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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민을 환대하는 교회가 되자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체류자의 수는 251만 명으로 이는 전체인구의 약 5%에 달하는 수치이다. 다문화가구도 약 40만가구에 달한다. 이제 우리는 수 많은 이주민과 살아가고 있다. 이들 중 유학 등을 이유로 단기에 체류하는 이들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이들에게 가져야 하는 중요한 자세는 환대의 자세이다.    성경은 이방인을 환대할 것을 말하고 있다. 레위기 19장 33절과 34절에서는 “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이주민을 환영하고 배척하지 않는 자세가 신앙인이 가져야 할 자세라 할 수 있다.    또 중요한 것은 그들을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취약계층이라는 편견으로 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의 융화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존재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주민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그들의 주거권이다. 한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선주민과 동일한 조건에서 생활해야 한다. 상당수의 이주민들 특히 이주노동자는 단체 생활을 하는데 이들의 숙소가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들의 최소한의 여건이 보장된 주거공간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가 이주민들이 초기 묵을 수 있는 숙소 등을 제공할 필요성도 있다. 또한 장기적인 정착을 할 수 있도록 한국문화와 실생활에서 필요한 상식들을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난 7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열린 이주민을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한 유학생은 “가장 힘들때 교회의 환대 덕분에 삶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렇듯 교회의 환대는 모든 이주민에게 필요한 것이며, 복음의 전달의 통로도 사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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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7
  • ‘교인감소’·‘다음세대’ 문제에 집중해야 - 금년 장로교총회에
    주요 장로교단 총회가 오는 5일부터 시작해 9월 중에 일제히 끝난다. 머지막 주간인 23일부터 27일까지가 가장 많다. 합동측은 23일부터 27일까지 울산 우정교회를 비롯해 통합측은 24일부터 27일까지 양곡교회에서 개회한다. 이번 정기총회는 총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을 선출하고, 주요한 선교 및 교육정책, 그리고 각 교단의 현안 문제를 다룬다. 특히 요즘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문제와 다음 세대 문제, 그리고 교인감소의 극복을 위해 집중적으로 논의해 새로운 정책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통합측을 비롯한 합동측, 고신측의 목사부총회장 선거전이 치열하다. 기장은 장로부총회장에 2명이 입후보했다. 통합측의 경우에는 3명이 입후보해 각 후보마다 선거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부총회장  선거전이 치열할수록 금권선거로 치닫을 수 밖에 없다. 각 교단 집행부는 공명선거를 위한 공정한 선거에 집중하고 있지만, 금권선거운동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워지고 있다. 교회가 이 금권선거로 인해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일꾼을 선출하는 데에 물질적으로 거래되어서는 안된다. 금권선거를 종식시키는 데에 모두가 앞장 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총회는 ‘코로나19’이후 급격히 감소되는 교인문제와 다음세대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계속 문을 닫는 교회가 늘고 있는 것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기 때문에, 교인감소를 현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해결할 방안도 마련해 다음 회기부터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세대 문제이다. 출산율의 저하로 인한 교회학교 부재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출산율 저하문제는 교회도 관심을 갖고 극복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의 몫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출산율 저하는 교회학교가 없어지고, 결국은 교회도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인공지능에 대한 문제도 적극 대처해야 한다. 통합측에서 윤리지침을 마련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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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7
  • [사설] 로잔대회가 한국교회에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
    로잔대회의 긍정적 효과는 무엇일까.   로잔대회가 성큼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교회 역시 오랜 기간 동안 이 복음주의 최대의 선교축제를 준비했다. 많은 기도회와 예배 그리고 간담회와 컨퍼런스 등이 진행되었고 목회자들은 물론 선교사들과 교회 행정가들, 평신도들 역시 모두 각자의 맡은 자리에서 이 행사를 함께 준비하고 기대해 왔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과연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또 다른 질문이 있다. 한국교회 모두가 이번 로잔대회를 찬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로잔에 대한 많은 우려의 소리도 있고, 로잔대회 개최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몇 개의 교단과 단체들은 로잔대회를 우려한다.      그리고 50년 역사 속에 로잔이 견지하고 있는 몇 가지 문제들. 특별히 로잔대회가 반성경적인 신학의 바탕 위에 세워졌음을 강조하며, 로잔대회를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이번 로잔대회를 찬성하고 협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 원인들로는 그간 한국교회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성장주의적 교회관, 세속적인 부와 관계된 기복신앙, 사회의 부조리와 정의문제에 등한시하는 한국기독교의 신학의 문제들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로잔대회 역시 이번 행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우려하는 다른 한 편의 목소리에 분명하게 대답해야 하고 논의해야 할 신학적이고 실천적인 숙제들이 남아있을 수 있다. 하지만 로잔대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종교적인 권위 없이 세상과 사회에 다가가려고 하는 초월적 신학과 실천적 영성에 있다.    복음의 교리를 전하는 것 이상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 복음의 온기를 전하는 일에 가치를 두는 그들의 실천적 제안은, 현재 한국 사회로부터 거부당하고 외면당하는 한국교회에 큰 도움과 변화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한국교회가, 이번 제 4차 로잔대회를 기대하고 준비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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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5
  • [사설] 감사의 의미를 생각하는 맥추감사절 되자
     ‘맥추(麥秋)’의 사전적 의미는 보리를 추수하는 일이다. 대개 봄철이 끝나는 시점이며,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7월 첫째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키고 있다. 하나님께서 밭에 뿌리 밀의 첫 열매로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다. 이를 “칠칠절(七七節)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출34:22,민28:26)’이다. 특별히 칠칠절(신16:9-12)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영육간의 축복을 감사하는 절기이다. 유월절이 끝나는 날부터 7주간이 지난 다음날을 칠칠절 혹은 맥추절 혹은 오순절이라고 했다. 이는 50일 간을 의미하며 마지막 날을 오순절 날이다. 유월절이 없으면 다른 절기의 계산조차 할 수 없다. 모든 기본은 유월절이 된다. 칠칠절은 과거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을 기억하고 풍요로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불우한 이웃과 함께 이를 기념하라고 명하고 있다.     맥추절은 우리의 사정과 다른 절기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지키던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과 비슷하다면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인정하고 서로 함께 나누자는 감사의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이러한 3대 절기를 통한 교훈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속죄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영육간의 축복을 감사함이요. 셋째 고난의 생활이 은혜임을 생각하며 감사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물은 바로 은혜이다. 맥추절이나 추수감사절은 은혜의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은혜란 하나님이 베푸시는 값없는 선물이다. 특별히 아무런 조건 없이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다. 필요할 때마다 순간순간 도우시는 주의 은혜이다(히4:16). 우리는 이 뜻을 받들어 주님께 감사하고 이를 생활 속에서 이루어 나가야 한다. 우리 주변에 너무도 어렵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들에게 은혜의 손길을 보내야 한다. 이제는 주변의 어렵고 고단한 이들과 함께하는 맥추감사절을 지키고자 하는 뜻에 따른 감사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은 한국교회를 인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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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 [사설] 여름성경학교 통한 다음세대 교육에 힘쓰자
     교회의 여름성경학교는 여름동안에 교회에서 주최하는 단기간의 성경 수업으로,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일군으로 성장시키려는 목적으로 방학 기간에 기독교 교육을 시행하는 학교이다. 여름성경학교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하고 예수가 인간을 구원해주어 새사람이 되었음을 깨닫게 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교회들의 여름성경학교는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수양회, 수련회 등으로 보완되고 있으나 한편으로 어학이나 여행 등의 프로그램으로 명맥을 유지하면서 정작 필요한 청소년의 신앙교육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위기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지나친 세속화로 사회를 향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보다는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는 현실이 되고 있다.     청소년의 신앙교육 활성화의 길은 무엇인가! 그동안 한국교회는 외적인 성장에만 치우쳐져 있어 성도들의 영적, 지적, 심리적 요구를 돌볼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은 극히 미흡한 상태에 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성경에서 가장 바람직한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계3:7-13)이다. 빌라델비아는 ‘형제사랑’을 의미한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주님은 거룩하고 참되신 분임을 고백하고 인내의 말씀을 지켰던 교회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4:8). 따라서 하나님이 중심된 교회를 회복하고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은 성령의 검(엡6:17)으로서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존 번연은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이 믿음의 소망의 순례길에서 3가지를 중시하고 있다. 첫째 사람들과 다른 옷을 입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옷이다(롬13:14). 둘째 가나안 말 곧 약속된 성경의 말씀을 사용했다. 셋째 ‘헛된 물건’을 사지 않았다. 오직 진리만을 샀다(잠23:23,요8:32). 디지털 시대의 모든 것은 헛된 물건들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유일한 진리인 ‘그리스도’가 중심인 말씀을 깨달아 가는 ‘진리’만을 가르치는 복음의 교육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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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 [사설] 단기선교위한 위기관리 교육 필요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단기선교를 위한 준비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단기선교를 위한 위기관리 교육의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단기선교지의 현지 상황과 문화 등을 성도들이 잘 알고 갈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여행자보험과 같은 준비를 통해 어려운 상황을 당하게 되더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여행자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사고를 당하더라도 보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성도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사항이다.   외교부에서 제공하는 해외안전여행 페이지에서는 여행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현지문화와 유용한 현지어 그리고 사고의 유형 등을 알리고 있다. 유용한 현지어에 경우 한국어로 발음도 적어 이용자들이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정보를 선교지에 방문하기 전에 배움으로써 선교지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현지법이나 정서를 알리는 것이다. 현지법을 잘 몰라서 현지에서 구류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지정서를 잘 몰라서 폭행 등의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한국과는 다른 교통상황도 알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선교지에서 발생하는 사고사례 중 가장 많은 경우가 교통사고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운전석이 다른 경우 운전에 더욱 유의할 것을 알려야 한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영상을 제작해 교회와 선교단체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이러한 내용을 알리는 것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안전한 단기선교를 할 수 있도록 관심을 촉구할 운동이 필요하다. 교단선교부와 선교단체 등에서는 단기선교 사역 이전에 위기관리교육을 받도록 해서 위기상황을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기관리에 대한 강의와 실습을 통해서 더 은혜가 되는 단기선교를 준비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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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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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그룹’으로 교회학교 위기 극복하자
    보통 주일학교라 불리는 교회학교는 그저 교회의 한 부분이 아니라, 그 자체가 곧 하나의 신앙공동체여야 한다는 것이 코로나를 겪으며 분명해졌다. 즉 어린이들을 단지 교육의 대상으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그들 또한 교회를 섬기고 예배하고 봉사하는 주체로 세워주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학교의 각부서 이름을 ‘교회 안의 작은 교회’로 새롭게 명명하는 교회들이 점차 늘고 있다.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다. 부교역자들을 작은 교회의 담임 목회자로 세우고, 작은 교회로서 그 자체 내에 ‘예배’와 ‘교육’과 ‘친교’와 ‘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교회학교는 무조건 가르치는 곳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예배가 중심이 되는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교육공간을 오직 그들만을 위한 예배실로 새롭게 단장해주어야 한다. 또한, 크고 작은 선교와 봉사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직접 그 일에 헌신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 듯이 코로나19가 통제선에 들어온다 해도 다시 이전과 같은 전면적 대면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여전히 온라인을 활용해야 한다. 결국 대안은 소그룹으로 주일학교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예배의 경험은 수에 있지 않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교회학교의 경쟁력은 바로 ‘예배’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이 세대와 경쟁하려고 하면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있다. ‘재미’로는 이 세대를 결코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예배하는 ‘즐거움’은 이 세대가 감히 흉내 낼 수조차 없는 것이다. 교회학교를 ‘교회 안의 작은 교회’로 인정하고 그렇게 세워가는 모습에 마땅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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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09
  • 팬데믹기 주일학교, 가정교육 연계
    코로나19로 인해 주일학교가 무너져 가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가정에서 부모 교육이 제시되고 있다.    기원후 1세기의 이스라엘 초대교회의 교육은 공교육기관의 등장이 있었다고 해도 가정이 근본적인 교육기관이었다.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책임이 있었고 절기와 의식을 통한 교육이 계속됐다. 그리고 1세기 이스라엘인들은 자녀에 대하여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라는 생각을 가졌다. 여기에서 기업은 선물을 의미하는데, 선물이란 단어를 히브리적 사고로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가정은 가장 중요한 교육의 장이었다. 가정은 자녀를 신앙으로 훈련해야 하는 교육적 책임이 부여된 곳이었다. 가족 전체의 생활과 종교의식에 직접 참여하여 행동해 보고 대화를 통하여, 즉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차원에서 가정교육이 이루어져 왔다. 성서에 나타난 가정은 처음부터 자녀들의 종교교육의 장이었고, 부모는 하나님의 뜻을 자녀들에게 전달하는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자녀들을 종교적으로 훈련했다. 부모가 분반 공부 교사이어야 한다. 유대인 자녀교육에서는 가장 중요한 교사가 아버지와 어머니이었다. 특히 유대인 자녀 교육에 있어서 어머니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정식학교가 생기기 전에 가정에 의해 자녀들의 교육이 수행되었으나 종교적 가르침에 열중한 초등교육기관이 생겼을 때에도 가정의 종교교육의 중요성은 약화되지 않았다. 이 시기 가정에서의 종교교육은 쉐마, 토라, 잠언들, 기도와 찬미 등을 다루었다. 아버지가 없는 소년들은 교육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각 마을에 학교를 설립하고, 학교에 교사를 임명하고, 16~17세가 되면 학교에 입학하는 법규를 제정했다. 그 후에 6~7세가 되면 학교 교육을 받도록 하고, 어린이를 가르칠 교사를 임명하는 법규를 도입했다.   코로나19 팬데믹기에 가정과 연계된 기독교 교육의 대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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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09
  • 창조적 지혜를 모아 여름행사를 치러야 한다
    여름성경학교는 한국교회를 부흥시킨 심장이자 엔진이었다. 여름성경학교는 단순히 유초등부만의 행사가 아닌 온 교회가 전력을 기울이는 전 교회의 축제이자 잔치였다. 퇴근 후에 저녁에 모여 늦게까지 율동과 찬양을 연습하고 성경을 배우는 광경은 그 자체로 한국교회의 열정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았다.   그러나 저출산의 쇼크가 밀려오면서 주일학교는 줄기 시작했고 작년에 엄습한 코로나19는 사실상 주일학교를 벼랑끝으로 몰아넣었다. 교회에서 주일학교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여름성경학교를 포기할 수 없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단 한 명을 위해서라도 온 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이 나서야 한다. 각 교단별로 심혈을 기울여 여름성경학교 교재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집에서 유투브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한 원로는 ‘사랑하면 답이 보인다’고 했다. 목회자와 교인들이 주일학교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고 사랑한다면 분명 답이 보이고 길이 보일 것이다. 비록 답답하고 절망적인 상황이라해도 열정과 열의가 있다면 헤치고 나갈 길이 있다.   방역준수도 중요하다. 이미 한국교회는 그 어느 단체보다 방역에 잘 훈련돼 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여름행사를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 소그룹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어차피 많은 인원이 모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소그룹을 활용한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성경학교에는 많은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학부모들도 참여할 수 있다. 자녀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박자에 맞춰 율동하는 모습과 설교를 집중해 경청하는 모습 등을 촬영해 인증샷을 올리는 등 창조적 방법이 나타나고 있다. 교사들이 찬양과 율동, 만들기 프로그램, 인형극을 위해 평일에도 촬영하고 밤을 새워 영상을 편집하는 모습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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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1-06-30
  • 다음 세대를 세우는 교육정책 수립 절실
    제13회한국장로교의날준비위원회(대표대회장 김종준 목사)는 오는 7월 8일, 꽃동산교회에서 ‘다음 세대를 세우자’라는 주제로 장로교의 날 기념예배를 할 예정이다. 이러한 주제 선정을 한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기로 접어든 후 한국교회 주일학교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다음세대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라는 문제의식이 싹트고 있다.   이러한 사태에 흔들거리는 뿌리가 얕은 교육이었다면, 한국교회 교육 방법에 관한 반성과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독교 교육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위한 인간양육’이라고 하며, 종교적 생활의 신앙과 방식을 이해하며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론이 삶 속에서 역동적으로 증명되도록 증인된 삶을 살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단순한 교리의 학습이 아니라 교화(敎化)이며 참된 그리스도인을 생산하는데 있다.   교회사를 보면, 초대교회의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예수의 제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종교개혁 이후 주일학교 운동이 전 세계에 보급되면서 기독교 교육의 방법을 어린이들을 위한 성경학습으로 사용했다. 이처럼 과거에는 지식함양이나 정신훈련 또는 성격 훈련등을 실시하는데 중점을 뒀다.   구원 계시는 발전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도 발전된 방법을 사용하여 교육하여야 한다. 마치 계절이 바뀌면 옷을 바꿔 입듯이 말이다. 교회당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안은 교회와 가정의 부모 교육과의 연계이다. 1세기의 이스라엘의 교육은 가정이 근본적인 교육기관이었다.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책임이 있었고 절기와 의식을 통한 교육이 계속됐다.   코로나19 팬데믹기 사회적거리두기 상황이라도 가정에서 주일학교를 부흥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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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1-06-30
  • ‘코로나 세대’를 전도할 프로그램 시급하다
    끝이 보일 것 같지 않던 코로나 팬데믹이 수습단계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물론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러나 지난해와 달라진 것은 백신접종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순조롭게 백신을 맞아서 집단면역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교회도 코로나시대에 맞는 주일학교 여름행사를 준비해야 한다. 아이들이 없다고 절망하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코로나 세대’를 전도하고 양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행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한 코로나 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사고와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을 먼저 교회는 알아야 한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세대는 그야말로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장에서 놀고, 부모와 함께 여행을 하는 기억은 이들에게 별로 없다. 마스크를 쓰고 집에서 화면을 통해 지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러한 코로나 세대를 어떻게 교회에서 양육할 것인가에 전면적인 대비를 해야만 한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집단면역을 이루면서 코로나가 ‘관리상태’에 들어갔다 해도 일상이 전면적으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에 변종이라는 또 다른 리스크도 상존한다.    이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함께 가는 ‘올라인’으로 가야한다. 무엇보다 온라인 예배 혹은 온라인 프로그램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미 코로나 세대는 온라인에 익숙해져 있다. 이를 인정하고 온라인에서 소통해야 하고 동시에 오프라인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발해야 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백신접종률이 높아지면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제한적이지만 여름성경학교 강습회 등을 재개하는 교단이 나오고 있다. 물론 코로나 이전처럼 되돌아 갈 수 없겠지만 온라인환경에 맞추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모아져 다시 한 번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06-27
  • 맥추감사절기에 감사와 기쁨 되찾자
    코로나19 팬데믹기가 장기화되면서 한국교회 성도들마저 웃음을 잃어가고 있다. 또한 입술에서 감사의 찬양 소리가 사그라들고 있다.   오는 7월 4일이면 맥추감사주일이다. 맥추감사절을 오순절과 연관해서 본다. 오순절은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부활절기의 맨 끝에 위치한다.   맥추감사절은 출애굽기 23장 16절 구절에서 유래된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3대절기라고 해서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을 지켜 왔다.   맥추절은 유월절 제2일로부터 50일째 지난 날이다.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서 첫 농사를 짓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지켰다.   이후 신약시대에 성탄절, 부활절, 맥추절, 추수감사절이라는 네 가지 명절을 지킨다. 절기마다 영적 의미가 있다. 신구약을 연결하면 유월절은 어린양 예수의 십자가사건과 연결된다. 또한 맥추절은 성령과 연결된다. 그리고 수장절은 재림과 연결되어 있다. 맥추절은 보리를 거두었다는 뜻이고, 맥추절은 칠칠절(34:22), 초실절(출34:22), 오순절(행2:1)이라고 불리워졌다.   칠칠절이란 의미는 유월절 후 49일이 지나서 맥추절을 지키게 되므로 7곱하기 7은 49이므로 “7.7절”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오순절이란 50이란 뜻으로 순(旬)은 10일이라는 의미이기에 유월절 이후 50일에 지키는 절기라고 해서 오순절이며, 초실절이란 이스라엘이 농사를 지어 처음으로 거두어 드린다는 뜻에서 초실절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하신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라는 것이다. 즉 농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일년에 두 번 수확했다. 즉 5월부터 6월까지, 그리고 9월에서 11월까지이다. 첫 번째 수확을 하여 첫 열매 드리는 절기가 맥추절이다. 보리 추수 후 하는 감사절이다. 이는 첫 열매에 관심을 가지라는 의미이다. 1년 동안의 수입을 대표하는 첫 것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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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1-06-27
  •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기본소득에 접근하자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의견은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에 걸쳐 분포하는데, 이를 반대하는 측은 노동과 관계없는 소득의 비윤리적 측면, 노동자들의 이탈로 인한 사회 전체의 생산성 저하, 기본소득의 재원 확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부의 대부분이 나눔이 필요한 공공재라는 사실, 개인의 인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 확보, 소비진작을 통한 수요 확대 및 불평등 완화, 그리고 자산조사와 관련한 행정비용의 경감과 낙인효과방지라는 측면에서 기본소득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럼에도 기독교는 기본소득 자체가 아니라 기본소득이 지향하는 개인의 가치 존중과 사회통합에 대하여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고, 그리스도 구속의 대상이 되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는 인간의 죄성이라는 측면을 고려하여 균형 있게 추구되어야 한다. 이는 기본소득과 관련한 논의 과정 및 기본소득 지급의 절차에 대한 모니터링을 요청한다. 그러한 균형 및 점검과 관련하여 예수께서 제시하신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인류를 향한 보편적 은혜 및 분배의 정의를 강조하며, 단순히 실업을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통해 통전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또한, 희년의 정신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은총이 이방인들을 포함하는 일반은총의 차원으로 확장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동등하게 존중하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    그러므로 교회는 포도언품꾼의 비유에서 예수께서 제시한 보편적인 인류에 기초해 기본소득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무엇보다 이웃을 배려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나눔과 섬김은 우리 시대에 기본소득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음을 기억하자. 기본소득은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06-20
  • 남북간 ‘이데올로기’를 만들지 말자 - 호국보훈의 달, “상기하자 6.25”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후 남북정상회담을 하면서 남북 교류를 위해 힘써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진척이 없자 북한은 다시 대치 국면을 선택했다. 이러한 남북 대치 현상은 우리 민족의 힘으로 독립을 하지 못하고 얄타회담, 포츠담회담, 모스크바 삼상회의를 거쳐서 외세의 역학 관계에 의해서 독립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셈법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피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서로를 죽이고, 죽임을 당한 아픔을 갖게 되니까 서로에 대한 보복 심리를 갖게 된 것이다.    성경에도 이러한 역사는 이미 있어 왔다. 솔로몬이 죽자 그 아들 르호보암에게 여로보암을 비롯한 10지파가 찾아와 “르호보암의 아비 솔로몬처럼 백성들에게 고역을 치르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그래서 르호보암은 소년들과 의논한 후 “더욱 고역을 치르게 하겠다”고 전했다. 그래서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10지파가 북쪽지방에 새로운 정권을 세웠다.    급기야 분단 이후 종교마저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체계화했다. 여로보암이 가만히 보니까 북이스라엘 사람들의 사상 가운데 아직도 남유다의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사를 드리는 모습이 남아 있어서 위기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세 가지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다. 이는 △금송아지를 벧엘과 단에 세우고 이는 자기들을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한 것 △레위지파가 아닌 다른 보통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운 점 △절기마저도 7월에서 8월 15일로 바꾸어 버린 점 등이다.    이처럼 국가적 이데올로기의 창출은 저항과 헤게모니라는 것이 배후에 숨어 있는 것이다. 피맺힌 한을 가진 사람들이 신념화 되면 피비린내나는 역사가 이어지고 만다. 헤게모니를 쥐려는 국제적 역학 관계와 국내 분파들의 역학 구도는 급기야 자기 나름대로의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갈등의 절정이 6.25한국전쟁이었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06-20
  • 남북화해의 길을 모색하자
    남북화해는 매우 어려운 길이다. 한국전쟁 종전 68주년을 맞는 올해에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대한민국 국민들은 평화에 대한 열망과 기대감이 높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 우선순위가 ‘평화’라고 했다. 문제는 평화의 실체다. 우리는 이념적인 위장된 평화, 뒤에 총구를 숨긴 허울뿐인 평화도 평화인가를 돌아보게 한다. 오히려 북한의 핵무장으로 대립과 갈등으로 악화일로에 치닫고 있으며 군사적 충돌을 염려해야 하는 긴장감마저 한반도에 감도는 등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도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한 가운데 종교계가 앞장서 남북화해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기대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왜냐하면 독일통일의 지렛대 역할을 한 것도 동·서독 교회라는 사실을 세계인이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많은 노력을 해 왔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발표 이후, 그간 경색되었던 남북 간 정치 환경에 훈풍이 일기 시작했다. 이듬해 당시 교회협(NCCK) 관계자들이 북한을 방문했다. 이는 정부의 승인을 받은, 공식적인 첫 민간인 방북이었다.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이 이뤄지면서 큰 기대를 가졌다. 그리고 1993년, 보수와 진보 할 것 없이 통일에 뜻있는 이들이 모여 ‘통일만큼은 교회가 통일된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당위로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나눔운동’이 시작되었다. 그 후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교계가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으나 한반도 주변 환경의 악화로 남북화해는 다시 어려움을 맞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역할은 분명하다. 예수님은 천국 백성의 본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하나님의 아들들은 싸우고 헐뜯는 대신에 우리와 관계된 사람들과 화평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남북화해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이다. 따라서 시대와 환경이 변한다고 해도 화해와 협력의 북한선교에 적극 나서야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06-17
  • 전자화폐로부터 교회 청년들 보호 절실
    인터넷이 생긴 후 달러나 원화를 대체할 전자화폐를 만들려는 노력은 늘 있었다. 즉 전세계 어디든지 손쉽게 송금하고 금융기관이 추적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화폐이다. 하지만 위조차단 기술을 개발하는 단계에서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이 문제를 해결한 최초의 전자화폐로 비트코인이 등장했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비트코인은 돈이라고 규정해야 할지, 혹은 단순한 디지털 부호로 제작된 가상 이미지에 불과한지 정의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있다. 그런데도 최근 갑자기 비트코인 거래 가격이 뛰기 시작하면서 한국교회 젊은이들도 비트코인 투자에 나섰다. 무서울 것 없이 치솟은 가격에 거품을 경고하는 우려가 나온다.   비트코인이 등장하게 된 기원은 지난 2008년 10월, 일본인 나카모토 사토시가 ‘비트코인: 개인간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멧츠다우드라는 온라인 암호학 커뮤니티에 공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는 자신이 만든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통해 중앙 통제 없는 완전히 투명한 금융거래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는 비트코인의 원시 단계서 손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09년 3월. 이 기술을 통해 최초의 비트코인 제네시스블록을 채굴했다.   비트코인은 비트코인 개발에 필요한 코드를 완전히 공개해 누구나 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완전한 공개 소스 화폐를 추구한다. 그런데 문제는 화폐로서 비트코인의 가치를 의심하는 전문가들이 많이 있지만, 현재 많은 한국교회 청년들이 비트코인 투자에 몰려들고 있다.   그래서 투자 변동 상황을 계속 주시하다 보니까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당연히 토요일에 일찍 취침하지도 못하고, 주일예배도 참석할 수가 없다. 친구 영향을 크게 받는 청년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는 물질의 신 마몬을 섬기는 것이요, 모세의 십계명을 무시하고 금송아지에게 경배하는 것이다. 세월이 흘렀어도 인생 광야 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비트코인 금송아지에게 정신 팔려 있는 인간들의 군상이 이어진다.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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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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