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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민을 환대하는 교회가 되자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체류자의 수는 251만 명으로 이는 전체인구의 약 5%에 달하는 수치이다. 다문화가구도 약 40만가구에 달한다. 이제 우리는 수 많은 이주민과 살아가고 있다. 이들 중 유학 등을 이유로 단기에 체류하는 이들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이들에게 가져야 하는 중요한 자세는 환대의 자세이다.    성경은 이방인을 환대할 것을 말하고 있다. 레위기 19장 33절과 34절에서는 “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이주민을 환영하고 배척하지 않는 자세가 신앙인이 가져야 할 자세라 할 수 있다.    또 중요한 것은 그들을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취약계층이라는 편견으로 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의 융화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존재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주민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그들의 주거권이다. 한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선주민과 동일한 조건에서 생활해야 한다. 상당수의 이주민들 특히 이주노동자는 단체 생활을 하는데 이들의 숙소가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들의 최소한의 여건이 보장된 주거공간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가 이주민들이 초기 묵을 수 있는 숙소 등을 제공할 필요성도 있다. 또한 장기적인 정착을 할 수 있도록 한국문화와 실생활에서 필요한 상식들을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난 7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열린 이주민을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한 유학생은 “가장 힘들때 교회의 환대 덕분에 삶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렇듯 교회의 환대는 모든 이주민에게 필요한 것이며, 복음의 전달의 통로도 사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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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7
  • ‘교인감소’·‘다음세대’ 문제에 집중해야 - 금년 장로교총회에
    주요 장로교단 총회가 오는 5일부터 시작해 9월 중에 일제히 끝난다. 머지막 주간인 23일부터 27일까지가 가장 많다. 합동측은 23일부터 27일까지 울산 우정교회를 비롯해 통합측은 24일부터 27일까지 양곡교회에서 개회한다. 이번 정기총회는 총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을 선출하고, 주요한 선교 및 교육정책, 그리고 각 교단의 현안 문제를 다룬다. 특히 요즘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문제와 다음 세대 문제, 그리고 교인감소의 극복을 위해 집중적으로 논의해 새로운 정책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통합측을 비롯한 합동측, 고신측의 목사부총회장 선거전이 치열하다. 기장은 장로부총회장에 2명이 입후보했다. 통합측의 경우에는 3명이 입후보해 각 후보마다 선거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부총회장  선거전이 치열할수록 금권선거로 치닫을 수 밖에 없다. 각 교단 집행부는 공명선거를 위한 공정한 선거에 집중하고 있지만, 금권선거운동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워지고 있다. 교회가 이 금권선거로 인해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일꾼을 선출하는 데에 물질적으로 거래되어서는 안된다. 금권선거를 종식시키는 데에 모두가 앞장 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총회는 ‘코로나19’이후 급격히 감소되는 교인문제와 다음세대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계속 문을 닫는 교회가 늘고 있는 것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기 때문에, 교인감소를 현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해결할 방안도 마련해 다음 회기부터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세대 문제이다. 출산율의 저하로 인한 교회학교 부재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출산율 저하문제는 교회도 관심을 갖고 극복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의 몫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출산율 저하는 교회학교가 없어지고, 결국은 교회도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인공지능에 대한 문제도 적극 대처해야 한다. 통합측에서 윤리지침을 마련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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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7
  • [사설] 로잔대회가 한국교회에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
    로잔대회의 긍정적 효과는 무엇일까.   로잔대회가 성큼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교회 역시 오랜 기간 동안 이 복음주의 최대의 선교축제를 준비했다. 많은 기도회와 예배 그리고 간담회와 컨퍼런스 등이 진행되었고 목회자들은 물론 선교사들과 교회 행정가들, 평신도들 역시 모두 각자의 맡은 자리에서 이 행사를 함께 준비하고 기대해 왔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과연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또 다른 질문이 있다. 한국교회 모두가 이번 로잔대회를 찬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로잔에 대한 많은 우려의 소리도 있고, 로잔대회 개최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몇 개의 교단과 단체들은 로잔대회를 우려한다.      그리고 50년 역사 속에 로잔이 견지하고 있는 몇 가지 문제들. 특별히 로잔대회가 반성경적인 신학의 바탕 위에 세워졌음을 강조하며, 로잔대회를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이번 로잔대회를 찬성하고 협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 원인들로는 그간 한국교회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성장주의적 교회관, 세속적인 부와 관계된 기복신앙, 사회의 부조리와 정의문제에 등한시하는 한국기독교의 신학의 문제들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로잔대회 역시 이번 행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우려하는 다른 한 편의 목소리에 분명하게 대답해야 하고 논의해야 할 신학적이고 실천적인 숙제들이 남아있을 수 있다. 하지만 로잔대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종교적인 권위 없이 세상과 사회에 다가가려고 하는 초월적 신학과 실천적 영성에 있다.    복음의 교리를 전하는 것 이상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 복음의 온기를 전하는 일에 가치를 두는 그들의 실천적 제안은, 현재 한국 사회로부터 거부당하고 외면당하는 한국교회에 큰 도움과 변화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한국교회가, 이번 제 4차 로잔대회를 기대하고 준비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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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5
  • [사설] 감사의 의미를 생각하는 맥추감사절 되자
     ‘맥추(麥秋)’의 사전적 의미는 보리를 추수하는 일이다. 대개 봄철이 끝나는 시점이며,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7월 첫째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키고 있다. 하나님께서 밭에 뿌리 밀의 첫 열매로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다. 이를 “칠칠절(七七節)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출34:22,민28:26)’이다. 특별히 칠칠절(신16:9-12)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영육간의 축복을 감사하는 절기이다. 유월절이 끝나는 날부터 7주간이 지난 다음날을 칠칠절 혹은 맥추절 혹은 오순절이라고 했다. 이는 50일 간을 의미하며 마지막 날을 오순절 날이다. 유월절이 없으면 다른 절기의 계산조차 할 수 없다. 모든 기본은 유월절이 된다. 칠칠절은 과거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을 기억하고 풍요로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불우한 이웃과 함께 이를 기념하라고 명하고 있다.     맥추절은 우리의 사정과 다른 절기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지키던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과 비슷하다면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인정하고 서로 함께 나누자는 감사의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이러한 3대 절기를 통한 교훈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속죄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영육간의 축복을 감사함이요. 셋째 고난의 생활이 은혜임을 생각하며 감사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물은 바로 은혜이다. 맥추절이나 추수감사절은 은혜의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은혜란 하나님이 베푸시는 값없는 선물이다. 특별히 아무런 조건 없이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다. 필요할 때마다 순간순간 도우시는 주의 은혜이다(히4:16). 우리는 이 뜻을 받들어 주님께 감사하고 이를 생활 속에서 이루어 나가야 한다. 우리 주변에 너무도 어렵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들에게 은혜의 손길을 보내야 한다. 이제는 주변의 어렵고 고단한 이들과 함께하는 맥추감사절을 지키고자 하는 뜻에 따른 감사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은 한국교회를 인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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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 [사설] 여름성경학교 통한 다음세대 교육에 힘쓰자
     교회의 여름성경학교는 여름동안에 교회에서 주최하는 단기간의 성경 수업으로,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일군으로 성장시키려는 목적으로 방학 기간에 기독교 교육을 시행하는 학교이다. 여름성경학교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하고 예수가 인간을 구원해주어 새사람이 되었음을 깨닫게 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교회들의 여름성경학교는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수양회, 수련회 등으로 보완되고 있으나 한편으로 어학이나 여행 등의 프로그램으로 명맥을 유지하면서 정작 필요한 청소년의 신앙교육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위기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지나친 세속화로 사회를 향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보다는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는 현실이 되고 있다.     청소년의 신앙교육 활성화의 길은 무엇인가! 그동안 한국교회는 외적인 성장에만 치우쳐져 있어 성도들의 영적, 지적, 심리적 요구를 돌볼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은 극히 미흡한 상태에 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성경에서 가장 바람직한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계3:7-13)이다. 빌라델비아는 ‘형제사랑’을 의미한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주님은 거룩하고 참되신 분임을 고백하고 인내의 말씀을 지켰던 교회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4:8). 따라서 하나님이 중심된 교회를 회복하고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은 성령의 검(엡6:17)으로서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존 번연은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이 믿음의 소망의 순례길에서 3가지를 중시하고 있다. 첫째 사람들과 다른 옷을 입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옷이다(롬13:14). 둘째 가나안 말 곧 약속된 성경의 말씀을 사용했다. 셋째 ‘헛된 물건’을 사지 않았다. 오직 진리만을 샀다(잠23:23,요8:32). 디지털 시대의 모든 것은 헛된 물건들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유일한 진리인 ‘그리스도’가 중심인 말씀을 깨달아 가는 ‘진리’만을 가르치는 복음의 교육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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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 [사설] 단기선교위한 위기관리 교육 필요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단기선교를 위한 준비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단기선교를 위한 위기관리 교육의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단기선교지의 현지 상황과 문화 등을 성도들이 잘 알고 갈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여행자보험과 같은 준비를 통해 어려운 상황을 당하게 되더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여행자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사고를 당하더라도 보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성도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사항이다.   외교부에서 제공하는 해외안전여행 페이지에서는 여행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현지문화와 유용한 현지어 그리고 사고의 유형 등을 알리고 있다. 유용한 현지어에 경우 한국어로 발음도 적어 이용자들이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정보를 선교지에 방문하기 전에 배움으로써 선교지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현지법이나 정서를 알리는 것이다. 현지법을 잘 몰라서 현지에서 구류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지정서를 잘 몰라서 폭행 등의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한국과는 다른 교통상황도 알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선교지에서 발생하는 사고사례 중 가장 많은 경우가 교통사고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운전석이 다른 경우 운전에 더욱 유의할 것을 알려야 한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영상을 제작해 교회와 선교단체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이러한 내용을 알리는 것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안전한 단기선교를 할 수 있도록 관심을 촉구할 운동이 필요하다. 교단선교부와 선교단체 등에서는 단기선교 사역 이전에 위기관리교육을 받도록 해서 위기상황을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기관리에 대한 강의와 실습을 통해서 더 은혜가 되는 단기선교를 준비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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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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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불피해지역을 연합해서 돕자
    이번 3월 초에 울진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지역주민에게 큰 고통을 남겼다. 아직도 많은 이재민들이 큰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있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교회는 연합해서 산불피해지역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이런 가운데 한국교회총연합은 산불피해지역에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해서 좋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왜 연합기관이 존재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는 교파와 교단의 구별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이렇게 사랑을 실천할 때 연합과 일치는 더욱 공공하게 될 것이다.   물론 개인별로 혹은 개 교회별로 혹은 개별 교단총회 별로 도움의 손길을 펼칠 수도 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하나보다는 열, 열보다는 백, 백보다는 천이 모여 한번에 도움을 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이 일에 한국교회는 하나가 돼야 하고 연합해야 한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연합기관을 중심으로 하나가 돼 산불피해지역에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면 한국교회는 그동안 잃어버렸던 사회적 공신력을 회복하고 다시 한 번 부흥의 전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백마디 말보다는 한번의 따뜻한 사랑의 실천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예수는 이웃이 누구냐는 율법사의 질문에 선한 사마리이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너도 이같이 행하라”고 말씀했다. 이 명령은 지금의 한국교회에도 유효하다.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산불지역에 도움을 주는 일에 한국교회는 하나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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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30
  • 연합기관 통합을 위해 기득권을 버리라
    한기총 임원회에서 한교총과 합의했던 통합 합의서 채택이 끝내 통과돼지 못했다고 한다. 이로써 통합은 시작부터 좌절되고 말았다. 결국 말만 무성하고 또 무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한기총, 한교총, 한교연 등 이름도 비슷한 세 기관은 본래 하나였다. 한 단체로 20여 년을 이어오다 극심한 갈등과 대립 속에서 지금처럼 세 기관으로 분열됐다. 갈라지는 것은 쉬워도 다시 합치는 것은 어렵다. 중요한 것은 왜 갈라졌냐는 것이다.   한기총측은 한교총 안에 WCC가입 교단이 있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한교총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과 기독교대한감리회는 NCC가입교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를 근거로 통합을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처음 한기총을 주도한 사람은 예장통합측 한경직목사였다.   연합기관이 신학을 토론하는 것이 주임무는 아니다. 물론 신학적 노선도 중요하지만, 연합기관은 말 그대로 연합을 위한 기관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고 통합에 반대하는 것은 사실상 통합을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각가 갖고 있는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먼저 한교총은 패권주의를 내려놓아야 한다. 규모와 재정 면에서 압도적 위를 갖고 있는 대형교단을 거느린 한교총은 이러한 규모를 기득권으로 행사해서는 안 된다. 한기총은 WCC 같은 문제에 너무 집착하지 말기를 바란다. 한기총은 본래 하나였고, WCC가입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국교회의 연합이라는 가치 가운데 서로를 인정하면서 하나의 연합기관을 유지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3.1절연합예배나 부활절연합예배에서 WCC가입여부는 그렇게 중대한 문제가 아니다. 특별히 이단이 아닌 이상 한국교회는 교파와 교단에 상관없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예배했다. 이러한 통합의 정신이 연합기관의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진정한 기초이다. 기득권을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 내 것을 먼저 내려놓지 않고 상대에게 내려 놓기만을 요구한다면 이는 어불성설이요 적반하장이다. 뼈를 까는 각오로 나의 기득권부터 포기하는 모습을 연합기관은 먼저 서로에게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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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7
  • 윤석열대통령 당선인에게 바란다
    무엇보다 윤당선인은 국민통합의 길로 나서야 한다. 이는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이다. 윤대통령당선인은 불과 20여만표의 차이로 당선됐다. 단 0.8%의 차이로 승리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통합의 길로 나서야 한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갈등요소들이 폭발했다.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지역 갈등, 이념 갈등이 동시에 압축적으로 표출됐다. 그래서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말이 회자됐다. 이러한 갈등을 치유하는 길은 통합 외에는 없다.   윤당선인 유세과정에서 ‘정치보복’을 운운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물론 법과 원칙에 따라 불법에는 정당한 수사와 처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보복이 국정의 우선과제일 수는 없다. 통합의 길로 나서야 한다.   다음으로 약자와 소외된 자를 위한 정치를 펼쳐야 한다. 기독교는 사랑의 실천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그래서 약한 자, 소외된 자를 보호하고 돌보는 것이 기독교에서는 정의이다.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고 돌보는 정치를 펼쳐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윤당선인의 공약 가운데 사회복지에 대한 광범위한 약속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그냥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정책으로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혐오와 대결에서 대화와 포용의 정치로 나가기를 또한 기대한다. 혐오와 대결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차별금지법에서부터 남북문제에 이르기까지 혐오와 대결이 아닌 대화와 포용으로 나가는 정치를 우리는 기대한다. 또 다시 한반도에 전쟁과 대결의 재앙이 있어서는 안 되기에 평화는 그 어떤 것보다 큰 방향이자 가치이다.   우리는 윤당선인이 우리의 이러한 시대에 귀를 기울이고 국민대통합과 평화의 큰 길로 나서기를 촉구하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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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7
  • 고난 중에 있는 이웃을 돌보자
    사순절이 지난 2일 시작돼, 오는 4월 14일 끝난다. 15일 성금요일이 지나고 17일 부활절을 맞게 된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를 기억하고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가 있다.   일부 교단에서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사순절을 지키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사순절을 지키면서 십자가의 의미를 기억하는 시간을 갖는다. 성경해석의 차이로 사순절을 지켜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불필요한 논쟁은 자제해야할 것이다.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다 아무 유익이 없는 갈등이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고난을 묵상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이며, 십자가는 곧 고난과 낮아짐이다. 사도 바울의 고백대로 십자가는 미려한 것으로 보인다. 채찍에 맞고, 가시관을 쓰고, 양 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참으로 끔찍한 고통이 십자가이다. 미련하게 보인다. 조용히 참선을 하고, 기도를 하고, 명상을 하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슬기롭게 보인다.   흔히 세계 4대 성인을 말한다. 소크라테스, 예수, 석가, 공자이다. 석가와 공자는 십자가 같은 끔찍한 형벌을 당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고 전해진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끔찍한 고난을 받고 죽었다. 그것은 고난 없이 진정한 구원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감사와 감격을 경험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곧 내가 받을 고난이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순절 기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 오미크론의 대유행 속에서 어려움에 처한 우리의 이웃을 돌봐야 한다. 이러한 일은 개인 혼자서는 하기가 힘들다. 교회 공동체가 나서서 저소득층, 독거노인, 소상공인 등에게 따뜻한 온정을 베풀어야 한다.    이렇게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돌보는 것이 사순절에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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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02-28
  • 공명선거에 앞장서는 한국교회가 되자
    이번 대선에서 여야의 후보들이 초박빙의 경합을 벌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초미의 관심사이다. 선거에서, 특히 대통령선거에서 교회는 무엇보다 공명하고 깨끗한 선거가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선거과정에서 만에 하나 불상사가 나온다면 이는 국가의 이익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것이고, 이는 한국교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선거에 참여해 주권자로서 투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면서 동시에 한 국가의 시민이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의무와 권리가 있듯이 국가의 시민으로서 의무와 권리가 있다.    사도 바울은 위에 있는 권세에 순복하라고 했다. 또 조세를 바칠 자에게는 조세를 바치라고 했다. 예수님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다. 세상의 나라와 권력을 인정하신 것이다. 그러기에 전통적으로 교회는 무정부주의를 따르지 않았다. 교인은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선거에 참여하라고 교회는 전해야 한다.    교회가 직접 나서서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선택은 교인 한 사람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 또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특정후보를 지지하라고 설교해서도 안 된다. 교회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배하고 선교하고 봉사하기위해 모이는 곳이다.    교회는 기독교적 정신이 정책에 반영되도록 기도하며 요구하는 일을 해야 한다. 예컨대 기독교의 근본정신 가운데가 이웃사랑이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라고 했다. 이러한 정신이 구현된 정책이 지금의 사회복지제도이다.   기독교 역사가 깊은 서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가 사회복지정책을 실천해 왔다. 그래서 우리도 여와 야를 떠나서 소외된 이웃을 돌볼 수 있는 복지정책이 나오도록 기도하며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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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02-28
  • 신학교 졸업생의 사역지 문제 심각하다
    2월은 졸업식의 시즌이다. 특히 3년 동안 ‘선지동산 신대원에서 학문과 경건에 힘쓰다 졸업을 하고 새로운 사역을 준비하는 모든 졸업생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3년 동안의 노력과 눈물에 누구라도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사역을 하고 싶어도 사역지가 없어서 겉도는 목회자들도 많다. 이들은 보통 ‘무임목사’라고 불린다. 사역지를 구하지 못한 무임목사는 결국 대리운전, 택배 같은 아르바이트로 가족들의 생계를 꾸릴 수밖에 없다. 무임목사는 개교회주의와 분열이라는 한국교회의 고질병이 만들어낸 파행적인 구조이다. 여기에 학생수 감소로 위기에 몰린 정규.비정규 신학교는 계속해서 새로운 목사들을 배출해낸다. 무임목사를 둘러싼 이러한 파행적 구조를 혁파할 근본적인 대책 수립이 절실하다.    사역지가 없는 무임목사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무임목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일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A목사는 2000년 대 중반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서울의 한 중형급교회에서 부목사 사역을 했다. 10년 정도 사역을 한 후 자의반 타의반으로 교회를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개척도 생각해봤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고 결국 생활전선으로 내몰렸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대리운전이었다. 이 외에도 택시운전이나 택배 같은 운전직, 편의점 같은 단순노무직도 무임목사의 아르바이트였다.    무임목사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목사의 과잉배출이다. 수요는 제한돼 있는데, 공급이 많다보니 무임목사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무임목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각 교단이 목회자후보생을 자율적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개선책이다.
    • 오피니언
    • 사설
    2022-02-18
  • 무속에 의지하는 정치를 우려한다
        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 진영에서 무속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교계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목회자와 평신도들은 성명을 내고 무속을 의지하는 정치는 하나님의 뜻에 반한다고 밝혔다. 또 전현직 신학대 교수들 역시 무속이 아닌 민주적 공론에 기반한 정치를 요구했다.   무속 또는 샤머니즘은 기독교의 복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한국교회는 기억해야 한다. 샤머니즘은 철저히 기복적이고 이기적인 신앙이다. 아니 ‘신앙’이란 말을 쓰기도 부적절하다. 샤머니즘에는 자기희생, 사랑, 겸손, 용서 같은 기독교신앙의 핵심적 가치가 전혀 없다. 무속은 그저 내가 잘 되고, 돈을 잘 벌고, 병에 걸리지 않고, 장수하는 것만을 추구한다. 이러한 기복을 위해서는 비윤리적인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야당 선거캠프에 있는한 무속인은 살아있는 소의 가죽을 벗기는 엄청난 일도 서슴없이 자행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국가의 정치지도자로 매우 중요한 국가중대사를 결정하는 자리에 있다. 이 결정으로 나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될 수도 있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대한민국 국군이 진격할 수도 후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토록 막중한 판단과 결정이 점과 사주에 의해 실행된다면 참으로 통탄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닌가?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현대의 정치는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천명한다. 민주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뜻이며, 공화국은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들이 통치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성경에 영향을 받은 서구에서 만들어진 개념이자 제도이다.   이러한 21세기의 대한민국 민주정치에 무속과 샤머니즘이 개입하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점괘와 사주에 의해서 인사들이 등용되고, 국가중대사가 결정된다면 이는 대한민국을 과거의 시대로 돌리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선한 정치가 되도록 기도하자.
    • 오피니언
    • 사설
    2022-02-11
  • 신학교육은 특별한 소명이 필요하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세속화 본질의 중심에는 신학교육의 문제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신학교의 난립에 있다. 매일 하나씩 분열된다는 교단과 그로 인한 신학교들이 난립함으로써 무자격교역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그리고 자격이 있다고 하는 신학교마저도 신학 자체가 세상의 초등학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통 복음주의적인 신학을 벗어나서 세상 초등학문을 따라 너무도 세분화된 교육과정에 의하여 과정자체를 중시하는 신학이 되고 있다.    이들은 성경에서 가장 근본인 “거듭남”(요3:3)의 문제를 심상히 일반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며”(빌1:6),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날이 있고”(골1:6),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3) 등의 말씀들에 대하여 분명히 알지 못하고 목회에 임하는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신학생으로서 특별한 소명이 부족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사도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유언하는 말씀으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고 말씀하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딤전6:12).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 찌니(딤후2:3).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4-15)고 당부를 하고 있다.    따라서 신학교육은 그리스도의 ‘풍성과 충만’에 대하여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고는 목회 현장에서 복음의 진리를 온전히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22-02-11
  • 한국교회, 그리스도를 힘써 알자
    이 시대는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확실한 징조들이 나타나는 때이다. 처처에 기후변화에 의한 기근과 탐욕으로 인한 전쟁 그리고 세계적인 코로나 온역 등으로 너무 악한 때이다(눅21:11). 더욱이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한 것보다 더하며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부인되는 말세이다(딤후3:1-5).    특히 교회가 세속의 길에서 방향을 찾지 못함으로써 세상의 모습이 그대로 기독교 속에 투영되고 있는 간음과 변절의 현실이 오늘의 모습이다. 이때 근본에 충실하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그리스도를 힘써 알아가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간음하고 변절하여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에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6:3)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에 새벽 별처럼 나아오실 것이고, 땅을 적시는 늦은 비처럼 이스라엘에 오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천년왕국에서 늦은 비인 그리스도에 의해 적셔지는 땅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는 찬송과 예배라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인 그리스도의 구원과 영광에 대한 믿음을 굳게 하는 그리스도를 힘써 알아가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성막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직접 설계하신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죄인들이 반드시 들어가는 문을 통하여 십자가인 번제단을 시작으로 물두병에서 정결케 하고, 성소에 들어가 진설병에서 말씀의 교제를 나누고, 금등잔에서 빛 가운데 행하며, 향단에서 기도함으로 능력이 임하게 된다. 그 후에 지성소에서 내적 생명의 교제를 이루고, 그룹들이 내려다보는 피가 뿌려진 속죄소에서 온전한 안식과 화평을 누리게 된다.    한국교회는 성경을 통하여 성막의 새롭고 놀라운 사실을 더욱 열심히 그리고 더욱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여 그리스도를 힘써 알아가는 일에 더욱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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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02-03
  • 설날, 전통문화를 기독문화로 승화
    설날이 다가온다. 예부터 설날은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크게 생각하는 민족 최고의 명절이다. 올해에도 설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은 불편을 감수하고 고향으로 내려갈 것이고, 형제 친지들은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잔치를 열게 될 것이다.  수천 년간 설날은 조상에게 차례를 드리고 한해의 복을 비는 날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현대인이 지키는 설날은 음력을 사용하던 과거의 풍습을 따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안부를 묻고, 화목을 나누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는 명절이 됐다. 새해를 맞이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나서 맞이하는 설날은 새해를 맞아 조상에게 복을 빌기 위함이 아니라, 잠시라도 복잡한 도시를 떠나 보고 싶은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하겠다. 물론 불신자가정에서는 가족 행사로 차례를 지내기도 하지만, 이는 차례 자체가 목적보다는 함께 모이기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보수교단에서 우상숭배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설날을 부담스러운 날로 생각해 스스로 소외시키기 보다는 가족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전도 활동을 하면서 가정문화를 기독교문화로 변화시키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의미도 모르고 조상을 신처럼 여기는 차례보다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조상들을 생각하고, 가족사랑을 실천하는 명절로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차례보다 부모섬김을 실천하고, 더 즐거운 기독교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 형식적 효에 그치는 차례보다는 진정한 부모섬김과 가족사랑, 그리고 이웃에 대한 관심을 보임으로 유교문화를 계승하는 명절이 아닌, 기독교적 문화를 나누는 명절로 변화시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축복의 명절로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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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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