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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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터스목사 기념사업회 회장 박준서박사
     연세대학교 부총장과 경인여자대학교 총장 역임한 박준서박사(사진)는 은퇴 후 알렉산더 피터스 기념사업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피터스목사는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자로 1898년 시편의 일부를 우리말로 번역해 <시편촬요>를 출간했으며, 한글성경 개역작업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박박사는 이러한 피터스목사의 업적을 알리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박박사는 피터스목사가 남긴 설교 육필원고 220편을 책으로 만드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번역은 장신대학교 변창욱교수가 맡았으며, 박박사와 장신대 김중은교수가 편집과 감수에 참여하고 있다. 책은 기독교서회를 통해 출판될 예정이다.    박박사는 “이 자료는 교회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 한국에 많은 선교사가 와서 일했지만 200편 이상의 설교 육필원고를 남긴 것은 피터스목사님 뿐이다. 책으로 출판이 되면 역사적 자료로서 큰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면서, “한국교회는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해주면서 시작됐다. 그들이 어떤 형태로 복음을 전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 될 것이다”고 했다.    피터스목사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히브리어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에 능통했다.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인 <시편촬요>도 한국어를 배운지 2년만에 번역한 것이다. 피터스목사는 한국어로 찬송가 작사도 했다. 찬송가 75장 <주여 우리 무리를>과 찬송가 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가 피터스목사가 작사한 곡이다.    박박사는 “한국교회는 피터스목사님이 번역해주신 성경을 읽고 가르치며 배우며 성장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피터스목사님의 이름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미국에 있는 그의 묘소도 작은 묘석조차 없이 잡초로 뒤덮인 채 방치되어 있었다”면서,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이다. 피터스목사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의 헌신과 공헌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피터스목사 기념사업은 한국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고 말했다.    박박사는 피터스목사 기념사업회의 활동으로 피터스목사의 설교문 정리외에도 피터스목사의 묘소에 기념동판을 설치했으며, <시편촬요>의 영인본과 전기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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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3
  • 베델성서연구원 원장 이홍렬 목사
       기독교한국루터회 총회장을 지낸 이홍렬목사(사진)는 은퇴 후에도 베델성서연구원 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한국목회자와 성도들을 위한 성경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이목사는 찬송가공회 회계이사와 학교법인 소농학원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교단 목회자들의 초청을 받으면  교회로 가서 설교를 전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1974년 한국에 소개되어 올해 51주년을 맞이했다. 이 단체는 루터교단에 속해 있지만 초교파적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한국교계에 성서운동을 보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6만명의 목회자가 이 과정을 수료했으며, 평신도들은 60만명이 이 과정을 마쳤다. 지난해 10월에는 해외에서도 베델성서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 몽골교회 지도자들을 교육하는 일도 했다.    이 연구원에서는 5개의 교재가 있다. 첫째로 이 연구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성서편이 있다. 두번째로 생활편이라고 해서 행복한 결혼생활 10계명 등을 배우는 등 실제 생활과 연결된 부분을 배운다. 6개 신학대학 예배학 교수들이 집필한 예배편이 있으며, 기독교의 보편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신앙편이 있다. 신앙편은 한국교회에 이단이 대두되는 시점에서 정통신학에 무지한 성도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이 이단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이외에도 제직훈련편과 자녀훈련편 등이 있다. 또한 목회자들의 상담사역에 도움을 주고자 상담심리편 교재도 제작할 계획이다.     이목사는 “이곳에서 원장으로서 베델성서에 대한 전반적인 일을 하고 있다. 교재개발과 기획, 강습회 기획 등에 참여하고 있고, 대외적인 연락을 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면서, “세미나를 진행할 때 원장으로서 오리엔테이션도 진행한다”고 말했다.     이목사는 한국교회에 대해서 “과거 한국교회는 사회를 선도했다. 순교의 피를 이어받아서 목사님들이 청렴하고 선교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한국사회가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부흥하면서 십자가정신이 약화됐다”면서, “한국교회의 개혁이 필요하다. 신학의 개혁이 아닌 목회 마인드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목사는 최근 새롭게 총회장을 선출한 루터교단에 대해 “외형적으로는 안정이 되었다. 새로운 총회장이 탄생했기 때문에 이제는 잘 화합을 해서 새 총회장이 그 아픈 상처를 다스리면서 화합시켜 나가야 한다. 잘 해내길 바라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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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1
  • (인물인터뷰) 나사렛교단 감독 역임한 윤문기목사
      윤문기증경감독(68)은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교회의 감독과 한국성결교회연합회 대표회장을 역임했으며, 지난 6월 29일에 18년간 담임목사로 헌신한 안중교회에서 은퇴예배를 드렸다.   윤목사는 은퇴의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돌아보면 제 곁에는 늘 주님의 사람들이 함께있었다”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고 지난 긴 사역을 마치는 소감을 전했다. 또한 “하나님이 적절한 때 은퇴를 인도해 주신 것에 감사드리고, 설교학 박사논문을 쓰며 설교를 연구하며 복음의 열망을 가지고 살고자 한다”고 했다.   또 그는 2023년부터 ‘독서와 설교’모임에서 시작한 독서의 습관을 아직도 유지하며 은퇴했지만 주1권을 읽고 공부하는 독서가 루틴이 되었다고 전했다, 윤목사는 “지식이 도전이 되고, 도전이 찔림이 되고, 찔림은 처참함이 되어 절망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자극이 살아내야 하는 이유가 된다”고 독서의 가치를 전했다.   은퇴 이후도 윤목사는 ‘에셀나무선교회 유튜브 방송’을 통한 선교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이 방송사역은 은퇴 이후 예배와 교회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은퇴목회자들이나 사역자들 그리고 출석교회를 찾지 못하고 영적인 방황속에 있는 ‘가나안성도’들을 돌보기 위한 방송사역이다.   그는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을 향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발표하는 기관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략 150에서 200만으로 추정된다는 가난안 성도에 대한 문제와, 한국교회의 대사회적 신뢰도가 15.1%라고 한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꼈다. 그리고 한국기독교 비율이 현재 15%인데 이 상태로 계속 추락한다면 2035년에 10.2%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언급하며, 과연 이 위기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란 질문을 한다고 했다.   윤목사는“한국교회 쇠퇴의 가장 큰 원인은 목회자이다. 교회의 미래는 목회자의 자기 개발에 달려 있다”며, “오늘날 많은 교회가 어려운 교회를 돕는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 도움의 일부라도 목회자의 자기개발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목회자가 독서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한국교회의 밝은 내일을 보게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끝으로 윤목사는 한국교회의 성도들에게 기도생활을 당부했다. “개인의 기도가 둘 이상의 기도로, 둘의 기도가 교회의 기도로, 그 교회의 기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때이다”고 권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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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8
  •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감리교학원 목원대 이사장 이 철목사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을 역임한 이 철목사(사진)는 현재 목원대학교 재단인 감리교학원 이사장과 기독교TV 공동대표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목사는 “기독교TV의 공동대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 감리교의 교단장들이 맡고 있다. 원래는 김정석감독이 맡아서 해야하지만 김감독은 CBS 이사를 맡고 있다. 동종업계 이사를 겸임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계속 맡게 됐다”면서, “기독교TV도 여러 교단이 연합해서 만든 방송이다. 그래서 기독교TV를 돕는 일이 한국교회를 돕는 또 다른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감리교학원 이사장은 학교가 어려운 상황 속에 있어서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맡게 됐다”면서, “대학의 앞날이 옛날 같지 않다. 학생들이 줄어드는 상황이다. 여러가지 어려운 점들이 있어서 맡아달라고 요청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목사는 목회를 하면서 어려움이 있는 곳을 화합시키는 사역에 힘썼다. 강릉중앙교회가 어려운 시기에 부임해 교회의 화합을 이끌었으며, 감독회장이 된 이후로도 교단에 안정을 위해서 힘썼다. 또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목회를 위해서 힘썼다. 평창올림픽 유치와 원주강릉 복선철도 개통을 위한 운동에도 앞장섰다. 특히 원주강릉 복선철도 개통을 위한 서명운동을 이목사가 사역하던 강릉중앙교회에서 시작했다.    이목사는 지역사회를 위한 사역에 힘쓴 이유에 대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 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 유익한 일을 해야 되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다. 그래서 연탄은행과 푸드뱅크, 복지원 설립 등의 사역들을 전개했다”고 말했다.    이목사는 한국교회에 대해서 “한국교회는 옛날보다 많이 어렵다. 이러한 시기에 연합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교단이 다르고 지역이 달라도 한 교회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한국교회의 문제가 된다. 연합을 위해서 심도 있게 의논해야 한다”면서.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다음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선교의 방법이 생겨야 한다. 이 말이 세상에 가치관으로 넘어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깊이 생각하고 생각할 수 있는 인재들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사역에 대해서 이목사는 “나에게 주어진 생활에서 진정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새로운 사역을 하게 된다면 충실히 감당할 것이다. 그것도 신앙인으로써 감당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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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0
  •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예장 백석측 증경총회장 최낙중원로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측 증경총회장인 최낙중원로목사(해오름교회·사진)는 주의 종들을 키우고 양성하는 일에 관심과 열정을 쏟고 있다. 하나님의 일꾼을 키우는 것을 최대 관심, 최대 목표로 하여 현재는 15년째 강남금식기도원에서 사역을 해오며 그 사명을 감당해오고 있다.     최목사는 최근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부흥하는 교회에는 목회자가 주를 위해 살거나, 우선순위를 교회로 두고 있는 장로가 있다. 이는 교회의 큰 축복이며 하나님의 은혜이다”며, “전심을 다해 교회를 섬기는 장로는 없어서는 안 될 하나님이 주신 일꾼이며, 담임목사에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그들을 귀하게 사용하신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세상에는 여러 교회와 스토리들이 존재한다. 나는 어떤 교회던지 어렵고 쓰러져가고 힘이 없는 교회들이라면,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열일을 재쳐놓고 달려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영혼들과 교회를 살리고 온다”며, “나의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은 주와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지 그게 아니면 내가 살아갈 이유는 없다”고 삶의 의미를 간증했다.     최목사는 최근 한국기독교의 흐름을 보고 “지금의 한국은 경제가 성장되어, 일본의 경제를 넘어섰다. 경제대국이 된 것이다. 하지만 한국교회들의 성령의 불은 꺼져가고 있다. 그리고 병들어가고 있다”면서, “한국교회는 첫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외국에서 신학을 배워온 신학자들이 예수님에 대한 말씀보다 ‘신학자’들의 사람이야기 위주로 말하고 비성경적인 가르침을 행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종교의 탈을 쓴 아주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분별력을 가지고 이 시대에서 신앙을 잘 지켜야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최목사는 “앞으로 나는 BACK TO THE BIBLE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한다’. 사도행전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역사서를 다시 쓰고싶고, 성령의 운동을 다시 해나갈 것이다”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습관으로 인해 교회의 출석률도 저조하며, 1,500개의 교회가 없어졌다고 한다. 기도의 불이 많이 꺼진 상태이다. 성령의 역사가 많이 약해졌기 때문에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해 힘써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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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3
  •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한국목회아카데미 이사장 김종훈 목사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감독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표회장을 역임한 김종훈목사(사진)는 현재 한국목회아카데미 이사장으로 젊은 목회자와 사모들을 상담하는 사역을 펼치고 있다.     김목사는 “서울연회 감독을 지내면서 미자립교회 자립운동에 최선을 다했던 것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보람이다. 이러한 사역에 연장선상에서 한국목회아카데미 이사장으로 젊은 목회자와 사모들을 상담하고 있다”면서, “목회현장과 이론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에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은퇴 전 이사장으로 섬겼던 한국생명의 전화 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은퇴 이후에도 이사로 헌신하고 있다. 생명의 전화는 1963년 호주 시드니의 감리교목사인 알렌 워커가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1976년 개설되어 귀한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 1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명의 전화 운동이 너무나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 교리와 장정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이 시간에 자신의 목회경험을 학생들에게 나누면서 목회자양성에 일조하고 있다. 또한 어게인 메소디스트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운동은 감리교회가 회복하기 위해서는 초대교회 기도운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모임이다. 김목사는 이러한 모든 일이 행복하고, 감사하며,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김목사는 지나온 사역에 대해서 “45년의 목회를 돌아보면 좋은 교회에서 좋은 교인들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성도들은 부족한 담임목사의 목회계획에 전적으로 순종했다. 그리고 철저하게 가르치는 성경공부와 전도사역으로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져서 감사할 뿐이다”면서, “한국교회 연합사역으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제60대 회장으로 봉사했다. 이 때 교회연합 일치운동의 의미를 바로 알고 헌신할 수 있었다. 이 운동은 각 교회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핵심이다”고 말했다.    김목사는 “오늘날 한국교회 앞에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비결이 있다면 에큐메니칼의 본질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다”면서, “즉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자유를, 모든 일에는 사랑으로 서로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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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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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장 합동복음측 총회장 정재은목사
    정재은목사는 조금 늦은 나이인 1984년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서울 강서구에서 재적 1000여명 출석 600여명 목회 한 바 있다. 30년 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조카들을 양자 삼아 예수를 믿게 하려는 욕심으로 고향인 화천에 교회를 세워 일반목회를 하면서 몸이 불편 하거나 갈 곳이 없는 사람들과 같이 살게 되면서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정목사는 몸에 좋다는 여러 가지 과실나무를 직접 기르고 수확하고 있다. ‘할 수만 있다’ 면 더 많은 양의 수확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린 것만큼 ‘행복한 나눔’ 의 열정이 아름답고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 1만여평의 부지에 예수마을을 만들어 한 가구당 150평 정도의 마당을 품은 전원주택을 짓고 분양해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며 주말엔 함께 예배하는 일이다. 공동시설로 산책길, 운동시설, 캠핑장 등을 만들고 가족이 방문해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간도 확보 할 예정이다. 터 닦기 공사를 진행 중이고 젊은 시절 건설업을 했던 실력을 발휘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전원생활을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분양 사업을 시작했다. 이러한 구상에 대해 정목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기쁨이 있는 삶도 있고. 슬픈 삶도 있다.”며, “사방을 보아도 높은 벽만 보일때도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하지만 실망은 없다.”며, “왜냐하면 어디에도 하늘은 보이니까 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늘에는 빛이 존재한다.”며, “빛은 우리에게 있어 희망을 준다.”고 전했다. 따라서 “내 옆에는 이웃이 있고 이웃 옆에는 사회가 있고 사회 옆에는 내가 사는 이 나라가 있기에 공동체적 삶을 살아야 한다.”며 “우리는 나를 가치 있게 하며 남을 귀하게 여기며 살기에도 하루가 짧은 것 같아 열심을 다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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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2
  • 한국교회의 미래목회 포럼을 준비 - 기침미래포럼 이사장 지 덕 목사
      지난 15년 동안 사단법인 기독교한국침례회미래포럼 이사장으로 한국교회의 미래목회를 최전선에서 지켜온 지덕목사는, 수도권 원로목사 모임과 여러 가지 맡은 일들을 진행하기 위한 회의참석과 준비 등으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기침미래포럼에서 진행되는 제14차 포럼을 준비하며 아주 바쁜 하루를 지내고 있다. 이 포럼은 국제아카데미 대표 이춘근박사와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선교학 교수인 안희열박사가 강사로 초대해 「미·중 패권 경쟁과 이슬람」이라는 주제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관계된 사람들의 초청 및 오는 이들의 식사와 그 외 포럼과 관련된 준비사항을 의논하고 진행하는 일로 바쁜 일상이다.   또한 최근 증경총회장이었던 교단의 후배 목사중, 몇 사람의 사모님이 소천했다. 평생 함께했던 아내의 빈자리로 인한, 외로움과 어려움을 먼저 혼자되어 지금도 홀로 지내고 있는 지목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을 초대해 식사와 차를 나누며 시간도 보낸다. 지목사는 후배 목사들에게 “웬만하면 재혼해서 살아라”라고 권면한다.   지목사는 “원로모임을 가다 보니 모두가 몇 달 사이에 시력이 안 좋아지고, 관절이 안 좋아지고, 며칠 사이 건강이 안 좋아지는데 혼자서 사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며, “나는 자녀들도 세명의 아들이 있지만, 목회자로 사역하느라, 교수로 학생들 가르치느라, 파리가 앉았다 후딱 일어나는 것같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고 권면의 이유를 설명했다.   지목사는 종종 후배 목사들을 만나면 “아내를 소중하게 여기고, 성지순례나 동행할 수 있는 자리는 꼭 동행하며 대화거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권면한다며, 행복한 노후생활에 아내의 동행이 중요함을 전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1일 부흥회를 자주 다녔다. 부흥회는 호세아 6장 1절 말씀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라는 주제와, 요한계시록 3장 19절 말씀으로 「열심을 내자, 회계하자」란 주제로 목회중심, 교회중심의 말씀을 전한다.    지목사는 “부흥회를 하고 나면, 결속이 잘 되고, 성도들이 교회에 더 성실하게 봉사하고, 그 수 또한 많아졌다는 전갈을 많이 받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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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2
  • [대담] 창립 131주년 맞은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서진한목사
    131년전 한글출판에 원칙을 세우고 한글의 보편화에 기여 연합기관으로 한국교회 위기와 문제를 극복하는 출판 준비  대한기독교서회가 창립 131주년을 맞았습니다. 오는 23일 기념예배를 드린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지난 10월 5일 이를 기념하는 뜻 깊은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고, 이 행사는 교계뿐 아니라 일반 언론사도 큰 관심을 갖고 보도를 했습니다. 그만큼 서회의 역사는 한국교회와 사회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한편 인터넷 매체의 비약적인 발달로 출판 환경은 이전과는 달리 점점 위축되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회의 역사와 의미, 앞으로의 전망 등에 대해 서진한 사장님에게 듣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한국 최초로 설립된 교회연합기관 △서사장=기독교서회가 1890년에 설립되었으니 올해 131주년입니다. 지난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기념행사를 할 상황이 아니어서, 올해 130주년 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지난 역사를 다시금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는데, 알면 알수록 130주년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한국교회만 아니라 한국사회에 큰 역할을 하였던 지난날이 자랑스럽지만, 그 역사를 계승해야 할 오늘 우리의 과제가 무겁게 다가옵니다.   ▲서회는 1890년 장로교 선교회와 감리교 선교회가 만나서 연합기관을 만들며 출발했습니다. 교회사적으로 매우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봅니다.  △서사장=기독교서회는 장·감 선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하였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교회연합기관, 선교연합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 오래된 대한성서공회조차 기독교서회가 설립되고 나서 5년이 지나 영국성서공회의 지부로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아직 한국에 교단이라는 형태의 조직이 생겨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이로부터 약 30년이 지나 교단들이 조직되고 교단들이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선교 초기나 한국교회 초기에는 연합의 정신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의 신앙이고, 하나의 교회이니 교파가 달라도 서로 협력하여 선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장·감이 주축이 되었다고 하나, 서회의 초대 전임총무는 본윅이라는 구세군 사관이었습니다. 교파의 벽을 넘어 모두 하나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교단 중심주의가 강하게 형성되면서 연합사업은 점차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교단의 힘보다 대형교회의 힘이 더 커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해외선교도 교회별로 하는 것이 오늘날의 사정입니다. 따라서 공교회의 연합활동은 더 위축되고 있습니다. 다시금 선교 초기의 정신으로 돌아가 하나의 신앙, 하나의 교회라는 생각으로 서로의 차이를 뛰어넘는 협력의 기틀을 마련하고 공동의 선교활동을 강화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신학적 논의를 촉발 ▲서회와 한글 보급의 관계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회의 출판물이 한글 보급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기독교가 ‘한글’을 주시한 이유와 서회의 역할이 지대했습니다.   △서사장=15세기에 반포된 한글은 수백 년 동안 공식 언어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선교사들이 처음 내한했을 때 우리나라는 여전히 한문과 국문이라는 이중 언어생활을 하고 있었지요. 한문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운데 부녀자들을 위시한 민중들만이 언문으로 불리는 한글을 사용했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내한한 선교사들은 한글을 배우는 것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한글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고유문화와 전통, 종교와 역사를 접하였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글은 자연스럽게 기독교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한글의 편리성과 우수성을 인식한 선교사들은 ‘선교 언어’로 한글을 채택하고 성경과 찬송가, 각종 기독교 문서를 한글로 발행했습니다.    조선예수교서회 헌장 제2조에 보면 “조선어로 기독교 서적과 전도지와 정기 간행의 잡지류를 발행하여 전국에 보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습니다. 설립 초기부터 한글 출판의 원칙을 세운 서회는 많은 영역, 많은 종류, 많은 부수의 책을 한글로 펴내고 널리 보급함으로써 한글의 보편화에 기여하였고, 한글이 겨레의 주류 언어가 되는 데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서회는 단행본 이외에도 많은 정기간행물을 발행해온 것으로 아는데요, 특히 월간 「기독교사상」이 한국신학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남다르다고 봅니다.  △서사장= 기독교서회는 그동안 「기독신보」, 「새벗」, 「가정생활」 등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정기간행물을 발행해 왔습니다. 현재 발행하고 있는 정기간행물은 격월간 묵상집 「다락방」과 월간 「기독교사상」입니다. 「기독교사상」은 1957년 6·25한국전쟁이 끝난 뒤의 혼란 중에 창간됩니다. 창간사를 보면 당시 기독교서회는 전후의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는 데 사상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바른 신앙처럼 바른 사상을 세워야 한국사회가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본 것이겠지요.   「기독교사상」은 창간 이후 한국 지성계의 대들보 역할을 하면서 한국사회와 민족, 그리고 교회와 신학을 위한 매체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서 기독교의 비종교화, 세속화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등이 소개되었으며, 토착화신학과 민중신학이 배태되었습니다. 5공 시절에는 6개월간 정간을 당하기도 하였는데, 그때를 제외하고는 한 호도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발행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사상」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변화하는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 한국 기독교의 신학적 논의를 촉발하는 한편, 한국 기독교의 다양한 신학사상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 통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찬송가 관련 저널발행해 연구심화  ▲서회는 출판사로 알려져 있지만 구성을 보면 한국교회의 주요 교단이 참여하는 연합기관으로서의 성격도 갖고 있습니다.  △서사장= 기독교서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참여하는 회원이지만, 교회협의회에 속한 기관은 아닙니다. 교회협의회는 기독교서회가 활동을 시작한 뒤 약 30여 년이 지나 교단들이 조직되면서 조선기독교공의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하였습니다. 이 출범에 도리어 기독교서회가 크게 기여하였을 것입니다. 해방 후 기독교공의회는 기독교연합회라는 이름으로 개칭되는데 이때에도 교회협의회는 종로의 기독교서회 건물 내에 있었습니다.   기독교서회는 교회협의회와 긴밀히 협력하는 관계에 있습니다만, 기관의 성격과 역할이 다릅니다. 기독교서회는 활자 또는 출판을 통해 선교를 하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협의회는 회원교단과 기관들의 회비를 기본으로 삼지만, 기독교서회는 자립적 재정 구조를 마련해야 하는 기관입니다.     ▲ 기독교서회는 한국교회 최초의 찬송가인 『찬미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찬송가를 발행해오고 있는데요, 초기 찬송가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현 찬송가의 문제는 무엇인지, 또 찬송가의 발전을 위해 서회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서사장= 기독교서회는 창립 초기부터 찬송가를 개발하고 발행해 왔습니다. 선교사들은 한국인 조사(돕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서양 찬송가를 번역하였고, 또 당시 조선인들이 쉬 접근할 수 있도록 5음계를 감안하여 편곡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선교사들의 보고서에는 예순이 넘은 할머니가 찬송소리가 좋아서 찬송을 배우게 되고, 찬송을 제대로 부르고자 손녀에게 한글을 배운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찬송은 노래였기 때문에 당시 못 배운 분들, 특히 부녀자나 아동들이 쉽게 익힐 수 있었고, 이것은 복음전파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봅니다.   해방 이후에 한국교회의 찬송가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의 『신편』, 『신정』, 『부흥성가』로 분열되었을 때도 기독교서회는 기독교연합회(교회협의회)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교단 지도자들을 설득하여 결국 하나의 찬송가 『합동찬송가』를 펴내게 되었습니다.    찬송가는 한국교회의 연합, 동시에 분열의 궤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원래 찬송가는 교회연합기관과 교단들이 관리하는 책이었으나, 일제하부터 이권을 생각한 사람들의 분열 획책, 또 최근 몇 십 년 사이에는 이권을 염두에 둔 일반 출판사업자들과의 복잡한 관계가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보다 한국교회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한국교회가 이처럼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찬송가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한국적 심성, 한국인의 신앙고백, 한국적 선율이 아름답게 구현된 찬송들이 개발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현재 한국 신앙인들이 애창하는 동시대 음악에 대해서도 깊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983년부터 찬송가공회가 설립되면서, 이런 연구의 역할이 찬송가공회로 넘어갔습니다만, 기독교서회는 향후 교회음악, 혹은 찬송가 관련 저널을 발행해서 이 분야의 논의와 연구를 심화해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새 시대의 사명을 모색할 출판 준비  ▲한국을 대표하는 기독교출판사로서, 또 연합기관으로서 현재 기독교서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와 앞으로의 방향과 계획이 궁금합니다.  △서사장= 활자의 시대, 출판의 시대가 급격히 기울어 갑니다. 하지만 기독교서회는 출판을 도구로 삼아 출범한 연합기관이라 여전히 글자와 문서를 중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6·25한국전쟁 이후 북쪽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월남했고, 남쪽에 여러 개의 신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신학교 숫자가 많아진 것은 교단 분열의 탓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학교의 재정은 극히 열악했고 더 심각한 것은 교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신학교들이 신학교육기관협의를 구성하고 기독교서회에 교재를 개발해 달라고 요청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기독교서회는 초기에는 번역서, 이후에는 한국인 저술서 등 각종 신학교재들을 개발하여 출판하였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 신학교육기금의 도움도 받고 수십 년 동안 찬송가 판매의 이익금도 쏟아 부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신학교의 재정이 기독교서회보다 훨씬 커졌고, 신학교 출판부만 아니라 여러 출판사에서 신학책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서회는 한국교회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피면서, 새 시대의 새로운 사명을 모색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교회의 문제로는, 신학교의 신학과 교회 목회 및 신앙생활의 괴리, 교회 내 청년 신도의 급격한 감소, 교회와 사회의 장벽 혹은 소통의 어려움입니다. 한국교회의 많은 관심과 기도가 절실합니다.   청년의 감소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교회의 언어는 이미 한국사회에 소통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게토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스님이나 신부님의 인생살이 관련 책은 비신앙인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목사님들의 책은 딱 교계 안에서만 회자됩니다. 이 현실이 소통의 벽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초기 기독교는 한국사회에 가치관에서나 생활태도, 한글 보급이나 의료, 교육 등 문명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만, 이제 빛바랜 추억 정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몇 가지 점들과 관련해서 기독교서회의 새로운 일들을 모색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물론 장기적으로 해야 할 일이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필수적인 과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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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24
  • “젊은이들은 거장들과 깊은 씨름하길” -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
      평생 장공 김재준박사와 함석헌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연구하며, 대학 강단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쳐왔던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는 은퇴 후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올해 81세에 접어들었다.   스승인 김재준과 함석헌에 대해 김교수는 “갈수록 두 어른에 대한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며, “두 분은 모두 동양의 노장과 불교와 유학과 서양의 기독교를 섭렵해서 동서의 세계관을 아우르는 통전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드문 인물들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 지키기 위해 평생 매진한 것이 공통점이다”라며, “두 분은 현실에 안주할 줄을 몰랐다. 끊임없이 개혁적이고 허물을 벗었다”라고 회상했다. 2018년 폴 틸리히의 사상을 종합적으로 저술한 저서 〈틸리히 신학 되새김〉을 출간하기도 했던 김교수는 “틸리히는 신학의 임무를 기독교의 영원한 메시지를 매 시대마다 그 시대의 언어와 정신으로 새롭게 해석해 주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해석과도 통하는 것이다”라며, “중재라고 하는 것도 기독교가 그동안 이분법적으로 갈라놓았던, 이성·신앙, 지성·믿음, 개인·사회, 현세·내세, 이런 일체의 이항 대립적인 구조들을 해석학적인 순환 원리에 의해 종합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몇 년 새 수술도 하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김교수는 “80살이 넘어가니, 조그만 꽃과 비둘기 문양도 너무나 신기하게 다가온다”며, “구상시인의 시인 <말씀의 실상>에 ‘내 영혼의 문명의 백태가 벗겨지면 만유일체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라고 한 것처럼, 만유일체가 기적처럼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어 “죽음과 삶은 연속적이면서도 불연속적인, 더 큰 생명의 변화”라며, “성경적으로 보면 로마서 11장 36절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란 구절대로 신비로운 동산에서 마음껏 놀다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젊은 후학들에게 김교수는 “나는 비전과 꿈이 있었고, 신앙적으로 말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어서 신학을 했다. 신학을 밥벌이 하려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젊은이들이 고전을 이해하려하거나 한 신학자와 전체적으로 깊이 씨름하려고 하는 정열이나 야망이 부족한 것 같다. 20세기 거성들과 깊은 씨름을 해라. 그러면 신학을 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고, 용기도 얻을 것이다”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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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24
  • 개혁실천연대 이헌주사무국장, “한교연의 특정후보 공개지지에 참담하다”
    한국교회개혁실천연대 이헌주사무국장은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송태섭목사)이 ‘정권교체를 위한 국민적 희망과 동력 완수를 위해 윤석열후보를 지지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이사무국장은 “한국교회의 대표를 참칭하며, 정치가의 나팔수로 전락한 한교연에 대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차오른다. 더욱이 무속적 행동과 역사의식 부재 등 다양한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한 정치가를 지지한다고 하니 참담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고 했다.     특히 “한교연은 지난 10월 5일에 발표한 성명서에서 ‘대한민국을 바르게 영도할 자질과 능력·인품을 갖춘 인물’인지가 궁금하며, ‘무슨 수를 써서든 최종 대선후보가 되어 오로지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욕망과 자가당착에 빠진 정치인’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한 정치가를 지지하겠다고 공언함으로써 한교연 스스로 권력에 대한 욕망과 자가당착에 빠진 모습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바르게 참여해야 한다는 전제는 옳다. 그러나 정치참여가 정치권력에 복종하고, 그 권력으로 이득을 취하기 위한 것이라면 어찌 옳다 하겠는가! 더욱이 성경의 원리를 따르지 않는 한 정치가를 공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품에 안긴 교회의 모습일 수 없다”고 했다.     또 “교회는 정치와 정의를 연결하여 공정·인권·평화 등의 가치가 이 땅에 실현되도록 하는 원리를 제시해 주어야 하며, 이를 거부하는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 이로써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펼쳐가는 소명을 다하는 것이다. 자기 조직의 생존만을 위해 권력에 빌붙는 태도는 한국교회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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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15
  • 예배회복시민연대 김영길 사무총장, 방역당국 대면예배 금지준칙 정지위해 동분서주
    예배회복을위한자유시민연대(대표 김진홍·김승규, 이하 예자연) 예자연 사무총장 김영길 목사는 비대면 예배에 대해 반대하며 예배 회복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기 대면 예배 금지에 대해 문제제기하면서 예배 회복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는 인물이 있다. 김영길 목사는 서울행정법원과 수원지법, 그리고 인천지법, 대전지법 등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지역 대면 예배 금지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한 이후 전국방방곡곡을 순회하며 예배회복을 부르짖고 있다.    그는 △비대면 예배 강요는 교회와 국민에 대한 사기극 △비대면 예배를 불법적으로 강요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 및 관련 방역 책임자를 문책 △한국 모든 교회는 정부가 교회를 희생양으로의 삼아 편파적 방역정책에 계속한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 등을 천명했다.   김 목사는 “단순히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곳에서 감염된 사례를 무작정 ‘교회발’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한 데이터가 아니다”라면서 “짧은 기간에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피력했다.   또한 “실제 교회발 확진자수는 8.2%에 불과함에도 중대본은 교회발 코로나 감염자가 전체의 48%라고 왜곡해 발표했다”며, “교회의 대면 예배를 통한 감염은 없었다는 보건복지부의 2월1일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교회 소모임 자체를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단과 정통교회를 구분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또 “‘비대면 예배’는 성질상 코로나 방역의 어떠한 단계에서도 정부가 금지할 수 없는 비대면의 모임이기에, 허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이는 사실상 교회의 폐쇄를 호도하기 위한 언어술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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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15
  • “교회의 공공성 회복하는 일에 매진한다” - 전 서울대 교수 손봉호 박사
     전 서울대교수 손봉호박사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기독교의 도덕성회복 운동을 전개했다. 은퇴 후에 손교수는 강연과 집필을 하면서 이러한 운동을 계속 후원하고 전개하고 있다.    손교수는 “현재 모 방송에서 매일 칼럼을 쓰고 있다. 이를 하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잘 모를 지경이다”며, “또 환경단체 ‘푸른 아시아’에서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나눔국민운동본부에서도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다. 기윤실에서도 계속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근황을 말했다.    최근 한 기독교연합단체가 특정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것과 관련해 손교수는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는 “그러한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현실 정치적 사안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교회나 연합단체사 나서서 특정정당을 지지하고 어느 후보를 지지하라고 한면 이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닌가”라고 물음을 던졌다. 손교수는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 “한 사람이라도 적게 병에 걸리게 하는 게 사랑의 임무이다. 초대교회는 다 그렇게 했다. 길거리에 버려진 사람을 살렸다. 루터도 그렇게 했다”며, “그런데 한국교호는 오직 대면예배, 비대면예배에만 관심을 쏟았다. 그것은 전혀 기독교적인 방식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오직 하루라도 빨리 전염병이 끝나도록 공적인 방역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또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교회의 임무이다”며, “정부의 방역정책에 누구보다 협조해야 한다. 중소상공인 개인 사업자도 너무나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한국교회의 위기는 도덕적인 권위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정의에 대해 관심이 많다. 공정성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들이 봤을 때 교회는 정의와 공정성에서 멀어져 있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교회는 이기적인 모습만 보였다”며, “교회는 공공임무에 어느 기관보다 앞장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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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15
  • 한기총정상화추진위 허병주목사, “연합기관에 이단·사이비 침투예방 절실”
      부친이 헌금한 대지로 인해 신흥종교세력과 지난한 법적 소송 진행 한국교회 연합기관에 사이비 침투방지 청지기사명 감당 앞장 김영완목사와 허병주목사 외 한기총정상회추진위원들은 지난달 21일, 「존경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교단, 단체 회원 여러분! 피를 토하는 심정과 순교자의 각오로 성명서를 발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발표하면서 대표회장 김현성변호사의 퇴진을 요구했다. 동 위원들 중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소속 허병주목사(소신교회)는 “신앙인같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연합기관의 수장을 맡을 수 있냐?”며 “일개 변호사가 목사들에게 임명장을 주는 모습은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한기총 내 이단·사이비종파 침투 시도 의혹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이처럼 이단·사이비 문제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 내는 허목사는 고 탁명환전소장 당시 국제종교문제연구소에서 설립한 국종교회도 함께 맡고 있다. 허목사는 지난 1981년 11월 15일부터 탁목사가 세운 국종 제2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총회신학교에 다니며 직접 국종교회를 담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신흥종교 교주가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허목사를 위협했고, 교회당 집기를 부수고 예배를 방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허목사는 그들을 피해 전국 각지를 돌며 목회를 하다가 2007년 12월 부천으로 옮겨 현재의 국종교회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사이비종교피해자나홀로소송시민연대 대표로 사역하고 있다.   허목사는 부모가 사이비 이단종교에 미혹돼 전 재산을 사기당하는 것을 보며 자랐다. 그가 8살이던 1956년 경, 아버지가 전국에 도자기 공장을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를 통해 아버지와 동갑이었던 비공인 신흥종교 교주를 만나게 됐다. 아버지는 교주에게 매료돼 많은 재산을 기부했다. 집단촌 설립자금을 가장 많이 헌금해 1957년 12월경 소사집단촌에 입주하여 집단촌에서 살기도 했다. 동 사이비 종교집단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사이비 교주 2세와 함께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이후 오랜세월 깊이있게 연구한 사이비 종교 고발 소설 <갈라파고스 수용소>와 <카멜레온>을 저술하기도 했다.   이에 의하면, 허목사 친형제들은 ‘집단촌’에서 자랐다. 그는 소사 제1집단촌, 덕소 제2집단촌, 기장 제3집단촌의 실체를 밝혔다. 또한 박태선 장로의 후계자인 박모씨의 행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후 허목사는 신학공부를 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30여년간 소사 집단촌의 재산을 돌려받기 위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   허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집단촌 부지가 1950년대같은 모습으로 낡고 황량해진 채 죽어있는 도시로 남아있다는 것. 허목사는 이곳을 ‘검은 안개의 섬’이라고 설명했다. 이 지역이 이런 모습을 띄는 이유는 43개 주택 300여 가구의 실소유주를 놓고 법적 다툼이 끝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소유권을 놓고 등기상 주인인 계수주민협의회 등과 소송중이다. 이에 대해 허목사는 “부친은 전국 10여개 곳에 도자기 공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현 시가로 1000억원대 재산을 헌금했다.”며, “집단촌에 기와공장, 도자기 공장을 세우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박태선장로와 이봉장씨가 사망하면서 아들 박모씨가 주도권을 잡은 후 이 땅들을 놓고 삼광물산에서 명의가 바뀐 한일물산과 이봉장씨의 아들들, 예수교OO관 목사 출신 김모씨, 박 장로의 유족 등 4파전이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이 땅에 거주했다는 주민협의회 259명이 주택배치증을 사서 권리를 승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허 목사는 “주택배치증은 임시로 거주할 수 있는 허가증일 뿐”이라며, “그것으로 주택을 매매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이렇게 서로 난립된 가운데 법원과 검찰은 일관되게 부동산의 실제 소유자는 교단 소속 신도들의 총유재산임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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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04
  • 최고급 ‘커피’ 제공하는 사업에 열중 - 한국장로회총연합회 증경회장 남상훈 장로
      한국장로회총연합회 38대 회장을 지낸 남상훈장로(삼례동부교회)는 은퇴 후 최근 케냐 생두를 수입해 와 수차례의 테스팅을 통해 최적의 로스팅 값을 찾아냈다. 이를 가공해 최고급 커피를 제공하는 <커피마리아> 사업을 하고 있다. 또한 27년째 계속 부인 박정현권사를 간호하고 있다. 박권사는 삼례동부교회(김요한목사) 찬양대 지휘자로서 연습 도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예수병원으로 긴급수송됐다. 박권사는 병상에 누워있지만 새벽예배를 단 한차례도 결석하지 않고, 새벽 헌금을 1만5670번째 드리고 있다.   이러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교단과 지역을 위해 꾸준하게 봉사해 왔다. 그 결과, 오는 11월 10일, 전북 완주군청에서 완주군민대상을 받는다. 지역 선교 사역을 위해 완주군새마을지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완주군의장, 전라북도인재육성장학재단 이사, 전라북도학교운영위원회 시군연합회장, 완주군 교육전문위원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고 김대중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표창, 이명박대통령 당시 공로장을 받았다.   남장로는 임영신 박사 설립 영신학교(현 삼례중앙초등학교)에서 복음을 접했다. 중앙대를 설립하기도 했던 임박사는 영신학교를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했다.   이후 남장로는 삼례중학교와 전주 신흥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생연합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삼례동부교회에서 허화준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은 남장로는 지난 1984년 장로 장립을 받은 후 교육위원장, 재정부장, 건축위원장 등 교회 각 기관의 중책을 맡아왔다. 복음화와 신앙운동을 위해 교단 및 교회연합기관사역에 매진했다. 이러한 봉사 공로로 전국주일학교연합회 교사30년 표창, 전국CE회장 표창, 전국남전도회연합회장 표창, 전국장로회장 표창, 그리고 총회장들에게 3번의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또한 북전주노회 각 기관과 부서에서 맡은 직분을 성실히 수행한 결과, 전북과 호남지역 장로연합회 및 교회협의회, 전국장로회와 남전도연합회 등에서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또 전북지역기독교장로회총연합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맡기도 했다. 또한 합동측 청장년면려회(CE) 회장, 남전도회연합회장, 전국장로회연합회장, 총회 장로부총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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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04
  • “총회가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사무총장 김종명목사
    사무총장 김종명목사는 ‘개혁주의 생명신학’이라는 교단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지속성장이 가능한 총회를 만들어나갈 것을 다짐했다. 김목사는 “3년 전 사무총장 출마 당시 내세웠던 ‘깨끗한 총회’ 공약이 완벽하게 이행되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성과를 거둘 수있었 던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특히 3년의 경험을 소중히 간직해 앞으로도 ‘그림자’처럼 총회 일을 할 것 을 바탕으로 이전보다 폭넓은 행이라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맡은 소임을 충실히 하여 총회가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목사가 밝힌 교단의 최대현안은 다툼이 없는 총회이다. 그는 “사회법으로 가지 않기로 한  있다. 지난 회기 백석인들의 으로 가지 않기로 한 부분은 어느 정도 구현됐지만 역으로 총회 내의 고소·고발이 남발된 경향이 있다”며 “이 부분을 정비시켜야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타 교단은 개인 차원의 고소·고발이 어렵고 패소할 경우 노회 행정조치까지 이뤄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교단이 한국교회 내에서 책임 있는 교단의 위치에 서 있다. 대사회적인 활동에도 좀 더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지난 회기 백석인들의 헌혈 캠페인이 한국교회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앞으로 이런 활동들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맡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한국교회에서 관심이 쏠리고 있는 연합기관 통합과 관련해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한목소리가 필요하다. 우리 교단이 이 일에 밑거름이 되면 좋겠다. 하나 된 목소리를 통 해 반성경적인 법안들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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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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