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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유옥합] 교회여성, 생명과 평화를 노래하라
      주일 예배를 드리고 세상을 향해 나오는 수많은 여성을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질문을 던지실까. 가정을 돌보고, 교회를 섬기며, 이 사회를 향해서 생명의 존귀함과 정의로움, 진정한 평화까지 돌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생명과 평화의 길을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교회여성들은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따라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추구하며 교단을 초월하여 분열된 교회를 연합하고 폭력, 테러, 종교, 인종 갈등으로 인해 피폐해진 세계를 회복시키는 일에 지속적인 활동을 해 왔다. 지난달 총회에서 우리는 52년의 역사와 전통의 발자취를 귀하게 여기며 그 정신을 계승하고 창조적으로 성찰하여 교회와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해 생명과 평화를 세워가기를 선포했다. 성령의 빛 안에 생명창조와 돌봄을 위한 하나님의 동역자로 부름을 받은 한국교회 여성들은 가정과 사회를 너머 온 누리가 생명을 선택하는 일에 앞장서 나가고 있다. 정부의 시책과 사회의 규범이 생명살림에 기반이 되도록 우리의 마음과 삶을 열어 사회적 약자들과 고통당하는 이들을 돌아보며 함께 행진해오고 있다. 민족통일을 위한 평화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 기후난민국가인 몽골에 은총의 숲을 만드는 데에 동참하고 있다. 사막에 나무를 풍성하게 하여 환경을 보존하는 일이다. 오늘도 생명존중 실현을 위해 여성들의 지혜와 힘과 무릎을 모아 주께 올려 드린다. 분열과 갈등이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 속에서 생각과 문화와 전통이 각기 다른 교단들이 다름의 차이를 이해하며 소통하며 연합하고 협력하여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구현하며 하나님의 선한 사업을 일구어가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연합의 모습이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 정의. 평화. 생명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오신 믿음의 선배들의 헌신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연합사업이 이 시대에 협력과 연합의 좋은 모델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50년의 역사 속에 쉼 없이 흘러 이 사회와 교회에서 헌신자로 섬겨왔던 한국교회 여성들의 역사를 위대한 여정으로 이끌어 오신 하나님을 기대하며 오늘도 계속해서 행진한다. 종교개혁 정신으로 늘 새롭게 되어가는 교회를 지향하며 교회 내 성평등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 우리들의 현실 속에서 당면한 문제들을 바라보고 또한 한국교회 내의 성윤리 문제와 교회 내 여성의 권리를 논의하면서 높기만 한 교회현실의 벽을 어떻게 허물어 가야 할 것인가를 지속적인 과제로 남겨 놓았다.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이 땅에 반생명적 불의, 폭력, 억압이 있는 곳에 생명, 정의.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는 공동체로 그 역할을 감당할 것이며 교회와 사회를 억압하는 불평 등 문화를 생명과 평화 살림의 문화로 일궈내는 일에 앞장설 것이다. 세계 곳곳의 교회여성들과 연대를 통해서 세계문제, 여성과 아동문제에 공동대처해 나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걸으셨던 평화의 길, 그것은 한 생명 속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요, 한 생명의 눈물 속에서 전체의 고통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소외된 자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갈등과 대립, 테러와 폭력이 있는 곳에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평화와 생명을 노래하며 행진할 것이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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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12
  • [실로암] 오늘도 나는 천국에 출근한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사회적 위치를 체감했을 때 그 절망감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취업이 어렵다는 말은 들었지만 내 이야기는 아닌 줄 알았고, 생각처럼 잘 안 되자 기대와 자신감이 부풀어있던 것만큼 실망도 매우 컸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내게 최적의 것을 주실 거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이력서 수십 장을 쓰면서 지쳐갈 때쯤 교회 청년부 리더십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주제는 「교회 봉사자들을 위한 리더십 교육」이었는데, 더욱 잘 섬기기 위해 신앙의 본질적인 항목들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되돌아보며 감사하게도 그 시간을 통해 소위 ‘직업관’의 틀을 세울 수 있었다. 이날 이후 나의 기도는 회사에 들어가게 해달라는 기도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고백으로 바뀌었다.  한 달 뒤 번역 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하게 되었다. 인턴을 하다가 정직원으로 전환된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때 당시 자리가 없어서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계속 취업을 준비했다. 중국어라는 전공을 살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고, 작은 역할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일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4개월 정도 일을 했을 때, 아무래도 영어 공부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말씀을 드리고 그만둘 예정이었다. 그런데 마침 회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직무를 채용 중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그 자리를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벌써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가 원하는 직장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많은 은혜를 경험하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지칠 때도 있지만 출근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한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언제, 어떤 일을 시작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내게 최적의 것을 주실 것’이라는 마음은 여전하기에 지금하는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기대된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준비하고, 움직이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예수가족교회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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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11
  • 정신적외상에서 자유함을 얻게 하소서(3)
      성경에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는데 극에 차 있었습니다. 만나 이외에는 먹을 것이 없어 에너지가 다 고갈 되었다고 외칩니다. (민11:6) 이스라엘 백성이 울기까지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향하여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민11:11) 하며 호소합니다. 백성을 이끄는 과대한 책무를 더 이상 혼자 질 수 없다(민11:14)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즉시 나를 죽여....” 달라는 간곡한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향한 죽음을 각오한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응답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60만 명이었는데 1개월 동안 고기를 먹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민11:21). 반복되는 과중한 책무를 지닌 모세의 죽음을 각오한 기도가 응답을 한 것입니다. 또 엘리야도 이세벨이 죽이고자 하여 광야까지 도망갔습니다. 계속되는 생명의 위기를 엘리야는 눈물로 기도 했습니다. “.... 내 생명을 취하소서” (왕상 19:4) 생명을 다하여 기도 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서 “일어나서 먹으라”(왕상 19:5) 응답 하였습니다. 과중한 스트레스, 반복되는 스트레스에서 자유함을 얻는 길은 생명을 바친 간절한 기도입니다. 넷째 애착외상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애착외상에는 양육자의 무관심이나 분리, 비교, 거절 박탈감이나 방임 그리고 따돌림 등이 대표적입니다. 미국 소아과학회에서는 만 2살 미만에는 주 양육자를 두 번 이상 바꾸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애착외상이 되어 크게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반복적인 외상사건은 애착외상이 됩니다. 가정폭력이나 성적학대, 신체적 정서적 학대는 애착형성을 가로막는 역할을 합니다. 성경에서 요셉은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유기를 당한 자요, 방임을 당한 자요, 무시와 부당한 대우를 받은 자요, 정서적 학대를 받은 자요, 분리와 거부를 당한자요, 따돌림을 당한자입니다. 애착외상의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구덩이까지 파서 신체적 학대를 가한 자들입니다. 간신히 생죽음을 면하고 미디안 사람에게 팔려가고 애굽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인 보디발에게 팔려갑니다.(창37장 18-36)요셉은 이처럼 정서적 학대는 물론 유기와 방임을 몸소 느끼며 따돌림을 당한 장본인입니다. 그런데 그 어떤 불평이나 호소가 성경엔 아무것도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정서가 숨겨져 있기 때문에 구태여 묘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주 어릴 때 학대나 방임 등 애정결핍을 당하면 애착형성을 방해하고 사춘기 이후의 대인관계에도 실패하기 쉽습니다. 애착을 가진 사람과 분리될 때 뇌의 전대상회는 활발히 움직이고 편도체도 강하게 흥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되어 자제력이 없게 되고 충동성과 공격성으로 반항적인 아이로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적 외상을 겪으면 뇌의 변연계가 쪼그라져 수면이나 불안, 그리고 충동성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학대는 뇌의 기능을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만듭니다. /경기大 상담·심리치료 전문 硏교수·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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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05
  • [목회자 칼럼] ‘살림’이 기독교환경의 목표
      병든 지구의 문제가 심각하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교회에서 풀어내기는 매우 어렵다. 2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피상성이다. 사람들은 환경, 생태 문제가 심각하다고 다들 인정한다. 하지만 정작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먼 이야기로 여기고 회피하곤 한다. 평신도들은 물론이고 목회자들 또한 피상성의 덫에 빠져 있다. 특히 생태목회를 지향하는 목회자들조차 그렇다. 그들은 생태적인 삶은 상호의존적인 삶이라고 외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런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정작 내놓을 게 별로 없다. 또 하나는 소수의 문제이다. 한국 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 가운데 대다수는 생태, 환경 문제를 신앙의 핵심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환경운동을 교회 안에서 펼쳐 나가는 것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기조차 한다. 환경문제는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게 교회의 현실이다. 물론 예전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모범적인 녹색교회들도 여럿 눈에 띤다. 교회 안에서 활발한 녹색신앙을 실천하는 모임들도 많이 생겨났다. 또한 햇빛발전소 세우기, 초록가게 운동, 플라스틱 프리 운동 등에 더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갖가지 형태로 참여하고 있고, 이런 운동들을 통해 연대의 틀이 점차 넓혀지고 있다. 도시교회는 도시교회대로, 농촌교회는 농촌교회대로, 혹은 도시와 농촌교회가 협력하여 활발한 활동들을 펼쳐나가는 경우도 있다. 가장 고무적인 일은 교회가 자기가 속한 지역에서 마을공동체를 만들려고 힘쓰는 사례들이 여럿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멀었다. 사회적으로는 환경교육이 학교 교육 과정 속에 정착이 되어 가고 있다. 유엔이 지속가능한 지구공동체를 위해 ‘지구헌장’을 교육실천 원칙으로 결의하고 이를 각종 단위에서 실행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는 근원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이런 변화에 무감각하기만 하다. 한국교회는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면서 우매한 소수자에 머물기를 고집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생명을 살리는 교회 환경교육〉이 출간된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교회 환경교육〉이 개정판으로 나오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 책은 2011년 12월에 초판이 나왔다. 8년 만에 개정판을 찍게 된 것은 이 책이 갖고 있는 큰 미덕 때문이다. 그 미덕은 생활에 밀접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책상머리에서 나온 책이 아니다. 1990년 이래 기독교 환경운동에 몸담아 온 환경교육운동가 유미호의 교육실천에 대한 진면목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이다. 책에 실린 목차만 훑어보아도 이 책이 얼마나 생생한 실천 교육을 담은 책인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살리는 삶’이 기독교 환경교육의 지향점이라고 말한다. 모든 생명은 본질적으로 의존적이다. 이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살리는 삶이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 의존해 있고, 자연에 의지해서 유지되고 있다. 서로에게 의존해 있다. 이 책은 기독교 환경교육을 통하여 살림의 길을 어떻게 찾아내고 나눌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2011년에 나왔던 초판은 절판되어 구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환경, 생태목회를 지향하면서도 구체적인 지침에 목말라했던 한국 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이 책은 뜻밖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과도 같았다. 이 책은 교회 안의 각종 모임에서 환경 교육을 위한 교과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을 펼치면 어떻게 사는 것이 의존적인 삶인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해주는 실천사항들이 가득하다. 30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살림 운동을 위해 달려온 환경교육운동가 유미호의 덕이다. 이 책을 통하여 서로 의존하며 함께 살아가는 하나님나라가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전농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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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05
  • [성경의 노인19] 노년의 장소
      인간관계 중시하는 신앙 공동체의 네트워크 회복 도모노년 사역통해 쉼터·천국역할 맡는 교회 정체성 필요 사람이 자주 찾아가는 장소가 그를 규정한다. 도박장을 자주 찾는다면 그는 도박꾼이다. 경기장을 자주 찾는다면 스포츠 매니아일 것이다. 술집을 자주 찾는다면 당연히 술꾼이다. 예배당을 자주 찾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성실한 교인이다. 노년에게 장소는 매우 중요하다. 장소란 위치나 경관과 같은 물리적이고 명확하게 규정되는 실체는 아니다.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상징과 의미를 공유하고, 관련을 맺음으로 창조되는 다층적 경험이자 동시에 그를 만드는 곳이다. 노인들은 보통 배우자가 죽은 후에도 같은 집에서 계속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배우자와 살았고, 자녀들이 장성하여 결혼한 후에도 살았으며, 배우자와 사별한 후에도 계속 집을 지키며 사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인의 집에 심방해 보면 분가한 자녀들이나 사별한 배우자의 물건을 치우지 않은 채 오래된 물건들과 계속 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겉으로 보면 모두가 떠난 공간에 노인 혼자 덩그러니 남아 사는 것이 안타깝게 보이지만, 노인에게는 빈집이 아니라 자녀들과 함께했던 세월, 부부가 함께한 세월이 남아있는 추억의 장소인 셈이다. 어쩌면 가족이 떠난 후에도 빈집을 채우는 물건들과 기억들을 유지하려는 것은 노인들에게 ‘아직까지 나는 현역’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가족이나 국가의 요양 돌봄에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이웃들과 상호 돌봄의 관계를 갖는 경우가 많다. 가깝게 늘 만나는 성도들에게 도움을 쉽게 받을 수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예배도 좋지만, 성도들과 만나 대화하고 식사하는 시간을 통해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노인들은 지역의 소규모 상점들과도 관계를 유지하며 능동적인 소비자 역할을 유지하고 있다. 대형마트보다 동네마트를 찾는 이유이다. 동네마트는 노인의 삶의 유형을 잘 알기에 필요한 것을 꼭 짚어 추천해 주고, 물건값이 얼마 안 되어도 집에까지 배달해 준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번거로운 질문도 친절하게 해준다. 이처럼 노인에게 장소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성경에서 노인 사무엘이 살았던 장소를 찾아보았다. 사무엘은 은퇴 후 고향에 가서 살았다. 본래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이라는 시골출신이다(사무엘상 1장 1절). 70인역에서 “아리마대 출신의 숩 인이 있었다”고 번역했다. 라마다임은 두 개의 고지, 높은 곳이라는 뜻이다. 즉 라마는 고지라는 말이다. 1장 19절에서는 엘가나가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고 했다. 거기서 사무엘이 출생한 것이다. 7장 15~17절에 “사무엘은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고 했다.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간다”(8장 4절). 장로들은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우도록 요청한다. 사무엘은 사울 왕을 세운 후에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사울에게 실망하고 역시 고향 라마로 간다(15장 34절). 또한 다윗을 택하여 기름을 부은 후에도 라마로 갔다(16장 13절). 다윗은 사울의 칼을 피해 사무엘을 찾아 라마로 간 일이 있다(19장 18절). 사무엘에게 라마는 고향이며, 은퇴 후 거주지였고, 여전히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곳이었다. 교인에게 라마가 있어야 한다. 살아있을 때는 교회이며, 죽은 후는 천국이다.   (commission@naver.com)  /평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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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04
  • [향유옥합] 보는 것이 영성이다
     지난달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세계보건기구총회에서 ‘게임중독’을 공식질병으로 분류하는 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후 언론과 온라인에서는 연일 이에 반발하는 기사와 논평들이 쏟아지고 있다. 게임은 레저와 같이 즐기는 문화일 뿐이지 중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박들을 보고 있자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WHO에서는 게임=중독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WHO는 게임중독을 Gaming disorder, 게임사용장애라는 용어로 질병코드를 부여한 것이다. 즉, 게임 자체가 중독이므로 게임이 나쁘다는 가치판단을 넣은 것이 아니라 단지 게임을 사용하는 사람들 중 게임을 사용하는 패턴이 ‘병적’이고 ‘중독적’인 경우 이는 질병으로 판단하여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게임회사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건전한 게임문화 발전에도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하나 짚고 가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의 큰 게임회사들이 제작하는 게임들이 이익을 위해 사행성 및 높은 중독적 특징을 가진 게임들을 출시하며 오히려 게임 유저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은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레저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게임의 내용들과 특성들이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부모와 교사된 우리는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는 비단 게임뿐 아니라 손안에서 우리와 아이들의 눈과 귀를 끊임없이 사로잡고 휘두르는 스마트폰 안의 환경도 마찬가지이다. 2009년 EBS 아이의 사생활 팀에서는 전남대 심리학과와 함께 남자 대학생 120명을 세 그룹으로 나눠 각각 자연다큐멘터리와 보통의 음란물, 그리고 폭력적 음란물 등을 15분 동안 보여주었다. 영상을 본 후 대학생들은 다트던지기를 했는데 이는 전통적인 공격성 측정 방법 중 하나로 다트판 위에 붙여놓은 사물 표적과 사람 표적에 다트를 던지는 빈도를 따져보는 것이다. 실험결과 다큐멘터리 그룹은 평균 0.3회를 던졌는데 폭력적 음란물 그룹은 2.4회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보통 음란물 그룹은 1.4회). 단지 15분 동안의 영상물 노출로 8배나 높은 공격성을 보인 것이다.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오며 ‘보는 것’은 범람하고 있다. 문제는 아이들이 자신들을 지킬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완전하지는 않지만 연령등급은 최소한의 가이드이자 안전장치이다. 그러나 이것은 쉽게 무시된다. 부모들은 적어도 미성년 자녀들이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보고 있고, 얼마나 보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눈이 몸의 등불이라고 말씀하셨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만일 네 눈이 밝으면 네 온몸이 밝을 것이다. 그러나 네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다’(마태복음 6장 22~23절) 이는 우리의 눈이 우리의 영과 혼, 육에 얼마나 중요한 통로인지 말씀하시는 것이다. 보는 것의 영향력은 서서히 우리의 뇌로 들어와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태도와 행동을 만든다. 성경은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마음에서 생명의 근원이 나오기 때문이다.(잠언 4장 23절)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를 만나는 장소가 마음이다. 이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보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다(로마서 10장 17절). 아이들이 예수를 만나기를 원하는가? 먼저 아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놀이미디어교육센터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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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04
  • 정신적외상에서 자유함을 얻게 하소서(2)
      “2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위에 놓은 연고요, 26절: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 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이 무너지는 것은 강력한 태풍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자연 재앙인 것입니다. 자연재앙은 무서운 외상입니다. 이러한 무서운 재앙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정신 기둥을 반석 위에 세운자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말씀위에 인격의 집을 든든히 세워야 자연재해 외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모래위에 세운 사람과 같아서 태풍이 오면 무너져 쉽게 쓰러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6, 27절) 그래서 자연재해 외상에서 자유롭게 살려면 오직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셋째 반복적인 스트레스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스트레스 사건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받아야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아마 모든 유기체는 사랑으로 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이가 출생 후 엄마의 사랑을 받다가 동생이 태어나도 그에겐 큰 스트레스입니다. 엄마가 일이 바쁘다고 외갓집이나 시설기관에 맡겨 놓은 것도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대학에 떨어진 것도 스트레스인데 반복적으로 떨어지면 문제가 더 심각해집니다. 사업에 계속 실패한다면 큰 충격이 되어 자살을 하게 됩니다. 부부간의 계속되는 갈등을 통한 스트레스도 무거운 정신적 충격이 됩니다. 경쟁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하여 계속 쳐져 있다면 그것 또한 스트레스가 크게 작용하여 정신건강에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반복되면 뇌의 청반에 문제를 일으켜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에 이상을 일으켜 내분비선의 축에 영향을 끼칩니다.  뇌간의 솔기핵(raphe nuclei)에 영향을 주어 세로토닌의 분비에 이상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부신피질이 영향을 주게 되어 코티솔을 분비케 하여 여러 가지 정신 병리현상을 나타나게 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의 뇌를 보면 해마와 편도체가 활성 되고 안와전두피질의 활동이 감소되어 많은 정서적 인지적 문제를 야기 시키는 것입니다. 큰 사고를 경험하게 되어 사건 발생 후 3일에서 1달 이내에 정신적 후유증이 나타나면 급성 스트레스장애라고 부르며 그 이후에 증상을 계속 보이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라고 정의합니다. (DSM-5, APA)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걸리면 주요우울증, 알코올남용/의존, 강박장애, 공포장애, 조울증 등 갖가지 정신장애를 함께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받을 때 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경기大 상담·심리치료 전문 硏교수·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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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6
  • [목회자칼럼] 천로역정 이은명심도
    ▲ 이효상   나는 애서가이다. 그러다보니 책 수집 특히 고서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일을 즐겨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한국교회에서 ‘기독교서지연구가’라는 평까지 듣게 되었다. 여러 책들을 구입하게 되면 제일 먼저 사진을 찍고, 스캔을 뜨고, 그 내용을 읽고 요약 정리하여 문서화하고 하다 보니 어느새 그 자료가 칼럼이 되고 논문이 되고 말았다. 특히 근대기독교 고서 중 독특한 것으로, 역사적 평가와 함께 주목하게 되는 책이 ‘그림’이 있는 〈천로역정〉과 〈명심도〉이다. 천로역정은 영국의 청교도 작가 존 번연의 소설로 1678년 초판이 나왔다. 1895년 장로교 선교사 제임스 게일과 부인 깁슨이 당시 한글로 번역한 〈텬료력뎡〉은 평양 장대현교회 길선주목사가 읽고 감명을 받음으로써 1907년 평양 대부흥을 이끌어낸 원동력이 됐다. 초판은 소설의 제1부를 2책으로 나눠 목판으로 인쇄하였으며 미려한 한지를 사용하여 한 장 제본으로 만들어졌다. 책 중 삽화는 총 42장으로 당대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 화백의 삽화도 수록돼 있다. 기산의 이 그림은 외래종교인 기독교를 주체적으로 수용해 토착적인 전통을 반영한 한국 개신교 미술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가하면 1913년 출판된 〈명심도〉는 〈천로역정〉을 이은 최고의 전도책자로 주목하게 되는 미서 중 하나이다. 책의 간기를 살펴보면 배부인 역술로 나오는데 이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베어드선교사의 부인을 말하는 것 같다. 조선예수교서회의 초기 전도책자 〈명심도〉는 기독교의 진리를 그림을 통해 쉽게 전달하려는 전도책자로 국판 22면을 순한글 내려쓰기로 돼 있는데 이 책은 원래 1820년 초반, 고스너에 의해 독일에서 발간된 책인데 중국어로 돼 있던 것을 베어드 선교사 부인이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명심도〉는 9장의 그림과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이 주 내용을 이루고 있으며, 인간의 마음과 마음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생각들을 동물로 비유했다. 기독교의 진리를 그림을 통해 쉽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충분히 반영된 이 전도책자는 성결교단의 최고의 부흥사이자 한국의 무디로 칭송 받아온 이성봉목사는 전국을 다니며 〈천로역정〉과 ‘명심도 강화’라는 제목으로 부흥회를 개최할 정도로 두 책을 높게 평가했다. 1956년에 이성봉목사는 그 동안의 부흥회 내용을 정리하여 그림과 찬송을 넣어「명심도강화」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간했다. 이목사는 머리말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밝혔는데 무엇보다 정결함, 특히 마음을 단정하게 갖는 것을 강조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안과 머리로 보고 아는 것이 아니요, 맑고 맑은 심정을 가진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만이 알게 되는 분”이라고 피력했다. 그리고 그는 ‘마음’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9개의 그림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 단계부터 죽음이라는 마지막 단계까지 어떠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마음이라는 그릇을 어떻게 채우는가에 따라 천국에 갈 것인가, 지옥에 갈 것인가가 결정되기 때문에 바른 마음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도를 좇아 하나님을 공경하고 정욕을 좇아 마귀의 꾐에 빠지지 않기를…” 이성봉목사는 간절히 바랐다. 이성봉목사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늘나라 본점에 가기 전 우리의 심령에는 하늘나라 지점이 이루어지는데, 성도인 우리 모두는 천국 본점의 영광을 잘 반영하는 천국 지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명심도’는 발전하여 해방 후 〈박군의 심정〉으로 기독교부흥협회에서 발행되었으며, 부흥회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고 그 후 〈박군의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개편돼 주일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전도하는데 널리 사용되었다. 1984년 승리의 생활사에서는 〈당신의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현대인에게 맞춰 배포하기도 하였다.오늘 현대인들의 마음속에 잡다한 것들이 자리 하지 않도록 예수님을 모시는 일을 최우선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맑고 깨끗한 영성, 더 나아가 건강한 신앙은 그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교회건강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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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2
  • [실로암] 오후 2시 출근, 밤 10시 퇴근
      보통 직장인보다 하루 시작이 늦다. 출퇴근길의 혼잡스러움도 점심 메뉴의 고민도 없다. 다만 퇴근길에 하루를 마감하는 학생들과 뒤엉켜 그들의 욕설과 짜증, 고함에 귀가 좀 따가울 뿐이다. 너희들도 고생했다 싶다가도 귓등을 때리는 험한 말들에 짜증이 솟구치기도 하지만 그 정도는 이어폰이 막아 준다. 나는 학원 수학 강사다. 수학이 밥 먹여 준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수학을 도구로 아이들을 만나고 수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나 창의적 이해를 소개하거나 돕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내 생각대로 혹은 내가 내린 정의대로 정형화되어 진행되지는 않다. 나보다 훨씬 일찍 하루를 시작한 아이들의 노곤함이 보이면 예능인이 되어 주저리주저리 말을 풀어내기도 했다가, 무심히 답을 물어보는 아이들에게는 ‘내가 답지냐’ 핀잔을 주는 답지이기도 했다가, 개념을 이해 못 하는 아이들의 스토리텔러이기도 했다가. 이렇게 그때그때 상황에 맞춘 유연성이 있어야 하는 곳이지만, 적지 않는 돈을 내고 학원을 보내는 부모님의 처지에서는 아이와 맺는 세심한 관계나 이해 혹은 공부하는 호흡을 맞추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성과들 성적향상, 문제풀이 양, 심화문제 풀이 등의 정확한 피드백이 필요하고, 때로 아이의 상황에 맞지 않는 무리한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이 부분이 참 어렵다. 밥을 지으려면 쌀을 씻고 불리고 밥통에 넣고 버튼을 누르고, 또 약간의 기다림의 과정이 필요한데, 쌀이 들어갔으면 이내 밥이 되어 나와야 하는 성급함이 된 밤이나 설익은 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구매자의 입장에서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교육서비스는 기성복이 아니고 아이의 정서와 이해의 체형을 읽고 거기에 맞추어 언어와 행동을 선택해 조금씩 품을 짜야 하는 맞춤복이다. 적어도 그만큼의 돈과 시간을 투자한 것에 대해 그만큼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학원 강사들의 역할이다. 그리고 이때 ‘아저씨’에서 ‘쌤’으로 호칭이 달라질 수 있다. 나보다 더 나를 들여다보려 애쓰는 사람의 눈빛과 정성이 읽히면 그 후의 학습 패턴은 기존과 다르다. 이제 아이들 스스로가 신뢰관계의 주체가 되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때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의 실타래가 하나둘씩 풀려가기 시작하고 수학에 재미가 느껴진다면 다음은 이제 아이들의 몫이다. 물론 옆에서 같이 뛰어주는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을 계속 진행되어야 하지만 혼자 뛰는 것이 아니라 함께 뛰는 즐거움과 역동을 아이와 공유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면 강사로서 참 짜릿하고 또 즐겁다. 여러 사람을 만나 관계하는 일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리고 돈이 오가는 교육 시장에서 구매자와 판매자의 관계가 퍽이나 건조하겠지만, 내게 주어진 만남에 부족하나마 정성을 다하고 기가 막힌 인연에 감사할 수 있다면 내가 아이들에게 그리고 아이들이 나에게 큰 선물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매일매일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작은 쌤’들은 오늘도 숙제를 못 해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거나, 어려운 문제를 풀고 어깨를 으쓱이고 있을 것이다.  /만나교회 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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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2
  • [성경의 노인18] 다니엘의 노년
    ▲ 최종인목사   국가가 챙기지 못하는 노인돌봄사역에 교회가 나서야다니엘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으로의 성숙 필요 우리 사회는 고령사회로 진입했고 노인 인구는 전체의 14.3%을 차지하는 집단으로 등장했다. 그동안의 노년들과는 다른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노인세대로 편입되면서 노인인구는 양적인 변화뿐 아니라 질적인 변화까지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노인층으로 접근하는 세대들과 예전의 노인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보건복지부 2017년 노인실태조사 통계를 보면 이런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독거노인이 크게 늘었다. 학력도 높아졌고, 어느 정도 경제력도 있기에 자녀들과 독립되어 혼자 사는 가구가 많아지는 것이다. 2008년 19.7%에서 2017년 23.6%로 증가한 것이다. 부부단독가구도 48.4%에 이른다. 노년기에 자녀들과 동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응답이 10년 만에 절반으로 하락해서 독거노인의 증가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약 30%의 노인이 개인생활을 즐기며 현 거주지에 살고 있고, 44.5%가 단독가구 생활에 어려움이 없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독거노인층 가운데 빈곤노인들의 경제적 불안이나 유병자 노인들의 와병 중 돌봄 가족이 없다는 것은 문제점이다. 독거노인의 증가는 고령자시설이나 돌봄 인력을 필요로 한다. 고령자일수록 인지기능 저하가 나타나고 보행활동이 어려워지는 노인들, 치매노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요양시설이나 돌봄 인력도 아울러 필요한 실정이다. 국가적 예산만으로는 모든 노인들을 케어할 수는 없다. 따라서 교회나 자원봉사 단체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미래에 노년을 맞는 성도들이나 지금 당장 노년을 지나는 성도들에게 다니엘서 12장을 중심으로 다니엘의 노년을 소개하고 싶다. 하늘의 별과 같은 노년을 보내고 있다(12장 3절). 많은 주석가들이 증언하듯 12장은 다니엘의 말년에 본 환상이며 예언이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나리라”고 예언했지만, 다니엘이야말로 그동안의 인생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했고, 지금 노년임에도 여전히 예언자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있다. 별은 캄캄한 밤중에 빛을 발하는 존재이다. 노년의 삶이 그렇게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발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환상을 보는 삶이다(12장 5절). 다니엘은 환상 중에 한 사람이 강 이쪽에 섰고, 다른 하나는 강 저쪽 언덕에 선 것을 보았다. 두 천사의 환상을 본 것이다. 이때 세마포를 입은 자가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맹세한다. 다니엘은 듣고도 깨닫지 못해 주께 질문했다(12장 8절). 그러나 하나님은 다니엘에게도 이 비밀을 자세히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고 하셨다(12장 9절). 성도에게 노년은 노욕에 젖어 세상 사람들처럼 지내는 삶이 아니라 여전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미래와 환상을 경험하는 시기이다. 마지막을 기다리는 삶이다(12장 13절). 노년에는 부활과 재림을 기다리면서 예복을 준비해 놓고 마냥 손을 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처럼 노년이 되어도 여전히 내 할 일을 감당하면서 끝까지 성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마지막을 기다리라” 하셨다.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이다”고 약속하셨다. 죽음을 기다리면서 결국 내게 주시는 상급을 받아 누리는 것이다. 노년은 세상의 놀이터 혹은 전쟁터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존재가 아니다. 기쁨 가운데 부활하여 당당히 서는 날을 기다리는 때이다.   (commission@naver.com) /평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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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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