나, 발언하라고 하면 난 못한다고 손사래 치기 일쑤였다. 그래서 여성은 마이크가 익숙하지 않다. 재미난 것을 발견했는데-물론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남성 목회자/전문직 분들의 카카오톡(소셜미디어) 프로필을 보면 마이크 앞에서 말하고 있는 사진을 자주 본다. 마이크를 잡은 자신의 모습을 내세우는 경우가 있다. 마이크와 남성은 익숙하지만, 마이크와 여성은 그렇지 않다. 올해에도 9월 셋째 주에는 각 교단별로 총회가 진행됐다. 개혁연대는 2004년부터 각 교단 총회를 직접 가서 참관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는 “교회여! 경계선으로 나아오라!”는 주제로, 교단 총회가 거룩함도 잃고 시대적 감수성도 부족하면서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그 경계선을 깨고 세상으로 나아오라는 뜻을 담아 활동했다. 9월 12일 정책 제안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9월 23일부터 예장 합동/통합/기장 총회 현장 참관, 안건 관련 현장 기자회견/피켓시위, 일반 교인 대상으로 온라인 참관단 운영을 했다. 필자는 예장 통합과 예장 합동 총회를 현장 참관했다. 온라인 참관단에서 3개 교단을 동시에 모니터 하니까, 각 교단별로 차이를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예장 합동은 남자 총대만 있고(여성 총대 0명), 예장 통합은 여성 총대 43명(전체 총대 중 2.8%), 기장은 여성 총대 65명(전체 총대 중 10.6%) 이었다. 기독교라는 하나의 종교에서 어떻게 이렇게 극과 극의 모습이 보이는지 신기하다. 아직도 여성은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총회를 섬기는 보조자로만, 어떤 의견을 내지 못하는 소극적인 모습만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한국 사회는 공정성, 투명성, 민주적 수평 문화, 여성 참여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한국 교회는 비성경적이고 전근대적 성차별 문화로 여성과 젊은 세대 반감이 심각하여 교인 수가 감소하고 있다. 전체 교인 70% 이상의 여성들이 교회의 주요 사역을 감당하면서도, 중요한 의사결정과정에서 설자리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교단과 교회의 주요 정책들을 결정할 수 있는 길은 일부 교단의 경우에는 완전히 막혀 있다. 이러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5월부터 ‘여성안수추진공동행동(이하 여안추)’이 발족되었고, 열심히 활동한 결과 이번 예장 합동 총회에서 여성 사역자 강도권 인정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여안추는 여성 목사 안수만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장로 도입까지가 운동의 목표이다. 예장 합동, 예장 고신, 예장 합신이 여성 장로, 여성 목사를 도입하고, 이미 도입한 예장 통합, 기감, 기장 등은 실질적으로 의사결정과정에서 여성의 참여를 확대하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래야 한국 교회가 산다. 기존 남성들은 마이크를 내려놓고, 여성과 젊은 세대들에게 마이크를 돌리고 들으시라. 마이크는 곧 기득권을 뜻한다. 여성 총대가 있는 교단은 더욱 여성 총대 파송 의무와 할당제 비율을 높이며 발언권을 주고 각 주요 위원회에 여성을 배제하지 말고, 여성 총대가 없는 교단은 여성들을 일단 총회로 입장시키자. 그것이 교단이 살고 한국 교회가 사는 길이다. 이번 합동에서 모바일 투표조차 하지 못하는 총대들을 보면서 고령화된 현실을 절감했다. 교단 총회든 개 교회 당회나 운영위원회에서는 여성과 청년, 부교역자들을 언권위원으로 논의의 자리에 초대해서 더욱 다양한 의견들을 듣고 반영하자. 그것이 교단 총회와 교회가 세상과 고립되지 않고 세상에 귀를 여는 통로가 될 것이다. 여성들도 못한다 못한다만 하지 말고, 소극적이며 겸손을 빙자한 무관심과 책임 떠넘기기를 지양하고, 공동체 된 교회를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섬겨야 할 것이다. 제직회나 공동의회 있을 때 식당 봉사해야 한다고 불참하지 말고 의사결정과정에 관심을 가지며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자. 현재 한국 교회는 모두가 합심하여 이 혼란한 세대 가운데 함께 지혜를 내서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제는 여성들도 주방이 아닌 중심으로 나와서 함께 고민하고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하자. 그래야 한국 교회가 산다. 교회개혁실천연대 활동보기 www.protest2002.org 여성안수추진공동행동 활동보기 페이스북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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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손현보위원장
한국교회가 하나되지 못한 죄에 대한 회개시간 연합예배 후 재단 설립해 기독교 인재양성 주력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가 오는 27일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다. 이번 연합예배는 차별금지법 저지와 한국교회의 신앙회복을 목표로 진행된다. 현장에서 100만 명의 성도가 모이고, 온라인으로 100만 명의 성도가 모이는 것이 목표이다. 이번 연합예배는 「건강한 가정, 거룩한 나라」를 표어로 삼고 있다. 또한 한국교회가 직면한 사회적 도전에 맞서기 위한 강력한 신앙적 연합의 기회로 삼고 있다. 이번 연합예배의 제안자이자 실행위원장인 손현보목사(세계로교회·사진)는 “지난 7월 18일 대법원에서 동성커플에게도 건강보험 피부양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이 판결은 사실상 동성애를 인정하는 판결이다. 미국이나 대만의 경우를 보면 이러한 판결 이후 2년 안에 법적으로 동성애법이 다 통과가 됐다”면서, “우리도 앞으로 2년 안에 이것이 정식으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동성커플에게 피부양권이 인정되는 것이 시행이 되고 나면 막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동성애단체들이 여세를 몰아서 이것을 시행하려고 한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에서 반려를 했다. 이는 시행세칙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행세칙이 마련되면 법을 되돌리기는 굉장히 어렵다”면서, “이제 목 앞에 칼이 다가온 것과 똑같기 때문에 이제 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가처분 신청을 해놓고 10월 27일에 모여서 우리 의지를 발표하면서 이것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번 연합예배에는 한국교회 주요교단이 참여를 결의했다. 각 교단의 결의에 앞서 손목사는 각 교단 총회를 돌면서 동참을 촉구했다. 손목사는 “나는 대외적인 활동을 잘 안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각 교단에서 적극적으로 시간을 마련해 줘서 연합예배의 동참을 촉구할 수 있었다”면서, “미룰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각 교단에서 협의를 해줘서 안건이 올라오지도 않았는데도 시간을 내서 결의를 해주셨다. 참 기적 같은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일에 예배드린다는 것에 대한 우려에 대해 “고신교단 같은 경우에도 교회가 남부지방에 많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올라오는 게 물리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이것은 종교개혁과 같은 것이다”면서, “예배가 드려지는 시간이 중요한 건 아니다. 어떤 교회는 빨리 예배를 드리고 올라올 수 있는 거고, 또 어떤 교회는 먼저 와서 주변교회에서 예배를 함께 드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합예배는 대사회적 책임도 강조되고 있다. 자립준비청년과 탈북민, 미혼모 돌봄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200억 규모의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현재 100억의 후원금이 모금된 상황이다. 손목사는 “차별금지법이 교회에게 절박한 일이지만 불신자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서구사회에서는 불신자 부모들이 데모를 많이 한다”면서, “한 예로 13살짜리 딸이 성전환 수술을 했는데, 부모가 이 일에 개입하지 못한다. 개입을 하면 처벌을 받는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 기독교가 먼저 깨달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 실제적으로는 불신 학부모들도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차별금지법의 위험성을 모르는 분들도 많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대사회적으로도 기금을 모아서 이러한 일을 도와주고, 탈북자라든지 미혼모라든지 마약 중독된 청소년들에게도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번 예배는 한국교회가 하나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회개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손목사는 “지금 이 모임 자체가 한국교회가 하나 되는 기회다. 이번 모임을 통해 한마음으로 모이면 한국교회가 하나 될 수 있다”면서, “우리가 하나되지 못하고 살아왔던 삶에 대해서 회개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을 회개하는 시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연합예배 이후 후속적인 조치에 대해서 손목사는 “첫째는 100만 명이 모이면 사회가 달라질 거고 잘못된 물결과 방향이 확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면서, “두 번째로 재단을 설립해서 장기적으로 인재들도 키우고, 대응을 해서 이런 기독교가 몰살당하는 일을 막고자 한다. 또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서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도록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각 지역에 성시화 등 연합단체들이 있다. 이런 단체들 중심으로 그 지역이 일어나서 예비모임을 하고, 그 다음에 다 참여해서 일어나야 되겠다. 이 정도로 모든 교단이 협력했는데 실패하게 되면 앞으로 시민단체 자체가 동력을 잃을 수 있다. 실패하게 되면 앞으로 어떤 모임을 믿을 수가 있겠는가?”면서,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해야 되고 모든 지역 작은 교회 큰 교회 가리지 않고 다 합류해서 이 세상을 바꿔야 된다”고 말했다./김남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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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NCCK 인권센터 이사장 역임한 김성복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 이사장을 역임했던 김성복목사(사진)는 1983년 인천에 개척해 36년간 목회했던 샘터교회에서 은퇴한 지 5년이 됐다. 현재 김목사는 의료용대마 합법화 운동본부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의료용 대마 공급을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한국교회 인권센터로 이름이 바뀌는 NCCK 인권센터의 지역지부 조직을 위한 밑그림도 그리고 있다 김목사는 “대마 오일은 뇌 질환과 희귀 난치질환에 효과적이다”면서, “합법 대마 유통의 길이 막혀 어려움을 겪는 국내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의료용 대마를 공급하기 위한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마약에 대한 부정적 견해들을 갖고 있어 이점이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지금 문제가 되는 마약들은 매우 독한 것들이다”면서, “대마는 몸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목사는 “NCCK 인권센터가 한국교회 인권센터로 명칭을 변경하기로 했다. 이번에 명칭을 변경하게 되면서 지역지부의 상설화가 필요함을 보았다. 지부마다 회원들을 가입시켜서 지부별 인권센터를 운영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 현재의 인권센터는 본부의 역할을 해야한다”면서, “지역NCC와 밀접하게 협력을 하면서 인권센터 각 시도 지부를 만드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이 일을 위한 밑그림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목사는 한국어와 산스크리트어의 유사성을 연구하는 일도 하고 있다. 김목사는 “산스크리트어 영어 옥스포드 사전(Sanskrit English Oxford Dictionary 1899)을 보면 우리나라 사투리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타밀어를 사용하는 인도의 타밀족을 보면 윷놀이 등 우리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이 분들이 어떻게 우리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지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목사는 NCCK 인권센터장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과거 국정원에서 댓글 조작을 했는데 NCC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진상규명을 했다. 목요기도회도 부활시켰다”면서, “하나님이 결국 들어내주셨다. 양심적으로 말한 사람이 있어서 그렇게 가능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목사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이사, 인천행동하는양심 고문 등으로 활동하며 민주사회와 평화통일운동을 위해 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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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지내십니까] 라이프오브더 칠드런 권호경이사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와 기독교방송 사장 등을 역임한 권호경목사는 현재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이사장으로 저개발국가의 빈곤아동을 돕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또 박형규목사와 이름없이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희생된 젊은이들을 위한 추모를 위한 사업에도 매진하고 있다.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은 전 세계 가난한 나라의 버림받은 어린이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는 일에 힘쓰고 있다. 해외아동과의 1대 1 결연으로 지속적으로 아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영양지원사업 △교육지원사업 △보건의료지원사업 △식수지원사업」 등에도 매진하고 있다. 이외에도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민과 새터민 등을 위한 사업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권목사는 “젊은 시절 서울로 올라왔을 때 수많은 판자촌을 보게 됐다. 그 판자촌을 보면서 빈민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인권선교 등에 전념하다보니 이 부분에 있어서는 멀어지게 됐다”면서, “그러다 기독교방송 사장 퇴임 후 권태일목사라는 젊은 목사가 자신이 섬기는 NGO인 「함께하는 사랑밭」에서 함께 활동하자는 부탁으로 함께하게 됐다. 그 단체는 제도상에 문제로 지원을 못받는 장애인이나 어르신을 돕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곳에서 다른 NGO를 설립하는 일 등 여러 일을 했다. 그리고 이곳을 나오면서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을 세우게 됐다”면서, “평생을 여러 곳에서 지원받으면서 살았다. 그래서 은퇴 후 나도 어려운 사람들을 직접 도우면서 살기 원했다. 2027년까지 이사장을 맡는데 이후에도 후원금 모금에 주력하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권목사는 “박형규목사기념사업회 이사장도 맡고 있었는데 이번에 한국기독교 민주화운동과 합치게 되면서 그 자리를 내려놓게 됐다”면서, “이름없이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죽은 학생들이 있다. 그동안 박형규목사를 추모하는 예배를 매년 드렸는데 이분들을 위한 예배도 함께 드리면서 이 분들을 위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권목사는 에큐메니컬운동의 현황에 대해 ”현재 에큐메니컬운동이 위기에 있다. 리벌럴한 교회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사람을 위하여 흐른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이다“면서, ”에큐메니컬운동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의 에큐메니컬운동의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아도 이 운동은 계속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권목사는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충무와 교회협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아시아기독교협의회 도시농촌선교위원회 간사.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 등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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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상시국회의 상임고문 활동하는 김상근목사
김상근목사(사진)는 1939년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났다. 이후 한신대학교 신학과,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7년부터 1982년까지는 수도교회 담임목사를 지냈고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무를 역임했다. 민주화 과정에 헌신했던 그의 공헌은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1999년 김대중대통령이 만들었던 제2의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실행위원, 기독교농민회 이사장, 한국기독학생총연맹 이사장 등을 지냈다. 또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 공동대표,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의장을 역임했고,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역임했다. 또 2018년부터 한국방송공사(KBS)의 이사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했고, 현재는 전국비상시국회의 상임고문으로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여전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김목사는 현 시국을 걱정하며 인권과 민주주의 원칙이 올바로 지켜지길 원하는 취지로 두 번째 ‘목회자 천인성명’ 활동을 전개했다. 또 그는 한국기독교협의회(NCCK)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컬 기독교 원로’활동을 통해, 한국의 교회들이 시대정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활동하는 교회들로 성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렇게 치열하고 분투적인 사역과 활동 속에서도 김목사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와 경건 생활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는 일기를 쓰는 습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사명을 매일 돌아본다. “일기를 쓰면 자기 성찰의 기도를 하게 된다. 하루의 삶과 일과를 돌아볼 때 하나님의 말씀과 사명이 어디에 있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그 말씀과 사명을 이해하고 반영하고 있는지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고 전했다. 또 지난 시간들 자신이 했던 설교의 원고를 열어보며 묵상하고 기억한다. 특별히 그는 “어려운 시절에 했던 설교들 속에는 그 고난 속에 숨겨졌던 깊은 영성과 인내의 믿음의 모습이 보인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믿음의 성장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수 있어서 좋다”고 전했다. 김목사는 최근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 작년 겪었던 아내의 소천에 관한 일들을 전했다. ”아내의 소천은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신앙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었고, 실존적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위로의 은혜는 정말 놀라웠다“며, ”그 이후 죽음 이후의 삶과 영생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생겼다“고 말했다. 끝으로 김목사는 한국교회에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전체주의적인 교회의 하나 되기는 기독교적인 하나됨이 아니다.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한 하나의 교회가 될 때 참된 교회가 될 수 있다. 또 “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이 무엇인지’ 또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시대의 문제와 필요를 반영하지 않은 교회, 즉 시대정신이 결핍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교회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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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굿타이딩스 이사장 김용덕 원로장로
굿타이딩스 이사장 김용덕원로장로(사진)는 남한과 북한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 한국청소년과 탈북청소년이 함께하는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탈북목회자들을 위한 지원사역에도 주력하고 있다. 김장로는 “지금은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어 현재는 북으로 가서 선교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면서, “중국당국이 북쪽하고 접촉하는 한국사람이 입국할 때 감시하면서 불편함을 주고 있기 때문에 중국방문도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의 조선족 동포 중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는 목사들이 있다. 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기도하고 협력하는 중이다”면서, “지금 북한의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그리고 처소교회들이 몹시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로 후원하고 있다. 기회가 될 때 이들을 위해서 인도적 지원도 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북한을 향한 직접적인 사역이 막힌 상황에서 김장로는 탈북민을 위한 사역에 힘쓰고 있다. 김장로는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동질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80년동안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살았기 때문에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초교파적으로 탈북청소년과 한국에 있는 청년들이 함께하는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진행했다”면서, “우리 단체들과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북민교회들이 있다. 이러한 교회들을 지원하는 사역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장로는 한국교회가 북한선교를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장로는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북한선교를 위해 두드릴 필요가 있다. 우리가 행동하고 순교의 각오로 사역하면 민족의 동질성이 회복되고 문이 열릴 것이다”면서, “이러한 사역의 필요성을 알리는 분들이 한국교회에 일어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한사역에 동참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북한선교 단체들과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할 것도 말했다. 지난해 김장로는 대담집 <땅끝에서 땅끝까지>, 화보집 <북녁 하늘에 십자가를 세우기까지>를 발간했다. 김장로는 “이 책이 나온 후 많은 분이 사역을 위해 후원해 주셨다. 우리 단체에 연락해 주시면 그 책을 공급하고 있다. 이 책이 많이 읽히고,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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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옥합]여성이여, 마이크를 들자
- 20대 대학생 때 한국기독학생회(IVF)에서 활동했다. 모태신앙이어서 유년 시절이 교회에서의 추억으로 가득했던 내가, 대학교 가서 한국기독학생회(IVF)에서 공동체 훈련을 받으면서 삶의 방향성이 정해졌다. 20대 초반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점점 고학년이 되고 리더가 되면서 졸업 후에는 고난받은 이들을 위해서 살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졸업 후 교회개혁실천연대 활동가가 되었다. ‘교회개혁실천연대(이하 개혁연대)’는 2002년에 창립되어, 교회의 비민주성, 재정/행정 전횡, 세습 등의 문제로 고통받는 교인들과 함께하는 단체이다. 주로 분쟁 교회 상담을 하고, 개 교회 /교계 현안을 대응하며, 한국 교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고, 왜곡된 신앙을 온전하게 바로잡는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 교회 내 치우친 권력을 바로잡고,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일도 중요한 활동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 내 남성 중심, 목회자 중심의 축을 주체적인 신앙을 기반으로 여성과 청년, 그리고 교인들로 축의 중심을 이동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개혁연대는 리더십도 공동대표를 다수로 세우는 공동 리더십이며, 직업군도 목사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분들이 함께 한다. 2002년 창립된 때에도 공동대표 3인 체제였으며, 여성 공동대표를 2011년부터 세워 현재 필자까지 여성 공동대표가 네 번째 세워졌다. 기독교 시민단체 중 성 평등한 의식을 가지고 가장 빠르게 세웠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필자가 18년 동안 활동가로 현장에서 활동하고 퇴사했지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가 2023년 공동대표로 선출됐다. 활동가 출신 공동대표가 세워진 것에 대해 당시 많은 관심을 받았고 인터뷰를 했다. 리더십의 세대교체가 필요한 상황에서 단체는 18년 현장의 경험을 소중하게 여겼고, 젊은 여성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오랜 기간 활동가 마인드로 있다가 리더의 자리에 있으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 활동가로 있을 때는 항상 뒤에서 준비하고 최상의 상태로 진행하기 위해 보이지 않게 일했다. 그게 내 기질과 잘 맞았고 늘 돕는 자의 마음으로 일했다. 그런데 리더는 그렇지 않았다. 일단 페이스북에 개혁연대 공동대표라고 소속을 쓰자마자, 일면식도 없는 남성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친구 신청을 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소속만 보고 신청한 건가 고개가 갸우뚱했다. 또한 날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다. “대표님”이라고 부르면 그렇게 어색했다. 대표니까 대표라고 부르는 걸 알면서도 어색했다. 개혁연대 사무국에서는 직위로 부르지 않고 별칭 “난나”로 불려서 편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부르지 말고 별칭으로 부르던지 “종미 님”이라고 불러달라고 몇 번 부탁했는데 되지도 않았고, 부탁하는 나도 지쳤다. 직위로 불리는 것은 요즘 흐름도 아니고, 권위주의의 상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걸 바꾸고 싶었다. 그런데 그건 그동안 책이나 강의를 통해 알았던 피상적인 것이었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상대방은 대표라고 부르면서 그것을 통해서 나를 높여주고 인정하는 것이며, 나를 위해서 그렇게 부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40대 젊은 여성이라고 무시하지 않으며, 대표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이었다. 필자가 간사였을 때 사무국장으로 함께 일했던 분들, 그리고 개혁연대 초기부터 20년 동안 리더로 있으면서 가르침과 많은 영감을 주셨고 이제는 70대가 되어 은퇴한 분들, 이들이 나를 대표라고 불렀을 때, 그 의미를 1년 정도 돼서야 깨달았다. 그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고, 그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굳이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동대표 2년 차인 요즘에는 “대표님~”이라고 불리는 그것의 이면에는 책임감이라는 더 중한 부담감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부분은 마이크를 잡는 것이다. 2023년 공동대표로 선출되고 바로 이틀 후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그리스도인 모임에서 용산 집무실 앞에서 현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했고, 거기서 기도를 맡게 되었다.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그날 녹사평 분향소에서 지킴이 활동을 하는데, 유가족분이 유튜브로 기도 잘 들었다고 고맙다고 하셨다. 이후 조금씩 마이크 앞에 서게 되면서, 이제 내가 어떤 행사나 방송에서 말하는 것이 듣는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았다. 회의에서나 방송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언론사에 글을 쓰는 일들이 종종 생기면서 어려웠다. 왜 이렇게 나에게 발언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 많이 생각했다. 이유는 자주 해보지 않아서였다. 한국 교회 내 여성이 70%를 넘는다고 한다. 여성들은 교회에서 주로 무엇을 하는가. 아침 일찍 교회에 도착해 식사를 준비하고, 주일학교를 섬기고, 찬양대를 한다. 마이크는 주로 누가 잡는가 생각해 보자. 목사님이 설교와 예배 인도로, 장로님이 기도를 하면서 마이크를 잡는다. 공동의회나 제직회 등 회의 시에도 주로 누가 발언하는가 생각해 보자. 개혁연대에서 실무자로 일할 때에도, 교회에서 일할 때에도 여성들에게 어떤 순서를 요청하거나, 발언하라고 하면 난 못한다고 손사래 치기 일쑤였다. 그래서 여성은 마이크가 익숙하지 않다. 재미난 것을 발견했는데-물론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남성 목회자/전문직 분들의 카카오톡(소셜미디어) 프로필을 보면 마이크 앞에서 말하고 있는 사진을 자주 본다. 마이크를 잡은 자신의 모습을 내세우는 경우가 있다. 마이크와 남성은 익숙하지만, 마이크와 여성은 그렇지 않다. 올해에도 9월 셋째 주에는 각 교단별로 총회가 진행됐다. 개혁연대는 2004년부터 각 교단 총회를 직접 가서 참관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는 “교회여! 경계선으로 나아오라!”는 주제로, 교단 총회가 거룩함도 잃고 시대적 감수성도 부족하면서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그 경계선을 깨고 세상으로 나아오라는 뜻을 담아 활동했다. 9월 12일 정책 제안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9월 23일부터 예장 합동/통합/기장 총회 현장 참관, 안건 관련 현장 기자회견/피켓시위, 일반 교인 대상으로 온라인 참관단 운영을 했다. 필자는 예장 통합과 예장 합동 총회를 현장 참관했다. 온라인 참관단에서 3개 교단을 동시에 모니터 하니까, 각 교단별로 차이를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예장 합동은 남자 총대만 있고(여성 총대 0명), 예장 통합은 여성 총대 43명(전체 총대 중 2.8%), 기장은 여성 총대 65명(전체 총대 중 10.6%) 이었다. 기독교라는 하나의 종교에서 어떻게 이렇게 극과 극의 모습이 보이는지 신기하다. 아직도 여성은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총회를 섬기는 보조자로만, 어떤 의견을 내지 못하는 소극적인 모습만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한국 사회는 공정성, 투명성, 민주적 수평 문화, 여성 참여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한국 교회는 비성경적이고 전근대적 성차별 문화로 여성과 젊은 세대 반감이 심각하여 교인 수가 감소하고 있다. 전체 교인 70% 이상의 여성들이 교회의 주요 사역을 감당하면서도, 중요한 의사결정과정에서 설자리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교단과 교회의 주요 정책들을 결정할 수 있는 길은 일부 교단의 경우에는 완전히 막혀 있다. 이러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5월부터 ‘여성안수추진공동행동(이하 여안추)’이 발족되었고, 열심히 활동한 결과 이번 예장 합동 총회에서 여성 사역자 강도권 인정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여안추는 여성 목사 안수만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장로 도입까지가 운동의 목표이다. 예장 합동, 예장 고신, 예장 합신이 여성 장로, 여성 목사를 도입하고, 이미 도입한 예장 통합, 기감, 기장 등은 실질적으로 의사결정과정에서 여성의 참여를 확대하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래야 한국 교회가 산다. 기존 남성들은 마이크를 내려놓고, 여성과 젊은 세대들에게 마이크를 돌리고 들으시라. 마이크는 곧 기득권을 뜻한다. 여성 총대가 있는 교단은 더욱 여성 총대 파송 의무와 할당제 비율을 높이며 발언권을 주고 각 주요 위원회에 여성을 배제하지 말고, 여성 총대가 없는 교단은 여성들을 일단 총회로 입장시키자. 그것이 교단이 살고 한국 교회가 사는 길이다. 이번 합동에서 모바일 투표조차 하지 못하는 총대들을 보면서 고령화된 현실을 절감했다. 교단 총회든 개 교회 당회나 운영위원회에서는 여성과 청년, 부교역자들을 언권위원으로 논의의 자리에 초대해서 더욱 다양한 의견들을 듣고 반영하자. 그것이 교단 총회와 교회가 세상과 고립되지 않고 세상에 귀를 여는 통로가 될 것이다. 여성들도 못한다 못한다만 하지 말고, 소극적이며 겸손을 빙자한 무관심과 책임 떠넘기기를 지양하고, 공동체 된 교회를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섬겨야 할 것이다. 제직회나 공동의회 있을 때 식당 봉사해야 한다고 불참하지 말고 의사결정과정에 관심을 가지며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자. 현재 한국 교회는 모두가 합심하여 이 혼란한 세대 가운데 함께 지혜를 내서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제는 여성들도 주방이 아닌 중심으로 나와서 함께 고민하고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하자. 그래야 한국 교회가 산다. 교회개혁실천연대 활동보기 www.protest2002.org 여성안수추진공동행동 활동보기 페이스북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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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옥합]여성이여, 마이크를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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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손현보위원장
- 한국교회가 하나되지 못한 죄에 대한 회개시간 연합예배 후 재단 설립해 기독교 인재양성 주력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가 오는 27일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다. 이번 연합예배는 차별금지법 저지와 한국교회의 신앙회복을 목표로 진행된다. 현장에서 100만 명의 성도가 모이고, 온라인으로 100만 명의 성도가 모이는 것이 목표이다. 이번 연합예배는 「건강한 가정, 거룩한 나라」를 표어로 삼고 있다. 또한 한국교회가 직면한 사회적 도전에 맞서기 위한 강력한 신앙적 연합의 기회로 삼고 있다. 이번 연합예배의 제안자이자 실행위원장인 손현보목사(세계로교회·사진)는 “지난 7월 18일 대법원에서 동성커플에게도 건강보험 피부양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이 판결은 사실상 동성애를 인정하는 판결이다. 미국이나 대만의 경우를 보면 이러한 판결 이후 2년 안에 법적으로 동성애법이 다 통과가 됐다”면서, “우리도 앞으로 2년 안에 이것이 정식으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동성커플에게 피부양권이 인정되는 것이 시행이 되고 나면 막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동성애단체들이 여세를 몰아서 이것을 시행하려고 한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에서 반려를 했다. 이는 시행세칙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행세칙이 마련되면 법을 되돌리기는 굉장히 어렵다”면서, “이제 목 앞에 칼이 다가온 것과 똑같기 때문에 이제 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가처분 신청을 해놓고 10월 27일에 모여서 우리 의지를 발표하면서 이것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번 연합예배에는 한국교회 주요교단이 참여를 결의했다. 각 교단의 결의에 앞서 손목사는 각 교단 총회를 돌면서 동참을 촉구했다. 손목사는 “나는 대외적인 활동을 잘 안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각 교단에서 적극적으로 시간을 마련해 줘서 연합예배의 동참을 촉구할 수 있었다”면서, “미룰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각 교단에서 협의를 해줘서 안건이 올라오지도 않았는데도 시간을 내서 결의를 해주셨다. 참 기적 같은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일에 예배드린다는 것에 대한 우려에 대해 “고신교단 같은 경우에도 교회가 남부지방에 많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올라오는 게 물리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이것은 종교개혁과 같은 것이다”면서, “예배가 드려지는 시간이 중요한 건 아니다. 어떤 교회는 빨리 예배를 드리고 올라올 수 있는 거고, 또 어떤 교회는 먼저 와서 주변교회에서 예배를 함께 드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합예배는 대사회적 책임도 강조되고 있다. 자립준비청년과 탈북민, 미혼모 돌봄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200억 규모의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현재 100억의 후원금이 모금된 상황이다. 손목사는 “차별금지법이 교회에게 절박한 일이지만 불신자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서구사회에서는 불신자 부모들이 데모를 많이 한다”면서, “한 예로 13살짜리 딸이 성전환 수술을 했는데, 부모가 이 일에 개입하지 못한다. 개입을 하면 처벌을 받는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 기독교가 먼저 깨달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 실제적으로는 불신 학부모들도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차별금지법의 위험성을 모르는 분들도 많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대사회적으로도 기금을 모아서 이러한 일을 도와주고, 탈북자라든지 미혼모라든지 마약 중독된 청소년들에게도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번 예배는 한국교회가 하나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회개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손목사는 “지금 이 모임 자체가 한국교회가 하나 되는 기회다. 이번 모임을 통해 한마음으로 모이면 한국교회가 하나 될 수 있다”면서, “우리가 하나되지 못하고 살아왔던 삶에 대해서 회개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을 회개하는 시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연합예배 이후 후속적인 조치에 대해서 손목사는 “첫째는 100만 명이 모이면 사회가 달라질 거고 잘못된 물결과 방향이 확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면서, “두 번째로 재단을 설립해서 장기적으로 인재들도 키우고, 대응을 해서 이런 기독교가 몰살당하는 일을 막고자 한다. 또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서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도록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각 지역에 성시화 등 연합단체들이 있다. 이런 단체들 중심으로 그 지역이 일어나서 예비모임을 하고, 그 다음에 다 참여해서 일어나야 되겠다. 이 정도로 모든 교단이 협력했는데 실패하게 되면 앞으로 시민단체 자체가 동력을 잃을 수 있다. 실패하게 되면 앞으로 어떤 모임을 믿을 수가 있겠는가?”면서,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해야 되고 모든 지역 작은 교회 큰 교회 가리지 않고 다 합류해서 이 세상을 바꿔야 된다”고 말했다./김남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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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손현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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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NCCK 인권센터 이사장 역임한 김성복목사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 이사장을 역임했던 김성복목사(사진)는 1983년 인천에 개척해 36년간 목회했던 샘터교회에서 은퇴한 지 5년이 됐다. 현재 김목사는 의료용대마 합법화 운동본부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의료용 대마 공급을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한국교회 인권센터로 이름이 바뀌는 NCCK 인권센터의 지역지부 조직을 위한 밑그림도 그리고 있다 김목사는 “대마 오일은 뇌 질환과 희귀 난치질환에 효과적이다”면서, “합법 대마 유통의 길이 막혀 어려움을 겪는 국내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의료용 대마를 공급하기 위한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마약에 대한 부정적 견해들을 갖고 있어 이점이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지금 문제가 되는 마약들은 매우 독한 것들이다”면서, “대마는 몸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목사는 “NCCK 인권센터가 한국교회 인권센터로 명칭을 변경하기로 했다. 이번에 명칭을 변경하게 되면서 지역지부의 상설화가 필요함을 보았다. 지부마다 회원들을 가입시켜서 지부별 인권센터를 운영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 현재의 인권센터는 본부의 역할을 해야한다”면서, “지역NCC와 밀접하게 협력을 하면서 인권센터 각 시도 지부를 만드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이 일을 위한 밑그림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목사는 한국어와 산스크리트어의 유사성을 연구하는 일도 하고 있다. 김목사는 “산스크리트어 영어 옥스포드 사전(Sanskrit English Oxford Dictionary 1899)을 보면 우리나라 사투리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타밀어를 사용하는 인도의 타밀족을 보면 윷놀이 등 우리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이 분들이 어떻게 우리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지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목사는 NCCK 인권센터장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과거 국정원에서 댓글 조작을 했는데 NCC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진상규명을 했다. 목요기도회도 부활시켰다”면서, “하나님이 결국 들어내주셨다. 양심적으로 말한 사람이 있어서 그렇게 가능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목사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이사, 인천행동하는양심 고문 등으로 활동하며 민주사회와 평화통일운동을 위해 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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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NCCK 인권센터 이사장 역임한 김성복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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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지내십니까] 라이프오브더 칠드런 권호경이사장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와 기독교방송 사장 등을 역임한 권호경목사는 현재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이사장으로 저개발국가의 빈곤아동을 돕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또 박형규목사와 이름없이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희생된 젊은이들을 위한 추모를 위한 사업에도 매진하고 있다.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은 전 세계 가난한 나라의 버림받은 어린이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는 일에 힘쓰고 있다. 해외아동과의 1대 1 결연으로 지속적으로 아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영양지원사업 △교육지원사업 △보건의료지원사업 △식수지원사업」 등에도 매진하고 있다. 이외에도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민과 새터민 등을 위한 사업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권목사는 “젊은 시절 서울로 올라왔을 때 수많은 판자촌을 보게 됐다. 그 판자촌을 보면서 빈민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인권선교 등에 전념하다보니 이 부분에 있어서는 멀어지게 됐다”면서, “그러다 기독교방송 사장 퇴임 후 권태일목사라는 젊은 목사가 자신이 섬기는 NGO인 「함께하는 사랑밭」에서 함께 활동하자는 부탁으로 함께하게 됐다. 그 단체는 제도상에 문제로 지원을 못받는 장애인이나 어르신을 돕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곳에서 다른 NGO를 설립하는 일 등 여러 일을 했다. 그리고 이곳을 나오면서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을 세우게 됐다”면서, “평생을 여러 곳에서 지원받으면서 살았다. 그래서 은퇴 후 나도 어려운 사람들을 직접 도우면서 살기 원했다. 2027년까지 이사장을 맡는데 이후에도 후원금 모금에 주력하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권목사는 “박형규목사기념사업회 이사장도 맡고 있었는데 이번에 한국기독교 민주화운동과 합치게 되면서 그 자리를 내려놓게 됐다”면서, “이름없이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죽은 학생들이 있다. 그동안 박형규목사를 추모하는 예배를 매년 드렸는데 이분들을 위한 예배도 함께 드리면서 이 분들을 위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권목사는 에큐메니컬운동의 현황에 대해 ”현재 에큐메니컬운동이 위기에 있다. 리벌럴한 교회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사람을 위하여 흐른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이다“면서, ”에큐메니컬운동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의 에큐메니컬운동의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아도 이 운동은 계속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권목사는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충무와 교회협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아시아기독교협의회 도시농촌선교위원회 간사.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 등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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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지내십니까] 라이프오브더 칠드런 권호경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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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상시국회의 상임고문 활동하는 김상근목사
- 김상근목사(사진)는 1939년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났다. 이후 한신대학교 신학과,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7년부터 1982년까지는 수도교회 담임목사를 지냈고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무를 역임했다. 민주화 과정에 헌신했던 그의 공헌은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1999년 김대중대통령이 만들었던 제2의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실행위원, 기독교농민회 이사장, 한국기독학생총연맹 이사장 등을 지냈다. 또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 공동대표,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의장을 역임했고,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역임했다. 또 2018년부터 한국방송공사(KBS)의 이사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했고, 현재는 전국비상시국회의 상임고문으로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여전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김목사는 현 시국을 걱정하며 인권과 민주주의 원칙이 올바로 지켜지길 원하는 취지로 두 번째 ‘목회자 천인성명’ 활동을 전개했다. 또 그는 한국기독교협의회(NCCK)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컬 기독교 원로’활동을 통해, 한국의 교회들이 시대정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활동하는 교회들로 성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렇게 치열하고 분투적인 사역과 활동 속에서도 김목사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와 경건 생활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는 일기를 쓰는 습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사명을 매일 돌아본다. “일기를 쓰면 자기 성찰의 기도를 하게 된다. 하루의 삶과 일과를 돌아볼 때 하나님의 말씀과 사명이 어디에 있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그 말씀과 사명을 이해하고 반영하고 있는지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고 전했다. 또 지난 시간들 자신이 했던 설교의 원고를 열어보며 묵상하고 기억한다. 특별히 그는 “어려운 시절에 했던 설교들 속에는 그 고난 속에 숨겨졌던 깊은 영성과 인내의 믿음의 모습이 보인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믿음의 성장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수 있어서 좋다”고 전했다. 김목사는 최근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 작년 겪었던 아내의 소천에 관한 일들을 전했다. ”아내의 소천은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신앙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었고, 실존적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위로의 은혜는 정말 놀라웠다“며, ”그 이후 죽음 이후의 삶과 영생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생겼다“고 말했다. 끝으로 김목사는 한국교회에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전체주의적인 교회의 하나 되기는 기독교적인 하나됨이 아니다.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한 하나의 교회가 될 때 참된 교회가 될 수 있다. 또 “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이 무엇인지’ 또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시대의 문제와 필요를 반영하지 않은 교회, 즉 시대정신이 결핍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교회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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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상시국회의 상임고문 활동하는 김상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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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굿타이딩스 이사장 김용덕 원로장로
- 굿타이딩스 이사장 김용덕원로장로(사진)는 남한과 북한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 한국청소년과 탈북청소년이 함께하는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탈북목회자들을 위한 지원사역에도 주력하고 있다. 김장로는 “지금은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어 현재는 북으로 가서 선교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면서, “중국당국이 북쪽하고 접촉하는 한국사람이 입국할 때 감시하면서 불편함을 주고 있기 때문에 중국방문도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의 조선족 동포 중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는 목사들이 있다. 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기도하고 협력하는 중이다”면서, “지금 북한의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그리고 처소교회들이 몹시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로 후원하고 있다. 기회가 될 때 이들을 위해서 인도적 지원도 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북한을 향한 직접적인 사역이 막힌 상황에서 김장로는 탈북민을 위한 사역에 힘쓰고 있다. 김장로는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동질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80년동안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살았기 때문에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초교파적으로 탈북청소년과 한국에 있는 청년들이 함께하는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진행했다”면서, “우리 단체들과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탈북민교회들이 있다. 이러한 교회들을 지원하는 사역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장로는 한국교회가 북한선교를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장로는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북한선교를 위해 두드릴 필요가 있다. 우리가 행동하고 순교의 각오로 사역하면 민족의 동질성이 회복되고 문이 열릴 것이다”면서, “이러한 사역의 필요성을 알리는 분들이 한국교회에 일어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한사역에 동참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북한선교 단체들과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할 것도 말했다. 지난해 김장로는 대담집 <땅끝에서 땅끝까지>, 화보집 <북녁 하늘에 십자가를 세우기까지>를 발간했다. 김장로는 “이 책이 나온 후 많은 분이 사역을 위해 후원해 주셨다. 우리 단체에 연락해 주시면 그 책을 공급하고 있다. 이 책이 많이 읽히고,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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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굿타이딩스 이사장 김용덕 원로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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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한국교회지도자센터 대표 박종순 목사
- 충신교회 원로이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을 역임한 박종순목사(사진)는 현재 한국교회지도자센터 대표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는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지도자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교회지도자센터는 12명의 전문위원이 참여하는 전문위원회와 교회의 담임목사들로 구성된 목회자 네트워크가 조직되어 있다. 위원회는 △목회자들을 돕는 목양터위원회 △다음세대를 돕는 다지터위원회 △일터와 교회의 관계를 좁히는 일터위원회 △목회자들이 말씀을 바로 읽고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말씀터위원회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장학터위원회로 이루어졌다. 박목사는 “충신교회를 거쳐간 목회자들이 300명 정도 된다. 그분들이 내가 평소 주장했던 바른신학 균형목회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모여서 시작한 운동이 출발점이었다”면서, “한국교회지도자센터는 지도자를 세우는 일로 한국교 회를 섬기고 있다. 특히 매해마다 그 시대가 원하는 이슈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고자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목사는 한중기독교교류협회에서도 대표를 맡고 있으나 현재 한중관계 악화로 인해 사역이 중단된 상황이다. 차후 한중관계가 개선이 되면 다시 사역할 예정이다. 박목사는 교회협 회장과 한기총 대표회장을 모두 지낸 몇 안 되는 목회자이다. 교회협 회장을 하면서는 북한을 돕는 사역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교회가 보내고 북한교회가 받는 것으로 해서 훗날 통일이 됐을 때 이야기거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한기총 대표회장 시절에는 사학법 투쟁이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사학법은 결국 통과됐지만 교회의 목소리를 사회에 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박목사는 충신교회에서의 사역에 대해서는 “충신교회는 내 젊음과 정열을 쏟은 곳으로 추억이 많다. 목회에 있어서는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물이 균형을 잡고 있으면 쏟아지지 않지만 치우치면 쏟아진다 그래서 영성과 지성, 감성과 이성 등에 있어서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성도들에게 강조했다”고 말했다. 박목사는 한국교회에 대해서 “하나가 되기는 어렵다. 한국교회에 있는 교단이 하나가 되기는 어렵다. 하나가 되는 것이 어렵다면 힘을 합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트럼펫 한 개가 소리를 내면 음악이지만 1만개 100만개 1000만 개가 울리면 지축이 움직인다”면서 “한국교회에 반만 힘을 합해도 못할 일이 없다. 사회를 변혁할 수가 있고 한국교회에 방패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의 힘을 과시할 수도 있고 역사를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다. 통일문제에 있어서는 하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목사는 "통일이 됐을 때 교회가 가장 방해꾼이 될 위험이 있다. 통일이 되면 교단마다 올라갈 것이다. 통일 후 북한이 춘추전국시대처럼 될 수 있다. 그래서 통일 전략만이라도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30년동안 섬겼던 한국세계선교협의회에서 그 일을 하고 있다"면서, "통일 후 북한교회가 크게되면 그때 각 교단들이 활동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전까지는 한국교회가 하나되서 활동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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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한국교회지도자센터 대표 박종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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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에도 한국교회 위해 계속 기도”
-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증경총회장단회는 지난달 24일, 공군회관에서 25회 총회를 갖고 박무용목사(황금교회 원로)를 회장으로 선출했다. 박목사는 현재 암 수술 후 건강이 온전치 못한 상태이지만, 주님이 맡겨준 사명으로 알고 수락했노라고 밝혔다. 박목사는 교회를 은퇴한 후 강원도 횡성 산골 마을에서 거주하고 있다. 5년 전에 은퇴를 하면서 70년간 살아왔던 대구광역시를 떠나 낯설은 곳으로 와서 살다 보니 외로움이 컸다. 하지만 원주중부교회(담임=김미열목사)에 출석하면서 예배와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있어 너무 행복하다는 후문이 있다. 이에 대해 박목사는 “김목사와 당회원들, 그리고 교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며, “총회세계선교회(GMS) 제1호 명예순회선교사로 원주중부교회 선교사 파송 받아 사명 감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세계 100여개국에 있는 선교사들을 힘닿는 데까지 섬기고 있다.”며, “은퇴 후 은혜로운 원주중부교회와 김미열목사를 만난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목사는 20대 중반에 마산결핵요양원에서 폐병으로 사경을 헤매다가 기적적 생환 후 목사가 됐다. 대구광역시 변두리 허허벌판에서 7평짜리 천막을 치고 교회를 개척해 40년동안 꾸준하게 목회했다. 이후 50평 땅을 매입해 20평 예배당 지으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간증했다. 결국 2000년도에 600평 대지 위에 연건평 1000평을 건축하는 역사를 이뤘다. 또한 10가정의 GMS 선교사들을 파송했다. 또 12년 전에 목회자 퇴직금 1억원을 가불해서 멕시코에 땅 100평을 구입해 연건평 300평, 3층 멕시코선교센터를 건립하기도 했다. 이러한 목회 성공으로 예장 합동측 100회 총회장에 당선됐다. 그는 GMS 이사장, 총회군선교회 회장, 한국찬송가공회 이사장, CBS 이사, CTS 당연직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총회장 시무 당시, 총회직원 구조조정, 총신대 위기극복, 총회 주관 GMS미주선교대회, 멕시코민족장로교회와 페루장로교회와 MOU 주선, 세계교회 교류 물꼬 튼 사역, 총회역사관 건립 밎 정성구박사 역사적 가치 서적과 유품 기증, 전남노회 영광에 위치한 염산교회를 한국교회 역사 사적지로 지정하고 총회 기금 1억여원을 지원, 총회역사위원회 및 전남노회와 지자체, 그리고 뜻있는 목사와 장로들이 뜻을 모아 옛 염산교회당을 복원토록 주선 등의 업적 남겼다. 이에 대해 그는 “장자는 권리도 있지만, 책임도 크다는 생각이 든다.”며, “한국교회에 대한 장자교단으로서 대표성을 기지고 현안 문제들 중 동성애, 이단사이비경계, 코로나19 이후 손상된 예배, 미래세대(주일학교)위기 극복, 교단들이 겪는 선거공정성 확립, 글로벌 시대에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으로세계교회들과의 교류, 열방 선교로 하나님나라 확장 하는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비전을 갖고 기도한다고 전했다. 그는 “나같이 은퇴 하고 힘이 없는 사람이라도 정치, 경제, 안보 위해 기도할 사명이 있다.”며, “한국교회가 전쟁과 지진, 기후재앙으로 병들어 가는 지구촌을 위해 일어나 기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40여년 전 암울한 이땅에 복음이 들어와서 현재 5만여개 교회가 세워졌고, 기독교병원, 학교, 사회복지 시설들이 세워져 오늘의 선진 대한민국이 됐다.”며, “초기 한국교회 평양대부흥 운동처럼 기도운동과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새롭게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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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에도 한국교회 위해 계속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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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지내십니까] 교육목회실천협 대표회장 정영택 목사
- 경주제일교회에서 은퇴한 정영택목사(사진)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증경총회장과 한국교회 순교자기념선교회 회장 등을 지낸 목회자이다. 현재교육목회실천협의회 대표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가는 데 힘쓰고 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에 위치한 작은교회들을 대상으로 성경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정목사가 대표회장으로 섬기는 교육목회실천협의회는 예장 통합측 산하기관으로 건강한 목회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공유하는 단체이다. 정목사는 “이곳에서 목회자들에게 목회에 대한 건전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면서, “그리고 목회자들과 함께 바른 목회를 위한 고민을 하며, 세미나와 책출판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도서산간지역의 작은교회에서 성경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으며, 밥퍼사역으로 알려진 다일공동체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새벽기도도 인도하고 있다. 정목사는 “미약하지만 기회가 허락되면 할 수 있는 대로 재능기부형식으로 목회학에 대한 강의, 실천신학에 대한 강의 그리고 성경강해와 교사훈련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목사는 총회장시절 교단산하에 교회성장운동지원본부 설립에 기여했다. 5년동안 활동한 이 본부는 △균형성장 △동반성장 △지속성장이라는 배경 아래서 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그 당시 정목사는 3가지 메시지도 제시했다. △복음의 재발견 △복음의 삶 △복음의 재확산이었다. 정목사는 “이것이 선교적인 삶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교희의 성장을 균형있게 하고 그것을 지속시키자는 운동이었다”고 말했다. 정목사는 자신의 사역을 회고하면서 “시대의 정황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복음적 가치로 사역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특정한 흐름에 타협하지 않고자 했다”면서, “한국교회는 치우진 부분이 있다. 균형이 잡힌 통합적인 목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비전이라는 것은 보는 것이다. 어떻게 보아야하는가? 첫째로 숨은 것을 보아야 한다. 숨은 것은 역사를 말한다. 역사를 제대로 보아야 한다. 둘째로 오늘을 통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봐야 한다”면서, “역사와 오늘의 성찰 그리고 미래를 바르게 보는 것에서 진짜 비전이 있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그런 관점을 가지고 보는 것이 한국교회에 필요하다. 인간의 성공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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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지내십니까] 교육목회실천협 대표회장 정영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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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사역에 앞장서는 뉴코리아교회
- 탈북성도와 한국성도 90%와 10%의 중국인출신 성도들이 출석 뉴코리아교회(담임=정형신목사·사진)는 지난 2011년 창립되어 우리나라에 정착한 탈북민들의 신앙과 삶을 세우고, 북한사람과 남한사람이 함께 예배하는 교회다. 이 교회는 50%의 탈북민성도와 40%의 한국성도 10%의 중국출신 성도로 이루어진 교회이다. 민족뿐 아니라 연령대도 다양하다. 그래서 이 교회 담임인 정형신목사는 새로운 성도들에게 수저세트를 선물한다. 다양한 환경에서 왔지만 주님 안에서 하나의 가족이라는 뜻에서이다. 정목사는 “우리교회처럼 여러 성도들이 있는 교회도 있고, 북한성도만 모인 교회도 있다. 긍정적인 것은 북한사람만 모인 교회도 남한성도들이 모이고 있다는 것이다 ”면서, “이렇게 섞여 나가면서 하나가 되는 것이 통일 후 하나의 표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선교의 십일조를 감당하기 위해 △국내 탈북민 3만 명 중 3000명 섬기기 △전국 70여 탈북민교회 격려 △한국교회 7만개교회 중 7,000교회에 북한선교사역 확산이란 비전을 품고 사역에 나가고 있다. 정목사는 “우리 교회가 있는 강서구 지역에 탈북민 가정을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했다. 한 가정씩 찾아가면서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는 방문사역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교회는 탈북민들을 방문하면서 식료품이나 제철 과일 등도 섬기고 있다. 그리고 지역 내 학원과 연계해서 탈북민 학생이 한 과목을 등록하면 한 과목을 더 들을 수 있도록 등록비도 지원하고 있다. 그들을 방문할 때는 교회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기에 이음세움 나눔터라는 엔지오 단체로서 방문한다. 이 엔지오는 탈북민의 정착지원에도 힘쓰고 있다. 탈북민들이 이웃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이웃들을 초청해 함께 식사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다. 탈북민교회를 격려하는 것은 목회자들의 사례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일 년에 한 달이지만 그 한 달이라도 제대로 된 사례비를 받을 수 있도록 여러 교회들과 연합해서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사역은 불씨선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담임목회자의 사례비를 섬기는 일 외에도 교회 냉난방비 지원 그리고 탈북민이 북한 내 가족과 연락할 때의 비용도 지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목사는 “많은 교회가 북한문이 열리면 북한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다. 근데 탈북민교회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그 분들이 북한이라는 땅을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고 생각한다”면서, “북한 땅을 보면 나아진 것이 없어 보여서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탈북민들을 보면 북한선교에 열매가 있다. 3만 탈북민 중 1만명이 기독교인이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힘이 난다”고 말했다. 정목사는 탈북민사역 목회자들의 모임인 북한기독교총연합의 회장으로도 활동하면서 탈북민과 북한에 회복을 위한 사역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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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사역에 앞장서는 뉴코리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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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백석대 실천신대원 부원장 이경욱목사
-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총회 직전 사무총장인 이경욱목사는 현재 백석대 실천신학대학원에서 목회자와 평신도에게 헌법행정학을 가르치고, 천안 백석대 학부에서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용산에서 202경비단 ‘경복궁교회’의 담임목사로 지내며 경찰선교에 힘쓰고 있다. 이목사는 특유의 꼼꼼한 행정력으로 9년간 교단 사무총장으로 봉직하며 당시 3천여교회에서 7천여교회로 연합사역을 이뤄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총무, 한국교회연합 총무협의회장, 한국교회교단장협의회 총무, 한국교회총연합 총무 등 연합기관 및 단체에 실무를 담당했다. 이목사는 여전히 교단에 합류하길 원하는 자들을 위한 일을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고 있다. 또한 이목사는 백석대가 무인가 학교일 때부터 학부를 거쳐, 교단 총회에서 사무총장을 9년간 지냈으며, 지금은 백석대 교수이다. 이처럼 교단 및 학교와 함께 커왔던 사람으로서 교단과 학교를 향한 애정이 남다르다. 이목사는 지난 교단사역 중 기억에 남는 일로 가장 먼저 교단연합사역을 꼽았다. 또한 총회회관 137평을 매입한 데서 시작해 현재 총회회관인 1500평으로 확장된 것, 그리고 2010년 여목사 안수를 허용한 것, 교단회기를 백석회기로 새로이 정한 것, 그리고 합동정통이었던 교단명을 ‘백석’으로 정한 것 등을 언급했다. 이목사는 “교단연합을 이루는 사역에 한 도구로 쓰임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다”며, “주어진 일에 매사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만약 내 욕심에 의한 것이었다면, 진즉에 그르쳤을 것이다”고 전했다. 이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경복궁교회는 202경비단 경찰선교회를 중심으로 약 50명의 단원이 참여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되며 경비단이 따라오게 됐고, 그동안 그곳에서 마땅한 예배 처소가 없어 광야생활같은 예배를 드리다가 최근 경비단 건물 3층에 자리를 잡아 교회이전 감사예배를 드렸다. 경찰들의 간증이 넘치는 이 교회는 이들의 안식처이자, 값없이 사랑을 베풀며 하나님을 드러내는 교회로 자리하고 있다. 이목사는 “통상 교회들이 군선교에 갖는 관심에 비해 경찰선교는 관심이 적다”고 말했다. 이에 비전을 보고, 이목사는 교단 총무로 있을 때 보통 ‘군경’으로 묶여있던 선교부를 교경선교부와 군선교로 나누어 놓았다. 이목사는 “전국 270명 경찰서장과 13만 경찰들을 향한 비전과 꿈이 있다”며, “이들을 섬기며 베풀고 복음을 전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목사는 교회의 연합을 가로막는 것은 결국 목사의 개인적인 자리 욕심, 명예욕 때문임을 지적했다. 이목사는 “장로교단이 300여개이다. 이렇게 나뉠 이유가 없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나는 여전히 연합을 위한 일이라면 두 팔 걷어부치고 나설 것이다”며, “백석대 실천신대원은 좋은 강사들의 강의를 통해 목회자들이 영적 지도자가 되도록 양성하는 2년간의 양질의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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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백석대 실천신대원 부원장 이경욱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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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울사대부고 27회 신우회
- ◇서울사대부고 27회 신우회는 매월 정기모임을 갖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왼쪽부터 허문영,김진혁,최성민,박승철,강현중) 다양한 국가로 파송된 선교사와 선교단체 리더 등 배출 고등학교 학창시절 기독학생회 출신의 인연으로 결성된 서울대학교 부설 고등학교 27회 신우회(회장=최성민집사) 회원들은 매월 1회 예배를 드리며, 은퇴의 나이에도 여전히 해외선교에 대한 열정과 비전을 품고 있다. 이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은 회원이 20여명에 불과하지만 국내외에서 사역하는 여러 선교사와 지도자를 배출했다는 사실이다. 이 모임을 결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강현중선교사(인도네시아)를 비롯해, 정규진선교사(일본), 박승철선교사(중국), 강석대선교사(필리핀), 이경원장로(인도네시아), 허문영대표(평화한국), 김진혁감사(직장선교회), 김추인목사(열매나눔재단 사무총장), 최성민집사(WEC선교회 한국본부 이사) 등이다. 인도네시아 반뗀 주에서 선교사로 사역 중인 강현중선교사는 “신우회 모임을 통해 지속적인 신앙적 교제를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고 기도함은 물론, 선교사역에 헌신 중인 친구들을 후원하고 선교에 동참하는 귀한 모임이다”고 소개했다. 강선교사는 서울노회(합동) 형제선교회와 예수제자선교회의 파송으로 자카르타 인근 반뗀 주와 발리에서 ‘인도네시아 어린이전도협회’를 포함해, 현지 목회자들과 다문화가정교회 등을 섬기고 있다. 정규진선교사는 미국 남침례교회 선교단체인 IMB 소속 선교사이다. 남편 박규성목사와 함께 중국에서 8년 동안 복음을 전하며 중국 청년들을 양육했다. 현재는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에서 선교하고 있다. 6년 전에 이와누마 채플을 개척해 10여명의 일본인과 매주 예배를 드리며 야외전도도 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등에서 교회 선교팀이 방문해 주민들에게 한국문화를 소개하며 전도하는 사역도 하고 있다. 또한 박승철장로(소망약국 대표)는 5년 동안 중국 단동병원에서 의료선교사로 봉사했으며, 현재는 캄보디아 에이즈 환자치료를 위한 ‘오션블루미션센터’대표도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강석대장로(더블유의원 원장)는 감리교단에서 평신도선교사 훈련을 받고 코로나 이전에 필리핀 마닐라 근교 리잘 주에서 의료선교사로 3년 동안 사역했다. 지금은 국내에 체류하며 단기의료선교를 계속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선교한 이경원장로(이경원정형외과 원장)는 많은 선교사가 건강관리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올 때 무료로 검진 및 치료를 해주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년 인도네시아 숨바에서 의료선교를 했다. 한편 허문영장로(평화한국 대표) 역시 이 신우회 출석멤버로, 한반도의 복음통일화에 주력하고 있다. 김진혁권사(한국취업협회 대표)는 한국직장선교연합회 선교사로 직장 복음화에 힘쓰고 있다. 김추인목사(열매나눔재단 사무총장)는 9년째 열매나눔재단을 섬긴다. 이 재단은 저소득 취약계층과 북한이탈주민의 자립, 자활을 돕기 위해 직접 5개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고, 715개의 개인 창업가게와 556개의 사회적 경제조직을 지원하고 있다. 강현중선교사는 “7년 전에는 신우회 회원들이 직접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생생한 선교 활동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회가 지속되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이 신우회는 서로의 활동을 공유하며 지체들을 격려한다(왼쪽부터 강현중, 최성민, 안영운, 김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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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울사대부고 27회 신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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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기독교NGO 평화한국 허문영대표
- ◇평화한국 허문영대표는 그리스도인이 먼저 앞장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회개함으로 사회통합을 이루며 통일의 길로 나아갈 것을 제안했다. 송환위한 기도운동과 정부협력, 민간 공공외교에 앞장 “남북간 용서를 기반으로 한 사회문화적 통합이 우선적” 기독교 NGO ‘평화한국’(대표=허문영박사)은 2017년부터 북한 억류선교사 3인의 송환을 위해 기도운동과 정부협력 및 민간공공외교에 주력하며, 한반도의 복음통일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 북한에는 한국 국적의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가 10년 가량 억류돼 있다. 이들은 오랜기간 어려운 북한주민을 돕기 위한 사역을 하다가 체포되었고, 이들 중 두 사람은 생사 여부도 확실치 않은 상태이다. 이들 외에도 북한에는 다수의 한국인 억류자가 존재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 10년 가량 억류된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 (출처 평화한국 연간 소식지). 이 단체 대표인 허문영박사(할렐루야교회 장로)는 통일부 산하 통일연구원에서 오랫동안 통일정책연구실장, 북한연구센터소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맡으며, 복음적 통일을 이루기 위한 길을 준비하고 전략을 제시해 왔다. 허대표는 북한 억류선교사 송환을 위해 기도하며, 이러한 노력들이 북한의 복음화와 민족 화해의 물꼬를 트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소망한다. 이 단체는 2019년에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대통령 특보에게 북한 억류선교사들에 대해 알렸었다. 허대표는 “2018년에 폼페이오 국무부 전 장관에 의해 북한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 세 분은 송환됐지만, 아직 대한민국 국적의 선교사들이 북한에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미국은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면서, “이후에 미 국무성과 미국 기독교측과 협력하며 이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허대표는 “우리는 지난해 한미수교 140주년을 맞아, 예장 통합·합동·백석, 순복음, 침례, 감리, 성결 등 7대 교단장들과 함께 지난해 미 국무성을 방문했다. 그리고 미 국무부는 통일연구원의 「북한 인권 백서」를 토대로 인권보고서를 발표했다”면서, “이어서 지난해 10월에는 한·미·일 3국 정상의 「프놈펜 공동성명」에 북한 내 한국인 억류자와 납북자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통일부와의 긴밀한 협력 외에도 다양한 방면으로 이 프로젝트가 진행 중에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허대표는 “이러한 프로젝트는 북한을 특정화하고 비난하기 위한 맥락으로 진행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며, “우리는 북한이 복음화되길 원하고 북한사람들이 복음 안에서 일어나, 현재 세계적인 제재 뿐 아니라 국내의 대북제재로 인해 고립되어 있는 북한이 억류선교사 석방을 통해 자신 역시 고립된 세계 안에서 나올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납북자, 국군 포로 등 풀어야 할 많은 사안들이 있지만 한번에 모든 문제를 모두 다 풀 수 없다고 허대표는 말한다. 허대표는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주신, 이 억류선교사 문제만 집중해서 지금까지 7년째 기도를 해 왔다”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이분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 교회가 사분오열되어 있기 때문이다”고 토로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에서 동서베를린 시민들이 밀집한 모습.(출처 Sue Ream) 독일은 1990년 통일되기 27년 전부터 3당(사회민주당, 자유민주당, 기독교민주연합당)이 합의해 비밀리에 진행됐던 프로젝트가 있다. 일명 ‘프라이카우프’(freikauf) 운동이다. ‘자유(Freiheit)’를 ‘구입(Kauf)’한다는 의미로, 정치범을 석방하고 그 가족의 재결합을 이뤄주는 운동이었다. 이를 위해 서독은 경제적 대가를 지급하고 동독 내 정치범과 교인들을 서독으로 송환했다. 이 운동은 서독 교회의 주도로 시작되어 27년간 약 3만 4천명의 포로들이 서독으로 돌아왔다. 3당은 ‘민족 문제’만큼은 정쟁으로 삼지 않기로 합의했고, 어느 당이 집권하든지 이 운동을 발설하거나 중단하지 않았다. 이러한 신뢰와 협력의 역사가 우리나라에도 일어나길 허대표는 소망한다. 또한 허대표는 남북 ‘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통일에 앞서 ‘통합’이 선제조건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허대표는 “통일로 가는 7가지 단계가 있다. ‘만남-이해-용서·회개-화해·상생-사회문화통합-경제통합-정치통합’이다”면서, “독일이 통일된지 30년이 됐다. 통일 당시에 30년 후면 동서독 주민이 하나가 될 거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독일은 정치, 경제의 통합은 이뤄졌으나 사회통합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는, 통일 후에 통합을 이루기란 쉽지 않다는 뜻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허대표는 성경에 통일과 관련된 모델을 이야기했다. 허대표는 “사울 왕이 죽고 난 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다윗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이것이 통합을 먼저 앞세운 자세이다. 이처럼 온전한 통일이 되려면 통합 통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사회, 문화, 경제의 통합이 있고, 정치 통일은 가장 나중의 일이라는 것이다. 허대표는 “통합을 하려면 그 전에 ‘평화’가 있어야 한다. ‘평화’가 있으려면 ‘화해’하고 ‘상생’해야 한다. 그럼 화해와 상생을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바로, 서로를 용서해야 한다. 즉, 화해를 위해선 용서와 회개가 필요하다. 그래서 용서와 화해를 위해서 ‘만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남이 있으면 서로에 대한 ‘앎’이 생긴다”고 말했다. 일례로 허대표는 “6·25전쟁으로 우리는 206만명이 죽거나 다쳤고 북한은 300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 근데 우리는 2000만명 중에 200만명이 죽거나 다쳐서 국민 중 10분의 1이 아픔을 겪은 것이고, 당시 북한은 900만명 중 3분의 1이 아픔을 겪었다”면서, “통계 숫자로만 보면 3배나 더 심각했던 것이다. 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허대표는 우리 사회가 언어를 순화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상대를 특정단어로 얕잡아 부르거나 낮춰부르는 표현은 성숙치 못하다”면서, “상대가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빨갱이’로 몰거나 ‘꼴통’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평화한국은 2007년 기독교정신을 기반으로 21세기 한반도 평화의 초석을 놓을 ‘평화세대’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한반도의 복음통일을 위한 기도운동을 비롯한 학술연구 및 정책제시, 인재 양성 및 교육, 북한주민과 북한억류선교사 가족 등 국내외 소외계층 지원·협력 등의 일을 진행하고 있다. 매해 6월이면 한국교회와 해외교회가 연합하여 북한억류선교사 석방을 위해 기도하는 ‘세이레평화기도회’를 연다. ◇북한억류선교사 석방을 위해 기도하는 세이레평화기도회가 매해 열린다(출처 평화한국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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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기독교NGO 평화한국 허문영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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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 ROTC기독장교연 회장 한규성장로
- ◇한규성장로는 ‘일터 선교사’로서 전도하고, 군선교와 교정선교 등에 헌신해 왔다. 전 ROTC기독장교연합회 회장인 한규성장로(양평 국수교회)는 직장·군대·교도소 등에 복음전하는 선교적인 삶을 실천해 오고 있다. 20여년 몸담은 직장(삼성생명)에서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청년 전도의 ‘마지막 보루’라 불리는 군선교, 복음이 절실한 수용자의 교정선교에 20여년 헌신해 왔다. 한장로는 “어딜가나 어느 단체의 리더가 기독교인이 되면, 그 공동체에는 자연스럽게 복음이 흘러 들어간다. 리더의 모습을 보고 팔로워들은 직간접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면서, “몇 년 전에 ROTC 중앙회 회장과 차기 회장을 전도했었다”고 고백했다. 한때 한장로는 소위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인의 권유로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서 진행하는 직장인선교모임(BBB)에 참여했는데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사영리 전도훈련을 받고, 순장을 맡으며 순원을 돌보다보니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게 됐다. 한 장로는 “하나님을 만나면 우선순위가 분명해진다. 모든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순위에 놓이게 된다”면서, “말씀과 기도, 전도와 양육, 이 네가지의 균형잡힌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고 간증했다. 점차 다음세대의 수가 줄고 청년 복음화율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한장로는 “교회가 소멸될 위기에 놓여있다”며, “소대장의 70~80%가 ROTC 출신인데, 이에 ROTC기독장로연합회가 가질 막중한 사명과 책임이 있다”며, “연합회를 통해 대학교 별 ROTC 신우회를 조직하고 후보생들을 관리한다. 그리고 임관 전 종교활동시간을 통해 최대한 많은 청년들에게 진중세례를 주려 하는 등 많은 청년기독장병들을 길러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장로는 캄보디아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고 있다. 한장로는 “미얀마, 태국 등 많은 동남아 국가들은 한국이 거쳤던 민주화 과정의 전철을 밟고 있다”면서, “그러나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들은 불교나 이슬람교를 믿는다. 우리나라가 전쟁 이후 최빈국에서 70년 만에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많은 국민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축복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한장로는 “같은 맥락으로 캄보디아는 동남아 중에서 기독교에 대한 제재가 없는 편이다. 이곳에 학교를 지어주고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꾸준히 한다면, 분명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한국전쟁을 겪었듯이, ‘킬링필드’의 아픔이 있는 이 나라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의 공동대표인 한 장로는 ‘다부동 전투’에서 다윗과 같은 믿음으로 나아간 백선엽장군의 믿음과 용기를 조명하길 원했다. 한장로는 “‘다부동 전투’에서 우리 병력은 7천명 가량됐고, 북한군은 2만 4천명쯤 됐다. 우리는 수적으로 열세할 뿐 아니라, 북한군은 계속 이기며 내려왔기에 사기가 충천돼 있었다. 이 상황에서 백선엽장군은 서원기도를 했다. ‘하나님, 이 전쟁에서 꼭 이기게 도와주세요. 그러면 하나님을 더 열심히 섬기고 믿겠습니다’고 기도한 것이다. 그리고 병사들 앞에 나서서 믿음으로 전진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는 오는 19일 부산 동래중앙교회(담임=정성훈목사)에서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기원하며 백선엽장군 기념음악회 「하늘의 별이 되어」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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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 ROTC기독장교연 회장 한규성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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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한신대 명예교수 김경재목사
-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지낸 한신대 명예교수 김경재목사(83)는 1970,80년대 군사독재에 저항했던 한국 근현대사의 역동기를 거치며 활동한 신학자이다. 그는 건강을 돌보는 중에도, 신학 및 인물 연구와 논문기고 등 교회개혁과 갱신을 위한 학술적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김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세운 장공 김재준선생과 비폭력평화운동을 펼친 신천 함석헌선생의 애제자로 알려져 있다. 장공의 제자였던 강원용, 문익환, 문동환, 서남동, 안병무 등의 민중신학자들 역시 김목사와 동시대를 지낸 재야인사들이다. 김목사는 스승의 사후에 안병무선생와 함께 김재준 전집 18권을 편집했다. 그리고 장공기념사업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김목사는 장공이 주장했던 ‘생활신앙’을 중시한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의 ‘생활신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목사는 “‘믿는 것처럼 살라’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의 신앙은 ‘교회’를 위한 것이기 보다는 ‘세상’을 위한 것이다. 그런 삶으로 전환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목사는 대형화되고 조직화되어 가는 일부 교회가 ‘껍데기’에 가리워 본질을 잃을 것을 우려했다. 김목사는 “경제 건설도 좋지만 인간다운 사회를 함께 만들어 내기 위해 몸부린 친 당시 수많은 대학생, 언론인, 지식인, 종교인의 희생으로 지금의 민주주의를 이뤄냈다”며, “한국교회는 그때부터 30,40년간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뤘다. 교회 성장주의가 지배했었다. 내가 청년이었을 시절과 지금 청년의 삶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시대이다. 그렇다고 더 나은 삶인가? 인간다운 삶이란 측면에서 인간미, 심성, 기독교적 가치관 및 인생관의 질은 현격히 떨어졌다. 인간성은 상실하고, 신앙은 껍데기만 남은 것이다. 인간은 껍데기를 좋아하게 돼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좇다보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고 경계했다. 그러면서 김목사는 한국교회가 사회와 역사 속에 영향을 줄 수 있기를 희망했다. 김목사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역시 교회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점이 없기에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며, “교회는 영적 공동체이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영적인 지성소를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종교 왕국’에 갇혀버리면 세상 한쪽 구석에서 사회 모순으로 인해 고통받고 몸부림치고 신음하는 사람은 눈에 들어오기 힘들어진다”고 덧붙였다. 김목사가 바라는 점은 한국교회 전체가 참여하여 주기적으로 ‘대한민국 전국교회 통계연감’을 연구하여 발표하였으면 한다는 것이다. 김목사는 “구체적인 지역별 교회수, 교인수, 기도원의 수, 헌금현황 등을 토대로 선교방향 및 전략 등을 짜야 한다. 이러한 통계가 있다면 그에 맞게 교회뿐 아니라 정부와 기관 등에서 참고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끝으로 김목사는 “냉전의 유산물인 이념이 사회와 국민을 갈라놓고 있다”며, “한국교회가 이념에 치우치기 보다는 문익환목사가 강조했던 것처럼 ‘화해자’로 거듭나고 평화의 신앙으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목사는 1940년생으로 한신대 졸업 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과 고려대 대학원에서 현대신학과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미국 더뷰크대학교 신학대학원과 클레어몬트대학원 종교학과를 수학하고, 네덜란드 유트레히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신대에서 문화신학과 종교신학을 가르치고, 신학대학원장과 학술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그리스도인의 영성훈련>, <틸리히 신학 되새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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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한신대 명예교수 김경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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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전 회장 이성희목사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과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 등을 역임한 연동교회 이성희 원로목사(사진)는 한국교회 연합운동에 앞장선 대표적인 목회자이다. 또한 미래목회에 관한 책들을 저술하는 등 목회와 미래학을 접목시킨 목회자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경목사역과 북한사역 등에 전념했다. 이목사는 현재 한경직목사 기념사업을 하는 추양재단 이사장 등으로 사역하고 있다. 또한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는 등 말씀사역에도 나서고 있다. 다양한 사역을 한 이목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역은 연동교회에서 사역한 일이었다. 이목사는 “우리 교회의 전통을 잘 이어받아서 교단이 정한 정년까지 사역을 잘 마친 것이 기억에 난다. 특히 내가 목회하던 시기가 새천년을 맞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 변화를 하나님의 은혜로 잘 통과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서는 연합운동에 주력했던 것이라 밝혔다. 이목사는 “연동교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 교단과 한국교회, 더 나아가서는 세계교회라는 공교회도 중요하다”면서, “교단과 교파를 뛰어넘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그렇다보니 교회일치와 연합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교회협이나 한교총 같은 연합기관을 섬기면서 한국교회가 하나되는 일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이목사는 미래목회라는 분야에 매진한 목회자이기도 하다. 이목사는 “연동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후 교회 100주년을 준비하게 됐다. 보통 100주년을 기념하면 옛날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젊었던 내가 그 일을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100주년 이후에 우리교회가 어떤 교회가 될 것인가 준비하게 됐다. 그 시기에 탈종교화 현상이 일어난다나 교회가 망한다는 말들이 들려왔다. 망하더라도 모르고 망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래학을 공부하고 책도 쓰게됐다”고 말했다. 이목사는 은퇴 후 여러 단체들에서 이사장이나 이사 등으로 섬기는 일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단체로 한경직목사를 기념하는 추양재단과 김마리아 기념사업회 등에서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다. 또한 연세대학교는 이사로 섬기고 있다. 각 기관들을 섬기는 일 외에도 부흥회를 인도하는 등 설교를 요청하는 교회가 있을 시 말씀을 전하고 있다. 한국교회에 대해서 이목사는 “교회가 복음에 바로서야 한다. 교회가 비복음적인 사회에 영향을 받고 있는 거 같다. 특히 차별금지법 등 기독교에 반대되는 법안들은 교회가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면서, “사회의 변화 특히 생태적인 변화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 여름도 무더위를 겪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더 크게는 세계교회 지도자들이 지구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환경문제를 넘어서 신학적인 문제이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교회가 그동안 많은 성장을 했다. 그런데 위만 보면서 성장을 하느라 옆을 보지 못했다. 이 부분 때문에 우리가 지금 비판을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사회인이 교인이 되게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를 잘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성장 신드롬에서 벗어나서 사회를 잘 섬겨야 앞으로 교회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가 사회적인 정책을 잘 세워서 코로나 때문에 위축된 것을 다시 회복하고 성장하고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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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전 회장 이성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