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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제안에 힘쓰자
디가오는 6월 3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등 기독교단체들이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을 제시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의 경우는 2012년 치려진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부터 이러한 운동을 벌여왔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는 한국교회총연합과 함께 10대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에큐메니컬 성향의 단체에서도 기독교대선행동이라는 단체를 출범하면서 탄소중립 구현과 한반도 평화협정등을 제시한 바 있다. 정치인들에게 기독교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책무 중 하나이다. 기독교적인 정책을 정치인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이 나라에 기독교세계관을 반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은 기독교인뿐 아닌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다.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는 지난 2022년 대선에서 초저출산 극복정책으로 아동돌봄청을 신설해야한다고 했으며 이외에도 재난상황을 대비한 민관위기 관리시스탬 구축과 유사종교 피해방지를 위한 법률제정 등의 정책들이 있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일반시민들에게 큰 유익이 될 수 있는 정책들이다. 저출산 문제의 경우 국가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며, 재난상황의 극복또한 모든 시민에게 필요한 사실이다. 유사종교로 인해 피해를 보는 시민들을 구제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들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큰 유익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차별금지법의 제정과 같은 악법반대 운동을 활발히 펼쳐왔다. 이제는 악법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좋은 법안과 정책등을 제시할 때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는 그러한 법안과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 이러한 정책제안의 시간이 이번 선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편화가 되어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해 모든 시민이 유익이 될 수 있는 정책과 법안을 제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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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믿음’의 사역에 매진하자.
한국교회는 5월 5일 어린이날과 함께 어린이 주일을 지키고 있다. 미국에서는 1880년부터 예배당을 꽃으로 장식하고 '샤론의 꽃, 어린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 예배를 드린 데에서 유래하여 '꽃주일'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방정환, 마해송 등의 어린이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선각자들이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해 어린이 인격보호와 바른 성장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과 각성을 촉구하는 등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면서 1927년부터는 5월 첫째 주일로, 그리고 1946년에는 오늘날과 같은 5월 5일로 변경되었고, 1957년에는 어린이 헌장이 제정, 공포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교회들도 초창기에는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켜오다가 1956년부터 5월 첫째 주를 어린이 주일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린이 주일이라는 절기도 성경에는 없지만 어린이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주일로 지켜지고 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에 대하여 귀하게 여기시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비유로 말씀하신다. 그래서 성경은 어린아이에 대한 특별한 가르침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니라(잠22:6)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회초리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회초리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잠23:13-14). 그리고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에게 안식을 주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잠29:17). 이것은 교회는 물론 부모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다. 따라서 교회는 어린이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방법으로 디모데의 믿음과 유산을 가르치는 사역이 되도록 하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에 속에 있더니 네 속에 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 사도 바울은 육신적으로 디모데가 아들이 아니지만, 디모데가 신앙 성장의 합당한 인격을 갖추는데 바울이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딤전1:2)이라고 부르고 있다.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믿음이 전수된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올바른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디모데의 가정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가정은 신앙 교육의 장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유지 발전시키는 일차 기관이며 교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자녀를 하나님의 진리로 양육하는 근본적인 책임은 가정에 있으며 교회 교육과 학교 또는 세속 사회의 교육 간에 생기는 갈등을 신앙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참된 기반이 된다. 뿐만 아니라 자녀를 신앙으로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복음 전파 사역과 유업을 물려주는 일과도 깊은 연관을 갖는다(신6:4-9). 현재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가 참믿음을 가진 차세대에 대한 교육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어린이 주일을 한 번 지키고끝내는 것이 아니라 평생교육의 출발로서 교회학교의 전문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행함으로써 ‘믿음’의 사역이 부흥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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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기혼 연대하는 공동체를 세우자
작년 기준, 만 19~34세 청년 5명 중 4명이 미혼으로, 미혼율이 80%를 넘었다는 통계는 한국 사회의 결혼·가정에 대한 인식 변화와 현실적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독교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23년 조사에서 전체 기독교인 중 미혼 비율은 40.5%에 달했다. 교회 내 싱글 신자들의 수와 연령이 계속 증가하는 것은 이제 뚜렷한 흐름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경제적 부담, 주거난,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결혼·출산에 대한 가치관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결혼이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전통적 가정 중심의 사역과 인식에서 벗어나, 미혼 신자들을 적극적으로 품고 새로운 공동체의 길을 모색해야 함을 시사한다. 교회는 미혼을 ‘문제’로 여기거나, 결혼만이 신앙적 성숙의 완성이라는 시각을 지양해야 한다. 오히려 사도 바울이 강조했듯, 결혼과 미혼 모두 각자의 소명과 가치를 지닌 삶의 방식임을 인정해야 한다. 미혼 신자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은사와 삶을 온전히 나누며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미혼 성도들이 주체적으로 신앙과 삶을 나눌 수 있는 소그룹, 멘토링, 사역의 기회를 확대하고, 결혼과 출산만을 강조하는 지원정책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는 포용적 사역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는 ‘올바른 가정’의 기준을 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로 한정하지 않고, 신앙 안에서 서로를 돌보고 연합하는 공동체로 확장해야 한다. 부부의 수를 늘리는 것보다, 미혼·기혼 모두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더 본질적인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교회가 미혼의 삶 역시 신앙 안에서 의미 있고,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선포하며, 다양한 가족과 1인 가구를 포용하는 공동체로 나아갈 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진정한 연합과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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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후보를 뽑는 선거가 되자.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21대 대통령 보궐선거가 6월 3일로 정해졌다. 선거에 관심을 갖고 투표에 적극 참여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무이다. 나의 투표권 행사를 위해 우리 현실의 정치, 사회, 경제가 성경의 원리에 맞는지를 평소에도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이 나랏일에 무관심할 수는 없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마6:10)기도하며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투표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우리의 투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력을 바르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선거는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딤전2:2)을 위한 민주주의의 척도다. 올바른 선거는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킴은 물론 경제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선거가정치적 제도지만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역사는 선거가 바꾼다. 선거의 주인공은 유권자다. 깨어 있는 유권자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국가의 부(富)를 키운다. 정의, 법치, 자유, 배려 등 사회의 미덕이 자라나는 토양도 결국 유권자가 가꾼다. 단순히 당선을 위해 외쳐대는 구호, 국가보다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책, 국가의 지속적 번영을 해치는 현혹적 수사 등을 구별하는 혜안을 갖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유권자가 자신들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대중의 어리석음’이라는 함정에 빠진다. 다수결이 민주주의를 이끄는 기본원리지만 다수결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수의 많음보다는 다양함 때문이다. 현혹적 구호에 매몰된 다수는 자칫 국가의 백년대계를 흔든다. 또한 공명한 선거는 또 하나의 과제다. 자유 보통 비밀 직접이라는 선거의 4대 원칙이 지켜지는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은 정치권의 몫이지만 우리는 6·3대선을 대한민국을 정치·경제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는 대한민국의 얼굴이기 때문에 기독인들의 바른 자세가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기도하자.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다(롬13:1). 하나님은 국가와 가정, 그리고 교회를 세우셨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태어날 때 한 가정에 속하게 되며 동시에 한 국가에 속한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었던 시대에, 사도 바울은 로마에 굴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세상 권세도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하지만 육신이 사는 동안에는 국가의 법과 제도와 관원들을 거스리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우리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 한다. 따라서 대선 후보자들이 하나님의 통치 원리와 방법에 얼마나 합당한가를 살펴봐야 하겠다. 만약 자신의 이익이나,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후보를 선택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오직 올바른 투표밖에 없다. 이념과 우상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책임질 후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판단하여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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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 세상에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자.
‘2025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가 4월 20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에서 개최됐다. 특별히 올해는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오전 인천 제물포항에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가 공식 입항해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가 시작된 지 140주년을 맞는 해다. 이번 부활절 연합예배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담아, 한국 71개 교단과 전국 17개 지역 기독교연합회도 동일한 주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 정신을 되세겼다. 부활절(復活節)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부터 3일째 되는 주의 첫날인 일요일에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최대 축일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느 때부터 인가 절기로서 관습화되고 형식화 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교회사에서 부활절이 언제냐는 문제를 두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간의 논쟁이 계속되다가 서기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춘분이 지난 뒤 최초의 보름달이 지난 첫 주일을 부활절로 지키기로 결정하여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으나 부활의 의미가 절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짜는 성경에 기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키는 성탄절인12월 25일은 예수님 탄생하신 날과는 상관없는 날이다. 성경에 그런 기록이 없다. 그러나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달력으로 니산월 정월 14일, 유월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사흘 후에 살아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달력 니산월 14일의 3일 후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양력으로는 3월 하순에서 4월 초에 항상 연결이 된다. 그래서 이때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때가 확실하다. 바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고 그러는데 그 의미는 ‘확 튀어 오른다’ 즉 봄에는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SPRING'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그 부활을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이만큼 확실한 사실이기에 이를 증거 해야 한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리스도인이 믿는 모든 것이 허사(虛事)가 된다. 우리의 구원도 헛것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은 역대의 모든 사람들의 삶도 헛것이 된다(고전15:17-19).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어야 우리의 믿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구약에 예수님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있었고, 그분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더욱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사도들의 행적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이 잡힐 당시 뿔뿔이 도망치던 그 비겁자들이 부활을 직접 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부활의 믿음을 일상화해야 한다. 우리는부활절을 맞아 절기로서 외형적인 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삶의 중심이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그 안에서 ‘하나 됨’으로 많은 영혼들이 부활을 체험하여 부활의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세상에 증거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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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돌봄을 위한 사역에 매진하자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심각한 상황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하 상황에서 기독교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란 성경말씀을 기억하고 출산운동에 앞장서야 한다. 성도들에게 출산을 하는 것을 권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사람들이 출산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여건을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아동돌봄이다. 이러한 아동돌봄에 교회가 앞장을 서야 한다.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사역에 동참을 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의 학교 후부터 부모들의 퇴근까지의 돌봄공백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자식들을 학원으로 보내는 부모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2021년에 발표된 교회의 돌봄사역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둘째 출산 계획이 없는 워킹맘 중 41%가 돌봄 문제가 해결된다면 둘째 출산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교회가 아동돌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큰 이유이다.동일한 조사에서 교회 운영의 돌봄기관 이용 의향률을 보면 기독교인 어머니는 84%가 의향률을 밝혔다. 그리고 비기독교인 어머니도 29%가 이용을 원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교회가 이러한 사역을 해야할 필요성이 보인다. 꼭 출산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교회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섬길 필요가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야 한다. 또 많은 성도와 시민들이 이러한 부분에 필요를 느낀다. 교회가 이러한 필요를 체움으로써 사랑을 흘려내보낼 필요가 절실하다. 위 조사에서 돌봄 사역을 하지 않는 목회자 중 앞으로 돌봄 사역을 할 의향이 있는 목회자는 74%에 달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러한 돌봄사역에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돌봄사역은 작은교회부터 큰교회까지 모든 교회가 할 수 있는 사역이다. 한국교회가 돌봄사역을 하기 원하는 교회들이 사역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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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제안에 힘쓰자
- 디가오는 6월 3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등 기독교단체들이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을 제시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의 경우는 2012년 치려진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부터 이러한 운동을 벌여왔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는 한국교회총연합과 함께 10대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에큐메니컬 성향의 단체에서도 기독교대선행동이라는 단체를 출범하면서 탄소중립 구현과 한반도 평화협정등을 제시한 바 있다. 정치인들에게 기독교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책무 중 하나이다. 기독교적인 정책을 정치인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이 나라에 기독교세계관을 반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은 기독교인뿐 아닌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다. 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는 지난 2022년 대선에서 초저출산 극복정책으로 아동돌봄청을 신설해야한다고 했으며 이외에도 재난상황을 대비한 민관위기 관리시스탬 구축과 유사종교 피해방지를 위한 법률제정 등의 정책들이 있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일반시민들에게 큰 유익이 될 수 있는 정책들이다. 저출산 문제의 경우 국가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며, 재난상황의 극복또한 모든 시민에게 필요한 사실이다. 유사종교로 인해 피해를 보는 시민들을 구제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들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큰 유익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차별금지법의 제정과 같은 악법반대 운동을 활발히 펼쳐왔다. 이제는 악법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좋은 법안과 정책등을 제시할 때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는 그러한 법안과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 이러한 정책제안의 시간이 이번 선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편화가 되어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해 모든 시민이 유익이 될 수 있는 정책과 법안을 제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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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정책제안에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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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믿음’의 사역에 매진하자.
- 한국교회는 5월 5일 어린이날과 함께 어린이 주일을 지키고 있다. 미국에서는 1880년부터 예배당을 꽃으로 장식하고 '샤론의 꽃, 어린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 예배를 드린 데에서 유래하여 '꽃주일'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방정환, 마해송 등의 어린이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선각자들이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해 어린이 인격보호와 바른 성장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과 각성을 촉구하는 등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면서 1927년부터는 5월 첫째 주일로, 그리고 1946년에는 오늘날과 같은 5월 5일로 변경되었고, 1957년에는 어린이 헌장이 제정, 공포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교회들도 초창기에는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켜오다가 1956년부터 5월 첫째 주를 어린이 주일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린이 주일이라는 절기도 성경에는 없지만 어린이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주일로 지켜지고 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에 대하여 귀하게 여기시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비유로 말씀하신다. 그래서 성경은 어린아이에 대한 특별한 가르침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니라(잠22:6)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회초리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회초리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잠23:13-14). 그리고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에게 안식을 주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잠29:17). 이것은 교회는 물론 부모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다. 따라서 교회는 어린이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방법으로 디모데의 믿음과 유산을 가르치는 사역이 되도록 하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에 속에 있더니 네 속에 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 사도 바울은 육신적으로 디모데가 아들이 아니지만, 디모데가 신앙 성장의 합당한 인격을 갖추는데 바울이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딤전1:2)이라고 부르고 있다.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믿음이 전수된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올바른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디모데의 가정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가정은 신앙 교육의 장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유지 발전시키는 일차 기관이며 교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자녀를 하나님의 진리로 양육하는 근본적인 책임은 가정에 있으며 교회 교육과 학교 또는 세속 사회의 교육 간에 생기는 갈등을 신앙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참된 기반이 된다. 뿐만 아니라 자녀를 신앙으로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복음 전파 사역과 유업을 물려주는 일과도 깊은 연관을 갖는다(신6:4-9). 현재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가 참믿음을 가진 차세대에 대한 교육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어린이 주일을 한 번 지키고끝내는 것이 아니라 평생교육의 출발로서 교회학교의 전문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행함으로써 ‘믿음’의 사역이 부흥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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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믿음’의 사역에 매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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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기혼 연대하는 공동체를 세우자
- 작년 기준, 만 19~34세 청년 5명 중 4명이 미혼으로, 미혼율이 80%를 넘었다는 통계는 한국 사회의 결혼·가정에 대한 인식 변화와 현실적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독교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23년 조사에서 전체 기독교인 중 미혼 비율은 40.5%에 달했다. 교회 내 싱글 신자들의 수와 연령이 계속 증가하는 것은 이제 뚜렷한 흐름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경제적 부담, 주거난,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결혼·출산에 대한 가치관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결혼이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전통적 가정 중심의 사역과 인식에서 벗어나, 미혼 신자들을 적극적으로 품고 새로운 공동체의 길을 모색해야 함을 시사한다. 교회는 미혼을 ‘문제’로 여기거나, 결혼만이 신앙적 성숙의 완성이라는 시각을 지양해야 한다. 오히려 사도 바울이 강조했듯, 결혼과 미혼 모두 각자의 소명과 가치를 지닌 삶의 방식임을 인정해야 한다. 미혼 신자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은사와 삶을 온전히 나누며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미혼 성도들이 주체적으로 신앙과 삶을 나눌 수 있는 소그룹, 멘토링, 사역의 기회를 확대하고, 결혼과 출산만을 강조하는 지원정책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는 포용적 사역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는 ‘올바른 가정’의 기준을 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로 한정하지 않고, 신앙 안에서 서로를 돌보고 연합하는 공동체로 확장해야 한다. 부부의 수를 늘리는 것보다, 미혼·기혼 모두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더 본질적인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교회가 미혼의 삶 역시 신앙 안에서 의미 있고,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선포하며, 다양한 가족과 1인 가구를 포용하는 공동체로 나아갈 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진정한 연합과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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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후보를 뽑는 선거가 되자.
-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21대 대통령 보궐선거가 6월 3일로 정해졌다. 선거에 관심을 갖고 투표에 적극 참여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무이다. 나의 투표권 행사를 위해 우리 현실의 정치, 사회, 경제가 성경의 원리에 맞는지를 평소에도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이 나랏일에 무관심할 수는 없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마6:10)기도하며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투표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우리의 투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력을 바르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선거는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딤전2:2)을 위한 민주주의의 척도다. 올바른 선거는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킴은 물론 경제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선거가정치적 제도지만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역사는 선거가 바꾼다. 선거의 주인공은 유권자다. 깨어 있는 유권자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국가의 부(富)를 키운다. 정의, 법치, 자유, 배려 등 사회의 미덕이 자라나는 토양도 결국 유권자가 가꾼다. 단순히 당선을 위해 외쳐대는 구호, 국가보다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책, 국가의 지속적 번영을 해치는 현혹적 수사 등을 구별하는 혜안을 갖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유권자가 자신들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대중의 어리석음’이라는 함정에 빠진다. 다수결이 민주주의를 이끄는 기본원리지만 다수결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수의 많음보다는 다양함 때문이다. 현혹적 구호에 매몰된 다수는 자칫 국가의 백년대계를 흔든다. 또한 공명한 선거는 또 하나의 과제다. 자유 보통 비밀 직접이라는 선거의 4대 원칙이 지켜지는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은 정치권의 몫이지만 우리는 6·3대선을 대한민국을 정치·경제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는 대한민국의 얼굴이기 때문에 기독인들의 바른 자세가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기도하자.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다(롬13:1). 하나님은 국가와 가정, 그리고 교회를 세우셨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태어날 때 한 가정에 속하게 되며 동시에 한 국가에 속한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었던 시대에, 사도 바울은 로마에 굴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세상 권세도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하지만 육신이 사는 동안에는 국가의 법과 제도와 관원들을 거스리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우리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 한다. 따라서 대선 후보자들이 하나님의 통치 원리와 방법에 얼마나 합당한가를 살펴봐야 하겠다. 만약 자신의 이익이나,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후보를 선택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오직 올바른 투표밖에 없다. 이념과 우상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책임질 후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판단하여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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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후보를 뽑는 선거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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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 세상에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자.
- ‘2025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가 4월 20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에서 개최됐다. 특별히 올해는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오전 인천 제물포항에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가 공식 입항해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가 시작된 지 140주년을 맞는 해다. 이번 부활절 연합예배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담아, 한국 71개 교단과 전국 17개 지역 기독교연합회도 동일한 주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 정신을 되세겼다. 부활절(復活節)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부터 3일째 되는 주의 첫날인 일요일에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최대 축일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느 때부터 인가 절기로서 관습화되고 형식화 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교회사에서 부활절이 언제냐는 문제를 두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간의 논쟁이 계속되다가 서기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춘분이 지난 뒤 최초의 보름달이 지난 첫 주일을 부활절로 지키기로 결정하여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으나 부활의 의미가 절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짜는 성경에 기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키는 성탄절인12월 25일은 예수님 탄생하신 날과는 상관없는 날이다. 성경에 그런 기록이 없다. 그러나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달력으로 니산월 정월 14일, 유월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사흘 후에 살아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달력 니산월 14일의 3일 후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양력으로는 3월 하순에서 4월 초에 항상 연결이 된다. 그래서 이때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때가 확실하다. 바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고 그러는데 그 의미는 ‘확 튀어 오른다’ 즉 봄에는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SPRING'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그 부활을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이만큼 확실한 사실이기에 이를 증거 해야 한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리스도인이 믿는 모든 것이 허사(虛事)가 된다. 우리의 구원도 헛것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은 역대의 모든 사람들의 삶도 헛것이 된다(고전15:17-19).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어야 우리의 믿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구약에 예수님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있었고, 그분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더욱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사도들의 행적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이 잡힐 당시 뿔뿔이 도망치던 그 비겁자들이 부활을 직접 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부활의 믿음을 일상화해야 한다. 우리는부활절을 맞아 절기로서 외형적인 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삶의 중심이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그 안에서 ‘하나 됨’으로 많은 영혼들이 부활을 체험하여 부활의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세상에 증거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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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 세상에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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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돌봄을 위한 사역에 매진하자
-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심각한 상황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하 상황에서 기독교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란 성경말씀을 기억하고 출산운동에 앞장서야 한다. 성도들에게 출산을 하는 것을 권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사람들이 출산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여건을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아동돌봄이다. 이러한 아동돌봄에 교회가 앞장을 서야 한다.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사역에 동참을 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의 학교 후부터 부모들의 퇴근까지의 돌봄공백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자식들을 학원으로 보내는 부모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2021년에 발표된 교회의 돌봄사역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둘째 출산 계획이 없는 워킹맘 중 41%가 돌봄 문제가 해결된다면 둘째 출산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교회가 아동돌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큰 이유이다.동일한 조사에서 교회 운영의 돌봄기관 이용 의향률을 보면 기독교인 어머니는 84%가 의향률을 밝혔다. 그리고 비기독교인 어머니도 29%가 이용을 원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교회가 이러한 사역을 해야할 필요성이 보인다. 꼭 출산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교회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섬길 필요가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야 한다. 또 많은 성도와 시민들이 이러한 부분에 필요를 느낀다. 교회가 이러한 필요를 체움으로써 사랑을 흘려내보낼 필요가 절실하다. 위 조사에서 돌봄 사역을 하지 않는 목회자 중 앞으로 돌봄 사역을 할 의향이 있는 목회자는 74%에 달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러한 돌봄사역에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돌봄사역은 작은교회부터 큰교회까지 모든 교회가 할 수 있는 사역이다. 한국교회가 돌봄사역을 하기 원하는 교회들이 사역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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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해외선교사의 현실과 교회지원
- 해외선교사의 현실과 교회지원 2010년을 전후로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철수하는 상황이 많아졌다. 특별히 중국 공산당의 박해로 인해 철수하는 선교사들이 많았고, 인도나 터키 등 자신들의 종교가 분명한 나라들에서 선교사들을 추방하는 일이 많았다. 그 국가들은 주로 비자를 연장 해주지 않던가, 정부 정책에 반하는 일들을 했다는 이유를 근거로 진행한 일종의 박해였다. 이런 일들이 최근 한국인 선교사의 수가 줄어든 원인 중에 하나가 됨은 분명하다. 또 그런 박해는 예상된 일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인 선교사 감소의 원인 중, 큰 이유는 한국교회의 급격한 성장 저하라는 것은 자명하다. 선교사들의 사역과 생활은 교회의 지원과 성도들의 후원으로 유지된다. 이러한 한국적 선교시스템에서, 교세의 감소로 지원이 약해지고 또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개인성도 감소로 개인 후원금이 줄어들고 있다. 이 현실적인 문제들과 싸우는 현장의 선교사들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우리의 선교는 그 어떤 것도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한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1:8)란 말씀, 또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마28:19)라는 말씀에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떻게든 세상 끝까지 전파해 한 영혼이라도 구하기를 애써 왔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현재 교회의 경제상황과 인적 상황에 기반하지 않는다. 오직 독생자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셔서 세상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큰 언약의 사랑과 그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근거한다. 교회는 먼저 우리의 것을 떼어 놓기 전에, 내 쓸 것을 것을 줄이고 양보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고 헌신해야 한다. 가난한 이웃과 열방에 가서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세상 경제의 논리가 아닌, 하늘 경제의 풍성함과 기적을 전해 주어야 한다. 실제로 많은 교회들이 이렇게 선교하고 있다. 이것이 참된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세상을 이기는 힘이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예수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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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해외선교사의 현실과 교회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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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전폐수 방류, 창조세계에 대한 도전 / 노회·연회 활성화로 부흥의 길을 걷자
- 원전폐수 방류, 창조세계에 대한 도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지 10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고장 난 원전 속에서 폐수의 오염도가 더 심각해졌다는 것은 굳이 전문가나 과학자가 아니어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일본정부는 국제사회의 우려와 주변국의 반대에도 10년 동안 오염된 폐수를 바다에 방출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한일정상회담을 둘러싸고 원전 오염수 배출이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현 대통령이 오염수 배출에 대한 뚜렷한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아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오염수 배출을 반대하면 정부를 반대하는 것이고, 정부를 반대하는 것은 ‘좌파’라는 기묘한 정치논리가 팽배해지고 있다. 그러나 오염수 배출은 정치의 문제도, 과학의 문제도 아닌 먼저 환경의 문제이다. 인간의 실수로 사고가 났고, 그 사고에서 치명적인 오염수가 발생했는데, 이를 바다에 배출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하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반대하는 것은 신앙의 요구이다. 우리는 예배 때 사도신경에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고 고백한다. 이것이 창조신앙이다. 우리가 보는 이 세계는 우연히 원자와 분자가 만나 이루어진 세계가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계회 속에서 지으시고 운행하는 세계이다. 그래서 자연은 창조주의 솜씨와 위대함을 증언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음을 믿는다. 인간은 청지기로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보존하고 가꿔야할 책임과 의무를 창조주에게 부여받았다. 그래서 기독교신앙은 탐욕과 이기주의로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 또 인간의 욕심으로 창조세계를 오염시키는 것에도 반대한다. 이것은 정치가 아닌 신앙의 요구이다. 정부가 반대하지 않으니 오염수 배출을 반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신앙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말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를 보존하고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사명이다. 노회·연회 활성화로 부흥의 길을 걷자 한국교회 대부분의 봄철 노회와 연회가 마무리 되었다. 장로교단들의 노회는 가을 총회를 준비하는 총회임원 및 상비부장 등에 대한 추천이 있었고, 감리교 연회들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세계교회협의회(WCC) 탈퇴 문제가 뜨겁게 논의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은 모든 임원선거에서 경선이 벌어지는 뜨거운 가을을 예고했고,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은 단일후보가 목사부총회장 예비 후보에 등록하면서 모든 임원을 총회장이 주도적으로 조각하는 교단선거 특성 상 차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총회장소가 명성교회로 정해질 것이 확실함에 따라 교단 내부의 비판과 반발도 예상된다. 예장 통합측과 예장 합동측이 각기 선거 제도에 따라 다르지만, 임원선거가 지나치게 과열되거나 지나치게 무관심한 것은 한국교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향후 절제와 정도를 걸으며 교단의 선거가 진행돼야할 것이다. 특히 감리교 일부 연회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세계교회협의회(WCC) 탈퇴를 결정한 것은 한국교회에 큰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 결정이 현실화한다면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은 커다란 혼란에 휩싸일 것이며, 연합과 일치라는 대의 자체가 손상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일을 해결해 가는 데서 특별한 자제와 깊은 성찰 속에 신중히 진행할 것을 요청한다. 올 봄 한국교회에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코로나 팬데믹의 상처를 딛고 회복과 부흥의 길을 여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모든 교단과 교회가 이 일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노회와 연회 가운데 이런 논의가 이루어진 곳이 그다지 없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정치의 복원도 중요하지만 교회의 회복을 위한 자기 성찰의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쉽다. 한국교회의 회복과 부흥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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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전폐수 방류, 창조세계에 대한 도전 / 노회·연회 활성화로 부흥의 길을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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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축제’, 반성경적이고 비윤리적이다
- 올해도 이른바 ‘퀴어 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이를 두고 한국교회는 한목소리로 우려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우리는 동성애, 근친상간, 소아성애 등을 옹호하는 퀴어신학을 반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퀴어신학이 지지하는 낯설고 이상한 동성애는 창조섭리인 양성질서에 반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창 2:24) 결국, 동성애는 성경의 주제가 아니고 부차적인 것으로 하나님이 금기하는 행위일 뿐이다. 이런 이유로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게 신학의 보편적 주제가 될 수는 없다. 퀴어신학의 주제는 동성애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이 가장 크다. 동성애가 신학의 핵심이 돼야 하고 동성애에 대한 모독과 억압은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신학의 주제는 창조자 하나님과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 보혜사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지향해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는 인격적 하나님을 의미한다.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과 인류 보편의 성 윤리와 맞선다. 비도덕적이고 괴기한 성적 관행이다. 남성 동성애의 경우 배설기관과 생식기관의 비정상적 접촉이 반복된다. 창조질서에 어긋난다.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의학적 질서와도 맞지 않는다. 동성애는 결국 괴기한 행위일 뿐이다. 결혼과 가정은 동성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라는 이성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성 결혼과 양성으로 이루어지는 가정에서 자녀들이 생산되며 사회와 국가와 인류는 존속될 수 있다. 이성간의 사랑과 이성간의 결혼, 즉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지는 양성결혼은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주신 창조의 복이요 인류 생존의 조건이요 기반이다. 따라서 동성애 반대는 이 시대 교회의 중요한 과제이다. 한국 교회는 바른 성경적 관점에서 동성애에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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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축제’, 반성경적이고 비윤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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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이 되는 기독교가정이 되자
-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전통적으로 가정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관계로 얻은 자녀들로 구성된 혈연공동체인 동시에 같은 공간에서 의식주를 함께 나누는 생활공동체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부모와 자녀들로 구성되는 이런 전통적인 가정에 대한 이해와 가정의 형태는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독신과 혼전동거의 증가와 더불어 결혼율의 감소, 동성애와 성전환 그리고 동성결혼 등 세태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가정에 대한 이해와 형태들이 나타남으로 전통적 가정관과 가정형태가 도전과 위기를 만나고 있다. 먼저 결혼과 가정은 하나님이 창조질서로 제정하신 천부적 제도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둘이 하나가 되는 인간의 결혼제도는 이러한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생명의 연합과 사랑의 사귐을 이루는 언약관계를 가르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13:4).”고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에게 결혼은 창조의 질서를 넘어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구속받은 교회 사이에 맺어진 새 언약의 관계로 하나님의 영적 생명의 연합을 나타내는 신비로 이해된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복종함으로 영적인 신비를 드러내야 한다. 온전한 부부간의 사랑과 연합을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와 구속에서 나타나는 결혼과 관련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이러한 결혼언약의 영적신비를 기억함으로 반드시 영적 생명을 함께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 곧 같은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과 결혼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이혼과 재혼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해야 한다. 이렇게 세상에 모범이 되는 기독교 가정을 이뤄가는데 온 힘을 기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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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이 되는 기독교가정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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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를 우려한다
- 지난 2020년 6월 29일 자로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그 안에 전통적인 기독교윤리와 배치는 되는 조항이 있어 우리는 심각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동법 2조 1항에서 성별을 남성, 여성, 그리고 분류할 수 없는 성을 말한다. 이는 성을 인식, 표현, 인지를 통해서 결정되는 것으로, 이 의미는 생물학적 인체구조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주관적인 인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이는 남성과 여성 외에 다른 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성에 대한 확고한 성경적 입장이다. 성적지향에 대해 차금법은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등 감정적, 호의적, 성적으로 깊이 이끌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차금법의 취지와는 달리 레위기 18:22, 20:13에서 동성애를 윤리적인 악한 행위로 간주하여 명확히 금지하고 있다. 이것들은 정언명령으로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는 서술법으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모든 기독교인들이 준수해야 할 명령이다. 또 동법 제3조 가항에서 모집과 채용을 포함하는 고용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차금법이 법제화되면 기독교 학교나 신학교에서 교수나 교수지원자가 동성애자로 밝혀지게 될 때 채용을 거부하는 것이 불법이 된다. 그리고 기독교 학교나 신학교가 요구하는 신앙고백을 하지 않을 때에도 채용을 거부하면 불법이 된다. 이러한 경우 기독교 학교는 학생 구성에 있어 기독교 학교의 특수성이 희생될 수 있고, 신학교는 교회의 목회자 양성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독소조항으로 인해서 우리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심각한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대응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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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를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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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 교사양성에 힘쓰자
- 주일학교는 한국교회 미래의 근간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주일학교가 무너진다는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으며, 또 많은 통계들은 주일학교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무너진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주일학교 교사를 양성하는데서 출발한다. 주일학교 교사는 먼저 학생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한다. 학생들의 관심과 고민에 함께 동참하는 것이다. 예수는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 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라며 친구라고 불렀다. 좋은 교사는 좋은 상담자이다. 세익스피어는 “13세부터 20세 사이의 시기가 없었으면 좋겠다. 아예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만큼 청소년 시기에 고민과 갈등이 많다는 증거이다. 교사는 상담자로서 학생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문제에 대하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주일학교교사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교회학교 교사는 학생들의 신앙성숙을 돕는 자다. 교사는 성경지식을 주입시키는 자가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자신이 먼저 배운 지식과 경험을 학생들이 신앙생활에 적용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의 바른 신앙생활에 적용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의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주변 환경, 학습 환경, 생활환경의 장애물들이 무엇인가를 보고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특별히 예배시간에 교사들이 먼저 진지한 모습으로 예배드리는 모범이 되도록 한다. 예배시간 엄수, 지각?결석 등을 하지 않고, 예배시간에 교사들 간의 잡담을 삼가야 한다. 이러한 모습으로 모범을 보일 때 주일학교에 미래가 있는 것이다. 스승의날, 스승의 주일을 보내면서 한국교회의 미래인 주일학교 활성화를 위해 좋은 교사의 야육에 모두가 힘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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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 교사양성에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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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군대 동성애 무죄 판결을 우려한다
-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최근 군 형법상 추행혐의로 기소된 중위 A씨와 상사 B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와 B씨는 영외에 있는 독신자 숙소에서 성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번 판결은 남성 군인 간의 성행위를 유죄로 판단했던 기존 판례를 깼을 뿐 아니라 군대 내 동성애 합법화로 확대 해석 될 수도 있는 사건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군사법원 1·2심은 이 두 사람을 각각 유죄로 선고했다.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군형법 92조 6항을 위반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법원이 이를 완전히 뒤집었다. 대법관 13명 가운데 8명이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의해 이뤄진 점을 들어 무죄 의견을 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우려스런 점은 군내 내 동성 간의 성행위를 금지한 군 형법에 ‘자기결정권’이라는 엉뚱한 잣대를 꺼낸 데 있다. 군대에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려면 현재 병역법은 원하는 사람만 군대에 가는 것으로 싹 다 뜯어 고쳐야 한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군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이번 판결이 그동안의 판례를 뒤집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은 이와 유사한 사건에 대해 2008년, 2012년에 같은 법률 조항을 인정해 처벌해 왔고 헌법재판소도 2002년, 2011년, 2016년 세 차례나 합헌임을 밝혀왔다. 이런 현실에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분명 국민 눈높이와 동 떨어져 있다. 군내 내 왜곡된 성 문제에 경종을 울려야 할 대법원이 도리어 질서와 규율을 허무는 판결을 내렸다는 점에서 판결 자체를 신뢰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성경적 관점에서의 바른 기독교윤리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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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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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군대 동성애 무죄 판결을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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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공경은 기독인의 근원이다
-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버이날은 1956년 5월 8일 어머니날에서 시작되어 1973년 어비이날로 변경하여 지정된 날이다. 이날에는 각 가정에서 자녀들이 부모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감사의 뜻을 정하는 날이다. 전국의 시·군·구에서는 효자·효부를 선발하여 상금 수여 등 여러 행사가 진행되면서 이날을 전후하여 ‘경로주간’을 설정하고 어른 공경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는 우리 사회에서 효를 찾기란 참으로 어렵다. 특히 코로나 시대를 맞아 더욱 그렇다. 언론에서 수시로 접하는 불미스런 소식에는 자식이 부모를 핍박하고 심지어 살해까지 하며,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고 살해하는 끔직한 사건들은 이 시대가 사랑이 식어가는 때라는 표징이다. 이런 세상에서 기독인들이 먼저 사랑과 효를 실천하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성경 말씀가운데 말세의 징조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여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고”(딤후3:1-5).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이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요5:26).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이 아들인 예수그리스도에게 체현되고, 다시 보혜사 성령에 의하여 사람 가운데 실제화 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세상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지만은 그분의 생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 기독인의 자존심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있는 그것이다.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한 가족의 아버지는 생명의 전수자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된다. 내가 이 땅에 살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부모의 생명이 나에게 표현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듯이 사람이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요, 기독인만 갖는 유일한 비밀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기독인은 물론 그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보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을 분명하게 가르치자. 더불어 부모에 대한 공경의 효를 실천하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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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공경은 기독인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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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하고 깨끗한 선거를 준비하자
-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과 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등 한국교회의 주요한 교단들이 노회와 연회를 진행하면서 부총회장, 감독 등에 출마한 후보들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경선으로 후보가 확정될 가능성이 높아 치열한 선거전이 예상된다. 걱정스러운 일은 고질적으로 내려오는 금권선거에 대한 우려이다. 벌써 어느 후보가 얼마를 썼는지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다. 사실상 선거전은 이미 물밑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결국 돈으로 표를 사려는 금권선거에 대한 악몽을 지울 수 없다. 금권선거는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는 가장 나쁜 관행이다. 몇 억을 써야 총회장에 당선되고, 감독에 당선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금권선거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내홍을 앓았고, 결국 지금처럼 여러 단체로 분열되고 말았다. 분열되기는 쉬어도 다시 하나로 합치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금권선거로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지난 10여년 간 몸살을 앓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소송이 잇달았고, 많은 사람들이 곤혹을 치렀다. 여기에 소송비용까지 합친다면 손실과 손해는 너무나도 막대하다. 총회장이나 감독에 출마한 인사들은 모두 교계에 이름이 잘 알려진 중견목회자이다. 당연히 이에 따른 높은 도덕성과 인격이 요구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만, 자리는 그 사람의 인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돈을 주고 표를 사서 총회장이 된다한들 그것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총회장, 감독은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더 낮은 자세로 섬기고, 화합을 이끄는 자리가 돼야한다. 어느 전 감리교 감독은 감독은 행정의 수반이 아닌 영적 리더의 자리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백번 옳은 말이다. 금권선거 없는 깨끗하고, 모범적인 선거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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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하고 깨끗한 선거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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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교육에 힘쓰자
- 코로나 시대를 맞아 교회에서 젊은 세대가 떠나는 등 차세대 신앙교육이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비대면 사회가 도래하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곳이 교회이다. 성도들의 교제의 장이 제한을 받다 보니 자기 생활에 안주하게 된다. 여기에 디지털 사회의 편리함이 영혼의 나태함으로 나타난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편리한 스마트폰에 생활의 전부를 의존하는 ‘생각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모든 것을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검색창을 통하여 필요한 정보를 찾아 시간을 보낸다. 심지어 교회의 비대면 설교에 익숙하게 되고. 성경 읽기보다는 앱에 의지한다. 그 결과 개인주의적인 종교생활로 인하여 청소년들이 교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차세대교육은 매우 미흡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 자녀들의 모임이기에 하나님의 시민이요 권속(엡2:20) 곧 가정이다. 가정의달 5월을 맞아 모든 교회나 가정에서 차세대 신앙교육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2000년 교회 역사 가운데 가장 칭찬받은 교회가 빌라델비아 교회(계3:7-13)이다. 비록 수도 적고 힘이 약한 교회였으나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을 지키자 주님은 그 교회를 통하여 큰 역사를 이루셨다. 빌라델비아라는 이름은 ‘형제사랑’이라는 뜻을 갖고 있듯이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영적으로 크게 부흥하여 세계적인 선교를 이루었던 18-19세기 교회를 예표하고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는 유대인 종교가들은 예수님을 배척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민의식 때문에 완악했으며, 영혼에 무관심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자로서 모습을 오해했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많이 유사하다. 코로나 시대 개인주의가 만연함으로써 유대인들처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부인(딤후3:5)되고 있다.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온전하여 선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모든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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