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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의 죽음 8] 비극적인 두 사람의 죽음
      중국 땅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많은 생명들의 목숨을 가져갔다. 아마도 언론에 소개되지 않은 더 많은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은 전염병뿐 아니라 온갖 질병으로 목숨을 잃고, 교통사고나 화재로 아깝게 희생되는 사람들도 있다. 현대에 와서는 전쟁에서 나가 죽은 이보다 자살로 죽는 이가 많다고 하니 참으로 애석하지 않을 수 없다. 레위기 10장에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이들이 있음을 소개한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이다.   모세의 형제인 아론에게는 네 명의 아들들이 있었다. 두 사람뿐 아니라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다. 아론은 이스라엘의 초대 대제사장으로 위임받았고 네 명의 아들들은 제사장들로 위임받았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이 된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없다. 종종 어떤 개인이나 민족을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며 비밀스런 경륜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 레위 지파를 택하셔서 성막과 성막의 물건을 취급하게 하셨다. 레위 지파 중에서도 오직 아론의 자손만이 제사장으로 섬기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영광스런 선택에 의해 직분을 맡은 나답과 아비후는 비극적으로 생을 마친다.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은 그 이유를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다”고 말한다(레위기 10장 1절). 본래 아론과 그 아들들은 아침저녁으로 성소에 있는 금촛대에 등불을 손질하며 분향단에 향을 피워야 했다(출애굽기 30장 7~8절). 다른 불은 무엇인가? 번제단에서 취한 불이 아닌 그외 모든 ‘이상한’ 불을 가리킨다. 향로에 담아 옮겨 성소의 분향단에서 향을 사르는 불은 오직 희생제물을 태우는 번제단의 불을 사용해야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어찌된 일인지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 여기에 답이 나와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죄 때문에 죽었다.   어쩌면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기에 실수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곧이어 3절을 보면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레위기 10장 3절). 이 말씀 앞에 아론은 ‘잠잠하고’ 있다. 사실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세우면서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자동적으로 제사장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항상 여호와와 가까이 있어야 한다. 주를 가까이 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답과 아비후는 습관적인 제사장 직분은 감당했지만, 하나님을 진정으로 가까이하지 않았기에 죽음을 당했다고 본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비극적 사건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레위기 10장 8~9절).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후에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아마도 나답과 아비후는 거룩한 직분을 행하는 제사장으로 독주를 마시고 제단에 나간 듯싶다. 교인들은 두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경고를 받아야 한다. 이미 교인들 역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다(베드로전서 2장 9절). 그렇지만 여전히 불순종하고 하나님과 멀어지며 거룩한 직분을 맡아 헌신할 자들이 속되다면 누군들 살려주실까?/평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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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6
  • 여호와의 그날(2)
      주님의 심판 본문 1절에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라고 했으며 2절에는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어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간다고 했습니다.    여기“예루살렘”은 지리적인 곳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 “교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재물이 약탈되어 성도가 재물의 소유권을 잃어 버립니다.   성읍(교회)이 함락되어 예배의 자유를 상실해 버립니다. 가옥이 약탈되어 주거의 자유를 잃어 버립니다.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노예가 되어 생명의 자유가 유린을 당합니다. 참으로 잔인하고 처참한 대 환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전쟁을 그대로 방관하지 않습니다. 본문 2절 하반절에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예루살렘에 대 환난은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를 위해서 그 환난의 날을 감하여 주시어서 남은 자가 계속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환난을 이기고 은과 같이 금과 같이 연단된 남은 백성은 큰 영광의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여호와의 그날에 주님이 심판하러 재림하십니다.(3-5절) 3그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 이왕 전쟁 날에 싸운 것같이 하시리라 4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5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찌라 너희가 그의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   1) 심판하러 재림하신 주님이 먼저 친히 싸우십니다.   본문 3절에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여호와께서 친히 나가사” 라는 말은 재림하신 주님이 친히 이 전쟁을   진두지휘 하신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교회가 큰 환난을 당하고 있을 때 그 모든 것을 지켜보시고 계시다가 즉시로 그 대적을 심판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이 전쟁을 통해 사탄은 최후 멸망할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에겐 영원한 구원과 영원한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2) 재림의 주님이 감람산은 나누어 골짜기를 이룹니다. 본문 4절에 “...그 날에 그의 발이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그 가운데서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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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6
  • 목자가 이끄는 쉴만한 물가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게 “목사님, 목사님은 정말 행복해 보이고 사랑이 넘쳐 보입니다”라고 말한다.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축복의 증거들을 보면서 아무런 시험이나 고통이 없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오랫동안 주의 일을 하면서 영혼은 하나님으로 인해 항상 행복했지만, 육체적으로 환경적으로 상황적으로 힘들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   인생 일기장을 펴보면 날씨는 항상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 많았고 예상하지 못한 시험과 고난으로 인해 고통을 받은 순간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 고통의 파도 속에서도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위로하시는 주님을 만났다. 내 인생이라는 배 위에 오르시사 평강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경험했다. 몸은 늙어가고 이제 많이 쇠약해져 가지만, 주님은 나의 영혼을 성령의 강력으로 채우시고 제목이 없고 내용이 없던 저의 매일을 은혜의 시가 되게 역사하셨다.   사랑하는 당신이여! 오늘 인생의 현장에서 연약하게 하고 고통을 주는 가시로 인해 힘든가? 오늘 당신은 은혜가 풍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품 안에 있음을 기억하고 감사하시기 바란다다. 육신의 눈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하늘의 축복과 성령의 손길,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볼 수 있는 영적 시각이 열리게 되었음에 감사하자.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에녹과 동행하셨듯이, 365일 매일의 삶에 동행해 주실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모든 흑암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자연 만물이 창조되었던 것처럼 의미 없이 지나가는 당신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서 은혜로 풍성한 한 편의 시로 쓰이게 될 것을 믿길 바란다. 그러니 오늘 하루 주 안에서 안심하자! 주 안에서 승리하자! 당신의 인생에 쓰일 주님의 시를 기대하며 살아가길 축복한다.    성경 표지를 펼치는 나의 손이 항상 떨린다. 한 절 한 절 마음에 새겨질 때마다 내 마음도 떨린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내 가슴의 떨림이 부드러운 구름 위에 머리 베고 있는 듯 편안함으로 바뀐다. 몇 해 전 시집을 처음 출판하면서 내놓은 고백들은 삶 속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며 동시에 그분의 마음에 대한 나의 고백을 읊었다. 인생은 사계절과 같아서 때로 따스한 봄날일 때도 있고 열정으로 소리치는 여름일 때도 있다. 때로는 외로움과 쓸쓸히 흩어지는 낙엽이 겹치는 가을날을 지날 때도 있고 온 세상이 하나의 표정을 짓는 겨울날을 지날 때도 있다. 그러나 인생의 계절은 바뀌어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치 않는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 두려워할 때 선한 목자께서 안으시고 영의 눈으로 아버지의 선한 길 바라보게 하신다. 육체가 잠자는 그 날까지 언제나 주 음성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세상 날 버려도 하나님은 끝까지 날 위하시기 때문이다. 세상의 삶에 지쳐 쓰러져있을 때 내게 다가오셔서 날 일으켜주시며 세상의 먼지로 어두워진 눈을 만지시고 소망의 빛 보게 하신다. 어디로 갈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구름기둥, 불기둥 날 인도하신다. 악한 사단 날 괴롭힐 때 두 팔 벌려 날 안아주시고 말씀의 물맷돌로 승리하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 또 감사다.   세상의 파도에서 인생의 노를 젓다 지쳐있는 영혼을 위로하시고 한결같은 사랑으로 품어주신다. 이에 온 누리에 꽃씨를 퍼트리는 민들레처럼 영혼의 입을 열어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한다. 이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영혼의 시를 쓰기를 원한다. /임마누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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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6
  • [목회자 칼럼] 국가의 책무
      국민의 4대 의무가 있듯이 국가 혹은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책무가 있다. 국민의 4대 의무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납세, 국방, 교육, 근로의 의무이다. 마찬가지로 국가 혹은 정부도 마땅히 국민을 위하여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첫째는 안보이다. 국민들이 외국의 침략을 받아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과거에 우리나라는 외국의 침략을 많이 받았습니다. 반만년 역사에 대략 구백 삼십 번의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고 한다. 대략 5년 꼴로 전쟁이 있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그래서 임시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완벽하게 해봐야 전쟁 터지면 헛것이 되기 때문에 집도 임시로 짓고 무슨 일을 할 때에 대충대충 임시로 했다는 것이다. 그토록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6.25전쟁 이후로는 어찌 전쟁이 없었을까? 그것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고 미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문정부는 미국과는 관계를 깨고 친북, 친중을 더 중요시하여 대통령이 중국에 가서 중국몽에 함께 하겠다고 하고 중국과는 공동운명체라고 하니 미국에서 볼 때 좋게 생각을 하겠는가? 반미 친중으로 기울어지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매우 위태롭게 되는 것이다. 선진국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것은 최강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안보를 튼튼히 하려면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로는 경제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산다는 말이 있듯이 국민이 풍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 때부터 삼대를 내려오면서 모든 인민이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 살고 고기국에 쌀밥을 먹게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으나 아직까지도 의식주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 탈북민이 날로 늘어만 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문정부가 들어선 후로 경제가 매우 어렵다고 아우성입니다. 소득주도 성장이니 주 52시간 근무라든지 그리고 시간당 근로수당을 갑자기 대폭 인상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친 노조를 하고 경영인들의 주장을 묵살함으로 일자리는 줄어들고 폐업하고 빈 가게가 늘어만 가고 있다. 이민자는 급증하고 기업들도 도저히 못해먹겠다고 외국으로 떠나고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세금으로 몇 십만 원짜리 일자리를 만들어 놓고 일자리가 어느 때보다 늘어났다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습니다. 문정부는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인정하고 궤도 수정을 해야 하는데 그냥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고 있으니 좋아질 희망이 없는 것이다.   셋째로 바른 교육을 해야 한다. 역사도 사실을 왜곡하면 안 된다. 김일성과 북한은 미화시키고 대한민국은 형편없는 나라로 왜곡된 교육을 하면 안 됩니다. 요즘 초등학교 교과서에 하기 싫은 설거지나 청소 같은 것을 부모가 하라고 강요하면 국가인권위원회에 고발하라고 양식과 전화번호까지 나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성교육 할 때에 동성애도 정상이고 여러 가지 성에 대하여 비정상을 정상으로 교육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성 정체성을 자신에게 결정권이 있어서 남자인데 나는 오늘부터 여자로 살겠다고 결정하면 여자로 인정해야 하며 여성도 마찬가지로 나는 오늘부터 남성으로 살겠다고 결정하면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그대로 받아주어야 한다는 교육을 하면 이 나라가 어찌 되겠겠는가? 성은 창조주께서 남녀로 태어나게 하셨는데 완전히 창조주의 섭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희락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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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1
  • [건강교실] 레포츠와 관절염(1)
      최근 여가 스포츠 일환의 하나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기 스포츠 중 하나인 야구를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어깨관절의 통증으로 정형외과를 방문하는 환자 또한 증가하고 있다.   야구는 투구, 송구, 구보, 슬라이딩 그리고 타격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으로 야구의 이 모든 동작에서 신체의 각 부분이 손상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동작 중에서 손상의 가장 많은 원인이 되는 것은 투구동작이며 투구로 인한 손상은 어깨, 팔꿈치 및 손목 관절 모두에서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반복적인 투구 동작에 의한 스트레스는 어깨 관절의 회전근개와 이두근의 염증 반응과 파열을 초래하며 관과 순도 이와 같은 자극에 노출되어 파열을 초래할 수 있다. 근육이나 연부 조직의 불균형으로 어깨 관절의 탈구나 상완골의 골절 또한 발생할 수 있다.   SLAP 병변은 주 증세는 통증으로 대부분 어깨를 벌리거나 바깥쪽으로 돌리는 동작 시 어깨에서 소리가 나며 심한 통증을 호소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관절이 느슨한 것 같은 증상을 호소하기도 하다. 염발음이나 통증 및 불안정감 등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질환으로 질병 특유의 증상이 없으며 이학적 소견에서도 특이한 소견이 없어 진단이 어려운 손상이다. SLAP 병변을 진단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학적 검사와 방사선학적 검사를 통해 감별이 필요하며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관절 조영 자기 공명 영상 검사가 많이 이용된다.   어깨를 벌리고 앞으로 굽힌 자세에서 상지에 압박 손상이 가해질 때 상완골두가 상완 이두건-관절와 순 복합체에 직접 압박력을 주어 발생하거나 이두근의 견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으며 갑작스럽게 어깨관절을 벌리거나 바깥쪽으로 돌리는 동작 또는 반복적인 상완 이두 장건의 부하로 인해 상완 이두 건-관절와 순 복합체가 벗겨져 파열이 일어날 수 있다. 투구 동작 중 회전근개가 부착된 대결절과 이두 장건이 부착된 관절와순 사이의 관절 내 충돌 증후군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SLAP 병변이 있는 경우 먼저 재활 치료를 시도하게 되며 재활 치료는 스트레칭과 더불어 탄력이 있는 고무 밴드나 가벼운 아령을 이용하여 어깨관절의 근력을 키우는 운동을 시행하게 된다. 적절한 재활 치료에도 통증이 지속하는 경우에 수술적 치료가 필요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경우 관절경으로 파열된 관절와순을 봉합하여 치료를 시행하게 된다.   관절경 수술은 진단과 치료가 동시에 가능하며 어깨관절의 동반된 회전근개 파열이나 충돌 증후군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다. 또한 회복기간이 짧으며 국소마취 하에 진행이 가능하여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투구 중 상완골 골절은 부조화된 근육의 갑작스런 수축에 의해 발생하게 된다. 특징적으로 환자들은 공을 던지던 중 팔에서 뚝 소리가 난 뒤 팔을 전혀 쓸 수 없었다고 하며 잠시 뒤 심한 통증으로 인해 응급실을 방문하게 된다.   큰 외부적 충격이 없이 투구 동작만으로도 골절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부조화된 근육의 수축으로 인한 강력한 염전력이 상완골의 간부에 작용하여 골절이 발생하게 된다. 직업 선수들에서는 체계화된 투구 동작과 운동 방법으로 인하여 골절이 드문 편이나 여가 활동 중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한양대병원 정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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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0
  • [향유옥합] 수치심의 언덕을 넘어 희망으로
      상담실을 찾은 20대 여성 야생화는 “저는 자존감이 낮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을 시작했다. “저는 어린시절 엄마의 죽음, 왕따, 친구관계에서의 부적응 가족관계에서 소외, 7살 때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초등시절 2학년 때 친구로부터 왕따를 당했습니다. 학교에서는 큰 문제는 없었는데 4학년 때 학원에 가면 친구가 다른 한 명과 합세하여 나를 괴롭혔습니다. 변기통에 빠지라고 하고 죽으라는 협박을 받았습니다. 그때의 트라우마는 지금도 남아있습니다”라고 나지막이 말하면서 울먹거렸다. 그 당시 영이란 친구는 학원에서 나를 심하게 괴롭혔는데 집에 갈 때는 꼭 같이 가서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는 구강성교를 시키는 듯 이상행동을 보였으며 뿌리치지 못한 잘못도 있지만, 칼을 들고 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친구의 협박이 무서워서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고 말했다. 또한 거의 3달 동안을 친구에 이끌려서 지내다가 아버지가 알아서 마무리되었지만 제 상처를 외면하는 아빠를 굉장히 많이 원망하였다고 고백했다.   야생화는 아직도 트라우마가 있어서 친구가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한다든가 하면 더 깊은 상처를 받고 내면세계에서 폭풍처럼 분노가 일어난다고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싫은데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야생화는 자신을 누구에게도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렵고 마음의 문을 열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다 가짜라고 말한다. 또다시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할 방법은 자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외부와 차단하고 방어벽을 치고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어벽이 야생화에게는 정작 필요한 사랑과 애정, 관심까지도 막아버린다.   야생화의 내면화된 깊은 수치심은 보통 자신을 숨기려고 하고 멀리하고자 한다. “난 단지 구멍을 파서 그 안에 꼭 숨어버리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듯이 영어의 ’Shame‘은 ’숨다‘라는 뜻을 지닌다. 수치심을 느낄 때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자손처럼 창피함을 느끼며 숨고 싶다. 수치심으로 인한 정서는 속상하고 창피해서 누구와도 눈을 쳐다볼 수 없다. 몸의 반응은 두려운 감각으로 현기증이 나며 어지럽고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구역질이 나기도 한다.   자기 비난과 수치심은 서로 연관이 있어서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친구의 학대나 비난을 나로부터 분리하듯이 외재화하지 못하고 자신이 ’나쁜 존재‘, ’가치 없는 사람‘이라는 틀에서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자기 자신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이제는 자기 공감과 수용으로 바꾸어야 한다. “얼마나 너 힘들어했니” “얼마나 슬프고 속상하고 화가 나고 역겨웠니”라며 공감해주므로 자신에 대한 변화하려는 동기와 의지를 심어준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열등감을 내려놓도록 한다. 수치심은 다른 사람과 자연스럽게 좋거나 나쁘거나, 잘나거나 못나는 등 이분법적인 사고를 형성한다.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인 나를 인정하고 받아 줄 거라는 긍정적인 사고로 접한다. “넌 그 자체만으로도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며 비난하고 심판하고 수치심을 주는 사람들은 멀리하고 나의 모습 그대로를 좋아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들과 더 가까이 지내고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좋은 말이나 지지를 보내면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수치심의 언덕을 넘어서 높은 자존감의 희망으로 갈 수 있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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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9
  • [성경의 죽음 7] 이민자 요셉의 죽음
      원수 용서통해 이웃사랑 실천하는 기독교인의 삶 절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요셉과 같은 유언 남길 의무가 존재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이 부름 받은 이후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으로 이어지는 족장들의 시대는 요셉의 죽음으로 마감하게 된다. 야곱의 죽음에 이어 요셉도 곧 아버지의 뒤를 따라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을 창세기 50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읽게 된다. 창세기 저자는 1-14절에서 야곱의 장례식을 소개하고, 15~21절에는 요셉이 자신의 형들을 위로하는 것을 적었다. 22~26절은 이민자였던 요셉의 죽음을 담담하게 적고 있다. 17세에 형들의 시기에 애굽으로 팔려가 110세에 임종하였으니 실로 90여 년의 긴 세월을 이민자로 살았던 요셉이었다.   그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죽었다. 창세기 50장은 요셉이 얼마나 부친을 사랑하는지 보여준다. 아버지 야곱을 위해 무려 70일간을 애곡하였다(창세기 50장 3절). 곡하는 기간이 지난 후 야곱의 유언을 따라 애굽에 많은 매장지를 두고 가나안 땅에 매장하게 된다.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할 때 가족뿐 아니라 애굽의 많은 사람들도 동행하였다. 그것은 요셉의 지위뿐 아니라 그가 애굽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가나안 매장지에서도 그는 7일 동안 애곡하였다(창세기 50장 10절). 얼마나 크게 울었으면, 그 동네 가나안 사람들이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불렀다. ‘장미’, ‘가시’라는 뜻인데 슬픔과 애통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그는 아버지의 시신을 정성껏 고향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지낸 후 돌아왔다(창세기 50장 13절). 끝까지 부친을 위한 아들의 책임을 다한 것이다. 효도의 인물이다.   그는 형제들에게도 호의를 베풀고 죽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사후에 혹시 동생 요셉이 자신들에게 복수하지 않을까 두려웠다(창세기 50장 15절).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들 스스로 동생 요셉에게 악을 행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참았다가 이제 돌아가신 후에 복수하지 않을까 염려한 것이다. 형들은 요셉을 찾아와 용서를 구한다(창세기 50장 17절). 요셉은 형들의 이 말을 듣고 울었다. 게다가 형들은 요셉에게 자신들을 종처럼 부려달라고 요청한다(창세기 50장 18절). 그러나 요셉은 형들에게 복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고 고백한다(창세기 50장 20절). 도리어 형들을 위로하고 안심시켜 주었다. 자신이 애굽에까지 와서 이민자로 살게 된 것은 형들의 박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들을 살리시기 위한 섭리로 바라본다. 그래서 형들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었다.   그는 성경적인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그는 자기 민족의 미래를 믿음으로 예언하였다.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고 했다(창세기 50장 24절). 그는 자신의 해골이라도 가지고 가나안에 가기를 유언으로 남겼다. 또한 짧은 유언이지만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리라. 하나님이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가나안에 이르게 할 것이다.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실 것이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유언한 것이다. 무릇 신앙인들은 국내에서 살든지, 아니면 외국에서 이민자로 살든지 요셉과 같은 죽음을 살아야 한다. /평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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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9
  • 여호와의 그날 (1)
      열국의 전쟁 스가랴 14장 1절 - 8절    1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2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 3그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 이왕 전쟁 날에 싸운 것같이 하시리라 4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5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찌라 너희가 그의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 6그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7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8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이 세상 종말의 역사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인봉된 예언의 계시가 두렵고도 장엄한 한편의 드라마로 영광의 주님의 재림을 고(告)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날을 가리켜 성경 본문은 “여호와의 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시간 여호와의 그날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먼저, 여호와의 그 날에 지상 최후의 전쟁이 있습니다.(1-2절)   1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2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   1) 이 전쟁은 하나님이 열국을 모아 공격 합니다. 본문 2절에 “내가 열국을 모아 싸우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내가 .... 싸운다”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 하셔서 싸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열국을 모아서 공격합니다. 이 열국은 사탄의 정체요, 교회와 성도를 대적하는 정체입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이 열국을 동원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는 지상 최후의 대 전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이래로 전쟁을 통해서 선민에게는 징치의 수단으로 악인에게는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2) 이 전쟁으로 예루살렘은 대환난을 당합니다.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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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9
  • [윤종성의 쉽게 배우는 한의학 9] 한의학적인 건선의 치료에 대하여
      특정 부위의 피부 세포가 지나치게 빨리 재생되는 만성 재발성 피부질환인 건선은 한의학에서는 백비, 우피선, 송피선 등으로 설명한다. 수년에 걸쳐 진행되는 만성재발성 피부질환인 건선은 점차 두꺼워져서 육안이나 손으로 만져보아도 발진의 두께가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대표적인 건선 발진의 특징은 각질, 붉은 색조, 피부가 점점 두꺼워진다.   이러한 건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의학적으로는, 육음이라고 말하는 풍한서습조화의 외부에서 침입하는 여섯 종류의 질병을 유발하는 사를 말한다. 기쁨, 화냄, 우울, 생각, 슬픔, 공포, 놀람 등의 일곱 가지의 감정변화(칠정)가 있어서 인체의 객관적인 사물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게 된다. 음식, 노동, 휴식은 인간의 생존과 건강을 위한 필수 조건이지만, 무절제한 음식이나 노동과 휴식의 합리적인 배분이 안 되면 생리기능에 장애를 주어 질병을 야기하게 된다. 한의학적으로는 명나라의 〈면역유방〉이라는 책에서 ‘면역’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나타나며, 한의학적인 질병관은 정기와 사기 간의 투쟁으로 파악한다. 정기가 사기를 이기면 질병이 호전되는 것이고, 사기가 정기를 이기면 질병이 악화되는 것이며, 정기와 사기가 비슷하여 힘겨루기를 하는 정사상쟁의 세 가지 과정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치료의 관건은 정기를 보하고 강하게 해서 사기를 이기게 한다. 정기는 사기에 대한 상대적인 용어로 진기나 원기로 불리는데 인체생명 활동력의 총칭으로 볼 수 있으며, 생리기능상 병사에 대한 방어와 호위 기능을 하면 위기라 한다.   선천지기인 원기는 신에서 생성되므로, 진기나 원기는 신과 관계되는 것으로 볼수 있으며, 진기가 곡기와 더불어 인체를 충실하게 한다는 것은 신과 비의 기능이 병합되어야 비로소 제 기능을 수행함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폐주기라고 하여 인체의 모든 기는 폐가 주관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오장육부와의 연관성을 볼 때, 신과와 폐가 기를 생성하는 주요 장부로서 한의학에서의 건선 치료는 신허, 비허, 폐허로 분류하는데 이의 구별은 면역기능저하의 정도에 따라 나누게 된다.   지금까지의 설명에서는 면역기능이라는 현대적인 용어를 사용했지만, 궁극적으로 한의학적으로는 정기가 허한 것이 건선의 발병 원인이라고 하겠다. 정기가 허한 것이 건선의 발병 원인이라면 그 치료법은 ‘부정거사’라는 정기를 부양해서 사기를 제거하는 방법이어야 하겠다. 그러나 정기를 도와서 사기를 제거하기가 여간 만만치 않으며, 사기를 제거하는 방법도 종류에 따라 다양하다.   최근 일본에서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시령탕, 의이인탕, 계지복령환, 대황목단피탕, 도핵승기탕, 방풍통성산, 황련해독탕, 소풍산, 온청음, 십미패독탕, 방기황기탕, 갈근탕, 시호계지탕, 마행의감탕, 시호청간탕, 소시호탕, 대시호탕, 형개연교탕, 당귀음자, 육미지황탕, 자음강화탕, 가미귀비탕 등을 가감하거나 병용 또는 합방하여 건선을 치료하고 있다.   그러나 건선의 증상과 체질에 따라 처방을 감별해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또한 건선에 좋다고 이미 알려진 민간요법들이 많이 있는데, 타인에게 좋다는 말만 믿고 본인에게 맞지 않는 요법을 시행하여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므로 의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민간요법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반드시 전문가에게 상담을 한 후에 시도하는 것이 좋다. 추천할 만한 일반적인 목욕 방법으로는 고삼과 맥문동, 권백(부처손), 각 200g을 물 5리터에 넣어서 30분간 끓인 후에 적당한 온도로 따듯하게 하여 매주 3〜4회 정도 목욕을 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  /경희신창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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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9
  • [실로암] 후회하지 않을 만한 가치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내게 어린놈이 분수에 맞지 않게 유난떤다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나는 종종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시간이 되면 죽게 되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일어나지 않을 지도 모르는 사고를 위해서 보험도 드는데 분명히 일어날 일에 대해서 덮어두는 것은 내 성격이 견디기 힘들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이유는 그리 오랜 삶을 살아보지 않았음에도 지독하게 후회스러운 지난 시간들 때문이다. 방문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와 집을 난장판을 벌이고 돌아가는 어린 조카처럼(난 아직 조카가 없다만) 잘 다스리고 있는 줄 알았던 과거의 기억들이 내 속에서 난장판을 벌일 때가 있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지난 시간들이 혹시라도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는 미래의 내가 되지 않도록 나를 건드린다. 과거의 것들을 마주하는 것은 지금도 괴롭지만 그나마 성장한 것은 괴로움을 부정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후회하는가’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사는가’와도 같다. 내가 이전 어린 시절에 후회하던 것들은 다른 청년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내가 무언가 되지 못한 것’, ‘내가 무언가 가지지 못한 것’, ‘내가 무언가 누리지 못한 것들이다.’ 지금도 이러한 것들에 완전히 자유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한 가지 통찰을 얻은 것이 있다. 나이가 들어 몸이 변하면서 취향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더라는 것이다. 이 말은 내가 후회하게 될 내용도 변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고 이 말은 또 이전에 후회하던 것들 중에는 ‘내가 왜 그런 것을 후회했지?’ 생각하게 될 것들도 있다는 말이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 바라기 때문에 내게 고통이 되었던 것이지만 지금은 없어도 덤덤한 것들, 저것을 소유하기 위해 목숨 걸었다면 큰일 날 뻔했을 것들이 있을 것이란 말이다. 이렇게 후회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난 마지막 때에 후회하긴 싫다.   난 소위 ‘세상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다. 물질이나 쾌락이나 권력이나 하는 따위의 것들(이것을 죄악시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도 자유롭지는 않기에 나름 이 마음가짐에 거짓이 없도록 노력한다. 마치 실수로 유튜브로 결말을 봐버린 영화가 재미없고 따분한 것처럼 가질 만큼 가져보고 놀 만큼 놀아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들로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빠듯한 점심시간에 아내와 식사하고 10분 낮잠 자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후회하지 않을 만한 가치가 무엇이 있을까?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행복감은 이해와 사랑의 관계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럴 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존재방식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구원이란 처음 지음 받았을 때처럼 사랑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그러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믿는다. 나는 나의 가정과 내가 속한 공동체가 이해와 사랑이 가득하길 원한다. 그래서 그렇지 못할 때 마음이 많이 아프다. 깨어진 것들이 사역의 짐으로 느껴진다. 복구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지만 건드리지도 못하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훗날 마지막에 후회를 하게 된다면 이러한 공동체를 더 많이 이루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싶고 그렇게 될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사랑을 잘 모르고 때로는 진흙탕 물을 솟구쳐 올리는 땅처럼 후회할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한다. 그리고 뒤늦게라도 배우고자 한다. 어리석고 한심한 내 자신을 깨닫게 하는 사건들이 종종 일어난다. 스멀스멀 내가 나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나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처럼 앞으로도 이끌어 주실 것을 어제보다 오늘 조금씩 더 신뢰한다. 또한 나를 이끌어주듯이 저 사람도 이끌고 계실 것이기에 난 후회할 짓을 좀 덜했으면 좋겠다. /강릉중앙교회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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