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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민을 환대하는 교회가 되자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체류자의 수는 251만 명으로 이는 전체인구의 약 5%에 달하는 수치이다. 다문화가구도 약 40만가구에 달한다. 이제 우리는 수 많은 이주민과 살아가고 있다. 이들 중 유학 등을 이유로 단기에 체류하는 이들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이들에게 가져야 하는 중요한 자세는 환대의 자세이다.    성경은 이방인을 환대할 것을 말하고 있다. 레위기 19장 33절과 34절에서는 “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이주민을 환영하고 배척하지 않는 자세가 신앙인이 가져야 할 자세라 할 수 있다.    또 중요한 것은 그들을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취약계층이라는 편견으로 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의 융화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존재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주민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그들의 주거권이다. 한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선주민과 동일한 조건에서 생활해야 한다. 상당수의 이주민들 특히 이주노동자는 단체 생활을 하는데 이들의 숙소가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들의 최소한의 여건이 보장된 주거공간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가 이주민들이 초기 묵을 수 있는 숙소 등을 제공할 필요성도 있다. 또한 장기적인 정착을 할 수 있도록 한국문화와 실생활에서 필요한 상식들을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난 7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열린 이주민을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한 유학생은 “가장 힘들때 교회의 환대 덕분에 삶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렇듯 교회의 환대는 모든 이주민에게 필요한 것이며, 복음의 전달의 통로도 사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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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7
  • ‘교인감소’·‘다음세대’ 문제에 집중해야 - 금년 장로교총회에
    주요 장로교단 총회가 오는 5일부터 시작해 9월 중에 일제히 끝난다. 머지막 주간인 23일부터 27일까지가 가장 많다. 합동측은 23일부터 27일까지 울산 우정교회를 비롯해 통합측은 24일부터 27일까지 양곡교회에서 개회한다. 이번 정기총회는 총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을 선출하고, 주요한 선교 및 교육정책, 그리고 각 교단의 현안 문제를 다룬다. 특히 요즘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문제와 다음 세대 문제, 그리고 교인감소의 극복을 위해 집중적으로 논의해 새로운 정책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통합측을 비롯한 합동측, 고신측의 목사부총회장 선거전이 치열하다. 기장은 장로부총회장에 2명이 입후보했다. 통합측의 경우에는 3명이 입후보해 각 후보마다 선거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부총회장  선거전이 치열할수록 금권선거로 치닫을 수 밖에 없다. 각 교단 집행부는 공명선거를 위한 공정한 선거에 집중하고 있지만, 금권선거운동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워지고 있다. 교회가 이 금권선거로 인해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일꾼을 선출하는 데에 물질적으로 거래되어서는 안된다. 금권선거를 종식시키는 데에 모두가 앞장 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총회는 ‘코로나19’이후 급격히 감소되는 교인문제와 다음세대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계속 문을 닫는 교회가 늘고 있는 것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기 때문에, 교인감소를 현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해결할 방안도 마련해 다음 회기부터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세대 문제이다. 출산율의 저하로 인한 교회학교 부재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출산율 저하문제는 교회도 관심을 갖고 극복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의 몫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출산율 저하는 교회학교가 없어지고, 결국은 교회도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인공지능에 대한 문제도 적극 대처해야 한다. 통합측에서 윤리지침을 마련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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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7
  • [사설] 로잔대회가 한국교회에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
    로잔대회의 긍정적 효과는 무엇일까.   로잔대회가 성큼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교회 역시 오랜 기간 동안 이 복음주의 최대의 선교축제를 준비했다. 많은 기도회와 예배 그리고 간담회와 컨퍼런스 등이 진행되었고 목회자들은 물론 선교사들과 교회 행정가들, 평신도들 역시 모두 각자의 맡은 자리에서 이 행사를 함께 준비하고 기대해 왔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과연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또 다른 질문이 있다. 한국교회 모두가 이번 로잔대회를 찬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로잔에 대한 많은 우려의 소리도 있고, 로잔대회 개최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몇 개의 교단과 단체들은 로잔대회를 우려한다.      그리고 50년 역사 속에 로잔이 견지하고 있는 몇 가지 문제들. 특별히 로잔대회가 반성경적인 신학의 바탕 위에 세워졌음을 강조하며, 로잔대회를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이번 로잔대회를 찬성하고 협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 원인들로는 그간 한국교회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성장주의적 교회관, 세속적인 부와 관계된 기복신앙, 사회의 부조리와 정의문제에 등한시하는 한국기독교의 신학의 문제들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로잔대회 역시 이번 행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우려하는 다른 한 편의 목소리에 분명하게 대답해야 하고 논의해야 할 신학적이고 실천적인 숙제들이 남아있을 수 있다. 하지만 로잔대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종교적인 권위 없이 세상과 사회에 다가가려고 하는 초월적 신학과 실천적 영성에 있다.    복음의 교리를 전하는 것 이상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 복음의 온기를 전하는 일에 가치를 두는 그들의 실천적 제안은, 현재 한국 사회로부터 거부당하고 외면당하는 한국교회에 큰 도움과 변화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한국교회가, 이번 제 4차 로잔대회를 기대하고 준비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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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5
  • [사설] 감사의 의미를 생각하는 맥추감사절 되자
     ‘맥추(麥秋)’의 사전적 의미는 보리를 추수하는 일이다. 대개 봄철이 끝나는 시점이며,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7월 첫째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키고 있다. 하나님께서 밭에 뿌리 밀의 첫 열매로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다. 이를 “칠칠절(七七節)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출34:22,민28:26)’이다. 특별히 칠칠절(신16:9-12)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영육간의 축복을 감사하는 절기이다. 유월절이 끝나는 날부터 7주간이 지난 다음날을 칠칠절 혹은 맥추절 혹은 오순절이라고 했다. 이는 50일 간을 의미하며 마지막 날을 오순절 날이다. 유월절이 없으면 다른 절기의 계산조차 할 수 없다. 모든 기본은 유월절이 된다. 칠칠절은 과거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을 기억하고 풍요로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불우한 이웃과 함께 이를 기념하라고 명하고 있다.     맥추절은 우리의 사정과 다른 절기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지키던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과 비슷하다면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인정하고 서로 함께 나누자는 감사의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이러한 3대 절기를 통한 교훈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속죄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영육간의 축복을 감사함이요. 셋째 고난의 생활이 은혜임을 생각하며 감사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물은 바로 은혜이다. 맥추절이나 추수감사절은 은혜의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은혜란 하나님이 베푸시는 값없는 선물이다. 특별히 아무런 조건 없이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다. 필요할 때마다 순간순간 도우시는 주의 은혜이다(히4:16). 우리는 이 뜻을 받들어 주님께 감사하고 이를 생활 속에서 이루어 나가야 한다. 우리 주변에 너무도 어렵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들에게 은혜의 손길을 보내야 한다. 이제는 주변의 어렵고 고단한 이들과 함께하는 맥추감사절을 지키고자 하는 뜻에 따른 감사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은 한국교회를 인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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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 [사설] 여름성경학교 통한 다음세대 교육에 힘쓰자
     교회의 여름성경학교는 여름동안에 교회에서 주최하는 단기간의 성경 수업으로,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일군으로 성장시키려는 목적으로 방학 기간에 기독교 교육을 시행하는 학교이다. 여름성경학교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하고 예수가 인간을 구원해주어 새사람이 되었음을 깨닫게 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교회들의 여름성경학교는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수양회, 수련회 등으로 보완되고 있으나 한편으로 어학이나 여행 등의 프로그램으로 명맥을 유지하면서 정작 필요한 청소년의 신앙교육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위기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지나친 세속화로 사회를 향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보다는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는 현실이 되고 있다.     청소년의 신앙교육 활성화의 길은 무엇인가! 그동안 한국교회는 외적인 성장에만 치우쳐져 있어 성도들의 영적, 지적, 심리적 요구를 돌볼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은 극히 미흡한 상태에 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성경에서 가장 바람직한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계3:7-13)이다. 빌라델비아는 ‘형제사랑’을 의미한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주님은 거룩하고 참되신 분임을 고백하고 인내의 말씀을 지켰던 교회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4:8). 따라서 하나님이 중심된 교회를 회복하고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은 성령의 검(엡6:17)으로서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존 번연은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이 믿음의 소망의 순례길에서 3가지를 중시하고 있다. 첫째 사람들과 다른 옷을 입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옷이다(롬13:14). 둘째 가나안 말 곧 약속된 성경의 말씀을 사용했다. 셋째 ‘헛된 물건’을 사지 않았다. 오직 진리만을 샀다(잠23:23,요8:32). 디지털 시대의 모든 것은 헛된 물건들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유일한 진리인 ‘그리스도’가 중심인 말씀을 깨달아 가는 ‘진리’만을 가르치는 복음의 교육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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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 [사설] 단기선교위한 위기관리 교육 필요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단기선교를 위한 준비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단기선교를 위한 위기관리 교육의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단기선교지의 현지 상황과 문화 등을 성도들이 잘 알고 갈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여행자보험과 같은 준비를 통해 어려운 상황을 당하게 되더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여행자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사고를 당하더라도 보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성도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사항이다.   외교부에서 제공하는 해외안전여행 페이지에서는 여행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현지문화와 유용한 현지어 그리고 사고의 유형 등을 알리고 있다. 유용한 현지어에 경우 한국어로 발음도 적어 이용자들이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정보를 선교지에 방문하기 전에 배움으로써 선교지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현지법이나 정서를 알리는 것이다. 현지법을 잘 몰라서 현지에서 구류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지정서를 잘 몰라서 폭행 등의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한국과는 다른 교통상황도 알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선교지에서 발생하는 사고사례 중 가장 많은 경우가 교통사고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운전석이 다른 경우 운전에 더욱 유의할 것을 알려야 한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영상을 제작해 교회와 선교단체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이러한 내용을 알리는 것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안전한 단기선교를 할 수 있도록 관심을 촉구할 운동이 필요하다. 교단선교부와 선교단체 등에서는 단기선교 사역 이전에 위기관리교육을 받도록 해서 위기상황을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기관리에 대한 강의와 실습을 통해서 더 은혜가 되는 단기선교를 준비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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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실시간 사설 기사

  •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통합에 임하라
    그 동안 정상적인 업무를 보고 있지 못하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새롭게 임원진을 구성하고 한국교회총연합과 한국교회연합에 조건 없는 통합을 제안했다. 이에 화답하듯 한교총 소강석대표회장은 연합기관의 통합을 강조하고 나섰다. 사분오열된 한국교회의 연합기관이 다시 하나로 통합되는 것은 마땅한 일이요 축복된 일이다. 분열보다는 통합, 갈등보다는 화합이 성경의 가르침이며 기독교의 근본진리이다. 연합기관의 통합은 분열과 갈등의 죄를 고백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보여주기 식 통합, 사익을 위한 통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만일 이런 마음으로 통합을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분열, 또 다른 갈등으로 가고 말 것이다. 이러한 형식적 통합이 아닌 진정한 통합을 이루려면 가장 먼저 사익과 욕심을 버려야 한다. 한기총이 사분오열된 근본원인이 어디 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대표회장 하기 위해 금권선거를 자행했고, 이 과정에서 해묵은 이단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하나였던 단체는 쪼개져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주도권, 자리, 돈에 대한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진정한 통합에 임해야 한다.   기관의 통합을 위해서는 많은 난제들이 있다. 직원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조직은 어떻게 할 것인지 또 다른 교단에서 이단성 문제를 제기하는 단체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은 모든 기득권과 욕심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백지상태에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통합이 또 다른 치명적 분열을 야기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 애써 통합해놓고 다시 분열돼는 악순환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형 교단 중심의 통합이 아닌 중소형 교단도 함께 지도부를 구성할 수 있는 배려하는 통합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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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5
  • 금권선거를 퇴출하자
    9월에 전국 교단 정기총회가 잇달아 개회된다. 한국교회 교계와 교단의 선거 체계가 마치 세상권력 집단의 선거와 비슷하다는 일각의 지적이 일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기독교에 선거라는 것이 왜 생겼을까? 에른스트 트뢸취가 좬기독교사회윤리좭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줬다.   에른스트 트뢸취에 의하면 초대교회는 핍박을 당해 순교자가 속출해 숨어 다녔기에 소공동체를 이뤘고, 외형적 종교 형식이나 법보다는 성례전적 본질에 충실했다. 교회의 대표가 되면 순교를 당할 위기에 처하기에 좋아할 리가 없었다. 마치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 당하기 전에 번민했고, 주기철 목사가 부인이 면회 오기 전에 타협하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제비뽑기로 교회대표를 뽑았고, 뽑힌 사람이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두려움이 없을 리가 없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가 4세기에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종교로 공인한 이후 중세시대로 접어 들면서 기독교 대표가 돈과 권력을 쥐고 있던 황제 주위에 다가가게 됐다.    그래서 얻어지는 이득이 많아져 대형화되기 시작했고, 지방에서 중앙으로 진출하기 위해 종파끼리 경쟁하기 시작했다.  경쟁이 너무 심해져 공정하게 중앙 진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선거제도가 생겼다. 그리고 중앙에 진출하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교회법을 강화했다. 초대교회와 중세교회는 확연히 달랐다. 중세교회는 지나친 권력으로 성경의 권위 위에 군림했다. 그래서 르네상스와 함께 종교적 본질로 돌아가려는 종교 개혁이 일어났다. 그러므로 개신교는 중세로마교회와는 다른 길을 가게 됐다.   추후 한국교회는 중세로마가톨릭교회의 수직적 상향식 선거제도에서 탈피해 초대교회 유형인 수평적 순환식 선출제도로 변화돼야 한다. 이제 전국교단 선거제도도 초대교회 회복운동을 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금권선거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돈으로 표를 사려는 매표행위로 비난을 받아왔다. 이제는 교단을 바르게 이끌고 갈수있는 정책으로 선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바른 교회상과 교단상을 정립해 갈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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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5
  •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수복, 교계 비상
    지난 15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반군이 수도 카불을 장악했다. 이곳은 과거 샘물교회 성도들이 살해됐던 곳이다. 이슬람국가들은 오랜 세월, 유대교인과 전쟁하면서 애꿎게 유대교인과 연결된 기독교인들을 증오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정권을 빼앗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국정부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다가 수복했다는 점이다. 이슬람교 원리주의에 젖어 있던 탈레반 반군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정권을 전복시킨 미국을 돕기 위해 파병을 한 한국을 적대국이자 점령국으로 간주했다. 탈레반의 눈으로 볼 때는 자신들을 침략한 나라의 국교인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러 온 선교단체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했다. 이들은 이슬람과 다른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배타적 태도를 가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이처럼 아프가니스탄에서 기독교인들이 배척받고 있는 이유는 탈레반과 미국 사이에 전쟁이 진행 중이었던 불안한 아프간 현지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춰왔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나치에 의해 심하게 학대당하던 수십만 명의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출코자 수단을 강구했다. 이때부터 시오니즘은 더욱 격화됐고, 미국과의 연대가 더욱 공고해지면서 아랍권과는 마치 이삭과 이스마엘의 관계처럼 형성되어 갔다. 1970~80년대의 레바논·시리아 등 중동전을 비롯하여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 대부분의 중동지역 전쟁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전쟁이었다.   따라서 탈레반 정권의 잔혹한 인권 유린에 대한 저항 세력과 미국과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지하자원 매장 이권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텔라반의 장악으로 인권 유린과 기독교 탄압등이 자행되고 있다. 평화가 도래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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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1-08-26
  • ‘미래세대’ 세우는 ‘장로교총회’ 기대한다
    한국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각 장로교단들이 9월이면 총회를 시작한다. 이번 총회는 무엇보다 코로나 방역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형교단은 천명이 넘는 총대들이 모인다. 확진자가 매일 2천명이 나오는 상황 가운데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 곳에 모인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각 교단별로 코로나 방역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는 만에 하나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한다 해도 확진자가 단 1명이라도 나온다면 이는 장로교만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에 대한 비난과 비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분산개회, 온라인 총회 등 새로운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거의 예외 없이 해마다 반복되는 장로교회 총회의 현실은 임원선거를 위해서 모인 듯 한 분위기다. 선거가 끝나면 현안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총대들은 썰물 빠지듯 빠져나간다. 전국에서 모인 총대들은 단지 ‘들러리’와 ‘거수기’가 된 셈이다.    물론 임원을 선출하는 것도 당연히 총회의 일 가운데 중요한 일인 것은 분명하만 총회를 위한 총회장인가, 아니면 총회장을 위한 총회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한국교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장로교단은 이제 외부의 요구와 요청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여성과 청년에게 총대권을 더 많이 부여하라는 요구, 과감한 개혁에 나서라는 요구,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펴라는 요구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여전히 이러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저 관습과 타성에만 젖어 있다면 교회의 위기는 더욱 가중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또 미래세대를 위한 실제적인 방향과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미래세대가 없는 교회, 미래세대가 없는 교단은 암울한 한국교회의 모습이 될 것이다. 선거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한 확고한 대책과 정책을 준비하는 총회의 모습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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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26
  • 코로나 시대, 영성회복에 나서자
    코로나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언택트(Untact, 비대면)’ 시대가 일상화되고 있다. 교회는 비대면 온라인 예배의 현실화에 직면하였고, 이를 위해 소수의 사역자만 현장예배에 참여하는 등 교회 안에서의 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다.    특히 코로나의 세기적 역병은 분명 시대적인 표적이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테러)과 하늘에서 큰 징조가 있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눅21:10-11). 코로나는 큰 온역이다. 이 전의 온역인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1/3이 사망하고, 중세 봉건제도가 붕괴되는 결과를 낳았다. 스페인 독감으로 5천만 명이 사망하기도 했고, 홍콩독감, 돼지독감, 그리고 이번엔 코로나이다.    또한 이 시대는 생각이 없는 사회, 일명 ‘오락의 시대’라 한다. TV, 컴퓨터, 스마트폰, 게임, 노래방, 영화, 스포츠, 연예, 성문화, 음주 등 디지털 전자장비에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시대가 됨으로써 사람들 간에는 충동적인 불법이 성행하면서 이웃을 생각하는 사랑이 식어 간다.    따라서 영성회복을 위하여 이웃의 아픔과 영혼을 함께 사랑하자. 코로나블루로 어려운 가운데 있는 이웃들이 소외감을 갖지 않도록 교회가 나서야 한다. 이들에게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육신적인 어려움뿐 아니라 영적인 아픔을 더 크게 보듬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을 영원한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오셨고, 그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머지않아 다시 오신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돌아보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큰 사랑이요 선물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상황에서 대면 접촉보다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만나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 자체가 더욱 약화되고 있다. 이런 때에 교회는 소외된 이웃에 대한 손길 곧 영성을 회복하기 위한 사랑의 실천이 더욱 필요하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08-08
  • 코로나 위기, 나눔에 더욱 힘써야 한다
    잡힐 것 같던 코로나 팬데믹이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1차, 2차, 3차, 4차에 걸쳐 대유행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어쩌면 5차, 6차의 대유행이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계속되는 비대면 온라인 예배로 한국교회의 어려움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일부 소수 교회는 ‘정치방역’과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대면예배를 강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부 당국은 급기야 시설폐쇄명령까지 내렸고, 여기에 해당 교회는 반발하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회의 이러한 대응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대다수의 교회는 무엇보다 방역에 힘을 쏟고 있다. 취약계층을 위해 마스크를 기부하거나 방역용품을 제공하고 있다. 또 교인들이 자체적으로 방역팀을 구성해 교회 주변을 소독하며 코로나 극복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를 극복하는 길은 대면예배를 강행하는 것이 아니라 방역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교회가 방역팀을 구성해 교회 주변부터 방역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코로나도 극복할 수 있고 잃어버린 사회적 신뢰도 다시 획득할 수 있다.   또한 나눔에 힘써야 한다. 이미 많은 교회들이 코로나 위기 가운데서도 사회적 나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어떤 교회는 이전 보다 더 많이 생활용품과 방역용품을 나누고 있다. 소리 소문도 없이 나눔에 힘을 쏟는 교회들이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방역을 주장하며 당국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코로나 극복과 교회 부흥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그렇게 할 힘과 에너지를 방역과 나눔에 쏟아 부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사실을 한국교회는 잊지 말아야 한다. 법원에서 소송을 벌이는 것보다는 방역과 나눔에 힘을 다할 때 사람들은 한국교회를 빛과 소금으로 볼 것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한국사회가 위기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앞장서서 선지자적 역할을 감당했음을 기억하자. 
    • 오피니언
    • 사설
    2021-08-08
  • 모두가 안전해야 복음도 전할 수 있다
    지금은 사실상 전시와 다를 바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 무더위에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검사하는 ‘코로나의 전사’들에게 우리는 감사의 말을 전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자영업자들은 허리띠를 졸라 매고 코로나 팬데믹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뿐인가? 어린 아이들도 마스크를 끼고 조심조심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모두 어떻게 해서든 ‘코로나 국난’을 극복해서 하루라도 빨리 일상으로 돌아고자 함이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국민과 단체가 이렇게 코로나 극복을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데, 교회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정부의 거리두기 4단계 방침을 어겨가며 대면예배를 강행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혹시라도 여기서 집단감염이 발생한다면 한국교회는 그야말로 ‘공공의 적’이 될 지도 모른다. 물론 대다수의 한국교회는 정부의 방역지침을 잘 지키며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일부 소수 교회가 ‘정치 방역’을 주장하며 방역지침을 어기며 대면예배를 강행하고 있다. 이들의 논리는 지하철은 통제하지 않으면서 왜 교회만 통제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모두가 안전해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위험한 상황에서 복음은 효과적으로 전파될 수 없다. 방역지침을 어기면서 대면으로 모이고 그래서 당국으로부터 벌금을 받는다면 결국 전도의 길은 막히고 말 것이다. 그야말로 소탐대실이 아닐 수 없다. 교회가 방역지침을 따르는 것은 정부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라는 그리스도의 명령 때문이다.    몇 주 아니 몇 달 비대면 온라인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한국교회가 모두 무너지는 않는다. 물론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바이러스 창궐로 교회가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은 그 동안 그렇게 ‘믿음’을 외쳤던 한국교회가 얼마나 위선적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08-06
  •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회복 절실
    장로회신학대학교가 2021년 4월 14일 ‘코로나19와 한국교회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코로나19 집단감염 장기화 국면에서 한국교회를 향한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운 것으로 드러났다. 세상 사람들에게 한국교회 신뢰도는 국회보다 낮았고, 비신자 중 85%는 코로나19 이후 개신교인에게 부정적 감정이 들었다고 한다. 또한 지난 1월 교계 여론조사기관인 목회데이터연구소가 낸 결과를 보면 한국교회를 ‘매우·약간 신뢰한다’ 응답은 21%였다. 반면에 ‘별로·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경우는 76%로 큰 격차를 보였다. 따라서 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지금처럼 바닥인 상황에서 교회의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교회가 진심을 가지고 교회 본연의 기능과 사회적 역할을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실천하는 행동을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성령으로 하나 된 무리이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의 몸이다”(엡1:22-23). 교회는 창세 전부터 예정하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서 그리스도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지체요, 몸이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확증하는 곳이며, 그것을 위해서 성경 진리를 선포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속화, 기업화, 권력화, 포퓰리즘에 함몰되면 안 된다. 오직 교회는 하나님을 교육하고 인지하는 기관이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 되어야 하는 곳이다. 따라서 교회의 역할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는 말씀을 이루어가는 곳이다.   그러면 교회의 진정한 공적 신뢰 회복은 무엇인가! 첫째 ‘먼저’라는 의미는 우리 마음의 가장 귀한 보좌에 하나님을 모셔놓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거룩한 일을 이루는 것을 어떤 것보다 우선하라는 것이다. 둘째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지옥 갈 죄인을 구원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백성으로 만들 수 있는 복음을 전하라는 의미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08-06
  • 기도원 부흥 절실하다
      여름이 되면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여름부흥성회를 진행했다. 그래서 기도원에 많은 교인들이 모여서 며칠 동안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며 은혜의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여름성회는 한국교회에 영적인 원동력을 부여했고, 이를 통해 한국교회는 크게 부흥됐다.     여기서 기도원은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여름과 겨울에 많은 성도들이 기도원을 방문해 기도하면서 영적인 훈련을 쌓았다. 이렇게 기도원 또는 수양관은 한국교회의 영적인 부흥을 이끄는 상징과도 같았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기도원이 위기에 처해있다. 물론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이러한 위기는 2000년 대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경영난에 숙박업소 등 업종을 바꾸는 일까지 나오고 있다.     관건은 이제 대안을 신속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영성훈련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시급하다. 밀폐된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고, 찬송하는 방식의 깁회는 이제 힘들어졌다. 코로나가 어느 정도 통제 하에 있다해도 다시 그런 방식으로 회귀하기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따라서 소그룹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방식의 영성훈련 개발이 중요하다. 또 기도원은 이런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렇게 개인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기독교신앙의 근본이라는 점이다.       신앙의 본질이란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이 있을 때 그것이 살아 있는 신앙이 되고 거기서 성도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은 반드시 많은 사람이 모여 통성기도를 해야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개인이 고요한 장소에서 말씀에 귀기울이는 훈련을 해야 할 때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07-12
  • 한국 장로교, 에큐메니컬 회복 절실
    제13회한국장로교의날준비위원회(대표대회장=김종준목사, 상임대회장 한영훈목사, 준비위원장 고영기목사)는 7월 8일, 꽃동산교회(담임=김종준목사)에서 ‘다음 세대를 세우자’라는 주제로 장로교의 날 기념예배를 했다. 이 행사의 주관은 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회장 김종준목사)이 맡았다. 날짜 선정은 존 칼뱅(John Calvin, 1509-1564) 탄생 500주년이었던 지난 2009년부터 그의 생일날인 7월 10일을 기념해 정한 것이다. 이날을 전후해 매년 장로교의 날 행사를 열고 있다.    칼뱅은 1509년 프랑스 피칼의 주 노용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의 영향으로 신부 수업도 받았고, 법학과 문학까지도 공부했다. 그의 신학 중 ‘신 인식’은 “하나님의 본질은 알 수도 없고 가까이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참된 신인식이란 단지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것이 아닌 그의 영광도 알고 의뢰하고 찬미하는 것”이라며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 무오한 성령의 감동으로 된 말씀이기에 성경에 의해 모든 것은 증명된다”고 보았다.      또한 삼위일체론에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한분이며, 단지 인격의 특성만 다르게 보았다. 또 이 삼위 안의 성령은 참 하나님이며 아버지와 아들의 영이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위해 일하시는 인격적인 영이라고 했다. 또 의롭다함, 즉 칭의도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부르심에 답했을 때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의인으로 죄없다고 인정해 주신다고 주장했다. 즉 전적인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라는 것. 그는 예정론을 강조하면서 선택과 유기를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후배 칼뱅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형제 간의 화해와 일치를 이뤄야 한다.   하지만 한국 장로교회가 시작된지 106년이 지나면서 자기만이 선택받고 예정된 진리의 사람들이라면서 사분오열돼 장로교단이 120여 개나 된다.   이제 장로교의 날 행사 후 같은 신앙을 가진 장로교단들이 함께 모여 연합과 일치를 이루고 장로교 정체성을 확립,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음 세대를 통한 한국교회 발전을 도모해야 할 때다.   장로교가 한국교회의 70%를 차지하므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 장로교가 에큐메니컬 정신을 회복하면 한국교회는 산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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