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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신뢰회복을 위해 힘써야 한다.
예장통합 ‘목회자윤리강령’(2011.10.29)을 보면 한국교회의 세속화의 모습을 밝히고 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 못지않게 세속화되었다. 성경에 대한 무지, 강단의 세속화, 교권주의, 공명(功名)주의, 분파주의, 미신적 사고, 교회의 기업화, 성적(性的)부도덕, 목회자의 독선, 물신(物神)숭배 그리고 지나친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로 인하여 한국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처음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다. 주님은 사랑의 본체이다.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의 집을 만드시고, 우리가 사랑 안에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게 됨으로서 교리와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교회생활을 위해 우리 속사람 안으로 강건해야만 정상적인 교회생활을 갖게 된다. 따라서 오늘의 한국교회가 세속화를 극복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교회 본래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상처받은 자들의 모임이기에 서로가 영혼의 상처를 치료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내가 새롭게 되는 곳이다. 또한 교회의 위치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교회는 만물 곧 모든 창조물보다 최상위에 있다(엡1:22). 만물 안에는 세상이 있고 교회는 만물 위에 있기에 교회를 함부로 여겨서는 안된다. 더욱이 교회는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 곧 천사들을 가르치는 엄청난 곳이다.(엡3:10). 뿐만 아니라 교회는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게 한다(엡4:16). 세상에는 완전한 교회란 없다. 천국에 가서야 완전한 교회가 있다. 이 땅의 교회는 함께 지어져 가는 과정(엡2:22)에 있다. 그러기에 ‘서로 사랑하라’(요13:34)는 새 계명을 주신 것이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에서 바로 처음사랑을 잊었을 때에 모든 교회가 타락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 세속화는 바로 주님의 처음사랑을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회의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은혜와 진리’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듬고, 끼리끼리 당을 짓지말며, 모든 교회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는 일(롬8:28)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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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위한 ‘성경’으로 자리매김 - 『새한글성경』 출판에
「새한글성경」의 번역은 2011년 9월 대한성서공회 이사회에서 "디지털 매체 시대의 젊은이들이 성경을 더 쉽게 이해하고 삶 속에 더 널리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경을 번역하기로 결의하면서 시작되었다. 2011년 12월 27일 '성경번역연구위원회'가 조직되어 1년 동안의 번역원칙 연구를 거쳐, 2012년 12월 14일부터 각 교단의 성서학자 36명이 함께 본문을 번역하고, 국어학자 3명이 이를 읽으면서 본문을 다듬었다. 2021년 11월에는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먼저 발행한 후, 2024년 12월에 「새한글성경」 완역본을 발간하게 되었다. 「새한글성경」은 ‘새한글’이란 책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한국어 어법에 어긋나지 않는 새롭고 참신한 용어와 방식’을 사용하고, ‘성경’으로서 ‘원문’에 최대한 충실한 번역이 되도록 했다.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어휘와 쉽고 간결한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원문의 문법적 구조뿐 아니라, 어원적 특성과 어순의 강조점까지 최대한 반영하여 원문에 가깝게 번역되었다. 그리하여 강단용인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이나 다른 역본들과 함께 읽을 때에 원문의 의미와 분위기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기존의 성경은 젊은이들이나 교회학교 학생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구절들이 많았다. 대부분 관념적인 언어나 구어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에게는 고전처럼 여겨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젊은이들의 삶 속에서 성경읽기기를 생활화하기에는 쉽지가 않았다. 이러한 기존 성경에서 벗어나 젊은이들과 교회학교 학생들에게 필요한 성경을 발간한 것이다. 화면이 작은 스마트폰이나 다른 디지털매체로 성경을 읽을 때에도 이해에 어려움이 없도록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번역한 것이다. 원문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을 바탕으로 참신한 우리말 표현을 찾아 새롭게 번역 되었다. 이러한 것은 다음세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출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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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140주년, 한국교회 연합에 매진하자
올해는 아펜젤러선교사와 언더우드선교사가 조선에서 사역을 시작한지 140년이 되는 해이다. 14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해인만큼 다양한 곳에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 그리고 기독교대한감리회가 14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이 연합예배는 장로교와 감리교의 연합행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선교 140주년을 맞이해서 우리는 초창기 선교사들의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초창기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이권과 권리를 버리고 사역을 했다. 또 많은 선교사가 젊은 나이에 순교를 했다. 그들이 조선 땅에 교회를 세웠으며 학교와 병원을 세웠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지는 데는 선교사들의 공도 무시할 수가 없다. 특히 선교사들은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서 사역을 했다. 자신의 교단을 위해서 경쟁적으로 사역한 것이 아니라 조선 땅에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사역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선교사들의 정신을 토대로 사역해야 한다. 각자의 이권과 권리를 내려놓고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한 사역에 앞장서야 한다. 이러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서 사역해야 한다. 각자 다른교단과 교회에 속해 있을 지라도 하나님나라 백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신뢰도 하락은 오래된 일이 되고 있다. 한국교회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회의 분열이 사라져야 한다. 서로의 이권과 권리 때문에 수 많은 교단이 생겨났다. 같은 교단 안에서도 파벌로 나누어지는 경우도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생기는 갈등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을 극복하고 진정한 연합의 길로 나가야 한다. 특별한 행사에서 함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만남과 교류를 지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나라를 위한 사역에 매진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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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국의 엄중함을 깨닫고 기도해야 한다 -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따른 탄핵과 수사에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은 뇌란죄수사와 ‘탄핵’이란 절차로 심판을 받게 됐다. 12일 제2차 탄핵투표에서 가결되므로써 헌법재판소로 넘어가 심의절차에 들어 갔다. 이에 앞서 국회는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위기를 155분 뒤 계엄해제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탄핵문제는 찬성과 반대로 국론이 분열된 가운데 가결된 것이다. 그리고 경찰과 검찰, 공수처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겸허한 자세로 헌법재판소의 심의와 수사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신속한 대응으로 해제와 탄핵,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의 등은 대한민국이 헌법에 기초한 법치국가임을 보여 주었다. 민주화이후 44년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을 6시간 만에 해제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견고하고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의 결과이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국민들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성취해온 나라로 평가해 왔다. 이번 대통령의 반헌법적 계엄시도가 6시간만에 끝난 것도,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헌신으로 다져진 민주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테러나 재난으로 인한 국가의 위기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단지 정치적인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누구나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지키라고 대통령으로 선출해준 국민들에 대한 배신행위이며, 헌법정신에 반하는 독재적인 발상이다. 정치적인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는 데도, 비상계엄으로 해결하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정치의 파트너인 야당과 대화하고 협치하려는 노력도 없이, 야당 때문이란 이유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한국교회는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을 직시하고 예언자적 사명에 따라 잘못된 현 시국을 바르게 이끌어가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잘못과 부패를 막고, 하나님의 공의를 확립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나라와 민족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가야 하고, 시국의 엄중함을 깨닫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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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 전달에 매진하자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다가왔다. 그리스도교의 최대 명절인 성탄절이지만 상업화 등의 이유로 성탄의 의미가 변질되고 있다. 특히 성탄절이 연인들의 기념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교회는 성탄의 의미를 알리는 일에 힘써야 한다. 성탄의 주인이 예수님임을 알려야 한다. 성탄절의 상업화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특히 90년 이후로 상업화와 소비중심 문화 속에서 성탄절의 풍경도 바뀌었다. 교회에서 시작되어야할 성탄절이 백화점에서 시작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탄절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한국교회총연합은 무료로 캐럴을 배포하는 성탄 캐럴 나눔운동을 진행한 바 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도 성탄개럴 공모전을 진행하고 공모전에 선정된 캐럴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의 경우 종로5가 거리의 나무 60그루에 뜨개옷을 입혀 성탄절 문화분위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움직임도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지난해 성탄절을 맞이해서 생명나눔예배를 드린 교회의 성도들이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순교자의 소리도 성탄절을 맞이해서 기독교신앙으로 인해서 핍박받는 어린이들을 위한 선물을 보내는 일도 하고 있다. 우리가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겠지만 예수의 탄생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지를 전달해야 한다. 죄인된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가 오심을 우리는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으로 오셨다는 놀라운 사실이 성탄절에 모든 사람이 기억해야 하는 의미이다. 성탄절의 상업화된 문화를 경계하고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전하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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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물질적 지원과 정신적 지원이 함께가야 한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소외된 이웃을 위한 한국교회의 다양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소외계층을 위한 성금기탁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활동도 꼭 필요한 활동이며, 더 활발해져야 하는 행동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인 지원과 함께 정신적인 지원도 함께가야 한다. 특히 그들과 관계를 형성해서 인적,물적 지원을 지속해서 해야한다. 소외된 이웃을 위한 정신적인 지원은 다양하다. 무료이미용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장애인을 위한 이동지원 봉사를 할 수도 있다. 주부들을 위한 자격증 교실을 열 수도 있다. 의료봉사도 이러한 지원에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독거노인 등과 관계를 형성해서 그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활동은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라는 성경의 말씀과도 부합하다. 여러 문제 중 교회가 신경써야 하는 일은 고독사 문제이다. 현재 한국은 노인뿐 아니라 중년세대와 청년세대에게도 고독사 문제가 취약하다. 교회가 교회 주변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역사회에서 고독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역사회와의 협력도 필수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활동들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활동을 할 때 교회의 이웃사랑 실천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또한 이웃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지속적인 지원이 필수이다. 무엇보다 취약계층은 마음에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러한 상처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한 상처의 치유를 위해서는 관계형성을 통한 정신적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이웃들을 위한 물적지원과 정신적 모두에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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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신뢰회복을 위해 힘써야 한다.
- 예장통합 ‘목회자윤리강령’(2011.10.29)을 보면 한국교회의 세속화의 모습을 밝히고 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 못지않게 세속화되었다. 성경에 대한 무지, 강단의 세속화, 교권주의, 공명(功名)주의, 분파주의, 미신적 사고, 교회의 기업화, 성적(性的)부도덕, 목회자의 독선, 물신(物神)숭배 그리고 지나친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로 인하여 한국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처음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다. 주님은 사랑의 본체이다.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의 집을 만드시고, 우리가 사랑 안에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게 됨으로서 교리와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교회생활을 위해 우리 속사람 안으로 강건해야만 정상적인 교회생활을 갖게 된다. 따라서 오늘의 한국교회가 세속화를 극복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교회 본래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상처받은 자들의 모임이기에 서로가 영혼의 상처를 치료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내가 새롭게 되는 곳이다. 또한 교회의 위치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교회는 만물 곧 모든 창조물보다 최상위에 있다(엡1:22). 만물 안에는 세상이 있고 교회는 만물 위에 있기에 교회를 함부로 여겨서는 안된다. 더욱이 교회는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 곧 천사들을 가르치는 엄청난 곳이다.(엡3:10). 뿐만 아니라 교회는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게 한다(엡4:16). 세상에는 완전한 교회란 없다. 천국에 가서야 완전한 교회가 있다. 이 땅의 교회는 함께 지어져 가는 과정(엡2:22)에 있다. 그러기에 ‘서로 사랑하라’(요13:34)는 새 계명을 주신 것이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에서 바로 처음사랑을 잊었을 때에 모든 교회가 타락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 세속화는 바로 주님의 처음사랑을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회의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은혜와 진리’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듬고, 끼리끼리 당을 짓지말며, 모든 교회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는 일(롬8:28)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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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신뢰회복을 위해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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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위한 ‘성경’으로 자리매김 - 『새한글성경』 출판에
- 「새한글성경」의 번역은 2011년 9월 대한성서공회 이사회에서 "디지털 매체 시대의 젊은이들이 성경을 더 쉽게 이해하고 삶 속에 더 널리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경을 번역하기로 결의하면서 시작되었다. 2011년 12월 27일 '성경번역연구위원회'가 조직되어 1년 동안의 번역원칙 연구를 거쳐, 2012년 12월 14일부터 각 교단의 성서학자 36명이 함께 본문을 번역하고, 국어학자 3명이 이를 읽으면서 본문을 다듬었다. 2021년 11월에는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먼저 발행한 후, 2024년 12월에 「새한글성경」 완역본을 발간하게 되었다. 「새한글성경」은 ‘새한글’이란 책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한국어 어법에 어긋나지 않는 새롭고 참신한 용어와 방식’을 사용하고, ‘성경’으로서 ‘원문’에 최대한 충실한 번역이 되도록 했다.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어휘와 쉽고 간결한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원문의 문법적 구조뿐 아니라, 어원적 특성과 어순의 강조점까지 최대한 반영하여 원문에 가깝게 번역되었다. 그리하여 강단용인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이나 다른 역본들과 함께 읽을 때에 원문의 의미와 분위기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기존의 성경은 젊은이들이나 교회학교 학생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구절들이 많았다. 대부분 관념적인 언어나 구어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에게는 고전처럼 여겨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젊은이들의 삶 속에서 성경읽기기를 생활화하기에는 쉽지가 않았다. 이러한 기존 성경에서 벗어나 젊은이들과 교회학교 학생들에게 필요한 성경을 발간한 것이다. 화면이 작은 스마트폰이나 다른 디지털매체로 성경을 읽을 때에도 이해에 어려움이 없도록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번역한 것이다. 원문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을 바탕으로 참신한 우리말 표현을 찾아 새롭게 번역 되었다. 이러한 것은 다음세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출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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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위한 ‘성경’으로 자리매김 - 『새한글성경』 출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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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140주년, 한국교회 연합에 매진하자
- 올해는 아펜젤러선교사와 언더우드선교사가 조선에서 사역을 시작한지 140년이 되는 해이다. 14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해인만큼 다양한 곳에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 그리고 기독교대한감리회가 14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이 연합예배는 장로교와 감리교의 연합행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선교 140주년을 맞이해서 우리는 초창기 선교사들의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초창기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이권과 권리를 버리고 사역을 했다. 또 많은 선교사가 젊은 나이에 순교를 했다. 그들이 조선 땅에 교회를 세웠으며 학교와 병원을 세웠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지는 데는 선교사들의 공도 무시할 수가 없다. 특히 선교사들은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서 사역을 했다. 자신의 교단을 위해서 경쟁적으로 사역한 것이 아니라 조선 땅에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사역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선교사들의 정신을 토대로 사역해야 한다. 각자의 이권과 권리를 내려놓고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한 사역에 앞장서야 한다. 이러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서 사역해야 한다. 각자 다른교단과 교회에 속해 있을 지라도 하나님나라 백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신뢰도 하락은 오래된 일이 되고 있다. 한국교회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회의 분열이 사라져야 한다. 서로의 이권과 권리 때문에 수 많은 교단이 생겨났다. 같은 교단 안에서도 파벌로 나누어지는 경우도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생기는 갈등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을 극복하고 진정한 연합의 길로 나가야 한다. 특별한 행사에서 함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만남과 교류를 지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나라를 위한 사역에 매진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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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국의 엄중함을 깨닫고 기도해야 한다 -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따른 탄핵과 수사에
-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은 뇌란죄수사와 ‘탄핵’이란 절차로 심판을 받게 됐다. 12일 제2차 탄핵투표에서 가결되므로써 헌법재판소로 넘어가 심의절차에 들어 갔다. 이에 앞서 국회는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위기를 155분 뒤 계엄해제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탄핵문제는 찬성과 반대로 국론이 분열된 가운데 가결된 것이다. 그리고 경찰과 검찰, 공수처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겸허한 자세로 헌법재판소의 심의와 수사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신속한 대응으로 해제와 탄핵,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의 등은 대한민국이 헌법에 기초한 법치국가임을 보여 주었다. 민주화이후 44년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을 6시간 만에 해제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견고하고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의 결과이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국민들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성취해온 나라로 평가해 왔다. 이번 대통령의 반헌법적 계엄시도가 6시간만에 끝난 것도,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헌신으로 다져진 민주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테러나 재난으로 인한 국가의 위기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단지 정치적인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누구나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지키라고 대통령으로 선출해준 국민들에 대한 배신행위이며, 헌법정신에 반하는 독재적인 발상이다. 정치적인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는 데도, 비상계엄으로 해결하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정치의 파트너인 야당과 대화하고 협치하려는 노력도 없이, 야당 때문이란 이유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한국교회는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을 직시하고 예언자적 사명에 따라 잘못된 현 시국을 바르게 이끌어가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잘못과 부패를 막고, 하나님의 공의를 확립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나라와 민족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가야 하고, 시국의 엄중함을 깨닫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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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 전달에 매진하자
-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다가왔다. 그리스도교의 최대 명절인 성탄절이지만 상업화 등의 이유로 성탄의 의미가 변질되고 있다. 특히 성탄절이 연인들의 기념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교회는 성탄의 의미를 알리는 일에 힘써야 한다. 성탄의 주인이 예수님임을 알려야 한다. 성탄절의 상업화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특히 90년 이후로 상업화와 소비중심 문화 속에서 성탄절의 풍경도 바뀌었다. 교회에서 시작되어야할 성탄절이 백화점에서 시작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탄절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한국교회총연합은 무료로 캐럴을 배포하는 성탄 캐럴 나눔운동을 진행한 바 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도 성탄개럴 공모전을 진행하고 공모전에 선정된 캐럴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의 경우 종로5가 거리의 나무 60그루에 뜨개옷을 입혀 성탄절 문화분위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움직임도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지난해 성탄절을 맞이해서 생명나눔예배를 드린 교회의 성도들이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순교자의 소리도 성탄절을 맞이해서 기독교신앙으로 인해서 핍박받는 어린이들을 위한 선물을 보내는 일도 하고 있다. 우리가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겠지만 예수의 탄생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지를 전달해야 한다. 죄인된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가 오심을 우리는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으로 오셨다는 놀라운 사실이 성탄절에 모든 사람이 기억해야 하는 의미이다. 성탄절의 상업화된 문화를 경계하고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전하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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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 전달에 매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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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물질적 지원과 정신적 지원이 함께가야 한다
- 연말이 다가오면서 소외된 이웃을 위한 한국교회의 다양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소외계층을 위한 성금기탁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활동도 꼭 필요한 활동이며, 더 활발해져야 하는 행동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인 지원과 함께 정신적인 지원도 함께가야 한다. 특히 그들과 관계를 형성해서 인적,물적 지원을 지속해서 해야한다. 소외된 이웃을 위한 정신적인 지원은 다양하다. 무료이미용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장애인을 위한 이동지원 봉사를 할 수도 있다. 주부들을 위한 자격증 교실을 열 수도 있다. 의료봉사도 이러한 지원에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독거노인 등과 관계를 형성해서 그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활동은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라는 성경의 말씀과도 부합하다. 여러 문제 중 교회가 신경써야 하는 일은 고독사 문제이다. 현재 한국은 노인뿐 아니라 중년세대와 청년세대에게도 고독사 문제가 취약하다. 교회가 교회 주변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역사회에서 고독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역사회와의 협력도 필수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활동들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활동을 할 때 교회의 이웃사랑 실천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또한 이웃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지속적인 지원이 필수이다. 무엇보다 취약계층은 마음에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러한 상처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한 상처의 치유를 위해서는 관계형성을 통한 정신적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이웃들을 위한 물적지원과 정신적 모두에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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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물질적 지원과 정신적 지원이 함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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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육은 특별한 소명이 필요하다
- 오늘날 한국교회의 세속화 본질의 중심에는 신학교육의 문제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신학교의 난립에 있다. 매일 하나씩 분열된다는 교단과 그로 인한 신학교들이 난립함으로써 무자격교역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그리고 자격이 있다고 하는 신학교마저도 신학 자체가 세상의 초등학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통 복음주의적인 신학을 벗어나서 세상 초등학문을 따라 너무도 세분화된 교육과정에 의하여 과정자체를 중시하는 신학이 되고 있다. 이들은 성경에서 가장 근본인 “거듭남”(요3:3)의 문제를 심상히 일반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며”(빌1:6),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날이 있고”(골1:6),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3) 등의 말씀들에 대하여 분명히 알지 못하고 목회에 임하는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신학생으로서 특별한 소명이 부족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사도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유언하는 말씀으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고 말씀하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딤전6:12).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 찌니(딤후2:3).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4-15)고 당부를 하고 있다. 따라서 신학교육은 그리스도의 ‘풍성과 충만’에 대하여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고는 목회 현장에서 복음의 진리를 온전히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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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육은 특별한 소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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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그리스도를 힘써 알자
- 이 시대는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확실한 징조들이 나타나는 때이다. 처처에 기후변화에 의한 기근과 탐욕으로 인한 전쟁 그리고 세계적인 코로나 온역 등으로 너무 악한 때이다(눅21:11). 더욱이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한 것보다 더하며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부인되는 말세이다(딤후3:1-5). 특히 교회가 세속의 길에서 방향을 찾지 못함으로써 세상의 모습이 그대로 기독교 속에 투영되고 있는 간음과 변절의 현실이 오늘의 모습이다. 이때 근본에 충실하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그리스도를 힘써 알아가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간음하고 변절하여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에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6:3)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에 새벽 별처럼 나아오실 것이고, 땅을 적시는 늦은 비처럼 이스라엘에 오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천년왕국에서 늦은 비인 그리스도에 의해 적셔지는 땅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는 찬송과 예배라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인 그리스도의 구원과 영광에 대한 믿음을 굳게 하는 그리스도를 힘써 알아가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성막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직접 설계하신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죄인들이 반드시 들어가는 문을 통하여 십자가인 번제단을 시작으로 물두병에서 정결케 하고, 성소에 들어가 진설병에서 말씀의 교제를 나누고, 금등잔에서 빛 가운데 행하며, 향단에서 기도함으로 능력이 임하게 된다. 그 후에 지성소에서 내적 생명의 교제를 이루고, 그룹들이 내려다보는 피가 뿌려진 속죄소에서 온전한 안식과 화평을 누리게 된다. 한국교회는 성경을 통하여 성막의 새롭고 놀라운 사실을 더욱 열심히 그리고 더욱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여 그리스도를 힘써 알아가는 일에 더욱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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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그리스도를 힘써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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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전통문화를 기독문화로 승화
- 설날이 다가온다. 예부터 설날은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크게 생각하는 민족 최고의 명절이다. 올해에도 설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은 불편을 감수하고 고향으로 내려갈 것이고, 형제 친지들은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잔치를 열게 될 것이다. 수천 년간 설날은 조상에게 차례를 드리고 한해의 복을 비는 날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현대인이 지키는 설날은 음력을 사용하던 과거의 풍습을 따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안부를 묻고, 화목을 나누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는 명절이 됐다. 새해를 맞이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나서 맞이하는 설날은 새해를 맞아 조상에게 복을 빌기 위함이 아니라, 잠시라도 복잡한 도시를 떠나 보고 싶은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하겠다. 물론 불신자가정에서는 가족 행사로 차례를 지내기도 하지만, 이는 차례 자체가 목적보다는 함께 모이기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보수교단에서 우상숭배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설날을 부담스러운 날로 생각해 스스로 소외시키기 보다는 가족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전도 활동을 하면서 가정문화를 기독교문화로 변화시키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의미도 모르고 조상을 신처럼 여기는 차례보다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조상들을 생각하고, 가족사랑을 실천하는 명절로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차례보다 부모섬김을 실천하고, 더 즐거운 기독교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 형식적 효에 그치는 차례보다는 진정한 부모섬김과 가족사랑, 그리고 이웃에 대한 관심을 보임으로 유교문화를 계승하는 명절이 아닌, 기독교적 문화를 나누는 명절로 변화시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축복의 명절로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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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전통문화를 기독문화로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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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의 목회자후보생 선발 시급하다
- 신학대학원 입시가 본격화되고 있다. 바라기는 영성과 실력을 두로 갖춘 목회후보자들이 많이 선지동산에 입학해 한국교회의 미래를 든든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이들이 곧 한국교회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밝지 않다. 많은 신대원들이 정원에도 못 미치는 충원률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대부분의 신학대학원 경쟁률이 0점대에 머물렀다. 서울신학대학원 0.54:1, 침례교신학대0.53대 1, 성결대0.40대 1, 아세아연합신학대 0.28대 1로 마감됐다. 그나마 주요 교단의 신학대학원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었다. 장신대 2.41:1, 총신대 1.44:1로 간신히 정원미달 문턱을 넘었다. 이러한 사정이 올해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충원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인구감소가 가장 크다할 수 있다. 과거에 비해 학생 자체가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자수가 대학정원보다 적어지는 현상이 곧 일어날 것이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신대원 지원자가 줄다보니 학문적이고 인격적인 검증과정 없이 마구잡이로 학생을 모집하는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목회후보생들의 질이 떨어지면 결국 한국교회 전체의 질이 하락하는 결과가 나온다. 한국교회의 미래가 심히 걱정되는 이유다. 결국 한국교회 전체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과감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당장은 아프고 힘들지만 현재와 미래를 위해 결단해야만 한다. 교단의 결단이 필요하다. 각 교단이 모여 합의를 통해 신학교의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인원 감축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신학교육이 바로 서야 한국교회가 바로 설 수 있다. 이를 위해 지금이라도 감축, 통폐합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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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의 목회자후보생 선발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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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신뢰를 회복하자
- 그동안 한국교회가 분열과 정쟁의 세속화가 진행되면서 사회적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다. 특히 코로나 온역이 장기화되면서 정부나 사회 일각에서 교회발 감염에 대해 과장되게 인식되고 있었다. 지난해 1월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코로나 정부 방역 조치에 대한 일반국민평가 조사에서 한국교회를 약간 신뢰한다는 응답이 21%인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76%로 조사되었다. 연구소측은 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인 상황에서 사회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평가까지 나왔다. 그러나 교회의 신뢰도의 문제는 교회가 세속화를 떠나서 교회의 본연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의 한국기독교는 서구의 기독교와 같이 생명을 잃어가는 세속화의 길에서 방향을 잃고 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는 말씀을 잊어버리고 외형만 남아 있다. 다시 말해 기독교가 세상종교와 같아지고 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 교회는 세상에서 ‘구별된 무리, 빼어낸 무리(에클레시아)이다. 이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고전1:2)이다. 교회는 ‘나는 길이요’라고 하신 예수님의 길을 가는 무리들이다. 예수님이 ‘참 빛’이었듯이 그 빛을 받은 이들을 가리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5:14)고 하셨다. 교회가 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이제 어둠의 세상에서 성도는 빛으로서 부패한 세상 가운데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여 세상의 부패를 막아야 한다. 따라서 코로나시대 교회는 더욱더 근본에 충실해야 한다. 먼저 세상 사람의 영혼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난 가운데 있는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일에 모든 힘을 주력한다면 신뢰회복은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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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신뢰를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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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새롭게 시작하자
- 코로나 온역의 세계적인 재앙은 개인의 생활방식, 교육 환경, 문화 소비 패턴, 사회 서비스 방식, 사회 시스템, 세계 경제 구조, 국제 정세 등 우리의 일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도 규모에 따른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형교회는 시스템이 갖춰져서 살아남을 것이지만 소형교회는 존립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존립 기반인 ‘성도의 교제’가 제한됨으로써 사랑의 장으로서 교회의 역할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 온역이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를 주관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기”(전3:1)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코로나와 같은 온역을 비롯하여 고난을 주신 것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3:11) 곧 영생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 따라서 이러한 암울한 때에 그리스도인은 “새 힘을 얻어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사40:31). 마치 독수리가 날게 치며 올라감 같이 코로나 온역의 암담한 현실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신앙생활이 필요하다. 첫째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거듭남의 비밀을 깨닫고 성령에 충만한 생활을 해야 한다. 영생의 참믿음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17:3). 둘째 영원히 주님과 함께하는 참 소망을 가져야 한다. 죽음을 결코 끝이 아니며, 또 다른 세계의 시작이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단독으로 서는 날을 맞게 될 때에 천국의 영원한 세계로 들어갈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생활은 대적과의 전투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8-9). 이를 위하여 세상 죄에 대하여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위치를 지키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생활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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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새롭게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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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연합기관의 통합이 절실하다
- 지난 10일 한국기독교총연합, 한국교회총연합, 한국교회연합의 3 연합기관이 함께 모여 신년예배를 드리며 통합의 로드맵을 제시했다. 각 대표회장은 올해는 기필코 통합을 이루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환영할 일이다. 제시된 통합의 로드맵이 반드시 실현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그러나 선언이 선언으로만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연합기관 수장들이 모여 이번에는 반드시 통합하겠다는 말을 들은 지가 한두 해가 아니다. 말도 있었고, 선언도 있었고, 결의도 있었지만 통합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통합을 위해서는 먼저 기득권을 포기하려는 비움의 자세가 절실하다. 내 것은 하나도 줄 수 없고, 타자의 것만 내놓으라고 한다면 어찌 통합이 되겠는가. 먼저 내 것부터 내려놓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통합이 가능하다. 또한 자리에 연연하는 태도를 버려야 통합이 가능하다. 원래 하나였던 한기총이 사분오열된 이유가 무엇인가? 대표회장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금권선거를 벌였고, 결국 거기서 분열이 일어나고 말았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자리싸움은 통합은커녕 또 다른 분열을 만들고 말 것이다. 따라서 자리에 연연하는 자세를 포기해야만 한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도 매우 중요하다. 규모로 본다면 한교총이 가장 크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교단이 회원으로 있기에 양과 질에서 한교총은 한기총과 한교연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통합이 아니라 한교총으로의 흡수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한기총과 한교연의 반발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큰 단체가 작은 단체를 흡수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하나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반대로 갈라지는 것은 악령의 역사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분열이라는 고질적 병폐를 안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성령의 역사를 통해 분열된 연합기관이 다시 하나가 되는 위대한 역사가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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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연합기관의 통합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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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교회상’을 정립해야 한다 - 희망의 새해를 맞아
- 희망의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해도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정적인 상태에서 보냈다. 새해를 맞았지만 ‘코로나19’는 멈출줄 모르고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보낼 새해도 모든 분야가 밝지가 않다. 그래도 하나님의 사역은 계속 되어야 한다. 목회사역부터 교육, 선교, 봉사 등 어느 한 부문도 소홀히 할수 없다. 한국교회는 ‘코로나19’를 극복하면서, 하나님의 사역에 매진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는 방역지침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지난 해처럼 ‘코로나19’의 온상인 듯한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않된다. 방역의 모범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추락된 신뢰도를 회복해야 한다. 신뢰도를 회복하는 것은, 모범된 교회상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코로나19’를 극복하면서 목회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지난 해는 교회마다 전체 교인들과 함께 공예배를 드리지 못했다.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작은 인원으로 예배와 교육, 선교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역이 위축되고,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비대면 예배로 교인들의 신앙생활도 잘못 되어 가는 행태로 변질되기도 했었다. 한국교회가 위기를 맞은 것이다. 새해에는 ‘코로나19’ 속에서의 교회성장과 부흥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중단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방역지침을 모범적으로 지키면서, 목회사역을 감당해 나가야 한다. 신앙교육과 봉사활동도 계속 되어져야 한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일은 교회의 사명임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사랑의 실천’으로 교회신뢰도를 회복해야 한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사랑의 실천’으로 요약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말보다 실천할 때만이 그 진가가 결과로 나타난다. ‘사랑의 실천’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생활화해야 할 명제이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한국교회가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 절실한 시기를 맞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암울한 문제나, 어려움 속에서 소외되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돌보는 것은, 오직 ‘사랑의 실천’으로 가능하다. 또한 ‘사랑의 실천’으로 교회가 성장되고 부흥될 수 있다. 닫혔던 전도의 문도 활짝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과 ‘갱신’은 오늘의 시대적인 요구이다. 교회의 밖으로부터 교회를 걱정할 정도로 한국교회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교권싸움과 성직자의 윤리적 문제, 그리고 재정적 문제로 인한 갖가지 잘못된 행태로 비난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가 실추된 신뢰도를 회복하려면, 뼈아픈 ‘개혁’과 ‘갱신’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개신교가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개혁’이다. 개신교 자체가 중세의 타락상에서 벗어나, 개혁으로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교회 곳곳에서 드러난 병리적인 현상은 사회로부터 조롱거리가 되어 왔다. 그 결과는 전도의 문을 닫게 했고, 한국교회의 신뢰도를 추락시킨 원인으로 작용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교회를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개혁’과 ‘갱신’만이 정답이다. ‘개혁’과 ‘갱신’은 오늘의 시대적인 요구이다. ◆연합과 일치로 ‘분산된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분열의 역사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볼수 없는 여러 교파로 나누어져 ‘선교의 힘’을 분산시켰다. 연합기관도 여러 개로 나누어져 한국교회를 대표할 만한 단체가 없다. 교회 밖을 향한 목소리도 하나로 모으지 못하고, 단체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연합’과 ‘일치’로 하나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시기이다. 그리스도의 자체인 교회는 그 자체로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분열은 그리스도의 몸을 손상시키는 행위이고, 교회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행위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연합과 일치운동으로 하나되는 일에 앞장 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분열해 왔던 잘못을 회개하고, 여러 가지 사업을 통해 연합하고, 일치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분산된 힘을 하나로 모아 ‘빛’과 ‘소금’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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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교회상’을 정립해야 한다 - 희망의 새해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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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코로나19’역병을 이겨내자 - 2021년을 보내면서
- 2021년은 다사다난을 떠나 교회가 멈춰서는 매우 악한 때이다. 특히 코로나 역병의 세계적인 만연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징조들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본다. 예수님이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주님의 재림하실 때와 세상 끝에 대한 징조를 여쭈었다. 예수님은 여러 말씀 중에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테러)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눅21:11)고 하셨다. 주님의 재림은 세상 끝이다. 그때가 되기 전 여러 징조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온역이다. 온역은 전염병이다. 역사상 의학이 최고로 발달한 우리 시대에 의학을 뛰어넘는 병균이 확산되고 있다. 새 약이나 치료법이 나오면 더 강한 변종이 나와서 완전히 정복했다고 생각했던 전염병이 되살아나고 있다. 기상이변으로 신종 질병이 속출하여 세계적으로 하루에 수만 명 이상이 숨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온역이 전 세계적인 코로나 역병이다. 최근의 우리나라 코로나 역병의 확산세는 가히 두려울 정도다. 신규 확진자는 연일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 치우는 중이다. 7000명을 넘더니 이제는 8000명에 육박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1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위중증 환자의 증가 양상이다. 엊그제 900명에서 금세 1000명을 넘길 기세다. 그 여파로 의료 대응 여력은 한계치에 다다랐고, 이제는 코로나와 무관한 일반 환자의 진료 차질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정부는 위드 코로나 출발 45일 만에, 문재인 대통령의 “후퇴는 없다”는 발언(11,29일) 이후 16일 만에 ‘위드 코로나 포기’ 선언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전3:1). 코로나 역병도 극복할 수 있는 기한이 있다. 왜냐하면 주님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당할 것이 없나니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전10:13).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완벽하게 해 주신 것을 받아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받아 드릴 수 있도록 가장 쉽게 마련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주님의 ‘십자가 공로’를 내 것으로 믿지 못하고, 자신의 행위와 공로를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세 종류의 적과 싸워야 한다. 첫째는 믿음을 갖었다고 해도 우리 안에 죄의 기질이 남아 있다. 둘째는 죄 많은 세상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셋째는 내 신앙생활을 망치고 시험하는 마귀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마음을 전쟁터로 비유하기도 한다. 우리의 속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우리 속에 있는 죄의 기질은 세상의 유혹을 따라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거듭난 사람의 마음속에 벌어지는 이 갈등은 정상적인 반응이기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승리하는 생활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우리 안의 싸움은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에 보내시려는 목적만 갖고 계신 것이 아니다. 영원한 영광도 함께 주시려고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코로나 역병으로 위축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직 그리스도인으로서 “십자가의 도”(고전1:18)에서 떠나지 않은 ‘위치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2021년은 코로나 온역으로 성도의 진정한 교제까지 방해받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리스도인은 아직 땅을 밟고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주님이 오시는 그날, 우리 몸까지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맞이하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산 소망’ 가운데 있다. 따라서 어떤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위치를 이탈해서는 안 된다.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확고한 위치를 갖는 것이다(요15:3). 이것이 2022년 새해를 맞이하는 기도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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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코로나19’역병을 이겨내자 - 2021년을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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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방역에 더욱 힘쓰자
- 또 다시 교회에서 코로나 집단감염이 발생해 지역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다. 인천의 한 교회에서는 코로나 19 신종 변이 ‘오미크론’으로 인해서 다수의 확진자가 나왔고 결국 교회는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제천의 한 교회에서도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당국에 따르면 이 교회는 예배 후에 교인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한다. 방역준칙 상 식사는 금지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기초적인 지침을 무시하고 옛 습관대로 행동한 것이다. 성경은 “썩어져가는 옛 습관을 버리라”고 말씀한다. 지금 코로나 시대에 한국교회가 반드시 들어야 할 말씀이다. 무심코 모여서 같이 밥 먹고 돌아다니는 것은 다시 코로나를 창궐하게 하는 옛 습관이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철저한 방역 가운데서 예배와 신앙생활에 충실해야 한다. 물론 대다수의 한국교회는 방역수칙을 잘 준수하며 예배와 일상의 회복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문재인대통령은 다수의 한국교회가 코로나 방역에 최선을 다해준 것에 감사를 표한 바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교회는 방역의 모범이 돼야 한다. 무엇보다 강력한 주의가 절실하다. 백신 접종자에 한에 당국은 예배 참여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예배 회복을 위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코로나가 종식된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매주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의 특성상 자체적인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 식사 금지 같은 기초적 방역은 생활화가 돼고 습관이 돼야 한다. 한국교회가 코로나 집단감염의 온상이라는 인상을 다시는 줘서 안 된다. 이제는 방역의 모범이라는 인식을 사회에 심어놔야 한다. 더욱 강력한 자체 방역으로 코로나 확산 방지에 교회가 앞장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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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방역에 더욱 힘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