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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민을 환대하는 교회가 되자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체류자의 수는 251만 명으로 이는 전체인구의 약 5%에 달하는 수치이다. 다문화가구도 약 40만가구에 달한다. 이제 우리는 수 많은 이주민과 살아가고 있다. 이들 중 유학 등을 이유로 단기에 체류하는 이들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이들에게 가져야 하는 중요한 자세는 환대의 자세이다.    성경은 이방인을 환대할 것을 말하고 있다. 레위기 19장 33절과 34절에서는 “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이주민을 환영하고 배척하지 않는 자세가 신앙인이 가져야 할 자세라 할 수 있다.    또 중요한 것은 그들을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취약계층이라는 편견으로 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의 융화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존재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주민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그들의 주거권이다. 한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선주민과 동일한 조건에서 생활해야 한다. 상당수의 이주민들 특히 이주노동자는 단체 생활을 하는데 이들의 숙소가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들의 최소한의 여건이 보장된 주거공간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가 이주민들이 초기 묵을 수 있는 숙소 등을 제공할 필요성도 있다. 또한 장기적인 정착을 할 수 있도록 한국문화와 실생활에서 필요한 상식들을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난 7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열린 이주민을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한 유학생은 “가장 힘들때 교회의 환대 덕분에 삶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렇듯 교회의 환대는 모든 이주민에게 필요한 것이며, 복음의 전달의 통로도 사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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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7
  • ‘교인감소’·‘다음세대’ 문제에 집중해야 - 금년 장로교총회에
    주요 장로교단 총회가 오는 5일부터 시작해 9월 중에 일제히 끝난다. 머지막 주간인 23일부터 27일까지가 가장 많다. 합동측은 23일부터 27일까지 울산 우정교회를 비롯해 통합측은 24일부터 27일까지 양곡교회에서 개회한다. 이번 정기총회는 총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을 선출하고, 주요한 선교 및 교육정책, 그리고 각 교단의 현안 문제를 다룬다. 특히 요즘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문제와 다음 세대 문제, 그리고 교인감소의 극복을 위해 집중적으로 논의해 새로운 정책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통합측을 비롯한 합동측, 고신측의 목사부총회장 선거전이 치열하다. 기장은 장로부총회장에 2명이 입후보했다. 통합측의 경우에는 3명이 입후보해 각 후보마다 선거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부총회장  선거전이 치열할수록 금권선거로 치닫을 수 밖에 없다. 각 교단 집행부는 공명선거를 위한 공정한 선거에 집중하고 있지만, 금권선거운동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워지고 있다. 교회가 이 금권선거로 인해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일꾼을 선출하는 데에 물질적으로 거래되어서는 안된다. 금권선거를 종식시키는 데에 모두가 앞장 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총회는 ‘코로나19’이후 급격히 감소되는 교인문제와 다음세대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계속 문을 닫는 교회가 늘고 있는 것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기 때문에, 교인감소를 현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해결할 방안도 마련해 다음 회기부터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세대 문제이다. 출산율의 저하로 인한 교회학교 부재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출산율 저하문제는 교회도 관심을 갖고 극복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의 몫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출산율 저하는 교회학교가 없어지고, 결국은 교회도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인공지능에 대한 문제도 적극 대처해야 한다. 통합측에서 윤리지침을 마련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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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7
  • [사설] 로잔대회가 한국교회에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
    로잔대회의 긍정적 효과는 무엇일까.   로잔대회가 성큼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교회 역시 오랜 기간 동안 이 복음주의 최대의 선교축제를 준비했다. 많은 기도회와 예배 그리고 간담회와 컨퍼런스 등이 진행되었고 목회자들은 물론 선교사들과 교회 행정가들, 평신도들 역시 모두 각자의 맡은 자리에서 이 행사를 함께 준비하고 기대해 왔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과연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또 다른 질문이 있다. 한국교회 모두가 이번 로잔대회를 찬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로잔에 대한 많은 우려의 소리도 있고, 로잔대회 개최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몇 개의 교단과 단체들은 로잔대회를 우려한다.      그리고 50년 역사 속에 로잔이 견지하고 있는 몇 가지 문제들. 특별히 로잔대회가 반성경적인 신학의 바탕 위에 세워졌음을 강조하며, 로잔대회를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이번 로잔대회를 찬성하고 협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 원인들로는 그간 한국교회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성장주의적 교회관, 세속적인 부와 관계된 기복신앙, 사회의 부조리와 정의문제에 등한시하는 한국기독교의 신학의 문제들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로잔대회 역시 이번 행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우려하는 다른 한 편의 목소리에 분명하게 대답해야 하고 논의해야 할 신학적이고 실천적인 숙제들이 남아있을 수 있다. 하지만 로잔대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종교적인 권위 없이 세상과 사회에 다가가려고 하는 초월적 신학과 실천적 영성에 있다.    복음의 교리를 전하는 것 이상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 복음의 온기를 전하는 일에 가치를 두는 그들의 실천적 제안은, 현재 한국 사회로부터 거부당하고 외면당하는 한국교회에 큰 도움과 변화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한국교회가, 이번 제 4차 로잔대회를 기대하고 준비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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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5
  • [사설] 감사의 의미를 생각하는 맥추감사절 되자
     ‘맥추(麥秋)’의 사전적 의미는 보리를 추수하는 일이다. 대개 봄철이 끝나는 시점이며,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7월 첫째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키고 있다. 하나님께서 밭에 뿌리 밀의 첫 열매로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다. 이를 “칠칠절(七七節)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출34:22,민28:26)’이다. 특별히 칠칠절(신16:9-12)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영육간의 축복을 감사하는 절기이다. 유월절이 끝나는 날부터 7주간이 지난 다음날을 칠칠절 혹은 맥추절 혹은 오순절이라고 했다. 이는 50일 간을 의미하며 마지막 날을 오순절 날이다. 유월절이 없으면 다른 절기의 계산조차 할 수 없다. 모든 기본은 유월절이 된다. 칠칠절은 과거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을 기억하고 풍요로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불우한 이웃과 함께 이를 기념하라고 명하고 있다.     맥추절은 우리의 사정과 다른 절기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지키던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과 비슷하다면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인정하고 서로 함께 나누자는 감사의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이러한 3대 절기를 통한 교훈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속죄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영육간의 축복을 감사함이요. 셋째 고난의 생활이 은혜임을 생각하며 감사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물은 바로 은혜이다. 맥추절이나 추수감사절은 은혜의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은혜란 하나님이 베푸시는 값없는 선물이다. 특별히 아무런 조건 없이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다. 필요할 때마다 순간순간 도우시는 주의 은혜이다(히4:16). 우리는 이 뜻을 받들어 주님께 감사하고 이를 생활 속에서 이루어 나가야 한다. 우리 주변에 너무도 어렵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들에게 은혜의 손길을 보내야 한다. 이제는 주변의 어렵고 고단한 이들과 함께하는 맥추감사절을 지키고자 하는 뜻에 따른 감사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은 한국교회를 인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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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 [사설] 여름성경학교 통한 다음세대 교육에 힘쓰자
     교회의 여름성경학교는 여름동안에 교회에서 주최하는 단기간의 성경 수업으로,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일군으로 성장시키려는 목적으로 방학 기간에 기독교 교육을 시행하는 학교이다. 여름성경학교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하고 예수가 인간을 구원해주어 새사람이 되었음을 깨닫게 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교회들의 여름성경학교는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수양회, 수련회 등으로 보완되고 있으나 한편으로 어학이나 여행 등의 프로그램으로 명맥을 유지하면서 정작 필요한 청소년의 신앙교육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위기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지나친 세속화로 사회를 향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보다는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는 현실이 되고 있다.     청소년의 신앙교육 활성화의 길은 무엇인가! 그동안 한국교회는 외적인 성장에만 치우쳐져 있어 성도들의 영적, 지적, 심리적 요구를 돌볼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은 극히 미흡한 상태에 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성경에서 가장 바람직한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계3:7-13)이다. 빌라델비아는 ‘형제사랑’을 의미한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주님은 거룩하고 참되신 분임을 고백하고 인내의 말씀을 지켰던 교회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4:8). 따라서 하나님이 중심된 교회를 회복하고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은 성령의 검(엡6:17)으로서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존 번연은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이 믿음의 소망의 순례길에서 3가지를 중시하고 있다. 첫째 사람들과 다른 옷을 입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옷이다(롬13:14). 둘째 가나안 말 곧 약속된 성경의 말씀을 사용했다. 셋째 ‘헛된 물건’을 사지 않았다. 오직 진리만을 샀다(잠23:23,요8:32). 디지털 시대의 모든 것은 헛된 물건들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유일한 진리인 ‘그리스도’가 중심인 말씀을 깨달아 가는 ‘진리’만을 가르치는 복음의 교육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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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 [사설] 단기선교위한 위기관리 교육 필요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단기선교를 위한 준비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단기선교를 위한 위기관리 교육의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단기선교지의 현지 상황과 문화 등을 성도들이 잘 알고 갈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여행자보험과 같은 준비를 통해 어려운 상황을 당하게 되더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여행자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사고를 당하더라도 보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성도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사항이다.   외교부에서 제공하는 해외안전여행 페이지에서는 여행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현지문화와 유용한 현지어 그리고 사고의 유형 등을 알리고 있다. 유용한 현지어에 경우 한국어로 발음도 적어 이용자들이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정보를 선교지에 방문하기 전에 배움으로써 선교지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현지법이나 정서를 알리는 것이다. 현지법을 잘 몰라서 현지에서 구류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지정서를 잘 몰라서 폭행 등의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한국과는 다른 교통상황도 알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선교지에서 발생하는 사고사례 중 가장 많은 경우가 교통사고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운전석이 다른 경우 운전에 더욱 유의할 것을 알려야 한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영상을 제작해 교회와 선교단체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이러한 내용을 알리는 것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안전한 단기선교를 할 수 있도록 관심을 촉구할 운동이 필요하다. 교단선교부와 선교단체 등에서는 단기선교 사역 이전에 위기관리교육을 받도록 해서 위기상황을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기관리에 대한 강의와 실습을 통해서 더 은혜가 되는 단기선교를 준비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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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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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질의 목회자후보생 선발 시급하다
    신학대학원 입시가 본격화되고 있다. 바라기는 영성과 실력을 두로 갖춘 목회후보자들이 많이 선지동산에 입학해 한국교회의 미래를 든든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이들이 곧 한국교회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밝지 않다. 많은 신대원들이 정원에도 못 미치는 충원률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대부분의 신학대학원 경쟁률이 0점대에 머물렀다. 서울신학대학원 0.54:1, 침례교신학대0.53대 1, 성결대0.40대 1, 아세아연합신학대 0.28대 1로 마감됐다. 그나마 주요 교단의 신학대학원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었다. 장신대 2.41:1, 총신대 1.44:1로 간신히 정원미달 문턱을 넘었다. 이러한 사정이 올해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충원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인구감소가 가장 크다할 수 있다. 과거에 비해 학생 자체가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자수가 대학정원보다 적어지는 현상이 곧 일어날 것이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신대원 지원자가 줄다보니 학문적이고 인격적인 검증과정 없이 마구잡이로 학생을 모집하는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목회후보생들의 질이 떨어지면 결국 한국교회 전체의 질이 하락하는 결과가 나온다. 한국교회의 미래가 심히 걱정되는 이유다.   결국 한국교회 전체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과감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당장은 아프고 힘들지만 현재와 미래를 위해 결단해야만 한다.   교단의 결단이 필요하다. 각 교단이 모여 합의를 통해 신학교의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인원 감축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신학교육이 바로 서야 한국교회가 바로 설 수 있다. 이를 위해 지금이라도 감축, 통폐합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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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6
  • 한국교회 신뢰를 회복하자
    그동안 한국교회가 분열과 정쟁의 세속화가 진행되면서 사회적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다. 특히 코로나 온역이 장기화되면서 정부나 사회 일각에서 교회발 감염에 대해 과장되게 인식되고 있었다. 지난해 1월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코로나 정부 방역 조치에 대한 일반국민평가 조사에서 한국교회를 약간 신뢰한다는 응답이 21%인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76%로 조사되었다. 연구소측은 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인 상황에서 사회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평가까지 나왔다. 그러나 교회의 신뢰도의 문제는 교회가 세속화를 떠나서 교회의 본연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의 한국기독교는 서구의 기독교와 같이 생명을 잃어가는 세속화의 길에서 방향을 잃고 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는 말씀을 잊어버리고 외형만 남아 있다. 다시 말해 기독교가 세상종교와 같아지고 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   교회는 세상에서 ‘구별된 무리, 빼어낸 무리(에클레시아)이다. 이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고전1:2)이다.   교회는 ‘나는 길이요’라고 하신 예수님의 길을 가는 무리들이다. 예수님이 ‘참 빛’이었듯이 그 빛을 받은 이들을 가리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5:14)고 하셨다. 교회가 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이제 어둠의 세상에서 성도는 빛으로서 부패한 세상 가운데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여 세상의 부패를 막아야 한다. 따라서 코로나시대 교회는 더욱더 근본에 충실해야 한다. 먼저 세상 사람의 영혼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난 가운데 있는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일에 모든 힘을 주력한다면 신뢰회복은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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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6
  • 코로나시대, 새롭게 시작하자
    코로나 온역의 세계적인 재앙은 개인의 생활방식, 교육 환경, 문화 소비 패턴, 사회 서비스 방식, 사회 시스템, 세계 경제 구조, 국제 정세 등 우리의 일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도 규모에 따른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형교회는 시스템이 갖춰져서 살아남을 것이지만 소형교회는 존립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존립 기반인 ‘성도의 교제’가 제한됨으로써 사랑의 장으로서 교회의 역할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 온역이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를 주관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기”(전3:1)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코로나와 같은 온역을 비롯하여 고난을 주신 것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3:11) 곧 영생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   따라서 이러한 암울한 때에 그리스도인은 “새 힘을 얻어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사40:31). 마치 독수리가 날게 치며 올라감 같이 코로나 온역의 암담한 현실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신앙생활이 필요하다. 첫째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거듭남의 비밀을 깨닫고 성령에 충만한 생활을 해야 한다. 영생의 참믿음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17:3). 둘째 영원히 주님과 함께하는 참 소망을 가져야 한다. 죽음을 결코 끝이 아니며, 또 다른 세계의 시작이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단독으로 서는 날을 맞게 될 때에 천국의 영원한 세계로 들어갈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생활은 대적과의 전투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8-9). 이를 위하여 세상 죄에 대하여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위치를 지키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생활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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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16
  • 한국교회 연합기관의 통합이 절실하다
    지난 10일 한국기독교총연합, 한국교회총연합, 한국교회연합의 3 연합기관이 함께 모여 신년예배를 드리며 통합의 로드맵을 제시했다. 각 대표회장은 올해는 기필코 통합을 이루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환영할 일이다. 제시된 통합의 로드맵이 반드시 실현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그러나 선언이 선언으로만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연합기관 수장들이 모여 이번에는 반드시 통합하겠다는 말을 들은 지가 한두 해가 아니다. 말도 있었고, 선언도 있었고, 결의도 있었지만 통합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통합을 위해서는 먼저 기득권을 포기하려는 비움의 자세가 절실하다. 내 것은 하나도 줄 수 없고, 타자의 것만 내놓으라고 한다면 어찌 통합이 되겠는가. 먼저 내 것부터 내려놓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통합이 가능하다. 또한 자리에 연연하는 태도를 버려야 통합이 가능하다. 원래 하나였던 한기총이 사분오열된 이유가 무엇인가? 대표회장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금권선거를 벌였고, 결국 거기서 분열이 일어나고 말았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자리싸움은 통합은커녕 또 다른 분열을 만들고 말 것이다. 따라서 자리에 연연하는 자세를 포기해야만 한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도 매우 중요하다. 규모로 본다면 한교총이 가장 크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교단이 회원으로 있기에 양과 질에서 한교총은 한기총과 한교연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통합이 아니라 한교총으로의 흡수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한기총과 한교연의 반발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큰 단체가 작은 단체를 흡수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하나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반대로 갈라지는 것은 악령의 역사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분열이라는 고질적 병폐를 안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성령의 역사를 통해 분열된 연합기관이 다시 하나가 되는 위대한 역사가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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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01-13
  • 바른 ‘교회상’을 정립해야 한다 - 희망의 새해를 맞아
    희망의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해도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정적인 상태에서 보냈다. 새해를 맞았지만 ‘코로나19’는 멈출줄 모르고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보낼 새해도 모든 분야가 밝지가 않다. 그래도 하나님의 사역은 계속 되어야 한다. 목회사역부터 교육, 선교, 봉사 등 어느 한 부문도 소홀히 할수 없다. 한국교회는 ‘코로나19’를 극복하면서, 하나님의 사역에 매진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는 방역지침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지난 해처럼 ‘코로나19’의 온상인 듯한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않된다. 방역의 모범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추락된 신뢰도를 회복해야 한다. 신뢰도를 회복하는 것은, 모범된 교회상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코로나19’를 극복하면서 목회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지난 해는 교회마다 전체 교인들과 함께 공예배를 드리지 못했다.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작은 인원으로 예배와 교육, 선교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역이 위축되고,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비대면 예배로 교인들의 신앙생활도 잘못 되어 가는 행태로 변질되기도 했었다. 한국교회가 위기를 맞은 것이다. 새해에는 ‘코로나19’ 속에서의 교회성장과 부흥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중단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방역지침을 모범적으로 지키면서, 목회사역을 감당해 나가야 한다. 신앙교육과 봉사활동도 계속 되어져야 한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일은 교회의 사명임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사랑의 실천’으로 교회신뢰도를 회복해야 한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사랑의 실천’으로 요약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말보다 실천할 때만이 그 진가가 결과로 나타난다. ‘사랑의 실천’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생활화해야 할 명제이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한국교회가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 절실한 시기를 맞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암울한 문제나, 어려움 속에서 소외되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돌보는 것은, 오직 ‘사랑의 실천’으로 가능하다. 또한 ‘사랑의 실천’으로 교회가 성장되고 부흥될 수 있다. 닫혔던 전도의 문도 활짝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과 ‘갱신’은 오늘의 시대적인 요구이다. 교회의 밖으로부터 교회를 걱정할 정도로 한국교회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교권싸움과 성직자의 윤리적 문제, 그리고 재정적 문제로 인한 갖가지 잘못된 행태로 비난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가 실추된 신뢰도를 회복하려면, 뼈아픈 ‘개혁’과 ‘갱신’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개신교가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개혁’이다. 개신교 자체가 중세의 타락상에서 벗어나, 개혁으로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교회 곳곳에서 드러난 병리적인 현상은 사회로부터 조롱거리가 되어 왔다. 그 결과는 전도의 문을 닫게 했고, 한국교회의 신뢰도를 추락시킨 원인으로 작용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교회를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개혁’과 ‘갱신’만이 정답이다. ‘개혁’과 ‘갱신’은 오늘의 시대적인 요구이다.   ◆연합과 일치로 ‘분산된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분열의 역사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볼수 없는 여러 교파로 나누어져 ‘선교의 힘’을 분산시켰다. 연합기관도 여러 개로 나누어져 한국교회를 대표할 만한 단체가 없다. 교회 밖을 향한 목소리도 하나로 모으지 못하고, 단체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연합’과 ‘일치’로 하나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시기이다. 그리스도의 자체인 교회는 그 자체로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분열은 그리스도의 몸을 손상시키는 행위이고, 교회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행위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연합과 일치운동으로 하나되는 일에 앞장 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분열해 왔던 잘못을 회개하고, 여러 가지 사업을 통해 연합하고, 일치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분산된 힘을 하나로 모아 ‘빛’과 ‘소금’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12-29
  • 악한 ‘코로나19’역병을 이겨내자 - 2021년을 보내면서
    2021년은 다사다난을 떠나 교회가 멈춰서는 매우 악한 때이다. 특히 코로나 역병의 세계적인 만연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징조들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본다.    예수님이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주님의 재림하실 때와 세상 끝에 대한 징조를 여쭈었다. 예수님은 여러 말씀 중에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테러)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눅21:11)고 하셨다. 주님의 재림은 세상 끝이다. 그때가 되기 전 여러 징조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온역이다.    온역은 전염병이다. 역사상 의학이 최고로 발달한 우리 시대에 의학을 뛰어넘는 병균이 확산되고 있다. 새 약이나 치료법이 나오면 더 강한 변종이 나와서 완전히 정복했다고 생각했던 전염병이 되살아나고 있다. 기상이변으로 신종 질병이 속출하여 세계적으로 하루에 수만 명 이상이 숨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온역이 전 세계적인 코로나 역병이다.   최근의 우리나라 코로나 역병의 확산세는 가히 두려울 정도다. 신규 확진자는 연일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 치우는 중이다. 7000명을 넘더니 이제는 8000명에 육박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1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위중증 환자의 증가 양상이다. 엊그제 900명에서 금세 1000명을 넘길 기세다. 그 여파로 의료 대응 여력은 한계치에 다다랐고, 이제는 코로나와 무관한 일반 환자의 진료 차질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정부는 위드 코로나 출발 45일 만에, 문재인 대통령의 “후퇴는 없다”는 발언(11,29일) 이후 16일 만에 ‘위드 코로나 포기’ 선언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전3:1). 코로나 역병도 극복할 수 있는 기한이 있다. 왜냐하면 주님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당할 것이 없나니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전10:13).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완벽하게 해 주신 것을 받아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받아 드릴 수 있도록 가장 쉽게 마련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주님의 ‘십자가 공로’를 내 것으로 믿지 못하고, 자신의 행위와 공로를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세 종류의 적과 싸워야 한다. 첫째는 믿음을 갖었다고 해도 우리 안에 죄의 기질이 남아 있다. 둘째는 죄 많은 세상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셋째는 내 신앙생활을 망치고 시험하는 마귀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마음을 전쟁터로 비유하기도 한다. 우리의 속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우리 속에 있는 죄의 기질은 세상의 유혹을 따라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거듭난 사람의 마음속에 벌어지는 이 갈등은 정상적인 반응이기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승리하는 생활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우리 안의 싸움은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에 보내시려는 목적만 갖고 계신 것이 아니다. 영원한 영광도 함께 주시려고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코로나 역병으로 위축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직 그리스도인으로서 “십자가의 도”(고전1:18)에서 떠나지 않은 ‘위치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2021년은 코로나 온역으로 성도의 진정한 교제까지 방해받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리스도인은 아직 땅을 밟고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주님이 오시는 그날, 우리 몸까지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맞이하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산 소망’ 가운데 있다.    따라서 어떤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위치를 이탈해서는 안 된다.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확고한 위치를 갖는 것이다(요15:3). 이것이 2022년 새해를 맞이하는 기도이기를 소망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12-26
  • 코로나 방역에 더욱 힘쓰자
    또 다시 교회에서 코로나 집단감염이 발생해 지역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다. 인천의 한 교회에서는 코로나 19 신종 변이 ‘오미크론’으로 인해서 다수의 확진자가 나왔고 결국 교회는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제천의 한 교회에서도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당국에 따르면 이 교회는 예배 후에 교인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한다. 방역준칙 상 식사는 금지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기초적인 지침을 무시하고 옛 습관대로 행동한 것이다.   성경은 “썩어져가는 옛 습관을 버리라”고 말씀한다. 지금 코로나 시대에 한국교회가 반드시 들어야 할 말씀이다.    무심코 모여서 같이 밥 먹고 돌아다니는 것은 다시 코로나를 창궐하게 하는 옛 습관이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철저한 방역 가운데서 예배와 신앙생활에 충실해야 한다.   물론 대다수의 한국교회는 방역수칙을 잘 준수하며 예배와 일상의 회복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문재인대통령은 다수의 한국교회가 코로나 방역에 최선을 다해준 것에 감사를 표한 바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교회는 방역의 모범이 돼야 한다.   무엇보다 강력한 주의가 절실하다. 백신 접종자에 한에 당국은 예배 참여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예배 회복을 위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코로나가 종식된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매주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의 특성상 자체적인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 식사 금지 같은 기초적 방역은 생활화가 돼고 습관이 돼야 한다.   한국교회가 코로나 집단감염의 온상이라는 인상을 다시는 줘서 안 된다. 이제는 방역의 모범이라는 인식을 사회에 심어놔야 한다. 더욱 강력한 자체 방역으로 코로나 확산 방지에 교회가 앞장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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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1-12-17
  •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성탄절이 되자
    성탄절은 부활절과 함께 기독교 최대의 명절이다. 또 교회를 넘어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축복하는 세계의 명절이기도 하다. 성탄절은 무엇보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를 기념하고 그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는 절기이다.    아기 예수의 오심과 탄생은 그 자체로 복된 소식 즉 복음으로 기독교의 본질이자 출발점이다. 그래서 교회는 그 시작부터 성탄절을 최고의 명절로 여기고 함께 축하했다. 이렇게 성탄절에는 오랜 교회의 역사가 녹아들어져 있다.    성탄의 중요한 의미는 ‘평화’이다. 성경의 보도에 의하면 아기 예수가 탄생했을 때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찬양했다. 수직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수평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평화가 성탄의 메시지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성탄이 주는 평화의 메시지를 올바로 전해야 한다. 산타할아버지와 선물 등 상업화된 성탄이 아닌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분명하게 전해야 한다. 무엇보다 교회가 먼저 평화의 일을 해야 한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더 거대해지기 위해 다투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으로 낮아지고, 섬기는 평화의 모습을 한국교회는 회복해야 한다.    또한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씀대로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며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거대한 예배당 건물과 화려한 외관이 성탄의 바른 의미는 아닐 것이다. 주위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그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바로 전하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가운데 있다. 물론 교회 역시 어렵다. 그럼에도 이번 성탄절에는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찾아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성탄절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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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1-12-17
  • 한교총 총회의 파행을 우려한다
    지난 2일 열린 한국교회총연합 총회가 파행으로 끝났다. 다음 회의의 일정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한국교회을 대표한다는 한교총의 총회가 파행으로 끝난 근본 이유는 현 공동대표 체제를 여러명 대표 체제로 바꾸려는 정관개정 시도했었다. 공동대표를 1인 대표로 바꾸려는 이유는 정부와의 협상에서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밝혔다. 여기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교총의 존재 이유가 정부와의 협상에 있는가? 국무총리나 정당대표의 방문을 받기 위해 한교총 대표회장을 하려는가? 물론 정부와의 협상도 한국교회 연합기관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한교총은 스스로 그 정관에서 밝히듯이 ‘한국교회의 연합’을 위해 있다. 그래서 여러 교단이 가입해서 적지 않은 회비를 내는 것이다.   한교총은 한기총의 대안으로 시작됐다. 한교총은 한기총과 달리 공동대표회장 체제를 채택했다. 왜 그런가? 한기총이 1인 대표회장을 뽑기 위해 금권선거로 타락했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한교총이 다시 한기총이 걸었던 그 타락과 불통 과정을 걸으려고 한다.   이번 한교총 총회의 파행은 한국교회에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이번 파행이 책임은 지금 한교총을 이끌고 있는 지도부에게 있다. 지도부는 이번 파행의 원인을 잘 살피고, 이를 매듭지어야 한다. 결자해지해야 하다.   한교총의 대표회장은 섬기고 봉사하는 자리이다. 더 높아지려고 하는 권력과 탐욕의 자리가 아니다. 선거 때가 되면 찾아오는 고위 공무원이나 정당대표와 만나 환담하면서 무엇을 말해야하는지 숙고해야 한다. 높은 정치인들을 만난다고 해서 스스로 권력의 맛에 취하면 안 된다. 낮아지고, 섬기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한교총의 이번 파행은 현 지도부에게 책임이 있다. 권력과 정치가 아닌 섬김과 겸손의 모습이 한교총에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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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8
  • ‘사랑의 실천’·‘교회의 연합운동’ 추구 - 본지 창간 56주년에
    기독교신문이 창간 56주년을 맞았다. 1965년 12월 12일 「사랑의 실천」을 사시로 한국교회와 국가발전, 그리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창간되었다. 창간 당시에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리고 국가와 민족적으로 중요한 전환기였다. 제1차의 농업혁명과 제2차의 산업혁명을 지나 제3차의 중공업혁명의 단계에 이르는 시기였다. 특히 남북한의 군사대치 상황은 불안을 고조시키는 시기였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교인이 2백만명, 교회는 6천개 정도였다. 경제성장과 함께 교회도 급성장의 시기였다.   본지는 이러한 시기에 창간되었다. 교회가 사랑의 실천으로 성장시키고, 국가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창간정신을 추구해 왔다. 또한 「사랑의 실천」과 함께 「교회연합과 일치」도 추구해 왔다. 사랑의 실천으로 한국교회를 위한 연합운동과 일치운동도 전개해 왔다.   이러한 본지는 사랑의 실천에 대한 기사를 발굴하고 기획하여 신학적으로 선교적으로 주장해 왔다. 사랑은 신자와 하나님 사이의 윤리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의 성육으로서 역동적이고 실천적인 것이다. 사랑은 기독교 안에서의 윤리라는 한계를 넘어서 우리의 사회와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운동이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보도해 왔다. 「사랑의 실천」은 기독교의 윤리 안에서만 머문 것이 아니라, 교회 밖의 사회와 국가에도 널리 퍼지도록 노력한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의 일치와 연합운동, 그리고 교회개혁에도 앞장 섰었다. 기독교는 고대로 중세기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교회로 발전하여 확장하였다. 제11세기에는 희랍의 정교회가 비잔티움을 중심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분리하였다. 제16세기에는 프로테스탄트교가 로마 가톨릭에서 종교개혁을 하여 민족중심의 교회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분열을 거듭해 왔다. 이 분열된 교회를 일치시키고 연합할 수 있도록 갱신과 개혁운동도 함께 전개해 왔다. 교회는 일치와 연합운동으로 하나가 돼야 하고, 갱신과 개혁으로 새로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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