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사설

실시간뉴스
  • 고난주간, 신앙 성숙의 길로 삼자
       매년 맞이하는 고난주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에 ‘자기 십자가’를 체험하는 기간이다. 우리가 고난주간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수께서 3년간의 공생애 끝에 이제 스스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기 위해서 나귀를 타고 군중들의 환호 속에서 자신이 그리스도(메시아)임을 공식 선언하시면서 예루살렘을 입성하셨다.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부활일 직전까지를 절기로 삼아 주의 고난과 은혜를 경건히 기리는 한 주간의 절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그러나 고난주간이란 말은 성경 속에는 기록이 없다. 다만 고난주간이 교회의 절기로 자리하면서, 교회가 세속화되면서 형식화되고 관습화되고 있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신앙 성숙은 고난주간을 맞아 ‘자기 십자가’를 지는 분명한 체험이 필요하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예수님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면서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 앞에 굴복시키셨다. 하나님의 뜻 앞에 자기의 뜻을 굴복시키지 않는다면 십자가에 못 박힐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은 십자가 안에서 이미 끝났다. 이제 나는 껍데기일 뿐이고 주인은 주님이다. 또한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을 말하는데, 육신을 부인해야 비로소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성숙은 고난주간뿐 아니라, 일상의 생활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24-03-13
  • [사설] 해외선교사의 현실과 성경적 선교지원
      선교는 세속적 경제구조와 맞물려 진행되지 않는다.   2010년을 전후로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철수하는 상황이 많아졌다. 특별히 중국 공산당의 박해로 인해 철수하는 선교사들이 많았고, 인도나 터키 등 자신들의 종교가 분명한 나라들에서 선교사들을 추방하는 일이 많았다. 그 국가들은 주로 비자를 연장 해주지 않던가, 정부 정책에 반하는 일들을 했다는 이유를 근거로 진행한 일종의 박해였다. 이런 일들이 최근 한국인 선교사의 수가 줄어든 원인 중에 하나가 됨은 분명하다. 또 그런 박해는 예상된 일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인 선교사 감소의 원인 중, 큰 이유는 한국교회의 급격한 성장 저하라는 것은 자명하다. 선교사들의 사역과 생활은 교회의 지원과 성도들의 후원으로 유지된다. 이러한 한국적 선교시스템에서, 교세의 감소로 지원이 약해지고 또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개인성도 감소로 개인 후원금이 줄어들고 있다. 이 현실적인 문제들과 싸우는 현장의 선교사들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선교는 하나님나라의 가치와 믿음에 의지한다.  우리의 선교는 그 어떤 것도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한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1:8)란 말씀, 또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마28:19)라는 말씀에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떻게든 세상 끝까지 전파해 한 영혼이라도 구하기를 애써 왔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현재 교회의 경제상황과 인적 상황에 기반하지 않는다. 오직 독생자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셔서 세상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큰 언약의 사랑과 그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근거한다.  교회는 먼저 우리의 것을 떼어 놓기 전에, 내 쓸 것을 것을 줄이고 양보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고 헌신해야 한다. 가난한 이웃과 열방에 가서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세상 경제의 논리가 아닌, 하늘 경제의 풍성함과 기적을 전해 주어야 한다.   실제로 많은 교회들이 이렇게 선교하고 있다. 이것이 참된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세상을 이기는 힘이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예수님의 말씀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24-02-22
  • ‘퀴어 축제’, 반성경적이고 비윤리적이다
    올해도 이른바 ‘퀴어 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이를 두고 한국교회는 한목소리로 우려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우리는 동성애, 근친상간, 소아성애 등을 옹호하는 퀴어신학을 반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퀴어신학이 지지하는 낯설고 이상한 동성애는 창조섭리인 양성질서에 반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창 2:24) 결국, 동성애는 성경의 주제가 아니고 부차적인 것으로 하나님이 금기하는 행위일 뿐이다. 이런 이유로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게 신학의 보편적 주제가 될 수는 없다. 퀴어신학의 주제는 동성애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이 가장 크다. 동성애가 신학의 핵심이 돼야 하고 동성애에 대한 모독과 억압은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신학의 주제는 창조자 하나님과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 보혜사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지향해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는 인격적 하나님을 의미한다.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과 인류 보편의 성 윤리와 맞선다. 비도덕적이고 괴기한 성적 관행이다. 남성 동성애의 경우 배설기관과 생식기관의 비정상적 접촉이 반복된다. 창조질서에 어긋난다.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의학적 질서와도 맞지 않는다. 동성애는 결국 괴기한 행위일 뿐이다.   결혼과 가정은 동성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라는 이성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성 결혼과 양성으로 이루어지는 가정에서 자녀들이 생산되며 사회와 국가와 인류는 존속될 수 있다. 이성간의 사랑과 이성간의 결혼, 즉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지는 양성결혼은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주신 창조의 복이요 인류 생존의 조건이요 기반이다. 따라서 동성애 반대는 이 시대 교회의 중요한 과제이다. 한국 교회는 바른 성경적 관점에서 동성애에 대처해야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22-05-19
  • 모범이 되는 기독교가정이 되자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전통적으로 가정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관계로 얻은 자녀들로 구성된 혈연공동체인 동시에 같은 공간에서 의식주를 함께 나누는 생활공동체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부모와 자녀들로 구성되는 이런 전통적인 가정에 대한 이해와 가정의 형태는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독신과 혼전동거의 증가와 더불어 결혼율의 감소, 동성애와 성전환 그리고 동성결혼 등 세태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가정에 대한 이해와 형태들이 나타남으로 전통적 가정관과 가정형태가 도전과 위기를 만나고 있다.   먼저 결혼과 가정은 하나님이 창조질서로 제정하신 천부적 제도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둘이 하나가 되는 인간의 결혼제도는 이러한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생명의 연합과 사랑의 사귐을 이루는 언약관계를 가르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13:4).”고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에게 결혼은 창조의 질서를 넘어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구속받은 교회 사이에 맺어진 새 언약의 관계로 하나님의 영적 생명의 연합을 나타내는 신비로 이해된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복종함으로 영적인 신비를 드러내야 한다. 온전한 부부간의 사랑과 연합을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와 구속에서 나타나는 결혼과 관련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이러한 결혼언약의 영적신비를 기억함으로 반드시 영적 생명을 함께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 곧 같은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과 결혼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이혼과 재혼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해야 한다. 이렇게 세상에 모범이 되는 기독교 가정을 이뤄가는데 온 힘을 기울자.
    • 오피니언
    • 사설
    2022-05-19
  •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를 우려한다
    지난 2020년 6월 29일 자로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그 안에 전통적인 기독교윤리와 배치는 되는 조항이 있어 우리는 심각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동법 2조 1항에서 성별을 남성, 여성, 그리고 분류할 수 없는 성을 말한다. 이는 성을 인식, 표현, 인지를 통해서 결정되는 것으로, 이 의미는 생물학적 인체구조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주관적인 인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이는 남성과 여성 외에 다른 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성에 대한 확고한 성경적 입장이다.   성적지향에 대해 차금법은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등 감정적, 호의적, 성적으로 깊이 이끌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차금법의 취지와는 달리 레위기 18:22, 20:13에서 동성애를 윤리적인 악한 행위로 간주하여 명확히 금지하고 있다. 이것들은 정언명령으로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는 서술법으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모든 기독교인들이 준수해야 할 명령이다.   또 동법 제3조 가항에서 모집과 채용을 포함하는 고용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차금법이 법제화되면 기독교 학교나 신학교에서 교수나 교수지원자가 동성애자로 밝혀지게 될 때 채용을 거부하는 것이 불법이 된다. 그리고 기독교 학교나 신학교가 요구하는 신앙고백을 하지 않을 때에도 채용을 거부하면 불법이 된다. 이러한 경우 기독교 학교는 학생 구성에 있어 기독교 학교의 특수성이 희생될 수 있고, 신학교는 교회의 목회자 양성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독소조항으로 인해서 우리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심각한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대응을 촉구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22-05-11
  • 주일학교 교사양성에 힘쓰자
    주일학교는 한국교회 미래의 근간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주일학교가 무너진다는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으며, 또 많은 통계들은 주일학교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무너진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주일학교 교사를 양성하는데서 출발한다.   주일학교 교사는 먼저 학생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한다. 학생들의 관심과 고민에 함께 동참하는 것이다. 예수는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 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라며 친구라고 불렀다.   좋은 교사는 좋은 상담자이다. 세익스피어는 “13세부터 20세 사이의 시기가 없었으면 좋겠다. 아예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만큼 청소년 시기에 고민과 갈등이 많다는 증거이다. 교사는 상담자로서 학생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문제에 대하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주일학교교사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교회학교 교사는 학생들의 신앙성숙을 돕는 자다. 교사는 성경지식을 주입시키는 자가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자신이 먼저 배운 지식과 경험을 학생들이 신앙생활에 적용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의 바른 신앙생활에 적용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의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주변 환경, 학습 환경, 생활환경의 장애물들이 무엇인가를 보고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특별히 예배시간에 교사들이 먼저 진지한 모습으로 예배드리는 모범이 되도록 한다. 예배시간 엄수, 지각?결석 등을 하지 않고, 예배시간에 교사들 간의 잡담을 삼가야 한다. 이러한 모습으로 모범을 보일 때 주일학교에 미래가 있는 것이다. 스승의날, 스승의 주일을 보내면서 한국교회의 미래인 주일학교 활성화를 위해 좋은 교사의 야육에 모두가 힘을 다하자.
    • 오피니언
    • 사설
    2022-05-11

실시간 사설 기사

  • 미래세대 부흥 · 양육, 열매 맺자
    한국교회의 위기는 미래세대의 위기이다. 미국의 경우 온라인주일예배를 하면, 3분의 1의 교인만이 소속 교회 온라인예배를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나 교인들의 신앙 수준이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회도 여러 통계에 의하면 교세가 최근 10년째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조사에 의하면, 세 명 중 한 명만이 등록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고, 그 중 한 명은 다른 교회로 갔거나 여러 교회 온라인예배를 했으며, 나머지 한명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방치된 상태로 점점 믿음의 세계에서 멀어져 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2015년 국내 무종교 인구 비율은 56%로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 보다 높았고, 기독교가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최근 한국교회 명예가 실추돼 미래가 어둡다.   신학적으로 볼 때,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과 성경에 의한 특별은총으로 이뤄지는 것이라서 지도자들이 너무 일반은총 영역에 매몰되면 신성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이 더럽히게 될 우려가 있다.   또한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하심을 일부 극우 지도자들이 특수한 정견을 펼쳐 천박한 신으로 전락시킬 수가 있는 우려가 있다. 철학적으로 보편을 특수에 복무시키면 오류가 난다. 즉 특수는 보편에 복무해야 한다.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으로 나아올 때 왜곡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는 미래세대인 젊은 층이 외면하는 종교가 될 전망이다. 결국 서구처럼 기독교 이탈 현상이 벌어지는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   다음세대가 교회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이대로 가면 한국교회는 지금의 유럽교회보다 더욱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미래의 주역이 될 다음세대를 세워야 한다. 구체적으로 각 교단 내에 다음세대를 세우기 위한 전문연구기관을 설립해, 다음세대를 살리는 교재와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다음세대부흥운동본부’를 통해 잃어버린 다음세대를 회복시켜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 총회가 가장 중요한 정책을 헌의하고, 논의해 미래세대를 위한 정책을 수립할 때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11-24
  • ‘물질 추수’ 넘어 ‘영적 추수’기념 절기
    추수감사절이다. 이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역사에서 나온 것이다. 1620년 4월 5일에 16세기 영국의 종교개혁자인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은 남자 78명, 여자 24명, 도합 102명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유럽을 떠나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항해하다가 도중에 51명이 죽었고, 그들이 신대륙인 뉴잉글랜드 프리마우스에 정박하게 되었다. 원주민 인디언들과 사이좋게 지냈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원망 없이 청렴하게 하나님을 믿는 생활을 했다고 하여 청교도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정착한 다음 해에 토지를 개간하여 옥수수, 원두, 밀, 보리 등을 파종했고, 많은 수확을 거두어 11월에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다. 추수감사절은 각 나라의 형편에 따라 일정하지 않으나, 대개 11월 중에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단지 수확에 대한 감사 뿐이라면 신약으로 넘어 오지 못한 구약적 율법에 매인 절기의 성격이 짙어질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날 생명 경시풍조와 물질 만능주의 풍조에 찌들은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헌금 봉투를 잘 준비하는데 머물지 말고, 절기 이상의 절기가 돼야 한다.   구약성경은 물질 추수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역사적 상황에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절기로 지켜졌다. 구약성경에서는 유월절과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이라는 3대 절기를 제시하고 있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에 대한 감사와 영적 추수를 감사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은 육적이며 물질적인 추수를 넘어서서 영적 추수, 즉 교회가 처음 열매로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돼야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11-24
  • 미래세대 부흥 · 양육, 열매 맺자
    한국교회의 위기는 미래세대의 위기이다. 미국의 경우 온라인주일예배를 하면, 3분의 1의 교인만이 소속 교회 온라인예배를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나 교인들의 신앙 수준이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회도 여러 통계에 의하면 교세가 최근 10년째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조사에 의하면, 세 명 중 한 명만이 등록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고, 그 중 한 명은 다른 교회로 갔거나 여러 교회 온라인예배를 했으며, 나머지 한명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방치된 상태로 점점 믿음의 세계에서 멀어져 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2015년 국내 무종교 인구 비율은 56%로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 보다 높았고, 기독교가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최근 한국교회 명예가 실추돼 미래가 어둡다.   신학적으로 볼 때,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과 성경에 의한 특별은총으로 이뤄지는 것이라서 지도자들이 너무 일반은총 영역에 매몰되면 신성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이 더럽히게 될 우려가 있다.   또한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하심을 일부 극우 지도자들이 특수한 정견을 펼쳐 천박한 신으로 전락시킬 수가 있는 우려가 있다. 철학적으로 보편을 특수에 복무시키면 오류가 난다. 즉 특수는 보편에 복무해야 한다.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으로 나아올 때 왜곡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는 미래세대인 젊은 층이 외면하는 종교가 될 전망이다. 결국 서구처럼 기독교 이탈 현상이 벌어지는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   다음세대가 교회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이대로 가면 한국교회는 지금의 유럽교회보다 더욱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미래의 주역이 될 다음세대를 세워야 한다. 구체적으로 각 교단 내에 다음세대를 세우기 위한 전문연구기관을 설립해, 다음세대를 살리는 교재와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다음세대부흥운동본부’를 통해 잃어버린 다음세대를 회복시켜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 총회가 가장 중요한 정책을 헌의하고, 논의해 미래세대를 위한 정책을 수립할 때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11-19
  • ‘물질 추수’ 넘어 ‘영적 추수’기념 절기
    추수감사절이다. 이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역사에서 나온 것이다. 1620년 4월 5일에 16세기 영국의 종교개혁자인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은 남자 78명, 여자 24명, 도합 102명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유럽을 떠나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항해하다가 도중에 51명이 죽었고, 그들이 신대륙인 뉴잉글랜드 프리마우스에 정박하게 되었다. 원주민 인디언들과 사이좋게 지냈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원망 없이 청렴하게 하나님을 믿는 생활을 했다고 하여 청교도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정착한 다음 해에 토지를 개간하여 옥수수, 원두, 밀, 보리 등을 파종했고, 많은 수확을 거두어 11월에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다. 추수감사절은 각 나라의 형편에 따라 일정하지 않으나, 대개 11월 중에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단지 수확에 대한 감사 뿐이라면 신약으로 넘어 오지 못한 구약적 율법에 매인 절기의 성격이 짙어질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날 생명 경시풍조와 물질 만능주의 풍조에 찌들은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헌금 봉투를 잘 준비하는데 머물지 말고, 절기 이상의 절기가 돼야 한다.   구약성경은 물질 추수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역사적 상황에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절기로 지켜졌다. 구약성경에서는 유월절과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이라는 3대 절기를 제시하고 있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에 대한 감사와 영적 추수를 감사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은 육적이며 물질적인 추수를 넘어서서 영적 추수, 즉 교회가 처음 열매로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돼야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11-19
  • 다니엘기도회, 한국교회의 성회가 되도록 하자
    다니엘기도회는 1998년 12월 1일 서울 오륜교회(담임=김은호 목사)에서 시작, 2013년 38개의 교회와 함께한 것을 기점으로 한국교회와 연합하는 기도회로 발전했다. 이후 열정적인 예배, 온전한 치유와 변화가 있는 회복을 추구하며 교단과 교파를 초월한 한국교회의 일치와 연합의 성회로 자리를 잡았다. 2015년 1,076개 교회, 2017년 10,091개 교회, 2020년 작년에는 1만 3천여 교회, 40만 성도들이 참여했고, 올해는 1만 4천여 교회가 온라인으로 참여한다.   코로나 시대에 다니엘기도회 추최측은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온라인으로 기도회에 동참하며 기도의 제단을 쌓을 수 있도록 프르그램을 만들었다. 주최측이 상황에 맞춰 현장예배와 영상예배로 진행하도록 기도자료와 영상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매년 인쇄물로 배포하던 다니엘기도회 가이드북도 개인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도록 제작했다.   다니엘기도회는 한국교회가 연합해서 함께 기도한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 기도와 예배에 목마른 성도를 위해 많은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무엇보다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 함께 30일 동안 기도의 성회를 한다는 것은 한국교회의 연합과 갱신을 매우 필요한 일이다.   과거 한국교회는 여의도광장에서 100만의 교인들이 모여 기도회를 진행한 적도 있다. 이후 기도원이나 수양관에서 수천 명의 성도들이 모여 뜨겁게 기도했다. 이것이 한국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것에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가정이나 각 교회에서 동참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위기일수록 더 기도했던 한국교회의 영적인 전통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다니엘기도회는 한 교회의 주도적인 행사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지금 수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동참하는 연합기도회의 성격을 갖게 됐으므로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11-15
  • ‘위드 코로나시대’, 방역의 모범을 보이자
    이른바 ‘위드 코로나시대’로의 전환을 준비 중이다. 말 그대로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시대가 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높은 백신접종률로 인해 코로나와의 동거에 일정정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위드 코로나로 한국교회는 대면예배의 길로 다시 나가고 있다. 방역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백신접종자의 경우 인원제한 없이 예배에 나올 수 있다. 물론 식사는 여전히 금지된다. 성가대도 허용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교회는 어느 정도 코로나 이전의 상황을 점차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를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확진자는 늘고 있으며, 중증환자와 사망자도 나오고 있다. 자칫하면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할 수 있고, 이렇게되면 그동안 힘들게 다져놓은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따라서 위드 코로나 시대에 철저한 방역에 더 힘써야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드 코로나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신학과 교회의 모델을 준비하고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코로나 위기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코로나 세대’를 어떻게 신앙으로 양육하고 이들을 다음세대의 일꾼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여러 교단과 교회는 전부터 이러한 작업을 진행했다.    코로나 세대는 온라인 예배를 경험했다. 굳이 교회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예배를 했다. 소통은 SNS, 카톡으로 한다. 대화보다는 이러한 디지털 기기가 이들에게는 더 자유롭고 편하다. ‘오프라인’ 세대는 가고, ‘온라인 세대’가 오고 있다. 과연 이들을 어떻게 신앙으로 인도할 것인지 교회는 명운을 걸고 준비해야 한다.    방향은 나와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 속에서 소모임의 중요성이 증명됐다. 수만명, 수천명이 모이는 것보다 두세 사람이 모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효율적인지가 증명됐다. 이러한 소모임이 위드 코로나 시대의 키워드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소모임 중심’의 모델과 신학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코로나 세대에 적용해야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11-15
  • 한국교회 연합기관 다시 뭉친다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소강석·이철·장종현목사),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송태섭목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임시대표회장=김현성변호사)는 지난달 22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기관통합 준비위원회 모임을 가졌다. 이는 기관 통합 논의가 시작된 지 2개월여 만에 다시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날 한교총, 한교연, 한기총 등 3개 단체 대표들은 한국교회가 하나 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연합기관 통합에 힘을 모으겠다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김태영 한교총 기관통합준비위원장은 “과거에도 연합기관의 통합을 시도했다가 결국 결렬됐는데, 감염병으로 예배가 압박을 받는 이 시기가 되레 하나님이 주신 통합의 적기”라고 말했다.   또한 소강석 대표회장도 “한국교회가 그동안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 탓에 한국교회를 지키기 너무 힘들고 벅찼다.”면서 “위드코로나 시대를 맞아 진정한 예배 회복을 위해 한국교회가 하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 기관이 통합의 필요성과 시대적 요구에 대해 공감했다. 하지만, 통합을 위한 세부 요구조건에서는 여전히 견해차를 보였다.   반면에 한기총 김현성 변호사는 통합 기관 명칭을 한기총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 김변호사는 “연합기관 통합의 상징과 의미는 32년 전 한기총이 처음 만들어질 때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교연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다른 일부 교단이 가입된 한교총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한기총과의 고소·고발 건 등 내부 문제 해결과 정상화가 선결과제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또 교계 일각에서 통합을 위해선 한기총 내 이단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는 일각의 문제제기도 있다. 이에 대해 한기총은 통합을 먼저 추진한 뒤 이후에 재심의하면 된다는 주장을 편다. 이러한 난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연합기관이 뭉쳐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다.   최근 소강석 예장 합동 직전 총회장이 연합기관 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오는 12월 초에 열리는 한교총 총회를 전후해서 세 기관들의 기구통합 선언이 이어지게 될 전망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11-04
  • 감리회 ‘개혁의지’, 한국교회의 방향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이번 입법의회는 한국 감리교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장정개정위원회에서 수개월에 걸쳐 제안한 개혁안들이 논란은 있었지만 대부분 통과됐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감리회의 이번 결정이 한국교회 전체가 나아갈 개혁의 방향이라는 점이다.   이번 입법의회에서 결정된 방향은 ‘축소와 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본부조직을 ‘슬림화’했고, 일부 조직은 폐지했다. 내부의 반발도 있었지만 개혁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대의원들이 의견이 우세했다.   기존의 12개 연회를 5에서 6개의 연회로 광역화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렇게 통합되면 당연히 내부의 반발이 있다. 그럼에도 감리회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늘리고 확대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다보니 방대해지고 막대한 유지비용이 들어간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3개의 신대원을 하나로 통합하는 결정도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은 국내에서 가장 큰 교세를 자랑한다. 그래서 산하에 서너 개의 신학(대)교를 두고 있다. 이를 통해 소속 목회자를 배출하고 이를 통해 교세의 확장을 이뤘다. 그러나 지금은 위기에 직면했다. 인구감소는 직격탄이었다. 법적인 정원도 채우지 못하는 신학대가 속출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감리회는 과감한 통합의 길로 방향을 잡았다. 물론 내부의 반발은 예상한 일이다. 그럼에도 민주적인 토론과 투표를 통해서 법적으로 강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교회에 주는 분명한 메시지이다.   따라서 해결책은 본부 혹은 총회 중심의 사고에서 개 교회 중심의 사고로 변화돼야 한다. 개 교회가 있어야 연회도 있고 총회도 있는 것이다. 이번 감리회 입법의회는 단순한 이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11-04
  • 빈곤 퇴치에 앞장 서야 한다
    빈곤퇴치의 날을 맞아 한국교회는 가난과 빈곤의 퇴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난 14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이 빈곤퇴치를 위한 한국교회의 행동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의 굶주림은 성경에서 큰 주제이다. 무엇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굶주림과 가난에 대해 어떤 입장과 행동을 취해야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5천명의 사람들이 굶주렸을 때 예수님은 그 배고픔을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그렇게 봤다면 대중들에게 집에 가서 알아서 밥을 먹으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굶주림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받아 안고 한 아이가 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셨다. 비결은 감사와 나눔에 있었다. 예수님은 그 작은 것을 받고 감사한 후에 제자들에게 나누라고 했다. 그랬을 때 5천명이 함께 먹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교회의 이 사건에 주목해야한다.    빈곤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개인이 게으르고, 능력이 없어서 가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실천이다. 오늘날 빈곤은 개인의 차원을 떠나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현상, 즉 ‘워킹 푸어’(working poor)는 빈곤의 구조적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워킹 푸어의 기원은 불평등한 구조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 사회는 소수의 부자들과 다수의 가난한 자들로 나위는 심각한 양극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구조적이고 심각한 양극화는 인간을 더욱 비참한 존재로 만들 것이고 사회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한국교회는 빈곤퇴치를 위한 제도를 만드는 일에 시민사회와 더불어 함께 나서야 한다. 물론 법을 만들고, 제도를 개선하는 일은 정치권의 몫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당위성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교회의 몫이다.    무엇보다 한국교회는 빈곤퇴지를 위해 기부와 선행의 길로 나서야 한다. 이러한 자기비움이야 말로 추락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위상을 더욱 높여 새로운 부흥의 전기를 마련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21-10-19
  • 개혁은 과제가 아니라 생존이다
    종교개혁기념일을 맞는다. 역사적으로 보면 종교개혁은 단순히 하나의 종교적 사건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을 바꾼 거대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1517년 독일의 한 작은 성당문에 붙은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새로운 역사, 문명, 사상, 종교의 시작이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종교개혁의 정신과 유산 위에 서있다. 그래서 선교초기 한국교회는 망해가는 조선에 개혁과 변화를 이끌었다.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던 백정이 교회에서 장로가 됐고, 백정의 아들은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됐다. 학교 근처도 갈 수 없었던 소녀들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렇게 종교개혁의 후예 한국교회는 한국의 근대화와 민주와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제 한국교회는 개혁의 주체에서 개혁의 대상이 됐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물론 한 두 해의 문제는 아니다. 또 종교개혁을 맞을 때마다 개혁과 변화의 목소리는 높아진다.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개혁을 실천할 때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개혁은 과제가 아닌 생존이 됐다.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더 깊은 침체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방향은 언제나 정해져있다.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동안 한국교회는 지나친 성장주의와 물량주의에 빠져있던 것을 회개하고 반성해야 한다. 부흥하고 성장했지만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제는 건물보다는 한 영혼을, 성장보다는 나눔을, 권력보다는 섬김이라는 개혁의 본질로 나가야 한다. 감사하는 것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이러한 변화와 개혁에 나서자.
    • 오피니언
    • 사설
    2021-10-19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