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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와 생활 [19] 그리스도인의 영성-부활(새창조)의 영성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살전4:14) 사실은 영원한 복음이다. 이 복음대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딤후2:8)를 그리스도인이라한다. 복음을 영접한 자는 부활 생명으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한다. 아담 이후 노아를 통해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예수를 통해 천국의 새로운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부활 이전의 세계는 사망이 왕 노릇하는 사탄의 제도 아래 있었다.  그러나 부활 이후의 세계는 생명의 성령의 법(롬8:2) 아래 있게 된 것이다. 부활이라는 새로운 창조 안에는 죽음이 사라졌다.  부활의 승리를 통해 옛 창조에 속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게 하셨다. 부활이 가져온 것은 옛 창조를 끝내셨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입증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부활을 마주하게 되면 십자가를 통해 옛 사람이 죽었다는 계시를 받게 된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로서 죽은 자신을 장사지내야 함을 알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세례(침례)를 통해 시인하게 된다.   십자가를 통해 아담에게서 나온 모든 것이 끝났음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함으로 그의 부활과 연합되는 길로 나아간다.(롬6:5) 하나님은 십자가로 옛 세상에 속한 것을 다 제거하셨다. 그리고 부활의 새로운 창조를 통해 하나님께 속한 것을 허락하셨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6:4) 주님의 부활을 믿는 자는 부활이 가져온 새로운 것을 의지하여 살게 하셨다. 이것은 믿는 자에게 놀라운 복음이 된다. 주님께서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을 한량없이 주신다는 복된 사실을 알게 하셨다.   십자가로 우리를 제거하시고 부활로 인해 새 생명을 부여하신 것이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주님의 부활로 인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이 기쁜 소식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을 주셨다는 사실이다. 주님의 부활이 내 안에 들어와 새로운 생명을 나누어 주셨다. 부활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육의 성분으로 살지 않게 된다.   새로운 성품과 새로운 영적 기능을 가지고 새로운 왕국인 새 세계로 들어가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에게 주님의 부활 생명이 선한 삶을 가능하게 한다. 부활 생명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바라신다./대전반석교회 목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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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8
  • ‘아가서’ 솔로몬의 노래(11) 노루들과 들 사슴들로 부탁한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며 나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나를 욥처럼 건포도 되게 하시어 순교하기까지 감사·찬송하게 하신다.   2:7 오 너희 예루살렘의 딸들아, 내가 노루들과 들 사슴들로 너희에게 부탁하노니 그가 원하기까지는 내 사랑을 흔들지도 말고 깨우지도 말라.     예루살렘의 딸들은 신부 성도가 아닌 육적 신자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신부 성도가 사랑하는 이를 노루와 들 사슴으로 비유하고 있다. 노루와 들 사슴 같은 주님이 원하기까지는 절대 내 사랑을 흔들지도 말고 깨우지도 말라고 부탁하고 있다. 노루와 사슴의 특징은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금방 알아차리고 날렵하게 도망가고 만다. 주님이 노루와 들 사슴 같으시니, 그분이 지금 나를 껴안아서 하나로 결합 된 상태이니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언제까지 신부 성도와 이 같은 한 몸 된 상태를 원하실까? 주님이 내게 들어오셔서 주님의 진리의 사랑을 깨우쳐 나의 아구까지 채우시되 내가 진리를 증거 하는 자가 되기까지 원하신다. 여기서 왜 주님을 노루나 들 사슴으로 비유하였나? 이는 그들의 특성인 굽이 갈라진 것, 약초만 먹는 것, 맑은 물을 마시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즉 노루와 사슴이 굽이 갈라진 것은 레위기 11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거룩한 것에 속함을 뜻한다.     이와 같이 주님은 거룩한 분이시며 나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또 노루가 땅을 밟지 않고 바위와 바위 사이로 뛰어다니는 것처럼 주님은 우리의 반석이 되신다. 노루는 약초만 먹고 자라서 몸 전체가 사람에게 약이 되는 것과 같이 주님은 우리를 살리는 영이 되신다.  또 맑은 물만 마시는 노루와 같이 주님은 진리의 생수가 되신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영원히 사해주셨다. 그의 피를 힘입은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계속하여 일곱 영까지 충만케 부어주신다.   2:8 내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여! 보라, 그가 산들 위로 뛰며 작은 산들 위로 가볍게 뛰며 오는 도다.    내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는 주님의 목소리이다. 주님의 음성은 육신의 귀에 들리는 그런 소리가 아니다. 영의 귀로만 들을 수 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심령에 세미하게 주님의 말씀과 뜻을 성령으로 깨우쳐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내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이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이 계시는데, 다른 곳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애쓰는 자는 그 사람 안에 과연 예수님이 계실지 의심이 된다.     엘리야에게 세미한 음성이 들리듯이,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부어주신 성령이 예수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 안에 예수님이 계심을 알게 하신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심을 성령이 깨우쳐 주신다. 또 내가 알고 있는 몇 마디의 말씀만을 일일이 깨우쳐 주는 차원이 아니라 인격자이신 주님이 인격자인 내게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모든 것을 깨우쳐 주시는 것이다. 성령을 통해서 대화하듯 말이다. 첫 번째로 깨우쳐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입고 오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셨다는 것이다. 나를 죄에서 구원해주셨다는 것을 성령으로 알려주신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대한예수교장로회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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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6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자
    배에스더목사 (마르페선교 센터장)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쩜 길고 긴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터널을 지나간 뜻하여 한숨을 돌리고 쉬려고 하는 순간 또 다른 터널과 마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나의 삶은 왜 이리도 잘 안 풀릴까? 하나님은 정말 나를 돕고 계시는 것이 맞을까’를 생각이며 살아가는 것 같다.     우리가 믿음의 영적인 눈을 뜨고 보아야 할 것을 놓치게 되면 일어날 수 있는 흔한 현상이라고 본다. 성경에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이러한 말씀들을 놓치며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사역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형태의 질병과 싸우고 있는 성도들을 보게 된다. 이들은 질병에서 나아지길 위해 늘 간구한다. 나 또한 그랬었기에 백번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질병에 있지 않고 믿음에 있다라고 성경의 여러 곳에서는 언급하셨다.   꽃길만 걸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던, 믿지 않던 꽃길만 걸으며 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꽃길이란 역경과 고난이 없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삶의 본질을 알게 된다면 어떠한 역경과 고난과 질병 속에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에 연연해 있지 않고 진정한 감사를 올려 드릴 수 있을 것이다. 모든것이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데 감사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인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가 오히려 모든것에 시작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감사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상담하는 사람들 중에 여러 형태의 중독의 문제로 만날 때가 있다. 사실 중독을 끊어 내기란 죽을 만큼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들의 호소를 외면할 수가 없다.    중독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별히 기독교인이면서 중독에 빠져 산다는 것은 수많은 죄책감과 함께 자기 비하에 이르게 되므로 많이 위험하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물을 먹어 보기도 하고 입원치료도 받지만 여전히 이들은 또 다시 중독에 빠지게 된다.   중독에서의 치유....... 온전히 치유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하지만 반드시 치유될 수 있다. 이들이 잊은 것이 있다. 감사이다. 허덕임의 중독 속에 감사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내가 주도하려 했던 것을 하나님께서 주도 하시도록 내어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감사는 모든 중독에서 자유로워지는 첫 걸음이다.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죽고 예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지금부터라도 감사하기를 시작해 보라 놀라운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거듭 나는 날이 속히 오리라 믿는다. 모든 질병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께서 치유하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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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6
  • [에레모스 영성7] 광야를 길 삼아
    산 좋고 물 좋고 풍치 좋은 자연 환경, 광야에는 그렇게 즐길만한 것들이 없다. 또한 광야를 간다 하더라도 쉽게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넓은 길은 상인들의 무역 거래를 위해 생겨났거나 이웃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마찻길이었다. 또한 지속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길의 품새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광야에는 그러한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넓은 길은 다 놔두고 길도 아닌 광야 길을 걷도록 하였다. 홍해를 길로 만들어 걷도록 하신 하나님은 그 다음은 광야를 길로 삼아 걷도록 하셨다.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약속의 땅, 가나안 까지 열하루면 되는 지름길을 놔두고 40년의 세월 동안 광야를 걸어야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길은 어떤 의미일까? 모세는 이집트 왕 파라오를 찾아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을 ‘광야로 내 보내라’(출애 5:1)는 말씀을 전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는 광야가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 조상의 이러한 광야 체험을 대를 이어 간직하고 기억하였다.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명 8:2)는 말씀은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왕국을 세운 뒤에도 줄곧 되뇌어지면서 마음 한복판에 새겨졌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인생 여정 그 자체가 순례자의 길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를 위해서 이집트의 시내 광야를 걸어야 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홍해도 길이 되고 광야도 길이 될 수 있었다면 그런 점에서 광야는 길 그 자체가 아닐까. 광야 어느 한 쪽으로 길을 내지 않더라도 그 모두를 길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우리도 구름 기둥으로 또 불 기둥으로 고백되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이미 광야로 내 보내진 존재이니까. /가락재 영성원 원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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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6
  • [정론] 예수부활의 현대적 의미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은 확실성을 가진 역사적 사실이다. 단순한 생명 회복도 아니요, 윤회도 아니요, 환상적인 영적 부활도 아니다. 누가복음 24장 39절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라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살과 뼈가 다시 살아난 육신의 부활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절대적 필연성을 가진 사건이다. 왜냐하면 부활이 없었다면 성경도 거짓이 되고, 성도들의 믿음도 헛것이 되고, 성도들은 불쌍한 자 중에 더욱 불쌍한 자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불트만과 같은 실존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타심을 가진 진정존재가 이기심을 가진 비진정존재를 이기는 것을 의미한다는 개인의 의지적 결단의 차원보다 훨씬 높은 의미를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적어도 네 가지의 영원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로, 부활은 마귀가 하나님을 대적했으나 하나님이 승리하신 사건이다.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다. 예수님만 죽이면 자기가 승리하리라고 생각하여 세상의 정치권력, 종교권력 모두를 동원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시고, 다시는 죽으실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게 하셨다. 마귀를 따르는 사람은 영원한 패배자요,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영원한 승리자가 되게 하셨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서 영원한 승리가 확정되었다.   둘째로, 부활은 진리와 비진리의 싸움에서 진리가 승리한 사건이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하셨다. 비진리가 진리를 죽이려 했지만, 진리는 다시 살아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비진리를 따르는 자는 사망의 길을 가는 것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생명의 길을 가는 것이다. 생명은 영원히 사는 영생이다.   셋째로, 부활은 사랑과 미움의 싸움에서 사랑이 승리한 사건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미움과 시기가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과 용서의 마음이 가득했다. 십자가의 고통 중에도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부활 사건은, 미움의 사역은 실패할 것이요, 사랑의 사역은 승리함을 보여준 사건인 것이다. 이처럼, 사랑은 결국 승리한다. 가장 낮아짐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을 보여주는 빛이다.   넷째로, 부활은 생명과 사망의 싸움에서 생명이 이긴 사건이다. 고린도전서 15장 54절에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했다. 그리고 요한복음 11장 25절에도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하셨다. 사망은 인류의 마지막 원수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생명이 사망을 삼켜버린 사건이다. 사망의 그늘 아래 거하고 있는 영혼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빛, 소망을 건네주신 것이다.   2024년 부활주일을 맞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따르고, 사랑을 따르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승리를 경험하시기를 기원한다.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총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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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6
  • 천예숙작가의 「승리의 주님」
       천예숙작가의 「승리의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심을 기뻐함으로 각종 아름다운 꽃들을 나열하여 축하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기쁨이요 미래의 소망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토록 주님의 부활은 오직 기독교에서만 가질 수 있는 참 소망인 것이다. 여기의 십자가도 피 묻은 십자가가 아니라 황금색의 십자가로 표현한 것이 승리의 상징으로 잘 부합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이 작가는 재치 있고 활달한 터치를 구사하여 감동을 주는데 이는 마치 누가복음 24장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이 동행하신 예수님을 몰라보고 그들의 집에 가서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고 기뻐하는 장면과 유사한 기쁨을 안겨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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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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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유옥합] 인생의 길을 함께 걷는 연습
        “아무개아버님 잘 지냈어요?” “잘 지냈지, 어서들 와”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냅니다.     매주 금요일, 따밥은 노숙인들이 계시는 텐트촌에 방문해 준비된 도시락을 전달하고 한 주간 어찌 지냈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서로의 안부와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긴 인생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그렇게 깊어진 관계를 통해 우리는 그들을 위한 구체적인 기도 제목을 발견합니다.   따밥(따뜻한 밥차)은 성남시 야탑과 모란, 신흥에 계시는 약120명의 노숙인과 어려운 이웃에게 주일마다 도시락과 한 주간을 살아갈 물품(컵라면, 햇반, 생수, 커피 등)을 전하는데, 한 끼의 도시락을 전하는 걸음이지만, 이 걸음이 쌓여 서로를 향한 친구요 이웃이 됩니다. 그렇게 따밥은 교회로, 비영리단체로 지역의 노숙인들을 위한 삶의 예배를 드립니다.   따밥의 핵심가치는 함께그리고 존중입니다. 따밥은 인생의 길을 함께 걷는 연습을 합니다. 가다가 넘어지면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아줍니다. 천천히 가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함께하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며, 함께 가는 길이 외롭지 않고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밥은 이웃의 경계를 확장합니다. 우리 주변의 다양한 이웃, 특별히 소외된 이웃, 노숙인은 우리의 이웃이며 친구입니다.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일은 아름답고 가치있는 일입니다. 끝으로 따밥은 서로를 존중합니다. 노숙인들의 현재의 삶은 판단 되어질 일이 아니며, 모두에게 있을 인생의 실패와 아픔을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함으로 아프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게 섬기는 훈련을 해 나갑니다. 이 연습이 무르익어 서로를 감동케할 때 우리는 큰 기쁨을 경험합니다.   소개된 사역을 중심으로 따밥교회는 다양한 교회의 모델이 요구되어지는 시대에, 조금은 다른 옷을 입고 세상 속에 복음의 힘과 위로가 필요한 이들의 친구가 되고자 찾아가는 교회입니다. 이 사역이 지속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그리고 지역 교회들과 연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데, 현재 지역의 다섯 교회들이 매주 밥을 짓고, 도시락을 포장하는 일, 또한 후원천사들의 손길이 모여 함께 사역을 연합합니다. 사역을 하는 동안 크고 작은 기적들이 필요를 따라 공급되는 일은 물론, 도움을 준다 생각했던 우리에게 내민 노숙인들의 따뜻한 섬김과 용기의 말은 우리의 눈가를 적십니다.   힘든 순간들.....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 시간을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될 기쁨과 감사가 우리 안에 고백 되어질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앞장서 일하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2022년 12월 성탄절 주간, 혹독한 추위에 돌아가신 노숙인분은 저희 멤버들이 정성껏 사랑과 마음을 전했던 분입니다. 매일같이 일기를 쓰며 저희에게 가족도 외면한 인생을 돌보아준다며 감사 인사를 겸손하게 하시던 분이셨는데 그해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그가 남긴 일기장에 “세상은 혹독하다 그런데 나를 돕는 좋은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다. 참 좋은 사람들이다.” 이 짧은 글에 멤버들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장례를 치러야 했던 그날 밤, 늦은 시간에 찾은 둘째 아드님은 한없이 울며 저희에게 감사 인사를 건내고 가족장으로 쓸쓸하지 않게 한 노숙인의 삶이 마무리되던 일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이런 일들이 지면에 다 기록할 수 없으나 이 시간과 사건들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간들입니다.   한 봉사자분이 이야기합니다. “따밥은 성경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써내려가는 듯하다 느낍니다.”   바라기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앞에 돌아서지 않을 용기와 믿음이 우리 안에 자라나기를 그래서 묵묵히 그리고 겸손하게 이 부름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따뜻한 밥차 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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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4
  • [건강교실] 눈 건강을 지키는 법 (상)
      최근 들어 일상생활이 온라인, 모바일화 되면서 스마트폰을 통한 근거리 작업이 매우 증가하고, 이에 따른 눈의 피로가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 근거리 작업은 많아지고 황사, 미세먼지 등 환경적 요소도 눈을 위협하는 만큼,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눈이 피로한 시대가 아닐까? 최근 11월 11일 눈의 날을 맞이해 눈 건강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가장 먼저, 정기 검진으로 눈의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안과에서 눈의 건강 상태에 대한 정기적인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시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거나 무언가 떠다녀 보인다든지, 물체가 이전과 다르게 보인다든지 등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처럼 보는 데 불편한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안과에 방문하여 검사를 받고, 필요시 빠른 치료를 받는 것이 눈의 질환으로 인한 시력 상실과 합병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꼭 증상이 없더라도 고령, 당뇨나 고혈압 등 전신 질환, 녹내장 등 안과 질환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 안과에 방문하여 정기적인 안과 검사를 받아야 한다. 구체적 상황 별 정기 검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장에 따라 눈의 굴절 이상(근시, 원시)이 변하는 소아, 성장기 청소년들은 가급적 6개월 간격으로 눈의 굴절 상태(도수)의 변화를 체크하는 것이 좋다.   둘째, 성인도 세극등 현미경 검사, 안저 검사 등 안과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는 것이 좋다. 특히, 당뇨나 고혈압 등 눈에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는 전신 질환이 있는 경우, 적어도 매년 안저 검사를 포함한 정기적 검사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백내장이나 황반 변성 등 시력을 위협하는 주요한 질환들은 퇴행성 질환으로 노인에 주로 발생한다. 65세 이상에서는 특히 백내장과 시신경(녹내장), 망막 질환 여부에 대한 정기적인 안과 검사가 더욱 필요하다.   또한 안구 건조로 인한 눈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주변 환경이 건조하며 눈에 자극 증상이 잘 발생할 수 있는 가을 및 겨울철에는 안구건조증 예방을 위한 관리가 필요하다. 인공눈물을 주기적으로 점안하여 눈 표면에 충분한 눈물층을 유지하여 안구건조로 인한 증상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한 건조한 환경이 문제가 되므로, 가습기 등을 통해 실내가 건조해지지 않도록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환경적인 차원에서 안구 건조증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다.   눈 깜빡임은 눈의 수분층을 골고루 퍼지게 하여 눈 표면이 마르지 않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컴퓨터, TV, 스마트폰의 사용은 눈 깜빡거림을 줄여 눈 표면이 마르게 되어 이로 인한 안구 건조증 증상을 잘 일어나게 한다. 따라서 장기간 사용시에는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하며 눈의 피로를 풀어주거나, 안구 건조증 증상을 느끼는 경우 인공 누액을 점안하는 것이 좋다. 눈물 흘림 혹은 안구 건조증 증상이 심하거나 지속되는 경우, 안과를 찾아 전문의의 검진을 받고 이에 따른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 편에서는 눈 건강에 해로운 자외선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눈에 좋은 음식, 눈 건강을 지키는 생활수칙 등을 전한다. /한양대병원 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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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4
  • [당신의 뇌] 뇌를 알면 수면이 보인다 (4)
      그 밖에 7일 동안에 하루를 쉬는 주간리듬, 춘하추동의 4계절 리듬도 사람들의 생활을 규정한다. 여성의 경우 약 1개월을 주기로 하는 생리 주기도 생활리듬의 하나이다.   이같이 빛이나 기온 또는 습도 같은 외부의 물리적 환경이 생활리듬을 규정하나 내분비(호르몬)라는 생체축의 주기성도 생활리듬을 규정한다. 사람의 활동은 밤낮의 변화나 달 또는 계절의 변화에 따르게 되어 있으나 그 주기성은 생체의 생물학적 활동의 주기성과 일치하게 되어 있어 결코 자연현상의 변화만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즉, 생체에는 시간을 알리는 시계가 있어서 생체활동의 변화를 조절한다. 이 시계를 내인성리듬 또는 체내시계라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뇌의 시교차상핵이다. 잠자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송과체에서 분비되는데 1~2시간 이후가 되면 잠이 들게 된다.    이 시계와 환경으로부터의 입력에 의하여 형성되는 생체 리듬의 주기가 환경조건의 주기와 일치할 때, 즉 동조될 때 생체의 내적 환경은 평형을 유지하게 되고 그럴 때 건강한 잠을 자게 되며 따라서 정신도 건강하게 되는 것이다. /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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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4
  • 천금보다 귀했다.
      1970년 한강에는 아파트보다 모래가 더 많았다. 후암동에서 이촌동으로 온교회가 출애굽 하듯이 이전을 하고 모래 위에 성전공사를 시작했다. 널빤지와 각목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고 창문도 못 달아 유리창도 없는 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바람이 모래를 회오리로 감아올리면 대나무를 꽂아 만든 빨랫줄에 셔츠며 바지들을 하늘로 한달음에 올렸다가 몇 바퀴 돌려서 팽개쳐 버린다. 훨훨 털어도 방바닥에 모래가 우수수했다. 머릿속이며 콧속, 혓바닥, 여기저기 모래가 그득했다. 가운데 큰길을 사이에 두고 교회 건너편에 공무원 아파트가 있었다. 주일 아침 교회 앞 골목길에 서 있노라면 멀리서 한 아이가 길을 건너온다. 아 우리 교회에 오는 아이가 확실하다. 달려가서 번쩍 안고 두둥실 한 바퀴 돌리며 춤을 춘다. 모래벌판 개척교회에서 유년주일학교 학생 하나는 천금보다 귀했다. "오늘은 이촌동, 내일은 세계로" 한강의 기적을 꿈꾸며 새역사를 시작했다. 어느 수요일 유년부 예배를 드리는데 어디선가 연기 냄새가 났다. 마당 뒤쪽에서 유년부 한 아이가 불장난하고 있었다. 뛰어나가 연기 나는 곳에 모래를 붓고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설명하고 단단히 주의를 환기하고 돌아와 다시 예배를 드리는데 이번에는 창문이 훤해지면서 정말로 불이 활활 붙었다. “한번은 용서하지만 두 번은 안 된다. 조금 전 약속 한 대로 몇 대 맞을까 네가 정해라” 눈가에 생글생글 장난기 가득하더니 자랑스러운 듯 손가락 다섯 개를 쫙 펴 보였다. “그래, 정말 다섯 대는 맞아야겠지만 잘못을 인정한 것 같으니 두 대는 감해주고 세대만 맞자~! 엎드~렷!!!”   감히, 천금을 때리려 막대기를 들었다.   나는 교회 공사장 주변에 널려 있는 막대기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깨를 반듯이 세우고 있는 아이를 향해 손목을 꽉 쥐고 온 힘을 다해서 “따라 해~, 하나앗 !!!” “하나~아 ~” 처음에는 실실 얼렁설렁하더니 한 대를 맞자 아이도 긴장하는 것 같았다. 궁둥이를 바싹 올리고 맞을 준비를 한다. “궁둥이 올리고~ 두울 !!!” “두 우울~~” “자 이제 마지막이다. 다시 올리고, 세엣!!!” “세에에엣 ~” 지금 바로잡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어금니를 꽉 물었다. 아직 교육전도사님을 모시지 못해서 주일 학교 반사는 나 혼자였고, 예배를 드리던 아이들이 밖으로 나와 동그랗게 몰려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예수님도 이렇게 하셨을 거야 속으로 다짐하며, 그 자리에서 주기도문을 하고 예배를 마치었다. 기특해서 안아주려 했는데 녀석은 바람같이 사라졌다.   텅 빈 교회에 혼자 앉았는데 온몸에서 힘이 빠지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매 맞고 화나서 다음 주일 교회 안 오면 어쩌나... 너무 심하게 때렸나...주일학교 유년부 여자 선생이 몽둥이로 학생을 때렸다고 소문나면, 당회장 아버님 목사님께 누가 되지 않을까.... 맘 졸이며 사흘을 끙끙 앓았는데 주일 아침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이가 들어 왔다. 멀리서 빙빙 돌다 슬쩍 눈이 마주쳤는데 우리는 서로 씽끗 웃었다. 고마워 고마워 정말 고마워 미안해 아팠지? 다시 와줘서 고마워... 53년이 지났다 지금은 헌신 봉사 충성하시는 60세 초반 장로님이 되셨겠지.   '한강의 기적처럼 다시 뵙고 싶습니다.'   /한강교회 권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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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4
  • [변두리 소수자⑧] 마음건강
      요즘 여러 나라에서 인종갈등과 차별문제 등으로 인한 부당한 일과, 심지어는 전쟁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공존을 위한 긍정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좋은 시민들이 함께 좋은 노력을 할수록, 좋은 사회를 이뤄서, 나와 내 가족도 그 좋은 사회에서 함께 좋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 분위기가 험악하면, 시민들도 각박해 진다. 특히 타 인종과 타 문화권의 사람들과 갈등이 심해진다. 상대방이 의도하지 않은 행동과 개인적인 습관, 표현하는 모습 등을 부정적으로 받는 피해의식을 가질 수 있다(Victim Mentality). 상대방의 평범한 시선을 의도적인 비하로 판단하기도 한다(State of Mind). 그러나 어떤 경험도 성장하는 기회로 삼는 마음을 갖도록 훈련이 필요하다(Falling Forward). 한국 사회는 그런 면에서 이전보다 많이 좋아진 듯하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함께 사는 외국인들도 좋은 시민이 되면 좋겠다.   이를 위해, 나는 한국사회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나의 이민 생활과 학업, 사역을 통하여 배운 경험들을 나누고 있다. 그들의 정서와 정체성이 건강하게 훈련되어, 이 사회에서 긍정적인 자세로 잘 살아 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일이다. 또한 그들의 시민의식이 건강해야 이 사회가 평안해 질 것을 믿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이민 가서 첫 해에 경험한 일이다. ‘Jafco’라는 전자제품 백화점에 가서, 사용하던 전자시계의 건전지를 바꿔달라고 점원에게 설명했다. 그런데 그 백인 여성은 나의 발음을 흉내 낸 후, 주변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나를 놀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잠시 후, 한 중년 신사가 오더니, 그들에게 비켜달라고 한 후 내 앞에 서서, 정중히 사과를 하였다. 그리고는 두 팔을 벌려 진열장 안의 모든 시계들을 보여 주며,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선택하라고 했다. 그 분은 그 백화점의 당시 책임자였던 것 같았다. 그 분은 직원이 고객에게 잘못을 했으니, 대신 사과하고 보상을 하고 싶다는 뜻으로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 분에게 ‘나는 지금 시계의 건전지를 바꾸려고 왔으니, 그렇게만 해 주면 된다’고 말하자, 그는 손수 내 시계를 열고, 건전지를 바꾸고, 세척까지 한 다음, 정중하게 서서, 상냥한 모습으로 나에게 다시 사과를 하였다.   이 일은 당시 미국에서 새 삶을 시작하며, 내 마음을 잘 지키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킨 값진 승리였다. 이후의 이민 생활에서 가질 수 있는 부정적인 마음 대신 좋은 사람과 기억을 마음에 담는 선례가 된 것이었다.   콜린스 영어사전과 대부분의 사전은 이런 ‘마음 상태’를 ‘특정한 순간’에서의 내 기분과 정신 상태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 마음 상태를 새롭게 해야 한다고 예시했다.    “I want you to get into a whole new state of mind.” 때에 맞는 새 마음으로 나를 늘 조정해야 한다. 마음에 있던 상처와 피해의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면 상대의 의도를 왜곡할 수 있고, 불신을 깔아 놓고, 남을 대하면 도리어 피해를 줄 수 있다. 나는 소수자, 피해자, 연약자의 입장이니, 다른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저항하고, 권리를 주장하면 상대편은 공연히 매도되는 억울한 입장이 될 것이다. 이것은 갑질 못지 않은 ‘을질’의 저지름이 되는 것이다. '피해의식'은 나쁜 경험으로 인해 두려움과 거부감이 마음에 자리잡는 동안, 그 마음을 건강하게 회복하지 않은 결과이다. 그러면, 그로 인해 인생의 어느 때에, 부정적인 거부감, 방어의식, 분노, 불평, 불만 표현으로 ‘피해자’ 입장을 정당화하며, 책임의식도 약해진다. 마음에 있는 부정적 에너지를 표출하며,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피해자 입장의 자기 요구를 ‘정당한’ 권리라 생각하고 투쟁하는 동안, 남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으니 그야말로 아픔을 사회에 악순환 시키는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며칠 전에 동남아 국가의 어느 민족단체에서 강의할 수 있는 기회에 이런 이슈를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수업을 마치기 전에, 공부 한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젊은이들이 이해 해 준 것이 너무 고마워서, 내가 미국 사회에서 소수자의 입장으로 오래 사는 동안 마음을 지킬 수 있었던 한 방법을 소개하고 나누었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백화점에서의 경험을 했던 청년시절에 내 마음을 지키려고 했던 한 습관이었다. 당시 나의 좌우명격인 말씀을 손수 크게 써서, 내 방 문지방에 붙여 놓고, 외출하기 전에 복창하였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이 사회에서 각 개인이 건강한 마음으로 살고 대한민국이 더욱 강건하길 소원함으로 기도한다.       *김윤곤목사는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구약 및 상담학) 학위를 받고, 앵커리지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로 17년 시무했다. 미국장로교 대서양한미노회 노회장 등을 역임하고, 아프리카 케냐에서 다종족 주민 협력 프로젝트 등을 위해 7년간 선교사로 지냈다. 김목사는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목양적 단상과 영감을 이민자·목회자·선교사·다문화 사역자의 관점에서 나눌 예정이다. (격주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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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당신의 뇌] 뇌를 알면 수면이 보인다 (3)
      렘수면은 신체는 잠자고 있으나 꿈을 꾼다거나 안구가 움직이는 등 뇌는 깨어 있을 때와 비슷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렘수면은 깨어날 준비 상태라 할 수 있어서 깨우면 쉽게 깨어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48시간 정도는 잠을 자지 않아도 정상적인 뇌 활동이 되지만 그 이상이 되면 정상적인 활동이 어렵게 된다.   그러면 왜 잠을 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신경세포는 다른 신체조직의 세포와 달라 일단 망가지면 재생될 수 없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잠을 잔다는 것은 뇌를 보호하는 안전장치의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다. 잠을 자지 않는 동안에도 뇌파의 기록을 보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수면뇌파가 기록된다. 이를 미세 수면이라고 한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전혀 잠을 자지 않는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뇌는 적당한 수면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보통 7~8시간의 수면이 적당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수면이란 필요에 따라 가감될 수 있어서 엄격하게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처해진 환경에 따라 각각 정해진 범위의 리듬생활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낮에 활동하고 밤에 휴식을 취하는 1일의 리듬생활을 한다. 즉 명암의 빛 리듬에 동조하는 생활을 한다. /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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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3-11-09
  • 정성구박사 칼럼
      국민의 힘 혁신위원장 인요한 박사가 요즘 큰일들을 하고 있다. 그는 전국을 누비며 상상도 못 할 신선한 아이디어로 정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인요한 박사의 행보에 대해서 국민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다음 선거의 유, 불리를 따져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요한 박사는 미국인이면서도 토종 한국인이다. 또 그는 의사임과 동시에 교수이며, 남 장로교(P.C.A) 선교사이기도 하다.   나는 인요한이 남 장로교회의 보수신앙을 그대로 고백하고 간증하고 있기에 마음에 평안이 왔다. 그는 그의 선대 선교사들의 뒤를 이어서 66권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법칙은 <성경>이라는 것을 명백히 간증하고 있다. 사실 전통적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을 지켜 오던 북 장로교는 자유주의 물결로 성경의 무오성을 부정하고 종교다원주의로, 혼합주의 사상으로 변질되어 이른바 연합장로교회(PCUSA)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을 반대하는 메이첸이 중심이 되어 정통 장로교회(OPC)가 생겼다. 연합장로교 사람들은 대부분 ‘모든 종교는 같다’는 사상을 가진 이른바 에큐메니컬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미국 교회는 유럽교회처럼 무너져 가고 있다. 신학의 자유화가 교회의 세속화를 가져 왔다. 미국 교회는 청교도 신앙 위에 세워졌다고 하지만, 청교도 신앙은 이미 18세기에 병들기 시작해서 무너지고 있었다. 오늘날 미국은 청교도적 신앙을 찾을 수가 없고, 대부분 신학교에서는 자유주의 사상, 성경 비평주의, 종교 다원주의를 가르치고 있는 형국이다.   남 장로교회도 한때 큰 어려움에 빠졌으나, 남 장로교회는 북 장로교회에서 이탈한 교회와 새로운 교단을 만들었다. 바로 남 장로교회에 뿌리를 둔 P.C.A(Presbyterian Church of America)이다. P.C.A 교단을 만드는데 숨은 역할을 한 지도자는 금세기 대 전도자요,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던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 박사였다. 그는 몰락하는 유럽교회의 선교사로서 스위스의 알프스 길 몫에 라브리(L’abri) 곧 피난처를 만들어 알프스를 찾는 신학자, 목사, 교수, 예술가, 정치가, 대학생들에게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주이고 <성경>만이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유럽과 미국과 세계를 깨웠다. 나는 52년 전에 프란시스 쉐퍼 박사와 함께 <라브리 공동체>에서 그의 메시지를 듣기도 하고, 쉐퍼 박사를 껴안고 함께 기도했던 기억이 있다. 그 한 사람 쉐퍼 박사가 남 장로교회 후신인 P.C.A 교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인요한 의료 선교사의 입에서 오직 성경(Sola Script- ura)이라는 말이 나와서 기뻤다. 특별히 그는 인휴 목사 선교사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영향을 그대로 받은 사람이다. 지난번 칼럼에서 말한 대로, 나는 인휴 목사님을 미국 에틀란타 조지아에 있는 남 장로교 선교부에서 만났었다.   인요한 박사가 영적으로 완전히 깨어지고 변화된 것은 다름 아니라, 여수에 있는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기념관>을 방문했을 때였다. 손양원 목사님은 일제의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5년의 옥고를 치르고 나와, 소록도의 나환자를 위한 목회를 하고 있었다. 6.25때 공산주의자들은 여수를 점령하고, 당시 손 목사님에게는 장래가 촉망되던 두 아들 <동인>이와 <동신>이는 공산당 청년이 쏜 총에 맞아 순교를 당했다. 그런데 손 목사님은 천벌을 받아도 마땅할 그 공산당 청년을 용서하고 오히려 양자로 삼았다. 그리고 남대문 교회에서 두 아들의 장례식을 치를 때 오히려 그는 하나님 앞에서 <9가지 감사>를 한 것은 지금까지도 유명하다. 그때 현장에 있었던 인용준 목사님(전 고신대, 총신대 교수)이 손 목사님의 말씀을 받아 쓴 것을 필자가 가지고 있다. “또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두 아들의 순교를 주시니 감사합니다”였다. 그리고 손양원 목사님 자신도 퇴각하는 공산당에 의해서 복숭아밭에서 순교 당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인요한은 “여수 손양원 목사의 순교기념관은 예루살렘 성지보다 더 위대하다”라고 고백하면서 그는 “오늘의 대한민국, 오늘의 한국교회가 이렇게 있게 된 것은 순교 성자 손양원 목사가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가는 곳곳마다 간증하고 있다. 인요한의 가슴 속에는 앞선 선교사들의 뒤를 이어 뜨거운 가슴으로 손양원의 순교 신앙과 삶을 간증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40년 전부터 한국교회의 위대한 선각자들, 길선주, 김익두, 김화식, 주기철, 손양원, 박형룡, 박윤선, 한상동 등의 사상과 삶과 그들의 메시지를 책으로 만들었고, 그것은 10개 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그리고 2002년 헝가리에서 그 책이 출판되었을 때, 내 책 가운데 「손양원 목사의 순교 신앙과 설교」라는 곳을 읽고 그들은 “손양원 목사의 모델”이라고 말하며, 과거 공산당의 앞잡이 하던 자들을 어찌 처리할는지 고민하던 중, 손양원 목사님이 보여준 <사랑>, <희생>, <통합>, <용서>를 자신들의 모델로 삼았다고 했다.   인요한 박사는 ‘여수 애양원 손양원 목사의 3 부자(父子)의 순교’를 깨달으면서 진정으로 한국을 사랑하게 되었고, 한국의 위대한 성자요, 대 전도자요, 사랑의 사도인 손양원 목사님을 그의 정신적 멘토로 삼았다. 지금 그는 의료 선교사에 걸맞지 않게 국민의 당(혁신위원장)이 되어 <용서> <사랑> <희생> <통합>을 외치며 일하고 있다. 안용준 목사는 손양원 목사의 전기를 쓰면서 그를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했다.   인요한의 정신적 멘토인 손양원 목사를 한국사회와 정치계와 한국교회가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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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08
  • 바람같은 성령
    가을이다. 바람이 분다. 오색단풍이 온산을 덮고 나뭇잎들이 가지위에 펄럭인다. 아침 햇살에 땅위에 떨어진 낙엽들은 팔랑이며 재잘대며 바람과 함께 이리저리 구르며 골목길을 누비고 어깨동무 마주 보고 까르르 웃음꽃 피운다. 목소리 높여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같다. 나뭇잎새들이 가지위에 펄럭이는 것을 보며 우리는 바람이 부는 것을 알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되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성령은 바람 같고, 불의 혀 같고, 물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비 같고,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으며, 비둘기같이 임하셨다. (행2:3, 요4:14, 7:37, 시72:6, 마 3:16) 삼위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언제나 항상 함께 일하신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셨고(창1:2)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요 1:1~14)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으며(마1:18~20) 잡히시던 날밤 겟세마네 동산에 천사가 하늘로부터 나타나 힘을 더하셨고(눅22:43)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받으러 광야로 가셨다.(마4:1)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신다. (요14:9~10) 바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성령도 이와 같다.   /한강교회 권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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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07
  • [당신의 뇌] 뇌를 알면 수면이 보인다 (2)
      이 시점에서 깨어나면 자신이 잠자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 단계에서는 호흡과 맥박은 느려지고 근육은 이완된다. 제 2단계는 조용하게 잠든 상태로써 이 시점에서 깨어나게 되면 정신이 맑아질 때까지 2~3초 걸린다. 그래서 자신이 잠자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잠들고 나서 30분정도 지나면 제 3, 4단계가 되는데 뇌파는 진폭이 커지고 느리게 된다. 이때는 깊은 잠에 빠진 상태이다. 아주 깊은 잠에 빠진 후 30분정도 지나면 다시 제 3, 2, 1단계로 되돌아간다. 잠자는 동안에 이 같은 리듬이 반복되는 것이다. 잠의 제 1단계 때에는 팔다리의 근육은 힘이 빠져서 마비상태처럼 된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안구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인다. 물론 이 단계도 잠자는 상태이다.   잠자는 동안에도 뇌는 활발히 움직이고 신경세포의 재생도 일어난다. 잠자는 동안에도 뇌는 활발하게 활동하며 안구에 명령을 내린다. 이 단계에서 뇌는 안구에만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도 명령을 내려서 맥박이나 호흡이 빨라지고 얼굴이나 손발이 꿈틀꿈틀 움직인다. 이 단계가 렘수면이다. 잠들고 나서 3시간 정도 사이에 비렘수면인 깊은 잠에 빠져든다.    거의 90분 간격으로 렘수면과 비렘수면이 교대로 4~5회 반복된다. 아침이 가까워지면 비렘수면도 얕아지고 렘수면은 40~60분 간격으로 빈번해진다. 그래서 깨어나기 쉬워진다. /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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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06
  • [당신의 뇌] 뇌를 알면 수면이 보인다 (1)
      오늘날의 인간은 원시수렵 사회는 물론 농경사회에서도 벗어났지만 최근의 달라진 생활양식이 뇌구조나 성 차이에 반영되기에는 산업사회, 정보화 사회의 역사가 너무 짧다고 볼 수 있다.   잠은 깊은 잠과 얕은 잠의 리듬으로 이루어진다. 잠자는 동안에 뇌와 몸은 보통 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실은 그렇지 않다. 잠은 깊어졌다 얕아졌다 하는 리듬이 있고 성질이 다른 두 종류의 잠이 있다. 그 하나는 뇌도 잠잔다고 할 수 있는 상태이다. 뇌파를 보면 뇌의 활동이 휴식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잠의 리듬으로는 깊은 잠에 빠졌을 때에 해당한다. 맥박과 호흡은 느려지고 규칙적이 되며 조용하게 잠들어 외부 자극으로 쉽게 깨어나지 않는다.   또 하나는 뇌가 약간 활동하고 있어서 뇌파를 보면 빠르고 잠의 리듬으로는 얕은 잠 상태이다. 이 시기에 꿈을 꾸게 되고 안구가 빠르게 움직이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이 때를 급속안구운동수면, REM(렘)수면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급속안구운동이 없는 잠을NREM(비렘)수면이라고 한다. 이처럼 잠을 잔다는 것은 렘수면과 비렘수면이 반복되는 것이다.   우선 잠자리에 들면 전신의 근육은 이완되고 머리가 멍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빠르게 잠에 빠져든다. 이것이 잠의 제 1단계이다. /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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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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