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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 여름캠프 활성화가 필요하다
    매년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많은 교회가 청소년 캠프에 나서고 있다. 원래 캠프란 일상에서 벗어나 휴양이나 훈련 따위를 위하여 야외에서 천막을 치고 일시적으로 하는 생활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이것은 참여자들의 창의력과 상상력, 이해력과 표현력, 협동성과 자발성 함양을 목표로 하고 있기에 청소년의 각종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90년대부터 캠프는 우리 사회에서 유행이 되면서 한국교회에서도 방학이 되면 청소년의 신앙교육으로 유용한 수단으로 이용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교회들의 여름성경캠프는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수양회, 수련회 등으로 보완되고 있으나 한편으로 어학이나 여행 등의 프로그램으로 명맥을 유지하면서 정작 필요한 청소년의 신앙교육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됨으로써 우리 자녀인 미래세대를 참으로 염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장 6절)는 말씀을 유기하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지나친 세속화로 사회를 향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보다는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는 현실이 되고 있다.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존 번연은 ‘천로역정’에서 그리스천이 믿음의 소망의 순례 길에서 반드시 통과하는 허영의 시장을 지나게 된다. 순례자들을 훼방하기 위하여 사탄이 꾸민 세상이라는 장소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역사를 좌절시키기 위하여 죄와 육신과 세상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순례자는 3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사람들과 다른 옷을 입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옷이다. 둘째 가나안 말 곧 약속된 성경의 말씀을 사용했다. 셋째 ‘헛된 물건’을 사지 않았다. 오직 진리만을 샀다. 디지털 시대의 모든 것은 헛된 물건들이다. 우리는 유일한 진리인 ‘그리스도’가 중심인 말씀을 깨달아 가는 ‘진리’만을 사는 복음의 교육이 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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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02
  • 분배가 절대 선은 아니다
    경제위기가 심각하다.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1,200원선을 위협하던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등 다소 안정세를 찾고 있으나, 미·중간 협상이 기대에 못 미칠 경우 경제위기 불안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이미 역전된 한국과 미국의 금리로 인해 외화유출도 우려되는 가운데 주식시장에서는 연일 외국인의 매도세로 주가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등 각종 경제지표는 빨간불이다. 문제는 이같은 위기를 정부는 물론 교계에서도 제대로 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탈원전,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 등 정책적 실패가 사상최대의 실업률과 자영업자들 폐업으로 이어지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물론 일부 기독교 연합기관에서도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신성장 동력 개발과는 동떨어진 포퓰리즘식 나눠먹기를 주장하고 있어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최근 모 연합기관은 기본소득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기본소득으로 모든 국민에게 매달 100만 원씩 지급할 것’을 제안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는 성경의 말씀과 정면으로 상충되는 주장이라 이에 대한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성장보다 분배에 초점을 맞춘 포퓰리즘 정책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심각한 계층 간 갈등을 유발한다는 점과 재정의 건전성을 훼손시킨다는 점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포퓰리즘의 폐해를 국민들이 직접 체감해야 한다고 한다. 해당 정책으로 경제가 침체되고 국가재정이 무너지게 되면 그 무서움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기를 겪고 나서 깨닫는다면 그 피해가 너무 크기에 이제라도 돌아서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포퓰리즘과 무상정책으로 무너진 국가들의 비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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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26
  • ‘정교분리’의 원칙과 한국교회
    한국교회 안에 정교분리의 원칙에 대한 오래된 논쟁이 다시 일고 있다. 3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 연합기관의 대표회장이 현직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했고, 이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난 국가조찬기도회에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것을 두고도 논란이 있었다. 일부는 대통령이 기독교를 무시했다며 감정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규정해주는 원칙이다. 단순히 말하자면 교회는 정치에 개입하지 말아야 하고, 정치는 교회를 간섭해서는 안 된다. 각자의 욕망과 계산을 위해 정치가 교회를 이용하고, 교회가 정치를 이용하는 것은 교회의 타락이며 정치의 타락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교분리의 원칙이 정치에 대한 교회의 ‘무관심’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상의 교회는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대해 기도함으로 ‘정치적 책임’을 다한다. 교회는 정치가 하나님의 정의와 법에 맞게 그 사명을 다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만일 정치가 선이 아닌 악을, 정의가 아닌 불의를 행한다면 교회는 여기에 대해 정의를 행하라고 촉구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정치적 책임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교회만이 아니라 국가에도, 자연에도 미친다. 창조의 질서에 따라 자연이 운행하듯이 하나님은 세우신 정의와 도덕에 따라 정치가 움직이도록 한다. 인간의 죄가 정의의 법을 억압할 때 교회는 여기에 대해 정의를 촉구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조찬기도회는 대통령과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참석여부를 기도회의 성공여부로 여긴다면 이는 정치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연합기관의 대표가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연합기관의 명성과 조직을 통해 특정 정당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려 한다면 그것은 정치적 욕망을 위해 교회를 이용하는 것이다. 교회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정치에 무관심하지도 않다. 정치가 하나님의 법에 따른 정의의 편에 서도록 기도하며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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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26
  • 국가조찬기도회의 격을 회복하자
    국가조찬기도회는 기독교 지도자를 중심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으로서 우리나라는 1948년 제헌국회에서 이승만임시의장의 제안으로 종교가 어떠하든지 모든 의원이 기립하여 먼저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현재 국가조찬기도회는 고 김준곤목사(한국CCC 설립자)가 1965년 2월 국회조찬기도회를 추진하여 이듬해인 1968년 3월 8일 제1회 국가조찬기도회를 시작으로 매년 개최하고 있다. 올해 제51회 국가조찬기도회는 6월 17일 코엑스에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주제로 개최한다. 국가조찬기도회는 기독교가 전파된 나라들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이 모임을 갖는다. 그 대표적인 국가가 미국이다. 미국 국가조찬기도회는 1953년에 시작하였고, 매년 2월 첫번째 목요일 워싱턴 DC에서 세계 각국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과 미 연방 상하원과 정부요인들이 모이는 세계적인 행사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국가조찬기도회는 많이 왜곡되기도 했다. 그 이유는 국가권력이 국가조찬기도회를 권력유지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개신교 목사들이 대통령과 국가지도자를 초청해 국가조찬기도회를 할 때마다 정교분리를 외쳤지만 권력에 아부하고 굴종한 역사가 더 깊기 때문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하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심”(로마서 13장 1절)을 믿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통치자가 어떤 인물이든 간에 하나님으로부터 나라의 평안과 안전을 위임받았기 때문에 기도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 애국가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명기하고 있듯이 세상의 빛과 생명 그리고 능력이 되는 기독교가 됨으로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고백할 때에 국가조찬기도회의 격은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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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19
  • 6·25의 판세는 변한 게 없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역사적 분쟁의 불의 고리다. 마치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대륙판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지진과 화산을 일으키는 불의 고리처럼. 이는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숙명적인 과제다. 6·25는 대륙세력을 대표하는 중국과 해양세력을 대표하는 미국의 전쟁놀이판이었다. 그리고 이 전쟁놀이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역사는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판이 바뀔 뿐 같은 형태로 반복한다. 지금 한반도의 판세는 무력충돌의 판이든 경제전쟁의 판이든 마치 미국과 중국이 북한과 남한을 장기판의 졸처럼 사용하는 판 놀이다. 이를 직시하고 극복해야 우리 민족의 앞날이 있다. 임진왜란도 병자호란도 결국 우리 민족은 대륙의 힘과 해양의 힘이 벌이는 장기판의 졸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제 보수나 진보나 정신 차리고 더는 한반도의 장기판에서 졸 노릇을 그만하자. 4·19든 5·16이든 6·10민주화운동이든 태극기 부대이든 촛불혁명이든 우리끼리 벌이는 판갈이는 그만두자. 통일이 우리의 정권교체의 판갈이로 해결될 것 같은가? 통일이 대박이든 쪽박이든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판세가 아님을 직시하자. 정신 차리자.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망한다. 6·25의 판세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판세를 바꾸어야 한다. 더는 강자들의 장기판에 졸이 되지 말자. 6·25의 판을 깨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을 알아야 한다. 미국은 우리에게 누구이며, 중국은 우리에게 누구인가를 배워야 한다. 알아야 한다. 우리끼리 골목대장의 자리를 걸고 싸우는 판갈이의 정치문화부터 바꾸자. 조막만 한 핵을 들고 트럼프에게 덤벼들거나, 달랑 몇 푼 손에 들고 시진핑에 맞서려는 어리석은 짓은 그만하고, 지구촌 새 시대의 새판을 짜시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우리도 한 번 장기판의 주인이 되어 보자. 우리끼리 판을 짜고 판을 깨지 말고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판에서 화해의 도구가 되어 평화의 새 판을 만들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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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19
  • 한기총, 냉철한 현실인식이 필요하다
    지난 5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발표한 시국선언이 교회를 넘어 사회에 파란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기서 한기총은 “그동안 한국교회가 이루어놓은 세계사적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문재인대통령이 올해 연말까지 하야할 것과 정치권은 무너진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4년 중임제 개헌을 비롯하여 국가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자 내년 4월 15일 총선에서 대통령 선거와 개헌헌법선거를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관해 교계는 물론이고 정치권까지 가세해서 전광훈목사의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하며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한기총은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진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한기총 대표회장을 지낸 한 원로는 전광훈목사가 그렇게 발언하게 만든 단초는 문재인대통령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좌파의 대통령도 우파의 대통령도 아닌 국민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표회장으로서의 발언이 지나쳤다는 점은 인정했다. 또 전광훈목사가 전체적으로 애국충정의 마음에서 발언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여러 논란을 떠나 한기총은 정치적 발언에 더욱 냉철한 현실인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자신의 신념과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자유대한민국에서 합당한 행동이다. 그러나 그것은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사실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단지 문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통혁당 관련자 신영복을 존경한다는 말을 비롯해 몇몇 발언만을 가지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간첩으로 몰아가는 것은 현실과는 큰 괴리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와 교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한기총의 입장과 맞는 정치세력과는 연대할 수 있다는 한기총의 입장이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발언에 있어서 한기총은 국민의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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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11
  • 탈북민선교와 한국교회
    통일부 자료에 의하면 남한 입국 탈북자는 2019년 3월 말 현재 32,70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성별 비율은 여성이 2002년을 기점으로 남성을 추월하여 현재 전체 71%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1990년대 중반 북한의 ‘고난의 행군’을 계기로 많은 탈북민이 발생하면서 2005년 이후 지속해서 증가 추세를 유지하다가 2012년부터는 연간 1,500여 명대로 감소하더니, 2018년에는 1,137명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탈북민의 수가 줄어든 원인은 여러 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으나 그중에 김정은 정권의 강화된 탈북자 정책이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북한선교나 탈북민 선교가 실패했던 이유는 북한 사람들에 관한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겉모습과 언어가 같은 동족이라는 인식이 앞섰기 때문이다. 북한은 공산주의 변종인 주체사상으로 70년 이상을 살아온 철저한 이방인이다. 공산주의는 사람이 완전하다고 전제하면서 평등사회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체사상은 김일성이 하나님과 같은 전지전능한 절대자요 봉건사회의 왕이다. 인민은 공산당 조직의 노예로서 오직 김일성은 선이고 기타 모든 것은 악이다. 바로 북한은 동물적인 인간중심의 하향평등사회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체계가 붕괴함으로써 사고방식이 단순화되고, 지극히 피동적인 기본 욕구만을 가진 김일성 종교에 길들어진 이교도이다. 탈북민들이 남한 사회 적응과정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과의 만남을 두려워하고, 마음이 황무지로서 기경의 여지가 없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생각지도 듣지도 못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보편적인 가치를 모른다. 심지어 죄의 기준이 다르다. 그리고 남한사회에서 새로운 우상인 돈을 지향한다. 교회는 돈 주는 곳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나 주체사상이 성경을 모방했지만 가장 중요한 ‘사랑’을 놓쳤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한일서 4장 8절).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탈북민을 염려하고 따뜻한 이웃으로 대한다면 그들이 하나님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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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11
  •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애국
    해마다 6월의 호국보훈의 달을 맞을 때에 가장 생각나는 것이 한국전쟁이다. 8·15 해방의 기쁨에 젖기도 전에 남북은 이념 논쟁으로 갈라졌다. 북에는 소련군, 남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신탁, 반탁의 고비를 거치면서 1948년 각각 정권을 수립했다. 북한에는 소련의 사주를 받으며 김일성을 중심으로 평양에 공산정권이 수립되었고, 남한에는 이승만을 중심으로 UN결의에 따라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 세워졌다. 그런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을 확인한다. 1948년 대한민국 제헌국회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로 시작되었다. 애국가에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기록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을 향한 놀라운 섭리이자 역사다. 일제하에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국민에게 신앙과 함께 애국애족을 심어준 것이 큰 밑거름이 되었다. 이에 가장 대표적인 분이 주기철목사이다. 신앙인이요 독립운동가로서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고, 국가보훈처로부터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하던 새벽, 이 소식을 들은 빌리 그레이엄목사는 같은 침례 교인이었던 트루먼대통령에게 급한 전보를 보냈다. “수백만 그리스도인들이 위기를 맞은 대통령에게 지혜를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음. 공산주의를 즉각 응징할 것은 강력하게 촉구함. 남한에는 비율상 세계 어느 곳보다 그리스도인이 많음. 그들을 실망시킬 수 없음”. 미국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와 지원으로 한국전쟁은 승리로 끝났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따라서 국가가 없으면 모든 것이 없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국경이 분명하다. 그것은 조국에 대한 신념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살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신앙과 더불어 애국애족의 마음을 굳게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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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04
  •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자 - 「성령강림절」을 맞아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 후 50일 되는 날을 ‘성령강림주일’로 지켜왔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성령강림’은 바른 표현은 아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오순절에 성령이 내렸다는 뜻인데, 이렇게 되면 신약의 오순절 이전에는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는 오해가 발생하기 쉽다. 그러나 창세기 1장 2절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하는데, 이를 보면 이미 천지창조 때에 성령이 나오고 있다. 또한 구약 곳곳에 성령의 활동에 대한 많은 증거들이 있다. 따라서 사도행전의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했다’는 것은 바른 표현은 아니다. 또 신학적으로 보자면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인격’이다. 정통적이고 표준적인 신조에 따르면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구분돼서 역사 가운데 활동하시지만, 본질과 영광에 있어서는 ‘한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 또한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해서 성부와 성자와 함께 역사하고 활동한다고 봐야 한다. 오순절의 성령사건은 ‘강림’이라기보다는 ‘충만’에 그 특징이 있다. 즉 신약의 오순절 이전에는 왕이나 선지자 또는 특별한 직무를 갖는 사람들에게만 성령의 특별한 역사가 임했다. 그러나 오순절에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성령의 충만함이 나타났고, 이제는 은혜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나타나고 있다. 오늘 교회는 성령은 ‘인격으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성경에서 연약한 인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성령을 ‘불’이나 ‘물’로 비유했지만 그렇다고 성령이 그런 ‘비인격적 사물’일 수는 없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성령은 성도 안에 내주하며 성도를 돕고 인도하는 하나님이심을 잘 가르쳐야 한다. 한국교회의 기도와 열심히 전에 비해 확연히 줄었다는 표지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때에 한국교회는 성령의 충만을 어느 때보다 사모해야 할 것이다. 한 영혼을 거듭나게 하고 말씀으로 성장하게 하는 분은 오직 성령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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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04
  • 경제위기에 빠진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
    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을 맞아 경제학자 100명의 설문에서 ‘文정부 경제정책을 D학점’으로 평가하면서 한국 경제 위기가 현실임을 증거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혁신성장으로 요약되는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한국 경제에 대해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는 위기 직전 상황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 일각에서 “위기론은 과장됐다”며 소득주도성장으로 대표되는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 같은 상황 인식이 안이하다는 판단을 내린 셈이다. 실제로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제는 더욱 심각하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4월 실업률이 19년 만의 최고인 4.4%, 실업자 수(124만 명) 역시 2000년 이후 최고치이고, 청년층 체감 실업률(25.2%)은 통계 작성 후 최악이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강조한 평화문제는 진전이 있느냐. 이 역시 요원하다. 경제가 뚜렷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정부는 지난 2년간 어려운 여건에도 대외건전성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국민 생활과 직결된 리스크를 안정적으로 관리했다고 자평했다. 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 1분기와 비교해 주요 지표가 일제히 추락했음에도 안이한 인식을 보인 것이다. 정부가 객관적 상황 인식보다는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을 향한 ‘홍보전’에 치중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결국 국가의 위기극복은 국민의 몫이다. 그중에서도 이 나라를 섭리가운데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디모데전서 2장 1~2절). 따라서 교회는 물론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어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총리 그리고 나라의 리더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어둠의 세력에 대항하여 영적인 영역에서 세력을 얻을 수 있고 그들에 대항하여 승리할 수 있다. 그리하면 이 땅에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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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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