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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나라사랑에 앞장서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6월은 호국의 달이다. 현충일과 한국전쟁 등을 통해 나라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달이다.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동안 기독교는 나라사랑을 위해 앞장서왔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기 독립을 위해 앞장선 것이 기독교인들이었다.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민족대표 33명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 당시 전체 인구 중 기독교인구는 2%가 안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인구비율을 생각해 볼 때 기독교인들의 나라사랑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나라의 독립 이후에도 국가의 발전을 위해 힘써왔다. 또한 나라를 위한 기도를 잊지 않았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의 선배들의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목회자들은 호국정신을 계승하고 바른 국가관을 통해 애국운동에 나서야 함을 강조해야 한다.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은 지난 현충일 논평에서 “일찍이 칼빈과 칼빈의 신학을 따르는 아브라함 카이퍼 등 건전한 교회와 교회의 신학자들은 복음과 세상의 관계,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그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여 가르쳤다”면서, “교회는 신자들이 국가와 위정자를 위해 기도하도록 가르쳐야 하고 또한 이렇게 기도하기 위해 바른 국가관을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교회와 신자들은 바른 국가관을 가지고 사회 속에서 애국운동을 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 나라를 위해서도 소금과 빛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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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제안에 힘쓰자
디가오는 6월 3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등 기독교단체들이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을 제시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의 경우는 2012년 치려진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부터 이러한 운동을 벌여왔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는 한국교회총연합과 함께 10대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에큐메니컬 성향의 단체에서도 기독교대선행동이라는 단체를 출범하면서 탄소중립 구현과 한반도 평화협정등을 제시한 바 있다. 정치인들에게 기독교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책무 중 하나이다. 기독교적인 정책을 정치인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이 나라에 기독교세계관을 반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은 기독교인뿐 아닌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다.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는 지난 2022년 대선에서 초저출산 극복정책으로 아동돌봄청을 신설해야한다고 했으며 이외에도 재난상황을 대비한 민관위기 관리시스탬 구축과 유사종교 피해방지를 위한 법률제정 등의 정책들이 있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일반시민들에게 큰 유익이 될 수 있는 정책들이다. 저출산 문제의 경우 국가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며, 재난상황의 극복또한 모든 시민에게 필요한 사실이다. 유사종교로 인해 피해를 보는 시민들을 구제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들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큰 유익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차별금지법의 제정과 같은 악법반대 운동을 활발히 펼쳐왔다. 이제는 악법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좋은 법안과 정책등을 제시할 때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는 그러한 법안과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 이러한 정책제안의 시간이 이번 선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편화가 되어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해 모든 시민이 유익이 될 수 있는 정책과 법안을 제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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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믿음’의 사역에 매진하자.
한국교회는 5월 5일 어린이날과 함께 어린이 주일을 지키고 있다. 미국에서는 1880년부터 예배당을 꽃으로 장식하고 '샤론의 꽃, 어린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 예배를 드린 데에서 유래하여 '꽃주일'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방정환, 마해송 등의 어린이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선각자들이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해 어린이 인격보호와 바른 성장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과 각성을 촉구하는 등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면서 1927년부터는 5월 첫째 주일로, 그리고 1946년에는 오늘날과 같은 5월 5일로 변경되었고, 1957년에는 어린이 헌장이 제정, 공포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교회들도 초창기에는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켜오다가 1956년부터 5월 첫째 주를 어린이 주일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린이 주일이라는 절기도 성경에는 없지만 어린이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주일로 지켜지고 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에 대하여 귀하게 여기시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비유로 말씀하신다. 그래서 성경은 어린아이에 대한 특별한 가르침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니라(잠22:6)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회초리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회초리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잠23:13-14). 그리고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에게 안식을 주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잠29:17). 이것은 교회는 물론 부모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다. 따라서 교회는 어린이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방법으로 디모데의 믿음과 유산을 가르치는 사역이 되도록 하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에 속에 있더니 네 속에 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 사도 바울은 육신적으로 디모데가 아들이 아니지만, 디모데가 신앙 성장의 합당한 인격을 갖추는데 바울이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딤전1:2)이라고 부르고 있다.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믿음이 전수된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올바른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디모데의 가정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가정은 신앙 교육의 장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유지 발전시키는 일차 기관이며 교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자녀를 하나님의 진리로 양육하는 근본적인 책임은 가정에 있으며 교회 교육과 학교 또는 세속 사회의 교육 간에 생기는 갈등을 신앙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참된 기반이 된다. 뿐만 아니라 자녀를 신앙으로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복음 전파 사역과 유업을 물려주는 일과도 깊은 연관을 갖는다(신6:4-9). 현재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가 참믿음을 가진 차세대에 대한 교육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어린이 주일을 한 번 지키고끝내는 것이 아니라 평생교육의 출발로서 교회학교의 전문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행함으로써 ‘믿음’의 사역이 부흥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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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기혼 연대하는 공동체를 세우자
작년 기준, 만 19~34세 청년 5명 중 4명이 미혼으로, 미혼율이 80%를 넘었다는 통계는 한국 사회의 결혼·가정에 대한 인식 변화와 현실적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독교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23년 조사에서 전체 기독교인 중 미혼 비율은 40.5%에 달했다. 교회 내 싱글 신자들의 수와 연령이 계속 증가하는 것은 이제 뚜렷한 흐름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경제적 부담, 주거난,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결혼·출산에 대한 가치관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결혼이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전통적 가정 중심의 사역과 인식에서 벗어나, 미혼 신자들을 적극적으로 품고 새로운 공동체의 길을 모색해야 함을 시사한다. 교회는 미혼을 ‘문제’로 여기거나, 결혼만이 신앙적 성숙의 완성이라는 시각을 지양해야 한다. 오히려 사도 바울이 강조했듯, 결혼과 미혼 모두 각자의 소명과 가치를 지닌 삶의 방식임을 인정해야 한다. 미혼 신자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은사와 삶을 온전히 나누며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미혼 성도들이 주체적으로 신앙과 삶을 나눌 수 있는 소그룹, 멘토링, 사역의 기회를 확대하고, 결혼과 출산만을 강조하는 지원정책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는 포용적 사역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는 ‘올바른 가정’의 기준을 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로 한정하지 않고, 신앙 안에서 서로를 돌보고 연합하는 공동체로 확장해야 한다. 부부의 수를 늘리는 것보다, 미혼·기혼 모두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더 본질적인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교회가 미혼의 삶 역시 신앙 안에서 의미 있고,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선포하며, 다양한 가족과 1인 가구를 포용하는 공동체로 나아갈 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진정한 연합과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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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후보를 뽑는 선거가 되자.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21대 대통령 보궐선거가 6월 3일로 정해졌다. 선거에 관심을 갖고 투표에 적극 참여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무이다. 나의 투표권 행사를 위해 우리 현실의 정치, 사회, 경제가 성경의 원리에 맞는지를 평소에도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이 나랏일에 무관심할 수는 없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마6:10)기도하며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투표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우리의 투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력을 바르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선거는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딤전2:2)을 위한 민주주의의 척도다. 올바른 선거는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킴은 물론 경제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선거가정치적 제도지만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역사는 선거가 바꾼다. 선거의 주인공은 유권자다. 깨어 있는 유권자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국가의 부(富)를 키운다. 정의, 법치, 자유, 배려 등 사회의 미덕이 자라나는 토양도 결국 유권자가 가꾼다. 단순히 당선을 위해 외쳐대는 구호, 국가보다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책, 국가의 지속적 번영을 해치는 현혹적 수사 등을 구별하는 혜안을 갖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유권자가 자신들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대중의 어리석음’이라는 함정에 빠진다. 다수결이 민주주의를 이끄는 기본원리지만 다수결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수의 많음보다는 다양함 때문이다. 현혹적 구호에 매몰된 다수는 자칫 국가의 백년대계를 흔든다. 또한 공명한 선거는 또 하나의 과제다. 자유 보통 비밀 직접이라는 선거의 4대 원칙이 지켜지는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은 정치권의 몫이지만 우리는 6·3대선을 대한민국을 정치·경제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는 대한민국의 얼굴이기 때문에 기독인들의 바른 자세가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기도하자.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다(롬13:1). 하나님은 국가와 가정, 그리고 교회를 세우셨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태어날 때 한 가정에 속하게 되며 동시에 한 국가에 속한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었던 시대에, 사도 바울은 로마에 굴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세상 권세도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하지만 육신이 사는 동안에는 국가의 법과 제도와 관원들을 거스리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우리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 한다. 따라서 대선 후보자들이 하나님의 통치 원리와 방법에 얼마나 합당한가를 살펴봐야 하겠다. 만약 자신의 이익이나,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후보를 선택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오직 올바른 투표밖에 없다. 이념과 우상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책임질 후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판단하여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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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 세상에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자.
‘2025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가 4월 20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에서 개최됐다. 특별히 올해는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오전 인천 제물포항에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가 공식 입항해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가 시작된 지 140주년을 맞는 해다. 이번 부활절 연합예배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담아, 한국 71개 교단과 전국 17개 지역 기독교연합회도 동일한 주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 정신을 되세겼다. 부활절(復活節)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부터 3일째 되는 주의 첫날인 일요일에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최대 축일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느 때부터 인가 절기로서 관습화되고 형식화 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교회사에서 부활절이 언제냐는 문제를 두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간의 논쟁이 계속되다가 서기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춘분이 지난 뒤 최초의 보름달이 지난 첫 주일을 부활절로 지키기로 결정하여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으나 부활의 의미가 절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짜는 성경에 기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키는 성탄절인12월 25일은 예수님 탄생하신 날과는 상관없는 날이다. 성경에 그런 기록이 없다. 그러나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달력으로 니산월 정월 14일, 유월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사흘 후에 살아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달력 니산월 14일의 3일 후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양력으로는 3월 하순에서 4월 초에 항상 연결이 된다. 그래서 이때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때가 확실하다. 바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고 그러는데 그 의미는 ‘확 튀어 오른다’ 즉 봄에는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SPRING'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그 부활을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이만큼 확실한 사실이기에 이를 증거 해야 한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리스도인이 믿는 모든 것이 허사(虛事)가 된다. 우리의 구원도 헛것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은 역대의 모든 사람들의 삶도 헛것이 된다(고전15:17-19).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어야 우리의 믿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구약에 예수님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있었고, 그분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더욱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사도들의 행적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이 잡힐 당시 뿔뿔이 도망치던 그 비겁자들이 부활을 직접 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부활의 믿음을 일상화해야 한다. 우리는부활절을 맞아 절기로서 외형적인 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삶의 중심이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그 안에서 ‘하나 됨’으로 많은 영혼들이 부활을 체험하여 부활의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세상에 증거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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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나라사랑에 앞장서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 6월은 호국의 달이다. 현충일과 한국전쟁 등을 통해 나라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달이다.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동안 기독교는 나라사랑을 위해 앞장서왔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기 독립을 위해 앞장선 것이 기독교인들이었다.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민족대표 33명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 당시 전체 인구 중 기독교인구는 2%가 안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인구비율을 생각해 볼 때 기독교인들의 나라사랑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나라의 독립 이후에도 국가의 발전을 위해 힘써왔다. 또한 나라를 위한 기도를 잊지 않았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의 선배들의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목회자들은 호국정신을 계승하고 바른 국가관을 통해 애국운동에 나서야 함을 강조해야 한다.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은 지난 현충일 논평에서 “일찍이 칼빈과 칼빈의 신학을 따르는 아브라함 카이퍼 등 건전한 교회와 교회의 신학자들은 복음과 세상의 관계,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그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여 가르쳤다”면서, “교회는 신자들이 국가와 위정자를 위해 기도하도록 가르쳐야 하고 또한 이렇게 기도하기 위해 바른 국가관을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교회와 신자들은 바른 국가관을 가지고 사회 속에서 애국운동을 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 나라를 위해서도 소금과 빛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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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제안에 힘쓰자
- 디가오는 6월 3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등 기독교단체들이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을 제시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의 경우는 2012년 치려진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부터 이러한 운동을 벌여왔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는 한국교회총연합과 함께 10대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에큐메니컬 성향의 단체에서도 기독교대선행동이라는 단체를 출범하면서 탄소중립 구현과 한반도 평화협정등을 제시한 바 있다. 정치인들에게 기독교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책무 중 하나이다. 기독교적인 정책을 정치인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이 나라에 기독교세계관을 반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은 기독교인뿐 아닌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다.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는 지난 2022년 대선에서 초저출산 극복정책으로 아동돌봄청을 신설해야한다고 했으며 이외에도 재난상황을 대비한 민관위기 관리시스탬 구축과 유사종교 피해방지를 위한 법률제정 등의 정책들이 있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일반시민들에게 큰 유익이 될 수 있는 정책들이다. 저출산 문제의 경우 국가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며, 재난상황의 극복또한 모든 시민에게 필요한 사실이다. 유사종교로 인해 피해를 보는 시민들을 구제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들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큰 유익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차별금지법의 제정과 같은 악법반대 운동을 활발히 펼쳐왔다. 이제는 악법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좋은 법안과 정책등을 제시할 때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는 그러한 법안과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 이러한 정책제안의 시간이 이번 선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편화가 되어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해 모든 시민이 유익이 될 수 있는 정책과 법안을 제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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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제안에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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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믿음’의 사역에 매진하자.
- 한국교회는 5월 5일 어린이날과 함께 어린이 주일을 지키고 있다. 미국에서는 1880년부터 예배당을 꽃으로 장식하고 '샤론의 꽃, 어린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 예배를 드린 데에서 유래하여 '꽃주일'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방정환, 마해송 등의 어린이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선각자들이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해 어린이 인격보호와 바른 성장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과 각성을 촉구하는 등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면서 1927년부터는 5월 첫째 주일로, 그리고 1946년에는 오늘날과 같은 5월 5일로 변경되었고, 1957년에는 어린이 헌장이 제정, 공포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교회들도 초창기에는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켜오다가 1956년부터 5월 첫째 주를 어린이 주일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린이 주일이라는 절기도 성경에는 없지만 어린이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주일로 지켜지고 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에 대하여 귀하게 여기시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비유로 말씀하신다. 그래서 성경은 어린아이에 대한 특별한 가르침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니라(잠22:6)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회초리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회초리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잠23:13-14). 그리고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에게 안식을 주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잠29:17). 이것은 교회는 물론 부모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다. 따라서 교회는 어린이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방법으로 디모데의 믿음과 유산을 가르치는 사역이 되도록 하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에 속에 있더니 네 속에 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 사도 바울은 육신적으로 디모데가 아들이 아니지만, 디모데가 신앙 성장의 합당한 인격을 갖추는데 바울이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딤전1:2)이라고 부르고 있다.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믿음이 전수된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올바른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디모데의 가정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가정은 신앙 교육의 장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유지 발전시키는 일차 기관이며 교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자녀를 하나님의 진리로 양육하는 근본적인 책임은 가정에 있으며 교회 교육과 학교 또는 세속 사회의 교육 간에 생기는 갈등을 신앙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참된 기반이 된다. 뿐만 아니라 자녀를 신앙으로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복음 전파 사역과 유업을 물려주는 일과도 깊은 연관을 갖는다(신6:4-9). 현재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가 참믿음을 가진 차세대에 대한 교육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어린이 주일을 한 번 지키고끝내는 것이 아니라 평생교육의 출발로서 교회학교의 전문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행함으로써 ‘믿음’의 사역이 부흥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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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믿음’의 사역에 매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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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기혼 연대하는 공동체를 세우자
- 작년 기준, 만 19~34세 청년 5명 중 4명이 미혼으로, 미혼율이 80%를 넘었다는 통계는 한국 사회의 결혼·가정에 대한 인식 변화와 현실적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독교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23년 조사에서 전체 기독교인 중 미혼 비율은 40.5%에 달했다. 교회 내 싱글 신자들의 수와 연령이 계속 증가하는 것은 이제 뚜렷한 흐름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경제적 부담, 주거난,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결혼·출산에 대한 가치관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결혼이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전통적 가정 중심의 사역과 인식에서 벗어나, 미혼 신자들을 적극적으로 품고 새로운 공동체의 길을 모색해야 함을 시사한다. 교회는 미혼을 ‘문제’로 여기거나, 결혼만이 신앙적 성숙의 완성이라는 시각을 지양해야 한다. 오히려 사도 바울이 강조했듯, 결혼과 미혼 모두 각자의 소명과 가치를 지닌 삶의 방식임을 인정해야 한다. 미혼 신자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은사와 삶을 온전히 나누며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미혼 성도들이 주체적으로 신앙과 삶을 나눌 수 있는 소그룹, 멘토링, 사역의 기회를 확대하고, 결혼과 출산만을 강조하는 지원정책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는 포용적 사역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는 ‘올바른 가정’의 기준을 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로 한정하지 않고, 신앙 안에서 서로를 돌보고 연합하는 공동체로 확장해야 한다. 부부의 수를 늘리는 것보다, 미혼·기혼 모두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더 본질적인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교회가 미혼의 삶 역시 신앙 안에서 의미 있고,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선포하며, 다양한 가족과 1인 가구를 포용하는 공동체로 나아갈 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진정한 연합과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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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기혼 연대하는 공동체를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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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후보를 뽑는 선거가 되자.
-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21대 대통령 보궐선거가 6월 3일로 정해졌다. 선거에 관심을 갖고 투표에 적극 참여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무이다. 나의 투표권 행사를 위해 우리 현실의 정치, 사회, 경제가 성경의 원리에 맞는지를 평소에도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이 나랏일에 무관심할 수는 없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마6:10)기도하며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투표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우리의 투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력을 바르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선거는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딤전2:2)을 위한 민주주의의 척도다. 올바른 선거는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킴은 물론 경제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선거가정치적 제도지만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역사는 선거가 바꾼다. 선거의 주인공은 유권자다. 깨어 있는 유권자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국가의 부(富)를 키운다. 정의, 법치, 자유, 배려 등 사회의 미덕이 자라나는 토양도 결국 유권자가 가꾼다. 단순히 당선을 위해 외쳐대는 구호, 국가보다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책, 국가의 지속적 번영을 해치는 현혹적 수사 등을 구별하는 혜안을 갖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유권자가 자신들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대중의 어리석음’이라는 함정에 빠진다. 다수결이 민주주의를 이끄는 기본원리지만 다수결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수의 많음보다는 다양함 때문이다. 현혹적 구호에 매몰된 다수는 자칫 국가의 백년대계를 흔든다. 또한 공명한 선거는 또 하나의 과제다. 자유 보통 비밀 직접이라는 선거의 4대 원칙이 지켜지는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은 정치권의 몫이지만 우리는 6·3대선을 대한민국을 정치·경제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는 대한민국의 얼굴이기 때문에 기독인들의 바른 자세가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기도하자.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다(롬13:1). 하나님은 국가와 가정, 그리고 교회를 세우셨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태어날 때 한 가정에 속하게 되며 동시에 한 국가에 속한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었던 시대에, 사도 바울은 로마에 굴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세상 권세도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하지만 육신이 사는 동안에는 국가의 법과 제도와 관원들을 거스리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우리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 한다. 따라서 대선 후보자들이 하나님의 통치 원리와 방법에 얼마나 합당한가를 살펴봐야 하겠다. 만약 자신의 이익이나,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후보를 선택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오직 올바른 투표밖에 없다. 이념과 우상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책임질 후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판단하여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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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후보를 뽑는 선거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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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 세상에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자.
- ‘2025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가 4월 20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에서 개최됐다. 특별히 올해는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오전 인천 제물포항에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가 공식 입항해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가 시작된 지 140주년을 맞는 해다. 이번 부활절 연합예배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담아, 한국 71개 교단과 전국 17개 지역 기독교연합회도 동일한 주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 정신을 되세겼다. 부활절(復活節)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부터 3일째 되는 주의 첫날인 일요일에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최대 축일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느 때부터 인가 절기로서 관습화되고 형식화 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교회사에서 부활절이 언제냐는 문제를 두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간의 논쟁이 계속되다가 서기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춘분이 지난 뒤 최초의 보름달이 지난 첫 주일을 부활절로 지키기로 결정하여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으나 부활의 의미가 절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짜는 성경에 기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키는 성탄절인12월 25일은 예수님 탄생하신 날과는 상관없는 날이다. 성경에 그런 기록이 없다. 그러나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달력으로 니산월 정월 14일, 유월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사흘 후에 살아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달력 니산월 14일의 3일 후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양력으로는 3월 하순에서 4월 초에 항상 연결이 된다. 그래서 이때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때가 확실하다. 바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고 그러는데 그 의미는 ‘확 튀어 오른다’ 즉 봄에는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SPRING'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그 부활을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이만큼 확실한 사실이기에 이를 증거 해야 한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리스도인이 믿는 모든 것이 허사(虛事)가 된다. 우리의 구원도 헛것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은 역대의 모든 사람들의 삶도 헛것이 된다(고전15:17-19).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어야 우리의 믿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구약에 예수님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있었고, 그분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더욱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사도들의 행적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이 잡힐 당시 뿔뿔이 도망치던 그 비겁자들이 부활을 직접 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부활의 믿음을 일상화해야 한다. 우리는부활절을 맞아 절기로서 외형적인 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삶의 중심이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그 안에서 ‘하나 됨’으로 많은 영혼들이 부활을 체험하여 부활의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세상에 증거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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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 세상에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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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에 의지하는 정치를 우려한다
- 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 진영에서 무속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교계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목회자와 평신도들은 성명을 내고 무속을 의지하는 정치는 하나님의 뜻에 반한다고 밝혔다. 또 전현직 신학대 교수들 역시 무속이 아닌 민주적 공론에 기반한 정치를 요구했다. 무속 또는 샤머니즘은 기독교의 복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한국교회는 기억해야 한다. 샤머니즘은 철저히 기복적이고 이기적인 신앙이다. 아니 ‘신앙’이란 말을 쓰기도 부적절하다. 샤머니즘에는 자기희생, 사랑, 겸손, 용서 같은 기독교신앙의 핵심적 가치가 전혀 없다. 무속은 그저 내가 잘 되고, 돈을 잘 벌고, 병에 걸리지 않고, 장수하는 것만을 추구한다. 이러한 기복을 위해서는 비윤리적인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야당 선거캠프에 있는한 무속인은 살아있는 소의 가죽을 벗기는 엄청난 일도 서슴없이 자행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국가의 정치지도자로 매우 중요한 국가중대사를 결정하는 자리에 있다. 이 결정으로 나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될 수도 있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대한민국 국군이 진격할 수도 후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토록 막중한 판단과 결정이 점과 사주에 의해 실행된다면 참으로 통탄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닌가?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현대의 정치는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천명한다. 민주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뜻이며, 공화국은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들이 통치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성경에 영향을 받은 서구에서 만들어진 개념이자 제도이다. 이러한 21세기의 대한민국 민주정치에 무속과 샤머니즘이 개입하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점괘와 사주에 의해서 인사들이 등용되고, 국가중대사가 결정된다면 이는 대한민국을 과거의 시대로 돌리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선한 정치가 되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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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에 의지하는 정치를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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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육은 특별한 소명이 필요하다
- 오늘날 한국교회의 세속화 본질의 중심에는 신학교육의 문제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신학교의 난립에 있다. 매일 하나씩 분열된다는 교단과 그로 인한 신학교들이 난립함으로써 무자격교역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그리고 자격이 있다고 하는 신학교마저도 신학 자체가 세상의 초등학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통 복음주의적인 신학을 벗어나서 세상 초등학문을 따라 너무도 세분화된 교육과정에 의하여 과정자체를 중시하는 신학이 되고 있다. 이들은 성경에서 가장 근본인 “거듭남”(요3:3)의 문제를 심상히 일반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며”(빌1:6),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날이 있고”(골1:6),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3) 등의 말씀들에 대하여 분명히 알지 못하고 목회에 임하는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신학생으로서 특별한 소명이 부족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사도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유언하는 말씀으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고 말씀하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딤전6:12).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 찌니(딤후2:3).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4-15)고 당부를 하고 있다. 따라서 신학교육은 그리스도의 ‘풍성과 충만’에 대하여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고는 목회 현장에서 복음의 진리를 온전히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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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육은 특별한 소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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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그리스도를 힘써 알자
- 이 시대는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확실한 징조들이 나타나는 때이다. 처처에 기후변화에 의한 기근과 탐욕으로 인한 전쟁 그리고 세계적인 코로나 온역 등으로 너무 악한 때이다(눅21:11). 더욱이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한 것보다 더하며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부인되는 말세이다(딤후3:1-5). 특히 교회가 세속의 길에서 방향을 찾지 못함으로써 세상의 모습이 그대로 기독교 속에 투영되고 있는 간음과 변절의 현실이 오늘의 모습이다. 이때 근본에 충실하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그리스도를 힘써 알아가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간음하고 변절하여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에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6:3)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에 새벽 별처럼 나아오실 것이고, 땅을 적시는 늦은 비처럼 이스라엘에 오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천년왕국에서 늦은 비인 그리스도에 의해 적셔지는 땅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는 찬송과 예배라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인 그리스도의 구원과 영광에 대한 믿음을 굳게 하는 그리스도를 힘써 알아가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성막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직접 설계하신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죄인들이 반드시 들어가는 문을 통하여 십자가인 번제단을 시작으로 물두병에서 정결케 하고, 성소에 들어가 진설병에서 말씀의 교제를 나누고, 금등잔에서 빛 가운데 행하며, 향단에서 기도함으로 능력이 임하게 된다. 그 후에 지성소에서 내적 생명의 교제를 이루고, 그룹들이 내려다보는 피가 뿌려진 속죄소에서 온전한 안식과 화평을 누리게 된다. 한국교회는 성경을 통하여 성막의 새롭고 놀라운 사실을 더욱 열심히 그리고 더욱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여 그리스도를 힘써 알아가는 일에 더욱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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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그리스도를 힘써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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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전통문화를 기독문화로 승화
- 설날이 다가온다. 예부터 설날은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크게 생각하는 민족 최고의 명절이다. 올해에도 설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은 불편을 감수하고 고향으로 내려갈 것이고, 형제 친지들은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잔치를 열게 될 것이다. 수천 년간 설날은 조상에게 차례를 드리고 한해의 복을 비는 날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현대인이 지키는 설날은 음력을 사용하던 과거의 풍습을 따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안부를 묻고, 화목을 나누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는 명절이 됐다. 새해를 맞이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나서 맞이하는 설날은 새해를 맞아 조상에게 복을 빌기 위함이 아니라, 잠시라도 복잡한 도시를 떠나 보고 싶은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하겠다. 물론 불신자가정에서는 가족 행사로 차례를 지내기도 하지만, 이는 차례 자체가 목적보다는 함께 모이기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보수교단에서 우상숭배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설날을 부담스러운 날로 생각해 스스로 소외시키기 보다는 가족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전도 활동을 하면서 가정문화를 기독교문화로 변화시키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의미도 모르고 조상을 신처럼 여기는 차례보다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조상들을 생각하고, 가족사랑을 실천하는 명절로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차례보다 부모섬김을 실천하고, 더 즐거운 기독교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 형식적 효에 그치는 차례보다는 진정한 부모섬김과 가족사랑, 그리고 이웃에 대한 관심을 보임으로 유교문화를 계승하는 명절이 아닌, 기독교적 문화를 나누는 명절로 변화시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축복의 명절로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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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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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전통문화를 기독문화로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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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의 목회자후보생 선발 시급하다
- 신학대학원 입시가 본격화되고 있다. 바라기는 영성과 실력을 두로 갖춘 목회후보자들이 많이 선지동산에 입학해 한국교회의 미래를 든든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이들이 곧 한국교회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밝지 않다. 많은 신대원들이 정원에도 못 미치는 충원률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대부분의 신학대학원 경쟁률이 0점대에 머물렀다. 서울신학대학원 0.54:1, 침례교신학대0.53대 1, 성결대0.40대 1, 아세아연합신학대 0.28대 1로 마감됐다. 그나마 주요 교단의 신학대학원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었다. 장신대 2.41:1, 총신대 1.44:1로 간신히 정원미달 문턱을 넘었다. 이러한 사정이 올해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충원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인구감소가 가장 크다할 수 있다. 과거에 비해 학생 자체가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자수가 대학정원보다 적어지는 현상이 곧 일어날 것이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신대원 지원자가 줄다보니 학문적이고 인격적인 검증과정 없이 마구잡이로 학생을 모집하는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목회후보생들의 질이 떨어지면 결국 한국교회 전체의 질이 하락하는 결과가 나온다. 한국교회의 미래가 심히 걱정되는 이유다. 결국 한국교회 전체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과감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당장은 아프고 힘들지만 현재와 미래를 위해 결단해야만 한다. 교단의 결단이 필요하다. 각 교단이 모여 합의를 통해 신학교의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인원 감축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신학교육이 바로 서야 한국교회가 바로 설 수 있다. 이를 위해 지금이라도 감축, 통폐합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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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의 목회자후보생 선발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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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신뢰를 회복하자
- 그동안 한국교회가 분열과 정쟁의 세속화가 진행되면서 사회적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다. 특히 코로나 온역이 장기화되면서 정부나 사회 일각에서 교회발 감염에 대해 과장되게 인식되고 있었다. 지난해 1월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코로나 정부 방역 조치에 대한 일반국민평가 조사에서 한국교회를 약간 신뢰한다는 응답이 21%인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76%로 조사되었다. 연구소측은 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인 상황에서 사회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평가까지 나왔다. 그러나 교회의 신뢰도의 문제는 교회가 세속화를 떠나서 교회의 본연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의 한국기독교는 서구의 기독교와 같이 생명을 잃어가는 세속화의 길에서 방향을 잃고 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는 말씀을 잊어버리고 외형만 남아 있다. 다시 말해 기독교가 세상종교와 같아지고 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 교회는 세상에서 ‘구별된 무리, 빼어낸 무리(에클레시아)이다. 이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고전1:2)이다. 교회는 ‘나는 길이요’라고 하신 예수님의 길을 가는 무리들이다. 예수님이 ‘참 빛’이었듯이 그 빛을 받은 이들을 가리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5:14)고 하셨다. 교회가 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이제 어둠의 세상에서 성도는 빛으로서 부패한 세상 가운데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여 세상의 부패를 막아야 한다. 따라서 코로나시대 교회는 더욱더 근본에 충실해야 한다. 먼저 세상 사람의 영혼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난 가운데 있는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일에 모든 힘을 주력한다면 신뢰회복은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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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신뢰를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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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새롭게 시작하자
- 코로나 온역의 세계적인 재앙은 개인의 생활방식, 교육 환경, 문화 소비 패턴, 사회 서비스 방식, 사회 시스템, 세계 경제 구조, 국제 정세 등 우리의 일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도 규모에 따른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형교회는 시스템이 갖춰져서 살아남을 것이지만 소형교회는 존립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존립 기반인 ‘성도의 교제’가 제한됨으로써 사랑의 장으로서 교회의 역할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 온역이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를 주관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기”(전3:1)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코로나와 같은 온역을 비롯하여 고난을 주신 것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3:11) 곧 영생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 따라서 이러한 암울한 때에 그리스도인은 “새 힘을 얻어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사40:31). 마치 독수리가 날게 치며 올라감 같이 코로나 온역의 암담한 현실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신앙생활이 필요하다. 첫째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거듭남의 비밀을 깨닫고 성령에 충만한 생활을 해야 한다. 영생의 참믿음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17:3). 둘째 영원히 주님과 함께하는 참 소망을 가져야 한다. 죽음을 결코 끝이 아니며, 또 다른 세계의 시작이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단독으로 서는 날을 맞게 될 때에 천국의 영원한 세계로 들어갈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생활은 대적과의 전투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8-9). 이를 위하여 세상 죄에 대하여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위치를 지키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생활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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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새롭게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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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연합기관의 통합이 절실하다
- 지난 10일 한국기독교총연합, 한국교회총연합, 한국교회연합의 3 연합기관이 함께 모여 신년예배를 드리며 통합의 로드맵을 제시했다. 각 대표회장은 올해는 기필코 통합을 이루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환영할 일이다. 제시된 통합의 로드맵이 반드시 실현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그러나 선언이 선언으로만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연합기관 수장들이 모여 이번에는 반드시 통합하겠다는 말을 들은 지가 한두 해가 아니다. 말도 있었고, 선언도 있었고, 결의도 있었지만 통합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통합을 위해서는 먼저 기득권을 포기하려는 비움의 자세가 절실하다. 내 것은 하나도 줄 수 없고, 타자의 것만 내놓으라고 한다면 어찌 통합이 되겠는가. 먼저 내 것부터 내려놓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통합이 가능하다. 또한 자리에 연연하는 태도를 버려야 통합이 가능하다. 원래 하나였던 한기총이 사분오열된 이유가 무엇인가? 대표회장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금권선거를 벌였고, 결국 거기서 분열이 일어나고 말았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자리싸움은 통합은커녕 또 다른 분열을 만들고 말 것이다. 따라서 자리에 연연하는 자세를 포기해야만 한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도 매우 중요하다. 규모로 본다면 한교총이 가장 크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교단이 회원으로 있기에 양과 질에서 한교총은 한기총과 한교연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통합이 아니라 한교총으로의 흡수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한기총과 한교연의 반발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큰 단체가 작은 단체를 흡수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하나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반대로 갈라지는 것은 악령의 역사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분열이라는 고질적 병폐를 안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성령의 역사를 통해 분열된 연합기관이 다시 하나가 되는 위대한 역사가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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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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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연합기관의 통합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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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교회상’을 정립해야 한다 - 희망의 새해를 맞아
- 희망의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해도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정적인 상태에서 보냈다. 새해를 맞았지만 ‘코로나19’는 멈출줄 모르고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보낼 새해도 모든 분야가 밝지가 않다. 그래도 하나님의 사역은 계속 되어야 한다. 목회사역부터 교육, 선교, 봉사 등 어느 한 부문도 소홀히 할수 없다. 한국교회는 ‘코로나19’를 극복하면서, 하나님의 사역에 매진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는 방역지침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지난 해처럼 ‘코로나19’의 온상인 듯한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않된다. 방역의 모범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추락된 신뢰도를 회복해야 한다. 신뢰도를 회복하는 것은, 모범된 교회상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코로나19’를 극복하면서 목회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지난 해는 교회마다 전체 교인들과 함께 공예배를 드리지 못했다.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작은 인원으로 예배와 교육, 선교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역이 위축되고,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비대면 예배로 교인들의 신앙생활도 잘못 되어 가는 행태로 변질되기도 했었다. 한국교회가 위기를 맞은 것이다. 새해에는 ‘코로나19’ 속에서의 교회성장과 부흥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중단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방역지침을 모범적으로 지키면서, 목회사역을 감당해 나가야 한다. 신앙교육과 봉사활동도 계속 되어져야 한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일은 교회의 사명임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사랑의 실천’으로 교회신뢰도를 회복해야 한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사랑의 실천’으로 요약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말보다 실천할 때만이 그 진가가 결과로 나타난다. ‘사랑의 실천’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생활화해야 할 명제이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한국교회가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 절실한 시기를 맞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암울한 문제나, 어려움 속에서 소외되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돌보는 것은, 오직 ‘사랑의 실천’으로 가능하다. 또한 ‘사랑의 실천’으로 교회가 성장되고 부흥될 수 있다. 닫혔던 전도의 문도 활짝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과 ‘갱신’은 오늘의 시대적인 요구이다. 교회의 밖으로부터 교회를 걱정할 정도로 한국교회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교권싸움과 성직자의 윤리적 문제, 그리고 재정적 문제로 인한 갖가지 잘못된 행태로 비난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가 실추된 신뢰도를 회복하려면, 뼈아픈 ‘개혁’과 ‘갱신’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개신교가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개혁’이다. 개신교 자체가 중세의 타락상에서 벗어나, 개혁으로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교회 곳곳에서 드러난 병리적인 현상은 사회로부터 조롱거리가 되어 왔다. 그 결과는 전도의 문을 닫게 했고, 한국교회의 신뢰도를 추락시킨 원인으로 작용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교회를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개혁’과 ‘갱신’만이 정답이다. ‘개혁’과 ‘갱신’은 오늘의 시대적인 요구이다. ◆연합과 일치로 ‘분산된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분열의 역사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볼수 없는 여러 교파로 나누어져 ‘선교의 힘’을 분산시켰다. 연합기관도 여러 개로 나누어져 한국교회를 대표할 만한 단체가 없다. 교회 밖을 향한 목소리도 하나로 모으지 못하고, 단체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연합’과 ‘일치’로 하나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시기이다. 그리스도의 자체인 교회는 그 자체로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분열은 그리스도의 몸을 손상시키는 행위이고, 교회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행위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연합과 일치운동으로 하나되는 일에 앞장 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분열해 왔던 잘못을 회개하고, 여러 가지 사업을 통해 연합하고, 일치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분산된 힘을 하나로 모아 ‘빛’과 ‘소금’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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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교회상’을 정립해야 한다 - 희망의 새해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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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코로나19’역병을 이겨내자 - 2021년을 보내면서
- 2021년은 다사다난을 떠나 교회가 멈춰서는 매우 악한 때이다. 특히 코로나 역병의 세계적인 만연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징조들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본다. 예수님이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주님의 재림하실 때와 세상 끝에 대한 징조를 여쭈었다. 예수님은 여러 말씀 중에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테러)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눅21:11)고 하셨다. 주님의 재림은 세상 끝이다. 그때가 되기 전 여러 징조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온역이다. 온역은 전염병이다. 역사상 의학이 최고로 발달한 우리 시대에 의학을 뛰어넘는 병균이 확산되고 있다. 새 약이나 치료법이 나오면 더 강한 변종이 나와서 완전히 정복했다고 생각했던 전염병이 되살아나고 있다. 기상이변으로 신종 질병이 속출하여 세계적으로 하루에 수만 명 이상이 숨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온역이 전 세계적인 코로나 역병이다. 최근의 우리나라 코로나 역병의 확산세는 가히 두려울 정도다. 신규 확진자는 연일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 치우는 중이다. 7000명을 넘더니 이제는 8000명에 육박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1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위중증 환자의 증가 양상이다. 엊그제 900명에서 금세 1000명을 넘길 기세다. 그 여파로 의료 대응 여력은 한계치에 다다랐고, 이제는 코로나와 무관한 일반 환자의 진료 차질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정부는 위드 코로나 출발 45일 만에, 문재인 대통령의 “후퇴는 없다”는 발언(11,29일) 이후 16일 만에 ‘위드 코로나 포기’ 선언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전3:1). 코로나 역병도 극복할 수 있는 기한이 있다. 왜냐하면 주님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당할 것이 없나니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전10:13).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완벽하게 해 주신 것을 받아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받아 드릴 수 있도록 가장 쉽게 마련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주님의 ‘십자가 공로’를 내 것으로 믿지 못하고, 자신의 행위와 공로를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세 종류의 적과 싸워야 한다. 첫째는 믿음을 갖었다고 해도 우리 안에 죄의 기질이 남아 있다. 둘째는 죄 많은 세상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셋째는 내 신앙생활을 망치고 시험하는 마귀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마음을 전쟁터로 비유하기도 한다. 우리의 속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우리 속에 있는 죄의 기질은 세상의 유혹을 따라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거듭난 사람의 마음속에 벌어지는 이 갈등은 정상적인 반응이기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승리하는 생활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우리 안의 싸움은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에 보내시려는 목적만 갖고 계신 것이 아니다. 영원한 영광도 함께 주시려고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코로나 역병으로 위축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직 그리스도인으로서 “십자가의 도”(고전1:18)에서 떠나지 않은 ‘위치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2021년은 코로나 온역으로 성도의 진정한 교제까지 방해받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리스도인은 아직 땅을 밟고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주님이 오시는 그날, 우리 몸까지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맞이하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산 소망’ 가운데 있다. 따라서 어떤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위치를 이탈해서는 안 된다.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확고한 위치를 갖는 것이다(요15:3). 이것이 2022년 새해를 맞이하는 기도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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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코로나19’역병을 이겨내자 - 2021년을 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