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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십자가’ 지는 헌신 1회] 카이로스로 드려진 언약과 산 증인
      입애굽에서 출애굽하여 가나안 정복까지 그 일에 대한 예표와 이루심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은 영생할 수 있는 생령의 존재였다. 하지만 불순종의 죄를 범한 후 그의 후예들은 사단의 종으로 태어나 죄인으로 살아야 함을 말씀 속에서 찾는다. 죄인이 된 아담의 자손들은 하나님과 원수인 사단의 편에서 유한한 삶을 육체의 기회로 삼았음을 발견한다. 육체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하셨다. 이런 죄인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또 하나님의 일을 하지도 못한다고 하셨다. 육체를 위하여 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둔다고 하셨다. 하지만 영을 위하여 사는 자는 성령의 일을 생각하고, 성령의 일을 하며 영생을 유업으로 얻는다고 하셨다. 전도서는 모든 것을 누려본 솔로몬을 통해 교훈을 한다.    육을 위한 모든 것이 헛되다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는 생명과 영광과 희락이라는 영적인 일들임을 확증해 준다. 아버지의 일은 영이요 생명의 말씀으로 살리는 영의 일임을 성경은 증거해 준다. (요한복음 5장 21절참조) 죄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못하고 사단에 매여 육체대로 살기에 이들을 살리시기 위해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버려두시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를 성경은 애굽에서 출애굽하여 광야생활을 거처 가나안에 들어가 일곱족속을 몰아내며 그 땅을 차지하는 사건에 그림자와 예표로 담아 놓으셨다. 마귀의 일을 멸하기위해 오셨다는 예수그리스도와 거듭난 자들의 선한 목적이다. 죄인을 의인으로, 사단의 종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는 구속사이다. 곧 성경은 영적으로 죄인이 된 아담의 후예들을 그리스도를 통해 살리시는 구속사의 연속임을 확증케 한다. 이를 기록목적과 성경을 상고하는 목적에 담아 깨우쳐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어야 하는 이유와 오심의 목적이다. 주를 믿는 자들을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심의 목적이다. 성령과 함께 구속사역에 참예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결과 주의 나라 확장이다. 곧 주의 백성으로 회복이며 창조의 목적대로 쓰시기 위함임을 깨닫게 한다. 이에 본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사도들이다. 성경은 교육하여 의에 이르게하며, 전에 기록한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함임을 확증케 한다. 이와같이 사람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그의 삶은 카이로스로 변화를 갖게 된다.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시간은 전도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살리는 일이다. 사도들은 어떤 상황에 놓인다할지라도 주께서 보이신 자취를 좇아 그 본을 좇았음을 알게 된다. 야고보는 칼에 목 베임을 당했고 스데반은 유대인들이 돌이키도록 구약에 예언된 말씀을 들고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입증하다 돌에 맞아 순교했다. 이와같이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시간으로 삶을 드려야 함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서로 사랑의 필연이다. 거듭난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표현하여 하나이며 모두 주를 위한 지체들임을 상고하게 한다. 또한 하나된 그 몸은 이웃 사랑을 하여 주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에 지체의 몫임을 연계하여 증거한다.   그러므로 이를 위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시간으로 모두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일들로 선을 이뤄가야 한다. 사순절기간 감사로 은혜가운데 이를 행하게 하신 주님의 십자가 사역이시다. 이웃을 살리는 성도들로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의 백성으로 회복을 위한 카이로스임을 확증케 한다. 성령을 주시며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을 요구하셨던 주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지체들임을 새기며....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그 하나님의 때 카이로스로 드려짐에 감사이다./오이코스대 교수·바이블아카데미 학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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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1
  • [건강교실] 유소아의 난청
      아이들이 갖고 노는 전자식 장난감의 큰 소리가 어린이 청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장난감 전화기를 쓰는 연령은 2~3세로, 매우 어릴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각별히 주의해야 할 사안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하루 8시간 90㏈A’을 근로자의 소음허용한계로 정하고 있고, 폭발음은 140㏈을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소음이 90㏈에서 3~5㏈ 증가할 때마다 폭로시간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유소아는 △성인에 비해 소음에 더욱 민감한 연령이라는 점 △장난감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폭로기간이 개인에 따라 편차가 있을 수 있다는 점 △성인에 비해 정확한 청력평가가 어렵다는 점 △유소아에서 청력장애가 발생할 경우 영구적이며 언어 및 학습기능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 등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엄격한 소음기준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90㏈의 시끄러운 환경에 하루 8시간 이상 폭로될 경우 성인의 노동 작업장 환경기준을 초과하는 수치이며, 소음성 난청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례로 이어폰의 음량을 크게 하여 듣는 경우 개인에 따라 이명, 이충만감 및 청력손실 등의 증상을 동반한 일시적인 청각피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장기간 폭로되는 경우에는 감각신경성 난청이 진행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유소아의 경우 표현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난청을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으며, 언어 발달이 완성되기 이전에 난청이 발생할 경우 언어 습득에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 최근 모든 신생아에서 난청 선별검사를 하는 추세로 변하는 것도 이러한 이이다다. 또 소음에 의해서 파괴된 와우내의 외유모세포는 재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치료로는 소음성 난청 이전의 청력을 회복할 수 없다.   어린이는 청력이 가장 예민한 시기이며, 주위 소음에 대한 회피능력과 조절능력이 성인에 비하여 떨어지기 때문에 무방비하게 노출될 수 있다. 또한 이관기능이 성숙되지 않아 중이염이 호발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어린이의 경우 청력장애가 발생해도 잘 표현하지 못해 어느 정도 진행한 후에 부모가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도 조기발견, 적절한 청력평가 및 원인에 따른 조기치료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TV나 라디오 청취 시 음량을 너무 크지 않게 조절해 줄 필요가 있겠고, TV를 가까이서 보는 경우, 불러도 잘 대답하지 않는 경우 등 조금이라도 청력장애가 의심되는 경우에는 이비인후과에서 정확한 청력검사 및 진찰을 받아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소아 난청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으며, 최근 Joint Committee on Infant Hearing (JCIH)에 따르면 태어난 지 1개월 적어도 3개월 안에 모든 유아는 청력검사를 시행하여 청력장애여부를 판정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유소아의 청력장애는 늦게 발견되기 쉬우며, 이런 경우에 언어발달과 학습능력이 지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환경적인 소음의 노출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부족하다고 볼 수 있으며, IT산업의 발달로 여러 가지 다양한 휴대형 음향기기가 개발되고 있고, 노출되는 연령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따라서 유소아의 청력에 대한 보다 많은 홍보가 필요하고, 산업 및 사회적으로도 보다 엄격하게 관리돼야 할 분야이다. /한양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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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31
  • 뇌를 알면 가정이 보인다(4)
      그래서 식사를 마치고 좀 휴식을 취한 다음 2시간 뒤부터 공부를 하면 평소보다 능률이 두 배 이상 상승한다. 이런 이유로 오전 10~11시경 업무가 가장 효율적인 셈이다. 이처럼 뇌의 원리와 기능을 알면 모든 것이 쉬워진다.   식사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되었다면 최고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 시험 전 2시간 전에 식사를 끝내야 하고 머릿속의 지식을 얼마나 채워 넣느냐 보다는 뇌의 컨디션을 최고로 만들어 주며, 지식이 얼마나 많이 오래 기억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포도당은 탄수화물의 분비에 따라 생성되므로 밥이나 빵, 그리고 콘프레이크 등의 아침식사를 하면 좋을 것이다. 식사를 하면 혈당이 올라가는데 식사 때에는 최대한 많은 혈액을 뇌로 보내야 한다. 그러려면 과식하지 말고 식사를 꼬박꼬박 하는 습관이 최고 좋은 방법이 된다.   식사할 때에는 음식물을 천천히 씹는 게 최상이다. 씹을 때마다 대뇌신경세포가 활발히 움직이며 대뇌의 뇌간망상체가 각성되는 것이다.   특히 오징어나 쥐포 등을 잘근잘근 씹는 것은 결국 뇌의 혈류량을 늘리는 데 효과적이며 씹으며 씹을수록 뇌의 혈류량은 증가한다. /경기대 뇌·심리전문연구원·한국상담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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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8
  • 온 집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요12:3)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을 이 땅에 계시다가 감람산 기슭 베다니에서 승천 하셨다. 그때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이르되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 하심에 모두 당대에 예수님께서 오시리라 믿었던 것 같다.(행1:11) 그러나 베드로와 바울이 AD65년, 68년 순교하고, 예루살렘은 70년, 로마군에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막13:2) 다 무너져 내렸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기록으로 남겨야 할 필요가 절실해졌다. 마가는 60~70년경, 마태는 70~80년경, 누가 60~62년경, 기쁜소식 복음서가 기록되었다. 나사로를 살리신 이야기는 90~100년경에 기록된 요한복음에만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요한은 그 잔치 날, 예수님 바로 곁에 있었고, 그날의 이야기는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나사로의 집에서 잔치할 때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였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라.”(요12:1~6)   마태, 마가복음에 “옥합을 깨고 기름을 부은 익명의 한 여자”는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이고, 잔치는 죽음에서 부활한 “나사로의 집”이었고, 투덜대던 제자 중 “어떤 이”는 “가룟 유다”이고, 그는 예수를 잡아줄 도둑이었다고 요한은 확실하게 기록한다. 향유는 “예수님의 머리”가 아니고 유대풍습대로 예수님 발에 부어졌을 것이며, 온 집에 향유 냄새가 가득했다.(요12:4~6)   마리아는 오라버니를 살려주신 주님께 향유 옥합 열 개라도 부었으리라. 헌신은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이다.    /한강교회 권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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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8
  • 한 퇴역 목회자의 이색적 현장 목회(3)-백도기의
    동생(한용이)의 느닷없는 도전에 낌새(눈치)를 챈 형 한주가 동생의 입을 틀어막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너 지금 무슨 헛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냐?”라고 구차하게 응수했는데,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여기서 동생 한용이가 아침밥을 얻어먹었다고 하는 ‘어떤 여자’란 바로 형 한주가 옛날 범했던 가정부 신분의 여자였다.   형 한주가 “짜식들이 긍지도 없어. 함부로들 처신을 하고….”라고 말했을 때, ‘짜식’이 아니라 ‘짜식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문제의 막내 한필이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바로 밑 동생 한용이까지 포함시켜서 한 말이었던 것이다. 즉 여자관계에 있어서라면 한용이 너도 꿀린 데가 있지 않느냐, 라는 의미였다고 보겠다. 그것은 한용이의 결혼 문제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래서 약점을 건드림(지적) 당하게 된 한용이 반발의 의미로 “형은 어쨌는데?” 하고 옛날의 그 가정부 얘기를 꺼내다 말았던 것이다.   한용이는 어느 술집 여자 하나를 건드렸었는데, 그녀와의 사이에 두 아이들을 배게 했지만 둘 다 낙태시켰었고, 뒤에 하나 더 배게 했다가 그 애를 지우기 위해 그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던 현장에서 그녀의 애원에 못 이겨 그 애를 낳게 허락해버렸으며,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뜻하지 않게 그녀와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형(한주)의 처지에서 보자면 ‘짜식들이 긍지도 없이 함부로 처신을 한’ 꼴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한용이가 두 번째 아이를 낙태케 하며 단순히 그녀를 육체적 향락의 도구로만 삼았을 시기까지는 확실히 그는 ‘함부로 처신을 한’ 편이었다고 보겠다. 그리고 그가 그녀와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 일은 실로 ‘긍지도 없이’ 처신한 일로 형에게 비쳐졌을 것임은 너무도 당연하였다. 만약 형 한주의 경우라면 이때 그는 응당 그녀를 차버렸을 것이다. 마치 전에 그가 가정부를 그렇게 대했듯이….   한주는 결코 네플류도프(<부활>의 주인공인 사내)는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용이는 종국(終局)에 가서 자신이 향락의 도구로만 삼으려던 비천한 신분의 여인을 자신의 정식 부인으로 맞아들임으로써 작은 네플류도프의 역할을 해 낸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서 작은 부활인 상을 보게 된다고 하겠다. 세 형제들 가운데서는 그래도 그가 가장 미래가 엿보이는 인물이라고 표현해 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런 인물에게도 여자관계 외에, 고의적으로 아버지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서 각종 방법으로 골탕을 먹이던 과거가 있었고, 그러한 행동이 방탕한 아버지에 대한 응분의 보복이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지만, 뒤늦게 그가 깨달은 것은 그런 자신의 그 행위들 자체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자학행위에 다름 아니란 사실의 인식이었다.   그는 형으로부터 돈을 뜯어내기 위해 형의 승용차를 몰래 몰고 나가 그것을 미끼로 돈을 얻어내려고까지 했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돼서인지, 아마도 이 소설의 화자인 휴직 목사(나)와의 친분관계가 형성되고 난 뒤부터의 일인 것도 같지만, 점차로 인격의 변화를 보이고 있는 편이다. 그는 동생 한필이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도 형 한주보다는 훨씬 유연한 태도로 해결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갑자기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한필이가 낳을 애를 자기가 길러 보겠다고 결심한다든지, 형은 3만 원만 쥐어 보내는데 그 자신은 한 10만 원쯤 채워 입원 수술비에 충당케 하려 한다든지, 이처럼 인간다운 모습을 그래도 약간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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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7
  • 그 상속은 오직 약속으로
      갈라디아서 3장 15절부터 25절에서 사람간의 확정된 약속도 변경할 수 없듯이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 변경 또는 폐기되지 않는다. 창세기 17장 7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씨에게 하신 약속이 바로 그러하다. 아브라함의 아들은 이삭을 말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왜 그럴까요? 사라가 육신으로는 절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중에 오직 하나님의 약속으로 난 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돌아오리라 하신 그 오신 표가 사라가 아들을 낳은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에게 하나님이 임마누엘 하신 것이다. 이는 처녀 마리아에게서 임마누엘 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다. 마태복음 1장 1절에 아브라함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분명히 계시했다. 오늘날 아브라함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받은 자가 된다.   그리고 그 약속의 유업으로 하늘의 영생하는 기업을 받아 누리게 된다. 이는 요즘 세상 사람들이 소위 똘똘한 집 한 채를 소망함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상속인 것이다. 따라서 그 상속은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요, 오직 약속을 통해서만 이뤄진다. 그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확정하신 것이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심과 함께 약속도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확정하셨다. 이를 먼저 아브라함에게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이루시어 하늘에서 아브라함에게 상속해 주신다. 이는 아브라함만이 아닌 아브라함 씨가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다. 즉 미리 확정하신 약속이요, 약속대로 우리에게 이루시고 상속을 받게 하신다. 우리가 태어난 후 무슨 선을 행한 것을 보고 상속하시는 것이 아니다. 미리 그리스도 안에서 확정하신 언약에 따라 행하신다. 그렇다면 율법은 왜 있는가? 이는 범법함 때문에 더해진 것이요, 약속하신 그 씨가 오실 때 까지만 이라고 했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즉 지도교사와 같다고 했다.   비록 상속자인 아들들이라도 어렸을 때는 청지기 아래 종같이 산다. 그러나 믿음이 온 후로는 더이상 종이 아니요 아들로 살고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약속을 받은 자로 살게 하시려는 역사이다. 할렐루야!/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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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7
  • [건강교실] 갑상선암 (하)
      갑상선암은 조직학적 분류에 따라 유두암, 여포암, 수질암, 미분화암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90% 이상을 차지하는 유두암은 진행속도가 느리고 10년 생존율이 90% 이상에 달해 매우 예후가 좋은 암종이다.   갑상선암의 약 5% 정도를 차지하는 여포암은 우리나라와 같이 요오드가 풍부하게 함유된 해산물의 섭취가 많은 지역에서는 발생율이 낮다. 그리고 갑상선 주변의 혈관을 침범하여 혈액을 타고 폐나 뼈 등으로 원격전이 되는 경향이 유두암에 비해 높다.   일반적으로 유두암과 여포암을 갑상선 분화암이라 하며 이들의 생존율은 매우 양호하다. 만약 조기에 발견되어 수술을 한다면 90% 이상 완치되는 암으로 암종의 조기 진단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한 암이라 할 수 있다. 미분화암은 매우 오래된 일부의 갑성선 분화암이 역분화를 일으켜 발생한다. 60대 이후에 발생율이 증가하며 분화암과는 달리 매우 빠른 성장속도를 보인다. 무엇보다 어떠한 치료에도 잘 반응하지 않는 매우 불량한 암종으로 분화암과의 감별이 필요하다.   갑상선암의 치료로는 수술이 주된 치료법이며 수술 후 방사성요오드 치료를 병행할 수 있다. 갑상선 절제술은 절제 범위에 따라 엽절제술, 아전절제술, 전절제술 등 다양한 술식을 포함한다.   또한 최근에는 일부의 선택된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 후 미용적인 면을 고려하여 경부 피부절개를 최소화하거나 혹은 내시경, 로봇 등을 이용하는 최소 침습 수술법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방사성 요오드치료는 우리 몸에서 유일하게 갑상선 조직만이 요오드를 섭취한다는 사실을 이용한 치료법이다. 방사성 요오드를 복용하면 장에서 흡수되어 혈액을 통해 남아있는 갑상선 조직에 모이게 되고, 방사성 요오드에서 방출된 방사능에 의해 갑상선 세포를 파괴하는 원리이다. 이렇게 하여 암종의 재발을 줄일 수 있다.   갑상선 양성종양에서도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결절의 크기가 크거나 미용 상 문제가 되는 경우, 혹은 종양에 의해 기도나 기관의 압박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수술적 치료가 우선이다. 하지만 그 외 대부분의 양성종양에서는 수술적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으며 주기적인 관찰이나 경화요법, 고주파 치료 등의 비수술적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아직까지 미세 갑상선 결절에 대한 선별검사가 반드시 해야 할 권장사항으로 정해지지는 않았다. 다만 갑상선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분화성암은 조기에 발견하여 수술한다면 90% 이상 완치되는 예후가 매우 좋은 암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드물게 현재로써는 적절한 치료방법이 없는 미분화암으로의 전환 가능성이 있으므로 갑상선 초음파검사와 세침흡인세포검사 등을 통한 갑상선암의 조기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최근 갑상선암 수술에 있어서 로봇 갑상선 수술이 주목되고 있다. 여러 로봇 갑상선 수술 방법 중 구강으로 접근하는 경구강 접근법이 수술 침습도가 적고, 수술 후 미용 만족도와 음성 기능 보존이 가장 우수한 방법이다. 즉, 기존의 목 절개수술과 다르게 구강을 통해서 함으로 외부적 흉터가 발생하지 않아 미용적으로 낫고, 또 수술 후 음성기능에 장애가 발생할 확률이 적다는 의미이다. /한양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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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6
  • 정성구박사 칼럼
      오늘의 젊은이들을 <꿈포시대>라고 한다. 아예 꿈을 꿀 수도 없고, 꿈을 포기한 시대이니 끔찍하다. 젊은이들은 좌우를 돌아보아도 아무 곳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꿈은 젊은이만 꾸는 것이 아니고, 늙은이도 꿈을 꿀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청년도, 장년도, 노년도 꿈을 잃어버렸다. 일찍이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워싱턴의 링컨 메모리얼 홀 앞에선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I have a Dream>이라고 외쳤다. 필자는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주의 종들이 품었던 꿈을 이 절망의 시대에 한번 같이 꿈을 꾸어보자는 것이다. 성경 해석에는 현미경적 방법도 있지만, 망원경 적 방법도 있는데, 그것은 곧 성경을 구속사적(救贖史的) 안목에서 보는 것이다.   첫째, 아브라함의 꿈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메시아 왕국 건설의 기초를 쌓으라는 명령을 받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복의 근원이 되고, 무자 했던 그가 자손 대대로 복을 받아 하나님 나라 건설의 초석>이 된다는 웅장한 꿈을 꾸었다. 그 꿈 때문에 그는 신앙의 용장이 되었다. 둘째, 노아의 꿈이다. 하나님은 배 만드는 늙은이를 선택하시고, 그에게 꿈을 심어 주셨다. 그래서 노아의 꿈은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을 반드시 심판하는 것이며, 그래도 남은 자는 보호하시고, 그 씨는 구원하신다>는 꿈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120년 세월 동안 온갖 비난과 저주, 감당할 수 없는 핍박에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셋째, 모세의 꿈이다. 모세는 더 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왕위를 버리고, 부귀영화와 정치적 기득권을 버렸다. 히브리서 기자의 해석대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라고 했다. 모세의 꿈은 장차 오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았다. 그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꿈이며, 가치 기준이며, 동력이었다. 넷째, 요셉의 꿈을 살펴보자. 요셉은 인간적으로 불우한 젊은 날을 보낸다. 형들의 미움을 사서, 이방 나라에 팔리고, 보디발의 집에서 총무 일을 하는 중 순결을 지키려다 모함을 받아 감옥살이를 했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은 역사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주권이 움직이고 있다는 꿈을 꾸었다.   다섯째, 선지자 이사야의 꿈이다. B.C 600년 전에 정국이 지극히 혼탁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철저히 부패하고 타락했을 때, 그는 선자로서 거룩한 꿈을 꾸었다. 그는 인간은 스스로 아무 문제 해결을 할 수 없고, 인생과 사회와 만물이 새롭게 되는 것은 장차 메시아가 올 때 해결된다는 웅장한 꿈을 꾸었다. 여섯째, 다윗의 꿈이다. 다윗은 위대한 시인이요, 음악가요, 야전 사령관이요, 한 나라의 국왕이었다. 그러나 그도 인간인지라 한때 타락했으나, 철저한 회개를 통해 다시 일어났다. 그 후 다윗의 또 다른 꿈이 생겼으니 그것은 <해 돋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일곱 번째, 선지자 아모스의 꿈이다. 아모스는 드고아 목자 출신의 선지자이다. 그가 살던 시대는 오늘 우리나라처럼 혼란스럽고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고 눈을 씻고 봐도 희망이 없던 시대였다. 그러나 그 절박하고 암울한 시대에도 아모스는 위대한 꿈을 꾸었다. 즉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그의 꿈이었다. 오늘날 권모술수와 언론계, 법조계, 정치계가 민주화를 앞세워 사회주의자들이 집단 최면으로 몰고 가고 있지만, 우리는 아모스가 꿈꾸던 것을 꾸어보았으면 한다. 여덟 번째, 하박국 선지자의 꿈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가 살던 세상을 보고, 한없이 실망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원천적으로 부정이 자행되고,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은 항상 손해 보고 낙오자 되고, 불법, 탈법, 도적놈, 사기꾼들은 출세하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하박국은 기도 중에 얻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시국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답>이라는 것과 <그래도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라는 답을 얻었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꿈이 하나 생겼다. 즉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합2:14)는 놀라운 꿈이었다.   아홉 번째 신약에서 예수님의 꿈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했다(마20:28). 요즘 지도자들은 거의 교황이 다 되었다. 예수 닮으려면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꿈을 꾸어야 할 것이다.   열 번째, 사도바울의 꿈이다. 그는 한때 율법주의자였으나, 그리스도의 은총의 포로가 된 후에 그의 꿈이 변했다. 그는 인간의 자기 노력으로 구원에 이르겠다는 인본주의 지성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라고 그의 꿈은 확신으로 변했다.   교회사 시대에도 어거스틴의 꿈은 <하나님의 도성, Civitate Dei)었고, 16세기 요한 칼빈의 꿈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Soli Deo Gloria>였다. 그리고 19세기의 카이퍼는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왕권, Pro Rege>을 세우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꿈포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좌우를 돌아보아도 절망의 벼랑에 서 있는 모든 이들에게, 성경과 교회사에 <거룩한 꿈을 꾸었던 분>이 우리의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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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4
  • [그 사랑’ 거룩한 성화 11화] 구속사역에 성령과 동행하는 선함
    주님의 말씀에 화답하여 제자화위해 힘쓰고 믿음과 행함이 일치된 삶을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라는 말씀에서 내가 주 안에 거해야 하는 화답의 소중함을 찾는다. 잠언 23장 4절 “겸손과 여호와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는 말씀과 연계하여 같은 열매를 맺히기 위한 몫의 화답임을 발견케 한다. 열매는 주를 알고 믿게 하여 순복한 은혜의 선물로써 주의 백성이다.    죽으셨다가 부활을 나타내 사십일을 보이시며 살아나심을 믿고 교훈을 좇도록 하여 나타내주신 기업이다. 바울은 더 많은 이들이 이 사랑을 알도록 자신이 택정함을 입었다고 했다. 성도들 역시 그 자취를 좇아 거듭나게 하심의 목적으로 몫에 화답의 마땅함이다. 이처럼 부르시고 거듭나게 하시어 의에 이르게 하신 주님의 사랑이 거룩함을 위한 몫을 하게 하신다. 주님의 말씀에 화답하여 제자화를 위해 힘쓰는 것이다.    곧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라는 대강령에 화답이다. 이 일로 주의 경륜이 이루어짐을 알기에 믿음과 행함의 일치된 신앙관이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에 이르도록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또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주께서 사신 것이라는 말씀에 온유와 겸손이다. 그러기에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고 하셨다. 주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 안에 거하게 되는 몫에 제자화가 되도록 사랑함임을 깨닫는다.    이와같이 새 가치관의 몫은 주를 경외하는 삶에 선한 열매를 맺히는 사랑이다. 주의 종임을 확실히 알고 종의 몫에 주의 제자화가 되도록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사신으로 삶이다. 주께서 지신 십자가 사역이 사랑임을 알기에 더 많은 이들이 주의 백성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복음을 위해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주의 마음을 품고 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서로 사랑으로 이웃 사랑을 한 결과 재물과 영광과 생명인 것이다. 고린도후서 6장 1절에서 10절의 말씀과 같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하심의 뜻을 알고 신앙의 지침과 성화에 초점을 맞춘다. 소금과 빛의 직임을 바로 하여 열매를 맺힐 수 있는 관계형성을 위해 인격의 함양도 강조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지체로서 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께서 하나님이시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구약의 예언대로 순종하여 온유와 겸손으로 이루심과 같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하신 사랑이다. 십자가 구속사역에 대한 화답이시다. 곧 이사야 53장10절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하심에 순복하여 이루신 선한 열매들이다. 다시 말해서 이 일에 본을 보이심은 그 자취를 좇아 말씀 안에 거하여 주와 복음을 위해 살아 열매를 많이 맺혀야함을 확증하심이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자신을 힘써 주께 드림이 마땅함임을 확증하는 바이다. 주께서 죄인을 위해 자신을 주신 사랑이기에 성도들도 그의 자취를 좇아 본을 받는다. 오직 그리스도 사신의 몫을 함이 주께 기쁨이 됨을 알고 새 생명을 얻게 하는 사랑의 섭리를 좇게 하신다. 곧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복음을 위해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주께 드림의 합당함이 우리가 말씀에 화답임을 확증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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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3
  • 네 안에서 모두가 복받는다
      갈라디아서 3장 7절부터 14절에서 믿음으로 난 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라. 일반적으로 중동의 이스라엘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다.’(요8:33) 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믿음으로 난 자들이 아브라함의 씨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믿음으로 갈라디아 교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확신하지 못한다. 갈라디아서 3장 1절에서 ‘오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께서 너희 가운데서 십자가에 못 박힌 채로 너희 눈 앞에 분명히 제시되었는데 어찌 누가 진리에 순종치 못하도록 미혹하느냐? 성령안에서 시작했다가 이제는 육체로 온전해지려고 하느냐?’ 라고 책망받는다.   그들은 십자가에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새 피조물 된 자들이요, 믿음으로 난 자들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이 곧 진리이다. 그런데 이를 믿지 않고 또 순종치 않고 있다. ‘이미 예수로 구원받았는데도 어찌 다시 옛날의 율법시대로 돌아가서 다시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이 있다고 미혹하느냐? 어찌 영으로 시작했다가 육으로 마치려느냐?’ 책망받는다.   이처럼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도 믿음으로 난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민족은 옛사람인 단군의 배달민족이 아닌 아브라함의 민족이 우리의 민족이 된다. 즉 이스라엘, 히브리 민족이 우리 민족이 됐음을 알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브라함과 더불어 복을 받으리라. 할렐루야!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켜 행하므로 구원받으려 한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그들은 저주 아래 있느니라. 이 율법의 저주를 그리스도께서 받으시어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그 저주에서 속량하셨도다. 우리의 죄악과 허물의 저주 우리의 질병의 저주등을 채찍맞음과 십자가 죽으심으로 속량하셨다. 우리 몸값을 지불하어 마귀의 종으로부터 우리를 되찾으셨다. 이 속량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을 의롭다고 칭하시니 곧 의인이 됐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또 그분이 부어주신 성령으로 살리라. 또 그분의 말씀으로 살리라. 이것이 그리스도인 된 네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 받으리라./예장 진리측 총회장·주사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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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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