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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의 노인 29] 활동적인 노인 아브라함
    경로당 중심의 복지 활성화로 노인선교 거점확보 절실 열정적인 활동통해 건강한 신앙 지키는 노인이 되어야  2017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 이제는 노인들 자신이 70세 이상은 되어야 노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70세가 넘었으나 왕성하게 활동하는 노년층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대중매체에서도 ‘중년과 같은 노인’ 이미지를 내세우며 젊은 노년을 강조하고 있다. 신체적으로 활발하고 지속적인 사회 참여를 이어가면서 경제적인 여유를 누리는 신 노년층, 활동적인 노년층이 교회에서도 자주 보인다. 그럼에도 문제는 현재 대부분의 교회에서 신 노년층에 대한 사역들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수년 전에 <시니어 사역>이란 책자를 발간하고 교회가 소위 ‘활동적 노년 사역’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었는데, 들으면서 공감은 하면서도 실제로 동참하거나 적극적으로 자료를 요청하는 목회자들을 본 적이 없다.  고령 후기에 속하는 70대 후반과 80대를 위한 교회 사역들도 개발되어야 한다. 당연히 다음 세대를 고려하고 그들을 위한 공과개발이나 교육 프로그램들을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총회 교육국이나 신학교에서 고령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공과나 주일예배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전파해야 한다. 심하게 말한다면 현재 총회 교육부나 대부분 신학교의 기독교교육학과 교수들은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예전부터 해오던 안정된 프로그램들을 매번 반복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문가 그룹을 만들어 ‘신 노년층’을 위한 사역과 ‘후기 고령층’을 위한 사역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이 시급하다.   세계보건기구에서 규정하는 활동적 노년은 젊은 시절과 같이 건강하고 경제활동을 이어가는 생활을 의미하지 않는다. 노년기의 다양성을 고려해 노인들 각자의 몸 상태를 따라 조금씩이라도 활동하는 노년을 말한다. 노인복지법에 따라 노인여가복지시설로 노인복지관, 경로당, 노인학교들이 있다. 이들 시설은 전국에 약 7만여 개가 된다. 그중 경로당의 비중은 97%를 차지한다. 따라서 교회는 경로당을 이용하여 노인복지와 함께 노인선교의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 대다수 노인이 머무는 경로당을 내버려 둔다면 노인선교는 어렵다.  후기 고령층의 노인들을 몇 집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사회적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집에서만 사는 노년이다. 이들은 이동에 불편을 겪고 무료함에 익숙해져서 활동이 없이 지낸다. 둘째로 주로 집에서 지내며, 간혹 사회적 교류나 여가 활동을 위해 외출하는 노년이다. 셋째로 경로당을 중심으로 매일 활동하며 식사, 건강체크, 여가, 운동 등을 하는 노년이다. 넷째로 교회나 복지관, 도서관 등을 다니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노년도 있다. 첫째와 둘째 집단은 건강도 마음도 위험할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보조수단을 이용해서라도 활동하는 노년이 되어야 한다.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경우 활동적인 노년을 보내는 모델이다. 그는 장막 문에 앉았다가 나그네를 만나 영접한다.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2절)하는 모습을 보면 그는 분명 활동적인 노인이다. 대접하는가 대접받는가의 작은 차이가 결국 활동적 노년과 비활동적 노년을 구분 짓는다. 그는 매우 신속하다. 나그네들을 붙들어 놓은 후 급히 장막에 들어가 아내 사라에게 떡을 굽도록 부탁한다(6절). 가축 떼가 있는 곳으로 가서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 주어 요리를 만들게 한다(7절). 젖과 우유와 송아지 요리를 직접 나와 손님들 앞에 차려놓고 대접한다(8절). 결국, 손들이 대접받을 때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지휘하며 모든 음식을 배설하였다. 그는 나그네들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려는 의도로 방문했다는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매달려 간청한다. 이런 열정이 아브라함을 신앙의 인물로 승화시켰다.  /평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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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2
  • [목회자 칼럼] 도시교회들이여 빚을 갚으라
      요즘 인기 있는 YV 프로그램 중에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자연인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있다. 전혀 재미없을 것 같은 내용임에도 그렇게 시청률이 높은 것은 삶의 분주함으로 인해 지쳐 있는 현대인들이 쉼을 가지고 여유의 시간을 누리며,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다른 이들과 애쓰고 경쟁해야만 얻어지는 결과물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혜택들을 자유롭게 누리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 이런 인기 있는 프로그램을 등장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처음 만들어 주신 자연인 상태의 인간 본성의 마음일 것이다.    도시에서 여러 해 동안 목회를 하다 처음으로 시골 목회를 접하게 되었다. 농촌교회들의 현실과 어려움들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나의 농촌 목회의 실질적 문제로 피부에 와 닿기까지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농촌교회의 문제는 뻔하다. 노년층 성도들은 늘어 가는데 저 출산과 젊은이들의 도시 쏠림 현상으로 인해 미래의 교회를 책임질 어린 아이와 젊은이들은 교회에서 찾아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안되는 청소년들을 가르쳐 청년이 되면 도시로 나가 버리고 그곳에서 교회를 출석한다. 그리고 명절 때와 휴가시즌에 부모님 뵙겠다고 고향에 내려와 잠깐 교회를 방문한다. 그것도 부모님 살아계실 때뿐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집은 그대로 폐가처럼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버린다. 도시에 나갔던 자녀들이 시골로 돌아와 산다는 것은 거의 기대할 수 없다. 이 상태로 5년만 지난다면 성도들의 대부분이 70-80대를 이루고 있는 필자의 교회도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를 보고 있는 시골 목사의 마음은 가뭄에 콩잎처럼 타들어 가기만 한다.    이 교회에 부임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도시 목회에 비해 너무 한가하게 느껴지는 시골목회라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선배 목사님께 심정을 애기했더니 1년만 지나면 된다고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농담 겸 웃으면서 말을 해 주었다. 지극히 필자의 개인적 경험이지만 여름에는 교회 앞마당에 풀 뽑기, 겨울에는 눈 치우기, 봄에는 꽃 심기, 나는 강아지 밥을 주고, 아내는 고양이 밥을 주면서 그렇게 1년이 지나니 정말 놀랍게도 그런 생활이 목회인 것처럼 적응이 되었다. 이것이 정말 농촌 목회일까? 전도를 하려고 동네 집들을 돌아보기도 했다. 동네 모든 가구들을 방문하는 데는 하루면 족했다. 그들의 반응은 너무 호의적이었고 이미 전임 목회자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이 지역은 두 집에서 거의 동네 모든 농사를 다 짓고 있다. 심지어는 여러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을 합숙시키며 농사를 짓는다. 기업형 농업으로 변화되고 있는 과정이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노인층들이 늘어가면서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으나 이런 모습을 보는 필자의 마음은 착잡하다. 하루는 면사무소에 가서 면장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이렇게 농촌 현실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어떤 대책이 있느냐고 묻자 대답은 참 간단하고 쉬웠다. “참 걱정입니다.”   어느 날 도시에 생활하다 이곳으로 내려와 살려고 집을 짓고 있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 때 문뜩 하나의 생각이 스쳐갔다. 많은 이들이 시골에 내려와 살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인들이 없을까? 만약에 도시에 사는 성도들이 뜻을 가지고 귀촌. 귀농을 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근처 시골 교회에 출석 한다면 그 교회는 얼마나 힘이 될까? 최근 귀촌, 귀농의 인구가 2018년 기준으로 50만 명을 이루었고 증가 추세는 둔화되고 있지만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모든 농업기술 센타에서 전망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증가하는 귀촌, 귀농인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농촌교회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귀촌, 귀농에 대한 많은 성공사례도 있지만 의외로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귀촌, 귀농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시골 교회 목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골 교회의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 그곳에서 터를 잡고 교회를 출석하게 되어 도시 교회 부흥의 한 축을 이루었다면, 그리고 젊은이들이 많은 교회가 되었다면 도시교회는 시골교회들에 대해 그것도 일종의 빚진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가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바라며 농촌기술센타로 발을 옮겼다.  /송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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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2
  • [향유옥합] 무더위 여름,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자
      나와 남편인 김철환목사는 이번 무더운 여름 동안에 두 차례에 걸쳐 지방을 다녀왔다. 이유인즉 지난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총회 훈련원과 협약식을 맺고 7월 초에 루터대학교에서 스데반 돌봄사역 지도자 강습회를 2박 3일간 진행했기 때문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예장 통합측 교단에 속한 목회자와 평신도, 사모 등 30여 명이 참석하며 이웃돌봄을 위한 사역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습회 당시 특별히 여수에서 올라와 교육에 함께한 배용주목사는 반가움을 표현하시며 우리 내외를 1박 2일로 초대해 몇 년 만에 여수를 방문했다. 방문을 위해 배목사는 여수 근처 순천에서 시무하고 있는 예장 통합측 훈련원 운영위원장이셨던 안정순목사와 함께 계획을 세우며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수를 방문한 지 십오 년의 세월이 지나고 다시금 찾아가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교제 가운데 서울베델국제교회를 섬길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김철환목사의 목회사역을 도우며 있었던 일을 회고했었는데 미국인 노총각목사와 외국에서 오시는 손님 접대 등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는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이때 친구 소개로 알게 된 서울의 큰 장로교회를 섬기는 권사 한 분과 동행했다.  이 권사는 TV를 시청하다 홈쇼핑에 나온 네 가지색으로 된 치마 바지를 보고 나를 위해서 주문해 놓고 선물로 주고 싶다며 전화를 했다. 이에 직접 권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최근에 했던 강습회로 주제가 바뀌고 여수를 가게 되었다고 하니 사촌 여동생과 설악산으로 피서를 가고자 했으나 생각을 바꾸고 결례인 줄 알지만 본인도 여수로 함께 가고 싶다고 제안을 해 김철환목사와 의논을 통해 두 주간에 걸쳐 이웃돌봄사역을 위해 땅 밟기를 하며 지방을 다녀왔다.  당시 이 권사는 러시아 대사관 주관으로 삼일절 행사에 초청받아 모스크바 국립박물관 동양관에서 한 달간 전시회를 성황리에 마치고 돌아왔는데 큰 행사 후에 오는 증후군으로 조금 기분이 가라앉은 감이 들었다고 했다. 권사의 가족 중 84세가 된 올케언니가 있는데 치매가 와서 부산에 있는 요양원에서 쉬고 있다고 밝혔다. 젊은 시절부터 올케언니에게 전도를 했는데 올케언니가 잘나가던 시절에는 복음을 거부하더니 최근에 작은아들과 방문했을 때는 복음을 받아들이신 것을 깨달았다며 올케언니의 굴곡이 심했던 긴 인생 여정을 보며 인생 무상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무상함 가운데 살아 계신 하나님께 의존하며 나와 대화를 나누던 중 이번 강습회에 특별히 부산에서 세 분이나 참석했다는 말을 전하자 권사는 “땅 밟기를 하자. 만나는 모든 목사님들의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권사와 함께 먼저 여수와 순천, 군산까지 땅 밟기를 하며 다녀 왔고 그다음 주에 내외와 권사는 청도에서 하룻밤을 묵고 부산 가서 요양원에 계신 올케언니 세례식을 진행했다. 세례식에서는 김목사가 동석한 며느리와 따님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은혜를 베풀었다. 그리고 목사님과 권사님께서 교대로 운전하며 부산에 계신 목사님을 만나 식사를 대접하며 이 무더위에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고 왔다.  아직도 정이 많고 사랑이 깊은 여수와 순천에 계신 두 목사님께서 우리 내외와 권사를 만나 나그네 돌봄으로 베풀어 주셨고 또 순천에 계신 지도자 되신 문영찬목사는 순천만 투어와 더불어 아침 식사를 제공해 주었다. 일찍이 순천 교계의 지도자로 있는 전성만목사의 교회도 짧게 방문하고 올라오는 길에 군산 교계의 지도자셨던 문승식목사 내외를 만날 때 동행한 권사가 그렇게 바라던 식사 대접을 할 수 있었다. 권사님은 목사님께 대접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하며 당황해 했다. 이것이 바로 사랑나눔을 통한 이웃과의 정이 아닌가 싶다.  /스데반돌봄사역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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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2
  • 아이의 인성발달(5)
    다섯째. 아이의 인성은 모방을 통해서 발달됩니다. 최근 신경과학의 가장 획기적인 발견이 있는데, 그것이 거울신경 (Mirror neuron)입니다. 우리가 거울 앞에 서면 거울에 내 모습이 그대로 보이듯이 우리 뇌에는 거울신경이 있다는 것입니다. 1990년대 중반, 지아코모 리졸라티와 그의 연구진은 원숭이들이 포도를 잡을 때 그를 보고 있던 다른 원숭이들이 포도를 잡는 모습을 볼 때와 똑같은 신경이 점화된다는 이론이다. 이를 거울신경 또는 공감신경(뉴런) 이라고 합니다. 거울신경은 행위의 관찰과 모방사이가 신경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래서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피질기질이 있다는 사실을 증거해 준 셈이다. 타인의 행동뿐만 아니라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신경적 기반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울반사 시스템은 뇌의 전두엽과 측두엽을 나누는 틈 안쪽에 있는 뇌 부분인 뇌섬엽에 존재하는 것으로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경험하며 내장운동반응을 통해 조절하는 것입니다. 이 거울반사조직은 무의식적이고 내적으로 행동과 감정을 모방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느낌이나 행위를 암시적으로 파악하게 합니다. 인간은 신체의 모든 부위의 움직임에 거울신경이 반응하며 목표가 없는 행동에 대해서도 점화하는데, 하물며 어떤 행동을 상상 만 해도 거울신경은 활성화됩니다. 거울신경은 행동의 모방에 관련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행동의 의도를 이해하는 데에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통화하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고 할 때 나는 친구의 표정을 거울 반사하여 똑같은 미소를 짓고 똑같은 운동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전화로 말을 다 듣지 못해도 친구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표정이나 자세, 말의 억양과 강세, 심지어는 말하는 방식이나 사용하는 단어까지 무의식적으로 흉내 냅니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닮아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흉내 내기를 통해 엄마의 표정을 따라 합니다. 어머니가 혀를 내밀면 아이도 표정은 따라합니다. 어머니가 웃을 때 아이도 같이 웃습니다. 상대의 표정과 말투, 자세와 몸동작을 자연스럽게 흉내 내어 상대와 감정적으로 비슷해지는 현상을 감정전이라고 합니다. 신생아실에서 갓난아이가 울면, 다른 아이들도 함께 우는 것만 봐도 감정전이의 증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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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1
  • [실로암] 보드마카에서 복음으로
    ▲ 박상아 마커스가 보드마카인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전도를 받았는데 그 친구의 집요한 전화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상담학을 전공하면서 믿지 않는 집안에 모든 역기능이라는 기능들은 다 우리가정이라는 것을 울면서 공부했었다. 결국 지금은 두 분이 이혼을 하셨지만 매일 반복되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부모님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내가 강해지는 것이라고 어린 나는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위태로운 내가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버티고 있던 때에 나는 겉으론 강해보여도 누군가에게 안겨 위로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일요일 아침마다 사랑하는 동물농장을 포기하고 교회에 와서 알 수 없는 노래들로 입만 뻥끗거리며 립싱크하는 내가 참 작게 느껴질 즈음 친구가 마커스 예배에 가보자고 했다. 보드마카같은 이름의 집회에서 나는 사람들이 다 미쳤는가 싶었다. 두 팔을 벌리고 큰소리로 기도하고 있는 모습에 나도 이렇게 미치는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마음을 다잡고 연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때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내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을 친구가 보더니 놀라며 왜 우냐고 했다. 나도 모른다며 이런 내 모습에 더 놀랐다. 다들 이런 과정으로 미쳐가나 보다고 생각했을 때 어디가서도 울지 못했던 내가 울 수 있는 유일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고 멈추지 않고 계속 울었다. 서글픈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나를 가장 따뜻하게 안아주시면서 나의 마음에 따뜻하게 말씀하셨다. “상아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결코 마음먹은 그 마음이 아니라 정말 내가 아닌 다른 그 무언가의 따뜻함이었고 나는 홀로 서있었지만 안겼다. 하나님은 내가 안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어떻게 아시고 나를 이렇게 안아주시는 걸까. 정말 그 누구도 모르는 나 혼자만의 비밀이었는데 말이다. 내 이름을 아시고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이 나에게 따뜻하게 찾아오셨다. 그 이후로 나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 믿지 않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적처럼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를 입학했고 학교에서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경험했다. 자연과 사람을 통해 아름답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기독교문화예술동아리 ‘닮’을 통해 예수님과 닮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졸업식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그토록 간절히 함께 드리고 싶었던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나를 사랑한다고 했던 하나님을 만나 진정으로 웃고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삶은 정말 지옥같이 괴로운데 아무것도 없는 곳에 아무것도 아닌 내 자신을 마주하는 텅 빈 세상 속에 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믿고 나니 내가 정말 가까이 주님과 동행하는 이 삶이 구름처럼 가벼운지 모르겠다. 이 천국을 혼자 누리는 것 같아 괴로울 때가 많지만 일상의 선교사처럼 믿지 않는 가정과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시련의 바람은 불지라도 나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 나를 도우시는 분, 나를 사망에서 건지신 분,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분을 따라 예배 없는 곳에 예배를 세우는 예배자로 살아가고 싶다.  /미와십자가교회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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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1
  • [성경의 노인 28] 장수 노인 에녹
      창세기 5장은 아담의 계보를 소개하는데, 당시 대부분은 장수하였다. 특히 므두셀라는 ‘창을 던지는 사람’이란 뜻이 있는데 969세를 살아 최장수 인물이다. 이때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900세 이상 살았던 인물들이 많았던 시기였다. 후에 일어난 노아의 홍수 심판 이후로 지구 조건이 변화되고, 인간 생존이 어려워지고 실제로 허약해지므로 수명이 급속도로 줄어들게 된다. 아담의 7대손이었던 에녹은 ‘순종한다. 시작한다, 바친다’라는 뜻을 가진 인물로 이름에 걸맞게 살았다. 그는 365세를 살았고, 인생 마지막에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창세기 5장 24절). 현존하는 기록에서 최장수 노인은 프랑스 잔 칼망으로 122세를 살았다. 캐나다의 메이외르가 116세, 미국의 모르텐센이 115세, 우리나라의 경우 최남이 할머니가 113세로 타계했다. 인간은  어떻게 하면 장수할 수 있는지 그 원인을 발견하려고 애를 썼지만, 장수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생의 수명도 좌우하신다. 그렇지만 인간이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몇 가지 한국인 장수 노인들의 특징을 조사 발표한 논문에 장수 원인을 보여준다. 첫째는 장수인구 가운데 91%가 여성이었다. 여성 노인들은 장수 시대에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 둘째로 육체적 노동에 종사한 사람들이 장수한다. 아마도 육체 노동자들이 정신 노동자들보다 활동량이 많고 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셋째로 농촌 사람들이 도시 사람들보다 더 장수한다. 농촌은 맑고 깨끗한 공기와 물, 풍부한 숲 등의 쾌적한 자연환경의 덕을 본다고 분석하고 있다. 넷째로 주목할 것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장수한다. 장수인구 가운데 64%가 종교를 갖고 있었다. 다섯째로 자녀를 4명 이상 둔 사람이 1~3명 자녀를 둔 사람들보다 장수했다. 기타, 소식하는 사람, 된장국을 매일 먹는 사람, 채소와 생선을 주로 먹는 사람, 음주나 흡연을 하지 않는 사람,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 손이 부지런한 사람들이 장수한다는 결과이다. 다시 창세기의 에녹을 보자. 그는 하나님과 동행한 인물이다. 성경에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알려진 사람은 에녹과 그의 후손 노아이다. 물론 영적으로 많은 인물이 하나님과 동행했지만, 성경에 직접 묘사된 바로는 두 사람뿐이다. 그는 무려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창세기 5장 22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도 자녀를 낳았다. 즉 영적으로 깨어있던 인물이었지만, 자녀를 생산하고 기르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늘 기독교의 문제점은 영성의 부족이 아니라 실존의 삶에서의 실패이지 않나 싶다. 과거 어느 시대보다 신학운동이 활발하고, 기도 열심히 하고, 성경통독과 같은 프로그램에 교회당이 가득 찰 정도로 열기가 높다. 문제는 영성의 발전에 비해, 실전에 약한 것이 오늘날 교인들의 삶이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인물이다. 히브리서에서 소개하는 믿음의 인물 가운데 아벨 다음으로 등장하는 에녹은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라고 증언한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일천 번째를 드리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지혜를 구했으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일천 번째를 통해 부귀와 장수도 선물로 받았다.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열왕기상 3장 14절). 네 날을 길게, 즉 장수를 선물로 주신 것이다.  /평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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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1
  • [목회자 칼럼] 휴가지에서의 교인의 영성관리
      내가 30대의 젊은 목회자로 지방 소도시에서 담임목사를 할 때에 나는 쉴 줄 모르는 목회자였다. 왠지 목회자가 쉬는 것이 죄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월요일에도 교회 사무실에 나가 있어야 사명을 다하는 목사처럼 생각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일 중독’이 아니었나 싶다. 그 후로 책에서 읽은 ‘쉬는 것도 목회다’라는 말을 생각하며 열심히 목회한 후에 잘 쉬는 것도 중요함을 깨달았다. 쉬지 않고 일하면 멀리 갈 수 없을뿐더러 ‘탈진’이란 중병이 찾아와 내 삶을 휘청거리게 하기도 한다. 그것은 매일 교인들을 양육하는 일에 매진하는 목회자와 현실 속에서 삶을 헤쳐나가는 교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전도사역을 마치고 돌아와 식사할 겨를도 없는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제자들이나 예수님께도 쉼과 재충전이 필요했음을 말해준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7일째에 안식하셨다. 인간에게 쉼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가장 잘 아시기에 안식일과 안식년, 희년의 규례를 주셔서 반복적인 쉼과 휴식의 시간을 가지도록 하셨다. 교회마다 여름은 뜨거운 영성훈련의 시간으로 교회학교 청년부 장년부의 수련회가 이어지고 국내 해외 선교활동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회집인원이 줄고 소그룹모임이 방학하고 새벽기도가 잘 모이지 않는 기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우리의 신앙생활이 잠시 휴식기를 갖는 틈새의 시간이다. 8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성도들의 휴가지에서의 영성 생활은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든 속박의 굴레에서 자유 하게 되는 것이 휴가이기도 하지만, 휴가지에서도 우리의 영성 생활은 지속되어야 한다. 시편 139편 기자는 “자신이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혹은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하나님은 거기도 계시고 거기서 자신을 보호하신다”고 고백한다. 진정한 성도의 휴가는 하나님이 굽어보시는 시야를 떠나 내 맘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분주한 삶 속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예수님의 임재와 동행을 깨닫는 기회이다. 부활의 예수님을 부인하고 엠마오로 낙향하는 두 제자에게도 예수님은 동행하셨다. 올해의 휴가가 휴가지에서 만난 예수님과 깊이 교제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시골이나 도서 벽지로 가는 성도들은 시골이나 바닷가의 조용한 시골교회를 찾아 함께 예배드리며 거기서 만나주시는 예수님을 경험하는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 가까이 교회가 없다면 가족들이나 휴가지에서 만난 성도들과 자연과 산, 시냇물, 바다를 바라보며 함께 드리는 찬양과 기도의 예배는 평소의 예배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색다른 은혜를 경험하게 한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내 인생의 쉼과 재충전의 주인 되시고 내 인생을 인도하시는 우리 예수님께 드리는 묵상의 기도는 내 삶의 새로운 사명을 발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꼭 휴가지에서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말씀과 은혜로 재충전 받는 여름 휴가가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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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1
  • [향유옥합] 역사의 현장에서 실천한 나라사랑
     요즘 연일 뉴스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언론들은 수출규제가 대한민국 법원의 징용 판결 결과와 일본 참의원 선거와 맞물려 전략적으로 진행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 기업이 겪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외세로 인하여 겪는 아픔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 또한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한국을 침략한 역사와 함께 흘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의 탄압으로 우리는 더 많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많은 종교인은 전국 곳곳에서 기도회를 열어 눈물을 흘리며 저물어가는 나라를 위해 기도했었다.  이화학당 학생들은 한국인 교사들과 함께 점심때마다 예배실에 모여 나라를 위해 기도했다. 이화학당 당장이었던 페인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학생들이 매일 같은 시간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이 이처럼 그 앞에 꿇어 겸손하게 기도하며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 주실 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기독여성들의 모습은 이미 이때부터 생겨난 아름다운 장면이다.  또한 교회여성들의 나라 사랑의 모습은 ‘절제운동’으로 나타났다. 3·1 운동 이후 일본은 표면적으로 문화 정책을 펴면서 부드러운 인상을 심으려 했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전보다 더 심하게 우리 민족의 뿌리를 제거하려고 애썼다. 또한 아편, 술, 마약, 담배 같은 정신을 병들게 하는 향락품을 들여오고 일본식 공창제도를 만들어 퇴폐 문화를 심었다. 조선 청년들의 혼을 퇴폐, 향락적인 것에 물들게 하여 민족의식을 뿌리 뽑자는 음흉한 통치였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 선구자들은 정신, 도덕운동으로 절제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절제운동이란 구체적으로 금주, 금연운동이며 공창폐지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교회여성이 중심이 되어 ‘조선기독교여자 절제회’로 조직되어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조선기독교여자 절제회’의 산파는 상동교회 교인이던 손메례부인이었다. 그의 본명은 이정규이지만 손씨 집안에 시집과 서양식으로 손씨 성을 따고 스크랜튼 대부인에게 세례를 받으며 ‘메리’란 세례명을 받아서 그것을 한문으로 표기해 손메례라 한 것이다. 손메례부인은 전국을 순행하며 절제운동 강연회를 가졌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조선기독교여자 절제회’를 창설했다. 회장은 유각경이 맡았고 손메례는 총무로 실질적인 일을 맡아 진행했다. 그는 이렇게 외쳤다. “조선의 금주 운동은 모든 운동 중에 가장 큰 운동이다. 육을 살리고 영을 살리는 운동이며 죽어가는 조선을 살리는 운동이다”  이처럼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교회 여성들은 외면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기도했고 행동으로 나라를 구하고자 노력했다. 여성들의 기도의 열정과 주어진 것에 자족하는 생활은 오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각화된 무역 분쟁과 소비가 넘쳐 몸살을 앓고 있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교회여성들이 본받아야 할 선배들의 정신이고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 옛날 시대의 어둠을 밝힌 선배들의 기도 소리를 기억하며 이 땅에 기도하는 여성들이 있는 한, 우리 앞에 놓인 어두운 길을 기도의 빛을 모아 함께 걸어갈 것이다.  /기감 여선교회전국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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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09
  • 아이의 인성발달(4)
      넷째, 아이들의 인성은 감각자극 통해서 발달한다 1990년 루마니아의 한 고아원에 수백 명의 아기들이 포대기에 쌓여 침대에 눕혀 수용되었습니다. 우유를 먹을 때도 아기들을 전혀 만져주지 않고, 그저 요람에서 우유병을 꽂아 놓고 먹게 하면서 아기를 2년 동안 이렇게 양육하였더니 발달이 더디고 더 어리게 행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 아기들은 만성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의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촉각자극에 의한 정서적 반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영아기는 촉각자극에 본능적으로 반응합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만지고 만져주기를 원하는 본능을 가진 존재입니다. 아기들의 오감 중 가장 중요한 접촉자극은 뇌 발달에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촉각 경험은 육체적 자극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의사소통기능의 수단이 됩니다. 아기는 이미 자궁에서 촉각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태어나서 안아줄 때에 반응하는 것도 모두 이 때문입니다. 생후 몇 주간은 촉각과 깊게 관련 되어있으며 포유반사는 촉각의 가장 원초적인 초기 경험의 단계입니다. 그래서 신생아는 엄마가 손을 만지면 엄마의 손을 꽉 잡고 발을 간질이면 발가락을 모읍니다. 촉각은 신생아의 발달상 오감가운데 첫 번째로 중요하며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더 중요합니다. 영아기의 촉각은 아기의 뇌 발달에도 속도를 높입니다. 접촉이 결여 된 아기들은 뇌의 중요한 부분이 거의 활동하지 않고 뇌 전체의 발달이 지연되는데 미숙아들에게 하루 세 번씩 열흘간 15분 정도 마사지를 해주면 마사지를 받지 않던 미숙아에 비해 47%나 몸무게가 더 나간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피부는 제2의 두뇌입니다. 아기를 어루만져주는 신체접촉을 통한 촉각의 자극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일찍이 13세기경 신성로마 제국시대의 프리드리히 2세는 어린아이가 언어를 전혀 듣지 못할 경우 어떤 언어를 배울지 궁금해서 신생아 몇 명을 부모에게서 떼어놓고 간호사에게 맡겼는데 간호사는 오직 우유만 줄뿐 만지거나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아기들은 어떤 언어도 배우지 못했고, 말을 배우기도 전에 모두 사망하고 말았는데, 이는 아기의 초기발달과정에 촉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발견한 셈입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는 뇌 피질에 있는 신경세포(뉴런)의 대부분의 수상돌기 가지가 첫 번째나 두 번째의 가지만 갖고 태어납니다. 출생 직 후 아기는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촉각을 사용하는데 맛을 느끼고, 소리를 듣고, 눈으로 보고 몸을 움직여서 온갖 감각과 운동 경험을 쌓아감에 따라 대뇌 피질의 수상돌기가 다시 가지 뻗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촉각은 대뇌피질의 지능발달 뿐 만 아니라 성인기의 뇌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줍니다. △아기는 피부자극을 통해서 사랑을 느끼고, △아기는 피부자극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고 △아기는 피부자극을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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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05
  • [성경의 노인 27] 꽃할배 다니엘
    ▲ 최종인목사   텔레비전에서 비추는 노년들의 모습은 현대 노년기의 교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다. 인터뷰하는 노인의 얼굴과 아래 자막에 뜨는 나이를 보면서 자신보다 젊다, 늙었다 한다든지, 드라마의 노인 연기자들과 자신의 신세를 비교하기도, 공감하기도 한다. 근래에 와서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장르의 여행 탐사 프로그램들은 많은 노년에게 노년의 담론을 갖게 한다. 특히 ‘꽃할배’라 불리는 노년 연기자들의 배낭여행은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 꽃할배를 꼽으라면 다니엘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경제적 독립성에서 다니엘은 꽃할배이다. 실제로 텔레비전에서 소개하는 ‘꽃할배’ 4인방은 연기의 거장들이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자유로울 것으로 생각된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보여주는 화면에는 이들의 집들이 소개되는데 잘 꾸며진 공간의 소유자들임을 알 수 있다. 노인의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라는 이 나라의 노인들에게 경제적 독립성은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다. 길어진 수명과 가족체계의 변화, 연금이나 저축에 대한 불확실성, 노인 불경의 시대를 살아가는 노년들에게 경제적 독립성은 당연히 강조되어야 한다. 다니엘은 국가의 정책을 주도하는 총리를 지닌 사람이어서 경제적 독립성은 두말할 필요 없어 보인다. 신체적 독립성에서 다니엘은 역시 꽃할배이다. 노년들에게 경제독립 다음으로 강조되는 것은 신체적 독립이다.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보행할 수 있다는 것은 노년에게 축복이다. 배낭여행이라는 콘셉트에서 잘 걸을 수 있는 능력은 중요한 기능이다. 노년의 이미지에서 보행의 자유는 신체 건강의 축도가 된다. 다니엘은 초기에서부터 채식을 하였다(다니엘 1장 16절). 아무래도 육식을 하는 것보다 채식이 건강상 유리할 것이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였다(다니엘 6장 3절). 다니엘은 습관적 생활을 하였다. 기도뿐 아니라 그의 삶이 습관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다니엘 6장 10절). 물론 다니엘 역시 힘들 때도, 아플 때도 있었다(다니엘 6장 27절). 그러나 오랜 생활 동안 국사를 돌보면서 기도 생활을 한 것을 보아 신체적으로 꽃할배였던 것으로 보인다. 관계적 독립성에서 다니엘은 꽃할배이다. 보통 노년의 독립성은 인간관계의 차원에서도 언급하는데 ‘꽃할배’ 4인방은 나이가 들어도 깊은 우정을 나누는 좋은 대인관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 4인의 역할은 여행이 계속되면서 지속해서 강조되는데, 젊은 멤버 이서진이 없어도 스스로 협력하여 숙소를 찾아가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멤버를 챙겨주는 모습들은 진정 노년의 인간관계의 모습을 비추어 준다. 노인에게서 독립성은 자신의 삶만으로는 부족하다. 넓지 않아도 좋은 인간관계는 노인에게 독립성을 선물로 준다. 경제적, 신체적, 관계적 독립성은 결국 노인 자신뿐 아니라 자녀와 주변인들에게, 사회와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개인이 영역이 노인에게도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성경에서 다니엘은 여러 인물과 관계를 지속해서 가졌는지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니엘서 곳곳에서 그는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지속해서 가진 것은 분명하다. 그는 환관장에게 인정받았고(다니엘 1장 16절), 왕에게도 인정받아 훗날 고레스 왕 시절까지 쓰임받았다(다니엘 1장 21절). 세 친구와의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우정은 모범이 된다(다니엘 2장 18절). 특히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을 무척 신임하였다(다니엘 2장 38절). 다리오 왕 역시 사자굴에 들어간 다니엘의 안부를 위해 새벽에 달려 나왔고 소리질러 울었다(다니엘 6장 20절). 다니엘은 다리오 왕뿐 아니라 고레스 왕 시절에도 형통하였다(다니엘 6장 28절). 결국 그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된다(다니엘 10장 13절). 이처럼 다니엘은 인간관계에서도 독립성을 가졌던 꽃할배였다. /평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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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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